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어느 시인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온다” 고 표현했듯이 우리가 맞을 채비를 갖추지 못했지만 올 봄도 어김없이 제때에 찾아왔다. 봄은 탄생과 희망의 계절이다. 많은 일을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라 예로부터 사계절 중에서 유독 봄만을 “새 봄”이라 부르며 기다려 왔다. 봄은 산과 강과 들녘 구석구석까지 찾아와 거기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며, 모두가 이에 순응해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따스한 볕으로 얼어있던 대지를 녹여 냇물에 흐르게 하고, 강가의 버들가지 움트며, 논두렁의 잡초들 흙을 뚫어 새싹을 틔운다. 철새들은 고향 찾아 알을 품고, 농부들은 논밭 갈아 씨를 뿌리며, 학생들은 새학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꿈을 심고 희망을 일구는 봄이 왔지만 지금 나라 안팎은 자신의 꿈을 심기보다는 상대를 비판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외치며 제각기 실속을 챙기려는 목소리에 시끄럽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서방, 아랍, 매파, 비둘기파, 좌익, 우익, 개혁, 수구, 협회, 단체 등 특정 세력을 구분 짓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공격, 시위, 항의, 농성, 퇴진요구 등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동들이 언론에 너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봄마다 한번에 20여 마리의 노란 병아리를 품어 내던 어미 닭의 신비로운 생명창조능력과 사랑으로 함께 하는 평화로운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시 온 “새 봄” 스스로 조용히 자신의 꿈을 심으며 양보와 배려, 이해와 사랑으로 함께 하는 노란 병아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그런 따뜻한 봄이 되길 기원한다.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3-03-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