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경열 두원공과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디지털헬스케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해 맞춤형 치료와 예방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실현하는 디지털 기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국회에서 의료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디지털헬스케어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의료정보를 영리 기업에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열 잠재력을 지닌 이 법안은 국민 건강 증진과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을 동시에 도모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나 계획이라는 기회는 책임 위에서만 완성된다. 의료 데이터라는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이 법안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기준과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의 핵심은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의료와 공공 보건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예방적 건강관리, 정밀 의료 진료, 신약 개발 등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의료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활용할 경우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보안과 신뢰 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법안에서 제안된 가명 처리 데이터 활용과 제3자 전송 요구권은 데이터 보호와 활용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과제다.
유럽의 일반개인정보호법(GDPR)은 철저한 데이터 보호를, 미국의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은 민간과 공공 협력을 강조하며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익명 의료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과 높은 정보기술(IT)을 감안할 때 독자적인 디지털헬스케어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간의 중첩과 모호성을 해결하고 효율적이고 투명한 데이터 활용 구조를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또 법안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데이터 전송, 보유,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2023년 3월 개정)과 보험업법(2023년 10월 개정)은 의료 데이터 전송을 허용했지만 활용 범위가 불명확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이를 보완해야 하며 환자 주권 강화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명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은 책임 있는 실행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실행돼야 하는 이유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국민의 신뢰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신뢰가 혁신을 이끈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이 의료 데이터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나아가 글로벌 의료 환경의 선두주자로 도약할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데이터 활용의 혁신적 잠재력을 국민의 신뢰와 책임감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디지털헬스케어법으로 열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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