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사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 어디로 갔나, / 밥상을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 넙치지지미 맴싸한 냄새가 코를 맴싸하게 하는데 / 어디로 갔나, /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 되돌아온다 ./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 ‘ 꽃 ’의 시인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詩 ‘ 강우(降雨 )’의 일부분이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사부곡(思婦曲)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팔순을 맞은 김춘수 시인은 최근 19번째 시집 ‘ 거울속의 천사 ’를 펴냈는데 수록작품 89편 거의가 아내를 생각하는 순애보들이다. 김춘수 시인은 “ 어릴 때 호주 선교사가 경영하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 천사 ’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말은 낯설고 신선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릴케의 ‘ 천사 ’를 읽게 됐다. 릴케의 천사는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그런 천사였다. 역시 낯설고 신선했다. 나는 지금 세번째의 ‘ 천사 ’를 맞고 있다. 아내는 내 곁을 떠나자 천사가 되었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는 낯설고 신선하다. 아내는 지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아내는 그런 천사다 ”라고 말한다. ‘ 대치동의 여름 ’이라는 시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 내 귀에 들린다. 아직은 / 오지 말라는 소리, 언젠가 네가 새삼 / 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 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 / 우리가 이승에서 / 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 / 그것, / 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 / 부용꽃으로 볼그스럼 피어날 때까지, // 하루 해가 너무 길다. ” 55년을 해로한 부부가 죽음으로 서로 갈라져 살 때 얼마나 긴 하루가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지난해말 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이 우리의 전래 정서, 한(恨)을 승화시켜 구원에 이르렀다면 김춘수 시인은 릴케의 순수서정과 실존철학·현상학 등 서구 시정신과 지성에서 출발해 끊임없이 사물에 주어진 인간적 의미를 지워가며 사물을 사물 자체로 돌리는 해탈의 세계로 나갔다. 교수·국회의원을 지낸 김춘수 시인의 ‘ 거울속의 천사 ’는 부부들이 함께 읽으면 좋은 망부곡(亡婦曲)이다. 아내를 천사로 생각하는 지순한 사랑이 부부애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淸河

공문서

지금의 공문서 양식이 정착한 것은 1963년 12월 제3공화국 들어서다. 박정희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핵심은 거의가 5·16군사혁명 주체세력이었다. 그러니까 현행 공문서 양식은 군대 공문서 양식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고 이 서구식 양식은 미국, 즉 미군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상부 기관장의 순시에 현황보고 양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작성되는 차트란 것도 이무렵부터 행정기관에서 사용됐다. 이전의 공문서 양식은 일제 행정양식 그대로였다. 종서에 한문투성 이었다. 대한민국 법률 가운데 가장 짧은 법이 1948년 10월9일 법률 제6호로 공포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다.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부칙 이법은 공포한 날로 부터 시행한다”는 본문 52자가 전부다. 이처럼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도 15년동안 한문과 병용돼다가 공문서 양식이 횡서로 바뀌면서 한글전용 시대가 시작됐다. 또 한글이 쓰이면서 어려운 한자말도 쉬운 우리말로 바뀌었다. ‘무슨무슨 일에 관한 건(件)’하던것을 ‘…관한 일’ 또는 ‘앙망’은 ‘바랍니다’등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우리말 풀이가 된 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흠’또는 ‘결점’이라 하면 되는데도 굳이 하자(瑕疵)란 말을 사용한다. ‘하자’는 민법상 용어여서 행정에 그대로 쓰인다 하겠지만 이젠 우리말 풀이를 검토해볼만 하다. 검토대상의 한자용어는 이밖에도 많다. 공문서는 양식도 중요하지만 기재내용의 중복을 피하는 간소화도 연구돼야 한다. 특히 민원서류에는 아직도 쓸데없는 첨부서류가 많고 중복성 기재내용이 많다. 간단하면서 책임이 분명해야 하는데도 복잡하면서 책임은 모호한 공문서 서류가 적잖다. 전자문화의 눈부신 발달은 공문서에 종이를 추방하는 추세가 돼가고 있다. 전자문서의 보편화시대를 앞두고 있다. 조만간에 닥칠 이에 대비하는 연구가 지금부터 있어야 할 것 같다. /白山

부처님 오신 날

석가모니는 네팔 가비라성 정반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출생 칠일만에 어머니 마야를 여의었다. 이모 마하파샤파제의 보살핌 속에 성장하였다. 일곱살에 학예와 무술을 닦기 시작했다. 나중엔 그의 출중한 무술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열여섯에 야수다라와 결혼, 아들 라후를 낳았다. 그러나 신분제도의 회의에서 시작된 생에대한 명상, 진리를 향한 번민이 끝없이 이어져 마침내 출가하고 말았다. 스물아홉의 나이 때다. 부모와 처자와 왕좌를 다 버렸다. 설흔 다섯살이된 여섯해의 고행끝에 성도를 이루었다.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어 사르나트서 첫 설법을 시작한 이후 마흔다섯해 동안 중생을 제도했다. 여든에 쿠시다가라에서 입적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인과응보’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것은 다 필연이지 우연은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필연적 인과응보는 자신의 행위에 의한 업보라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이 우주에서 자신의 선악을 책임질 사람은 곧 자신뿐이라는 뜻이다. (유아독존을 혼자 잘 났다는 말로 보는 것은 세속적인 해석이다) ‘자기 자신을 빛으로 하여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하라, 법을 빛으로 하여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고 했다. ‘이것이 생기므로 해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므로 해서 저것이 멸한다’고도 했다. 자비의 가르침이다. 기독교의 박애, 유교의 인의, 불교의 자비엔 공통점이 없다할 수 없다. 현대인들의 종교관이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남편출세, 자녀대학입학, 가족들의 건강, 이런 것들을 비는 신앙은 종교라기 보다는 무속신앙이다. 석가탄신은 BC 566, BC 463년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한국불교는 BC 544년을 정설로 보고있다. 따라서 오늘은 불기2545년째 음력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한 날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나부터 돌아보고 진실된 자신을 찾아야 한다. 허망한 과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잃고 방황하는 어리석음이 없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白山

김영철

드라마나 영화나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이 있다. 조연이지만 사실상의 주연인 경우가 또있다. 예컨데 첩보영화 숀 코네리의 ‘제임스본드 007’시리즈에선 극중의 본드를 받쳐주는 조연은 그를 둘러싼 미모의 여성들이다. ‘본드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K1TV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궁예(김영철 분)는 왕건(최수종 분)을 받혀주는 조연이지만 114회를 방영하는 동안 사실상의 주연이었다. 김영철의 뛰어난 연기가 최수종의 왕건역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는 5월 20일 120회에서 궁예의 최후를 맞는 김영철은 중후한 연기력으로 브라운관을 리얼하게 가득 채우며 시청자를 압도해 왔다. 삭발한 머리에 핏대를 세우는 폭군역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은 강한 인상을 받았겠지만 실은 마음이 무척 여린 사람이다. 15전년이던가. 전도가 유망했던 여대생 탤런트 박모양이 갑자기 숨졌다. 가수겸업을 선언, 콘서트를 가진 데뷔무대에서 공연을 다 마치자 마자 쓰러져 병원에 옮겼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전에 무슨 주간 드라마에서 그녀와 커플이 되어 연기를 같이했던 김영철은 빈소를 찾아 분향했다. 꽤 오래동안 자리를 지키며 요절한 후배의 명복을 빌었다. 그자리에서다. 고인의 아버지가 김영철더러 “자네…”라며 극중이었으나 사위같은 생각이 든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딸의 죽음이 가슴 아파서이겠지만 실례라면 큰 실례가 될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김영철은 조금도 내색않고 “그러시겠지요…”하면서 극진히 위로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우직한 성격대로 열심히 사는 40대 후반의 그는 얼마전에 경마를 사 마주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인 이문희씨 역시 탤런트 였으나 결혼후 거의 출연을 않고 있다. 걸핏하면 말많은 연예계서 아뭇소리 없이 맡은 일에 충실한 모범가장이다. 강한 이미지를 강하게 남긴 연기자 김영철, 그의 연기변신이 앞으로 또 어떻게 펼쳐보일 것인지 주목된다. /白山

돈 쓰는 예술

淸 河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소년시절엔 몸이 튼튼했기 때문에 장군이 되는 것이 장래의 꿈 이었다.그러나 43세에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후 10여년이 지나서는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다. 큰 부호가 되기까지 록펠러에겐 쉬는 날도 친구도 없었다. 오직 성공과 소유욕에 대한 집념만 있었다. 하지만 차츰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불안과 공포때문에 경호원을 채용했다.더욱 불행한 일은 부호인 록펠러가 병으로 인해 식사로는 비스켓 몇 조각과 물 몇 모금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록펠러는 여러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조언을 들었고 마지막으로 어느 목사를 찾아가 상담하던 중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목사는 “그동안 돈 버느라고 잠 못자고 피곤하며, 숱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졌으니 이제부터 남에게 베풀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 보다 얼마나 가치있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그 목사는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요 돈을 바로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록펠러는 목사의 조언에 생각과 마음이 달라졌다. 보육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대학과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병원도 설립했다. 많은 자선단체를 설립, 봉사하는 동안 섬기며 베푸는 즐거움이 돈 버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록펠러의 삶은 점차 기쁨이 넘치는 생활로 변했다. 5년 혹은 10년 안에 생을 끝낼 것이라는 주치의들의 수명 진단은 사라지고 점점 식욕이 좋아졌다. 잠도 잘 오게 되었으며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 록펠러는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얼마 전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73세의 박일분 할머니가 5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상주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8·15 전 돈 벌러 일본으로 간 남편은 소식이 끊기고 두 아들은 6·25 때 인민군의 폭격으로 죽었다. 날품팔이·노점상·행상 등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학교에도 못 가본 채 저 세상으로 떠난 아들 생각이 나서 장학금으로 맡겼다 ”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따금 듣는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록펠러의 자선사업도 그렇지만 박일분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의 선행은 더욱 아름답다. 그런데 한국의 부호 ·재벌들은 못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제 살길만 찾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불행하고 가난했던 박일분 할머니의 돈 쓰는 만년 예술 작품이 참으로 훌륭하다.

해장국

보통 술국이라고 하는 해장국은 술로 시달린 속을 푸는 국물 음식의 총칭이다.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술 깨는 국이라는 뜻의 성주탕(醒酒湯)이 나오는데 이것이 해장국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되어 있어 얼큰한 오늘날의 해장국과 그 기본이 같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해장국이 나오지 않지만 조선 말기의 풍속화나 문헌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나타난다.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주막도>에는 술국을 먹으러온 한량들의 모습과 해장국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앉자 국자로 국을 뜨고 있는 주모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해장국은 지방에 따라 재료와 끓이는 방법이 달라 제각기 특유한 맛을 내는데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효종갱(曉鍾羹)이라하여, “광주(廣州)성내에서는 이 국을 잘 끓인다. 배추속대·콩나물·송이버섯·표고버섯·쇠갈비·해삼·전복을 초장에 섞어 종일토록 푹 곤다. 밤에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는 재상집에 이른다. 국 항아리가 아직 따뜻하고 해장에 더 없이 좋다”는 해장국에 관련된 풍속이 설명돼 있다. 아마 해장국이 뇌물로도 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해장국은 주로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 해장국은 원래 예전에 주막에서 새벽에 찾아오는 첫 손님에게 끓여주는 음식으로 ‘해정(解酊)국’‘해정탕 ’이라 하여 숙취를 푸는 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해장국을 먹을 때는 거의가 해장술을 마신다. 이는 술을 술로써 다스린다는 우리나라 술 문화의 특이한 점이다. 그러나 이 습관은 오늘날 현대인의 잘못된 술 문화를 만들어 결국 해장술로 인하여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해장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두통과 속쓰림이 가시는 듯 하나 사실은 해장술이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잠시 숙취의 고통을 덜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마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한번 마신 술이 완전히 체내에서 소실되려면 마신술의 양에도 관계가 있지만 최소한 2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때문에 간밤에 음주한 사람이 해장국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것은 권장할 일이 못된다. 술 없이 해장국과 밥을 먹어야하는 것이다. 해장술은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길이 되며 전날 밤 술로 손상된 위점막을 더욱 손상시켜 위염과 소화성 궤양, 식도염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해장술을 마신다. ‘ 음주가 만성자살 ’임을 잊고 살아가는 탓이다. /淸河

유권자 우롱죄

알면서도 속아준 셈이 되었지만 1998년 6월4일 지방선거에서 각종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던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유권자를 우롱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점점 불쾌해 진다. 선거 당시 터진 봇물처럼 쏟아놓은 각종 공약이 임기말이 다가오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꼬리를 감추고 있는 모습도 괘씸해 진다.이는 물론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경기도의 경우 지방선거 당시 도내 기초단체장들이 내세운 공약은 총 1천8건으로 이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도본청 1년 예산의 무려 7배가 되는 30조7천200여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대부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쳐가고 있다. S시 K시장은 실직자들을 위해 50억원의 ‘실직자지원기금’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었다. 하지만 시장취임 후 3년이 지나도록 한푼의 기금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K시장의 이같은 실직자기금조성사업은 정부의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사항이지만 당시 법적 검토가 부족한 가운데 ‘뜬구름 잡기식’으로 내세워진 탓이다. 결국 이 사업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으로 판정돼 지난해 무시됐다. 인천광역시장은 송도매립지에 민간이 주도하는 미디어밸리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으나 계약이 실패로 돌아가자 시가 주도하는 지식정보화 산업단지로 변경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딱하기도 하다. 공약 미이행 사례는 외화내빈형, 용두사미형, 수수방관형 등 가지각색이다. 타시도의 경우지만 고건 서울시장은 충치예방을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1998년 가진 공청회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하자 무기한 보류했다. 유종근 전북도지사는 1995년 군산시 폐염전에 자동차경주대회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지난달 백지화했다. 이러한 공약미이행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산확보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공약사업을 무리하게 추진, 지방재정의 파탄을 초래하는 등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상당수의 자치단체장들이 내년 선거에 대비해 선심성 사업을 또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차기 지방선거에서는 사전에 후보의 공약에 대해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되겠다. 아니면 ‘유권자 우롱죄 ’라도 제정해 후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냥 한번 해보는 말이 아니다. /淸河

단소리, 쓴소리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세자 하려하자 황희는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부당하다’고 적극 주청,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태종은 마침내 황희를 귀양보냈다. 폐세자를 반대하는 것은 새로 세자가 되어 다음 왕이 될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어서 당장 귀양가는것은 차치하고 후일의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황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태종은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책봉한 뒤에 비로소 황희의 귀양을 풀어 조정에 사사토록 했다. 황희는 태종밑에서 18년을 봉직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 충녕대군(세종)이 왕위에 오르고도 황희는 세종밑에서 27년을 일했다. 영의정만 해도 18년을 지냈다. 세종은 황희가 일찍이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반대한 것은 원칙을 논한것 이어서 마땅하다고 보아 조금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세종재위 31년동안에 조선조 초기의 황금시대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세종같은 현군에 황희같은 충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조 중기의 명신 정철은 자신에 대한 정적의 탄핵내용이 (모함이 아닌)허물을 지적한 것이면 솔직히 시인하는 용기를 가진 거유였다. 한번은 측근이 흥분하는 것을 보고 “아니야, 그사람(정적)과 술잔이라도 나누고 싶구먼!”하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원칙과 소신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선인들의 이같은 얘기는 원칙과 소신보다 권력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일깨워 주는 의미가 크다. 단소리엔 귀를 솔깃이 기울이고 쓴소리에는 애써 귀를 막는 권력자들은 더욱더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단소리라고 다 단것이 아니고 쓴소리라 하여 다 쓴것이 아닌데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대로 단소리에 귀가 솔깃한 것은 인지상정이긴 하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벼슬하는 이들은 범부와 달라야 한다. 왜냐하면 쓴소리속엔 약이 되는 말이 있어도 단소리엔 약이 되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또 아첨꾼은 단소린 할줄 알아도 쓴소린 할줄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주변은 이래서 예나 지금이나 몸 가짐이 어렵다. /白山

대학문화

서울대 입학생 가운데 기초학력 미달로 수학이 어려운 학생이 상당수나 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 입시에서 낙방한 학생들이 미국의 하버드대, 예일대, 영국의 옥스퍼드대 등 외국의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번 대입수능시험이 판별력이 의심될만큼 지나치게 쉬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도대체가 잘못된 국내 대학입시제가 근원적 화근인 것 같다. 서울대 합격생의 기초학력 미달이나 외국명문대 합격생의 서울대 낙방사례는 입시제도에 허점이 없고서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역대 정권마다 수없이 주물럭거려 온 것이 대학입시제도인데도 개선은 커녕 갈수록 개악이 되지않나 싶다. 실력있는 학생이 좋은 대학에서 떨어지고 실력없는 학생이 좋은대학에 붙을 정도의 엉터리는 일찍이 없었던 현상인 것이다. 정부는 또 많은 것을 뜯어 고쳤지만 부작용없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래저래 수험생들만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있으니 교육의 권위가 제대로 설수없는 지경이 됐다. 외국의 명문대는 다 지방대학인데 비해 국내 명문대는 서울에만 쏠려 지방대는 상대적으로 취업마저 어려운 것도 크게 생각해볼 일이다. 하버드대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인구 50만 미만의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365년의 역사를 지녔다. 예일대는 코네티컷주 롱아일랜드만 항구도시인 뉴헤이븐시에 있으며 300년이 된 대학이다. 옥스퍼드대는 런던 서북쪽 96㎞지점 댐즈강 상류의 전원도시에 있으며 12세기에 창설됐다. 서구의 명문대학은 전통도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다 사립인것이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국립대학을 우월시하는 경향은 대학문화가 서구보다 일천한 동양에서만 볼수 있는 현상이다. 국내 대학문화도 이제 서울을 능가하는 지방명문대학이 나오는 쪽으로 육성돼야 할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재단의 인식이 건전하고 구조가 튼튼해야 한다. 지방대 재단에 아직은 그만한 재단이 별로 없는데다가 정부의 대학입시제마저 혼선을 걷고있어 대학문화의 장래가 걱정된다. /연합

人道

도로변 상가가 인도를 어느정도 차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도 침범하지 않으면 더욱 좋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인도를 겁없이 잠식하는 돌출 점포가 적잖다. 인도의 상당부분에 가시설물을 하여 아예 상가화하는 심한 경우도 볼수가 있다. 점포 앞 인도를 점포마당처럼 쓰는 것도 눈에 띈다. 행인많은 길바닥에 광고간판 자재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간판을 만들기도 하고 차량을 인도에 세워놓고 정비하기도 한다. 어떤 오토바이 업소는 인도에 상품진열을 한것으로도 모자라 역시 길바닥에서 중고품 정비를 일삼고 있다. 이같은 도로무단 점용은 법규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법에 앞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터인데도 대개는 그렇지가 않다. 길가는 사람이 이리저리 비껴가도 조금도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행인으로 인해 작업에 지장을 받으면 “잘보고 다니라”며 나무란다. 인도가 이처럼 도로변 점포의 작업장화나 상가화 한지는 오래다. 얼마전 일이다. 교통정리에 나선 대한노인회 봉사대원과 어느 점포에서 일하는 사람과 시비가 있었다. 행인들이 길가는데 지장을 받으니 차량손질을 좀 안으로 옮겨서 하라는 것이 봉사대원의 말이었다. 그러나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것이 점포에서 일하는 젊은이의 반박이었다. 기초질서 문란은 물론 한두가지가 아니다. 윗분들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도시 질서관념이 희박한 사회가 됐다. 이런 가운데 인도의 무질서는 또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는 행인이 마음놓고 다니는 길이다. 이러한 인도에 행인에게 불안을 주는 괴물이 더러 불쑥불쑥 나타날 때가 있다. 난데없는 차량이 인도로 들어서는 것을 볼수가 있다. 태연히 주차해 두기도 한다. 이바람에 인도블럭이 견디다 못해 깨지면서 움퍽움퍽 꺼져 드러간다.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인도가 얌체같은 차량족들에 의해 망가져 가는데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을 탓하기 앞서 시민의식의 빈곤을 먼저 탓할 일이긴 하다. 그렇긴 하나, 당국은 또 뭣들하는지 모르겠다. 인도의 무질서하나 추방하지 못하면서 다른 무엇인들 제대로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白山

유권자 우롱죄

1998년 6·4일 지방선거에서 각종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던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유권자를 우롱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거 당시 터진 봇물처럼 쏟아놓은 각종 공약이 임기말이 다가오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꼬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이는 물론 전국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경기도의 경우 지방선거 당시 도내 기초단체장들이 내세운 공약은 총 1천8건으로 이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도본청 1년 예산의 무려 7배가 되는 30조7천200여원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대부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쳐가고 있다. Stl K시장은 실직자들을 위해 50억원의 ‘실직자지원기금’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시장취임 후 3년이 지나도록 한푼의 기금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K시장의 이같은 실직자기금조성사업은 정부의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사항이지만 당시 법적 검토가 부족한 가운데 ‘뜬구름 잡기식’으로 내세워진 탓이다. 결국 이 사업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으로 판정돼 지난해 무시됐다. 인천광역시장은 송도매립지에 민간이 주도하는 미디어밸리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으나 계약이 실패로 돌아가자 시가 주도하는 지식정보화 산업단지로 변경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공약 미이행 사례는 외화내빈형, 용두사미형, 수수방관형 등 가지각색이다. 고건 서울시장이 충치예방을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으나 1998년 가진 공청회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하자 무기한 보류했는가하면 유종근 전북도지사는 1995년 군산시 폐염전에 자동차경주대회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지난달 백지화했다. 이러한 공약미이행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산확보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공약사업을 무리하게 추진, 지방재정의 파탄을 초래하는 등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상당수의 자치단체장들이 내년 선거에 대비해 선심성 사업을 또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차기 지방선거에서는 사전에 후보의 공약에 대해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되겠다. 아니면 ‘유권자 우롱죄 ’라도 제정해 후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엄벌에 처해야겠다. /淸河

노욕

세칭 정치9단이라는 김대중(DJ)대통령, 김영삼(YS)전 대통령, 김종필(JP)자민련 명예총재는 복을 타고났는지 70대인데도 모두 50대처럼 건강하다. 76세의 DJ는 현재 뚜렷한 질병이 없다고 한다.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관철을 위해 단식투쟁을 한 후 잠시 입원한 것을 빼고는 지금까지 몸이 아파 병원신세를 져본 적이 없다. 또 소문난 대식가다. 생선회와 해조류를 특히 좋아하지만 육류도 잘 먹는다. 가루 음식도 좋아해 한때는 라면광이었다. 원래 애연가 였으나 20여년 전 담배를 끊었고 주량은 와인 2잔, 소주로는 서너잔 정도다. 고관절염 때문에 제대로 운동을 할 수가 없어 맨손체조가 고작인데 지금은 매일 오후 청와대 수영장에서 20∼30분씩 수영을 하면서 피로를 푼다. 74세의 YS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을 빌릴 수 없다 ’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1983년 단식투쟁 직후와 지난 해 일본에서 전립선 수술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청와대로 입성할 때까지 상도동 뒷산인 ‘야호산’에서 아침 조깅을 통해 건강을 다졌다. 주량은 한때 말술, 담배도 하루 2 ∼ 3갑 피웠다고 하는데 유신을 계기로 술과 담배를 끊었다. 소식주의자로 알려진 YS는 아침은 국 한그릇과 과일 몇 조각, 차 한잔으로 족하며 점심, 저녁도 과식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머리탕, 갈치구이 등 생선류를 특히 좋아한다. 75세의 JP는 국무총리 시절인 1970년대 초 와사풍에 걸린 병력을 갖고 있지만 현재는 젊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태양인 체질이어서 인삼이나 녹용이 맞지 않아 보약 한첩 복용한 적이 없다. 상선여수(上善如水)라는 좌우명이 건강에 도움이 주는 것 같다. 전자 오르간으로 흘러간 노래를 연주하고 집에서 그림을 즐겨 그린다. 5·16 직후부터 40년 동안 친 소문난 골프광이다. 1980년 5·17을 계기로 금연한 JP는 한때 두주불사형이었지만 지금은 와인이나 민속주로 반주만 한다.아침 식사는 거의 하지 않지만 점심이나 저녁은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다. 돈을 잃으면 약간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한다. 사람이 특히 노년기를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노욕은 노년을 추하게 만든다. 노욕이 과하면 돈도, 명예도 건강도 모두 잃는 불행을 자초한다. 노욕은 곧 노망이다. DJ, YC, JP는 제발 노욕을 부리지 말기를 바란다. /淸河

좋은 아버지

우리나라엔 아직 생소하지만 외국은 ‘아버지의 날 ’을 국가의 중요한 기념일로 정한 곳이 많다. 미국의 아버지의 날은 1909년 워싱턴 스포케인의 소노라 S 보도 부인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어머니가 타계한 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다섯 자녀를 키운 아버지 헨리 J 스마트의 깊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아버지의 생일 6월19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면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교회와 YMCA 등을 중심으로 지켜졌던 아버지의 날은 워싱턴 스포케인에서 첫번째 아버지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것을 계기로 1926년 뉴욕에서 아버지의 날 위원회가 결성됐다. 이어 1956년에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돼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는 빨간 장미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흰 장미를 바치는 풍습이 생겼다. 미국 이외에도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가 20여개국에 이른다. 호주에서는 9월 6일이 아버지의 날인데 특별히 행사를 갖기보다는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든지 한가지씩을 하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3월 19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자녀들이 케이크나 음식 등을 준비해 아버지와 함께 즐기면서 넥타이나 열쇠고리 등 작지만 마음의 선물을 드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5월1일이 아버지의 날 이지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좋아모) ’이 1992년부터 5월1일을 ‘아버지의 날 ’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가져왔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의 날은 대접을 받는 날이지만 ‘좋아모 ’의 아버지의 날은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더욱 노력하고 다짐하는 날이다. ‘좋아모 ’는 그동안의 활동 경험을 통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12가지로 간추렸다. < 함께 여행하는 아버지가 되자. 칭찬해 주는 아버지가 되자.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자. 함께 서점에 가보자. 자녀의 학교에 가보자. 가족에게 편지를 써보자. 부모님의 고향을 함께 찾아보자. 일주일 중 하루는 가족의 날로 정하자. 아버지는 자녀가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는데 조력자임을 명심하자. 아버지도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주자. 교통신호를 지키는 아버지가 되자. 약속을 지키는 아버지가 되자.>인데 이른바‘ 좋은 아빠 되기 12戒 ’다. 요즘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버지 노릇 하기가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두가지 정도만 실천해도 아마 좋은 아버지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엊그제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 코리아를 세계 만방에 빛낸 남자 이봉주가 지난 2월 별세한 “ 아버지의 이름으로 달렸다 ”는 말이 참 멋 있고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희망을 준다. /淸河

외국 대통령들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가 1989년12월 민중혁명에 의해 철권통치의 종말을 고해 처형됐다. 부쿠레슈티 시민공원 한 귀퉁이에 있는 그의 무덤은 잡초만이 우거져 생전의 영화가 덧없음을 말해 준다. 차우셰스쿠를 군사재판에 넘겨 전격적으로 사형시킨 현 대통령 일리에스쿠는 차우셰스쿠 밑에서 이념담당 책임자로 일했다. 또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된 전유고 대통령 밀로셰비치는 자신이 먹은 밥그릇을 씻고 감방청소도 직접하는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 재임시엔 최고급의 아바나 시가를 즐겼던 그가 지금은 최하급의 드리나 담배를 피울수 밖에 없어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며칠전 어느 신문외신은 유고국민들은 술자리에서 밀로셰비치의 전락을 소재로 하는 농담을 즐기며 그를 조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은행에 270만달러를 은닉한 것으로 알려진 밀로셰비치는 망명을 시도했으나 좌절됐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독재와 부정축재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하야, 사법처리가 진행중인 가운데 새로 대통령이 된 와히드 마저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재정추문에 휘말려 의회가 탄핵을 서둘고 있다. 메가와티 부통령은 대통령직 승계를 공공연하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민중시위 끝에 하야한 조셉 에스트라다 전필리핀 대통령은 부패혐의로 수감 중이다. 엊그제 특별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에스트라다 또한 대통령 재임당시의 권위는 간곳없고 파렴치범으로 전락했다. 근래 있었던 외국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가 이런 가운데 돋보인 대통령도 있다. 남아공 대통령 타보 음배키는 최근 13%의 연봉(69만9천랜드·1억1천만원)인상을 거부했다. 공공부문 노조가 요구한 7.3% 임금인상안을 4%로 깎아내린 음배키는 자신의 봉급을 동결하는 것으로 고통분담의 시범을 보인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은 권력의 정상이다. 정상에서 지탄의 대상이 돼 땅에 추락하는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계속 존경을 받는 대통령도 있다. 주목할 현상은 추락한 대통령도 처음에는 잘했다는 사실이다.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 초심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白山

자위대 파견설

일본 자위대는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를 통틀어 27만2천여명 이지만 언제든 100만명을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편제에 보병연대는 보통과연대, 포병은 특과, 장교는 간부로 표현하는 등 군대냄새가 나는 ‘병’또는 ‘장교’란 말을 피하고 있지만 자위대가 군대란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군사비로 최신 첨단무기에 의한 무장을 갖추고 있으며 가상적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 한국순을 꼽고있다. 1954년 창설이후 해마다 연평균 10% 이상의 군사비를 증강,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일본의 총리후보 가메이 시즈카 정조회장과 아소 다로 경제재정 담당상이 자위대 한반도 파견을 말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이들의 말은 “주한미군을 비롯, 세계 어디든 동맹관계인 미군이 무력공격을 받을 때…”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하나 외국(한반도)에 군대를 파견 하겠다는 것은 2차대전이후 일본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토인비의 말이 생각난다. 지난 20세기초 한반도는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각축장이 된 가운데 로(러시아)·일전쟁, 청(중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의 도발로 일어난 두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비로소 중국과 러시아 세력을 물리쳐 조선을 병탄할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초인 지금도 한반도 주변 정세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세력의 영향력에 들어있다. 물론 20세기초 상황과는 다르지만 열강이 한반도 주변의 세다툼을 벌이고 있긴 토인비 말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런 판세에서 일본 집권당 총재후보들이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을 거론한 것은 평소에 지닌 그들의 의식을 드러낸다고 보아 그냥 흘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반도 침략을 정당시한 그들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지탄이 쏠렸음에도 이를 불구하고 망발을 서슴지 않은것은 얼마나 오만에 차있는가를 말해준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설마 어쩌랴…하다가는 일본 사람들에게 큰 코 다친다. 내정 간섭이나 다름없는 ‘자위대 한반도 파견설’을 규명, 저들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白山

醉했나…

6·25한국전쟁에서 반격의 전기가 된 1950년 인천상륙 작전은 당초 10월로 예정됐었다. 한달 앞당겨 9월 15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데는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의 항공 시찰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하늘에서 내려다 본 들녁의 벼가 누렇게 다 익어 상륙작전을 앞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퇴각하는 인민군의 보급차단을 위해 수확전에 결행키로 계획을 바꾸었던 것이다. 전쟁에는 언제나 이같은 비화가 있다. 전쟁 당시 미8군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의 외손녀로 육군회관서 열린 ‘위대한 장군 벤 플리트’한국어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에이브리 라이더 미육군소령은 그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며 또다른 비화를 소개했다.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때 서울사수를 독려한 배경에 대해 공포의 폐허 속에서 연명키위해 한 할머니가 길거리에서 물건파는 것을 보고 그 할머니를 위한 심경으로 후퇴하지 않고 싸웠다는 것이다.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미국의회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이다”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맥아더 원수는 1964년, 밴 플리트대장은 1992년에 고인이 됐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 배경엔 북한이 남침, 6·25전쟁을 일으킨데 대해 아직도 재발우려의 불신이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6·25전쟁 직전에도 평양측이 고려호텔에 억류중이던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과 서울에서 붙잡힌 거물 공작원 이주하, 김삼룡의 교환제의를 해오는 등 위장 평화공세가 있었다. 이바람에 전쟁이 일어나는 날밤, 육군 수뇌부는 술파티로 곤드레 만드레 취해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된 송두율교수(독일 뮌스터大)의 한겨레신문 연재 칼럼에서 “이적성이 없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이한동총리의 국회답변이 나와 또한번 들끓게 하고있다. 송교수가 로동당 서열 23위의 정치국후보위원 김철수의 이명동인으로 독일유학생을 북한에 끌어들이는 공작원인 것은 관계 당국이 알고있는 일이다. 북측 거물급 인사가 국내 신문을 통해 활동해도 처벌대상이 안된다니 나라가 어쩌다 이모양이 됐는지 알수 없다. 지금도 대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저들도 평화를 말하긴 한다. 이맘만은 못해도 6·25전에도 비슷했으니까. 권좌에 앉아있는 이들이 무엇에 홀려 취하지 않았나 걱정된다. /白山

극일(克日)

해마다 두어차례씩 우리 사회를 열병처럼 뒤덮는 반일 감정이 일본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다시 일어났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혈서를 쓰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일본상표 불매운동까지 강행키로 했다. 하지만 일본측은 어디 실컷 떠들어 보라는 식이어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판국에 ‘자위대 강화’ ‘평화헌법 개정’등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 만화들이 국내에서 출간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니 어처구니 없고 입맛도 쓰다. ‘침묵의 함대’,‘빛과 그림자’,‘정치 9단’등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만화들인데 국내에서도 성인만화 대여순위에서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침묵의 함대’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잠수함 함장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나약한 일본에 반발해 ‘야마토’라는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줄거리다. 즉 일본이 강한 군사력을 갖춰야만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을 할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빛과 그림자’는 두 젊은이가 일본의 나태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각각 야쿠자 조직과 정치계로 뛰어들어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 역시 일본이 나약한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평화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세계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군과 독일군을 영웅적으로 그린 ‘늑대의 포성’, ‘도로위의 괴물’,‘장갑척단 병’등도 청소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군국주의 부활 야망을 버리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이런 만화가 어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에게 최대의 피해를 당한 한국인, 그것도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것은 만화라고 하여도 불안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른다는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지만,그렇지 않다. ‘극일(克日)’은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다. “ 우리나라와 일본이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겨요 ? ”라는 어린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가 “ 지금은 일본을 이길 수 없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 ”고 대답한 어느 동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극일의 희망인 청소년으로 성장한 어린 아들이 일본 찬양 만화에 빠져 있다면 일본을 어떻게 언제 이기겠는가. /淸河

대통령 성적

정치학자들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성적을 대개 이렇게 평가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국정을 운영했다. 집권 말기인 1978년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긴 했지만 대체로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량위주의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물가상승률이 20∼30%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발전을 위한 기반조성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9대 국회의 경우 정부제출 법률안은 478건이었고 이중 460건이 가결돼 96%의 통과율을 보였다. 부결된 법률안은 하나도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취임해 경제발전과 물가안정을 약속했고 집권 3년만에 12.2%라는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과 임기 내내 5% 안팎의 물가안정을 이뤘다. 정치발전 풍토조성 면은 낙제점이다. 임기 중 국회의 정부제출 법률안은 모두 455건으로 이 중 413건이 가결돼 90.8%의 높은 통과율을 보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경제발전보다 물가안정을 강조했으나 물가는 한때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는 등 안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소득분배 구조는 개선됐다. 정치발전 풍토는 전환점을 얻었다. 13대 국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제출 법률안 중 부결된 법률안이 나왔다. 정부 제출 법률안은 86.3%의 통과율로 이전보다 낮아졌다. 북방외교는 성공적이었다. 수교국가가 130개국에서 165개국으로 증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약속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개혁은 약속한 대로 어느 정도 실효를 거뒀다. 지방자치제도의 전면적 실시는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넓혔다.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현금통화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아 ‘돈 적게 드는 선거의 실시’가 이뤄졌다. 1998년 2월25일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 오늘은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 ”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용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열명 가까이 나댈만큼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벌써 후반기에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일들이 과연 이행될 수 있을는지 아슬아슬하다. /淸河

극일(克日)

해마다 두어차례씩 우리 사회를 열병처럼 뒤덮는 반일 감정이 일본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다시 일어났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혈서를 쓰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일본상표 불매운동까지 강행키로 했다. 하지만 일본측은 어디 실컷 떠들어 보라는 식이어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판국에 ‘자위대 강화’ ‘평화헌법 개정’등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 만화들이 국내에서 출간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니 어처구니 없고 입맛도 쓰다. ‘침묵의 함대’,‘빛과 그림자’,‘정치 9단’등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만화들인데 국내에서도 성인만화 대여순위에서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침묵의 함대’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잠수함 함장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나약한 일본에 반발해 ‘야마토’라는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줄거리다. 즉 일본이 강한 군사력을 갖춰야만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을 할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빛과 그림자’는 두 젊은이가 일본의 나태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각각 야쿠자 조직과 정치계로 뛰어들어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 역시 일본이 나약한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평화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세계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군과 독일군을 영웅적으로 그린 ‘늑대의 포성’, ‘도로위의 괴물’,‘장갑척단 병’등도 청소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군국주의 부활 야망을 버리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이런 만화가 어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에게 최대의 피해를 당한 한국인, 그것도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것은 만화라고 하여도 불안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른다는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지만,그렇지 않다. ‘극일(克日)’은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다. “ 우리나라와 일본이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겨요 ? ”라는 어린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가 “ 지금은 일본을 이길 수 없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 ”고 대답한 어느 동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극일의 희망인 청소년으로 성장한 어린 아들이 일본 찬양 만화에 빠져 있다면 일본을 어떻게 언제 이기겠는가. /淸河

외교

외교는 명분과 실리의 싸움이다. 이를 어떻게 조화하여 상대의 체면을 살리면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느냐에 초점이 모아진다. 미·중간의 정찰기·전투기충돌 사건의 외교분쟁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유감을 표명했으나 중국이 이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명분이 닿지 않는데 있다. 남의나라 영공에 들어와서 충돌을 일으켰으면 사과까지는 안해도 최소한 부시의 입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측 생각이다. 그러나 부시는 취임이후 자국중심의 세계질서를 부르짖는 마당에 사과나 미안을 표명하는 것은 강대국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란 생각을 갖고 있다. 이때문에 정찰기 승무원부터 빨리 송환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에 중국은 너희들이 정 그러면 배상요구까지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있다. 실추된 전투기와 실종된 조종사등의 처리비를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초 영공침범을 부인하던 미국은 이젠 문제의 전투기 조종사는 전에도 근접비행을 일삼았다며 충돌책임을 중국측에 돌리려 하고 있다. 제3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잘 알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자존심을 건 일대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객관적으로 보아 미국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건 안했건간에 중국에 접근한 것은 첩보활동중 이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첩보활동은 어느 나라나 다 하는 것이지만 드러나면 발목을 잡히게 마련이다. 미·중국의 이 외교분쟁은 결국 서로가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적정선에서 타결될 것으로 믿고 또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타산지석의 교훈이 있다. 좋은게 좋다는 식의 양보외교는 외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반도 주변의 4강외교에 우리는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외교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 정부는 그래도 무슨 할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외교엔 가상이 있을수 없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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