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비에 젖은 경주 풍경

비가 오는 경주를 걷는 기분이 그런대로 좋다. 경주에 비교적 자주 가는 편인데 저 멀리 보이는 무덤의 관능적인 선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무덤을 보고 좋아하는 눈이라니! 죽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상에 세운 표지는 불사와 불멸을 증거하며 부드럽게 드러누워 있다. 우리 나라 전국토에 엠보싱 마냥 봉긋하게 솟은 무수한 무덤들을 떠올린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울산공항에 내려 경주까지 내쳐 달려오는 중에 조금씩 봄비가 거세지고 있었다. 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전시를 둘러보고 잠시 잔디밭에 나와 숨을 고른다. 싱그러운 공기와 풀 냄새, 비에 젖은 땅 내음이 훅하고 덤벼든다. 어쩐지 이곳의 모든 나무와 풀조차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역사의 무게를 드리우고 있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식물성, 돌맹이와 사금파리 조각 하나에도 먼 왕조의 숨결이 서식하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상상의 불을 지펴 과거로 치닫게 한다. 2시간 가량 강의를 하고 나와서 다시 공항으로 달렸다. 바쁜 일정에 불국사나 석굴암 아니 어느 능 하나도 보지 못하고 가는 처지가 아쉽고 처량하지만 차창밖으로 사라지는 경주풍경만큼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경주에 오면 늘상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김근태는 대구 출신이지만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곳 경주에와 산사에 딸린 조그만 집 하나에 기거하면서 세속세상과 인연을 끊고 손수 나무하고 밥지어 먹으면서 그림에만 몰두했던 이다.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단호한 어둠의 색인 검정으로 그려진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들이었다. 밤새 손으로 흑연을 문질러 그린 그 그림들은 명징한 정신의 직립처럼 다가왔었다.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으로도 경주에만 내려오면 늘 역앞에서 기다리던 그였다. 그와 함께 경주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기억이 선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을 지나치게 혹사시켜 근육암이란 희귀병으로 올 초에 죽었다. 그를 기억하는 몇인가의 사람들만이 죽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20년이 넘도록 경주의 그 초라하고 궁핍한 2평 정도의 방 한 칸에서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면서 살았다.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삶은 마치 종교적인 수행의 삶이기도 했다. 물론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그런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누가 그림 그리는 삶, 일을 그렇게까지 밀어붙여 해나갈 수 있을까. 경주에 오면 치열한 삶을 살다간 그가 그리워진다. 산 자들은 모두가 비겁하고 옹졸해 보인다. 아니 내 자신이 그렇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천자춘추/문화재 보호

문화재보호법이 오히려 문화재를 훼손시키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 3장 제44조(발굴의 제한) 4항( 발굴에 소요되는 경비는 그 공사의 시행자가 부담한다. 다만 대통령이 정하는 건설공사로 인한 발굴에 소요되는 경비는 예산 범위내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할 수 있다)이 바로 그 악법이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보호정책이 오히려 개발자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비용 부담과 함께 사업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악법으로 중요 매장 문화재가 훼손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정부사업이 아니면 시행자가 직접 조사하고 개발하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부담해야한다. 때문에 사업자는 매장문화재가 발견 되면 이러한 절차나 비용부담 때문에 관계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근거 조차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 공룡발자국이나 매장 문화재 대부분이 이렇게 사라진다. 사업자가 문화재를 신고할 경우 그 사업장은 문을 닫아야 하며 문화재 발굴 및 조사 등 많은 비용 부담까지 떠 안는다. 또한 일선 행정기관의 대부분 공무원들이 매장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전문가나 학자들에게 확인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그 결과를 얻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더욱이 일부 공무원들은 인류문화 유산급 문화재라면 그냥 땅에 묻어 두는 것도 보존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실정이다. 외국의 경우 문화재급 인류 유산이 발견될 경우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발견자는 최고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이 자연스런 보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러한 예를 볼 수가 있다. 시화호 남측 대부광산에서 공룡발자국이 발견돼 사업주는 공사를 중단하고 1억여원의 조사비를 부담했다. 사업주는 안산시와 공룡학자,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발굴단을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며 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나선 사업자에게 안산시는 공사 중단과 함께 복구명령을 내렸으며 현재 공룡발자국 발굴지는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문화재의 관광상품은 투자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생산하는 상품 보다 몇배의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시화호 남측 간석지에 발견된 공룡화석단지는 다행히도 시민단체와 전문가, 해당 지자체의 공조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천연기념물 414호로 지정, 관광지 개발을 앞두고 있다. /최종인.환경운동연합,희망을 주는 시화호만들기 공동대표

천자춘추/가정의 달

가족과 가정에 관해서 누구나 한번쯤 깊이 생각케 하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문득 옛날에 부르던 노래 한 곡조를 떠올린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리…’로 시작하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란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에 가사를 붙인 미국의 극작가면서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1771-1852)은 한번도 아내와 집과 자녀를 가져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한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았던 사람이다. ‘즐거운 나의 집’을 지은 때도 수중에 동전 한 잎 없는 처지로 프랑스 파리에 머물때였다는 그는 1851년 3월 어느날 크러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진정 이상한 얘기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가정의 기쁨을 노래하게 한 나 자신은 ‘내집’의 맛을 단 한번도 모르고 지내왔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하고 말것이오’. 이 편지를 쓴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튀니스의 어느 거리를 떠돌다 세상을 하직했으며, 얼마뒤 고향인 워싱톤 오크 언덕의 공동묘지로 옮겨져 비로소 안주할 수 있었다. 혹시 가족과 가정에 대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목마름이 있어 그같은 명곡을 남기게 된 것은 아닐까. 몬테뉴도 그의 수상록에 왕국을 통치하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적을 정도로 점점 더 가족과 가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정은 기쁨이고 아늑함이며 가족이 있어 비록 집이 누추할지라도 마음은 따뜻한 궁궐이다. 이 모질고 삭막한 세상에서 가족과 가정 말고 살뜰히 어루만져 줄 곳이 어디 있으며 가족보다 더 정겹고 다정한 사람들, 그저 눈감고 생각만해도 편안하게 다가서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을까. 가족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용서하고 섭섭한 일이 있어도 이해해 주며 허물은 씻은 듯 사랑의 이름으로 깨끗이 흘려 버리지 않던가. 기쁜 일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 있으면 달려와 얼싸 안고 함께 애통해하는 가족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인연에 비길 것이며 그 존재를 소홀히 할 것인가. 각설하고 가정의 달을 맞아 바르고 반듯하게 자식 잘 키우는 일에 힘쓰고 가족과 가정 잘 다스려 나가자는 얘기다. /박영권.가스안전공사 경기지역본부장

천자춘추/그래서 더욱 쓸쓸했던 날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설문조사에 응하기만 하면 추첨을 통해 컴퓨터, 핸드폰 등 고가의 상품을 준다는 것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어린이날이 선물 행사로 치러 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얼마 전 몸에 자주 멍이 드는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데려와 상담 한 적이 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도 그 애는 잠시를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 아이에게 급한 것은 혼자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일이었다. 어미의 마음으로 대해 주다 보니 다행히 잘 따라 주어 꽤 안정이 되어 가기에 잠시 잊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1391(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매 맞고 발가벗긴 채로 쫓겨 난 아이를, 잦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한 이웃이 신고를 했다고 한다. 아이는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나빠진 상태였다. 누가 제일 보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요”하더니 전에 흥미를 보이던 게임들도“관심 없어요”라고 했다. 학대받는 아동 75%가 11세 이하이고 가해자는 80%가 친부모라지만 전화 통화를 해본 아버지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세상살기 힘들어서’라며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행히 피해 아동은 1391이 생겨서 돌본다지만 때리는 이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어린이날’행사가 각종 선물 사업으로 호경기를 누린다지만 발가벗겨서 찬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아이에게는 먼나라의 일 일뿐이다. 해마다 요란한 기념행사들을 보는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만큼 이날을 빌려 선물공세로 면죄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버릴 수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닌 부모를 이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아이를 아버지와 격리시켜 보호, 치료를 하고는 있지만 분노와 절망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에게 지금 당장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든지 센터를 나오는데 5월의 하늘은 높고 따사로웠지만 그렇게 쓸쓸할 수 없었다. /권은수.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천자춘추/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

전쟁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비극이며 재앙이다. 몇 사람의 갈등과 자존심, 생각과 이념의 차이가 엄청난 물질적 파괴와 수많은 사상자를 낳는다. 얼마전 우리는 안방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듯 TV로 미·이라크 전쟁의 현장을 생생히 보았다. 화면에 비쳐진 이라크 전지역은 포성과 치솟는 불길 그리고 쓰레기 투성이다. 간간이 이라크 병사의 시체도 보이고, 오폭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모습, 공포에 질린 민간인들의 얼굴에서 그곳이 생지옥이라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이런 비극을 막기위해 전 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었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 몇주 며칠만에 파괴와 희생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원상 복구가 될는지 걱정스럽다. 그보다도 인명 피해며 사상자는 어디서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경기도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인도적 차원에서 경기도의사회와 기독교 정신으로 난민을 돕는 글로벌 케어가 합심해서 이라크 바그다드의 인구 200만의 사담 시티에서 의료봉사와 방역봉사를 하기로 하였다. 1진 20명은 4월 21일 이미 떠나 활동 중이고, 2진도 현지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차질 없이 계속해서 3진 4진 5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날 무렵이라고는 하지만 포연이 멈춘 열사의 땅, 그곳은 아직도 위험한 곳이다. 기후조건도 좋지 않아 밤낮의 일교차가 크며, 간간이 모래폭풍이 불어오는 페허속에 무더위라는 최악의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이런 열악한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 계획에 충족할 만큼 많은 전문 의사들이 자원봉사로 나섰다. 사회가 척박하고 이기주의가 팽배 하다지만, 참 봉사를 하겠다는 자원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인간 누구에게나 마음 한구석에는 자비와 따뜻한 인간애가 도사리고 있는가 보다. 이라크 의료봉사단을 이끄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임무와 책임을 다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한다. 이들의 손길에 구원받는 이라크인들은 대한민국 경기도와 우리 의료봉사단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할까. 아마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 문화, 지리적 여건,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것은 없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정복희.경기도의사회장

천자춘추/천국의 아이들

요즈음 나에게 이상한 습관 하나가 생겼다. 사는 게 버겁고 웬지 모르게 가슴이 떨려오고, 내 자신이 추하게 느껴질 때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꼬옥 껴안고 한참동안 그렇게 있는다. 그 순진무구한 심장에 가슴을 대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더러움이 정화되는 듯 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천국과도 같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말이나 감성은 더럽혀진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새롭게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 거기서 만들고 키웠다는 /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잎이 다물어졌다 / 내 말은 때가 묻어 /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정희성의 <민지의 꽃>- 화창한 봄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 앞에서 이 시를 읽다가 가슴이 뜨끔했다. 잡초와 꽃이 어디 따로 있을까, 다 고귀한 생명이지. 생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아름다운 꽃으로 받아들여 깊은 사랑을 나누는 마음이야말로 하늘마음이고, 그런 사람은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천국시민이 아닐까. 어린이들은 이 생명과 사랑의 나눔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나 보다. 어린이를 기리는 절기에 천국의 아이들을 잘 받들고 배우다보면 천국의 떡고물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천자춘추/아는 것만큼 보인다

수원에 와서 근무하면서도 왜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수원시장의 배려로 판사들이 단체로 화성을 순례할 때 자원봉사자로 나온 공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들으면서 새삼 성곽의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성곽 위를 빙 둘러가며 3개조로 나란히 뚫려있는 구멍중 왜 가운데 구멍은 밑을 보게 하였는지, 군데군데 튀어나온 성곽 부분(치)이 치밀한 과학적인 계산하에 설치된 것이며 고대 성곽보다 성벽의 높이가 낮은 이유, 중요 부분에는 벽돌로 한 이유 등등…. 그리고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결정적인 이유는 성벽 설계부터 기초공사, 마무리까지 인력·장비·자금 등 화성 건축에 관한 모든 것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기록한 세계 유일의 성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전 목포지원에 근무할 때도 근처 문화유산을 둘러보곤 했다. 처음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중 하나로만 생각하며 보다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중 맨 처음에 나오는 ‘남도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는, 다시 그 책을 옆에 끼고 유 교수의 답사 여정을 그대로 따라 돌면서 책 한번 보고 유적 한번 보고 하는 동안 남도 문화유적이 이렇게 아름답게 나에게 다가올 줄 몰랐다. 유홍준 교수도 그 책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썼는데, 과연 그 말을 남도 문화유산을 돌면서 실감했고, 화성을 돌면서 다시금 실감했다. 아는 것만큼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만큼 우리 문화유산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화성에서 나아가 화성 행궁, 융건릉 등의 유적뿐만 아니라 사도세자의 애달픈 죽음과 지지대 고개에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이해하게 되었고, 왜 수원을 효의 도시로 정하였는지도 공감하게 되었다. 또한 내 주위에 화성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기회 있으면 설명도 해주고 또 여러 사람을 화성으로 초빙하여 같이 성곽을 돌면서 설명해주다 보니 나도 문화유적 가이드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요즈음 이라크의 소중한 문화유적들이 약탈된 것에 분노하면서 새삼 해외로 빠져나간 우리의 많은 문화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한다. 그동안 우리가 조국 근대화에만 매달려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들 하나하나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문화유적들에 대해 조금씩 깨우쳐 나가다 보면 어느날 우리도 문화를 사랑할 줄 아는 1등 문화국민이 되지 않을까. /양승국.변호사

천자춘추/도민 옴부즈만제도3

행정통제와 시민참여를 위한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행정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옴부즈만 제도가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행정권의 통제를 일차적인 목표로 하는 만큼 지방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실 지방의회와 지방정부의 관계는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 막대하여 의회가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지방의회가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여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주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한편 삶의 질을 제고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에서는 옴부즈만을 지방의회의 부속기구로 규정하는 한편 옴부즈만의 활동에 대한 지방정부의 협조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설정하기도 하였다. 즉 업무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옴부즈만 임명과정에서 지방의회의 폭넓은 관여를 인정하고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를 얻도록 규정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의회와 함께 견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옴부즈만이 행정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행정권력에 의해 침해된 시민의 권리를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를 통해 옴부즈만 제도의 행정적 독립성을 유지할 때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참여를 증진시키는 옴부즈만 제도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옴부즈만 제도는 아직 시민은 물론 공무원들에게조차 아직 취급한 적이 없는 낯선 제도이다. 따라서 구성과 기능 및 구체적인 시행방안 등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옴부즈만 제도의 발상지인 스웨덴에서조차 이 제도가 정착하는데 오늘날까지 약 180 여년이 걸렸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세계 각국의 옴부즈만 제도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인내를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옴부즈만 제도를 효과적으로 정착시키는 지름길일 것이다. /신보영.경기도의회 보사환경위 의원

천자춘추/지방자치시대에 맞는 행정

인천의 공직사회가 시끄럽다. 인천시장의 기초단체 초도 방문과 인천시의 기초단체에 대한 종합감사를 공무원노조 인천지역본부가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시장이 각 기초단체의 어려움이나 구민들의 민원을 청취하고 시정을 설명하기 위해 구를 방문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주장한다. 또한 시비가 기초단체에 지원되는 만큼 종합감사는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있다. 반면 공무원노조는 시장의 초도 방문은 관선 시대의 유물이며, 형식적인 것이어서 행정력만 낭비할 뿐 별 효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치권을 가진 기초단체를 줄 세우기 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인천시 종합감사의 경우에도 기초단체가 이미 감사원, 행정자치부 등으로부터 많은 감사를 받고있는 가운데 이루어져 행정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다른 감사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행정력을 낭비시킬 뿐만 아니라 정작 시민들을 위한 행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13년이 되어가지만 행정현장 곳곳에서는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둘러싸고 많은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가고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정비할 것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제도적으로 허점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천 공직사회의 마찰은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제도의 미비와 답습되는 관행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현행 지방자치제도는 자치단체간의 마찰의 소지를 충분히 안고있다. 자치단체간의 기능과 역할의 분담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그 한 원인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게 행정제도를 시급히 정비하고 불필요한 관행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공직사회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 행정력 낭비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시는 공직사회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지방자치제도 개혁 요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더구나 종합감사 거부의 경우 공무원노조에 소극적인 공무원들조차 다수가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직사회의 의견 대립의 장기화와 확대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공직사회가 무엇을 해야할지 머리를 맞대고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다. /박길상.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사무처장

천자춘추/가로수 실명제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찾아 왔다. 올해의 봄은 봄 가뭄을 걱정하는 농촌 어르신네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기원이 하늘에 닿아서인지 유난히 비가 많다. 지난주에는 남쪽지방에 4월에 보기 드문 태풍까지 찾아온 것으로 보도되어 모내기에 필요한 물은 충분할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히 올 가을의 풍성한 들판은 경제적인 체감 온도로 뚝 떨어진 서민들의 스산한 마음을 따듯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확신한다. 5월은 우리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날마다 푸르게 변해 가는 가로수 때문일 것이다. 삭막한 도시 소음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로수이다. 겨우내 매몰찬 추운 날씨에 죽은 것으로 착각했던 앙상한 가지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가로수의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보면서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은 희망으로 가벼워진다. 그러나 머지 않아 찾아 올 타클라마칸 사막으로부터의 황사와 찌는 더위, 수많은 도시의 오염 물질 그리고 변화의 정체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무관심은 가로수의 생명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다. 5월의 푸르름에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쏠리고 있는 지금 이 때에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한 조그만 캠페인을 펼쳐보자. 서울시 동대문구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그린오너제’ 제도는 주민들이 직접 생활환경 주변의 공원, 녹지대, 가로수 등의 녹지공간을 실명제로 가꾸는 것으로 모든 자치단체가 서둘러서 도입해야 할 가치 있는 캠페인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녹지조성과 유지관리는 많은 인력과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구청 내 공원녹지과에서만 전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현재 동대문구의 경우에는 종교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 초등학교, 부녀회 등이 가로수의 주인이 되어 일주일에 2번 정도 자신들이 주인으로 임명된 나무에 가서 잡초를 제거하거나 거름을 주는 등의 나무가꾸기운동이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조금은 늦었지만 더욱 구체적인 방법으로 경기도가 앞장서서 이러한 가로수 실명제 캠페인을 펼쳐야한다. 이것이야말로 나라사랑, 가족사랑으로 이어지는 캠페인이 될 것이다. /선우 섭.경희대 체육학부 교수

천자춘추/어린이날 선물

곧 5월이다. 우리는 열두달 중 5월을 가장 아름다운 달로 친다. 그래서 여성들은 아름다운 5월에,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어른들에게는 5월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달력만 쳐다봐도 준비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히 쌓여 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물과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 있고, 부모님의 은혜를 돌이켜보고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려서 감사드려야 하는 어버이날, 아이들의 선생님이나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스승의 날, 등등. 그야말로 갖가지 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고 챙겨야 5월의 행사들을 잘 치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 부모님을 위한 선물, 스승님을 위한 선물 등.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만, 마음의 표현이 또 선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은 어린이날 선물로 휴대폰을 꼽았다는 기사를 얼마전 본 기억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장난감 보다 휴대폰이나 MP3 등을 선호하고 있다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긴 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선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어른들이 차제에 다시 한번 아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 지 고민해 보는 것도 뜻깊을 것 같다.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고 어린이 헌장 첫대목에 적어 되새기게 하고 있으며, 어린이는 생명과 건강, 교육과 운동에 있어 자유롭고 안전할 권리를 가졌으며 그 누구도 어린이들의 이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고 빼앗을 수는 없다고 했다. 깨끗한 자연환경, 질서의식, 올바른 안전문화 등 진정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선사해야 할 가장 좋은 선물들이 아닐까 싶다. 이번 어린이날은 정말 주고 싶은 선물을 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생각해보고 실천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영권.가스안전공사 경기지역본부장

천자춘추/시화호의 제2의 죽음(?)

시화호는 살아 있다. 지난 92년 바다물이 빠져 나간 간석지에 이미 각종 식물이 여기저기에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인간이 망쳐 놓은 갯벌은 자연의 위대한 복원능력을 통해 새롭게 정화되기 시작했으며 풀 한포기라도 살아야 인간도 살수있다는 교훈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 갯벌이 드러나면서 발생한 염분 흙먼지로 인해 시화호 주변지역의 농작물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경험했고 반월·시화공단에서 마구 버린 폐수로 인해 바닷물이 오염돼 각종 조개류가 죽어 거대한 조개무덤을 만들어 놓은 모습도 보았다. 오히려 인간이 파괴한 바다를 자연은 되살리고 있으며 실제로 염생식물인 갈대와 육상식물인 객개비취 군락이 자연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폐수로 인해 홍조·녹조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던 시화호가 바닷물의 유입을 통해 자연 스스로 정화돼 바다는 맑은 모습으로 변했고 일부 지역에는 벌써 바지락이 자라 주민들이 많은 양의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법칙에 의해 정화된 시화호가 제 2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시화호를 둘로 나누고 있는 철탑을 비롯, 남측간석지의 농경지 조성사업 등이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고있다. 생태계 변화는 철새들에게서 알게 되었다. 새는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한다. 새들은 왜 사람이 사는 곳을 배회하며 인간과 가까운 곳을 찾아 살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은 오랜 세월 철새를 관찰하며 지켜본 지 10년이 넘어서야 새들과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삶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고 자연의 좁은 공간에 철새는 물론 동물들과도 똑같이 살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들이 인간 주변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짓는 농작물이 그들의 먹이 이며 인간과 자연이 공유해야하기 때문이다. 시화호에 갯지렁이과 어패류가 살아나자 이들 철새도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철새는 자연환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있다. 지난해 시화호 철탑건설로 인해 철새무리가 반으로 줄었다. 철새 때문에 농사를 다 망친다는 소리까지 많아 지고 한쪽에서 철새들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잡아서는 안된다는 소리등 서로 상반된 목소리 속에 시화호의 생태변화는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최종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천자춘추/본을 팔다니요

“엄마, 이 곳은 너무 춥고 어두워요. 그래도 다시는 몸을 팔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아요.” 이 말은 2002년 2월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사건 당시 희생자 추모시 가운데 한 부분이다. 몸만 팔지 않아도 된다면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괜찮다는 그녀들. 구구절절 사연이야 많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만 발을 들여놓게 되면 기본적으로 지게되는 선불금과 각종 벌금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에 치여 목숨까지 내놓아야했던 그녀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에 ‘윤락행위등 방지법’을 제정하여 분명히 성매매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전국의 요소요소마다 성매매업소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성매매된 여성들은 그 고리를 끊기 위해 포주를 고소하여도 오히려 그들이 처벌받기 보다 성매매된 여성들만이 주로 처벌되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과 같은 족쇄를 차게 된다. 이런 현실을 40여 년 동안이나 방치한 결과 급기야는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화재로 희생당한 그녀들이 있었기에 심각한 인권사각지대인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성매매된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새움터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200명에서 1천명 이상의 대규모 성매매업소 집결지역은 43개 이상이나 분포되어 있고, 200명 이하인 지역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2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최소한 4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성적 인신매매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가정집 근처에까지 스며든 티켓다방, 전화방, 노래방 도우미, 퇴폐이발관 등을 포함하면 수십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성매매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는 31개의 시와 군에 기지촌, 유리방, 방석집 등의 성매매 집결지역이 6곳이나 있는 데다 전국 34개의 미군기지 가운데 65%에 달하는 22개의 미군기지까지 주둔하고 있어서 미군에 의한 각종 범죄는 물론 기지촌의 성매매와 인권침해는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흔히들 성매매를 매춘(賣春)이라고 말한다. 우리말로 보면 분명 봄을 판다는 말이지만 그녀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봄을 팔다니요. 우리는 죽지 못해 강제로 생명과 인권을 팔고 있어요’ 라고. /권은수.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천자춘추/사랑의 미소는 강하다

노자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납득이 잘 안 된다. 이긴다는 낱말 때문에 혼란이 와서 말이다. 강하고 굳세어야 이긴다는 상식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곰곰이 짚어가면 갈수록 비밀이 묘하게 풀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물결이 바다 밑 돌 바위를 갈아낸다. 지붕을 날려버리는 태풍이지만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거미줄은 끊지 못한다. 몰아치는 태풍의 바람결이 거미줄보다 약하단 말인가. 이런 강약의 논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하나. 봄철에 흙 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갓난 아기의 목숨도 갓 돋아나는 새싹이나 다름 없다. 이처럼 목숨의 시작은 몹시 연약하고 한없이 부드럽다. 새싹이나 갓난아기의 생명력은 강인하다. 목숨과 세상을 서로 견주어 볼 때 세상이 굳고 강해 거칠게 목숨을 엄습하지만 생명은 질긴 힘으로 세상을 부딪치며 헤쳐 나가며 산다. 인생을 승패의 저울로 달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을 시시비비의 결판으로 몰아 갈 수도 없다. 더 나아가 선과 악이란 규범만으로 인생을 묶어 버릴 수도 없다. 강철은 강해서 부러지고 돌은 단단해서 쪼개진다. 돌개바람은 온 종일 불수 없고 소나기는 반나절을 견디지 못한다. 인간의 삶 역시 비슷하지 않은가.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 분노의 주먹보다 사랑의 미소가 강하고 굳세다는 말은 겉돌지 모르나 인생의 갖가지 길목에서 그러한 말이 옳다는 사실을 진실로 만나게 된다. 선한 인생이 강한 인생을 비웃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인생을 힘겨루기로 여기는 탓으로 우리는 몹시 아프게 세상을 살아간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뜻보다 무엇을 성취 해야 한다는 욕심이 목을 옹색하게 조여 매는 지경에 이르면 산다는 일이 무섭고 암담해 질 뿐이다. 강하고 굳센 인생보다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는 인생이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목숨의 진실인 것을 모르고 사는 것 아닌가. /정복희.경기도의사회장

천자춘추/눈을 뜨면 아름다운 세상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제일 먼저 자신을 키워주고 교육시킨 애너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녀의 모습을 가슴 깊이 간직해 두겠다고 했다. 그 다음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 어린이, 정신적인 물줄기였던 책들을 보다가 오후가 되면 시원한 숲 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저녁이 되면 황홀한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에 올라 해돋이를 보고, 내려오면서 나뭇잎과 풀잎의 이슬방울, 하늘의 종다리를 보겠다고 했다. 또한 인간 역사와 영혼을 더듬기 위해 박물관, 영화관을 가겠다고 했다. 셋째 날은 도시의 길 한복판에서 길가는 사람들의 표정, 여성들의 옷 색깔을 보고 빈민굴, 공장 등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사는가를 깊이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저녁은 오페라, 코미디를 보겠다고 했다. 눈먼 그는 눈뜬 친구들을 향해 충고를 한다. “당신들의 눈을 쓰되 ‘내가 만일 내일부터 장님이 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보면서 살까?’하는 심정으로 인생을 살아 보십시오…. 이 세계가 당신에게 자연이 주는 접촉의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하여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모든 면에 대하여 영광을 돌리시오.”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나누게 하기 위해 준 신의 선물이다. 열린 귀와 눈,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발을 가지고 소유하는 일, 즐기는 일, 싸우는 일에만 몰두했던 삶을 부끄럽게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친구들과 황급하게 도망치는 봄을 붙들고 동해를 다녀왔다. 설악의 벚꽃 길을 지나다 화르르 떨어지는 눈꽃을 맞으며 멈춰 섰다. 황홀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연두 빛 이파리도 꽃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노을이 드리우는 정동진 앞 바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나눔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잘 생긴 보름달 하나 마중 나와 우리를 품어주었다. 행복했다. 눈을 뜨면 세상은 모두 아름답지 않은가. /장병용 .수원 등불교회 목사

천자춘추/도민 옴부즈만 제도

옴부즈만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일본 가와사키시는 현직 공무원에 의한 리쿠르트 사건 발생을 계기로 행정의 투명성과 시민 참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1990년 옴부즈만 제도를 설치하였다. 옴부즈만은 법률가 2명(그 중 1명은 여성), 대학교수 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문조사원과 사무국, 보조직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와사키시의 옴부즈만은 시민으로부터의 신청에 기초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고충의 대상은 시와 산하기관의 업무집행 및 제도 전반에 관한 사항이 된다. 이에 따라 옴부즈만의 조사와 시민의 반론, 피조사기관의 변론과 시민의 재반론의 과정을 거쳐 문제가 있는 경우 조례에 따라 시정권고를 하게 된다. 가와사키시의 경우 1990년 이후 매년 150건 이상의 고충민원이 시민에 의해 제기되고 있으며 90% 이상 해결되고 있다. 가와사키시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옴부즈만 제도의 도입은 시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정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지적할 수 있으며 이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즉 비대해진 행정과 이로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감시하고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수단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옴부즈만 제도의 도입이 중요한 이유가 비단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옴부즈만 제도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사실 지방자치가 주민의 참여와 관심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주민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지방차원의 문제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시민참여의 통로가 부재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원인이다. 옴부즈만 제도는 시민이 도의 행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시민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의 문제에 대해 시민이 관심을 가지게 하는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신보영(경기도의회 보사환경위 의원)

천자춘추/실상(實像)과 허상(虛像

어렸을 때 서부영화를 즐겨본 기억이 있다. 영화에서는 백인 농부들이 서부의 개척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인디언들이 불시에 이들을 습격한다. 농부들은 마차를 빙 둘러 세우고 힘겹게 이들을 방어하다가 여러 명이 죽어간다. 이를 보는 나는 왜 인디언들은 죄 없는 농부들을 죽이는가 생각하며 괜스레 인디언들이 미워지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는 어디까지나 허상에 불과하고 그 허상 뒤에는 서부개척이 아닌 서부정복의 역사 속에 수많은 인디언들이 배신당하고 학살당하는 실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어린시절 미술시간에 반공 포스터를 그리라고 하면 ‘무찌르자! 괴뢰군!’이라는 표어 밑에 흉측한 눈에 뿔 달린 북한군인을 그렸다. 그리고 왜 공산당들은 이유 없이 양민들을 죽이고 호시탐탐 세계 적화를 위해 남의 나라를 침략만 하는가 하며 공산당을 미워하고, 그 한편으로 우리나라를 공산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 주둔한 미군에 대해 평화의 사도로서 존경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한쪽 면만을 극단화한 일그러진 허상이라는 것을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요즈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서 미국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여러 나라가 반대하고 유엔에서의 승인도 떨어지지 않았건만,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응징할 권리가 있다는 궤변 하에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이 이라크에 융단폭격하는 미사일이나 집속탄, 벙커버스터 등은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란 말인가? 석유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무리들. 자기들의 힘에 대항할 집단이 없어지자 선제공격론을 대놓고 말하는 미국이야말로 제국주의자의 실상을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거칠 것이 없는 이들이 다음의 야욕을 한반도를 향해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천년이다 뉴밀레니엄이다 하면서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가 했으나 세계의 경찰이 세계의 깡패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평화의 시대는 지상에서는 이룩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감에 젖어든다. /양승국(변호사)

천자춘추/잊혀질 예체능 교과목이여!

2000년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가 약 7조 1천억원(GDP의 1.4% 수준)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러한 막대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통령에게 중·고교 예체능 과목의 평가 방식의 전환을 보고하였다. 즉 수·우·미·양·가 식으로 성취도를 매기거나 과목 석차를 내는 대신에 ‘서술형평가’ 또는 과목 이수 통과 여부만을 기록하는 ‘성패(Pass/Fail)평가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교육비는 대학에서 가중치를 부여하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소위 말하는 주요 과목 과외 공부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걱정하는 내신 성적을 위한 예체능 과외의 대부분은 교육열이 가장 높으며 비교적 경제력이 있다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강남의 도련님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초등학생 자녀에 국한시켜서 부족한 전인교육을 보충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피아노, 태권도 교육 등이 예체능 과외의 전부이다. 아마도 초등학생 시기에 자율적인 마음으로 실시하는 예체능 과외가 풍부한 정서 함양과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기초가 된다는 생각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 7차 교육과정에서 실시하게 되어있는 학생에 의한 교과목 선택 등은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의 현실을 고려할 때에 예체능 교육의 기회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예체능 교육환경 속에서 만약에 서술형 또는 성패형 평가방식이 학교 현장에 적용될 경우 부족한 예체능 교사의 업무는 늘어날 것이며, 예체능 교과목은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아 올바른 수업 진행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예체능 과목의 평가방식의 전환은 숲을 보지 못하고 일부분의 나무만을 관찰한 결과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의 보편화로 점차 약화되어 가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생각할 때에 오히려 예체능 교육을 올바르게 강화하는 것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 생각한다. /선우 섭 (경희대교수.스포츠의학)

천자춘추/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앙집중화는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경제적인 부의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인구의 과밀과 그로 인한 주택, 교통, 환경, 교육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권력의 중앙집중은 지방정치를 질식시키고 있다. 지역특색에 맞는 지방정치를 실현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과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중앙정치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지방정치인들이 지방자치선거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각 정당의 지구당 위원장에게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정치인 스스로도 지방정치를 중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지방분권과 관련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방정치인들과 각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지방분권 실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지방분권은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과 지역 실정에 맞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지방분권을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지방 정치인들이 각종 비리와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지방정치인들의 부패와 관련된 각종 문제는 지방자치제도의 무용론마저 갖게 한다. 또한 지방의회의 파행적인 운영 등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앙정치의 좋은 점은 배우지 못하고 못된 점만 배운다는 시민들의 냉소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제한적인 지방자치제도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지방분권으로 인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지방정치인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 지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지방분권 실현은 지방자치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하나 지방자치의 발전은 지방분권 실현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지방정치인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 등의 제도적 장치의 보완과 설치가 필요하다. 지방정치인들은 중앙정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지역의 발전과 지역민의 눈을 바라보며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지역민들도 ‘지역의 발전은 정치인들이 아닌 지역민들이 한다’는 마음으로 나설 때 참다운 지방자치는 이루어 질 것이다. /박길상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사무처장)

천자춘추/꽃 구경가는 계절

꽃 구경가는 계절이다. 텔레비전은 벚꽃을 보러온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관광지의 풍경을 전한다. 팝콘처럼 터져 붙어있는 그 꽃들은 눈송이처럼 날리고 그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을 간직하고 천천히 밀려서 걸어간다. 봄이면 그렇게 사람들은 꽃을 보러 진해로, 쌍계사로 아니면 여의도 윤중로라도 나간다. 서로 손잡고 가는 뒷모습에서 낙진처럼 얹힌 삶의 무거움과 지치고 힘든 마음들을 잠시 뒤로하고 꽃 사이로 마냥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접한다. 그렇게 가볍고 보드라운 꽃잎들에 의해 시름과 상처가 잠시나마 치유된다면 그들은 아무리 붐비고 힘들어도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그 장소에 다시 와서 꽃나무 아래 서있을 것 같다. 그들은 즐거이 웃고 걸으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어쩌면 한 장의 사진에 그 풍경을 담기 위해 그곳까지 온 것 같다. 모든 것은 오로지 사진으로 봉인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인간은 일회적 존재이기에 지나는 시간에 대한 애착과 상실감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지나가 버린 시간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문자와 이미지를 발명했을 것이다. 이제 문자와 이미지가 인간의 기억과 경험을 대신해 살아남아 불멸과 불사를 증거한다. 이미지란 사실 환영(幻影)에 불과하다. 세계의 완벽한 재현으로 비치는 사진조차도 그것은 환영에 다름아니다. 사진이 대상을 재현한다기 보다는 시간을 재현한다. 그 사물, 대상에 얹혀져있는 시간의 기록이 사진이다. 그러나 시간은 화살처럼, 물처럼 흐르기에 사진의 기록이란 것도 그저 찰나적인 한때의 시간을 건져 올려 놓을 뿐이다. 그래서 지난 사진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접촉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장의 사진에 들어와 박힌 대상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다만 한때 존재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은 늘상 미끄러질 뿐이다. 만발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즐거이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꽃에 눈을 주는 건지 아니면 오로지 사진 찍기에만 여념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시간을 유예하고 오로지 한 장의 사진으로 찍혀 박제화 될 장면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이다. 사진기의 셔터에 올려놓은 손을 잠시 내리고 좀더 느리고 게으르게 소요하면서 풍경을 보고 꽃 내음을 맡으면서 자신의 온 몸으로, 몸이 지닌 감각의 밸브를 활짝 열고 지금의 시간을 절실하게 체득하며 그것을 온전히 기억하고자 노력하는게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아닐까./박영택 (미술평론.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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