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가보(家寶)

국가마다 그 나라의 국민성과 지향성을 대변하는 국보(國寶)들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국보1호인 숭례문을 비롯하여 많은 국보들이 있어 한민족의 자부심을 높여주고 있다. 한편 가정에도 나라의 국보에 해당하는 가보(家寶)가 있다. 가보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한 가문의 보물로서, 족보를 비롯해 각 가정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보들은 공히 조상들의 얼을 잇고 가문의 자긍심과 역사성을 담으며, 후손들에게 삶의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필자는 얼마전 한 극장가를 찾아 ‘트로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 간에 치열했던 전쟁을 소재로 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패망직전에 몰린 트로이 왕가(王家)가 가문의 상징인 검을 한 초동에게 건네며 명맥을 이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필자는 이 대목에서 새삼 가보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뇔 수 있었다. 이처럼 가보는 한 가문의 정통성을 나타내며, 가문에 있어 정신적 신앙으로 자리매김한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짧은 기간내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갑작스런 성장의 뒤안길에는 물질만능주의와 문명지체현상 등의 악습들이 만연케 됐고, 또 민족 고유의 많은 미풍양속들이 사라지게 됐다. 급기야는 이러한 폐단들이 각 가정으로 이어져 높은 이혼율과 비행청소년 증가 등의 문제들을 야기한 결과, 결국 가족에 대한 의미쇠퇴와 함께 가정해체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핵가족화라는 구성틀 속에서 할아버지의 함자조차 모르는 아이들…. 자기자신의 존재의 이유며, 가장 가까운 뿌리라 할 수 있을 할아버지의 함자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는 이런 아이들에게 가문과 조상의 의미가 있을리 없다. 이처럼 가문과 가족에 대한 정체성 상실이 바로 오늘날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사회문제들의 근원적 원인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보를 통하여 가정과 가문의 의미를 되새겨 주며 우리의 뿌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한 가문의 역사인 가보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젊은 시절 군복무를 필한 직후, 부친으로부터 가문의 역사책인 족보에 대해 상세히 배운 적이 있다.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정신적 신호등이 돼주고 있다. 우리 모두 곰곰이 집안의 가보를 살펴보며, 자녀교육의 중요한 잣대로서 활용하면 어떨까? 기본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

/윤여갑.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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