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디론가 사정없이 굴러가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하고 아프다. 음악을 들어도 숲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잡히지가 않는다. 문득 얼마 전 늦은 밤에 TV를 통해 보았던 틱낫한의 플럼 빌리지(자두마을) 공동체에서의 걷기 명상 장면이 떠올라 칠보산으로 향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호흡을 골랐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걷는 동안 숲 냄새, 흙 냄새, 계곡 물소리, 새소리 등이 마음에 가득 채워졌다. 스스로 놀랄 정도의 알 수 없는 희열과 평화로움이 내 안에 밀려왔다. 틱낫한은 달라이라마와 더불어 세계 종교계의 두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불려진다. 그는 시인이고 선승이며 명상가이자 평화운동가다. 프랑스 남부 광활한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으로 둘러싸인 보르도 지방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자두 공동체에는 틱낫한을 만나 참 삶의 본질과 평화를 찾으려는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틱낫한의 대표적인 명상법은 걷는 것이다. “홀로, 또는 여럿이서 천천히 걸으라.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걷기 위해 걷는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함이다. 모든 걱정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걷는 동안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걸음도 평화롭게 내디딜 수 있다.” 지금 이 곳에 존재하는 것,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요, 지금 이 순간 푸르른 대지 위를 걷는 것, 그 안에서 평화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지만 또한 푸른 하늘, 햇빛, 아이의 눈과 같은 경이로움들로 가득하다.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삶의 수많은 경이로움들과도 만나야 한다. 그것들은 그대 안에, 그대 주위의 모든 곳에, 그리고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는 일상의 모든 것들 속에 삶의 기적과 경이로움, 행복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며 자신이 지은 짧은 시로서 모든 이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성령을 받아라”하신 말씀이 연상된다. 하나님의 숨 속에 평화가 있고 참 생명이 있다. 깊게 천천히 반복해서 호흡하라. 물 위를 걷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숨을 쉬며 천천히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다 .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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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3-05-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