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3.1 정신과 친미 반미

지난 3·1절은 의례적인 기념식으로 진행되었던 예년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서울 시청앞과 여의도에서는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가 열렸고 탑골공원과 광화문에서는 ‘3·1 민족자주 반전평화 실현 촛불대행진’이 열렸다. 이 두 집회는 모두 3·1정신 계승을 말했지만, 한쪽에서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노래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두 여중생의 추모 촛불을 들고 불평등한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한 ‘자주’를 주장했다.

지난해 연말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의 사과를 요구했던 촛불시위를 놓고 세간에 ‘반미인가 아닌가’로 논란되었던 것이 ‘반미’와 ‘친미’로 양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미국을 두고 무조건 혈맹이라고 생각하거나 영원한 우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관련된다면 언제든지 등을 돌려왔지 않은가! 오랫동안 후세인을 지원해왔던 미국이 질좋고 값싼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 집착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주성을 지켜나가며 평화를 정착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볼 때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소파)이 불공평하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군의 존재가 전쟁 억지력을 갖고 북핵의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궁핍한 지경에 이른 북한이 위협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 한복판에 미군부대가 있다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용산은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전시에 작전통제권이 미군측에 있다는 것도 자주국가의 위상과 걸맞지 않다. 이런 것을 거론한다고 반미요 친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3·1정신은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고자 일어선 운동이다. 일제의 총칼에 쓰러지면서도 외쳤던 것이 민족의 자주이다. 반미인가 친미인가를 논하기 전에 80년전 그 목소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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