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야 할 때

내란 범죄는 법 앞에, 역사 앞에, 국민 앞에, 민주주의 앞에 용납할 수 없는 광란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버텨도 탄핵의 시계는 돌아간다.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혼돈과 고통, 절망과 분노의 시간에도 시민은 희망으로 연대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질기고 강하다. 그것을 쟁취하는 힘, 지속시키는 힘, 회복하는 힘도 질기고 강하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는 이치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지금의 고통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에너지가 돼야 한다. 탄핵은 탄핵대로, 내란 처벌은 처벌대로, 정권교체는 정권교체대로 하고 탄핵 너머의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야 한다. 탄핵이 반헌법 반민주를 단죄하는 과거의 시간이라면 대선은 국민의 희망을 회복하는 미래의 공간이 돼야 한다. 내란 세력의 참담한 준동은 탄핵 이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서로 다른 탄핵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결집 흐름은 윤석열 지키기가 아니라 보수 붕괴 우려 현상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이 가져온 보수 붕괴의 악몽을 피하고 싶은 보수층의 학습효과를 동력으로 악용하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을 진영 간 내전으로 바꾸려는 반국민적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새해 언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86%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총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 65%는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극단적인 진영 대결 구도다. 정치의 파탄, 상식의 실종이다. 결은 다르지만 진보층의 탄핵 트라우마 역시 존재한다. 자산 불평등의 구조화와 이로 인한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시간 불평등 등 삶의 모든 분야의 양극화에 절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으로 성공하는 사회라는 믿음이 소멸했다. 기회와 정의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더 넓게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2017년 탄핵 이후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실망이 진보층의 트라우마다. 탄핵 이후의 희망을 만드는 것이 국민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내란 세력의 준동을 막고 새 시대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모아 내는 길이다.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은 기회와 정의, 회복과 성장이 살아 숨 쉬는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진보적 다수 연합정치로 새 비전, 새 가치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최근 많은 국민은 법원의 폭력 사태와 이를 비호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정치개혁을 절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권(대구·부산·울산·경남·경북)에선 65석 가운데 60석(92%)을 얻었다.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 90명 가운데 영남권 비율이 67%다. 지역 독점 구도가 유지되는 한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아도, 탄핵소추안에 반대해도, 내란 수괴의 체포 영장을 막아서도, 검찰개혁을 거부해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극우 정당이 돼 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도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 없는 지역 독점 구도를 타파해야 비정상적 정치가 소멸된다.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세상읽기] 웨이팅문화

일반적으로 줄서기, 긴 대기시간은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낮추는 요소로 여겨졌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부정적인 감정이 유발되고 고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돼 서비스 자체의 품질이 높더라도 전체적인 경험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느껴 다른 브랜드나 옵션으로 전환하는 주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긴 대기시간을 뜻하는 웨이팅이 하나의 문화로 잡기 시작했다. 대기줄이 길다는 것은 서비스나 제품이 인기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한정된 상품이나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이러한 기다림은 소비자의 기대감을 증폭시켜 더 큰 만족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플 아이폰이 출시될 때 길게 늘어선 줄은 희소성과 트렌드 리더십이 강조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 소비자는 서비스나 제품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 심리적 효과가 발생한다. 스타벅스 리저브 역시 한정된 메뉴와 특별한 메뉴로 소비자의 웨이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고급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요리 경연 콘텐츠인 흑백요리사의 경우 출연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예약이 매우 힘들어지자 식당 예약 양도권을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틈새시장이 생기기도 했다. 기다림=희소성의 등식이 작동하는 한 이는 또 다른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웨이팅이 흔한 현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세대 특징인 소비와 경험에서 독특한 가치를 추구하며 웨이팅을 단순한 기다림 이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정판’과 ‘독점적’인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웨이팅이 길수록, 희소성이 높을수록 그 서비스나 제품이 특별해져 더욱 갈망하게 된다. 웨이팅은 순서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원칙이 통하는 상황에서 나의 오랜 시간 투자를 통해 얻어낸 일종의 결과물이므로 이를 인증샷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랑할 수 있는 콘텐츠로 변환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특별한 것을 경험했다”는 훌륭한 SNS 스토리가 된다.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과정을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트렌디한 것을 탐구하는 세대들에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웨이팅 열기는 다수의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는 편승효과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왜 인기가 많은지 호기심이 발동하고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치재의 새로운 방식일 뿐이다.

[세상읽기] ‘출산율 반등’ 희망인가, 착시인가

지난해 12월26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10월 출생아 수는 2만3천19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3분기에 이어 넉 달 연속 증가한 결과로 올해 합계출산율이 당초 전망치인 0.68명을 넘어 지난해 출산율 0.72명도 웃돌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같은 증가세가 우리가 ‘데모 크라이시스(인구 감소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출생아 수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후 혼인 건수 증가, 정부의 출산과 육아 정책의 효과, 그리고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출생아 수로 인한 기저효과가 맞물린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증가가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의 출산율 감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심각한 수준이다. 1960년 OECD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3.34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1.6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은 6명에서 0.72명으로 급감하며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명 미만의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됐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0.7명)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수치의 감소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경고 신호다. 합계출산율의 심각성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의 0.7명이라는 합계출산율이 유지된다면 여성 100명이 낳는 자녀는 70명에 불과하며 그 자녀들이 다시 낳는 후세대는 25명으로 줄어든다. 한 세대를 20~30년으로 보면 불과 50년 안에 인구가 8분의 1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져 소비와 노동력이 동시에 위축되고 경제 성장이 둔화될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양인구비가 상승하면서 일하는 한 사람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청년세대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육아지원 3법(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번 개정안은 부모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양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으로 육아휴직 지원 강화와 보육비용 지원 확대,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부모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고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 부모들의 육아 선택지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출산율 증가에 기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는 육아휴직 중 급여의 80%를 보장하며 보육시설 접근성을 크게 개선해 출산율 안정화와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를 동시에 달성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정책적 변화가 사회 전반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법 개정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 확보와 기업 문화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출산율 증가라는 희소식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는 지금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전환점을 만들어야 할 때다. 안정적인 주거 지원과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서 시작해 가족을 지원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변화는 어렵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모두가 작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 작은 움직임이 있어야만 우리 아이들과 미래 세대가 지속가능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

[세상읽기] 인공지능기본법, 한눈에 파악하기

여야의 극한 긴장과 대치 속에서도 민생과 미래에 꼭 필요한 법안들이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가운데 주목받는 법은 ‘인공지능기본법’이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인공지능(AI)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산업의 진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사람이나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발전계획에서 벗어나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인공지능 발전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주요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기 위한 조직으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45인 이내로 구성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인공지능 글로벌 전쟁에 대비한 일종의 국가 지휘소가 생겨난 셈이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인공지능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외국 기업을 상대하는 데 있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구축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집적단지 지정, 인공지능실증기반 조성, 인공지능데이터센터 구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수한 전문인력 확보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전문기술 지원을 포함해 종합적인 정책 연구를 담당할 ‘인공지능정책센터’, 인공지능사업자 중심의 진흥 기구인 ‘한국인공지능산업협회’도 설립 근거를 가지게 됐다. 반면 인공지능이 가지는 잠재적 위험을 찾아 제거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담당할 조직으로 ‘인공지능안전연구소’가 명시돼 있다. 데이터 학습에 사용된 누적 연산량이 일정 기준 이상인 첨단인공지능(Frontier AI)에 요구된 안전성 확보 의무 관련 업무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안전에 관련된 위험 정의부터 시작해 안전 정책 연구, 안전 평가, 안전 기술 개발 및 표준화, 국제협력까지 이 연구소가 담당한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이 ‘위험(risk)’을 중심으로 기술됐지만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은 ‘영향(Impact)’을 중심으로 기술돼 있다.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을 ‘고영향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하며 10가지 대표적인 영역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고영향 인공지능인지가 불분명한 경우 해당 사업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서 문의하게 돼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책무가 부과된다. 고영향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사전에 사람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사전 영향평가를 한 경우 국가기관 등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우선권이 주어진다. 고영향 인공지능은 생성형 인공지능과 더불어 ‘투명성’ 확보 의무가 특별히 명시돼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됐거나 인공지능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고지하거나 표시해야 한다. 딥페이크 사건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인공지능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과기부 장관이 제정해 공표하게 돼 있고 인공지능 관계자들이 윤리원칙을 잘 이행하도록 ‘민간자율인공지능윤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며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검증과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이러한 검증과 인증이 강하게 추천된다. 끝으로 몇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 관련 외국 기업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게 돼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는 이미 개소한 일본 사무소 외에 한국에서도 공식 사무소를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사업자가 투명성 의무, 안전성 의무를 지켜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지키지 않았을 때 이에 대해 과기부 장관은 사실 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위반행위 중지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적 지휘소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법의 시행일로부터 5년간 존속한다는 제한조건도 가지고 있다. 이 조항은 아무리 길어도 5년 안에 인공지능에 관한 국가 경쟁력 확보 및 신뢰 체계 구축을 확실하게 수립해 내재화하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국가적 역량 집중이 필요한 골드타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읽기] 제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오랜 세월 국회도서관 책장에 있던 헌법이 스스로 낡은 옷을 벗고 여의도 광장으로 나왔다. 대한민국이 더 놀라운 희망의 빛을 봤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주도하는 K-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확신이다. 87년 체제가 시대적 역할을 다하고 새로운 세대가 다음 세상을 열어 가는 흐름이 열렸다. 민주주의의 시대교체다. 국민이 만든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뜻을 따를 것이다. 그래서 탄핵 절차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아니라 국민의 시간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새로운 헌법을 쓰는 시간이어야 한다. 탄핵 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강한 민주주의 회복력을 확인했지만 국민의 삶은 힘들고 트라우마는 깊다. 지금 대통령 파면 여론은 약 80%로 나타난다. 이 압도적 국민의 마음은 특정 정치인과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본질이다. 계층과 처지가 서로 다른 80%가 공유할 만한 연합 의제와 가치, 비전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실현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조기 대선은 현실로 다가왔다. 탄핵 절차와 대선은 사실상 기간이 일치한다. 특히 K-민주주의의 시대교체 시기와 맞물린다. 절실하게 대한민국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래서 윤석열 파면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란 세력의 청산에 그쳐서도 안 된다. 정권 교체로 멈춰서도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탄핵해야 하고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탄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탄핵해야 하며 왜곡된 검찰권력을 탄핵해야 한다. 기본권과 권력구조 등의 개헌, 민주주의, 불평등, 선거제도, 고용, 사회보장, 공교육, 기후, 인공지능(AI) 경제, 한반도 평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K-뉴딜, 즉 사회대계약을 추진해야 한다. 87년 헌법을 만든 세대와 응원봉을 든 K-민주주의 세대가 서로 연결되며 제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삶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질적 성장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가장 중요한 전제다. 국민은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면서 비상식적 정치구조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122석 가운데 19석을 얻었다. 반면 영남권(대구·부산·울산·경남·경북)에선 65석 중 60석(92%)을 얻었다.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 90명 중 영남권 지역 비율이 67%를 차지한다. 지역 독점 구도만 유지된다면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비판하지 않아도, 탄핵소추안에 반대해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주장해도, 검찰 개혁을 막아서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직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들이 극우 정당화되는 과정에 문제의식도 필요 없을 것이다. 경쟁없는 지역 독점 구도에 균열을 내야 비정상적 정치가 사라진다. 선거제도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개헌은 무의미하고, 정책연합과 가치연합은 지속적일 수 없다. 정권교체와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데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하는 뉴딜 연합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대한민국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세상읽기] 트럼프 2기, 대통령 탄핵 그리고 국내 소비심리

소비심리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비를 하려는지, 아니면 소비를 줄이고 저축하려는지에 대한 신호로 경제활동의 핵심 지표이자 가계와 기업활동을 연결하는 중요한 축이다.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심리가 재정 및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판매전략, 마케팅, 생산량 등을 결정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므로 경제 전망에 대한 주관적 판단과 기대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는 국내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내년 1월 미국의 차기 대통령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정책 방향과 리더십으로 예상되는 세계경제 질서 시나리오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다. 미국을 우선시하는 보호무역주의, 관세 부과, 무역협정 재협상 등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할 것이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대미 수출이 둔화돼 국내 제조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원자재, 에너지 등 수입품 가격 상승이 국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기업의 고용 감소와 물가 상승은 소비자의 실질구매력을 감소시켜 소비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온라인 쇼핑의 급증으로 국민 소비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해외 직구(직접구매) 등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환율 상승으로 해외 제품에 대한 가격 부담이 커지면 소비자들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저가 제품이나 국내산 제품으로 눈을 돌리게 되며 이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할 수 있다.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일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선포를 시작으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14일 대통령 탄핵 가결로 이어진 국내 정치 상황은 시장경제에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고 대외 신뢰도를 추락시켜 경제활동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정치적 비상사태는 소비자들의 소비심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 대통령 탄핵 상황은 정치적 리더십 공백을 초래하며 국민들 사이에 경제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소비자들은 경제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경우 필수 소비를 제외한 지출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전자제품, 부동산 등과 같은 고가제품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성은 주가와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데 소비자들의 자산 가치 하락으로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덜 느끼게 만들어 소비를 줄이게 된다. 즉, 가계의 금융자산이 축소되면서 가처분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탄핵 과정이 길어지면 정부의 경제 관련 정책의 집행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는데 소비 진작 및 경기 부양책, 사회복지, 소상공인 지원 등의 소비 활성화 정책이 위축되면 소비시장은 더디게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다중적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2025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무겁기만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읽기] ‘디지털헬스케어법’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

디지털헬스케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해 맞춤형 치료와 예방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실현하는 디지털 기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국회에서 의료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디지털헬스케어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의료정보를 영리 기업에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열 잠재력을 지닌 이 법안은 국민 건강 증진과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을 동시에 도모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나 계획이라는 기회는 책임 위에서만 완성된다. 의료 데이터라는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이 법안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기준과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의 핵심은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의료와 공공 보건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예방적 건강관리, 정밀 의료 진료, 신약 개발 등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의료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활용할 경우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보안과 신뢰 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법안에서 제안된 가명 처리 데이터 활용과 제3자 전송 요구권은 데이터 보호와 활용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과제다. 유럽의 일반개인정보호법(GDPR)은 철저한 데이터 보호를, 미국의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은 민간과 공공 협력을 강조하며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익명 의료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과 높은 정보기술(IT)을 감안할 때 독자적인 디지털헬스케어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간의 중첩과 모호성을 해결하고 효율적이고 투명한 데이터 활용 구조를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또 법안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데이터 전송, 보유,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2023년 3월 개정)과 보험업법(2023년 10월 개정)은 의료 데이터 전송을 허용했지만 활용 범위가 불명확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이를 보완해야 하며 환자 주권 강화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명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은 책임 있는 실행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실행돼야 하는 이유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국민의 신뢰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신뢰가 혁신을 이끈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이 의료 데이터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나아가 글로벌 의료 환경의 선두주자로 도약할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데이터 활용의 혁신적 잠재력을 국민의 신뢰와 책임감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디지털헬스케어법으로 열어야 할 미래다.

[세상읽기] 셰르파 vs AI안전연구소

‘셰르파(Sherpa)’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히말라야산맥, 특히 네팔 북동부와 에베레스트산 남쪽 솔루쿰부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 계열의 부족을 가리킨다. 셰르파는 고산지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산맥에 널려 있는 숱한 위험과 장애물에 친숙하며 등산 실력 역시 출중하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려는 등정대에 셰르파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다. 셰르파는 언뜻 ‘짐꾼’처럼 보인다. 맞는 말이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짐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험한 등정 과정에서 앞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고 장차 어떤 위험이 닥칠지 셰르파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셰르파는 등정대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그래서 셰르파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안내 없이는 그 어느 등정대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이르기 힘들다. 등정대가 드디어 산 꼭대기에 이르러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며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동행한 셰르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짐꾼이자 길잡이이지만 등정대의 주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셰르파는 다양하고 많은 등정대를 꾸준히 돕는다. 50세의 셰르파 카미 리타는 부친의 뒤를 따라 셰르파의 길로 나선 1994년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다양한 등정대를 안내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29번이나 올려 놓았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한 성공 이야기 가운데 셰르파의 이름과 얼굴은 언제나 중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AI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AISI)’가 판교 글로벌 R&D센터에 문을 열었다. 현재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며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AI기본법’에도 명시된 조직이다 보니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기대와 우려가 겹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의 입장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규제’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AI안전연구소가 앞으로 AI 기업에 대해 일종의 규제 기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내세운 표현이 바로 ‘셰르파’다. AI안전연구소를 뜻하는 AISI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공통 명칭이다. 다들 ‘에이시’라고 읽는다. AISI에서 알파벳 ‘S’는 안전(Safety)에 해당하지만 이는 셰르파로 대체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정대인 우리나라 AI 기업에 AI안전연구소가 셰르파와 같은 존재로 다가가는 것은 연구소가 제시한 비전이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위험과 장애물을 예측하고 발견해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안전한 등정길을 만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AI안전연구소의 역할이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우리나라 AI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5개 조직과 단체가 앞으로 AI 안전에 관해 원팀(One Team)이 되고자 ‘AI 안전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했다. 향후 AI 안전 컨소시엄을 통해 AI 안전을 함께 도모할 조직과 단체를 추가로 더 모은 후 컨소시엄 발족식 및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선진국마다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라보며 나름대로 국가 전략을 세우고 AI 산업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다만 AI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를 국가 단위로 불식하기 위해 작년 11월 영국이 AI안전연구소를 최초로 세운 이래 미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번에 여섯 번째로 설립했다. 우리나라 AI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도록 AI안전연구소가 국제 협력 활동은 물론이고 ‘셰르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경우 AI 국가경쟁력 3위(G3)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세상읽기] 제왕적 대통령제를 탄핵할 때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촛불혁명.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갈망한 국민의 절실한 결단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개헌 의견은 크게 주목받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 공유형 분권제로 바꾸는 권력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정상적 국정운영을 방해하고 비선의 국정농단을 초래했으며 탄핵의 씨앗이 됐다는 인식에서 나온 제안이다. 그로부터 7년. 탄핵의 교훈을 살리려는 노력은 간 데 없고 제왕적 대통령을 차지하기 위한, 또는 놓치지 않기 위한 극단적 대립과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정치는 불신과 무능의 늪에 빠졌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처럼 큰데 역량은 미치지 못한다. 리더십은 허약하고 신뢰는 바닥이다. 민주주의, 외교, 평화, 국격, 경제와 국민 살림살이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생기가 없다. 나라의 미래, 국민의 자긍심, 미래세대의 희망이 상처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 가장 작아진 대한민국이다. 대선에서 0.75%포인트 차로 이기고도 100 대 0으로 이긴 것처럼 국민과 야당을 대한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대통령의 가족에게는 한없이 무딘 칼이고 상대에게는 죽음의 칼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지독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제2야당 대표를 비롯한 전임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감사와 수사와 기소, 모두 제왕적 대통령의 정치보복이자 정치탄압이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민의 법 감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법의 옷을 입어도 보복은 더 큰 보복을 부른다. 87년 체제는 국민이 세웠다. 체육관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대통령 직선 5년 단임제를 쟁취했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이 합의해 맺은 1차 사회계약이다. 87년 체제는 대한민국의 대도약기를 열었다. 민주적 시민의 성장,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선진국 진입, 두 차례 올림픽과 월드컵, 한류와 노벨상과 문화시민의 긍지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 국민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준비가 돼 있다. 더 좋은 나라에 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정치가 발목을 잡는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초래한 극한 대결과 무한 갈등의 정치, 불신과 무능의 정치로는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시계는 멈춰야 한다. 위험한 회색 코뿔소가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 실질소득 감소, 양극화 심화, 미래산업의 정체, 내수 침체와 세수 감소, 급변하는 세계 정세 등 셀 수 없이 많다. 회색 코뿔소를 키우는 더 위험한 회색 코뿔소가 제왕적 대통령제다. 국민은 위험한 회색 코뿔소를 물리칠 유능한 정치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두 번째 사회계약에 나서야 할 이유다. 2017년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 담긴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 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첫걸음이다. 연합정치가 가능한 선거제도의 개혁도 필수다. 이에 더해 국민 기본권을 확대하고 사회 다양성을 강화하고 인구 위기와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경제 등 미래에 잘 대비하기 위한 정치의 제 역할 찾기도 시급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포용적 복지국가 비전을 살려 사회경제적 약자를 지키고 그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실질적이고 담대한 구상과 행동 역시 정치의 몫이다. 그래서 한국형 뉴딜연합이 더욱 절실하다.

[세상읽기] 팝업스토어, 즐거움 뒤에 소비자 피해는?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팝업스토어는 새롭고 즐거운 여가 공간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팝업 소식을 접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체험하고, 주변 핫플레이스까지 확장시켜 즐거움을 찾는다. 제한된 기간에만 문을 열고 닫는 팝업스토어는 이들에게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는 정보의 공간이자 친구, 연인들과 함께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SNS에 사진을 올려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새로운 소비의 놀이터다. 한국에서 팝업스토어가 눈에 띄게 등장한 것은 2010년대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반짝 등장했다 사라지는 팝업스토어는 1~6개월 혹은 1~2주의 짧은 기간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그 희소성 가치는 커진다. 때로는 오픈런하고, 반차를 내고, 줄을 서고, 진입하기 힘든 곳일수록 더 큰 관심을 받고, 인테리어를 감상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제품을 체험하는 등 소비자들은 잠시나마 환상을 맛보며 경험의 최대치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브랜드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 명실공히 현대 소비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듯 신기루와 같은 팝업스토에서 소비자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소비자는 공정한 거래를 하고 있을까. 팝업스토어는 기존의 오프라인 상점과 같이 상설매장 판매 형식이 아니다. 2024년 한국소비자원이 올해 1분기 팝업스토어 관련 소비자상담 불만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품 교환, 환불 불가, 품질 하자, 애프터서비스(AS) 불만, 계약 불이행 등과 같은 소비자 피해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인기 한정판 굿즈를 구매한 후 제품의 하자로 인한 교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장 내에 교환·환불 규정 안내가 없거나 판매 직원이 이를 구두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수입 상품의 한글 표시가 없거나(어린이제품법), 식품·용기에 식품용 정보표기 사항이 없는 경우(식품표시광고법)도 있다. 아이돌과의 영상통화에 수십만원을 지불한 한 소비자는 현장에서 돌연 취소되는 계약불이행을 경험했지만 이를 보상받기는 쉽지 않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화 등의 판매를 업으로 하는 자가 방문을 하는 방법으로 3개월 미만의 영업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권유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소비자는 14일 이내에 그 계약에 관한 청약 철회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정보 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수집 목적, 보유 기간 등을 소비자에게 고지하고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면 파기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소비자에게 잘 고지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 반품한 제품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제품 개봉 과정을 촬영하도록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이는 모두 약관상 소비자에게 불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팝업스토어에서 행해지는 거래조건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거래조건의 개선, 제품표시정보에 대한 강화, 개인정보 수집이나 초상권 사용 동의 등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특별한 재미와 경험을 선사하는 이벤트성의 팝업스토어가 젊은 소비자층에게 핫한 소비 공간이지만 공정한 거래를 위한 법적 근거가 존재함을 소비자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읽기] ‘유보통합’ 미래를 위한 핵심 정책

교육부와 복지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유보통합’은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을 하나의 체계로 합쳐 모든 아이가 질 높은 교육과 보육을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양질의 아이 돌봄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이는 육아 부담에 의한 저출산 문제 해결 대책뿐만 아니라 존속 가능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교육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각각 다른 법적 근거와 관리 체계에 따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부모들은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두고도 법령, 교육과정, 시설 기준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데 유보통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모든 영유아가 안정적인 교육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유보통합교육기관 체제를 통해 아이가 일관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양육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도는 현실적인 양육의 어려움으로 출산을 기피하려는 부모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보통합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들이 많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서로 다른 운영 체계와 기준을 조정해 재정과 관리 주체를 일원화하고 필요한 재원 충당 계획 및 집행, 그리고 돌봄에 필요한 통합교육기관의 정의와 구성, 필요 교원의 체계와 교육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조적 구체성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유보통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실제 업무 이관과 현장 적용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예산과 인력 배치를 포함한 계획에는 교육 및 보육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지원책도 요구된다. 특히 유보통합 과정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법적·제도적 차이로 인해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유치원은 교육기본법에 따라 정식 교육기관으로 간주해 교육부의 관리를 받는 반면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보육 기관으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의 관리를 받아 왔다. 이에 따라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 간의 자격 기준, 교육철학, 임금 및 처우 체계에 차이가 존재하며 통합 과정에서 의견차로 인한 불만이나 이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유보통합의 속도 조절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교육, 복지부는 충분히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유지해 온 현재의 유아교육, 보육 체계라는 거대한 사회는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급하게 추진한다면 이해관계가 다른 현장에서는 혼란을 초래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불신을 유발할 수 있다.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한 신중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유보통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육·보육 서비스 통합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교사들의 자격과 처우를 존중하면서도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는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며 국가 차원에서의 장기적 재정 확보와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보통합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넘어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가 포용적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세계에 우뚝 선 미래 지향적 공동체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세상읽기] 노벨상과 인공지능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 시상 분야 가운데 컴퓨터과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컴퓨터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을 기리며 1966년부터 튜링상이 제정됐는데 이후 컴퓨터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24년 노벨상 수상자에 컴퓨터과학의 일부인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 다수가 이례적으로 선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노벨 물리학상은 프린스턴대 존 홉필드 교수와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인공지능 신경망과 딥러닝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노벨 화학상은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수상했다. 이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개발해 화학 발전에 기여했다. 홉필드 교수는 인간의 뇌세포를 모사한 ‘홉필드 네트워크’를 제안해 인공신경망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후 힌튼 교수는 이를 개선해 볼츠만 머신을 개발하고 뇌 구조와 유사한 심층 신경망으로 ‘딥러닝’이라는 혁신적인 학습법을 제시했다. 그는 딥러닝의 선구자로, 요수하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및 얀 르쿤 메타 수석연구원과 함께 딥러닝으로 2018년 튜링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단백질 구조는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로제타 폴드’를 개발했고 하사비스와 점퍼는 이를 개선한 ‘알파 폴드’를 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게 예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2024년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인공지능 전문가가 다수 포함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은 물리학과 화학, 두 분야에서 모두 그 영향력을 인정받으며 이제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기술임을 분명히 했다. 인공지능을 등한시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개인과 국가는 앞으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권력과 진보’라는 저서로 유명한 대런 아세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이번 202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이다. 수상 직후 그는 현재의 인공지능에 대해 거품론을 제기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인공지능이 대체할 일자리는 5%에 불과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인공지능의 신뢰성 부족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 힌튼 교수도 맥락을 같이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앞으로 인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지만 부작용과 역기능을 처리하기 위해 얻은 이득의 두 배를 쏟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현재 기술이자 강력한 혁신 성장동력으로서 개인과 국가의 미래 향방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 이에 따른 신뢰성 결여는 당장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다. 이를 위해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은 ‘AI 안전 연구소(AISI)’를 국가 차원의 연구기관으로 설립해 필요한 기술과 정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가장 신뢰성 있고 안전한 인공지능을 개발해 활용하는 나라로 빠르게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인공지능 산업에 있어 거대 자본과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앞서가는 1위 미국, 2위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독보적인 세계 3위 국가(G3)로 올라서는 데 ‘안전한 인공지능 확보’는 가장 실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세상읽기] 대통령 탄핵, 대통령제 탄핵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에 가닿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맞나’ 자괴감이 든다는 국민이 늘고 있다. 김건희의 라인, 김건희의 논문, 김건희의 사업, 김건희의 주식, 김건희의 가족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낯뜨거운 윤석열 정권의 속성과 위태로운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 체제가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민주적 원칙이 점차 침해되는 현상을 민주주의의 부식으로 정의했다. 우리의 민주주의 지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상승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 때 회복된 민주주의는 윤석열 정부에서 ‘부식된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몰락한 보수정권에 대한 분노와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들이 부식되면 균열되고 약화되며 붕괴로 이어진다. 민주주의 위기는 국가의 장래를 총체적으로 위협한다. 윤석열 정부 경제성장률은 추락했고 미래산업은 정체됐다. 외교와 안보는 구한말이 연상될 만큼 강대국 대리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늘 그랬듯 결국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회복과 퇴보의 반복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인가”,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권력을 획득하고, 권한이 없는 사인이 국정을 쥐락펴락할 때 민주주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것이 다음 공화국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근본적 질문이 돼야 한다. 그 질문은 우리를 두 가지 과제로 이끈다.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탄핵할 때가 됐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연합정치의 모델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입법 사법 행정 3부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의 오만과 전횡으로 나라의 장래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분노이자 성찰이다. 정권 심판과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데 동의하는 모든 국민이 담대한 뉴딜 연합에 합의하고 참여할 때가 됐다. 미국 민주당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만들었다. 강력한 사회보험과 노동정책으로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줬고 유권자 지형 변화를 통해 진보 블록을 형성했다. 뉴딜 정책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추진됐고 미국은 번영을 구가했다. 한국형 뉴딜 연합이 필요하다. 개헌, 민주주의, 불평등, 선거제도, 고용, 사회보장, 공교육, 기후, 인공지능(AI) 경제, 한반도 평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사회계약을 쓰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2017년 탄핵 직후 다수 연합정치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아픈 점이다. 탄핵 연합과 촛불 대선의 결실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몫이 됐다. 그때 탄핵에 참여했던 정치세력, 사회세력과 함께 탄핵 과정에서 분출된 국민의 요구와 비전을 실천할 틀을 마련했다면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과 그를 세운 세력과 제도의 미흡함 때문에 민주주의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국민을 위한 진보적 정책이 오직 전 정부의 것이라는 이유로 폐기되는 참담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뼈아픈 교훈을 되살려 담대한 뉴딜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세상읽기] 우리는 왜 유행을 따르는가?

2024년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유행들이 있었다. 두바이 초콜릿, 미국 스탠리의 텀블러, 러닝 크루, 요아정(요거트와 아이스크림 정석), 스몰 럭셔리, 추구미…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행 키워드들이다. 유명인의 소비 취향을 따라하는 디토 (Ditto)소비 또한 유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따라 구매하고 여가활동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무엇을 먹고, 입을지, 어떤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지를 결정하는 데 우리는 왜 타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혹은 따르지 않고자 하는) 그 마음 이면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현대사회의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상품·서비스가 주는 단순한 기능적 사용 가치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심리적·상징적 가치를 충족시킨다. 튼튼하고 오래 쓰고 편리한 도움을 주는 상품보다는 그 상품 소비를 통해 ‘나’의 개성과 가치를 창출하고 표현함으로써 사회적 경쟁우위를 드러낼 수 있다. 혹은 ‘요새 그게 대세라며’, ‘나도 한 번 사볼까’. 다수의 사람들의 선택지를 선택함으로써 나도 대세에 동참하고 소외되지 않았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소비하기도 한다. SNS에서 타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전시하고, 새로운 트렌드는 빠르게 생산해 내면서 이를 따라잡고 뒤처지지 않기를 원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소비활동에 큰 동인이 된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유행에는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박이 작용하기도 한다.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의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 모두가 열망하는 일에 혼자만 동참하지 않을 때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특히 집단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지적·경제적·사회적 지위는 그가 속한 집단을 통해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 준거집단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소비를 결정하거나 타인의 소비를 모방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비동조 현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일어난다. 끊임없이 타인의 소비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타인의 소비 수준에 맞춰 자신의 소비를 조정하면서 자신이 뒤처지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편 한 심리학자는 유행에 따르는 심리를 현대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부정적인 심리 상태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경제적 불황, 극심한 경쟁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고 SNS을 통해 빈번하게 비치는 타인의 성공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삶의 모습에 불안과 열등감,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어 부정적인 정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심리가 현대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만성화되면 미래에 대한 통제력 상실, 패배감, 우울, 불안, 자신감 하락, 성취 욕구 좌절, 수동성 증가로 이어진다. 이러한 부정적 심리들은 회복하려는 욕구로 이어져 특정을 행동을 취하기도 하고, 특정 소비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유행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무력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소외감과 자원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며 이런 경우 지위를 상징하는 상품을 통해 좌절된 무력감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현실은 보상 소비를 어렵게 만들고 그 대신 립스틱, 값비싼 디저트, 오마카세, 향수 등 작은 사치품을 통해 소비만족을 시키는 것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적절한 수준에서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는 오히려 자기 성취에 긍정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드러내는 고급 제품에 대한 선호도로 이어진다. 유행과 합리적 소비는 상충하는 면이 존재한다. 유행은 빠르게 변화하는 속성이 있고 소비자들은 최신 트렌드를 따르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반복적인 소비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나의 마음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합리적인 방법으로 유행을 따르는 소비 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읽기] 전문대학의 생존 전략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문대학들은 수험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능 시즌은 마치 대학가의 ‘축구 결승전’과 같아서 각 대학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전략 대결을 펼치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재정 문제, 직업 교육에 대한 낮은 인식이라는 ‘세 명의 전문 수비수’가 전문대학의 총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이 ‘수비벽’에 대한 부담은 현실이 돼 전문대학의 학교 운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는 학생 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전문대학의 입학 경쟁률 하락은 물론이고 정원 충원의 어려움과 더불어 수익 감소로 직결되고 있다. 특히 지방에 위치한 전문대학은 접근성 문제와 지역 경기 침체로 인해 학생 유치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교가 벚꽃 지는 순서대로 없어진다’는 말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표현이지만 이제는 꽃이 피는 순서와 관계없이 모든 지방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대학은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재정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고, 이는 교육 시설 투자와 교직원 고용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지원율 포함,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우세한 4년제 대학에 집중돼 있어 전문대학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전문대학이 산업체와 협력하거나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재정적 어려움을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최근 글로컬30 사업을 통해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지만 주로 4년제 대학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연구 역량, 글로벌 네트워크, 산학 협력 능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전문대학은 이러한 지원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문대학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보다는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일부 전문대학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체와 협력해 맞춤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현장 실습을 강화하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해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온라인 학습 시스템을 도입해 더 많은 학생이 접근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전문대학이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문대학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과 협력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새로운 인재 양성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는 분야에 맞춰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지역 산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실무와 직결된 인재를 배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인 해결책을 넘어 전문대학이 장기적인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수적이다.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와 산업의 변화에 맞춰 유연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최신 기술과 교육 방식을 반영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생존전략의 근간은 학생이다. 즉, 학생이 체감하는 매력적인 대학의 교육여건이다. 학생이 자신의 인생설계를 서울에서 하지 않아도 잘살 수 있는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경제와 연결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신만의 만만한 꿈을 키우고 자신만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단하고 자유로운 정책개발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와 함께 변화하는 특화된 사회와 산업 환경에 맞춰 지역 기반의 특화된 교육을 통해 미래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눈부신 현대의 정보기술(IT) 사회에서 지역이 더 이상 핸디캡이 되지 않는 지역교육 특화 방안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세상읽기] 딥페이크 사태가 남겨준 교훈

역사상 가장 뜨겁고 긴 무더위로 모두가 힘들어했던 2024년 여름.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뜨거운 날씨가 드디어 꼬리를 보일 무렵 이 땅의 아동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딥페이크 음란물 사태는 그간의 여름 더위 못지않게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이 사태를 몰고 온 원인을 규명해 필요한 대책을 수립하고자 정부, 국회, 교육계, 시민단체, 언론 할 것 없이 모두가 발 벗고 나섰다. 매일 딥페이크는 뉴스의 첫머리였고 긴급회의의 주요 의제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고성으로 대립해 오던 여야 국회의원들도 딥페이크 입법 논의를 위해 나란히 곁에 앉아 고민하는 보기 드문 장면도 연출됐다. 이 때문인지 딥페이크와 관련해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만 해도 50건을 훌쩍 넘었다. 텔레그램이라는 보안 메신저가 주범으로 꼽혔다. 범죄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공하지 않는 특징 때문에 뒤탈이 걱정되는 사람들의 은신처로 텔레그램이 최적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더구나 텔레그램에 가입할 때 가상 전화번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알아 필요한 앱도 사용했다. 가입자가 5억명을 넘어가던 2021년. 텔레그램은 광고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입자 1천명이 넘는 공개 채널 운영자와 50 대 50으로 광고 수익을 나누었다. 올해부터는 블록체인 기반의 광고생태계를 도입해 거래소에서 환전이 가능한 텔레그램 암호화페 ‘TON’를 광고수익으로 지급했다. 공개 채널 운영자에게는 가입자 다수 확보가 가장 큰 관심사이었다. 때마침 유능한 인공지능(AI) 딥페이크 소프트웨어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자 이를 토대로 딥페이크 봇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봇을 채널에 부착해 가입자 유도용으로 악용했다. 기존 가입자가 새로운 가입자를 초대하면 딥페이크 봇 이용권이 제공됐다. 이렇듯 딥페이크 음란물은 무한 증식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이 위험에 다시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들은 분명해 보인다. 텔레그램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불법 콘텐츠 유통 차단의 책임을 부여한다. 딥페이크 봇을 비롯한 생성형 AI의 모든 합성 출력물에 워터마크와 같은 표식을 꼭 부착하게 만든다. 처벌을 강화해 범죄 의사를 줄인다. 특히 딥페이크 제작자뿐 아니라 구경하고 다운로드해 소지하는 사람도 처벌한다. 그동안 아동 청소년에게 제한됐던 위장수사의 적용 연령도 확대한다. 피해자 구제 활동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 규명과 대안 수립에도 불구하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디지털 전환기에 놓인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윤리 지체 현상’이다. 많은 어른에게 AI는 여전히 ‘미래 기술’이다.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AIDT) 사업도 내년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AI 없이도 잘 살아온 어른들에게 AI는 꼭 필요한 기술도 아니며 생소하기도 해 여전히 미래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벌써 ‘현재 기술’이다. AI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우리 생활 속 깊숙이 AI를 밀어넣고 있다. 유능한 기술일수록 부작용과 역기능도 심각하다. AI가 바로 그런 기술이다.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면 당연히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과 역량도 이에 대응해 변하고 향상돼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AI는 미래 기술이기에 이런 준비를 미리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현재 기술 AI에 대해 제대로 된 ‘윤리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이다. 이러한 윤리 지체 현상이 이번 2024년 여름 딥페이크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AI 윤리 지체 현상을 조속히 풀어내는 것은 앞서 제시한 여러 대안 못지않게 시급하며 중요하다. 그런데 그럴 만한 역량을 과연 어른들이 가지고 있을지 새로운 걱정이다.

[세상읽기] 화장하기에 적절한 나이는?

요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종종 붉은 입술에 하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등교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필자가 처음 화장을 시작한 시기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음을 떠올려 보면 최근 초등학생들이 립밤, BB크림, 립글로스 같은 화장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건 화장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화장을 시작하는 나이가 대체로 11~13세, 유럽에서도 12~14세라고 하니 10대들의 화장은 이제 대세라고 할 수 있다. 화장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가장 오랜 전통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기원전 4천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화장했고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도구가 아닌 종교적, 영적인 목적으로 사용됐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하얀 피부가 아름다움의 기준이었고 피부를 하얗게 보이기 위해 흰색 분말, 백납 같은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중세 유럽에는 교회의 영향으로 화장이 금기시됐지만 여전히 귀족사회에서 화장은 사회적 계급의 수단이었다. 20세기 중반 대중소비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영화와 대중매체 등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대중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외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시 10대 소녀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드물었고 대부분 성인 여성에게만 허용됐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서구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특별한 행사나 퍼포먼스, 핼러윈 같은 특정 축제 때 분장 또는 화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는 장난감으로 분류된 어린이용 화장품이 등장했고 어린이들이 놀이의 일환으로 화장을 접하기 시작했다. 주로 립글로스, 네일 폴리시, 페이스 페인트 등이었다. 디즈니 캐릭터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어린이용 화장품이 인기를 끌며 어린이들은 화장품을 접할 기회가 점차 늘어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아이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화장법을 배우고 실험하는 일이 흔해졌다. 특히 어린이 유튜버들이 메이크업 튜토리얼을 올리면서 어린이들이 화장과 더욱 친숙해졌다. 일부 어린이들은 놀이로서가 아닌 패션과 자기 표현의 일환으로 화장을 시도하기도 한다. 뷰티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K-뷰티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10대를 타깃으로 한 제품이 많이 출시됐다. 10대의 글로벌 화장품 시장은 지난해 약 200억달러로 추정된다.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지고 10대 역시 화장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10대는 이러한 플랫폼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트렌드와 문화를 주도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마케터는 이들을 주목한다. 10대는 앞으로 수십년간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제품을 일찍부터 노출시켜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소셜미디어는 10대에게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완벽한 외모나 화장 스타일을 보며 자아존중감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외모에 대한 불만족이나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완벽한 외모를 보여주는 필터나 편집된 이미지가 이러한 비교를 심화시킨다. 소셜미디어는 특정 화장 스타일이나 브랜드에 열광하는 10대가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이므로 서로 제품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스타일을 칭찬하거나 조언을 주고받으며 또래들 간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의 화장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종교적 이유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제품과 기술이 개발되면서 화장은 미적 표현과 자기만족, 사회적 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됐다. 화장은 인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발전해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10대 어린이의 화장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존재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화장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성인적인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다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자신의 외모와 신체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어른들과 나눌 필요가 있다. 여러분의 자녀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하루 종일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본다면 화장을 좀 더 일찍 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세상읽기] 의정 갈등 해소, ‘따로 또 같이’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 만나지 않는 길만 찾아가는 것 같다. 올해 2월 발표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시작으로 양측의 갈등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어느 쪽도 자신들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방어논리가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이제 국민의 피로감은 높아만 가 어느 쪽이 옳고 그름에는 무관심해지는 것 같다. 다만 환자의 입장에서 내가 치료받기에 어려움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 이 대립은 이성에 근거한 정책적 이견(異見)을 넘어 불신과 오해, 그리고 선입견으로 인한 감정적 맞서기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쪽도 양보가 어려워진다. 이 상황은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내전(內戰)이라 볼 수 있다. 내전에서 승자나 패자가 없듯이 이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단체와 정부 간에 생성되는 비합리적인 대응으로 인해 국민과 이해당사자가 큰 손해를 떠안게 된다는 사실이 문제다. 승패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모든 당사자가 제자리로 돌아와 대승적 차원에서 왜 물러서기 어려운 갈등을 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사회적 현상보다는 근본적 원인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는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방안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교육 인프라 확충과 수련 시스템 개선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단순히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의료 교육의 질 저하 같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요리에서도 간을 맞출 때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법인데 하물며 국민의 건강과 직결돼 있는 정책을 조정하는 데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원과 재원의 결과론적 투입에 그치지 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피해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와 피해 역시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깨진 독에서 쏟아진 물로 인해 어지럽혀진 바닥을 정리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의료계도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특히 집단 행동을 통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삼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장을 떠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환자가 필요한 것은 의사집단보다는 나를 세심히 보살펴 줄 의사 개인이다. 이 갈등은 단순한 정책과 특정 단체의 생존권에 대한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정의 하나로 인식돼야 한다. 이 갈등에서 정부와 단체가 명분적 논리를 세워 놓고 어느 논리가 수용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 필요는 없다. 환자 치료와 의료시스템에 있어 따로 또 같이의 관점으로 본다면 대립에 앞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동이 자연스러워진다. 갈등을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은 비난이 아닌 문제 해결과 신뢰받는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된 것은 정부, 의사, 국민 모두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미래에도 현재의 격(格)을 유지하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융통성과 하모니가 어우러진 멋진 협력이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일관적인 정책과 특정 단체의 주장보다는 개인의 발전을 지향(志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세상읽기] 격변의 시대, 희망찬 발걸음

입추가 지나면서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의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예년에 체험해 보지 못한 한낮의 폭염이 조금씩 물러나면서 자연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우리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이에 더해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출생아 수 감소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생산 인구가 감소하며 노년 인구가 증가하면서 부양비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어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가 시급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양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시스템을 혁신해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사회시스템을 개편하고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당초 예상했던 5개의 금메달을 훌쩍 뛰어넘어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값진 성과는 우리나라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꿈꿨던 평등한 세상처럼 이웃 나라와 협력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룩하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자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지구 열대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극심한 기후 변화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폭염과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환경 보호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또 사회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어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 민족은 역경을 이겨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저력이 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혁신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대 국가의 위협에 맞서 강력한 안보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 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일자리 창출에 힘써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아울러 출산장려정책을 강화하고 양육환경을 개선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다양성의 존중 및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경제 활성화와 출산력 회복, 사회통합 등을 이룩한다면 희망찬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읽기] 국가보훈정책개발원 국회 통과 시급하다

내일은 제79회 광복절이다. 국가보훈처가 2023년 6월 60여년 만에 중앙정부 조직서열 9위의 국가보훈부로 승격했으나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이 산적해 있다. 우선 기대하던 대통령실 보훈비서관이 없어 80만이 넘는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조속히 신설해야 한다. 한편 국가 선진보훈 정책을 수립 연구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할 국립 연구기관이 없어 국가유공자의 중·장기 보훈정책 수립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국가 보훈정책은 초고령화된 국가유공자들의 보훈 법률 제정 등 의료, 복지 정책 수립이 시의적으로도 더 늦출 수 없는 현안 업무인데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어 이를 위한 효율적 추진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보훈정책개발원의 조속한 국회 통과 및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 21대 국회에서 윤한홍 의원의 대표 발의가 있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국가유공자의 선진 보훈정책 수립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해 국회 정무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본회의에 상정해 늦어도 올해 10월 말까지 통과돼야 한다. 특히 국회에 입법 발의된 보훈정책개발원 명칭은 보훈학술적 관점에서 국가보훈정책개발원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상징적 의미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책무적인 의미로 국가보훈부의 조직과 일맥상통하고 대국민 교육적 차원에서 보훈의 정통성을 부여한다. 둘째, 초대 원장의 보훈전문가 초빙과 현실에 맞는 연구 직제 신설이 필요하다. 초대 원장 기본 자격은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에 대한 보훈 보상, 의료, 복지 정책 등에 연구 경험이 풍부한 보훈 전문가가 원장으로 임명돼야 하고 다른 중앙부처에서 운영하는 국립연구기관 직급에 맞춰 차관급으로 직제를 신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세부 연구실 및 연구원 직제 방안을 제시하면 보상정책연구실, 보훈문화정책연구실, 보훈예우정책연구실, 보훈단체정책연구실, 국제보훈정책연구실, 보훈의료정책연구실, 보훈복지정책연구실, 제대군인정책연구실 등으로 하고 연구원 직제는 연구실장, 책임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 부연구위원, 연구원 형태로 운영이 필요하다. 셋째, 연구원 설립 시 보훈정책 개발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행 보훈공단에서 운영하는 보훈교육연구원의 경우 연구원이 5명, 행정직 20여명으로 운영돼 대다수가 교육 연수 부분에 인력이 치중해 있어 정책연구 분야가 소홀하다. 이런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수 및 교육을 통일부 산하 국립통일교육원과 같이 별도 기관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다. 넷째, 우수한 연구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 보건복지부 산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경우 300여명의 연구원과 70여명의 행정 직원으로 구성돼 있고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은 350여명 연구원과 150여명의 행정직원,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의 경우 100명과 50여명의 행정직원으로 구성돼 현 보훈교육연구원의 30여명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향후 국가보훈정책개발원 설립 시 경력직 박사급 연구위원 50여명, 석사급 연구원 20여명, 행정직 30명 총 100명 수준으로 하고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 보훈 환경 변화에 대비해 점차적으로 증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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