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눈을 뜨면 아름다운 세상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제일 먼저 자신을 키워주고 교육시킨 애너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녀의 모습을 가슴 깊이 간직해 두겠다고 했다. 그 다음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 어린이, 정신적인 물줄기였던 책들을 보다가 오후가 되면 시원한 숲 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저녁이 되면 황홀한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에 올라 해돋이를 보고, 내려오면서 나뭇잎과 풀잎의 이슬방울, 하늘의 종다리를 보겠다고 했다. 또한 인간 역사와 영혼을 더듬기 위해 박물관, 영화관을 가겠다고 했다.

셋째 날은 도시의 길 한복판에서 길가는 사람들의 표정, 여성들의 옷 색깔을 보고 빈민굴, 공장 등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사는가를 깊이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저녁은 오페라, 코미디를 보겠다고 했다.

눈먼 그는 눈뜬 친구들을 향해 충고를 한다.

“당신들의 눈을 쓰되 ‘내가 만일 내일부터 장님이 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보면서 살까?’하는 심정으로 인생을 살아 보십시오…. 이 세계가 당신에게 자연이 주는 접촉의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하여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모든 면에 대하여 영광을 돌리시오.”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나누게 하기 위해 준 신의 선물이다. 열린 귀와 눈,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발을 가지고 소유하는 일, 즐기는 일, 싸우는 일에만 몰두했던 삶을 부끄럽게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친구들과 황급하게 도망치는 봄을 붙들고 동해를 다녀왔다. 설악의 벚꽃 길을 지나다 화르르 떨어지는 눈꽃을 맞으며 멈춰 섰다. 황홀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연두 빛 이파리도 꽃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노을이 드리우는 정동진 앞 바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나눔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잘 생긴 보름달 하나 마중 나와 우리를 품어주었다. 행복했다. 눈을 뜨면 세상은 모두 아름답지 않은가.

/장병용 .수원 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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