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납득이 잘 안 된다. 이긴다는 낱말 때문에 혼란이 와서 말이다. 강하고 굳세어야 이긴다는 상식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곰곰이 짚어가면 갈수록 비밀이 묘하게 풀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물결이 바다 밑 돌 바위를 갈아낸다. 지붕을 날려버리는 태풍이지만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거미줄은 끊지 못한다. 몰아치는 태풍의 바람결이 거미줄보다 약하단 말인가. 이런 강약의 논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하나.
봄철에 흙 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갓난 아기의 목숨도 갓 돋아나는 새싹이나 다름 없다. 이처럼 목숨의 시작은 몹시 연약하고 한없이 부드럽다. 새싹이나 갓난아기의 생명력은 강인하다. 목숨과 세상을 서로 견주어 볼 때 세상이 굳고 강해 거칠게 목숨을 엄습하지만 생명은 질긴 힘으로 세상을 부딪치며 헤쳐 나가며 산다.
인생을 승패의 저울로 달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을 시시비비의 결판으로 몰아 갈 수도 없다. 더 나아가 선과 악이란 규범만으로 인생을 묶어 버릴 수도 없다. 강철은 강해서 부러지고 돌은 단단해서 쪼개진다. 돌개바람은 온 종일 불수 없고 소나기는 반나절을 견디지 못한다.
인간의 삶 역시 비슷하지 않은가.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 분노의 주먹보다 사랑의 미소가 강하고 굳세다는 말은 겉돌지 모르나 인생의 갖가지 길목에서 그러한 말이 옳다는 사실을 진실로 만나게 된다. 선한 인생이 강한 인생을 비웃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인생을 힘겨루기로 여기는 탓으로 우리는 몹시 아프게 세상을 살아간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뜻보다 무엇을 성취 해야 한다는 욕심이 목을 옹색하게 조여 매는 지경에 이르면 산다는 일이 무섭고 암담해 질 뿐이다.
강하고 굳센 인생보다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는 인생이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목숨의 진실인 것을 모르고 사는 것 아닌가.
/정복희.경기도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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