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호주제가 뭐길래

그녀의 손은 모질고 매웠다. 곁에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어린 딸의 입을 때리고 또 때렸다. 그만하라고 말리기에는 그녀의 분노와 슬픔이 너무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겁에 질려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오며 한숨이 났다. “엄마, 쟤네 엄마 새로 시집 왔어?” 아이가 호기심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엄마도 몰라.” 그러나 왜 모르겠는가. 스물여섯에 홀로 되어 살려고 애를 쓰다 쓰다 선택한 재혼이라는 것을. 남매간에 성이 다른 것을 궁금해 하던 이웃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잡고 꼬치꼬치 그 이유를 물어 봤고 순진한 아이는 곧이 곧대로 말해 급기야는 사단이 난 것이다.

민법상의 호주제는 家를 규정함에 있어 결혼한 여성은 남편호적에 입적하고, 자녀 또한 아버지 호적에 입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한 남성인 호주가 家를 이어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남성우선호주승계제도’를 규정하고 있어, 아들을 낳아서‘대를 이어야’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이는 여아낙태를 조장하여 심각한 성비불균형을 부추기고 있다. 이로 인해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라도 호적을 함께 할 수 없고, 단지 자녀는‘동거인’으로 기록되어 새아버지인 호주와 다른 성씨를 가져야 한다. 이로 인해 성이 다르게 된 자녀나 어머니 성을 따르는 가족은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식되어 이 자녀들은 호주제가 우리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호주제가 존속하는 것이 가족해체를 방지한다고 일부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제는 오히려 가부장적 사고를 부추겨 부부갈등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혼한 가정에 심리적 갈등을 유발시켜 가족해체를 증진시키고 있다. 호주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존재한다. 이와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가 폐지한 일본, 스위스 보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호주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

이제 우리들은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여 평등하고 열린 가족제도를 만들어 더 이상 잘못된 법으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권은수.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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