얼마전 현대 해체주의 철학의 거목 자크 데리다 교수가 운명을 달리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2000여년 전통의 서양 철학을 해체하자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즉 지금까지의 서유럽 전통적 형이상학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그 사상의 축이 되었던 것을 모두 상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려 하였다. 이러한 절대적 근간의 상대화는 역지사지의 사고 방식과 그 맥을 같이 하여, 자타(自他)를 구분하는 서양식 이분법으로는 삶을 규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동양식 상생을 강조하게 된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오행설(五行說)에서 金은 水를, 水는 木을, 木은 火를, 火는 土를, 土는 金을 낳게 하는 것, 또는 그 관계를 뜻한다. 의역하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생은 생물학적 공생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치아청소와 먹이해결이라는 이익을 교환하는 악어와 악어새나, 피신처 확보와 먹이 유인이라는 이익을 교환하는 흰동가리와 말미잘의 경우처럼 서로의 이익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상생은 공생의 이러한 산술적인 이익계산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공생이 상호간의 직접적·단기적인 이익이 전제되어야 하는 관계라면, 상생의 이익은 장기적·거시적·고차원적이다. 예로 협동, 자립, 자유, 평등, 분권, 비폭력 등은 인류 행복이란 상생의 이익을 위해 지켜야 할 덕목이다. 상생의 원리는 관용, 양보, 포용의 미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자타의 철저한 구분은 상생의 이익을 구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데리다 교수의 상생 철학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단기적·직접적인 이익에 치우쳐 편가르기가 심각한 상극(相剋)현상이 빚기 때문이다. 편가르기의 종류도 지역간, 빈부간, 세대간, 보혁(保革)간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수한 우리 국민이 파충류나 어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생의 이익에 집착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선조들이 피로써 지켜낸 이 땅의 자유와 독립, 우리들이 지켜낸 이 땅의 민주, 전통을 기반으로 한 지금 우리의 문화…. 이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에 녹아 있다. 어느 편이든 서로의 주장이 국가적 이익에 근거를 둔다고 하면 그 이익은 한국 사회라는 시스템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려줄 것으로 믿는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놓는 상생의 미덕이 아쉬울 따름이다. /오완석 한국토지공사 용인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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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4-11-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