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나간 짓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荷衣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다. 지형이 연꽃이 만개한 형태와 같다하여 ‘연꽃 하’자와 음양설에 의거하여 낮고 평탄하므로 여성을 뜻하는 ‘옷 의’자를 합하여 하의도라 부른다. 조선후기부터 구한말까지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한 하의3도(하의, 상태, 하태)농민들의 민중항쟁운동 ‘하의삼도 소작 쟁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5천㎡부지에 30억원을 들여 ‘하의토지역사기념관’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토지역사관, 항쟁기념관, 농경문화관 등이 들어선다. 또 초암 김련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덕봉강당(德鳳講堂)정비 사업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김 대통령이 유년시절 한학을 배웠다는 덕봉강당은 6억원을 들여 2천여권의 고서 등을 전시할 도서전시관과 담장을 새로 짓고 강당을 보수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9월 복원된 후광리 김 대통령의 생가도 있는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신안군이 “2002년까지 국비 50억원, 지방비 50억원 총 100억원을 들여 하의도의 김 대통령 생가 주변에 노벨평화공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발표했었다. 신안군 출신인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니 하의도에 노벨평화공원을 조성할만 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부의 극치’‘정신나간 짓’‘미친 짓 따로 없다’고 혀를 찼다. 다행히 지난 18일 김 대통령이 ‘하의도 노벨평화공원’조성계획을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김 대통령은 당대에 평화공원을 만드는 일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욕되게 할뻔한 이와 비슷한 방정맞은 일이 또 생겨서는 안된다. 참 어지럽고 아슬아슬한 세상이다. /淸河

간(肝)의 날

내장의 하나인 간장이 인체에 중요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간(肝)은 담즙의 분비, 양분의 저장장소로서 탄수화물을 글리코겐(당원질)으로 만들고, 요소(尿素)의 생성·해독 작용 등의 기능을 가졌다. 이러한 간에 이상이 생기면 간장농양, 간장디스토마병, 간장암, 간장염, 간질병, 간경변증, 간경풍 등 병이 생겨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간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독성이나 질병을 막는 방패(干)라는 뜻이다. 위장이나 창자는 적출(摘出)후에도 10여일동안 살 수 있는데 간장은 적출 후 12시간을 살기 힘들다. 그만큼 간은 중요한 내장이다. ‘간에 기별도 아니 갔다’‘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간 빼 먹고 등쳐먹다’‘간에 바람들다’‘간에 불붙었다’‘간에 차지 않다’‘간이 뒤집혔나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간이 오그라 들다’‘간이 콩알만 하다’ 등 간에 관한 말들은 간이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내장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최근 한창 일해야 할 40·50대 남성들의 높은 사망률의 가장 큰 원인이 간경변 등 간질환으로 밝혀 졌다. 우리나라는 10명중 1명이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라고 하는데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에 생긴 염증이다. 원인은 크게 바이러스, 약물 등 독성물질, 선천성 대사장애 등 3가지인데 이중 바이러스간염 특히 B형간염의 주범은 음주와 과로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간염 바이러스 간염자수는 전세계적으로 무려 5억2천만명이라고 하는데 오늘 10월20일은 한국 등 간질환이 많은 세계 30여개국을 중심으로 올해 처음 제정한 ‘세계 간의 날’이다. 별(別) 날(日)도 다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과로·스트레스를 좀 피하고 음주를 안했으면 좋겠는데 세상사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게 심히 유감스럽다.

노벨문학상

과거에 우리나라가 노벨상에 가장 희망을 걸었던 분야는 사실상 문학상이었다. 문학상은 어느 정도 지역 및 문화권에 따른 안배 형식을 취해 왔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 서울 국제펜클럽대회를 계기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매년 공식적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를 추천해 왔다. 후보자로 추천한 문인 중에는 서정주 시인이 5회 추천으로 최다 추천기록을 갖고 있으며 구상(具常)시인이 2회, 소설가 한말숙, 최인훈, 작고한 김동리씨 등이 추천을 받았다. 김영일(김지하) 시인은 1970년대 일본펜클럽의 추천을 받았고, 소설가 박경리, 이문열씨 등도 다른 단체의 추천을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세계문단, 특히 노벨상 문학권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스웨덴 아카데미의 심사위원들이 수많은 언어로 구성된 세계문학의 다양성을 모두 수용한 가운데 보편성있는 심사를 할 수 있느냐가 가장 문제점이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자체 노벨도서관에 20여만권의 현대문학작품을 수집해 수상자 선정의 기초자료로 삼고 있는데 스웨덴어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문학은 조병화시인 등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이며 그나마 비서구문학으로 분류돼 인도네시아 등과 더불어 한쪽 구석을 외로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1994년)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한국문인은 후보추천에만 그친게 고작이었다. 일본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국력이 뒷받침되고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었다. 현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가답게 우리나라도 이제는 출판·번역·홍보 등을 국가차원에서 적극 지원하여 문학분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국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건교부의 ‘난개발’

“선산인 야산을 팔고(수용당하고) 어디다 선산을 또 마련합니까…. 청정(자연)의 고향땅이 회색빛(콘크리트)에 도배되는 것도 싫고요.” 동탄지구(화성군)의 신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한 주민의 말이다. 물론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결국 도시화 될바엔 지금 착수돼 목돈마련을 하는게 좋겠어요.” 신도시건설에 대한 어느 주민의 기대다. 이같은 주민의 엇갈린 반응은 판교(성남시)쪽 사정 역시 비슷하다. 건교부의 동탄·판교지구 신도시건설계획에 성남시같은데서는 찬성쪽으로 기운 반면, 경기도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김대중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건교부는 ‘대통령의 지시는 신중을 기하란 뜻’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 신도시건설에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가 인구집중을 들어 도내 공장건설은 규제하면서 유입인구 유발을 부채질하는 신도시건설을 우기는 것은 시책의 모순이다. 무턱댄 신도시건설은 이미 심각한 환경 및 교통재앙으로 등장, 고질화 된지 오래다. 난개발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일반 주택업자가 짓는 아파트등은 난개발이고 정부가 하는 주택이나 택지사업은 난개발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대규모의 환경 및 교통공해를 유발하는 신도시건설은 업자의 난개발보다 더 무서운 난개발이다. 도내에는 이미 지은 아파트도 팔리지 않아 적체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다. 건설경기의 부양은 사회간접자본의 적정집행으로 이루어야 한다. 주택난해소와 경기부양을 이유로 들어 추진하려는 건교부의 신도시건설은 당치 않다. 국토는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좀 남은 땅을 당장 마구 파헤치기 보단 후대의 자산으로 물려줄줄 아는 먼 안목이 요구된다. /白山

YS(속편)

“고려대 특강 무산은 불순한 배후세력의 조종에 의한 것으로 이는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합작품이다. 김정일이 조용히 하라면 학교도 조용하고 데모하지 말라면 안하지 않나.” “총장과 함성득교수가 약속했으니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오는 금요일 특강을 다시 하기로 한데 대해) 이번에는 옷도 두껍게 입고 (소변용) 깡통도 가져가야 겠다” “아주 잘 된다. (민주산악회재건) 민주산악회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안되고 지금도 전두환씨가 독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YS)이 고대특강 무산이후 어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밖에 통일문제등도 비꼬아 언급했다. 이날 시종일관 계속된 DJ와 현정부에 대한 비난이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점이 다분했다. YS는 임기 종말을 IMF대통령으로 끝낸데 대해 굉장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DJ 정부가 이를 부각시킨다고 여겨 더욱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듯 싶다. 변명할 말도 많아 특강같은 기회를 자주 갖고 싶어 한다. 또 어떻게 보면 대통령을 지낸 절대권력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인상이 짙다. 하지만 역사의 무대는 주연을 두번 다시 허용하지 않는 점이 연극의 무대와 다르다. 전직 대통령이니까 말을 험하게 마구해도 된다는 생각보다는 말을 다듬어 아낄줄 아는 것이 더 예우를 받는다.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 것은 YS가 대통령 재임중에 한말이다. 요즘 그의 언행을 보면 그 자신이 ‘독불장군’이 돼가는 것 같다. ‘세상을 두렵게 생각할줄 모르면 장부도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白山

YS 특강 ‘불발’

김대중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자 결정이 노르웨이 한림원에서 공식발표된 지난 6일 오후 6시, 같은 시각에 김영삼전대통령(YS)은 고려대 정문앞에 있었다. 이날 특강을 하러 고려대에 들어가려다 반대하는 학생들의 정문출입 제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정문앞에 세워둔 승용차안에서 농성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농성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전경이 동원됐고 일단 특강을 듣고나 보자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당신한테 들을 말은 없다’고 쓰인 피켓을 내건 반대학생들이 워낙 많아 정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시상(세상)에 이런 학교가 어디 있노? 교수들이 초청했으면 그만이제…무신(무슨) 학생들이….” 승용차안에서 버티고 앉았던 YS는 차밖으로 나와 혀를 차며 이런말로 불편한 심기를 노출 시켰다. 학생들의 저지는 보는이의 관점에 따라 시비가 다를수는 있다. 하지만 YS는 초청은 비록 교수들이 했어도 청중은 학생들이란 사실을 간과했다. 청중이 될 대부분의 학생들이 듣기 싫다는데 굳이 특강을 해야겠다는 것은 무모한 아집이다. YS는 이렇게 승용차안 버티기를 밤늦도록 자그마치 12시간 이상이나 벌였다. 어지간한 고집이다. 체면불구한 1인시위의 고집에서 치기가 발견되는 것은 국민의 불행이다. 국가원로다운 좀더 달관된 면모를 보여주면 좋겠다. 반대학생들의 움직임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다. YS의 고집도 문제지만 전직 대통령의 체모를 손상케 한데는 미리 대처를 못한 학교측의 잘못이다. /白山

경기도 쌀

“경기도 농민들의 정성을 가득 담았습니다. 신토불이, 맛있고 촉촉한 경기쌀, 믿고 선택해주세요.” 임창열 경기도지사가 경기쌀 홍보를 위해 텔레비전 광고 모델로 출연해서 하는 말이다. 화성군 비봉면 삼화리 들녘에서 작업복 차림의 임지사가 볏단과 소포장 쌀을 들고 ‘경기쌀’을 자랑하는 이 광고는 15일부터 여성·홈쇼핑 등 4개 케이블 방송과 서울 강남지역 유선방송에 하루 20회씩 3개월동안 방영될 예정이라는데 물론 무료로 출연했다. 임지사의 홍보가 아니더라도 경기미(京畿米)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 여러 농서(農書)에는 ‘자채(自蔡)벼’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조선 영조 때의 농정가 서유구(1764∼1845)가 저술한 ‘행포지’에는 ‘여주 이천에서 생산한 쌀이 좋다’는 구절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조선 성종이 세종의 능에 성묘하고 환궁할 때 이천쌀로 지은 밥을 진상받았는데 맛이 매우 좋아 그 뒤부터 이천쌀이 진상미로 올라가게 됐다. 그런데 최근 건국대 김광호 교수팀이 이천쌀의 우수성을 연구,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이천쌀은 알칼리에서 잘 붕괴되어 소화흡수 및 취사시 뜸드는 정도가 양호하고 밥의 찰기를 떨어뜨리는 아밀로오스 함량(17.2∼19.7%)이 낮아 양질미 허용범위 내의 이화학적 특성을 보여 밥맛이 좋다는 것이다. 이천을 비롯 여주, 안성, 평택 등 경기도 땅에서 생산되는 쌀은 신기하게도 모두 고품질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천쌀의 경우 1만314㏊의 논에서 연간 5만4천여t이 생산된다고 한다. 밥알이 희다 못해 푸르른 기가 돌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이천쌀은 전국 쌀 생산량의 1%가량에 불과한데 가짜 이천쌀이 나돌 정도로 밥맛이 좋다. 경기도 농민들의 정성과 땀방울이 가득 담겼기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폭우와 태풍이 지나갔는데도 황금벌판을 이룬 들녘의 경기미는 벼이삭만 봐도 배부르다. /淸河

북파공작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발설이 어려웠던 ‘북파(北派)공작원’은 6·25 직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초창기 공작원들은 이북출신이 77%를 차지해 월남 피란민 위주로 편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金成浩·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3일 북파공작원 양성 파견부대였던 HID(첩보부대)소속 북파공작원 가운데 1953년부터 19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기∼3기 366명의 명단을 최초로 입수, 공개하면서 알려진 북파공작원의 실체는 분단의 비애를 다시금 아프게 느끼게 한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때 까지 북파됐다가 사망·실종·체포된 공작원이 7천726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전쟁중엔 군인신분으로, 휴전 이후에는 계급과 군번도 없는 민간인 신분으로 북파됐다. 정부는 북파공작원의 존재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함구하고 있었지만 1971년 서해안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다 부대를 집단 탈출, 서울진입을 시도하며 군·경과 교전했던 사건 등으로 인해 공공연한 비밀이 된 바 있다. 북쪽에서 사망·실종된 공작원의 유가족들은 수십년간 연락이 안돼 애태우다 이들을 행방불명자나 사망자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극히 일부 가족들만 공작원 본인으로 부터 북파 전 북파사실을 전해 듣거나, 살아 돌아온 동료 공작원으로 부터 귀동냥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남한에 있던 비전향 장기수 63명 중 46명이 남파공작원들이었음을 상기할 때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인식은 달라져야 한다. 지난달 2일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은 지금 영웅대우를 받고 있지 아니한가. 이제 유가족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또 북쪽에 아직 북파공작원 중 일부가 생존해 있다면 북측과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에 상응하는 귀환협상을 당연히 벌여야 한다. ‘남파간첩’과 대칭되는 북파공작원도 남북화해시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대사이다. /淸河

국민투표

직접민주정치제도의 하나인 국민투표는 국가의 중대한 사항을 결정할 때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물어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한다. 국민투표의 유형으로는 국민거부, 조정적 국민투표, 국민표결, 국민발안, 상의적 국민투표, 의회해산국민투표, 국민소환, 신임투표(또는 인민투표) 등이 있다. 국민투표를 기능면에서 일별하면 첫째 정치권력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둘째, 의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 또는 실망을 국민투표로 보완할 수 있다. 셋째, 정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패하거나 국회의원이 타락하여 민의를 배반하였을 때에 국민투표는 이러한 점을 보완한다. 넷째, 국회의원의 희망사항과 국민의 희망사항이 다를 경우에 이를 해결하는 기능을 한다. 다섯째, 국가기관 상호간의 충돌해결기능을 한다. 여섯째, 국민적 불만을 최종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안전판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역기능적인 측면도 많다. 집권자의 권력을 강화하고 대의민주제의 여러가지 기능을 자유롭게 발휘하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의회의 존재를 약화시키고 또 그 책임을 감소시킨다. 단순히 선전과 선동에 의해 결정될 우려가 있으며 실질적으로 대중과 거리가 먼 소수입법자에 의해 조작되기 쉽다. 특히 ‘예(○)’, ‘아니오(×)’식의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진정한 여론이 반영되기 어렵다. 대중의 법률이해력이 전제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중이 부화뇌동하기 쉽다. 지난 9일 김대중 대통령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남북문제와 관련해 “어쩌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을 두고 요즘 해석이 구구하다. 김대통령은 중차대한 남북문제에 대하여 그렇게 운(云)만 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설명을 해야 한다. 국민투표는 만만하게 생각할 일이 결코 아니다. /淸河

王建

‘고려사후비전’에 기록된 태조 왕건의 아내는 28명이나 된다. 신혜왕후 柳씨(貞州사람 부호 柳天弓의 딸), 장화왕후 吳씨(羅州사람 吳多憐의 딸) 등 두 정실을 비롯, 전국 각지출신의 여성을 부실로 두었다. 어느 왕조의 군왕보다 많은 정실(왕후)과 부실(부인)을 둔 것은 창업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략혼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신혜왕후 柳씨는 왕건이 잠룡시절에 궁예의 폭정을 보다 못한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이 쿠데타를 주장했으나 남편이 주저하자 “仁으로 不仁을 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갑옷을 가져다가 입혀 역성혁명을 일으키게 한 사람이다. 그러나 왕건에 이어 吳왕후의 아들 武가 제2대왕 혜종이 되고 이어 제3대 정종과 제4대 광종이 왕후반열이 못되는 劉씨부인(충주사람)의 소생인 것으로 미루어 柳씨에게는 아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吳씨왕후와 왕건의 만남은 드라마틱하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이 궁예밑에 있으면서 나주를 공략할적에 용이 날아와 뱃속으로 들어온 꿈을 꾸고 또 왕건은 빨래터의 吳낭자에게 오색서기가 서린 것을 신기하게 여겨 동침하게 됐다. 하지만 그 무렵 왕건은 정주의 柳낭자와 혼인은 안했으나 이미 인연을 맺었던 터여서 체외사정을 시도했지만 吳낭자가 재빨리 수습하여 임신한 것이 지용을 겸비한 武로 부왕사후 자리를 계승하게 됐다. 후일 자신의 아들인 武를 태자로 삼을때 당시 조정의 실력자였던 박술희를 회유했던 것을 보면 여장부의 기질을 타고났던 것 같다. K-1TV 주말 대하사극 ‘왕건’ 드라마에서 왕건이 금성(나주)공략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吳낭자가 나주지방 호족의 딸로 벌써 송악(개성)으로 왕건을 찾아가 이미 만나기까지 했다. 기록과 다른 것이 픽션인지 아니면 史實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白山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것을 가끔 본다. 몇가지 예를 들겠다. 남의 부부를 존대해 일컫는 말로 양주(兩主)란 말이 있다. “그래! 양주분(부모님)께서도 잘 계시고…”하는 인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 있다. 잘쓰지 않는 말이라 그런다고 치자. 부인이란 말도 잘못 쓰여 심지어는 자기 아내를 가리켜 ‘부인’이라고 말한다. 남의 아내의 높임말이 부인이다. 텔레비전 토크쇼같은데 나온 사람이 “우리 부인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가관스런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기 일쑤다. 발음을 잘못 표현하면 어휘가 달라지는 말이 있다. 감사(監査)와 감사(感謝), 간부(幹部)와 간부(姦夫) 등으로 이밖에도 많다. 감독하고 조사하는 감사는 짧게, 고마움의 감사는 약간 길게 발음한다. 텔레비전 뉴스진행자마저 짧게 발음해야 할 주요직책자의 ‘간부회의’ 간부를 길게 발음하는 ‘간부(姦夫)회의’로 표현, 간통한 사내들 회의로 둔갑시킨다. 물론 잘못 발음한 것으로 알고 새겨 듣곤 하지만 언어공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파미디어의 이같은 무책임은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겐 맞는 것으로 오인시켜 그대로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말은 어휘가 풍부하다. 그만큼 의의와 정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곧잘 구사하면서 우리말엔 잘못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말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노력을 갖는 것은 나라사랑이다. <고침>어제 본란 ‘한글날’ 제하의 본문가운데 3일을 9일로 바로잡습니다. /白山

한글날

우리나라 법률은 2천개가 넘는다. 시행령등까지 합친 법령은 3천여개다. 이가운데 가장 짧은 법률이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다. 1948년 10월 9일 법률 제6호로 공포된 이 법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부칙, 이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는 단 세마디가 전문이다. 짧은 법률로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들수 있으나 전문3조로 된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관련 법률보다 훨씬 더 짧은 것이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인 것이다. 공문서의 한글전용이 이루어진 것은 제3공화국시대인 1960년대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50년대는 법률이 정한대로 필요에 따라 한자를 병용했던 과도기 기간이었다. 그러나 해석에 의미가 다를수 있는 일부 분야의 전문용어는 뜻을 분명하게 하기위해 아직도 한자를 더러 병용하는 수가 없지 않다.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쳐 표기하는 연구가 더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조선조 세종 28년(1446년) 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리는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서문 끝의 ‘정통 11년 9월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 10월 3일이다. 공문서의 한글전용시대는 종이문서가 이제 전자문서화하고 있다. 컴퓨터를 통한 전자결재의 법적근거마련을 위한 ‘전자정부구현을 위한 법률(가칭)안’이 입법예고 됐다. 한문문화권에 속하여 한문을 전적으로 배제할수는 없으나 일상생활 용어는 한글표기만으로 가능한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일본만 해도 자기네들 글만으로는 상용어를 다 표기하기엔 불편이 많아 한문을 병용하고 있다. 표음문자중에서도 가장 과학적이면서 아름다운 한글에 컴퓨터시대 들어 더욱 긍지를 갖는다. /백산

한글

“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고 섭섭 무료하기 가이없어 하노라. 너도 우리를 생각하느냐. 이 병풍은 오늘 보내마 하였던 것이라. 마침 아주 만든 것이 있으매 보내니 치고 놓아라. 날 춥기 심하니 몸 잘 조리하여 기운이 충실하면 장래 자주 들어올 것이니 밥에 나물것 하여 잘 먹어라.” 조선조 제18대 임금 현종(顯宗·1641∼1674)이 셋째딸 명안(明安)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간 딸의 안부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눈물겹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1월5일까지 열리는 ‘겨레의 글, 한글’전(展)을 보면 현종과 왕비인 명성(明聖)황후, 명안공주 사이에 오간 3통의 한글편지(보물1220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일가의 한글편지 등 130여점이 전시돼 있어 양반계급이 언문(諺文)이라 천시했다는 그동안의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통념상 서민사회의 문화유산으로 알려진 한글을 조선시대에 뿌리 내리는데 큰 역할을 해온 계층이 서민보다는 왕실과 양반이었음을 보여준다. 한글의 소중함이 더욱 돋보이는 ‘겨레의 글, 한글’전이 열리는 때를 맞춰 여야 국회의원 30여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문자창제는 국가 건립일과 같은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한글은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이자 민족문화의 요체인 만큼 국경일로 승격시켜 민족문화를 개화시키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 제안 이유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자는데 만일 이론이 있다면 애석한 노릇이다. 한글이 우리나라의 글자이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창제년도와 창제자를 알고 있는 문자가 세계적으로 한글밖에 없음을 모른다면 아마 반대할 것이다. /淸河

북한문화재

북한 지역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유적을 비롯해 동부여, 동예, 예맥, 옥조, 고구려, 고려 시대의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으며 출토된 유물들은 각 지역 박물관과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진열, 전시돼 있다. 북한은 1946년 이후 고구려 벽화고분 40여기를 발굴해 20여기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지금까지 많은 보고서를 냈는데 이 보고서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 지역에는 국보급 50건, 보물급 53건, 고적 73건, 명승지 17건, 천연기념물 45건, 천연기념물 지리부문 60건 등 299건과 중요유적 266건이 있다. 북한은 또 1946년 부터 문화유산 보호에 대해 법적 뒷받침으로 철저히 대비했고 문화유산 정책도 1945년 8월15일부터 1999년까지 6단계로 나눠 공산주의 역사발전단계에 맞도록 강화해왔다. 그 예로 제4기에 해당하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민족문화유산을 사회주의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다는 취지아래 3천200여 개의 유적과 11만9천여 점의 유물을 재평가하기도 했다. 북한의 전문학자들은 이 운동 기간 중 철저한 사상교육도 끝냈다. 이러한 자료들은 남한의 전문학자들이 직접 입수한 것이 아니라 제3국을 통해 어렵게 입수한 것이어서 더욱 활발해진 최근의 정확한 현황은 잘 모른다. 그 당시 남한은 고도 경제성장의 분위기 속에 전국에 산재한 유적 발굴과 보존관리의 초보적 단계를 겨우 벗어났을 때 였다. 전문기관은 1개, 박물관도 5개에 불과했다. 지금 남한은 6·15 남북정상 회담 이후 남북 교류에 각 분야가 잔뜩 들떠 있으나 역사적 문화유산의 교류와 합동연구 문제는 이상하게도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북한이 갑자기 문화유산 교류를 제의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걱정이 된다. 최소한 북한 지역에 어떠한 역사유적과 유물들이 있는지는 현황을 파악해 둬야 한다. 남한은 북한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해 불안하다. /淸河

노벨상 0순위?

스톡홀름 발(發)로 공식 발표된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자 중 한 사람인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고 있다는데 정치권의 반응은 코미디적(的)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한결같이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도 않는다”고 한다. 남북문제, 경제상황, 의약분업사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노벨상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매우 고약하다.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 총재라는 신분을 떠나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쩌면 노벨평화상을 타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얼 그렇게 잘한다고 국정수행 운운하면서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인가. 시쳇말로 웃기는 얘기다. “김대통령이 수상만 한다면 오죽 좋겠습니까”이렇게 터놓고 말해도 흉볼 사람 아무도 없다. 반면에 야당은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축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한때 몇몇 야당 인사가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 못하도록 하겠다는 참으로 희한한 로비(?) 얘기를 꺼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축하는 하겠다는 게 아닌가. 야당의 어떤 인사는 “그렇지 않아도 독선적인 김대통령이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된다면 정국운영에 있어서 더욱 야당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했다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적인 평화상을 받았는데 국내에서 평화적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지난 2일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부의장이 총재단 회의에서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김대통령이 ‘노벨상 0 순위’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한국식 로비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고 말해 또 화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의 취중호언이나 돌출발언이라는 것이 원래 ‘터트려 놓고 보자, 나 ‘사실이 아니면 말고’식이지만 정말 수상한다면 국가적 대경사이다. 13일 오후 6시의 외신이 기다려진다. /淸河

弘益人間

오늘은 단군의 고조선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이다. 이에 대한 단군 관련서적은 불행히도 1910년 조선총독부 데라우치 초대총독이 국내 고사서(古史書) 51종 20여만권을 약탈, 소실하면서 없어졌다. 민족혼을 말살키 위한 만행이었다. 이때문에 삼국유사등 일부 자료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군 관련 사서는 오히려 일본이 더 많다. 최기철 서울대명예교수는 “일본 궁내청 황실도서관에 단군조선 관련서적이 많이 쌓여 있다”며 공개되지 못한 것을 심히 안타까워 하고 있다. 북한은 단군 유해(뼈) 발견을 주장, 단군릉을 만든 이후부터는 단군신화를 고대사적 의미로 재평가하고 있다. 단군연대도 우리가 BC 2333년으로 잡는데 비해 662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2995년으로 산출한다. 북측의 이같은 단군숭배는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었던 점을 들어 자기네들이 민족의 정체성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남한에서는 단군관련의 연구도 빈곤하지만 일부 종교단체에 의해 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마저 훼손되는 실정이다. (수원지법은 근래 단군상을 훼손한 모교역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단군은 우상도 종교도 아니다.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민족에선 어디서든 찾아 볼수 있는 건국신화다. 단군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다.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을 지닌 홍익인간은 민족애, 나아가 인류애로 집약된다. 인간애, 즉 박애정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교육법은 교육의 목적을 ‘홍익인간 이념 아래…’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겨레의 건국이념은 이처럼 홍익인간의 따뜻한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개천절을 맞아 우리는 지금 과연 얼마나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사는가 저마다 자신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白山

‘올림픽 美’의 경연

‘올림픽 美’의 경연 새천년의 첫 인류의 잔치, 시드니올림픽대회 성화가 열전 17일만인 어제 밤 화려한 폐회식과 함께 석별의 정을 나누며 꺼졌다. 올림픽의 다양한 변화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에로티시즘이다. 남자선수에게보단 여자선수에게 더 찾아볼 수 있다. 육상에서 여자선수들이 목걸이 귀고리 팔찌를 끼는 것은 기본이 됐다. 헤어스타일 또한 갖가지로 신경을 쓴다. 서울올림픽의 히로인이었던 미국의 여자 100m 금메달리스트 조이너가 화장을 선보인 뒤로는 화장 역시 점점 짙어졌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수복 차림이다. 육상뿐만이 아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단체경기는 여체의 율동미를 최대한 과시한다. 리듬체조 역시 형형색색의 타이트한 옷차림이 시각에 따라서는 선정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텔레비전 중계방송의 느린 동작 영상은 인종을 초월, 늘씬한 여자선수들의 건각미를 한층 더 육감적으로 전한다. 이래서인지 이라크같은 나라에서는 올림픽중계방송의 음란물 검토설이 있었다. 검토로 끝났는지 방송을 중단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음란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관점이 이상하다. 에로티시즘과 음란은 다르다. 인간의 체력한계, 인간의 기교한계에 무한히 도전하는 것이 올림픽정신이다. 인간의 체력 및 기교한계에 대한 도전과 함께 기왕이면 미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적 올림픽 추세로 돼간다. 처절한 승부의 현장에서 아울러 펼치는 미의 경연은 진솔한 인간적 면모라 할 수 있다. 2004년 아테네에서는 ‘올림픽 미’의 경연이 더 짙어질 것이다. 역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므로. 고대올림픽을 가졌던 로마인들은 미(美)는 곧 선(善)이라고 믿었다. /白山

캐디

골프 선수는 혼자 골프장에 나가는 법은 없다. 골프는 팀 경기로 간주되지 않지만, 골프 선수들은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캐디’들에게 많은 것을 의존한다. 프로골프 선수들의 투어를 따라다니는 캐디들은 단순히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선수들이 복잡한 게임을 이해하게 해주고, 즉석 심리 상담자의 역할도 한다. 캐디는 18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의 골퍼들은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일과 공이 어디 떨어졌는지 찾아내는 일을 하인들에게 맡겼다. 물론 지금은 파트너의 개념이다. 전형적인 임무는 선수의 시중을 드는 것이지만 캐디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수가 가능한 한 편하게 경기를 하면서 오로지 샷에 대해서만 신경을 쓸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남자 캐디도 있지만 한국 골프장의 경우는 여성 캐디가 대부분이다. 유성CC 캐디들이 1990년 2월 노조설립을 놓고 법정까지 가는 투쟁을 벌였을 때 ‘캐디는 근로자로 볼수 없다’고 판결한 법원도 있지만 현재 캐디노조가 설립된 곳은 10여 골프장에 이른다. 캐디들이 노조를 설립하려는 이유는 첫째 고용안정이고 둘째는 산업재해 보장을 받기 위해서이다. 정식직원이 아닌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언제 그만둬야 될지 모르는 해고불안에서 벗어나고 일하는 과정에서 입는 산업재해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골퍼가 친 볼에 얼굴을 맞아 크게 부상을 입었는가 하면 골프장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한 사실이 있다. “캐디들은 회사로부터 어떠한 명목의 임금이나 자신들의 수입에 대하여 세금도 내지 않는다”는 게 골프장측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캐디가 골퍼는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일용직도 분명히 근로자이다. /淸河

대통령 성적표

영국 격언 중 “왕이 길을 잃고 헤매면 백성들이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대통령을 왕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통치권 차원에서 생각하면 상황이 전혀 다르지도 않을 것 같다. 미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라이딩스 매키비 대통령 여론조사팀’이 미국과 캐나다의 미국사 전공 교수와 역사학자 등 전문가 719명을 포함,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의 역사학자들을 통해 조사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41명의 종합성적표인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을 발표했는데 다른나라 얘기지만 수긍이 간다. 이 성적표는 지도력, 정치력, 인사, 업적 및 위기관리 능력, 성격 및 도덕성 등 5개 과목에 걸쳐 점수를 매겼는데 종합순위 1.2.3.4.5위는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이고, 어린 시절 친구들을 요직에 등용함으로써 친구들이 부패사건으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게 한 워런 하딩은 맨 꼴찌인 41위, 카사노바형인 존 케네디는 15위, 빌 클린턴은 38위를 차지했다. ‘위대한, 정말로 위대한 대통령’, ‘절대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끔찍한 대통령’, ‘있으나마나한 대통령’, ‘오하이오 갱단 두목’등으로도 논평된 백악관 주인 41명에 대한 분석조사서를 보면 한국 대통령들의 흔적이 저절로 비교된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현재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은 이러한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잘한 일도 별로 없는데 너무 말이 많다. ‘내 탓이오’는 없고 전부 ‘네 탓이오’이다. 차라리 잠자코 있으면 중간은 된다고 했다. 과거의 대통령의 언행은 정치적보다는 인간적이어야 하고, 봉사적이어야 한다. 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모르는 것 같은 전직 대통령들이 안타깝다. 한국 대통령들의 성적표는 이미 다 나와 있다. /淸河

고양막걸리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요청해 지난 6월과 7,8월 등 세차례에 걸쳐 60말 분량이 평양에 공급됐다는 고양막걸리를 요즘 ‘통일막걸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양막걸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명에 타계한 날인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도 청와대 주방에 석되가 준비됐을 만큼 전통막걸리 고유의 맛을 그대로 담고 있어 박 전대통령이 애용했다고 전한다. 지난 6월 28일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평양으로 가던 날, 현대는 소떼 외에 고양막걸리를 포함한 남한술 220여종을 현대택배 수송차량에 실은 후 동해안에 있던 금강호를 통해 북한 함흥에 보냈다. 지난 해 10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위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를 꺼내며 새마을운동 당시 박 대통령이 ‘남조선 인민’들과 함께 즐겨 마시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김위원장은 220여종의 남한술 중 12종의 막걸리를 마셔보고서 각각 맛에 대한 품평을 했다는데 그때 고양막걸리에 대해 “담박한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7월말 남북장관회담 때도 서울특산물인 월매주와 함께 고양막걸리 20말이 비행기로 평양에 공수됐다고 한다. 고양막걸리를 마셔보지 못해 그 맛은 알수 없지만 좋은 술임에는 분명한 모양이다. 그러나 김정일위원장의 말 한 마디에 남한 술을 220여종이나 갖다 바치고 하교(?)를 기다린 우리측 모습을 상상하면 사신이 조공을 바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 입맛 역시 쓰다. 북한 술 220여종이 진상된다면 일일이 맛볼 사람은 남한의 누구인가. 북한은 그렇게까지는 안할 것 같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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