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능력주의 말고 놀권리

무더웠던 지난 여름 한 고등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에 온 이유를 적어달라고 하자 ‘생기부(생활기록부)기재’라 적힌 숫자가 종종 눈에 밟혔다. 황금 같은 주말에 그들을 나오게 한 힘은 대학 진학 준비에 필요한 ‘생기부 기재’인 셈이다. 토요일마저 학교를 나와야 하는 학생들과 ‘인권’을 이야기해야 하는 우리 사이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공유하며 동료 활동가와 쓴웃음을 지었다. 교육을 시작하며 한 학생에게 이후 시간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워낙 피곤해 보이던 터라 내심 집에서 잘 거란 대답을 짐작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원가요.” 힘없이 대답한 고등학생의 표정이 작년 가을 교육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얼굴과 겹쳤다. 의사가 꿈인 어린이는 학원을 마치면 밤 9시가 되야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서울대 의대 가려면 엄마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에너지 음료 광고에 나올 법한 두 학생의 얼굴에 ‘번아웃’과 부지런한 삶을 말하는 MZ 세대의 신조어 ‘갓생’이라는 단어가 처연하게 떠올랐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는 이상한 남자 ’방구뽕‘이 등장한다. 그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10시까지 ‘자물쇠반’에 갇혀 공부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컵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부르는 방구뽕은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의 ‘놀권리’를 위해 놀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변진경의 책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은 드라마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사와 인터뷰를 수반한 현실로 조명한다. 수 년간 아동의 문제를 취재해 온 변진경 기자는 10시 반이면 우르르 학원에서 나와 패스트푸드점 폐장 시간까지 입속의 음식을 욱여넣는 아이들, 학원 수업을 위해 저녁을 거르고 고카페인을 끊지 못해 위염을 앓는 아동의 삶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았다. 드라마와 책 속의 아동은 교육 현장에도 존재한다.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초등학생과 주말에도 학원을 가야 하는 고등학생. 공부와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현실은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에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상생과 연대를 배우기 전에 이기는 게임을 터득한다. 노력에 따른 좋은 결과가 나타날 거란 믿음이 공고화될수록 사람들은 현실의 결과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 각자도생은 타인을 경쟁자로 의식하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결승점을 향해 아등바등 달려가게 하는 기본값이 되었다. 능력주의를 통과한 성공은 위계를 형성한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노력해서 얻어낸 성취는 시험 외에 다른 길은 허락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들은 만들어진 불안함으로 그들의 자녀를 ’자물쇠반‘이 있는 학원으로 보낸다. 흙수저, 금수저와 같은 불평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쟁에 몰두하는 사회 속에 타인을 위한 환경은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간파한 『공정이후의 세계』저자 김정희원은 나의 안위만을 위한 돌봄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와 불공정을 감싸는 구조를 직시하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나를 돌보는 ‘급진적 돌봄’을 제안한다. ‘급진적 돌봄’은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돌보는 삶이다. 경쟁과 성공을 부추기기 위한 정책은 어떤 이유로도 아동의 쉴 권리와 놀 권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삶은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연대와 상생이 인식의 고갱이 되어 좋은 삶으로 이끄는 실천이 필요하다. 어린이가 스스로 돌보며 상생을 배울 힘은 놀이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호와 통제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린이가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삶의 여건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보호자는 어린이에게 주체적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이 돼야 한다. 각박한 세상을 거스르기 위해 어른도 노동의 수단이 아닌 자기돌봄의 주체로 자기 삶의 속도를 따라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늘도 보고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마음껏 놀고 충분한 쉼이 필요한 존재에 예외는 없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세상읽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슬기로운 소비생활

우리 집에는 전자렌지가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자렌지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직장 생활하며 아이들 키우며, 무엇보다 맛있는 레토르트 음식이 많은 데 괜찮냐며 되묻는다. 심지어 80대의 시어머님도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용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편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불편한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 집은 다섯 식구다. 다 함께 한 끼 단품 요리를 해 먹는 밥상 문화에 잉여 음식이 없고 장을 볼 때도 냉동식품류는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전자렌지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 외 다른 가전제품 사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소비문화를 교육하면서 사회의 시대 흐름의 변화와 그에 발 빠른 기업의 움직임으로 가전제품이 느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늘어나는 가전제품으로 인한 소비문화는 우리 사회의 에너지 사용량과 비례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기후 위기에 처하게 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 전자렌지 사용의 문제점은 전자파였다. 건강에 매우 유해하다는 이유로 구입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최소의 가전제품으로 느린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선택이 불편은 했지만 옳았다. 기업 윤리에 맞게 생산된 가전제품들은 건강만이 아닌 에너지, 미세먼지, 음식물쓰레기, 하천오염 등 환경 전반의 여러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는 환경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슬기로운 소비 생활이 필요한 이유다. 올해는 먹을거리 소비 생활의 하나로 로컬푸드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내 생산된 먹을거리를 시민들에게 홍보만이 아닌 지속적인 소비를 목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으며, 그 중 로컬푸드이면서 동물복지까지 실천하고 있는 산안마을 공동체와 연대하고 있다. 우연찮은 계기로 방문하게 된 산안마을의 건강한 병아리들을 보며 그 후 지속적인 연대를 고민하며 만나는 대상에게 맞춰 풀어가고 있다. 이 작은 행동이 지역 경제의 선순환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비는 경제이기도 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적 나와의 약속이 하나 있었다. 각자가 필요한 걸 사야 할 때 할인 상품이 아닌 정품 구입을 절실히 원한다면 구입 후 사용률 50%가 안 될 시에는 용돈에서 50%의 금액을 환수했다. 어린 나이에 가혹하기도 했지만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구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는 그들이 선택한 결정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살려 경제 교육으로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환경과 소비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언젠가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랍니다…아니,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라는 글귀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처럼 건강한 우리 사회를 위해 슬기로운 소비 생활은 세대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며, 나는 이를 위해 늘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변남순 수원YWCA 팀장

[세상읽기] 지방소멸 시대에서 지역창조 시대로

지방의 위기는 결국 국가의 위기로 직결된다. 대한민국은 출생율 0.92명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인구는 빠르게 줄어든다. 수도권 집값이 올라가는 동안 지방은 미분양아파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에 똘똘한 집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하는 지방사람들은 매일 뉴스에서 나오는 수도권 집값을 들으며 다른 나라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인서울’이 간절한 목표일 때에, 지방대에서는 대규모 정원미달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학령인구감소와 수도권대학 선호현상으로 ‘벚꽃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소멸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지방의 거점기관인 대학이 문을 닫는다면, 이는 지역경제위축과 일자리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수도권 쏠림현상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1000대 기업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은 74%에 달하며, 10억원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 중 93.2%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2019년기준). 문화인프라, 편의시설, 교통인프라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서울공화국이다. 지방이 쇠퇴하게 되면, 인구가 적은만큼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적 유지비용이 상승하는 것 이외에도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로 청년들은 모여들지만, 지역별 출생률을 살펴보면 서울의 출생률이 가장 낮다는 기이한 현상이 존재한다. 서울로 몰려든 청년들이 극심한 경쟁 속에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상황이니, 어찌보면 기이한 것이 아닌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풍요가 무엇인지를 찾고, 여유로운 슬로라이프,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며 지역으로 회귀하는 흐름들 또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지역의 자원과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영역이나 일거리를 만들어내가며, 지역사람들과 교류하고 지역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의 역할도 크다. ‘따로 또 같이’ 형태의 느슨한 연대로 전국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고, 지역 방방곡곡의 소식들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회사 같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은 옅어진 반면, 취미공동체 같은 업종공동체의 연대감이 커지면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로컬>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도 크다. 거리두기 등으로 집 주변에 머물면서 지역이나 동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역의 가치, 스토리텔링, 정체성, 컨텐츠에 집중하게 되면서 로컬은 ‘익숙한 특별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MZ세대는, 로컬에서의 특별한 경험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는 것을 SNS로 공유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 및 로컬트렌드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로컬기반 소상공인들과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은 지역의 자원과 과제를 발굴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는 창업가로서 지역을 매력적인 일터이자 삶터로 만들고 있다.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들에게 단순한 노동이나 일이 아닌 경력을 쌓는 과정의 하나로 선택받고, 개성없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얼굴이 보이는 존재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과의 연대와 경험을 구축해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질보다는 경험이나 연결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쪽으로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새로운 관점을 통해, 지역의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기술이, 전통적 삶에 젊은 감성이 융합되어, 장소의 고유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지역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세가지 필수요소로 ‘청년, 괴짜, 타지인’이 언급된다. 연고도 없이 지역으로 무작정 내려간 괴짜청년들을 텃새가 아닌 포용으로 환대하고, 지원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지역 경영 파트너로 초대하자. 저성장 인구 감소시대에 중요한 것은 목적 지향형 계획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적 변화들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사회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희망의 싹은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방을 소멸하는 위기의 섬으로 만들지, 충만한 기회의 땅으로 만들지는 우리들의 선택과 지역 경영 역량에 달려있다. 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세상읽기] 기후위기는 ‘뉴노멀’

지난 8일 중부지방 일대에 내린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또다시 침수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기후 위기’가 몰고 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지성 폭우와 침수의 빈도가 잦아지고 규모도 점점 커지는 것도 이유겠지만, 지난해 침수 방지대책으로 추진한 서초동 반포천 유역 분리 터널이 바로 1년 만에 돌아온 폭우에서 침수를 막지 못했다. 이 터널은 시간당 85㎜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어 20년에 한 번 오는 빈도의 폭우에 대비토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이는 115년 만의 기록이다. 불과 10년 전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의 경험으로 새로운 대책을 준비했지만 소용없게 됐다. 거기다, 안이한 리더십은 재난안전시스템 가동력을 떨어뜨려서 인재를 키웠고, 주거환경이 가장 어려운 분들이 큰 피해를 봤다. 기후위기는 그렇게 가장 취약하고 낮은 곳부터 피해가 커지고, 무능한 정책결정자들이 이를 증폭시킨다. 다시 더 짧은 기간 안에 이 기록은 깨지거나 비슷한 규모의 폭우가 더 자주 반복될 것이다. 재난이 일상이 되어 가는 ‘뉴노멀’ 기후위기 시대의 단면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1992년 유엔기후볍화협약 채택에서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 1.5℃ 특별보고서 채택까지,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평균온도가 예상보다 10년 앞당겨진 2030년대에 1.5도 상승을 돌파할 것이라고 경고한 2021년 IPCC 6차 보고서까지. 이제는 논란마저 사라진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들은 차고 넘친다. 지구 평균온도 1.5℃ 상승은, 지난 1만 년 간 이어진 안정적이고 순환하며 예측 가능한 홀로세 기후와 문명, 거기에 적응한 생태계의 생존 한계선이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약은 ‘자발적 이행’에서 ‘강제 이행’으로 점점 각 나라를 압박하고, 탄소관세와 유럽의 ‘그린딜’, 미국의 ‘그린 부양안’과 이에 대응한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발표 등 신보호주의 무역까지 등장해 세계 산업계를 갈아엎으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권, 도지사, 시장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폭우는 그냥 하나의 단면이다. 현재 유럽은 ‘5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라인강 등 주요국의 젖줄에 비상이 걸렸고, 운하가 멈춰 경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와중에 프랑스 파리는 시간당 47㎜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14개 지하철 노선 중 6개 노선이 운행을 중단했다. 이런 소식들도 부유한 산업 선진국들과 후발국들이 몰려있는 지구 북반구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의 피해 소식들만 실시간으로 들려온다. 더욱 고통스러운 피해를 당하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위기가 일상인 시절에는 비상한 계획과 준비로 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비상대기 상태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대규모 산불, 한파, 냉온탕을 오가며 지속적인 긴장 상태로 개인과 지자체, 국가의 자원을 비상 동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매 순간 더 큰 터널만을 계획하고 건설하면서 살 수는 없다. 지리적 조건과 도시 환경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도시 사이사이를 비워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 공간 자체가 이상기후 현상들을 완화시키고 흘려보내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홍수만을 예로 보자면, 일부는 터널을 통해 바이패스를 시키더라도, 직강화 하천의 자연 곡선을 살린 물길과 홍수터 기능을 할 넓은 인공 저류지를 만들고, 더불어서 하천 생태계와 바람길을 살리고 수자원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기존의 재난안전시스템과 비상대응계획도 ‘기후위기 취약성평가’를 새로운 기준으로 기본 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위험지역 평가지표 개발과 선정, 상시 점검 매뉴얼, 유관기관 소통과 역할분담, 자원과 물자동원, 비상 연락체계, 전파와 주민대피, 복구와 지원체계 등을 지역대비체계로 통합 관리하고 교육과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고 대비에 한한 것이다. 시간당 120㎜ 100년 빈도에 맞춘 터널 설계, 재난 대비 기준만을 격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건 안정적인 기후 조건에서 방법론이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사회∙경제 시스템을 지탱해온 가치체계에 기반한 방법으로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세상읽기] 성평등, 이제부터 내가 먼저

코로나19는 명절이면 민족 대 이동을 하는 우리의 풍습과 가정의 모습까지 바꾸었다. 올해는 어르신들의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명절 때 다시 가족모임을 반기는 눈치였지만 젊은 세대들은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여행을 택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미 몇 년 전부터 명절 연휴를 휴가처럼 쓰는 젊은 세대가 느는 추세다. 명절 때면 아직 미혼인 상태가 대화의 주제가 되고, 여성의 경우 음식준비에 시댁 눈치까지 살펴야 하니 가족모임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 아들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든다고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체감은 매우 다르다. 여성가족부에서 나온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남녀 맞벌이 가구 가사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으로 남성 51분, 여성 3시간7분으로 3.5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이 통계수치는 5년 전인 2014년보다 남성은 13분 증가, 여성은 6분 감소했다.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사람들은 체감할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씩 바뀌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런 작은 변화에 희망을 갖는 이유는 사람이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를 바꾸는 일도 매우 힘들지만 사람은 더 바뀌기 힘들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포기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다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여성취업률은 더 낮아졌고, 휴교로 인한 돌봄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 됐다. 항상 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작동되고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 사회적으로 코로나 방역성공을 외칠 때 여성은 아이 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나마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여성은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 돌봄을 함께 수행하느라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한국 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한 월간자료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의 코로나 전후 자녀 돌봄 시간을 보면 맞벌이 여성은 1시간44분 증가했는데 맞벌이 남성은 46분 증가에 그쳤다. 또한 전업주부는 3시간30분가량 증가한 반면 홑벌이 남성은 30분 정도 증가했다. 아직까지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사회 일부에서는 성 평등을 넘어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고 그런 주장을 하는 유튜버의 영상들이 조회수 상위를 차지하는 걸 보면 우리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얼마전 남성 젠더인문학 교육에 참여했다. 예상외로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참여했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성 평등에 대한 소소한 실천을 하고 있었다. 흔히 사회문제는 쉽게 동의해도 내 삶을 바꾸는 성찰과 노력은 소홀한데, 작지만 중요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면 가슴 아파하다가도 성평등 이야기만 나오면 절대 져서는 안 될 것처럼 언성을 높이지 말고, 내가 먼저 성 평등을 향해 내 삶을 조금씩 바꿔 보는 건 어떨까? 김광원 다산인권센터 운영위원

[세상읽기] 스토킹 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

경찰청에 의하면 스토킹 신고는 2018년 2천772건, 2019년 5천468건, 2020년 4천515건으로 해마다 수천건에 달한다. 세 모녀 살인사건처럼 스토킹이 극단적 범죄인 살인으로 이어진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야 스토킹범죄에 대한 처벌이 첫발을 떼게 됐다. 그동안 경범죄로 치부됐던 스토킹범죄를 이제는 초기 단계부터 형사사법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20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범죄처벌법)이 제정되고 10월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된 이후 22년 만에 스토킹범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스토킹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스토킹범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자는 최대 징역 5년 또는 5천만원의 벌금형을 받게 됐다. 하지만 법률의 피해자 보호규정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입법취지와 목적규정의 의미가 법률에 충분히 반영됐는지는 의문이다. 현행법상 피해자에 대한 신변안전조치는 범죄피해자 보호법, 범죄신고자법, 성폭력범죄처벌법, 가정폭력범죄처벌법 등에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들의 규정을 참조해 구체적인 신변안전조치를 직접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피해자의 더 큰 피해나 법익침해를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범죄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사법경찰관 또는 검사가 청구하고 판사가 판단하는 절차를 거치는 동안 피해자 보호에는 공백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최소화하도록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청구하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의 도입 역시 필요하다. 또한 스토킹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높고,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정보보호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정보가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인적사항의 기재 생략과 공개금지, 신원관리카드 열람의 허용 및 제한 규정을 둠으로써 피해자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고용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 금지,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누설 금지, 피해자에 대한 변호인 선임 특례와 같은 규정도 명시해 정보보호를 구체화, 실질화해야 한다. 가해자로부터 분리되기 위한 긴급보호 등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긴급생계지원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주거지원, 사회복지시설 및 서비스 이용 지원, 교육지원 등의 서비스 지원의 도입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은 상해, 살인, 성폭력 등 중한 범죄로까지 발전하는 심각한 행위다. 누구나 이러한 스토킹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법으로 가해자를 단죄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은 부족한 감이 많다. 신속히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추가돼 피해자가 피해를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강력 범죄의 예방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원혜욱 한국피해자학회장인하대 교수

[세상읽기] 기후위기, 선언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2015년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는 2020년부터 모든 국가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로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 대비 37% 감축 목표를 제출했고 이듬해인 2016년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을 수립했다. 2018년 IPCC 특별보고서 지구온난화 1.5℃는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된다면 2030년에서 2052년 사이에 1.5℃ 상승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인간 활동에 기인한 전 지구적 CO₂ 순배출량은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까지 감소시키고 2050년경에는 Net zero에 도달해야한다고 했다. 2019년 국내 시민사회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는 기치 아래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전국화하고 국회와 정부에 강력한 행동을 요구했다. 이에 2020년 환경의 날에 전국 228개 지자체가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비상선언을 했고, 국회는 9월 기후위기 선언과 함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IPCC 권고(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에 부합하도록 기존 목표를 올렸다. 또 2050년 순배출 제로(탄소 중립)를 목표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같은해 10월에는 대한민국 탄소 중립선언 대통령 연설이 있었으며 올해 5월 P4G 제2차 정상회의에서는 녹색경제 관련 5대 중점분야에서 파리협정 이행 가속화 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환경부와 탄소 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는 17개 광역 및 226개 기초지자체가 참여해 2050 탄소 중립달성 선언식을 가졌다. 기후 위기시대에 세계는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20개 EU 국가에 있는 지역 폐기물 제로 그룹과 지방자치단체를 모여 만든 Zero Waste Europe에 따르면 폐기물 처리를 위해 가장 일반적인 소각은 1톤을 처리하면서 1.1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방출하기에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문제를 야기하며 소각에 있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탄소집약적이다. 이에 EU는 소각 기반의 폐기물에너지화를 방지하기로 했다. 또한, 시멘트 공장에서 폐기물을 연료로 사용하면 환경ㆍ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폐기물처리를 위해 소각장을 점점 더 늘리고 있다. 쓰레기 산의 긴급대안이었던 시멘트회사 대체연료 사용을 이제는 자원순환의 모범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믿을 건 시민뿐이다. 행동하는 시민이 기후위기의 해답이다. 안창희 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세상읽기] 정당이 있는 지방자치

수원 경실련에 몸담고 일하면서 지방자치의 현실을 보고 겪었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아는 것조차도 사안의 본질에 접근했다 할 만큼 깊이 있게 아느냐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는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매우 중요하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 현재 우리 지방자치는 문제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지방의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회의 무기력함이다. 물론 이것이 의원들이 일을 안 한다거나 게으름을 피운다는 뜻은 아니다. 무기력함 뒤에서 엉뚱한 일을 한다는 뜻도 아니다. 나름 지방의회 의원들을 많이 만나 봤는데 그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다. 열정과 책임감으로 일정을 소화해 놀랄 때가 많았다. 내가 말하는 무기력함이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무기력함이다. 현재의 지방자치는 행정부 중심이다. 단순히 행정부가 일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회의 가장 핵심적 역할인 법안 발의조차 대부분 행정부에서 한다. 보통 시장 발의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공무원들이 법안의 내용을 만드는 것이니 공무원 발의라고 표현하는 게 현실에 더 부합하겠다. 의원들은 자신들의 고유 업무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렵다. 권한은 크지 않고 그나마 있는 권한도 행정부에 밀리는 현실, 무기력함이 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의원들이 각각의 정당을 중심으로 하나의 팀을 이루지 못하고 개별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게 정말 큰 문제다. 의원들의 역할이 혼자 준비한다고 될 문제일까? 아니다. 당연히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에는 정당조직이 없다. 하다못해 의정 활동 지원 인력조차 없다. 전문위원이 있지만 겨우 몇몇 인원이 수십명의 의원을 보좌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위 일당백을 해야 하는 현실, 의원들이 슈퍼맨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역에 정당이 없다는 것은 시민들이 찾아가 자신들의 요구와 필요를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뜻이며, 지방의원들이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을 제대로 대의 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많은 지방정부가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도모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에 앞서 먼저 지방의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지역에 정당조직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의회는 주권이 위임된 입법기관이며 명실상부한 제1의 대의기관이다. 시민과 의회를 연결하는 정당 조직이 자리 잡아야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도 보장되고 의회의 권위도 높아진다. 무기력한 대의기구는 지방자치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에 정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의회가 일을 할 수 있다. 더 좋은 지방자치를 위해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유병욱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국장

[세상읽기] 한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이 2년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그동안 경험해 왔던 전염병들처럼 잠시 주의하고 노력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지냈으나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는 개인과 가정,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 쓰기는 일상이 됐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으며 사회활동은 비대면으로 빠르게 변화해갔다. 이제는 코로나19에 적응해가며 멈춰졌던 일상이 조금씩 변화해 나아가는 것 같다. 재택근무가 도입돼 정착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비대면 원격 수업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미래사회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어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특히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등교 제한으로 말미암은 돌봄의 공백, 학업 격차, 학대와 안전 문제 등 아동과 가정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0년 한국학교사회복지학회에서 발행한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와 지역사회 협력에 대한 기대: 아동복지종사자 인식을 중심으로 한 학술 자료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아동의 주요 어려움은 방임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학습격차였다. 지난해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한 초등생 형제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 수업을 받던 중 보호자가 없는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참변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돌봄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부모의 방임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기도 하지만 학교가 문을 열어 돌봄 공백을 피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참사였을 것이다. 뉴스에 나온 사건이 아니더라도 최근 많은 아이가 코로나19 상황 속에 부모가 없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이러한 문제들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 중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코로나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안전과 돌봄 공백을 줄이고 학습결손을 돕기 위해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해 코로나 상황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은미수원YWCA 팀장

[세상읽기] 장애인 이동권 보장돼야

한은정 사무처장 역사적인 장면들이 있다. 흐름을 뒤바꿔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다.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사한 사건 이후, 2002년 5월 발산역에서 다시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가 발생했다. 20년 넘게 장애인단체에 종사하면서 장애인 권리증진을 위한 여러 투쟁을 지켜봐 왔지만 장애인 이동권만큼 격렬하고 처절한 투쟁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철로 위에서 사슬로 자신을 묶어 절규하던 당사자들을 담은 사진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비장애인만이 정상인으로 당연시되던 시기 소외돼 있던 중증장애인들이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외친 결정적 장면, 장애인권을 사회적 맥락으로 바라보게 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사회복지사무가 국가로부터 지방으로 이양된 만큼의 큰 변화가 있었다.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국토교통부(당시 건설교통부)의 발의로 제정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국토교통부가 장애인 관련 법률을 시행하게 된 것은 이례적이고 전향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이동편의시설 개선이나 저상버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확보는 국토부 사무에 속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장애 관련 경험이 부족한 부처에서 잘할까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이어졌고 교통약자법은 여전히 행정기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로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됐다. 법 시행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다. 교통약자법에 의해 저상버스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등의 확보는 일면 순조롭게 달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중증장애인 사회참여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이동권 정책 발전 속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증차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상버스 이용률도 형편없다. 어딘가 구멍이 있는 것이다. 경기도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는 현재 교통약자법의 주요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당사자에 의한 이동편의시설 적합성 확인업무 대행 미시행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경기도에서 시작, 현재 전국 유일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센터에서 조사해 본바, 준공된 보도 내 이동편의시설 적정 설치율이 교통행정기관 자체 적합성 확인 심사는 61%에 불과한데 이동편의센터 사전점검 시행 후 98%로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법령에서 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경기도 각 시ㆍ군 교통행정기관이 이동편의센터와 협업 절차를 거치지 않아 장애인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는 도내 대도시로 분류할 수 있는 인구 50만 이상 지자체에 이동편의센터와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는 시ㆍ군 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편의증진법에서처럼 이동편의시설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당사자 관점에서 설치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사후관리까지 할 수 있는 이동편의증진 사업을 통해, 기반에서부터 장애인이동권이 점차적으로 보완되고 확대될 수 있는 경기도의 정책 결단이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집 앞의 보도, 육교, 횡단보도를 거쳐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이를 수 있도록, 또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이동이 원활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이동편의증진 정책을 시행한다면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케어, 탈 시설, 포용사회, 사회통합 등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형이다. 한은정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사무처장

[세상읽기] 언론중재법 논란과 숙의 민주주의

언론개혁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2005년 제정됐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정 이유로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보도로 말미암은 시민의 피해구제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일부 인터넷 신문은 정파성에 빠져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거짓 뉴스로 논란을 일으키는데 그 수가 2005년에 286개에서 2020년에는 9천896개로 증가했다. 또한 거짓뉴스를 퍼뜨리는 일부 유튜버들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시민들이 언론중재법을 찬성하는 이유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천7명을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한 찬반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1%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언론의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언론 장악, 언론에 재갈 물리기 법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은 17일 언론 현업 단체의 의견을 반영한 개정안을 냈지만 군부독재 해직 언론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해외 기자단체들, 언론노조 등이 현재의 개정안에 대해 근본적 취지는 동의하나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다며 조급한 통과를 반대하고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을 찬성하는 학자도 많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찬반이 양립할 때 필요한 것이 숙의 민주주의다. 다양한 생각들을 논의할 수 있는 토론과 합의 등을 거쳐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준비하며 현업인, 언론학자, 시민단체 등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법 개정의 취지를 설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보완했다면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언론 현업인들은 비판, 감시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언론 재갈법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개정안이라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징벌적 배상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는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 지역신문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수렴 없이 지역신문발전기금 예산을 삭감하려다 반대에 부딪혀 취소한 문체부와 기재부, 지난 6월 지역언론지원조례 일부 개정안을 발의 내용 중 제6조 지원 제한 부분 항목의 신설 조항으로 지역 언론과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던 화성시, 모두 숙의과정을 외면하고 일방적인 사업방식에서 불필요한 논란으로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다. 이제 경기도가 응답해야 한다. 경기도는 지난 4월 경기도 공영방송 설치 및 운영 조례를 통과시키며 본격적인 공영방송 설립 절차에 들어갔다. 경기도는 방송을 위한 법인을 설립해 공영 방송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인 설립 과정이나 공영방송의 역할 등에 대한 공청회, 토론회를 진행하지 않고 깜깜이 행정을 하고 있다. 숙의 과정을 외면하고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할 것인지, 사업자 공모 발표를 앞두고 도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인지, 응답하라 경기도. 민진영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세상읽기] 햇빛발전소를 건립하다

지난 7월12일 수원시 동부버스공영차고지에 건설한 820kw 용량의 나눔햇빛발전 10호기 태양광발전소가 발전을 개시했다. 우리나라 연평균 하루 발전 시간 3.5시간,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6시간까지 발전한다. 3인 가구 월평균 전력사용량 300kwh 기준 300가구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발전 개시 이후에도 한국전력과 전력공급계약체결(PPA), 사업개시신고, 재생에너지 의무생산제도(RPS) 설비확인 신청 등 추가적인 인허가 과정이 진행된다. 부지사용 협의와 도시계획 관련 인허가 절차를 거쳐서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발전사업허가, 시공과 감리 발주계약을 맺고 공사계획 신고와 공사 진행, 준공검사와 공사 완료, 예비안전검사를 거쳐 최종 사용 전 검사를 통과해야 한국전력 계통을 통해서 전력을 공급하고 발전을 개시할 수 있다. 나열만 해봐도 머리가 아프다. 주요 인허가 사항만도 20여개가 넘고 단계마다 협의와 조정도 만만치 않다. 가장 중요하게 건립비 조달계획과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촉진 정책예산을 지원받을지, 금융권 신규시설 대출을 받을지, 조합원 출자와 차입펀드는 어느 정도 비중으로 할지 등을 계획해야 한다. 물론 꼼꼼한 수익구조 분석과 RPS 고정가격공급계약, 운영자금 대출계획 등 상환계획에 대한 근거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발전소 건립비는 90% 이상 시민햇빛펀드(조합원차입)로 조달했다. 첫 도전이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지역 시민사회 주도로 홍보와 모집을 진행했다. 협동조합과 지자체가 협력해서 공공부지에 햇빛발전소를 건립하고 그 이익금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협동경제모델을 구현하고자 함께 노력한 결과다. 2019년 말부터 부지 검토와 제안, 협의를 시작했다. 물론, 직접적인 공사를 발주하고 발전사업허가, 자금조달, 시공과 완공까지는 약 6개월여 압축적으로 진행됐다. 협동조합과 지자체, 시공사가 협력하고 역할을 나누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규제 뒤에 숨은 시간끌기는 곳곳에 있다. 특히 공공부지는 지자체 행정협력과 적극적인 정책 없이는 추진이 쉽지 않다. 정당한 절차야 당연히 필요하지만, 성과와 관련한 이해관계 조정과 태양광발전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과도한 민원, 규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자. 도로와 전기통신, 상하수도망 등 도시를 지탱하는 기반 인프라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햇빛발전소도 그와 같은 것이다. 인식이 바뀌면 사회변화는 가속한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잠시나마 기후위기가 아닌 듯하지만 재앙의 마지노선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가장 시급한 건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40%를 차지하는 전력생산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820kw 태양광발전소 5천기만 있으면 수원시민들의 연간 전력사용량(518만MWh. 2020년)을 감당할 수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충분히 가시적인 목표다. 다른 모든 노력을 아무것도 안 한다는 전제로도 말이다. 여러분 어떤가, 가능해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세상읽기] 지금부터 선거에 참여할 때다

정치 참여는 자신이 어떠한 선거에 출마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가 없더라도,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조금 덜 나쁜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투표이다. 아직 먼 이야기 같은데 벌써 선거이야기를 한다는 시민들이 많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정당 가입은 안 해, 그걸 왜 해 지저분하게. 이해는 하지만 답답할 노릇이다. 세금을 배분하고 내일을 위한 정책이나 법률을 제정하는 일을 정치인들이 한다. 이는 국회의원에 국한된 권한이 아닌 도지사, 시장, 도의원, 시의원들의 권한이다. 4년마다 진행되는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원선거, 5년마다 대통령선거는 이러한 권력을 쥐기 위한 싸움이다. 일반 시민들은 피땀 흘려가며 번 돈을 세금으로 내는데 이런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살피고 잘 못한 점이 있다면 심판하는 것이 바로 선거다. 이러한 선거는 선거일 수개월 전에 각 정당의 후보를 선정하는 경선과정을 거치며 후보들은 소속정당의 권리당원을 모집하는 한편, 인지도를 높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나름 각 정당에서는 민주적으로 후보를 선정하려고 노력한다. 컷오프, 경선여론조사, 선거인단, 권리당원, 일반당원 등 아는 사람만 아는 전문용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두면 대화가 가능한 단어들이다. 정치가 많은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지는 오래전 일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경선시기가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좋아하는 정당이 어딘지 묻는 말에 답변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지지정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에 탈당과 함께 정치의 관심을 전부 끊었다는 말도 충분히 공감한다. 성과보다 과오에 치우쳐 보도하는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이 냉철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언론은 지역에서 경선을 준비하는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전하는 내용을 보도할 것이 아닌 후보의 정책토론을 경선 때부터 진행하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시민이 스스로 만든 단체들은 그 분야도 87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거의 모든 분야를 총 망라하고 있다. 이러한 많은 단체는 그 분야별 전문가와 실무를 바탕으로 많은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에서 나아가 국가의 사안이 있을 때 전문가로 언론에 등장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오는 가장 중요한 선거에는 참여율이 떨어진다. 투표는 하지만 경선 참여율이 낮다는 것이다. 정책이나 예산 집행에 민감하고 옳은 목소리를 내는 시민사회단체는 더욱 적극적으로 경선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일반 국민이 본 투표에 나설 때 적합하지 않은 후보를 미리 걸러내 주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며 우리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선거에 참여할 때다. 소수정당에서도 정당의 최고 목표인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후보를 선출하고 거대 정당에 맞서 비판과 대안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준비를 탄탄히 해야 한다. 김영균 ㈔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운영위원장

[세상읽기] 수원의 유일한 바람길, 서수원은 지켜야 한다

수원은 북쪽에서 광교산이 서쪽에서는 칠보산이 감싸 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들은 크고 작은 물줄기를 내려 보내 뭍 생명을 돌봐주고 있으며 수원시민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러한 자연의 혜택을 톡톡히 누려왔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개발이라는 다른 삶도 누리려 했고 이는 미세먼지, 소음, 공해, 대기오염, 발암물질, 물 부족, 멸종 등을 유발하는 시간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무상으로 얻어 왔던 자연의 혜택은 늘 그 자리에 있을까? 나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들은 이어서 제대로 숨을 쉬고 살 수 있을까? 자연이 가지는 회복력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개발이라는 거인의 한 손은 우리에게 조금씩 조금씩 편리라는 단 것을 주면서 자꾸 그 손을 잡게 만들어 눈멀게 하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늘 취하던 자연을 덮어 오고 있었다. 마침내 수원의 마지막 남은 숨통인 서쪽마저 조여오고 있다. 서수원은 수원의 논습지와 더불어 유일하게 남은 생태계의 보고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칠보치마, 맹꽁이, 금개구리, 큰기러기, 삵을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수달,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수원청개구리,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 참매와 새매, 천연기념물 제323-8호 황조롱이, 수원의 8대 깃대종 등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삶을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단절되지 않은 생태계가 연결돼 있어야 한다. 서수원은 칠보산, 황구지천과 더불어 습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숲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물을 저장해 재해를 방지하는 중요한 조절자 역할을 한다. 논은 물을 담아 홍수를 방지하고 하천은 도심의 열을 식혀주는 생태적 기능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린인프라가 많은 지역의 여름일수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짧다고 한다. 수원시에서 그린인프라가 가장 많은 곳이 서수원이다. 이것은 미래를 선도하는 가장 큰 경쟁력이다. 서수원은 수원지역에서 유일하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안식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자연형 하천인 황구지천은 물을 매개로 하는 경관을 만들어냄으로써 문화적 가치와 함께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중요한 휴식처가 돼주고 있다. 자연을 매개로 행복을 추구하고 개발 하려면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서수원은 앞으로 다가올 식량난에 대비하는 중요한 농업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미래 인류의 최대 도전과제는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될 것이며 식량자급률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지역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수원시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서수원이 지금처럼 난개발로 점철된다면 수원은 더 이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칠보산자락을 회색공간으로 덧칠하려 하고 황구지천을 포장하고 싶어한다. 푸름과 초록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 황구지천에 산책을 나오면서도 두 발에는 흙을 묻히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함은 그 푸르름과 황토색의 흙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은화 수원환경운동센터 사무국장

[세상읽기]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호ㆍ지원

최근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에 따른 갈등이 지속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살인, 방화, 보복범죄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국민적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강력범죄의 증가는 범죄의 직접 피해자뿐 아니라 범죄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피해자의 가족과 그 주변인들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범죄의 직접 피해자뿐 아니라 그 가족 등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보호ㆍ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범죄피해자지원제도는 국가, 공공단체 및 민간단체가 범죄피해자를 보호ㆍ지원하고자 수립ㆍ운영하는 정책이다. 피해자에 대한 국가와 공공단체의 물질적ㆍ경제적 지원을 비롯해 피해자가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신속하게 구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 상담, 법률 등의 서비스가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범죄피해자 보호ㆍ지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으나 2005년에 이르러서야 범죄피해자의 권리장전이라 할 수 있는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됐다. 2011년에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설립되는 등 범죄피해자보호제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범죄피해자보호법에 규정된 범죄피해자구조금은 유족구조금, 장해구조금, 중상해구조금으로 구분된다. 장해ㆍ중상해구조금은 해당 구조피해자에게 지급되는 구조금이고, 유족구조금은 구조피해자가 사망했을 때 그 유족에게 지급한다. 범죄피해구조금은 벌금수납액의 6%인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지급된다. 그러나 벌금수납액이 매년 일정하지 않은 데다 최근 5년간 벌금수납액이 연평균 5%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벌금미납자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제도의 확대 때문에 액수는 점차 감소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매년 강력범죄의 피해는 증가하고 있다. 사망ㆍ장해ㆍ중상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급하는 범죄피해구조금 지급액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벌금수납액의 6%에 해당하는 보호기금으로는 증가하는 구조금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와 그 가족 등은 범죄로 인한 정신적ㆍ신체적 피해 이외에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벌금수납액의 재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고 현재의 벌금수납액의 6%를 8% 이상으로 상향, 액수를 증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 이외에 강력범죄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고자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인 스마일센터가 전국적으로 16개가 설립ㆍ운영되고 있다. 스마일센터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불안장애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과 그 가족을 위해 무료로 심리평가, 심리치료, 의학적 진단, 법률상담, 사회적 지원 연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스마일센터의 운영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센터에 대한 피해자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전문적인 상담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강력범죄피해의 스트레스로 인해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상담일 것이므로 전문 인력의 충원은 신속하게 해결돼야 한다. 원혜욱 한국피해자학회장인하대교수

[세상읽기] 日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를 반대한다

지난 4월13일, 일본정부는 국제사회와 일본 내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인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고 결정했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부지에 쌓인 오염수는 현재 125만t을 넘어섰고 매일 평균 140t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오염수를 방류 전 정화하고 희석한다는 전제로 30~40년에 걸쳐서 바다로 버리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가장 손쉽고 경제적으로 저렴한 선택을 했을지 모르나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재앙 그 자체다. 정확한 것은 이미 한번 정화했다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70%에서 세슘과 스트론튬-90, 요오드-129 등 생물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안전기준치의 100~2만배 검출됐다는 것이다. 이중 요오드-129는 반감기가 1천570만년이라는 사실이다. 태평양 인접국과 한반도 등 주변국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해양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하는 것은 핵 테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할 수 없고 협상할 사안이 아니다. 방사능의 피폭이나 내폭은 아무리 적은 양이어도 누적되면 각종 병의 원인이 돼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이들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하면 세포분열이 빨라 몸 전체에 축적되고 내폭으로 치명적이기 때문에 단체급식에서 일본산 수산물과 가공품을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일본의 야만적인 오염수 방류를 막아야만 한다.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기자회견 및 토론회, 1인 시위 등 방류 결정 철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산 수산물과 가공품, 농산물 등이 반입될 때 방사능에 오염돼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방사능 허용기준치를 상시 검사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방사능 정밀분석기계나 전문인력 등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시급히 확보해 철저히 검사하고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우선, 영ㆍ유아 및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급식에서 일본산 수산물과 가공식품을 전면적으로 배제해 성장기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길 바란다. 장기적으로 국민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수산물과 농산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방사능 허용기준치를 대폭 낮춰야 하며 법률과 조례 개ㆍ제정을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일본은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하고도 세계인의 평화와 우호를 다짐하는 잔치인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올림픽 정신 위반이다. 일본 정부와 스가 수상은 한국 등 인접국에 정중히 사과하고 방류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양파괴국으로 낙인 찍혀서 세계인들은 일본에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방출을 강행한다면 경기도내 모든 단체와 기관이 연대해 일본산 먹거리 수입 금지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해양 방류 반대 경기도민대책위원회(가칭)를 결성하고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운동본부 상임대표

[세상읽기] 청소년 기후변화 교육, 선택인가 필수인가?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사계절이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봄, 가을이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1970~80년대에 비해 현재 우리나라는 여름이 6일 길어지고 겨울이 5일 짧아져 가장 긴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기후가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온실기체)의 영향으로 지구 평균 기온변화는 지난 100년 동안 지구 대기의 평균온도가 약 1도 올랐다. 과거 자연 상태에서 1도 오르는데 약 1만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과거와 비교하면 100배 빠른 속도다. 많은 과학자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온도가 올라가면 2050년 지구는 인간을 비롯한 생물 대부분이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이런 위험 속에서 2020년 7월 9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이 기후위기, 환경재난시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식을 진행했다. 이후 9월 국회에서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10월에는 정부에서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을 했다. 올 1월에는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돼 학교 및 사회 전 분야에서 환경교육을 활성화하려는 방안과 지원책을 위한 근거가 마련됐다. 개정안 제4조 4항을 보면 학교장은 학교의 교육 여건에 적합한 범위에서 환경교육 교육과정 운영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에서는 기후가 변하고 있어요 라는 기후변화교육교재를 개발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범교과 학습주제(환경, 지속가능발전교육)를 반영해 초등학교 3ㆍ4학년 관련 교육과정 연계가 가능한 기후변화 교육 내용을 선정했다. 1장에서는 기후변화와 우리 가족 이야기를 시작으로 2장에서는 기후변화와 우리 마을의 관계를 탐색하고 3장은 우리나라 차원의 기후변화, 온실기체, 에너지 전환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소개하면서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교재는 교육을 통한 실생활의 변화를 이끄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두려움보다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긍정적 사고를 심어주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교재의 방향이다. 정책 결정권자인 어른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음을 질책하며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라고 등교거부 시위를 시작한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1.5도 온도상승 제한을 위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온실가스 감축, 탈 석탄과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청소년 기후행동이라는 단체 등이 나타나는 것처럼 기후변화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미래세대가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 교육을 통해 기후위기로부터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변화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라영석 수원YMCA 부장

[세상읽기]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그 날이 오면’

요즘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럴 때면 생각나는 또 다른 노래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연중행사 중 하나였던 합창대회 날이다. 교내 여러 팀 순서가 지나고 잠시 적막이 흐르고 나서 북소리로 시작하는 전주와 함께 합창 광야에서가 시작됐다. 그 시절 가곡이나 찬송가 등을 선곡해 어렵게 연습을 했던 우리에겐 민중가요 광야에서는 매우 놀라웠고, 그날 대회에서 1등은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부른 팀에게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1989년 그날 합창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도 기억한다. 전교조 탄압으로 자신은 물론 동료의 해직과 복직이 거듭되는 사회 분위기의 부당함 속에서도 우리에게 학생의 권리를 알려주신 분들이다. 이 때문에 학생 운영위원회와 대의원 활동을 하며 다른 학교와 연대를 하고, 학생의 날 기념식을 진행하고, 전교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시행하는 등 일반 학교와는 다른 특별한 민주주의 교육을 글로서가 아닌 직접 경험하는 행운의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민주주의 의미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정보도 많이 부족했다. 지금은 성인이 됐고, 사회의 변화에 소리 내야 하는 시민 단체 실무자가 되고 나서야 다시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를 자연스럽게 시민 단체에 몸담게 했을지 모른다. 2008년 수원YWCA의 실무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소비자와 환경 관련 분야부터 청소년, 지역운동까지 주어진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처음엔 단어조차 어려웠던 UN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할 때쯤 세계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둘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현재는 청소년 교육의 더 많은 필요성에 관심을 두고 고민 중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와 나눔의 목적으로 아띤타바 미얀마! 힘내라 미얀마!라는 시민문화제 기획을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당일 행사에 YWCA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마무리에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이 오면을 다 함께 부를 계획이다. 청소년에게 사회적 이슈를 알리고, 지구 온도 1.5℃의 의미와 기후 위기 대응 실천 행동으로 제로웨이스트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활동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해야 하는 등 공교육에서 배우고 느낄 수 없는 시간을 YWCA라는 학교 밖 공간에서 눈높이 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감수성을 담아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의 청소년들이 나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고 또 다른 이에게 베푼다면 감수성 리뉴얼이고 더 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만약 혼자 가는 길이 멀다면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자원활동가와 함께 사회, 환경, 경제 분야를 고민해 지역사회에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듯싶다. 장소는 사람과 공간을 포함하고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서로 공감하며 언제든 편하게 찾아오고, 오래 기억되는 시공간의 장소, 수원YWCA와 함께 하는 한 사람이고 싶다. 변남순 수원YWCA 팀장

[세상읽기] 시민이 신뢰하는 언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

SNS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네 집 개와 고양이 이야기다. 그 집 개는 성격이 참 좋아서 사람도 잘 따르고 함께 사는 다른 종(種)과도 친하게 잘 지내 가끔 자기가 사냥한 새도 고양이에게 준다. 그러면 그 고양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치우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그 개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한껏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이야기를 듣고 개와 고양이의 사진을 보면서 다른 종(種)인 인간은 어떤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언론매체에서 한 교수의 딸 사진을 성매매 기사에 일러스트로 실어 교수가 항의했던 일, 그리고 어느 화가의 박근혜씨를 소재로 한 풍자그림이 화제였던 적이 있었는데, 성적 수치심과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개의 의견이 마치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났던 일이다. 두 가지의 사례를 보면서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두 개의 사례 모두 기존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시선으로 교수의 딸과 정치인을 대입시키고 비판의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어떤 맥락에서는 비슷하게 보인다. 한국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여성 운운했지만 정작 정부 정책에 여성의 관점, 젠더정책은 없었다. 이런 정책비판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성별이기에 그를 희화화하며 비판하는 점에서 여성으로서 불편함을 느꼈다. 또한 기사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일러스트 삽화로 사용하게 된 것은 기사 내용이 성매매로 유인해 지갑을 털었다는 3인조 기사내용이어서 어딘가에서 3명의 사진을 사용해 일러스트로 만들고 기재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잘못 사용한 언론매체는 고의성은 없었다면서 사과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끝나는 일일까.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자기반성과 무분별한 자료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언론인 내부의 약속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언론이 되는 것이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 전달에는 기사의 전체내용, 사진이나 일러스트도 포함된 것이라고 본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사화해 그것이 여론으로 형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1년 9월,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인격권, 장애인 인권, 성평등, 이주민과 외국인 인권, 노인 인권, 아동 인권, 성적소수자 인권 등 8개 분야별 요강으로 구성된 인권보도준칙을 마련했고 2014년에는 북한이탈주민 및 북한 주민 인권을 분야별 요강에 새롭게 추가했다. 기자의 역할이 단지 어떤 사실만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꼬집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여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바람직한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기사를 작성하고 언론에 내보낸다면 시민들도 언론을 더욱 신뢰하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성희영 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

[세상읽기] 인간의 권리, 인간의 존엄성

전 살아오면서 평생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이번에 경찰서를 난생처음 가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동업자가 사기죄로 고소했다고 합니다. 조사받으러 오라는데 떨리고 당황스러워서 뭘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직장 상사가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해 경찰서에 고소장을 내러 갑니다. 꼭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교실에서 같은 반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욕을 하며 때렸다네요. 학교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하려고요, 술김에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싸웠는데 경찰서에 갔을 때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맛집 소개가 올라온 걸 보고 제가 맛도 없는 데다 위생도 별로라는 댓글을 달았더니 악플이라며 식당 운영자가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연락 왔는데 죄가 되는 건가요, 아내가 외도하는 느낌이 들어 외출하는 아내를 몰래 따라가서 상간남과 호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아내와 상간남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억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억울한 일도 가끔은 생긴다. 반대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게 돼 결국 법적 분쟁이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소가 동네마다 있는 경찰서일 것이다. 내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더라도 경찰관이 내 입장과 얘기를 잘 들어주고 사건을 공정하게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그럴까라는 회의적인 의문을 가지며 경찰을 불신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변호사로서 2019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현장인권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 누구나 경찰업무수행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발생 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위촉한 인권전문상담위원이 상담받는 제도다. 경기도는 수원남부, 부천원미경찰서에 설치돼 있다. 경찰서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등에 대해 경찰서 안에서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는 제도인데,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바로 인권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고 경찰도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人權, human rights)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존엄과 가치,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 권리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돼 있다. 과거와 달리 사람들의 생각은 물론 법 제도 역시 점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법적 분쟁에 휘말렸거나 억울한 입장에 처한 사람의 인권 역시 보호돼야 함은 당연하다. 반면 타인의 인권을 무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누구든 당연히 누리며 살아야 할 공기처럼 소중한 인권을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최정민 변호사ㆍ국가인권위원회 현장인권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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