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도덕성

청와대 청소원이 어떻게 기능직 8급이나 되는가 하는 의문이 풀렸다.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돼 4억원의 금품을 받은 청와대 이모과장(36)은 ‘과장이 아닌 청소원(기능직8급)으로 권력실세가 아니다’라고 한 청와대 발표를 세간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청와대라 해도 그렇지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사람이 명색이 공무원 신분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이 ‘이씨는 기능직 위생원으로 청와대내 비서실장 공관에서 비서역할의 일을 보았다’는 어제 조선일보 보도로 어느 정도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정부부처가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 직보하는 팩스문서도 그의 손을 거쳐 전달됐다는 것이다. ‘과장’이라고 한 것은 평소 자기네들끼리의 뻥튀기 직함으로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궁중 내시나 나인들도 궁밖에 나와서는 행세하고 권문세가의 집사나 청지기의 세도 또한 당당했다더니 ‘청와대’의 위세를 가히 알만하다. ‘한양이 무서워 과천서부터 긴다’는 속담이 있지만 ‘청…’자만 나와도 알아서 기는 세태가 두렵다. 오죽했으면 정현준씨같은 사람이 당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상 역시 권력이 보편화, 분산화되지 못하고 권력이 특수화, 편중화된 후진국형 작태인 것이 부끄럽다. 청와대는 ‘과장’이 아니고 ‘기능직 8급’ 직원인 것에 안도해서는 안된다고 보는게 세인의 정서다. 무엇보다도 진솔하지 못한 것은 청와대의 책임이다. 비서실장 공관에서 버젓이 일보는 정규 공무원을 마치 빗자루 들고 쓰레기나 치우는 것처럼 ‘청소원’이라고 발표한 것은 도덕성의 흠집이다. 왜, 그토록 굳이 ‘청소원’이라고 발표해야만 했을까. /白山

미국의 大選

미국의 大選 아메리카합중국(USA) 건국사상 대이변이 일어났다. 1776년 독립전쟁에 승리,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서부개척, 남북전쟁을 거쳐 적극적인 국민성, 풍부한 자연자원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었으며 1945년 전후 자유진영의 지도국이 됐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 붕괴이후에는 세계 질서를 주도하다시피 하고있다. 미국의 이런 자존심을 송두리째 깔아 뭉기는 34대통령선거 이변은 건국 224년만에 처음 맛보는 가장 치욕으로 기록할만 하다. 공화당 부시후보 진영은 적확성을 이유로 들어 플로리다주의 재검표수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내 마침내 법정으로 비화했다. 이에 민주당 고어후보 진영은 “그들이 승리를 믿는다면 수작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맏받아쳤다. 지난 2일 대통령선거를 치룬지 10여일이 되도록 당선자를 내지못하는 미로는 전례가 없었던 혼란이다. 잘해야 오는 17일에나 판가름날 전망이다. 이때문에 백인과 유색인종, 대도시와 소도시, 부유층과 빈곤층의 갈등이 더욱 증폭돼가고 있다. 미국의 언론들은 국론분열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누가 집권하든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 권력 장악에 누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미국의 쇠퇴조짐으로도 보인다. 미국의 대선혼선은 누가 딱 부러지게 잘못했거나 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박빙의 선거판도 역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떤 섭리의 조화다. 새천년들어 발생한 미국대선의 이변은 21세기 이변을 예고하는 것인지 모른다. 장차 언젠가는 세계질서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 지구촌은 20세기 초기와 같은 혼전을 거듭할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白山

서해대교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는 미국 뉴올리언즈 폰차트레인 호수를 가로지르는 코즈웨이 브리지다. 3만8천400m로 1969년에 개통했다. 바다 위에 놓인 다리로는 샌프란시스코만을 가로지르는 총길이 1만3천227m의 ‘베이 브리지’가 가장 길다. 일본에서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대표적 장대교로는 혼슈(本洲)와 시고쿠(四國)를 연결하는 세토(瀨戶)대교가 있다. ‘일본의 자존심’이라 일컬어지는 세토대교는 세토 내해(內海)의 5개 섬을 연결한 것으로 길이가 1만3천100m이다. 상층부에는 4차선의 도로가 나 있고 아래층에는 복선식 철로가 지나는 형태인데 도로-철도 겸용 다리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1985년 현대건설이 완공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는 말레이시아 본토와 천연관광 명소인 페낭섬을 연결한다. 해상구간 교량 길이만 8천500m로 다리 높이가 수면 위 40m여서 마치 물위를 달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10일 개통된 국내최장의 서해대교도 세계적인 다리다. 왕복 6차선, 길이 7천310m로 세계에서 9번째다. 다리 중간에 있는 ‘H’자 모양의 2개의 주탑 높이는 제주도 성산 일출봉과 똑같은 182m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희곡리∼충남 당진군 송악면 복원리를 이어주는 서해대교는 7년간 6천7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완공했다. 안전운전과 추락사고를 막기 위해서 방어벽을 일반적인 높이(80m)보다 훨씬 높은 1.3m로 쌓아 승용차 안에서는 아름다운 주변경관을 잘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움이다. 그래도 주탑부근 1km구간의 방어벽은 80cm 정도여서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서해안 시대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의 다리’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 명물이 될 서해대교가 자랑스럽다. /淸河

10대

10대들의 행동은 변덕스러운 날씨같다고 한다. 그만큼 10대의 시간은 심한 ‘기복’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10대의 기복을 ‘성장’과 ‘관점’이란 요소로 이해해야 한다. 10대의 신진대사는 매우 활발하다. 너무 키가 커서, 너무 뚱뚱해서 고민하는 여학생, 고등학교 1학년인데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 여드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10대들은 모두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부모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10대들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관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낮은 성적, 깨어진 친구관계, 이성의 관심을 받지 못함, 운동신경의 미발달 등이 삶과 죽음의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10대의 상상력은 매우 풍부하다, 공상, 이상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느껴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고 행운, 마술, 미신 등을 믿는 경향이 있다. 또 자기만의 영웅을 가지고 이에 심취한다. 10대들은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이나 성취에 대한 공상을 좋아한다. 10대들의 공상은 높은 야망과 꿈을 품게 만든다. 이들의 상상력은 방향을 제대로 잡을 때 기성세대가 생각해내지 못한 기발하고 참신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상상 중에도 희망과 완전한 것을 찾는 상상은 이상이다. 이상이야 말로 10대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강한 원동력이다. 이상을 품은 10대들, 청소년은 현실이 어렵다해도 현실에 지배받지 않는다. 청소년기는 도전과 회심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부모의 인내이며 대화이다. 15일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그야말로 코앞에 닥쳤다. 10대자녀들을 위한 보살핌이 가장 절실한 요즈음이다. /淸河

독촉장

“귀하가 체납중인 △△대백과사전대금 ○○만원(법정연체이자 ○○만원 포함)을 2000년 ○월 ××일까지 변제하지 않을 시 재산 차압 등 강제집행조치를 취하기로 하였음을 최종 통보합니다.” 2년 전 모 출판사의 출판물을 구입한 뒤 마음에 들지 않아 곧바로 계약해지 통보를 한 어느 시민에게 날아든 서슬퍼런 독촉장 내용이다. 다른 물품대금이나 서비스 이용료도 연체하면 이와 비슷한 독촉장이 우송돼 온다. ‘재산압류 강제집행 예고장’이라는 붉은 고무인이 찍혀 있고 “신용불량자 및 재산관리대상으로 등록돼 금융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경고문까지 곁들여져 있다. 과장된 협박성 문구에다 해당되지도 않는 범법행위를 나열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미납대금을 청구하는 독촉장은 무허가 채권추심업자 및 자사 채권회수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위원회의 채권추심업 허가를 받은 신용정보업자들에 의해서도 발부되고 있다. 이처럼 협박성 독촉장을 남발하는 이유는 법적소양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해 연체대금을 받아내려는 의도때문이다. ‘강제집행통보’ ‘신용거래 불량자 등록 통고서’ ‘최후통고장’ 등 마치 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나 실제 법적 절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물품 구입하고 대금을 납부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연체 좀 했다고 해서 독촉장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현행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6조 ‘신용정보업자 등의 금지사항 제7호’에 채권 추심업무를 행하는데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마음 약한 서민들 놀라게 하는 행각이 가소롭다. /淸河

낙엽

입동이 지나서인지, 가로수 낙엽이 하루가 다르게 쌓여간다. 노랑 단풍잎을 떨어뜨리는 은행나무 가지가 앙상해간 가운데 얼마 남지않은 잎사귀가 안떨어지려 몸부림치는가. 겨울을 불러들이는 늦가을 바람이 낙엽을 더욱 재촉한다. 인간사는 어지러워 의혹이다, 사고다, 퇴출이다 하여 뒤숭숭해도 대자연의 법칙은 한치 어김이 없다. 벌써 밤거리에는 군고구마장수가 등장했다. 다시 다가온 실업대란, 경기불황은 올겨울 또 많은 노점상인을 양산할 것 같다. 참고 참는데도 왜 들리는 것, 보이는 것마다 비위를 뒤틀리게 하는 것들인지. 또 얼마를 견뎌야 한단 말인가. 화려한 말잔치속에 민초들 가슴만 멍들어간다. 서민사회는 못살아도 따뜻한 정이 감도는 조약돌같은 얘기가 많은데 호사스런 권력사회는 왜 구린내 풍기는 추잡한 얘기들뿐인지. 화려한 말잔치속에 민초들 가슴만 멍들어 간다. 그래도 토끼눈망울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세상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긴 하는데 어떻게 되어 살면 살수록이 세태는 더 힘들기만 하는지. 화려한 말잔치속에 민초들 가슴만 멍들어 간다. 요지경속처럼 뭐가 뭔지 도시 종잡을 수 없는 난장판에 양의 탈을 쓴 늑대같은 신 ‘오적’이 있다는데 있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으니 꽃도 지고 꽃이 지면 잎도 지는 것인가.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하는 어느 고시조구절과 마찬가지로 낙엽인들 어찌 잎이 아니겠나. 바람에 흩날리며 길거리를 뒹구는 낙엽이 주는 계절의 정취는 아름답지만 인간사의 낙화나 낙엽은 자연과 달라서 추할 것이니 그것이 걱정된다. /白山

골프부킹

안정남국세청장의 골프부킹 청탁거절 지시는 신선하다. 일선 세무서장등이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받을만큼 시달리는 골프부킹 청탁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이같이 지시했다. 아울러 국세청 직원들의 골프장 출입을 금하고 지방청장급 이상이 부득이 골프를 해야 할 경우엔 미리 승인을 받도록 다짐했다. 서울에 인접, 골프장이 밀집한 기전(畿甸)지역의 입장에서는 각별한 관심이 쏠리는 조치다. 골프부킹 거절지시는 정치권과 정부부처의 청탁사례를 직접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과 중앙 고위공무원들의 도덕적 품성이 얼마나 이완됐는가를 가늠케 한다. 나라와 민생을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사치스런 주말나들이를 위해 세무공무원에게 압력을 행사해온 것은 의식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세무서장들은 이제 그같은 권력형 위인(爲人)들의 부킹청탁이 들어와도 거절할 명분이 세워져 편하게 됐지만 국세청장이 남모른 원성을 듣지 않을까 하여 걱정이다. 잘은 몰라도 정치권과 부처로부터 원망 아닌 원망을 듣지 않겠나 싶지만 이를 각오했을 그의 결단이 돋보인다. 생각하면 어찌 세무공무원 뿐이겠는가. 다른 공조직을 통한 부킹청탁이 또한 횡행할 것으로 보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국가조직의 공권력을 골프치는데 동원하는 정치인, 중앙 고위공무원들의 병폐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다. 의식개혁 대상이 되는 자신은 개혁하지 않고 남에게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학동(學童)들에 ‘바람풍’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바담풍’이라고 하는 잘못된 글방 훈장과 같다. 가치관의 혼돈이 국가사회를 심히 불안하게 한다. /白山

홍역

국어대사전은 홍역을 ‘여과성 병원체에 의하여 일어나는 급성 발진성 전염병’이라고 풀이했다. 처음 3∼4일은 발열 기침 콧물 눈곱이 끼다가 얼굴 목 가슴 몸통 순으로 붉은 발진이 번진다. 이천에서 처음으로 집단발생 소식이 들리더니 도내는 물론이고 전국으로 급속확산 돼 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당국의 무대책이다. 보건복지부는 기껏 ‘홍역에 걸린 아이는 감염시킬 우려가 있으니 등교치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도대체 홍역을 앓는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 보낼수 있다고 보고 하나마나한 그런 지시를 한 것인지 알수 없다. 이번 홍역은 예방접종을 마쳐 마음놓고 있다가 걸린 아이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막상 집단발병이 창궐하고 나서 나온 소리가 2차접종까지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부모들이 많지만 알았던 부모도 일부러 안맞힌 예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아이 어머니는 “백신사고가 하도 잦아 2차접종을 안했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전염병 예방대책과는 거리가 먼 백성들이다. 홍역은 중이염, 폐렴, 뇌염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이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일에 몹시 애먹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때 하는 말로 ‘홍역을 치른다’는 옛말이 있다. 홍역은 평생에 안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예방만 잘하면 면역을 기르는 정도로 가볍게 거치고는 앓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고역을 치르는 아이들을 빤히 보면서 아무 손도 쓰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저 절로 홍역바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白山

메주

요즘은 장(醬)을 만들기 위해 콩을 삶아서 절구에 찧어 메주덩이를 만들어 따뜻한 방 아랫목이나 햇볕이 잘 드는 처마에 매달아 띄울 때다. 곰팡이가 적당히 생기고 좋은 냄새가 나면 이것으로 음력 정월쯤 장을 담그게 된다. 같은 메주라 하더라도 만드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집집마다 서로 장맛이 다르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집에서 장을 담그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집들이 줄어들고 있다. 친정에서, 시댁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가져다 먹는 주부들도 줄어간다. 대부분 사서 먹기 때문이다. 서양 음식에 점차 길들여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빵이나 피자를 두끼 이상 먹으면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랜 세월 장맛에 인이 박혔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고추장에 비빈 밥이나 된장국을 먹으면 속이 개운해진다. 이처럼 우리 음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일컫는 조미료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이러한 장에 대해 “장(醬)은 장(將)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人家)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중략> 가장(家長)은 모름지기 장담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장맛은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장을 담글줄 아는 웃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혼자 장을 담가 먹는 집, 주부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짜고 맵지만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보여주고 다른 집과는 또 다른 맛이 나는 장. 그래서 아직도 시골에서는 된장, 간장을 담그기에 일손이 바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며 처마에 매달아 띄우지는 않았지만 방안에서 풍기는 메주냄새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淸河

茶香

우리가 즐겨 음미하는 차(茶)는 2∼3세기에 이미 있었다고 전해온다. 3세기 경에는 다서(茶書) 도 나왔다. 차 문화의 고전이요 경전으로 유럽에도 잘 알려진 ‘다경(茶經)의 저자 중국의 육우(陸羽)는 8세기 당대의 문인으로서 출생이 전설적이다. 어느날 아침 노승이 기러기 떼지어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물가에 가본즉 그 날개 밑에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육우였다고 한다. 절에서 자란 육우는 뒷날 유명한 서도가 안진경(顔眞卿)을 비롯한 여러 대관들의 보살핌을 받아 차 나무가 많은 산 기슭에 거처를 정하여 은거했다. 유가(儒家) 사상에 심취한 그는 문장에 뜻을 두고 저술에 전념했는데 그의 이름을 오늘까지 빛낸 ‘다경’이 이때 씌어졌다. 육우는 동궁부(東宮府)의 관직에 임명됐으나 취임하지 않고 좋은 차를 찾아 각지를 편력, 왕에게 바치는 공차(貢茶)의 산지로 이름난 호주(湖州)에 거처를 정하였다. 육우는 좋은 차를 찾아 이곳 저곳의 산과 계곡을 돌아 다녔는데 그러한 그를 사람들은 산인(山人)이라고 불렀다. 육우가 지은 ‘다경’에서 이르기를 “차(茶)는 넓은 것에는 마땅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넓은 것’이란 사람 수가 많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차는 혼자 마시면 탈속(脫俗)하고 두 사람이면 좋고, 3,4인이면 즐겁다고(1인 神, 2인 勝, 3,4인 趣 )하였다. 5인을 넘으면 속되고 잡스럽다고 한다. 선비의 문방(文房)에서, 혹은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에서 차를 달이는 옛 그림들이 보여주듯이 선(禪)의 세계의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차의 경지라고 하겠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요즘 단풍이나 낙엽이 보이는 호젓한 창변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계절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여럿이라 하더라도 보기에 좋다. /淸河

正祖

조선조 제22대 제왕 정조(正祖)대왕(1752∼1800년)은 한 인간으로서 지녔던 지극한 효성, 통치가로서의 탁월한 정치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뛰어난 학문정신으로 지금도 추앙을 받고 있다. 역대 왕중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긴 이는 정조대왕이 유일하다. 홍재전서에 담긴 정조대왕의 지적수준은 당대 어느 학자도 뛰어넘을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일신의 목숨마저 보전하기 어려운 때를 보내야 했다. 당쟁의 희생자로 소년시절은 다른 제왕들에게서는 볼수 없는 비운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즉위하기 전까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새벽닭이 울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정조대왕은 이러한 역경을 특유의 호학정신으로 극복했다.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정색당(貞색堂)이라는 서고(書庫)를 지어 도서수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과거 明나라에서 기증한 중국 서적을 모았으며, 수시로 입연사절(入燕使節)을 통하여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전적(典籍)이 늘어나자 다시 서고(西庫)와 열고관(閱古館)을 두어 국내본과 중국본을 나누어 보관했고 중국본의 전적이 늘어나자 개유와(皆有窩)라는 서고를 별도로 증축하기도 했다. 즉위 첫해인 1760년 규장각(奎章閣)을 설립한 일은 정조대왕이 학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수 있다. 세종대왕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정조대왕이 좀더 장수했더라면 아마 우리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서거 200주기를 맞아 문(文) 사(史) 철(哲)의 대가였던 정조대왕을 기리는 각종 행사는 그래서 더욱 뜻이 깊다. /淸河

한국축구

잔디구장뿐이다. 유년축구부터 맨땅 축구는 상상도 못한다. 전국소년축구대회는 300여 초등학교팀이 참가, 1년 내내 풀리그전을 벌인다. 이런 팀 저런 팀을 만나 축구볼 감각과 게임의 숙련도를 익히는 말 그대로 참가에 의의를 둔다. 토너먼트 넉다운제로 한번 지면 떨어져 나감으로써 팀의 존폐위기를 맞는 우리같지 않기 때문에 승부에 여유가 있다. 프로축구층도 우리보다 훨씬 두텁다.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온 청소년들이 시니어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일본축구의 현주소가 이렇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한국축구보다 못한 일본축구가 근래 세계적 강팀으로 떠오른 것은 한두해 사이에 갑자기 잘해서 된게 아니다. 먼 안목을 보아 끊임없이 투자한 효과가 이제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비해 우리는 어떤가. 한국축구의 고질로 꼽는 골결정력부족, 드리블미숙, 볼컨트롤 미흡 등의 연유는 어려서 맨땅축구를 시작한 탓이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생긴 잘못된 버릇의 기본기 결함은 성장해서도 고치기가 어렵다. 여기에 전략개발, 전력비교등 해외정보에 어두운 우물안 개구리 형상이 돼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아시아에서도 밀리는 동네축구가 되고 말았다. 시드니 올림픽 8강 탈락,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결승탈락 이후 한국축구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다. 선수들의 죄가 아니다. 정책당국과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또 당장 어떻게 해서 잘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코치 영입을 말하지만 외국인코치를 들여온다고 2002년 월드컵대회의 청신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2002년보다 더 먼 장래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가 중요하다. 투자가 없으면 기대할 것도 없다. /白山

시인 서정주씨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의 시인 서정주씨(85), 그의 아호 미당(未堂)은 ‘덜된 집’이란 뜻이다. 아호가 말해주듯이 “나에겐 마지막이란 말이 없다”면서 부단한 시작활동으로 영원한 시정신, 시인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중앙고보 재학시절 한때 사회주의에 매료되기도 했으나 해방직후엔 우익문인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벽’의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일제때 협박받아 강제로 쓴 ‘오장’(伍長·우리계급으로 중사)이란 시하나 때문에 친일시비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보면 민족적 서정추구의 성향이 더 짙었던 분이다. 춘원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불행했던 지식인의 흠이긴 하지만 분명 오늘의 한국 시단을 갈고 일군 거목이다. 향리 전북 고창에서 그의 문학관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내가 살아 있는데 남세스러운 일…”이라고 했을만큼 성품이 소박하다. 한번은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 그 지면의 특집 컷이 ‘명사초대석’이란 것을 알고는 “내가 무슨 명산가? 명사아냐!”하면서 끝내 번복한 적이 있다. 지지대子가 일선 기자시절에 겪은 일이다. 댁에 전화를 걸면 언제나 첫마디가 “미당입니다…” 하시곤한 인자스럽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 바람 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삼천 사발의 냉숫물/내 남루와 피리 옆에서/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내 숨은 그녀 빈사발에 담을까’ 시 ‘내 아내’를 통해 이토록 애틋한 부부의 정을 비쳤던 부인 방옥숙여사가 얼마전 타계했다. 그의 시어(詩語)대로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의 산고를 치르는 것일까. 미당은 곡기를 못넘기어 탈진,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쾌유를 빈다. /白山

사회병리현상

조선조 인종시대의 실존인물 임꺽정, 광해군 시대의 실존설이 있는 홍길동, 영국 리처드 1세때의 로빈 후드는 강·절도의 도둑들이다. 비록 훔치거나 빼앗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 나눠준 의적이라고 하지만 도둑은 도둑인 것이다. 이런데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 커녕 미화된 전설적 연유는 빼앗긴 금품의 주인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재산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탐관오리들이다. 요즘말로 하면 권력형 비리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권력형 비리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보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절도를 의적으로 보는 것이다. 의적의 사회적 배경엔 이같은 사회병리현상이 도사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도(大盜)란 말도 이런 사회병리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대도라고 하면 원조격으로 유명한 C씨가 있다. 금품을 털리고도 경찰에 신고조차 할수 없었던 고관대작, 재벌상대의 거액 피해에 서민들이 내심 쾌재를 부른 것은 그들의 부(富)를 정당한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탈옥수 신창원씨 또한 전국을 무인지경으로 누비면서 도둑질을 일삼았으나 훔친 그 많은 돈을 역시 높은 벼슬아치나 부호들만을 골라 털어 서민들의 야릇한 동정심을 샀던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사회모순 근원의 사회병리현상이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심각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수백억원을 곳간에서 곶감빼먹듯 빼먹은 금융 부정대출, 고위관리들의 독직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나돈 정치권의 권력개입설에 ‘강도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란 생각을 갖는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어느 운전자가 단속나선 경찰관에게 “정부는 더한 것도 위반하는데 뭘 그러느냐”며 이죽거린 일이 있었다. 사회병리현상의 냉소적 확산이 두렵다. /白山

우담바라의 수난

의왕에 있는 청계사의 관세음보살상에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해서 매일 수천명, 많게는 수만여명이 절을 방문한다고 한다. 지난 13일 처음 알려진 뒤 17일에는 ‘우담바라 친견 108일 무차대법회’도 거행돼 임창열 경기도지사 내외, 강상섭 의왕시장,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부인인 한인옥 여사 등 3천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신라시대 때 창건돼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 시중 조인규에 의해 중건된 청계사의 극락보전법당 관세음보살의 좌불상 왼쪽 눈썹위와 아래로 1.5㎝ 크기로 21송이가 피어난 우담바라꽃을 두고 국가에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칭송하는가 하면 불심이 부족한 일부 중생들은 ‘곰팡이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품었다. 식물도감 어디에도 우담바라(udumbara)라는 식물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이희승박사가 펴낸 국어대사전에는 ‘우담바라’가 ‘인도의 상상속의 식물로서, 3천년에 한번씩 꽃이 핀다는 것으로, 이 꽃이 필 때는 금륜명왕(金輪明王)이 나타난다 함’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대전대 생명공학부 남상호 교수(곤충학)가 “청계사에 핀 우담바라는 풀잠자리 알”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애벌레가 알을 빠져 나갈 때 알 껍질이 벌어지기 때문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풀잠자리 알 껍질은 실크 성분이기 때문에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더라도 잘만 보존하면 그 형태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곤충 분류학자인 충북대 농생물학과 조수원 교수도 “풀잠자리는 9월에서 10월에 특히 많이 눈에 띈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주위를 둘러보면 풀잠자리 알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풀잠자리가 왜 하필이면 청계사 불상에 알을 낳았는가.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종교는 과학을 초월한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淸河

사이버 폭력

‘니네 학교 썩었다’‘X것들이 X라 지랄이네, 언제 한번 니네들 칠거다!’‘너희나 X지랄 떨지마’ 인터넷을 오염시키는 ‘폭언문화’가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일부 초등학교 홈페이지들이 어린이들의 욕설과 비방으로 뒤덮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폭언은 심지어 친구들의 부모도 모욕하고 있다. ‘김00네 엄마는 XXX’‘에미 젖이나 더 먹어’는 어떤 초등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뜬 내용이다. 학교 홈페이지가 가상학습, 정보제공 등 긍정적 측면이 많지만 학교측은 게시판 활성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교사가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의 원색적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차 버리기 때문이다. 학생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가 다음날 인터넷에 뜰 욕설을 생각하고 참아버릴 때가 많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교 홈페이지가 학교와 학생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인격모독과 불신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탄식한다. 홈페이지에 특정교사에 대한 음해가 쏟아지면 사실이 아닌데도 ‘실제로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나’하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는 아예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지도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게시판 관리에 비상이 걸린 어떤 초등학교는 학생게시판을 폐쇄하고 “모두에게 발언의 자유는 있지만 발언에는 책임이 있다”는 의미를 담은 푸른 리본을 달아 놓았다. 다른 어떤 학교는 학생들이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하면서 ‘나쁜 말을 하지 말자’는 글을 올리는 등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 운영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다. 학교장의 관심에 따라 관리상태가 크게 달라진다. 개설만 해 놓고 관리를 하지 않는 그것이 문제다. /淸河

왜 이지경이?

한빛은행 1천억원 부정대출사건이 현대판 봉이 김선달같은 몇몇 협잡배에 의한 단순범죄로 검찰수사가 종결나더니 대형금융사고가 또 터졌다. ‘정현준’이란 벤처기업사장이 동방상호신용금고와 대신금고로부터 514억원을 절묘하게 부정대출 받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경자’라는 동방금고 부회장과 ‘장내찬’이라는 금융감독원 국장이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부정대출 받은 돈 가운데 400억원이 증발됐다는 사실이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민초들이 보기엔 도대체가 무슨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수가 없다. 상식으론 납득이 안가기 때문이다. 도시 그동안의 금융개혁은 무엇을 했길래 대명천지 세상에 해먹었다하면 수백억원대의 꿍꿍이속이 다 통했는지, 나라꼴이 어쩌다가 이지경에 이르렀는지 서민들은 그저 분통이 터질 일이다. 대형금융사고가 터질때마다 거론되는 공식이 있다. 정부의 실세에 의한 비호의혹을 받다가 결국은 권력층과는 무관한 단순 부정대출사건으로 매듭짓곤 한다. 사실이 그런지 사실이 왜곡된 것인지 알수 없지만 이 역시 민초들에겐 분통이 터진다. 도대체가 도덕적 모랄이 없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위에서부터 그런 도덕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판을 치는 것은 적당한 요령주의 처신 뿐이다. 성실근면한 시민이 대접받고 상식이 통하는 국가사회가 건강한 국가사회로 기준하면 우리의 국가사회는 한마디로 빵점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하루 몇만원 벌이나마 힘겹게 살아가려는 서민대중에게 희망을 주진 못할지언정 끝없는 무력감속에 추락시키는 권력형 비리는 서민대중의 공적이다.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다. 누가 나라의 기강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볼 때다. /白山

이한동총리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고 했다. 시위란 중국사람들이 옛날에 제사를 지낼때 혈통자의 아이를 신위에 대리로 앉혔던 고사에서 나왔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자리만 높은 것을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소찬은 재능이나 공로없이 국록만 타먹는 것을 뜻한다. 이시영 초대부통령이 이승만대통령의 독재를 막지 못하는 것을 개탄, 부통령자리를 사퇴하면서 “시위소찬의 자리”라고 말했다. 지금은 부통령제가 없지만 국무총리가 사실상 시위소찬의 자리다. 헌법상으로는 총리의 기능을 그럴싸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막상 장관보다 실권이 없는 것이 총리다. 한동안 무슨 식장에서 대통령 치사나 대신 읽는다하여 ‘대독총리’란 말이 있었다. 정치인으로 어지간한 김종필씨가 김대중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1년남짓 하고 그만둔 이유 또한 그 자리가 시위소찬이기 때문이다. 이한동총리가 좀 애를 먹는 것 같다. 러시아방문에서 푸틴대통령도 못만나고 ASEM 직전 중앙 언론사 사장들에게 협조를 구하기 위한 초청만찬에 일부 유력사 사장들은 불참하는 홀대를 당했다고 한다. 푸틴 면담을 제대로 준비치 않은 외교통상부의 실책도 알고보면 총리를 제대로 보필할줄 모르는 중앙부처의 평소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이총리가 총재로 있는 자민련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 여러가지로 외로운 것이 요즘의 이총리 처지인 것 같다. 그가 총리로 끝내려면 그런대로 지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앞길을 내다보려면 총리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정치적인 처신도 ‘수서양단’의 눈치보기보다는 분명히 할줄 알아야 한다. 시위소찬의 자리쯤 언제든 박차고 나올 뱃심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줄도 알아야 한다. 모처럼 나온 기전출신의 총리를 아끼는 마음에서 몇마디 일러두는 것이다. /白山

프랑스 사람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함대 군인들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 약속이 엊그제 끝난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담)에서 김대중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이 도서는 조선조 왕실의 각종 행사를 공식 기록한 것으로 약탈문서중 63권은 국내엔 진본이 없다. 시라크대통령은 도서를 2001년 말까지 돌려주기로 했으나 문제는 돌려받는 대신에 우리가 주기로 한 고문서의 가치를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렸다. 1993년 9월 서울에 온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김영삼대통령간에도 이번같은 합의가 있었으나 우리측이 제시한 고문서가 그들이 돌려줄 외규장각 도서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거절해 왔다. 시라크대통령은 당시 “도서반환을 위해 이를 보관하고 있는 파리의 국립도서관직원과 며칠을 싸우다시피 했다”고 청와대에서 말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측이 또 어떤 고문서를 줄 것인지는 아직 알수 없으나 상응한 가치가 없다며 거부한 적이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측이 이번이라고 순순히 응해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조상이 약탈해간 주제에 주어도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가운데 그래도 우리가 배워야 할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나라 것이든 남의 나라 것이든 문화재를 그토록 끔찍이 아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전문가(문화재) 앞에선 미테랑이든 시라크든 대통령도 꼼짝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같으면 감히 대통령과 견해를 달리해 싸우기는 커녕 목(직장)이 달아날까봐 말 한마디면 꼼짝도 못할 판이다.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지 않은 것은 괘씸하지만 대통령과 맞서는 국립도서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프랑스 사람(대통령)들이 무척 부럽다. /白山

국정감사

1972년 10월 27일 박정희대통령의 ‘비상사태 특별선언’이란 초법적 조치로 헌정이 중단, 국회가 강제해산될 당시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당신(5·16 주체세력출신 기관장)은 군사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니 혁명정신이 아직 살아있는지 알아보게 어디 한번 혁명공약을 외워보라”는 등 국감과는 무관한 질문으로 애를 먹이는 야당의원도 있었던 때였다. 국감은 이튿날 또 계속되기로 했던차에 그만 그날 저녁 7시 비상사태가 선포됐었다. 그 무렵의 국감은 폐단이 없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덮어놓고 호통치기를 일삼는가 하면 근거없는 의혹제기로 우선 매스컴부터 타고보자는 언론플레이를 시도하기가 일쑤였다. 심지어는 기관장의 ‘추후 서면답변’ 언질엔 서면답변서와 함께 거액의 수표 유첨설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유신헌법으로 박탈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된 것은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 현행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의해서였다. 국회로 치면 제13대 국회부터다. 국정감사가 다시 시작된지 12년째다. 비록 폐단이 없진 않았지만 국감은 필요한 국민대의기구의 감사권이다. 국감 또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같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한다고 보기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국감을 통해 국정이 바로 잡히는 것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은 국감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질부족 탓이다. 뭘 알고 조리있게 조목조목 따져 끝내 잘못을 시인받고 나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미국같은 선진국의 국회의원들은 국회 도서관서 소관 상임위 업무에 대한 공부를 밤늦게까지 하기가 예사다. 이에비해 우리 국회도서관은 연중 텅텅 비어 있다. 올 정기국회 국감 역시 얼마나 잘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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