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제도와 일하는 사람

우리 민족의 설화 중 홍수는 악덕응징으로 등장한다. 한 스님이 부처님 공양을 위해 동냥하는데 부잣집 주인이 쪽박을 깨고 말똥을 부어 내쫓은 횡포가 있은 후 난데없이 홍수가 나 기와집이 소(沼)가 된다.

또한 조선 태종때 큰 비바람으로 나무뿌리가 뽑히는 등 천재지변이 발생하자 백성의 원한인지 혹은 대신의 잘못인지, 임금의 실덕인지를 밤새워 가려 자성하고 겸허하게 대처하곤 했다. 이렇듯 우리조상은 천재지변과 인사의 상관관계를 중요시 하였으며 이런 자연관 때문인지 큰일을 당하고 나면 악정이나 실정요인이 사라지고 민원이 해소되곤 했다.

그러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개발(開發)이라는 단어가 생긴이후 자연 앞에 선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돈과 지위와 권위를 더 가지려는 소유욕구(To have)와 맞물려 이기주의가 되고 말았다. 물론 어느 철학자가 역설하듯이 인생을 보다 즐기고 보람과 뜻을 추구하는 존재욕구(To be)를 주장하면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를 살아가는 이로서 얼빠진 놈이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을게 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국가라는 큰 틀 안에서 지켜야 할 제도가 있다. 그 제도는 우리들이 만들어낸 준수해야 할 필수사항이고 우리가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고 자연이다. 또한 그 제도를 꾸준히 유지·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제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호되어야 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금의 실태는 심각한 개인 또는 지역 이기주의에 의해 제도가 무시당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도 협박당하고 매도당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선한 자연관과 더불어 이웃과의 사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옛말에 먼 데 사는 형제는 팔촌이요, 가까이 사는 이웃은 사촌이란 말이 있다. 또한 이웃을 가르는 우리의 담은 그것을 존중하는 심리적 경계에 불과했을 뿐, 오고갈 것은 모두 오갔던 담이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집값은 백냥이고, 이웃 값은 천냥’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사는 조그마한 지역에서 지역간 도로연결 저지나 인근 건축물의 건축 방해, 나아가 환경 등 공익관련시설의 설치조차 방해하는 각박한 현실을 볼 때, 오고 갈 것은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값진 이웃사이가 되고 제도 안에서 큰 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은 관용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분위기가 아쉬운 현실이다.

/오완석 토지공사 용인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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