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고법 부장판사’ 群, 그들의 역습

달라진 건 없다. 법적으로 그렇다. 1심 유죄가 2심도 유죄다. 판단의 근거도 그대로다. 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 받았다-정치자금법 위반이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벌금 100만원의 경계 때문이다. 당선을 무효시키는 선이다. 1심에서 90만원이었다. 2심에서 300만원이 됐다. 재판부도 이걸 강조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고, 보궐선거의 막대한 부담을 고려하더라도(엄벌에 처한다)라고 했다. 은수미 시장이 위기다. 이재명 도지사는 더했다. 1심에서 무죄였다. 다들 그렇게 끝날 거로 봤다. 항소심 법정엔 취재 기자도 적었다. 딱히 더해진 증거도 없었다. 2019년 9월 6일,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벌금 300만원이다. 당선무효형이다. 언론이 속보를 쏟아냈다. 대권 가도의 위기라고 썼다. 이어진 은 시장 항소심이다. 또 직(職) 유지 원심이 상실로 바뀌었다. 경기도민이 지켜보던 두 사건이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항소심이 죽음의 문이다. 경기도 밖 상급심 얘기도 보자. 김기춘ㆍ조윤선 상고심이 있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하급심은 유죄였다. 장시호ㆍ차은택 상고심도 있었다. 삼성 그룹 뇌물 사건이다. 역시 하급심 유죄였다. 2020년 1월 30일, 김ㆍ조 사건이 파기됐다. 무죄 취지다. 2020년 2월 6일, 장ㆍ차 사건도 파기됐다. 역시 무죄 취지다. 국정 농단 사건의 두 축이다. 죄질은 전(前) 대통령보다 가볍다. 하지만, 국민에겐 구별 없다. 국정농단 무죄다. 판사들은 판결로 말한다. 늘 판결문이 전부라고 답한다. 어쭙잖은 주석(註釋)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붙인다. 어떤 의미라도 끌어내려 애쓴다. 앞선 판결들도 그렇게 섞인다. 대강의 흐름이 추려진다. 하급심 판결이 확 뒤집힌다항소ㆍ상고심이 엄청 세졌다대개 여권 인사가 초죽음이 된다. 또 하나의-당연하지만- 결론이 있다. 이 판결은 전부 고법 부장판사급 판사들-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의 법관-이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문재인 정부 들어 귀에 익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개혁 대상으로 찍었다. 없앨 집단이라고 했다. 2019년 9월 10일에도 말했다.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 이유를 설명했다. 법관을 승진에 길들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법관의 자세도 강조했다. 법관은 승진이나 중요 보직 또는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법원의 날 기념식 자리였다.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한 때 법원의 꽃이었는데. 안타깝다. 대법원장 말 하나하나가 비수다. 법관을 승진에 길들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기존 고등부장들이 승진에 길들여진 집단으로 해석된다. 법관은 승진이나 중요 보직 또는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기존 고등부장들이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한 법관들로 해석된다. 하기야 이미 촛불 여론에서 굳어져 버린 논리다. 고등부장제도가 양승태 사법 농단의 출발이라 했다. 수긍할 리 없다. 1년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는 거죠. 승진을 안 시키면 그렇게 돼요. 전국에 130명 있어요. 그런데 이 집단이 만만하지 않거든요. 국정 농단 사건들이 줄줄이 올라올 텐데. 그게 뒤집히면 어떨까요. 130명 중 1명의 얘기다. 격 없고 사적인 담소였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난다. 앞선 상급심 때마다 떠오른다. 과연 그런가. 그들은 지금 반격에 나서고 있는가. 그들이 직접 말하는 건 없다. 말을 하는 집단도 아니다. 판결을 묶어서 정식화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서로 독립된 영역이다. 이재명 당선무효형, 은수미 당선무효형, 국정 농단 무죄 환송. 다른 판사가, 다른 기록을, 다른 공간에서 판단했다. 이 사이에서 무슨 경향성(傾向性)을 찾겠나. 꿰맞출 생각 없다. 다만, 하나는 똑똑히 보고 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 만만한 집단이 아닙니다던 그의 말, 그 말이 지금 증명되어 가고 있다. 主筆

[김종구 칼럼] 중립 위한 외로움, 이게 판사의 힘이었다

도망치듯 판사실을 나왔다. 다음 날 기자실에 소동이 벌어졌다. 전날 밤 사건-당직 판사실을 벌컥 열고 들어갔던-이 문제 됐다. 공보 판사가 항의했다. 박 선배가 설명해줬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판사실은 들어가면 안 돼. 법조기자실만의 불문율이야. 그때 알았다. 판사실은 외롭게 두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 자체가 재판정이었다. 기록을 검토하고, 양형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작은 재판정이었다. 그 뒤론 거의 안 갔다. 외로운 직업이다. 재판 300건을 매달 처리했다. 매일 기록 속에 묻혀 살았다. 수천~수만장을 넘겼다. 엄지에서 골무 뺄 날이 없었다. 차라리 재판 날이 나을 수도 있었다.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힘이었다. 외로움의 대가로 받은 힘이었다. 그 힘으로 인간계(界)의 분쟁을 해결했다. 아무도 그 결정에 대들지 못했다. 10년 법조기자가 본 판사의 권원(權源), 그건 중립을 위한 외로움에 있었다. 이게 많이 달라졌다. 언제라곤 말 못한다.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달라졌다. 판사들이 일상에 막 섞여 들어갔다. 때론 범인(凡人)보다도 못한 짓도 했다. 가카새끼 짬뽕이라며 대통령 욕을 했다. 맘에 안 드는 이웃집 차량에 본드를 짜 넣었다. 그래서 그만둔 이 모 부장판사다.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가 잡혔다. 하필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고 있었다. 입건돼 그만둔 홍 모 판사다. 개인적 일탈이다. 이걸로 조직을 논할 순 없다. 정치 속으로 막 뛰어드는 판사, 이런 게 진짜 문제다. 때론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이다. 언론에 등장해 내부 문제를 폭로한다. 그러면서 판사도 다른 시민과 같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선언한다. 며칠 전 그만둔 이수진 부장판사다.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다. (판사님들은 물론) 많은 분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그만둔 이탄희 판사다. 결국, 정치로 간 행동이었다. 그때-90년대-는 쉽게 안 했을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더 실망이다. 이 부장판사는 1월 7일 사직했다. 열흘 지나자 민주당에 입당했다. 인재 영입이란 명예가 주어졌다. 꽃다발 받고, 머플러도 받았다. 대번에 유명ㆍ거물 정치인이 됐다. 이 판사도 민주당에 입당했다. 퇴직 1년 만이다. 역시 인재영입이다. 폼나는 인사말도 했다. 역시 경쟁력 갖춘 정치인이 됐다. 1년 전부터 정리하면 이렇다. 비리 폭로조직 사퇴정치 입문. 정치꾼들의 전형적인 코스다. 진중권이 독설을 퍼부었다. 공익제보와 국회의원을 엿바꿔 먹었다. 흥분할 일도 아니다. 이런 예(例)는 길바닥에 널렸다. 오보(誤報) 했던 직원이 사장 됐다. 한 방송사 얘기다. 퇴출(退出)됐던 연예인이 억대 몸값이 됐다. 한 방송인 얘기다. 갑(甲)질 피해자던 노동자가 정치 후보가 됐다. 한 항공사 얘기다. 권력 반전이 준 인생 반전이다. 사법 농단을 폭로한 판사들이다. 권력이 준 반전이라 보면 된다. 그들만의 정치 거래다. 진짜 피해자는 남은 판사들이다. 판결의 최고 가치는 중립이다. 법관윤리강령도 이 원칙을 못박아 놓고 있다.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이걸 뒤흔들어 놨다. 판사도 정치적 동물이라고 근거 없이 선언했다. 많은 판사들이 걱정했다. 큰 일 날 소리라고 했고, 판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는 쏙 빠져버렸다. 정치로 가버렸다. 남은 판사들에겐 엿 바꾸기가 아니라 엿 먹이기다. 사법 정의? 대한민국 판사들은 늘 투쟁했다. 침해됐다 싶을 땐 언제고 일어섰다. 그 생생한 기록이 사법 파동의 역사다. 1971년 사법 파동 때는 공안 검찰에 맞섰다. 전국 판사 455명 중 150명이 사표를 냈다. 권력을 굴복시켰다. 1988년 사법 파동-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 1993년 사법 파동-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 2003년 사법 파동-대법관 인선 관행 개혁-도 전부 그런 역사다. 하나하나가 직(職)을 던진 투쟁이었다. 그때, 그 판사들은 달랐다. 지금의 이들처럼, 투쟁을 훈장 삼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언론에 영웅담 내놓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정치와 흥정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입신 양면의 길을 쫓지 않았다. 개인이 아닌 모두의 이름으로 일어섰고, 사람이 아닌 제도를 지켜내려 싸웠고, 정당 당사가 아닌 판사실로 돌아와 끝냈다. 이런 차이를 어깨너머로 귀동냥했기에, 이들을 지지할 맘이 조금도 없다. 主筆

[김종구 칼럼] 새마을이 뭘 그리 잘못했나

반대한다. 새마을기 철거는 잘못이다. 상시게양 폐지라고는 한다. 언제든 게양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건 철거다. 45년만에 쫓겨나는 것이다. 그 속의 위상도 사라지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본다. 그러니 신중한 거다. 시험 기간까지 거쳤다. 짧게 보면 2019년부터다. 길게 보면 2017년 성남시청부터다. 새마을 단체의 양해도 중하게 챙겼다. 모든 게 철거라서 필요한 공이다. 이렇게 경기도에서 새마을기는 사라졌다. 이재명 도지사가 SNS에 밝혔다. 새마을기 게양 중단 왜?. 모든 일에 명암이 있듯이 새마을운동에도 공과가 있습니다옳은 일이라도 일방 강행은 갈등을 부르고 사회적 비용을 요구합니다경기도민을 대표하여 새마을회기 상시게양 중단을 수용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인 듯하다. 새마을기 게양 중단은 작지만 의미 있는 개혁이다. 새마을 운동에도 잘못은 있다. 단체의 양해를 얻었으니 도민 의견도 같다고 본다. 이게 맞나. 대표 단체는 경기도새마을회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금시초문이란다. 아닌 게 아니라 이상하다. 지난해 5월에도 소동이 있었다. 새마을회가 이재명 지사를 방문했다.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새마을기가 상시 게양됐다. 그 입장이 변했다는 얘긴 없다. 그런데 이 지사는 수용해주셨다고 밝혔다. 같은 글에서 이 지사는 일방적 강행은 안 된다고 강조 했다. 어디가 잘못인지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새마을회 동의는 있었나. 경기도민을 대표하여도 보자. 물론 새마을회에 대표성은 있다. 긍정적ㆍ발전적 대표성이다. 새마을을 망칠 대표성까지 갖고 있진 않다. 홀수달엔 내리기로 했고, 짝수달엔 한반도기ㆍ세월호기를 건다고 한다. 안 걸릴 가능성이 크다. 새마을엔 부정적ㆍ퇴행적 변화다. 더 없이 중한 일이다. 폭넓게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도민 의견도 설문했어야 했다. 혹, 이런 절차 없이 수용했다는 건가. 그런 인사라면 거길 떠나야 한다. 새마을운동의 공과도 보자. 박정희의 공과는 역사가 정리했다. 정치 독재ㆍ민주화 탄압이 있다. 과(過)다. 빈곤 탈출ㆍ경제 발전이 있다. 공(功)이다. 새마을운동은 경제다. 공의 영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밑바탕에는 새마을운동이 있다계승해 발전시켜 나가자. 72일 전 수원 발언이다. 바로 그 새마을의 깃발을 내리겠다고 한다. 과가 있어서라고 한다. 대통령도 못 본 과가 뭔지 궁금하다. 1965~1980년. 평균 경제 성장률이 9.4%였다. 그 시기에 새마을기가 게양됐다. 이후 어떤 정부도 그 깃발에 손대지 않았다. 이유로 보이는 통계가 있다. 김대중 정부 5.3%, 노무현 정부 4.5%,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3.1%다. 끌어내릴 명분이 없었을 거다. 지금은 더 나쁘다. 2%대가 당면 목표다. 일자리가 없어 난리다. 참 아이러니다. 5.3% 시대에도, 4.5% 시대에도 건재하던 새마을 깃발이 2% 시대ㆍ경기도에서 퇴출되고 있다. 그 시절, 세 잎 선명한 새마을 모자가 있었다. 자전거 탄 면서기의 징표였다. 마을엔 새마을 공장이 있었다. 동네 누나들이 2만원씩 벌었다. 개울가에도 새마을은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취로사업장이었다. 쥐잡기도 새마을 운동이었다. 꼬맹이들이 해야 할 쌀 지키기였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던 세대다. 그들이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으로 간다. 너나없이 침 튀기며 자랑삼던 새마을이다. 그런데 다 늦어서 새마을기 퇴출 소식을 듣게 됐다. 깃발이 뭔가. 경기도청을 수년 출입했다. 매일 국기 게양대를 지났다. 새마을기를 쳐다본 기억은 없다. 앞으로도 경기도청을 들를 것이다. 국기 게양대를 지날 것이다. 역시 깃대는 보지 않을 것 같다. 깃발이란 게 그런 거다. 객은 쳐다보지 않는다. 주인이 달면 그뿐이다. 조용히 세월호ㆍ한반도기 달았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저기 선언한 일이 아니었다. 개혁 대상이라며 힘 줄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뭐가 남았나. 새마을 세대에 준 이런 서운함 뿐 아닌가. 우리의 젊은 날이 이렇게 끌려 내려올 개혁 대상인가. 主筆

[김종구 칼럼] 64년생 김 기자

7080. 왠지 편한 상호다. 게다가 친구가 사장이다. 한 달에 한 번 들른다. 12월 26일에도 갔다. 직장인 한패가 옆에 진쳤다. 30대 40대 열대여섯 명이다. 40대 남자가 좌장인 듯하다.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다. 술잔을 들며 건배를 제의한다. 젊은이들답게. 그러다가 말을 멈춘다. 아, 여기 60년대생이 계시네. 64년생이시죠. 모두 한바탕 웃는다. 그게 그렇게 웃을 단언가. 구부정한 64년생, 그의 뒷모습에 머리숱이 휑하다. 술잔이 정신없이 오간다. 64년생 자리만 조용하다. 오는 술잔도, 가는 술잔도 없다. 맘 속으로 내가 말한다. 차라리 집에 가라. 하지만 64년생은 계속 앉아 있다. 30, 40대의 광적인 노래가 이어진다. 30여분 지났을까, 40대가 배려한다. 자, 64년생 어르신 모십니다. 맘 속으로 내가 또 말한다. 제발 옛날 노래는 하지 마라. 64년생은 또 기대를 저버린다. 바람에 날려버린앗싸. 안동역에서다. 앵콜이 없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2019년 시작된 386의 현실이다. 세대 중심이라던 자부심이 무너졌다. 2030세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무능해서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추궁한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88만원세대의 삿대질이다. 6070세대의 비난도 시작됐다. 겨우 이러려고 그 난리를 쳤냐며 비웃는다. 20, 30년 전에 밀려났던 유신 세대의 역공이다. 이날 모습이 그랬다. 중심에서 밀려나는 386의 현실이었다. 무너짐의 조짐은 정치에서 나왔다. 386 불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표창원(66년생)ㆍ이철희(64년생)ㆍ임종석(66년생)이 떠났다. 저마다 멋들어진 이유를 댄다. 현실 정치 실망ㆍ책임 정치 실현ㆍ통일사업 전념.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은 간단히 정리했다. 386 퇴진 시작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그러면서 나머지 386에도 마이크를 댄다. 사퇴할 생각 없냐고 따져 묻는다. 아마 몇은 더 떠날 듯싶다. 양심에서도 무너졌다. 386의 자산은 양심이다. 민주화를 쟁취한 힘이다. 다른 세대와 차별화하던 무기다. 이것마져 무너졌다. 조국(65년생) 사태는 그 생생한 중계였다. 재산에 대한 탐욕, 자녀를 위한 편법, 권력에 의한 특권이 넘쳤다. 법(法)의 판단은 의미 없다. 이미 도덕(道德)에서 무너졌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다른 세대가 386세대에 가졌던 민주화의 부채는 조국 비리로 다 퉁 쳤다. 이 말에 더할 표현이 없다. 화려한 등장이었다. 1996년 김민석(64년생)이 문을 열었다. 32살짜리 국회의원이었다. 4년 뒤 총선은 386 선거였다. 386이 국회를 접수했다. 30대 의원만 23명이었다. 386 자체가 최고의 힘이었다. 다선(多選)도 눌렀다. 고령(高齡)도 이겼다. 이 정치의 파도가 곧 세상까지 덮쳤다. 문학 중심에도 섰고, 문화 중심에도 섰고, 한류 중심에도 섰다. 모든 곳을 점령했다. 차라리 사회에 밀어 닥친 제너레이션 쿠데타(generation coup dtat)였다. 그 후 20년을 해 먹었다. 그때 30대 소장파가 이젠 50대 당권파다. 그때 초선 정치인이 이젠 다선 대권 후보다. 그러다가 들통났다. 나라 망친 무능(無能)이다. 그 20년간 한국은 하나 같이 뒤로 갔다. 95년 7.3%던 성장률은 2019년 1%대로 추락했다. 90년대 6대 1이던 5대 기업 경쟁률은 2010년대 150대 1로 높아졌다. 위대한 386시대의 처참한 성적표다. 88만원세대 분노ㆍ유신세대 비아냥이 괜한게 아니다. 프랑스 68세대가 있었다. 낡은 드골주의를 공격했다. 20대 청년과 학생이 중심이었다. 미테랑 정권까지 만들었다. 7년씩 두 번, 국가도 운영했다. 그리곤 버려졌다. 부도덕과 부패에 국민이 분노했다. 그 형벌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좌파는 대통령 선거 근처에도 못 간다. 우리 386이 곱씹어야 한다. 능력이 없었음을 사과해야 한다. 어린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중심에서 비켜서야 한다. 어느 사회든, 어느 집단이든 똑같다. 그날 64년생은 안쓰러웠다. 참석한 게 안쓰러웠고, 노래한 게 안쓰러웠다. 그곳에 없었어야 좋았고, 그 노래 안 했어야 좋았다. 지켜보던 64년생 김 기자도 이렇게 적고 있다. 386들에게 2020년은 비움을 시작하는 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경기 총리’ 접고 ‘호남 총리’로 가다

대통령 경제 철학과의 차이. 상당히 고급진 말이다. 이런 각료 기준이 논의된 적 있었나. 하나같이 지저분한 화두였다. 재산 불리려고 투기를 했다 애들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 자녀 입학용 공문서를 위조했다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김진표 총리 임명 정국에 경제 철학이 등장했다. 내용도 법인세 인상ㆍ종교인 과세였다. 철저히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다. 그래서 고급져 보였다. 바람직한 논란으로 보였다. 의심스럽긴 했다. 고급진 논쟁이 왠지 껍데기일 거 같았다. 고급지지 않은 결론이 기다릴 거 같았다. 그랬다. 경기도 김진표 의원은 날아갔다. 전북이 고향인 정세균 의원이 지명됐다. 지긋지긋한 지역론이다. 영남 정권의 호남ㆍ충청 총리론이다. 여기에 경기도는 없다. 인천도 없다. 호남ㆍ충청만 따지는 균형론이다. 두 지역을 챙기면 지역 탕평의 완성이라고 한다. 호남 총리 지명을 놓고 그렇게들 푼다. 다 통과된 분위기다. 알고는 있었다. 지역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었다. 김진표 전까지 전북 언론이다. 전북 몫 찾기 언제 가능할까(10월 15일 J일보). 개각 때마다 전북 인사는 들러리(12월 2일 또 다른 J일보). 철학ㆍ정책은 없다. 오로지 호남 몫에서 세분화된 전북 몫 얘기다. 오늘 정 의원이 지명됐다. 당장 바뀌었다. 정 전 의장이 전북 출신이라는 점에서 부산 출신의 문 재인 대통령과 지역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평이다. 그럼 경기도는 뭔가. 대한민국 정부 71년이다. 45명의 총리가 있었다. 경기도 출신은 4명이다. 변영태(부천ㆍ1954년), 남덕우(광주ㆍ1980년), 이홍구(고양ㆍ1994년), 이한동(포천ㆍ2000년)이다. 이한동은 DJP연합 몫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는 1994년이 끝이다. 그 후 25년 동안 없었다. 인구가 1천300만인 경기도다. 산업의 25%가 있다. 이런 경기도가 이렇다. 인천은 더 하다. 전북 인구의 1.6배가 넘는데 한 명도 없다. 애초부터 이럴 거 아니었나. 철학이라는 고급진 논쟁은 그냥 해 본 것 아닌가. 여차하면 지역론으로 갈 거 아니었나. 1주일 전 구문(舊文)에 내가 썼다. 우려스러운 게 있다. 이런 논쟁 사이로 비집는 지역주의다혹 이런 분위기가 순수한 반대론에 올라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없지 않을 것이다(경기일보 12월 5일자 사설). 그리고 그렇게 됐다. 경제 철학 논쟁은 사치스런 담론이었다. 결국, 영호남 지역론이다. 경기도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경기도 인재(人才) 부재론이다. 이 게 더 속상하다. 정세균 의원에 붙는 세평(世評)이 있다. 관록, 포용력, 경제감이다. 6선, 국회의장, 쌍용그룹 상무이사 경력이다. 그거 있는 정치인, 경기도에도 많다. 6선도 있고, 국회의장도 있고, 창업 신화 주인공도 있다. 원혜영 의원(부천 오정) 등이 그래서 기대됐었다. 다 헛물이었다. 정 의원으로 갔다. 관록, 포용력, 경제감을 넘는 기준, 호남 몫이었다. 진보진영이 김진표를 반대했다. 참여연대도, 경실련도 반대했다. 민주노총도 반대했다. 반대 성명 어디에도 지역은 없었다. 경제 철학에 대한 논쟁만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다. 영남 대통령ㆍ호남 총리를 만들었다. 진보 단체의 노림수는 아니었을 게다. 그러나 진보 단체가 만든 결과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많은-모두는 아니지만- 경기도민이 실망한다. 김진표 원혜영이 아니라 사라진 경기 총리의 꿈을 서운해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안 되는 데, 많은 경우에 그런다. 우리 정치다. 정치가 지역주의에 매달린다. 그러니 유권자들도 지역정치에 매달린다. 표로 협상하고, 표로 겁박한다. 그래도 경기도민은 덜 했다. 정치 변방임을 되레 멋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어제오늘 보니 아닌 것 같다. 총리 주면 표 주겠다고 협상해 볼 걸 그랬다. 총리 안 주면 표 안 주겠다고 겁박해 볼 걸 그랬다. 하기야, 그래봤댔자 경기도에 곁 한 번 줄 대한민국 지역 정치는 아니지만. 主筆

[김종구 칼럼]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아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이춘재 살인 사건으로 변경하라. 섬뜩한 살인이 등장한다. 화성시의회의 결의문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화성을 빼달라는 호소다. 오죽했으면 이럴까. 벌써 30년째다. 사건 발생으로 20년, 영화 개봉으로 10년 당했다. 용의자가 나왔으니 얼마나 더 당해야 할지 모른다. 군(郡) 시절 사건이다. 논밭은 아파트로 변했다. 20만 인구는 80만이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명칭 교체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춘재의 형소법상 지위는 용의자다. 법률적으로는 무죄 추정이다. 경찰도 이춘재 신상을 밝힌 적이 없다. 여기에 공소시효까지 만료됐다. 이춘재가 유죄 될 가능성도 없다. 이모씨 살인 사건이라는 절충안은 그래서 나온다. 따지고 보면 말장난이다. 이춘재가 안 되면 이모씨도 안 되는 거다. 경찰도 고민은 하고 있다. 쉽게 결론을 못 낸다. 화성연쇄살인으로 계속 갈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바꾸면 안 되나. 이춘재 등장까지는 맞는 표현이었다. 화성 살인 10건만의 명칭이었다. 30년만에 이춘재가 등장했다. 살인 14건을 자백했다. 수원 2건, 청주 2건이 새로 더해졌다. 경찰도 신빙성을 두고 있다. 그랬으면 그때-자백이 발표된 10월 초-부터 사건명(名)은 바뀌었어야 했다. 화성ㆍ수원ㆍ청주 살인 사건으로 쓰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걸 안 바꾸고 화성만 썼다. 오기(誤記)다. 오보(誤報)다. 수사 중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꾸 14건만 말한다. 아니다. 15건이다. 1건은 밝혀졌다. 처제 살해다. 법원에서 무기 징역까지 확정됐다. 나머지 14건은 여죄(餘罪)다. 계속 밝혀가는 중이다. 연쇄살인의 속성은 연속성이다. 15건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이춘재 연쇄살인의 일부는 확정된 것이다. 공판을 통해 완벽히 입증된 것이다. 미확정은 처제 살해를 제해놓고 따지니까 나오는 소리다. 이춘재로 씀이 맞다. 공소시효 만료도 그렇다. 1982년 희대의 살인 사건이 났다. 62명을 살해한 우범곤이다. 우씨는 현장에서 자살했다. 공소권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도 사건명은 우순경 사건이다. 경찰 직급까지 자세히 붙여 쓴다. 2012년 수원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 초기에는 수원토막살인사건이었다. 수원시가 정정을 요구했다. 곧바로 오원춘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역시 공판 제기 전이었다. 형법사(史)에 기록된 사례들은 많다. 경찰도 고민 중이라고 들린다. 변경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춘재 신상 공개를 전제로 보는 듯하다. 합법적인 절차를 찾자는 거다. 맞는 소리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게 될 화성시 피해가 걱정이다. 유튜브가 뭔가. 국경 없이 세계인이 보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화성은 살인의 도시다. 화성연쇄살인 영상으로 도배됐다. 몇십 건인지, 몇백 건인지 셀 수도 없다. 영상마다 몇만, 또는 몇십만씩 조회되고 있다. 정말 힘든 게 지역 이미지 높이기다. 시간 들고, 돈 든다. 화성시가 3월에 유튜브 하나를 올렸다. 2019 화성시 현황 홍보 영상이다. 얼마나 봤을까. 8개월 된 오늘까지 7천837뷰다. 한 명 한 명 힘겹게 늘려간다. 이런 노력이 한 방에 무너졌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특정 발표였다. 살기 좋은 화성 조회 수의 수만 배가 연쇄살인 화성에 몰렸다. 이춘재가 곧 재심에 나올듯하다. 매정한 유튜브질은 또 시작될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토론이 필요없는 명칭이다. 절대 쓰면 안 된다. 명백한 오기고 오보다. 굳이 쓰려면 수원ㆍ청주도 붙여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피해자가 또 생긴다. 수원시민과 청주시민이다. 지명권(地名權)이란 게 이런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다. 경찰이 빨리 결론 내줘야 한다. 화성시의회는 시민의 청(請)을 넣을 곳으로 경찰을 택했다. 아마 경찰 외엔 부탁할 데가 안 보였을 것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長期 수사, 이 찜찜함에 대해

황창규 회장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다. 경영 고문 위촉과 관련된 비위 혐의다. 전직 정치인ㆍ경찰ㆍ군인 등이 위촉했다. 이들을 각종 로비에 활용했다는 의혹이다. 당연히 밝혀야 할 범죄다. 그런데 경찰 수사 기간이 길었다. 3월 노조 고발이 시작이었다. 이후 아홉 달이나 계속됐다. 송치했다고 끝난 것도 아니다. 검찰 타임이 오롯이 남았다. 재지휘 할 수도, 보강 수사할 수도 있다. 재판받을 권리까지 기약도 없다. 수사가 너무 길었다고 보지 않느냐. KT 관계자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씁쓸하다. 2년짜리도 있는데 뭘. 그러고 보니 있다. 정치자금법 수사다. 문재인 정부 초기 시작했다. KT가 낸 정치 후원금 문제였다. 쪼개기 후원금 적발 정치인 수십 명 연루. 난리라도 날 것처럼 요란했다. 그러다가 시간 속에 묻혔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다. 이게 여전히 수사 중이란다. 수사팀까지 바뀌며 3년째로 가고 있단다. 더 긴 수사도 있다. 삼성 관련 수사다. 혐의가 3개 정도다. 노조 와해ㆍ테크윈 탈세ㆍ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이 3개를 잡겠다는 수사가 끝이 없다. 2018년 이후 지금도 계속된다. 압수수색은 몇 번이었는지 셀 수도 없다. 올 3월 어느 신문이 친절하게 셌다. 2018년부터 2019년 3월까지 들어간 삼성 압수수색이다. 열일곱 번이다. 삼성은 이골이 난듯하다. 언론도 세길 포기했다. 삼성, 또 압수수색이라고만 쓴다. 여기 조국 수사도 있다. 8월 27일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분이었다. 공식적인 수사 시작 이후 어림잡아 100일이다. 수사 강도도 셌다. 5촌 동생, 동생, 부인이 구속됐다. 다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도 두 번이나 조사받았다. 금주 중 처리라는 기사가 여러 번 나왔다. 모두 오보(誤報)다. 결론난 건 아무것도 없다. 기소인지 불기소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 끝을 더 모르게 하는 일까지 생겼다. 새로운 혐의의 등장이다. 유재수 부시장이 구속됐다. 조국씨가 봐줬다고 얘기된다. 울산 시장 선거 부정 의혹이 수사된다. 조국씨가 관여됐다고 얘기된다. 그가 수석이던 민정수석실 일이다. 다들 조국 관련 수사라고 본다. 판이 커졌지만 여전히 조씨를 축이라 본다. 궁금하다. 동양대 총장상 위조는 어찌 된 건가. 공범인가. 사모펀드 의혹은 어찌 된 것인가. 공범인가. 이 궁금증은 여전한데 수사는 다른 곳으로 간다. 검찰이 국감에서 내사설에 펄쩍 뛰었다. 신문을 읽는 것도 내사냐고 했다. 장관 후보 자격 의혹 제기가 수사 단서였다는 설명이다. 그랬으면 그게 하나의 수사다. 자녀 부정 입학, 사모펀드 불법이 하나의 묶음이다. 가족 수사는 다 끝났다. 그러면 조씨 결론도 내야 한다. 유재수 의혹ㆍ울산시장 선거 의혹은 별건이다. 별도로 수사해서 별도로 기소하면 될일이다. 그런데 안 그런다. 조씨를 엮어두고 다른 걸 시작했다. 가정해보자. 내 회사가 2년간 수사받는다면. 내 회사에 압수수색이 수십 번 들어온다면. 100일 조사받은 내게 새로운 혐의를 내민다면. 어찌 되겠나. 2년 수사받으며 버텨낼 회사는 없다. 압수수색 수십 번에 멀쩡할 회사는 없다. 겹치기 수사에 당해낼 사람은 없다. 뭐라 할까. 내 회사를 표적 삼은 수사다라고 할 것이다. 나를 표적 삼은 수사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이건 인권 탄압이다. 너나없이 검찰 개혁을 말했다. 법무부도 검찰 개혁을 말했다. 검찰도 검찰 개혁을 말했다. 서초동은 검찰 개혁으로 도배됐다. 개혁안들도 여럿 나왔다. 얼굴 촬영 안 하기로 했고, 혐의 공개 안 하기로 했고, 별건 수사 제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일 심각한 폐습이 빠져 있다. 부당한 장기 수사 제한하자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2년을 수사해도 그만, 17번을 압수해도 그만, 혐의를 늘려가도 그만이다. 죄를 범한 그 마음은 미워해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古之言公, 惡其意不惡其人). 공총자(孔叢子)에 전해오는 글귀다. 이 글의 철학적 가치를 새겨야 한다. 사람이 벌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범죄다. 황창규가 아니라 황창규 범죄를 벌주는 것이다. 이재용이 아니라 이재용 범죄를 벌주는 것이다. 조국이 아니라 조국 범죄를 벌주는 것이다. 대체로 장기 수사가 이 철학을 거꾸로 푼다. 主筆

[김종구 칼럼] 염태영·은수미·백군기, 세 시장님의 일(業)

염태영 수원시장님, 은수미 성남시장님, 백군기 용인시장님! 혹시 용서고속도로를 타 보신 적 있나요. 있으시겠죠. 그러면 출퇴근 시간대 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러셨을 수 있겠네요. 그러면 하루에 출퇴근을 모두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한 달쯤 이 도로로 출퇴근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것도 직접 운전을 해서요. 혹시 그런 적도 있으시다면 어땠나요. 사람이 할 짓이라고 생각되셨나요. 잉크도 마르기 전이라고 하죠. 이건 콘크리트도 굳기 전이겠네요. 불과 10년 전 도로가 개통됐습니다. 2009년 6월 30일 오후 2시에 뻑적지근한 개통식이 있었습니다. 국토부 장관, 국회의원, 시장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지금도 남은 김문수 도지사의 축사가 있습니다. 성남, 수원, 용인 지역은 더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앞으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하면 교통체증도 완화될 겁니다 미안한데 다 틀렸네요. 강남 가는 데 90분 걸립니다. 20분이라더니 거짓말입니다. 출퇴근 아닐 땐 괜찮다고도 합니다. 우스운 얘기죠. 서울 가는 도로가 관광지 오가는 길인가요. 어차피 출퇴근용 도로입니다. 이 기본 목적 때문에 만든 거고요. 이게 10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고속(高速)이라는 특성이 실종된 지 오랩니다. 옆 국도를 달리는 차도 못 따르는 저속(低速)입니다. 성남ㆍ용인, 그리고 수원은 지금 용서 안 될 도로로 살기 나쁜 지역입니다. 경부고속도로 연결도 오판이었습니다. 2018년 7월과 12월 드디어 연결했습니다. 효용성은 분명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돈 들인 거고요. 과연 교통체증도 완화됐을까요. 관리자인 경수고속도로 측에 물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일평균 교통량을 비교했습니다. 작년 19만2천681대, 올해 20만357댑니다. 연결되고 나서 되레 3.98% 늘었습니다. 강설(降雪) 변수를 감안해도 +2%라네요. 경부고속도로 연결이 체증을 더했습니다. 염 시장님, 은 시장님, 백 시장님. 시장님들의 이름은 도로에 남습니다. 그만큼 오래가는 행정입니다. 도지사의 실언도 10년 가고 있지 않습니까. 용서고속도로 개통으로 더 잘 살게 될 겁니다고 말했던 무책임 발언 말입니다. 지금 고속도로 위 운전자들이 전부 욕합니다. 전 도지사도, 전 성남시장도, 전 용인시장도 다 욕합니다. 그러면서 그 원성 어린 눈으로 세 분 시장님들을 봅니다. 어떻게 좀 해달라는 하소연일 겁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용서 라인에 들어설 공동주택이 어마어마합니다. 광교 3만1천 가구, 신봉 1ㆍ2지구 2만 가구, 고기동ㆍ동원동 4천500 가구, 대장동 6천 가구, 서판교 7천 가구, 금토지구 3천255가구, 성남 고등지구 4천 가구, 세곡 1ㆍ2지구 7천300가굽니다. 사람 수로 따지면 28만 명쯤 됩니다. 모두 용서고속도로로 몰려올 사람들입니다. 빠르면 이번 임기, 늦어도 다음 임기 땐 그럴 겁니다. 대책을 내야 합니다. 다들 힘쓰는 건 압니다. 수원시는 신분당선 연장에 힘씁니다. 성남시는 대장동 교통 연결에 힘씁니다. 용인시는 우회 도로 마련에 힘씁니다. 그런데 근본 대책이 아닙니다. 수원 안에서 연장이고, 성남 안에서 연결이고, 용인 안에서 우회입니다. 서울로 가는 22.28㎞짜리 대안은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 돈, 이 돈, 저 돈 다 합치면 나을 텐데. 부담은 3배 줄고, 효과는 3배 느는 협업의 묘수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얘기 하나가 들립니다. 지하철 3호선 연장 검토 소식입니다. 서울시가 타당성 용역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수원, 성남, 용인시민이 한껏 기대합니다. 청원도 시작했고, 서명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간단해 보이진 않네요. 기지창을 어디에 둘지, 서울과 협의는 어찌 풀 지가 다 숙제네요. 결국, 광역 행정으로 갑니다. 그래서 세 분을 찾게 됩니다. 힘을 합치면-협의체를 만들면 더 좋고- 수가 보일 것도 같아서 말입니다. 좋든 싫든, 시장님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거론될 겁니다. 용서 문제를 해결해 낸 시장님들로든지, 해결 못 한 용서 못 할 시장님들로든지. 主筆

[김종구 칼럼] 입시 지옥 지나면 취업 지옥 올 텐데

수능일이다. 아침밥을 먹고 있을까. 고사장을 가고 있을까. 시험 문제를 풀고 있을까. 어디에 있든 심장은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그게 55만 수험생의 심정이다. 그 아침상을 지키고 있었을까. 그 등굣길을 함께 하고 있었을까. 그 학교 정문을 붙잡고 있었을까. 무엇을 하든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게 수험생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런 날은 매년 있었다. 1982년 12월 2일 학력고사 당일. 그때도 학생은 초조했고 어머니는 간절했다. 오후 5시 40분 끝난다. 덕담을 해줘야 한다. 이제 끝났다. 37년 전에도 똑같은 덕담은 있었다. 그런데 의미가 달라졌다. 후련하기엔 뭔가 찜찜한 찌꺼기가 남는다. 끝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또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겨우 입시 지옥을 빠져나왔을 텐데. 그 애들에게 또 다른 지옥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입시 지옥보다 훨씬 치열하고, 답도 안 보이고, 형체도 알 수 없는 지옥. 취업 지옥을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이제 그 바늘구멍을 비벼대야 한다. 공무원 시험은 몇 급이든 고시(高試)다. 경기도에서 9급 되려면 25.1 대 1을 뚫어야 한다. 7급 되려면 63.58 대 1이다. 이공계가 낫다지만 이것도 거짓말이다. 공대 출신자의 75%가 전공과 무관한 곳에 들어간다. 전자를 공부했든, 건축을 공부했든 그냥 들어간다. 들어가 보면 듣도 보도 못하던 직장이다. 청년 실업률 7.3%에 청년 실업자 31만 3천명인 세상이다. 오늘 수능생이 가야 할 세상이다. 지난 9월 청년 고용률은 43.7%였다. 웬일로 조금 올랐다. 그러자 장관이 12년 만에 최고치라며 자랑했다. 그런데 이것도 말장난이다. 20대 비정규직 근로자가 136만2천명이다. 1년 전보다 23만8천명 늘었다. 비정규직이 제일 많은 연령은 60대다. 그다음에 20대 청년이다. 미안하지만 60대는 그래도 된다. 어차피 제2의 인생이다. 그런데 청년들은 아니다. 제1의 인생이다. 출발치곤 너무 슬프다. 이 길도 오늘 수능생의 앞에 있다. 다들 들어서 알 건 안다. 이미 취업 지옥을 각오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전공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51.8%가 취업 잘될 거 같아서라고 했다. 적성에 맞아서란 대답은 순위에 보이지도 않는다. 대학 가서 뭐 할거냐고 물었다. 취업에 도움될 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리 선택의 기준을 물었다. 역시 취업 스펙 쌓기를 들었다. 산학연(産學硏) 동아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오늘 수능생도 달리 선택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제때 졸업을 못 할 수도 있다. 작년 학사학위 취득 유예생이 1만3천185명이었다. 4년제 대학교만 따졌을 때 이렇다. 졸업에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다. 이유는 하나다. 실업자 공포. 실업 무서워 휴학을 택한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교 학생도 4천333명이다. 입학할 때는 세칭 인(in) 서울이라며 좋아했을 학생들이다. 그 애들이 4년, 6년이 지나면서 졸업 기피생이 됐다. 오늘 시험을 잘 본 수능생이라면 더 걱정된다. 1982년. 그때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이었다. 그래도 부모들은 꿈을 꿨다. 나보다 잘사는 자식을 확신했다. 경영대 합격하면 사장될 거라고 좋아했다. 법대 들어가면 판검사 될 거라고 자랑했다. 비슷하게 갔다. 사장은 아니어도 직원은 됐고, 판검사는 아니어도 공무원은 됐다. 이제 옛날 얘기다. 부모들의 꿈도 쪼그라들었다. 아침 출근만이라도 하는 자식을 기도한다. 자식은 열심이지만 더 바라지 못한다. 일 없는 나라라서다. 이제는 애들의 미래까지 거덜나고 있다. 4~5년 뒤 쌓일 국가부채가 1천조(兆)다. 전부 오늘 수능생이 지고 갈 빚이다. 그 애들이 5시 40분에 고사장을 나설 텐데 뭔가 덕담은 해줘야 하는데.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너희가 갈 대학에 낭만은 없다. 죽어라 학점 4.0 따고 토익 900점에 매달려라. 그래도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일 것이다. 어쩌면 그나마 없을지 모른다-. 이 실토가 참 힘들다. 그래서 꼰대 소리 듣는 기성세댄가. 갑자기 추워졌다. 바람이 따갑다. 취업 지옥 가는 입시 지옥스럽다. 主筆

[김종구 칼럼] ‘장형사’ '심형사`의 참회 또는 설명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살인범을 두둔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헌은 위헌이다. 대단한 식견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학교 시절 달달 외웠던 대원칙이 그렇다. 법률 불소급이라고 했다. 이춘재의 공소시효는 2006년에 끝났다. 뒤집으면 헌법 위반이다. 5ㆍ18 특별법이 전례(前例)라는 건 틀린 소리다. 5ㆍ18 특별법은 성공한 쿠데타의 공소시효를 따진 입법이다. 화나지만 이런 게 법이다. 이춘재는 법정에 서지 않을 것 같다. 혹, 특별법이 돼도 시원한 결말은 없다. 이미 20년 넘게 감옥에 있었다.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없다. 무기징역은 우리 법의 극형이다. 사형선고는 그저 선언일 뿐이다. 20명 죽인 유영철, 10명 죽인 강호순, 토막 살인범 오원춘도 다 살아 있다. 이춘재 특별법이란 게 내놓을 결론이라야 이거다. 집행되지 않는 사형선고이고, 무기징역과 차이 없는 사형선고다. 그래서 민심은 화난다. 살인죄 값을 치르게 할 수는 없겠냐고 묻는다. 마지막에 참회가 남는다. 교도소에서라도 무릎 꿇릴 필요가 있다. 2012년 미국에서 사형수가 처형됐다. 22년간 수감됐던 도널드 묄러(60)다. 아홉 살 소녀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죄수다. 사형 집행 현장을 소녀의 어머니(50)가 지켜봤다. 창 너머 그녀를 본 묄러가 말한다. 저 사람은 내 팬클럽인가요? 범죄보다 공포스런 마지막 아닌가. 이춘재를 묄러처럼 보내서야 되겠나. 참회를 시켜야 한다. 유족 앞에 엎드리게라도 해야 한다. 일단, 자백은 순순히 하는듯하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경찰의 전언일 뿐이다. 범인 특정 두 달, 그는 경찰 손에만 있다. 경찰이 전하는 정보가 전부다.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범행을 설명하고 있는 살인마 이춘재-이 모습이 경찰 설명으로 그려지는 이춘재다. 그 속 어디에도 참회는 없다. 말 안 되는 특별법 분노는 그래서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이춘재에게 고맙다고 한 사람이 있다. 윤모씨(52).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이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지금까지 그렇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춘재가 자백하지 않았으면 내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솔직히 이춘재에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런 윤씨가 경찰에겐 분노한다.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고 한다. 많이 맞았다고 한다. 잠도 안 재웠다고 한다. 너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젊음을 모두 감옥에서 보낸 윤씨다. 이춘재 고맙다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이쯤되니 생각나는 또 다른 참회(또는 설명)가 있다. 윤씨가 지목한 장형사 최형사 심형사다. 이춘재 자백 직후에는 당시 형사들의 해명이있었다. 정액 검사까지 나왔는데 무슨 강압수사냐고 했고, 범죄자의 영웅심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없어졌다. 이제 아무 말도 없다. 이춘재가 결정적 진술-피해자 시신의 특별한 흔적-을 했다고 해도, 경찰이 심정을 굳혀가고 있다고 해도 아무 해명이 없다. 아마도 계속 침묵할 듯 하다. 뭔 소리라도 좀 듣고싶다.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가 담을 넘어가 13세 소녀를 강간하고 죽인 범인이 됐다. 지금 그 수사의 잘못이 불거졌다. 내가 죽였다는 자백이 나왔다. 이쯤되면 형사들이 말해야 한다. 억울하면 설명해야 하고, 사실이면 참회해야 한다. 어차피 이 수사도 공소시효는 끝났다. 처벌도, 징계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참회 또는 설명만 남았다. 이춘재가 그런 것처럼. 영화 살인의 추억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 관객 상상에 모든 걸 맡겼다. 하지만 재심 화성 8차 사건은 결론이 날 것이다. 판사가 결정문으로 읽을 것이다. 그 과정도 곧 시작될 것이다. 이춘재가 얼굴을 드러낼 것이고, 범행 현장이 설명될 것이고, 그만의 증거가 발표될 것이다. 때론 언론이, 때론 법정이 세상을 향해 그 진실을 중계할 것이다. 그래서 생존해 있는 장형사 심형사에게 남아있는 고백의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않는다. 主筆

[김종구 칼럼] ‘언론인 유시민’이 챙긴 ‘정치인 유시민’

유튜브 언론인으로 취재차 전화했다. 다시 들어봐도 절묘한 해명이다. 안 그랬으면 온갖 비난을 샀을 상황이다. 전화했던 시기 자체가 민감했다. 최성해 총장이 총장상 위조 폭로를 했을 때다. 언론이 여권 유력 인사들 압력성 전화라고 썼다. 김두관 의원은 아는 사이라 조언한 것이라고 했다. 비난만 더 샀다. 유시민은 달랐다. 나는 언론인이고, 그래서 취재했다고 했다.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언론인 유시민이 됐다. 그러면서 언론인 유시민의 모순도 시작됐다. 모든 취재는 보도를 목적으로 한다. 보도가 안 되는 취재는 두 경우다. 하나는 기삿감이 안 되는 경우다. 최 총장은 취재 대상 1호였다. 기삿감은 충분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른 하나는 말아 먹는 것이다. 대개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해당된다. 어느 경우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는 보도하지 않았다. 통화 사실조차 숨기고 있었다. 타 언론이 이랬다면 당장 편집국장 탄핵할 일이다. 한 달여 뒤엔 언론을 공격했다. KBS 법조팀의 인터뷰를 문제 삼았다. 정리하면 KBS가 인터뷰 당사자(김경록)의 의도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다. 그러면서 신의성실원칙 위반이라고 했다. 왜 언론이 취재 대상 입맛대로 따라야 하나. 취재 대상의 말이 반드시 진실이라고 누가 단정하나. 언론의 책임은 검증 없는 보도가 아니라 걸러내기에 있다. 언론인 유시민도 그랬다. 김씨 말을 추려내고 가려 썼다. 신의성실도 책임이 전제될 때 얘기다. 그제는 공정 언론을 얘기했다. 언론의 왜곡을 바로잡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자. 지난 한 달여간 그는 진보의 첨병이었다. 조국 구하기로 모든 논리를 풀었다. 이를 보며 많은 국민이 환호했다. 그렇다고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공정 언론으로 정의되진 않는다. 애초부터 세상 언론은 누군가엔 편파다. 마르크스의 라인신문도, 레닌의 프라우다도, 그리고 자본 미국의 많은 언론도 누군가에겐 극악무도한 편파언론이었다. 많은 욕이 언론인 유시민을 향했다. 전에 없던 평까지 나왔다. 총기를 잃은 듯하다. 과연 그럴까. 유시민은 총기를 잃었을까. 언론이라면 이골이 났을 그다. 진영에 줄 선 언론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그다. 그 구획은 권력도 어찌할 수 없음을 잘 알 그다. 자신의 언론 행보가 모순됨도 모르지 않았을 그다. 취재였다면서 보도하지 않은 모순, KBS 욕하면서 자기도 각색하고 있다는 모순. 그런데도 그는 억지스럽게 직진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대답할 리는 없고, 대신 지금 정치 상황을 보자. 김경수 지사는 일찌감치 묶였다. 안희정 전 지사는 돌아올 수 없다. 이재명 지사도 위기의 끝자락에 있다. 이 판에 조국 장관마저 떠났다. 대권 후보들이 몰락했거나 몰락 중이다. 어느새 대권 운동장이 텅 비었다. 남은 건 유시민과 박원순이다. 이리 되고 보니 유시민 만의 확실한 공이 생겼다. 당신들은 조국 논란 때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만이 할 수 있는 답이다. 치매 취급받으며 싸웠다. 사람들이 유시민을 너무 가볍게 봤다. 그는 이슈 잡아먹기의 달인이다. 대형 이슈마다 열매는 그가 가져갔다. 행정수도 이전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날 TV 토론에 투사로 그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가결됐다. 그날 가장 처참하게 나뒹군 게 그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의 영전에 담뱃불을 그가 올리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에 그는 언론인으로 뛰어들었다. 한 달여를 우당탕 흔들어댔다. 그러더니 또 주인공이 됐다. 언론인 유시민이 잃은 것? 그는 본디 언론인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잃을 것도 없었다. 이래서 정치인 유시민이 여전히, 그리고 무섭도록 총명하다는 것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부르주레타리아’-배반의 新계급

부르주아적 특권을 향유하면서 프롤레타리아적 혁명을 말하는 것. 노동 귀족 계급이다. 부르주아적 자산을 움켜쥐고서 프롤레타리아적 평등을 말하는 것. 공산 귀족 계급이다. 이들은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를 버린 적이 없다. 여전히 그 이익 속에 산다. 그렇다고 프롤레타리아적 혁명 구호를 버리지도 않는다. 여전히 외쳐대긴 한다. 눈앞의 사익과 혁명의 결실을 둘 다 가지려는 계급, 부르주레타리아(bourg-letariat)다.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썼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동직조합의 우두머리와 직인, 요컨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여, 때로는 숨어서 때로는 공공연한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해 왔다. 그러나, 부르주레타리아 노동자는 선언 속 동직조합 우두머리를 따라간다. 다른 노동자와 차별화된 특권을 추구한다. 다른 노동자와 견줄 수 없는 부를 축적한다. 특정 노동 집단만의 세계다. 필연적으로 다른 노동집단과 투쟁한다. 그들만의 권력과 부를 위한 배타적 투쟁이다. 자본가와의 투쟁은 어느덧 다른 노동자와의 이익 투쟁으로 바뀌어 있다. 노동자를 팔아 만든 특정 노동자들만의 세상이다. 노동자 배반이다. 공산당 선언은 또 이렇게 썼다. 부르주아적 가족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자본에, 사적 영리에 근거하고 있다이러한 상태가 진행되면 결국 프롤레타리아에게는 가족이 실제로 사라질 것이며. 그러나, 부르주레타리아 가족은 선언 속 부르주아 가족을 따라간다.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가족의 부를 축적한다. 부의 대물림이 그 중 하나고, 자본가적 투기가 다른 하나다. 자녀 교육도 철저하게 자본에 의한다. 유학을 통한 특수 지위 획득이 하나고, 인맥을 통한 기득권 행사가 다른 하나다. 프롤레타리아의 붉은색 명패를 문 앞에 달고, 부르주아의 화려한 가구로 집안을 채운 가족이다. 무산(無産) 대중 배반이다. 공산당 선언은 위대했다. 그 가치를 두고 1억 명이 죽어나갔다. 나라와 민족이 갈라서기도 했다. 이 시대에도 바뀐 건 없다. 1999년 BBC가 설문했다. 1천 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greatest thinker)는 누구인가 선언의 주창자 마르크스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중간계급을 논하지 않았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만을 말했다. 갈라진 두 계급의 투쟁만을 설명했다. 다만, 선언 한 귀퉁이에 소름 돋는 예언이 있다. (혁명이 진행되면) 역사적인 운동 전체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까지 높여진 부르주아지 사상가의 일부가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서게 된다. 얼치기 프롤레타리아 출현에 대한 예언이었을까. 170년이 흐른 지금, 그 예언이 정확하게 맞아간다.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가 비유했다. 천국이 있는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산당 선언의 검증 역사가 그렇다. 공산주의의 정확한 모습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소련 공산당의 실패에도 많은 청년들이 선언을 떼어 놓지 않는 이유다. 이들 청년들에게 부르주레타리아는 배반의 계급이다. 노동자 계급의 숭고함을 팔아먹는 배반의 계급이다. 노동자 계급의 희망을 박탈하는 배반의 계급이다. 자본가 계급의 특권을 추구하는 배반의 계급이다. 자본가 계급의 풍요함을 쫓아가는 배반의 계급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서문을 이렇게 열었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확신이었다. 프롤레타리아의 탈을 쓴 부르주아의 탐욕이 군림하는 이 시대, 그 서문에는 이제 다음과 같은 첨언이 더해져야 한다. 또 다른 유령이 지금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부르주레타리아라는 배반의 유령이 主筆

[김종구 칼럼] 曺 개혁 장관의 反 개혁 작품-공보준칙 강화

토요일인데 뭐해. 박 계장의 전화였다. 시간 있으면 법원 영장계 가 봐. 뭔가 있다는 귀띔이다. 서둘러 법원으로 갔다. 담당 직원 옆에서 미적댔다. 판사실 올려야 하니까 빨리 보세요. 문제의 영장을 찾아냈다. 무직이라고 적힌 표지를 넘겼다. 가슴 떨리는 단어들이 보였다. 대통령청와대서울시 부시장사기. 반은 눈에, 반은 머리에 담아왔다. 다음날 1면에 큼직하게 썼다. 대통령 친 동서, 사기 혐의 구속. 1998년 YS 동서 사건이다. 몇 번 없는 단독보도였다. 방송, 신문이 불을 뿜었다. 대통령 동서가 사기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청와대를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직 서울 부시장 연루 의혹도 있습니다. 감추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박 계장이 어긴 것이다. 검찰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오후에 특수부장실을 들렀다. 항의를 각오했다. 그런데 노상균 부장이 웃는다. 잘 썼어. 미친놈들. 이런 게 감춘다고 감춰지느냐고. 법(法)으로 보자. 딱 떨어지는 위법이다. 피의사실을 무단히 공표했다. 무단 공표의 행위자가 검찰이다. 피의자는 인권을 침해당했다. 세상천지에 다 공개됐다. 당연히 처벌이 따를 일이다. 박 계장은 징계감이었고, 검찰은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나도 불법 유출된 피의 사실을 썼다. 수많은 기자들은 그 기사를 받아썼다. 나도, 그 기자들도 모조리 불법 행위자다. 하지만, 넘어갔다. 부장검사는 되레 잘했어라며 웃었다. 현실(現實)로 보자. 피의자는 대통령 동서다. 드나든 곳은 청와대다. 서울시 부시장과도 어울렸다. 이 모든 게 사기의 수단이었다. 대통령 청와대 서울 부시장. 범인(凡人)의 눈엔 모든 게 권력의 단어다.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따져 물어야 할 범죄다. 이런 사건을 두고 누가 슬그머니 넘어가자 하겠나. 청와대와 서울시, 가족들이라면 몰라도. 공개한 검찰의 잘못이 아니다. 공개하지 말라고 한 권력의 잘못이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하나는 잘 지켜져 왔다는 믿음이다.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는다. 관심을 끄는 사건일수록 더 그렇다. 노무현정부 많은 사건, 이명박ㆍ박근혜정부 많은 사건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른 오해는 피의사실 비공개가 곧 선(善)이다란 믿음이다. 굵직한 사건일수록 숨기고 싶어 한다. 부패한 권력은 더욱 그런다. 이걸 덮어줘야 하나. 그들에겐 선일 게 맞다. 하지만, 국민에까지 선일까. 흉악범 얼굴 공개도 원래는 금지였다. 그러다 2010년부터 바뀌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계기였다.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내 아들은 어떻게 하라고란 강호순 주장에 공분이 일었다. 오원춘부터 고유정이 그래서 다 공개됐다. 알 권리에 대한 국민 요구가 바꿔 온 흐름이다.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민심도 똑같다.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그러면 알도록 해야 한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것이 지금 형법이 가는 방향이다. 다들 조국 장관을 개혁 장관이라 한다. 논란 속에 취임했다. 그를 택한 대통령의 워딩도 검찰 개혁 적임자였다. 취임 이후 행보도 그렇게 간다. 고(故) 김홍영 검사 묘를 찾았다. 검찰 개혁단 구성을 마쳤다. 조만간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게 있다. 검찰 공보준칙 개정안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막는 개정이다. 피의자 사진 촬영을 막는 개정이다. 왜 하필 이런 게 개혁 장관의 1호 작품일까. 전임 장관이 시작한 작업이라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때였을 거다. 말 안 듣는 동부 지검 때문에 고민한 듯하다. 엄밀히 조국 표(標)는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완성자가 조 장관이다. 시행을 결재한 서명자도 조 장관이다. 시행을 얼마간 미뤘다지만, 달라질 건 없다. 개혁 장관 조국의 첫 번째 개혁은 공보준칙 개정이 됐다. 높은 사람 소환할 때 사진 못 찍게 하고, 수사내용 공개한 검사를 엄벌하는 개혁 말이다. 뭐가 급하다고 이런 것부터 내놓나. 여론에 밀려날 걸 뭐하러 시작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롭지 않은 두 단어-개혁 장관과 공보준칙 강화-다. 1998년, 박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정보 따서 해보려는데, 위에서 덮으라니까. 그런 게 검찰이다. 안 하는 수사는 없다. 못하는 수사가 있을 뿐이다. 개혁으로 뚫어줘야 할 구멍도 이런 거다. 못하는 사건 없애주고, 못하게 하는 권력 막아주는 거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투명성 확보다. 국민 앞에 더 당당한 수사 과정 공개다. 그런데 개혁장관의 1호 개혁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한참 먼 틀어 잠그기였다. 主筆

[김종구 칼럼] 독도는 항일 이벤트의 소재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얻었나. 우리 땅에서 우리 땅이라 소리친 것뿐이고, 경찰 있는 땅에 군이 잠시 상륙했을 뿐이다. 일본엔 무엇을 주었나. 분열됐던 저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줬고, 기대도 않던 미국의 응원을 얻게 해줬다. 무엇이 잘못인가. 경제로 싸우다가 땅을 꺼낸 게 잘못이고, 우리 화두가 아니라 저들 화두를 띄운 게 잘못이다. 어찌해야 했었나. 눈치 보느라 중단하지 말았어야 했고, 엇각 났다고 흥분하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부터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일본과 싸움의 본질은 경제전(戰)이다. 맞설 무기도 경제여야 한다. 일산 불매운동이 그런 투쟁이다. 일본 제품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의지다. 일본 기술 따라잡기도 불을 뿜고 있다. 일본이 독점해 온 돔 스위치가 개발됐다. 그 작은 회사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이런 때 정부가 뺀 카드가 독도 훈련이다. 느닷없다. 경제로 싸움하다가 왜 땅을 들먹이나. 그것도 명백한 우리 땅을 말이다. 일본이 아주 살판났다. 언론들이 좌우 구분없이 집결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사설까지 동원했다. 독도 훈련 한 한국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 국회의원 마루야마 호다카(丸山高)는 전쟁론까지 폈다. 다케시마가 정말로 협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냐며 흥분했다. 반한감정도 커졌다. 일본인 67%가 한국 수출규제에 찬성했다. 7월 조사 때보다 9%p 늘었다. 반(反)독도 훈련으로 하나 된 일본이다. 아베만 좋을 일 시켰다. 미국도 뛰어들었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직접 밝혔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악화시킬 뿐. 독도에 관여하지 않던 미국이다. 20년 넘는 훈련에도 논평 한 번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뛰어들었다. 국제 사회가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이 독도 영유권에서 일본 손을 들었다고 해석할까 봐 걱정이다. 한미 방위비 협상을 옥죄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 미국은 독도 훈련에서 일본편에 섰다. 그러면 당당함이라도 챙겼나. 이것도 찜찜하다. 1986년부터 해온 독도 훈련이다. 매년 두 차례씩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4번 했다. 그러다가 중단했다. 이유를 정부가 설명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 입장 고려. 결국, 일본 눈치를 봤다는 얘기다. 일본에 더 없이 강경한 정부다. 친일을 청산 적폐 1호로 꼽는다. 그런데 한 켠에서 독도 훈련을 생략해주고 있었다. 국민은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게 당당한가. 훈련 얘기가 나온 건 8월 초다. 그때도 나는 이렇게 썼다. 대일 투쟁의 하나가 우리 땅 상륙 훈련인가. 독도 분쟁화의 빌미만 줄까 봐 걱정이다(2019.8.6. 사설). 일본이 역 이용할 것이라고 썼고, 미국이 우리 편에 안 설 것 같다고 썼다. 20여 일 뒤 훈련이 실시됐다. 상황이 예상대로 갔다. 일본은 다케시마 정신으로 똘똘 뭉쳤고, 미국 국무부는 비생산적이라며 딴죽을 걸었다.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도 남은 게 없다. 이제 훈련은 끝났다. 생각하면 우리 땅에서 한 우리 훈련이다. 더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더 해봐야 일본만 좋게 해줄 일이다. 다만, 한 가지는 일러두고 싶다. 당당한 독도 정책? 그건 우리 방식 대로의 정책이다. 1년에 두 번 훈련하게 돼 있다. 그러면 두 번 해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두 번 해야 한다. 일본에 궁하다고 줄일 필요 없다. 일본에 화났다고 늘릴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어떤 땅, 어떤 섬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 대단한 아이디어라며 내놨을 법한 이번 최대 규모 독도 훈련. 이제는 이런 교훈이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독도를 대일 외교의 지렛대 삼는 일. 독도를 항일 정국의 소재 삼는 일. 이런 게 다 일본 다케시마 정책만 도와주는 일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교회 세습? 故안중섭 목사를 추억하며

늘 흰색 고무신을 신었다. 양복 차림 때도 신었다. 그런 고집이 곧 신앙이었다. 성경 속 원칙을 철저히 따랐다. 정치에 대해서는 특히 엄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표밭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계산한다. 그래서 선거만 되면 나타난다. 아무개 의원님 오셨습니다. 이런 소개를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애태웠던 정치인들이 꽤나 많았다. 1980년대 수원제일교회다. 거기 당회장, 고(故) 안중섭 목사다. 수원제일교회를 키운 장본인이다. 1966년 부임해 무섭게 성장시켰다. 수원을 대표하는 교회가 됐다. 가장 큰 교회가 됐고, 가장 힘 있는 목사가 됐다. 하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떠날 때도 평신도들과 똑같았다. 운명한 그날의 순서를 따라 안장됐다. 목사라 해서 특별한 곳에 묻지 말라는 그의 뜻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개발 수요에 밀려 교회 묘지가 옮겨졌다. 그제야 장로들이 이러면 안 된다며 조금 나은 곳으로 모셨다. 아들 둘이 목사다. 일찍부터 그 길을 갔다. 한 명쯤 그의 뒤를 이을 줄 알았다. 장로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 봤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이 교회 50년 신도 박장순 안수집사가 증언한다. 아들을 수원제일교회 목사로 세우는 얘기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두 아들도 아버지 뜻을 따랐다. 형 목사는 해외에서, 동생 목사는 국내에서 목회를 했다. 후임은 이규왕 목사였다. 그도 똑같이 따랐다. 20년 열심히 일했고 박수받으며 퇴임했다. 모두 수원제일교회 같았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다. 그 사달이 명성 교회 세습으로 터졌다. 설립자인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담임직을 물려줬다. 교인들이 반발하고, 종교재판까지 열렸다. 참으로 볼썽사납다. 그런데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그 실태를 조사했다. 정식으로 접수된 교회만 143개다. 모두 대물림하고 세습한 교회다. 자식에 줄 개인 선물쯤으로 여기는 교회다. 그 수법이 기가 차다. 세상을 속이는 해괴한 변칙이 다 등장한다. 자녀 목사에게 독립된 교회를 세워준 뒤, 본(本) 교회와 합친다. 합병에 의한 교회 세습이다. 규모가 비슷한 교회 목사끼리 상대 자녀 목사를 받아준다. 교차부임에 의한 세습이다. 외부 목사를 초빙한 뒤, 사임시키고 자식에게 물려준다. 징검다리 세습이다. 일반 회사였다면 벌써 감옥 갔을 일이다. 상법(商法)ㆍ상속법(相續法)에 걸려 패가망신했을 일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도덕은 인간의 규율이다. 도덕은 최소한의 성경이다. 성경은 성직자의 규율이다. 세인(世人)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성직자들이 이제는 인간의 마당에 막 뛰어든다. 그리고 싸운다. 이 교회는 내 것이라고 싸우고, 내 아들한테 주겠다고 싸운다. 그 싸우던 입으로 또 설교할 거 아닌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강권할 거 아닌가. 성경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나. 자식에 교회 물려주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나. 1983년 한 남자가 죽었다. 신앙이 깊지 않았다. 암(癌) 때문에 교회를 찾았다. 고침 받고 싶어했다. 안 목사가 챙겼다. 볼 때마다 기도해줬다. 가난한 그의 초상집을 찾았다. 남자 관(管)에 손을 얹었다. 기도가 오래가지 않았다. 머리를 숙인 채 관만 쓰다듬었다. 그 사이로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남자의 어린 아들이 그걸 봤다. 그 순간의 안 목사는 아버지를 인도할 천국의 사자(使者)였다. 중년이 된 아들에게도여전히 남은 추억이다. 고(故) 안중섭 목사. 그가 세습한 것은 교회가 아니다. 대(代)를 이어 추억하는 신도들의 마음이다. 그 시효 없는 자산을 영원히 교회에 남겼다. 이게 우리가 아는 성직자의 길 아닌가. 한국 교회, 정신차려야 한다. 主筆

[김종구 칼럼] ‘K-Rock’ 키우기, 그리고 ‘Rock-산업’ 키우기

하이웨이 스타, 스모크 온 더 워터, 차일드 인 타임. 모두 락 그룹 딥퍼플(Deep purple)의 노래다. 딥퍼플은 락 역사의 전설이다. 가장 클래식한 락 음악으로 꼽힌다. 최고의 키보드 주자 존 로드의 영향이다. 가장 시끄러운 음악으로도 꼽힌다. 최고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이다. 딥퍼플 음악은 곧 이 둘의 음악이다. 학생 밴드라면 모두가 이 둘을 목표로 삼았다. 존 로드 연주, 리치 블랙모어 속주가 곧 꿈이었다. 결성된 게 1968년이다. 반백년도 더 전이다. 그 사이 모든 게 달라졌다. 보컬 이언 길런의 샤우팅은 옛말이다. 그때의 차일드 인 타임이 아니다. 드러머 이언 페이스의 광적인 스피드도 옛말이다. 그때의 화이어 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었다.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했다. 44년 전이다. 존 로드는 사망했다. 2012년 일이다. 냉정히 그 딥퍼플은 없다. 전설이 바뀌었다는 건 아니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바뀐 딥퍼플이 유독 자주 찾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1995년에 처음 내한했다. 이미 원형 없는 딥퍼플이었다. 그런데도 매진됐다. 30년을 기다린 향수였다. 때마침 시작된 락페스티벌 열풍도 한몫했다. 그 이후 많은 딥퍼플류(類)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었다. 언론도 덩달아 이들의 출연 여부로 페스티벌의 수준을 갈랐다. 이들이 안 나오면 무게감 없는 공연이라고 했다. 이 한심한 기준은 요즘도 등장한다. 바뀌어야 한다. 한국에서만 유독 판치는 추억 팔이다. 이제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야 한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있었다. 락계에 남은 전설적인 페스티벌이다. 기타 줄을 물어뜯던 지미 헨드릭스로 유명하다. 바로 그 무대의 첫날 첫 주인공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였다. 신인이다. 둘째 날은 산타나(Santana)가 열었다. 역시 신인이다. 그날 이후 둘은 전설이 됐다. 우리네 락페스티벌도 그렇게 가야 한다. 또 하나는 산업화다. 1972년 딥퍼플의 앨범 한 장이 나온다. 딥퍼플, 메이드 인 재팬(Deep Purple, Made in Japan). 일본 공연을 담은 판이다. 락의 3대 명반(名盤)이라며 지금도 팔린다. 이 앨범으로 일본은 세계 음악산업의 중심이 됐다. 우리 락페스티벌도 그렇게 가야 한다.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 K-POP은 이미 세계를 씹어 먹었다. K-ROCK도 그렇게 갈 수 있다. 락페스티벌이 물꼬를 터 줘야 한다. 요 며칠, 팬들이 화났다. 뮤직 페스티벌이 줄줄이 무산됐다. 어느 락페스티벌은 공연 사흘 전에 취소됐다. 다른 뮤직페스티벌은 공연 당일에 취소됐다. 팬도, 출연 뮤지션도 어이없어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데, 알고 보면 간단하다. 앞서 말한 걸 못했다. 새로운 전설을 만들지 못했다. 그저 추억팔이에만 매달렸다. 산업과 연결하지 못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도박만 계속했다. 그렇게 십수년을 반복했다. 안 무너지고 배기나. 이제 한 곳 남았다.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다. 봤더니 순항 중이다. 예정된 대로 간다. 출연진 예고도 견고하다. 그 속에 그럴 만한 이유가 보인다. 탄탄하고 정확한 투자로 시작했다. 최고의 과거 밴드를 불렀다. 여기에 이 시대 최고 밴드까지 더했다. 한국 락밴드의 최고봉을 모았다. 여기에 락의 미래를 책임질 신예들도 더했다. 그들을 뽑는 경연장에서 이미 열기는 시작됐다. 분명한 목표가 차이의 시작이었다. 락(Rock)은 사람(人)이다.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남았다. 여전히 세계 시장(市場)도 열려 있다. 한국의 락페스티벌도 이제는 이런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함께 숨 쉬게 하고, 세계 락과 한국 락을 함께 경쟁하게 하고, K-ROCK과 ROCK-산업을 함께 들썩이게 해야 한다. 이 모든 희망을 품은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설레임을 다잡고 기다려보자. 주필

[김종구 칼럼] 이재명·염태영戰 Ⅳ

이래저래 전해진 정보는 이랬다. -이재명, 안병용, 염태영 순으로 자리가 배치됐다. 이 지사가 대선배님이신 안 시장님이 신임 시장군수협의회장에 올라 기쁘다며 인사말을 했다. 안 시장은 (1년 전) 염 시장이 갑자기 경선을 해 1년간 우울하고 슬펐다. 오늘도 혹시 경선을 제안하면 어쩌나 걱정했다며 소감을 피력했다. 이 지사와 염 시장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역력했다-. 18일 도-시ㆍ군 정책협력위원회 모습이다. 2018년 6월 말로 올라간다. 민선 7기 당선자들이 모였다. 차기 시장군수협의회장을 뽑았다. 안병용 의정부 시장을 내정했다. 이 지사의 천거가 있었다. 며칠 뒤 사달이 벌어졌다. 해외에 있던 염태영 수원시장이 반발했다.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경선을 통해 염 시장이 선출됐다. 염 시장은 이 지사의 의중이라며 서운해했다. 이 지사는 염 시장의 반기로 해석했을 듯하다. 안 시장이 말한 우울한 1년이 이거다. 한 번의 정보로 판단한 게 아니다. 비슷한 정보가 계속 이어진다. 몇 달 전 정보다. -회의에서 염 시장이 도지사에 인사말을 권했다. 이 지사가 왜 지시하냐며 불쾌해했다-. 엊그제 현충일 참배 때 올라온 정보다. -염 시장에 이어 이 지사가 참배했다. 참배자 소개 때 일부 참석자가 손뼉을 쳤다. 이 지사가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이런 정보들이 많다. 기자들도 이제 다 안다. 둘의 표정을 살피는 게 필수 취재 거리가 됐다. 그 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다. 버스요금 인상을 두고 갈등했다. 경기도가 버스요금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시군의 이견이 여럿 있었다. 협의회장 도시인 수원시가 앞장섰다. 도와 시ㆍ군간 사업 예산 분담 비율 조정 건도 있었다. 경기도 분담률을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협의회장인 염 시장이 밝혔다.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구성도 있었다. 현금성 복지 등의 남발을 자제하자는 취지다. 염 시장이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버스 요금 인상 건은 도 결정에 대한 이견이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사업비 분담률 재편 요구는 도 재정에 대한 압력이다. 결론이 그렇게 간다.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는 경기도 복지에의 견제다. 현금성 복지는 이 지사의 상징이다. 염 시장에겐 할 수 있는 주장일 수 있다. 이 지사에겐 해선 안 될 소리일 수 있다. 서로 다르게 해석되는 듯하다. 이런 간극이 만들어내는 냉랭함이다. 이제 지켜보는 이들도 아슬아슬하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경기도지사와 수원시장이 충돌했다. 행사장마다 냉랭한 모습이 이어졌다. 둘을 쫓아 경기도와 수원시도 충돌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시민의 피해가 나타났다. 수원시 예산이 뭉텅이로 깎였다. 돈이 없어 도로도 못 넓혔다. 도시 개발 청사진도 다 막혔다. 광교신도시의 전신인 컨벤션시티 21 계획도 그래서 무산됐다. 도지사도 피해를 봤다. 거물답지 않은 싸움이라며 받은 상처가 컸다. 지금과 달랐던 그때다. 관선(官選)의 관습이 지배하던 때다. 상명하복의 관계가 분명하던 때다. 도지사와 시장 충돌이란 단어조차 금기어였다. 이제 달라졌다. 시장도 할 소리 있으면 한다. 도청 회의도 가기 싫으면 안 간다. 지사와 SNS 설전도 격렬히 한다. 하지만, 그 속에도 바뀌지 않은 건 있다. 여전히 도지사 결재는 남았다. 여전히 도청 예산은 받는다. 염 시장도 그래서 말한다. 시장이 지사와 갈등하면 시민만 피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다. 그러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 지사도, 염 시장도 더 가면 안 된다. 염태영ㆍ이재명戰을 세 번 썼다. 그 마지막 편-2017년 8월 9일 자-의 마지막이 이랬다. 2년 뒤 언저리에서 둘은 충돌할 것이다. 보름 있으면 꼭 2년이다. 조심스레 써놨던 맺음말인데, 그 게 맞았다. 충돌은 몰라도 갈등 중임이 분명하다. 아슬아슬함을 보며 이번엔 이렇게 적어둔다. 갈등까지는 괜찮다. 싸움으로 번지면 안 된다. 이 지사에겐 격 떨어지는 싸움이고, 염 시장에겐 손해뿐인 싸움이다. 두어 달 뒤가 걱정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어제는 적폐 기업인, 오늘은 ‘함께 싸우자’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불렀다. 30대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협의를 했다. 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서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서는 3실장도 모두 참석했다. 그만큼 무게를 둔 자리였다. 언론은 민간 외교 기대라는 주석을 달았다. 일본 인맥을 가진 기업인들을 꼽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다. 허 회장은 일본의 게이단련과 대화해왔다. 한일 관계가 경색을 보이던 지난해 말부터다. 구 회장은 매년 3ㆍ4ㆍ5월에 일본을 찾는다. Nikko 동제련, 히타치 등과 인맥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은 부친부터 이어 온 일본통이다. 직접 일본 미쓰비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불참한 기업 총수는 둘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다. 이 부회장의 일본 인맥은 광범위하다. 창업주 이병철, 부친 이건희로 이어져 온 인맥이다. 경제계는 물론 정계에까지 닿아 있다. 신 회장의 일본 지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룹의 출발이 일본 롯데다. 지금도 일본 롯데는 건재하다. 둘 다 일본에 있다. 경제 보복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날아갔다. 일본 언론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다. 일본이 독하게 덤빈다. 전후(戰後) 처음으로 뽑은 특정 국가 상대 경제 보복이다. 선거용이라는 해석은 우리 정부의 바램일 뿐이다. 58%의 일본인이 한국을 더 옥 죄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아베 지지율(51%)보다도 높다. 우리 정부가 집어들 패(牌)가 별로 안 보인다. 민간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그래서다. 경제는 민간의 영역이다. 정치와 무관히 돌아가는 그들만의 바퀴가 있다. 이걸 돌파구로 삼아보자는 게 대통령 당부다. 그런데 참석한 총수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 전과자다. 허창수 회장의 GS그룹은 공정위가 털었다. 발주 담합으로 과징금 물고 검찰에 고발당했다. 구자열 회장의 LS그룹은 국세청이 털었다. 총수 일가의 배임, 탈세 등 혐의다. 조현준 회장의 효성그룹은 한두 건이 아니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은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판에 계류 중이고, 신동빈 회장은 교도소에 다녀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반기업-친노동-이다. 출범 후 쉬지 않고 기업을 몰았다. 갑질 적폐로 몰았고, 세습 적폐로 몰았고, 국정 농단 적폐로 몰았다. 기업 수사ㆍ조사ㆍ감사 없는 날이 없었다. 그랬던 전과자 총수들을 대통령이 불렀다. 정부와 손잡고 일본을 이겨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총수들은 하나같이 그러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염치없는 대통령인가. 아니면 속없는 기업인들인가. 참으로 보기 민망한 모양새다. 임진왜란(1592년). 그때 우리 국력은 어땠을까. 인구 1천~1천400만명, 농업생산량 1천200만석 정도였다. 일본이 인구에서 1.3배, 농업생산량에서 1.5배 많았다. 그 일방적 싸움을 구한 건 이순신이었다. 그 이순신을 1597년 정치는 감옥에 넣었다. 짐이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로되(1597년 3월 13일ㆍ승정원일기).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전쟁터로 보냈다. 거기서 이순신은 죽었다. 기해년(2019년). 이 시대 국력은 어떨까. 2019 GFP(국방력) 순위 한국 7위, 일본 6위다. 2018년 GDP 순위 한국 12위(1조6천194억달러), 일본 3위(4조9천709억달러)다. 이 일방적 싸움을 이번엔 기업이 버티고 있다. 반도체가 소니를, 디스플레이가 재팬디스플레이를 누르고 있다. 이 기업을 2019년 정치는 어떻게 했나. 갑질로, 세습으로, 국정 농단으로 처단했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불렀다. 힘을 합쳐 싸우자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다시 이순신을 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해왜란(己亥倭亂)도 다시 기업인을 원하고 있다.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5년짜리 눈으로는 안 보이고, 420년짜리 눈으로만 보이는 역사 속 궤(軌)다. 主筆

[김종구 칼럼] 판결의 신뢰, 그리고 판결문의 사족

J판사의 영장 기각률 60%. 나머지 판사들의 기각률 5%. 1990년대 수원지법 얘기다. 영장전담판사 제도가 없었다. 당직 판사가 영장을 심사했다. J판사의 기각률이 유독 튀었다. 기자 여럿이 말했다. 판사에 따라 들쭉날쭉한 건 문제다. 꼬투리를 잡겠다고들 덤볐다. 그의 기각 사유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어떤 기삿거리도 찾지 못했다. 빌미를 주지 않는 기각사유였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 없음. 그로부터 십수 년 지난 2009년. 그가 내부망에 글을 올린다. 대법관 거취에 대한 견해다. 당시 파문이 컸다. 그 글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위의 형태가 현행법에 저촉된 바가 있다면 그에 따라 결론을 내면 그만입니다. 판사의 입장에서는 진보세력이 보수정권에 대항하여 시위를 했건, 보수세력이 진보정권에 대항하여 시위를 했건 그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J판사다웠다. 영장 60%를 기각해버리던 그 다웠다. 돌아보면 판사들이 대개 그랬다. 판결문은 철저히 법어(法語)로 썼다.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만 봤다. 증거 있으니 유죄라고 썼고, 증거 없으니 무죄라고 썼다. 영장 심사도 그랬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만 설명했다. 있으면 구속하라 썼고, 없으면 풀어주라 썼다. 오로지 핵심만 논하는 판사들의 언어였다. 초년 법조 기자 땐 그걸 성의없다고 여겼다. 출입 경험이 늘면서 달리 보였다. 판결문의 힘은 단조로움에 있다. 그랬던 판사들의 법어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저런 사족(蛇足)이 늘어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환경부 체크리스트-사건이 그랬다. 판사가 김은경 전 장관 영장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로 600자를 적었다. 그 속에 여러 표현이 등장한다. 최순실 일파 국정농단이라 썼다. 별개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적 표현이다.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도 했다. 기각 논리의 출발을 법외(法外)에서 찾고 있다.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도 했다. 범의(犯意)를 주관적으로 계량화해 낸 표현이다. 세월호 특조위 방해 판결 때도 그랬다. 서두에 이런 설명이 등장했다. 재판부로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종료하게 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판결이 아니었다면 따뜻한 말이다. 안쓰러움을 전한 말이다. 하지만, 판결을 선고하는 자리다. 조윤선에 유죄를, 안종범에 무죄를 정하는 판결이다. 여기서 명복을 비는 수사(修辭)가 필요했을까. 짐작되는 바가 없진 않다. 1990년대와 환경이 다르다. 판사의 모든 것이 파헤쳐 진다. 판결문도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어떤 기업인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다. 기각한 판사의 모든 게 폭로됐다. 그 기업인에 대해 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판결문이 음절까지 분석됐다. 30년 근무 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말한다. 요즘 판결문 쓰기 참 무섭습니다. 이래서 길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가 사족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답이 없다. 60자 기각사유와 600자 기각사유. 어느 쪽에 옳고 그름이 있나? 없다. 사족 없는 판결문과 사족 있는 판결문. 어느 쪽에 옳고 그름이 있나? 없다. 다 같은 기각 사유고 판결문이다. 그럼에도, 이 논제를 끄집어 내 보는 이유는 있다. 판결문은 여전히 정의를 가려내는 보루다. 기각과 무죄가 공격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각 사유와 판결문구가 트집 잡혀선 안 된다. 괜히 단 사족으로 빌미를 주는건 불행이다. 1990 몇 년 수원지방법원. 영장 기각률 60%와 5%. 엄연한 불균형이었다. 그래도 J판사는 굽히지 않았다. 언론에 책잡히지도 않았다. 그 힘이 법어였다. 정제되고 절제된 법어-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 없음-를 꽉 붙들고 벗어나지 않았다. 관행이 있었다 명복을 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꼭 필요한 법어였을까. 2019년을 사는 판사들이면 한 번쯤 토론해봐야 한다. 답은 없겠지만, 판사실 문 걸어 잠그고 얘기해봐야 할 문제다. 主筆

[김종구 칼럼] 구청 없는 화성시, 대한민국 최악의 차별

이렇게까지 넓은 시(市)는 없다. 동쪽에 동탄역이 있다. 서쪽에 탄도항이 있다. 두 지역까지 거리가 50㎞다. 남쪽에 남양방조제가 있다. 북쪽에 송산 새솔동이 있다. 두 지역까지 거리가 30㎞다. 지도 위에 그은 직선거리만 이렇다. 도로를 따라가면 두세 배 길다. 버스 타면 토 나오기 십상이다. 동탄에서 탄도항까지 2시간 37분이다. 좌석 버스를 타고 수원에서 내린다. 다시 시내버스로 한참 가야 도착한다. 경기도 화성시다. 한창 바쁘다. 곳곳에서 땅 파고, 건물 짓는다. 지난해만 1만7천859건의 개발행위가 있었다(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 전국 1위다. 2ㆍ3위인 강화군(5천657건)ㆍ청주시(5천523건)의 3배가 넘는다. 구청이 있었으면 좀 나았을 거다. 일정 면적 이하 업무를 시와 쪼개 나눈다. 그런데 구청이 없다. 전부 화성시 본청이 끌어안고 있다. 1만8천건을 처리하는 시 공무원도 죽을 맛이다. 시청으로 뛰는 시민 1만8천명도 죽을 맛이다. 구청 없다는 게 도무지 이상하다. 모든 조건은 충족돼 있다. 구청 신설 기준이 인구 50만명 이상이다. 화성시 인구는 5월 말 현재 78만6천183명이다. 50만명은 이미 10년 전에 넘었다. 게다가 면적도 광활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넓은 지자체다. 1일 업무권이 아니다. 여기에 도시ㆍ농촌ㆍ어촌까지 섞여 있다. 첨단 도시 화성, 어촌 마을 화성이 다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구청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 된다. 행안부가 안 해준다. 안 해주는 이유를 몇 개 든다. 구청 제도를 바꾸려 한다고 한다.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란다. 그런데 말 뿐이다. 바꾸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냥 안 해주는 이유일 뿐이다. 다른 곳과의 형평성도 얘기한다. 수원시 등 몇몇이 요구하고 있긴 하다. 화성시만 해주기 어렵다고 한다. 비교부터 틀렸다. 그런 데는 30만명이 넘으니 더 달라는 요구다. 화성시는 80만명 넘으니 하나라도 달라는 요구다. 시급성부터가 다르다. 인력ㆍ예산을 핑계 삼기도 한다. 다른 정부라면 이 핑계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아니다.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천명을 늘리겠다는 정부다. 공무원 늘렸더니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자랑-2018년 3분기 공공행정 및 국방 생산력 3.7% 증가ㆍ한국은행 발표-하는 정부다. 여기서 몇 명 쓰면 다 될 일이다. 그걸 안 해주고 있다. 그나마 전제부터 안 맞는다. 출장소 130명 있다. 본청과 조정하면 늘리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게 안 해주려고 하는 소리다. 시민 우습게 여기는 말장난이다. 정치인 밥그릇이었어도 이랬겠나. 2010년, 의석은 0.5석-오산시와 묶어서 하나-이었다. 이게 2004년 1석으로 늘었다. 2008년 다시 2석으로 늘었다. 2016년에는 3석까지 늘어났다. 무슨 빌미만 생기면 늘렸다. 헌재가 지역구 편차를 지적하자, 큰일 날 것처럼 늘렸다. 동탄ㆍ송산ㆍ향남 도시 계획이 나오자, 미래를 대비한다며 늘렸다. 구청 좀 달라는 시민 애원은 그렇게 묵살하는 동안 정치 밥그릇은 6배나 늘렸다. 화성시민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균형(均衡)이란 게 있다. 사전은 이렇게 푼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이 균형이 지금 대한민국의 정책 가치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을 떠받치는 이념과도 같다. 이 가치를 화성시에 포개보자. 서울시민 976만명에 구청 25개 주고, 화성시민 80만명에는 안 줬다. 인구 대비 2 대 1, 불균형이다. 면적 121㎢ 수원에는 구청 4개 주고, 면적 688㎢ 화성에는 안 줬다. 면적 대비 22대 1, 불균형이다. 완전히 기운 것이다. 한쪽만 치우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헌법상 지역균형발전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동구청이어도 좋고, 서구청이어도 좋다. 동탄구청이어도 좋고, 남양구청이어도 좋다. 지금 해줘도 만시지탄이다. 그래도 좋으니 해주라. 이게 화성에 사는 국민 80만명이 지치도록 요구해온 숙원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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