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에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고 생각하여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1세기가 지나는 동안 한글문화는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 그러나 통신언어와 외국어의 남용으로 우리 말글살이는 혼란의 늪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는 글자생활의 기계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생활화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하고 있지만 수준 낮은 글, 어문 규범을 무너뜨리는 글을 양산해 왔다. 통신언어를 보면 ‘안녕하세요’는 ‘아냐세요, 안냐세요, 안여하세요, 안냐샘’, ‘많이’는 ‘마니’, ‘애인’은 ‘앤’, ‘감사감사’는 ‘ㄱㅅㄱㅅ’, ‘그리고’는 ‘글구’, ‘그럼’은 ‘그름’, ‘여자 친구’는 ‘여친’, ‘남자 친구’는 ‘남친’ 등으로 쓰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자나 외국어, 특수문자를 회화적으로 사용해 네티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어지럽게 쓰이고 있다. 전자우편, 필명, 주소(아이디)도 문제이다. 한글 인터넷 주소나 이름을 만들어 쓸 수 있는데도 로마자나 영어 일색이다. 나쁜 사이트나 통신대화 등으로 사회문제가 일어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살사이트에 오른 유서도 통신언어로 쓰는 세상이 되었다. 언론·출판 분야는 국민의 언어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우리 말글을 다루어야 한다. 출판 분야의 한글 전용은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나, 신문에서는 아직도 ‘Money’, ‘Sports’, ‘Metro’, ‘Health’ 등 로마자나 영어 따위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 영화 이름이나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해피투게더, 리얼코리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주주클럽, 뉴논스톱, 레츠고’ 등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으며 비속어, 신조어, 선정적인 말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낱말과 음운변화 현상까지 일으키는 실정이다. 한글은 빼어난 과학성과 실용성으로 익히기 쉽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파급되고 있으며 한국 최고의 문화 상품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는 나라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 열풍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규제보다는 사회의식 차원에서 바르고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하도록 지도해야 하겠고, 국립국어연구원, 한글학회 등 당국의 꾸준한 교육과 계몽이 정말로 절실한 때이다. 우리 모두 인식하자. 말이 오르면 곧 나라가 오른다는 것을. /정동환.한글학회 인천지회장·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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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4-06-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