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祖

조선조 제22대 제왕 정조(正祖)대왕(1752∼1800년)은 한 인간으로서 지녔던 지극한 효성, 통치가로서의 탁월한 정치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뛰어난 학문정신으로 지금도 추앙을 받고 있다.

역대 왕중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긴 이는 정조대왕이 유일하다. 홍재전서에 담긴 정조대왕의 지적수준은 당대 어느 학자도 뛰어넘을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일신의 목숨마저 보전하기 어려운 때를 보내야 했다. 당쟁의 희생자로 소년시절은 다른 제왕들에게서는 볼수 없는 비운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즉위하기 전까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새벽닭이 울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정조대왕은 이러한 역경을 특유의 호학정신으로 극복했다.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정색당(貞색堂)이라는 서고(書庫)를 지어 도서수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과거 明나라에서 기증한 중국 서적을 모았으며, 수시로 입연사절(入燕使節)을 통하여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전적(典籍)이 늘어나자 다시 서고(西庫)와 열고관(閱古館)을 두어 국내본과 중국본을 나누어 보관했고 중국본의 전적이 늘어나자 개유와(皆有窩)라는

서고를 별도로 증축하기도 했다. 즉위 첫해인 1760년 규장각(奎章閣)을 설립한 일은 정조대왕이 학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수 있다.

세종대왕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정조대왕이 좀더 장수했더라면 아마 우리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서거 200주기를 맞아 문(文) 사(史) 철(哲)의 대가였던 정조대왕을 기리는 각종 행사는 그래서 더욱 뜻이 깊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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