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김종인의 逆무기

선거판의 금기(禁忌)라 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위다. 햇볕 정책을 건드리는 것과 노인을 건드리는 것도 그런 유(類)의 금기다. 특히나 야당엔 그렇다. 그런데 이 금기를 맘대로 넘나드는 정치인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다. 햇볕정책부터 건드렸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았던 시점의 햇볕정책은 유효한 대북정책이었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 대북정책은 진일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일보 해야 한다’는 표현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대화 자체가 중단돼 버렸는데 대화가 영원히 중단돼선 안 되니 앞으로 가자는 얘기다. 뭐가 잘못됐나.” 25일 호남의 중심 광주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김종인의 광주 선언’이라 명명됐다. 햇별 정책은 곧 DJ(김대중)다. DJ의 철학(哲學)이자 유지(遺志)다. 햇볕 정책을 건드리는 건 곧 DJ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호남 민심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는 그걸 건드렸다. 미사여구를 빼고 보면 ‘철 지난 햇볕정책’이란 소리다. 통상 이 정도면 야당 대표에겐 자살골이다. 국민의당이 발 빠르게 파고들었다. 연일 김 대표를 공격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아예 “새누리당과 연대하려는 짓”으로 몰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호남 민심이 그리 나빠지지 않는다. 당내에서도 발언을 문제 삼는 소리가 없다. 왜 그럴까. 복잡하게 보지 말자. 인지상정으로 풀면 된다. 김 대표는 전라도 사람이다. DJ는 전라도 상징이다. 지연(地緣)에 관한 한 둘에겐 동향의 피가 흐른다. 경상도에게 전라도가 ‘문딩이’라면 얻어맞는다. 하지만, 같은 경상도끼리 하는 ‘문딩이’는 애칭이다. 김종인에 흐르는 호남 DNA, 이것이 그에겐 햇볕정책을 쳐도 될 무기다. 아슬아슬한 게 또 있다. 연장자(年長者) 퇴출 분위기다. 현역 물갈이 기준이 마련됐다. 1차 컷오프, 2차 정밀심사다. 그런데 2차 심사 기준이 이상하다. 3선 이상의 50%, 초ㆍ재선의 30%를 무조건 대상으로 삼았다. 3선 이상 대부분은 60세를 넘는다. 정치적 다선(多選) 이전에 인간적 연장자다. 여기에 1차 컷오프 결과가 나왔는데, 당의 어른인 문희상(72), 유인태(69) 의원이 포함됐다. 졸지에 나이 먹은 게 죄(罪) 되는 당이 됐다. 어느 선거에서나 노인층은 지뢰밭이다. 잘못 건드리면 한방에 간다. 12년 전 정동영씨도 그랬다. “노인들은 선거장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해명도 안 통했다. 당 의장에서 쫓겨났다. 지금도 ‘정동영’ 검색어에는 ‘노인 폄훼’가 뜬다. 국민의당이 김종인 표 ‘3선 교체’를 흉내 냈다.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곧 당내 반발로 이어졌다. 3선의 김동철 의원(62)이 ‘나만 3선이냐’며 들고 일어났다. 당(黨)만 우스워졌다. 이것도 이상하다. 김종인 대표는 어떤 욕도 듣지 않는다. 되레 전권(全權)을 더 넘겨받았다. 왜 이럴까. 여기도 간단하게 풀어 보자. 그의 나이 77세다. 현역 국회의원 최고령이라야 75세(박지원ㆍ무소속)다. 원로 대우받던 문희상, 유인태도 동생뻘이다. 50대 안철수 대표가 ‘3선 연장자들 물러나라’면 노인 폄훼다. 하지만, 77세 김종인 대표가 ‘많이 한 애들은 나가라’고 하면 그냥 어른의 조언이다. 이 역시 77세 김종인의 무기다. 그가 느닷없이 등장했던 한 달 전. 다들 얼마 못 갈 거라고 했다. ‘바지 사장’만 하다가 끝날 거라고들 했다. 그런 그가 한 달을 넘겼다. 공천권까지 거머쥔 실세가 됐다. 더민주당의 여론까지 덩달아 올라갔다. 한 달 전 호남은 국민의당이었다. 이제 호남은 더민주당의 땅이다. 그는 지금 당권도 잡았고, 개혁도 잡았고, 여론도 잡았다. 물론 최종 평가는 이르다. 선거 평가는 언제나 소급(遡及)적이었다. 이기면 잘한 게 됐고, 지면 못한 게 됐다. 김종인 대표도 그렇게 평가될 것이다. 4월 14일 아침에야 최종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이란 형용사를 붙여 평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김종인 대표가 더 잘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새누리당보다 화끈하게 개혁하는 것 같고, ‘지금까지는’ 국민의당보다 확실하게 호남을 얻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김종인만의 무기가 보인다. 전라도 출신-많은 이들에게 정치성장의 한계라 여겨졌던-이 하나고, 황혼의 늙음-많은 이들에게 사회참여의 한계라 여겨졌던-이 다른 하나다. 역(逆)에서 권력(權力)을 만들어내는 김종인 대표. 그에게서 고수(高手)의 향이 풍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세월호 부모님들께

아침 신문에 기사가 났습니다. 단원고가 교실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학교의 8개 공간을 교실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교장실과 교무실 등 선생님들의 공간이 바뀐다고 합니다. 음악실 컴퓨터실 과학실 특수교실 6개 등 학생들의 공간도 바뀌나 봅니다. 그러면 교장 선생님은 컨테이너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과학 기자재를 교실로 들고 다녀야 하고, 시청각실에 모여 음악 수업을 해야 합니다. 신입생이 들어와섭니다. ‘기억교실’ 11개를 대체할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대로 두고는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신입생 학부모들이 요구했습니다. 기억교실을 정리해달라고 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저지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어제(23일)는 유가족 대표와 재학생 부모들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학부모들은 기억교실 정리를 요구한 모양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떨지 압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으신 분들입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2년을 살아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다 잊고 갑니다. 함께 울던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것은 갈수록 커져 가는 아이들의 빈자리뿐입니다. 그 마지막 체취가 남은 곳이 기억 교실입니다. 그런데 그 교실을 들어내라고들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후배들의 부모들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운해 마시고 미워 마십시오. 저분들도 여러분의 마음을 알 겁니다. 2년 전 그때, 틀림없이 함께 울었을 동네 주민들입니다. 잠겨 가는 에어 포켓의 끝자락을 보면서 가슴 절절히 기도했었을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사시는 곳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동네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맘 아파하고 함께 기도했을 이웃 주민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아들 딸 300명입니다. 스스로 선택해 시험치고 들어온 단원고가 아닙니다. 교육청이 그렇게 정해놓고 가라고 하니 들어온 학생들입니다. 그 학교 바로 옆에, 혹은 그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학실도 쓰고, 음악실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텅 빈 11개 교실을 보는 무서움은 덜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향한 여러분의 서운함, 모두가 압니다. 돈에 눈먼 어른들이 뒤엎은 배였습니다. 선장은 저만 살겠다고 보트 타고 도망쳤습니다. 교육청은 ‘전원 구조’라는 발표로 아이들을 두 번 죽였습니다. 이걸 받아 쓴 언론사는 ‘대형 사고 날 뻔’이라는 제목으로 억장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같이 여러분 가슴에 비수를 꽂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아닙니다. 여러분께 상처주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피를 먹고 자라는 콩나물이라 했던가요. 여러분의 아이들을 희생 삼은 정치가 있습니다. 노란 리본 달고 선거판을 누볐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장 됐고, 도의원 됐고, 시의원 됐습니다. 그 정치가 또 기웃거립니다. 기억 교실 논란에 은근히 올라타려 합니다. 4.13 총선에 4.16 세월호를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불쌍한 애들 좀 그만 내버려두라’고 해야 합니다. 2년 전 그때. 수원의 유신고 3학년 8반 교실에서 이런 싸움이 있었습니다. 종교반 반장에게 아이들이 따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른들의 잘못을 벌준 것이냐.” “그런데 왜 죄 없는 애들을 데려간 것이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니 대답해 봐라.” 반장은 대답하지 못했고 애들도 울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부모님들. 기억 교실은 이제 사라질 겁니다. 아이들의 체취도 사라질 겁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2년 전에 멈췄지만, 세상의 시간은 그렇게 2년 후에 와 있습니다. 어차피 떠나 보내야 할 아이들이라면 여러분의 손으로 하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결정하고 여러분이 거두셨으면 합니다. 여러분 아들이 공부하고 여러분 딸이 재잘거리던 교실입니다. 그 불쌍한 것들을 어떻게 남의 손으로 거두겠습니까.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반공통일관·反반공통일관

1954년 7월이다. 휴전되고 꼭 1년이다. 나라는 여전히 폐허였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에 갔다. 이발 좀 하라고 했지만 마다했다. “돈 얻으러 가는데 깔끔하면 누가 돈 주겠나.” 7월 2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섰다.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에 미국 공군으로 하여금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해야 한다.” 주제도 모르는 연설일 수 있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나라의 대통령이다. 누구더러 누구를 공격하라는 것인가.하지만, 이승만에겐 필요한 발언이었다. 그날 연설의 논리는 이랬다. ‘소련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이 대비해야 한다. 그 행동을 시작할 곳은 극동이다. 한국이 충분한 인적 자원을 제공하겠다. 미국은 현금 현물 지원만 해 주면 된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우리(We)’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미국과 한국을 반공이라는 매개로 묶었다. 훗날 혹자들은 이날의 연설을 ‘반공의 성전(聖戰)에 한국을 바치겠다는 반공 세일즈였다’고 정리했다.그렇게 국부(國父)에서 시작된 반공은 오래갔다. 5ㆍ16의 혁명 공약도 반공이었다. 반공으론 성에 안 차는 세상으로 변했다. 북한을 없애자는 멸공(滅共)통일관이 국민에게 교육됐다. 전두환 정권은 더 극단으로 갔다. “우리나라 국시(國是)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 지금 같으면 ‘깜’도 안 되는 연설이다. 그런데 이 연설문을 준비한 유성환의원에 쇠고랑이 채워졌다. 국부에서 군부(軍部)까지, 우리의 통일관은 반공통일이었다. 그 피와 사상이 박근혜 정부로 승계됐다. 그리고 이 정부를 보수(保守)가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청천벽력일 수 밖에 없다. 먹어야 할 적(敵)에게 먹힐 판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 3대 세습 정권을 향해 전단도 날려야 하고, 김정은에 들어갈 돈도 씨를 말려야 한다. 북한의 명줄을 이어주는 개성공단 가동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가동중단 결정은 진작 했어야 할 만시지탄이다. 이 집단이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로 뭉쳤다.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전혀 다른 통일관을 정식화했다. 6ㆍ15 남북 공동성명 2항에 의미를 정리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Confederation)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Soft Federation)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구체적 행동은 햇볕정책이 맡았다. 반백년 가까이 국시로 모셔졌던 반공통일이 한순간 퇴물이 됐다.좌익(左翼) 전력자의 사위가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꿨다. 반공통일관에 맞섰다가 20년간 징역 산 신영복 교수가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다. 그의 혼(魂)이 담긴 서체 ‘처음처럼’이 국민 소주가 됐다. 국민 누구도 ‘좌빨 소주 안 먹겠다’며 ‘참이슬’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백년짜리 반공통일관은 10년 간 반(反)반공통일관으로 대치됐다. 그 DJㆍMH의 계승자들이 지금의 야권(野圈)이다. 진보(進步)가 그들을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이해해야 할 자위수단’일 수도 있다. ‘선거에 조심하라’는 김종인 대표의 경고 때문에 그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개성공단 사태가 터졌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감정적 조치라고 비난한다. 선거를 앞둔 신(新) 북풍이라고 공격한다.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따진다. 이 집단 역시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로 뭉쳤다.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 결국엔 반공통일관 60%, 반반공통일관 40%다. 2016년 대한민국에 통일관을 대입시켜 산출해 낸 수치다. 이 ‘60대 40’이 남들은 이해 못 할 한국을 만들었다. 핵무기가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가도 한국은 다르다. 미국 정치는 만장일치지만 한국 정치는 갑론을박이다. 1만㎞ 밖 미국은 공포에 떨지만 40㎞ 안 서울은 표(票)에 떤다. 미국은 돈줄을 막았지만 한국은 햇볕을 더 주자고 한다. 이쯤 되면 앞날이 보인다. 안보(安保) 앞에서 단결하자? 대통령도 얘기하고 언론도 주장한다. 하지만, 안 될 것 같다. 계속 삐걱거릴 것 같다. ‘종북 좌파 통일관’ ‘꼴통 보수 통일관’이라고 욕하며 벌어진 틈새가 너무 크다. 거기에 합류한 여론의 덩치가 너무 거대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한 지붕 두 통일관’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나긴 통일관 충돌의 시작이 지금의 개성공단 논란일지 모른다. 한반도(韓半島)! 이 작디 작은 땅에 통일관만 3개다. 반공(反共)통일관, 반반공(反反共)통일관, 그리고 적화(赤化)통일관. 앞의 두 개로 남(南)은 쪼개져 있고, 뒤의 하나로 북(北)은 뭉쳐져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도태호 2부시장의 ‘힘’과 ‘짐’

뚫리기 전에는 논이었다. 그것도 절대 농지였다. 하필 그 논 양쪽에 단지가 들어섰다. 한쪽은 영통, 다른 쪽은 신영통이라 불렸다. 출퇴근 때마다 지역 전체가 마비됐다. 누구 봐도 새 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농림부가 반대했다. 정확히는 ‘농림부 6급’이 반대했다. ‘수원 최 계장’에게 ‘농림부 6급’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5년을 끈 뒤에 ‘농림부 6급’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제야 20만 신도시가 살아났다. 지금은 그 길을 ‘박지성로(路)’라 부른다. 수원 2부시장에 도태호씨가 취임했다. 살아온 이력을 보자. 국토부에서 주택정책관, 건설정책관, 도로정책관을 했다.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부단장도 했다. 지금 처한 수원시 현안을 보자. 신ㆍ구 도심 간 균형 있는 주택정책이 시급하다. 비행장 이전에 대비한 밑그림이 필요하다. 한계에 달한 교통망 확충이 필요하다. 흉물로 버려져 있는 공공기관 이전 부지 활용도 시급하다. 부시장 이력과 수원시 현안이 볼트와 너트처럼 맞아 들어간다. 안 그래도 수원 2부시장은 특별하다. 기초자치단체 중 수원시에만 있다. 229개 시ㆍ군ㆍ구의 관심과 평가를 한몸에 받고 있다. 5년 전인 2010년, 첫 번째 선택이 있었다. 다들 정치 주변의 정무(政務)형을 예상했다. 하지만, 시는 실무(實務)형을 택했다. 도시 재생 전문가를 앉혔다. 그를 통해 수원의 재생(再生) 지도가 그려졌다. 시민과 함께하는 참여행정도 만들어졌다. 첫 번째 2부시장 시대가 끝났고 시민들은 5년 전 선택에 후한 점수를 줬다. 이제 두 번째다. 이번에도 용도(用途)는 분명하다. 그의 이력과 시의 현안 사이에 훤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특별한 용도’가 보인다. 그 ‘특별한 용도’의 일단이 26일 배포된 그의 취임사에 있다. “제가 중앙정부에서 축적한 국토교통행정 경험을 살려 수원미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지방정부가 넘기 힘든 중앙정부의 벽, ‘최 계장’이 그토록 버거워했던 중앙부처 6급의 벽, 그 벽을 넘는 게 그의 ‘특별한 용도’다. 기대를 갖게 하는 일화(逸話)가 흘러나온다. 취임 상견례가 서울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 국토부의 ‘별’(국장급)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앙 6급’도 버거워하는 수원 간부들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신분당선 개통식의 일화도 있다. 국토부가 시간상 이유로 수원시장과 용인시장의 인사말을 뺐다. 그러자 도 부시장이 “시민을 위한 행사에 시장 축사가 빠지면 안 된다”며 국토부를 압박(?)했다. 결국, 두 시장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4~5년쯤 전이었나. ‘김 과장’ 에겐 늘 동문 수첩이 있었다. 웬만한 학교의 동문수첩이 다 있었다. 승진해서 처음 한 일도 수첩 뒤져보기였다. “중앙 부처 공무원 좀 알아보려고. 비빌 언덕이라도 찾아보게.” 문화관광부와의 숱한 협의를 앞뒀던 그였다. 말이 좋아 협의지 사실상 허락을 받는 일이다. 그래서 한 게 학연(學緣) 뒤지기였다. 어디 수원 ‘김 과장’뿐이겠나. 성남 ‘김 과장’, 용인 ‘김 과장’들도 운명처럼 안고 있을 중앙의 벽이다. 도 부시장의 미담(美談)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리비아 탈출’에 띄울 비행기 삯을 두고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개인 보증으로 국민부터 구해낸 게 국토부 ‘도 국장’이었다. 구설(口舌)도 알고 있다. 고교동창, 지인 등과의 술자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해명이 됐다지만 ‘엘리트 도 실장’ 에겐 주홍 글씨로 남았다. 앞의 미담은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퍼 옮긴다. 뒤의 논란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퍼 나른다. 생각하면 둘 다 부질없다. ‘리비아 탈출’ 영웅담으로 선택된 게 아니다. ‘친구 술자리’ 과거로 취소될 것도 아니다. 그에겐 수원 2부시장에 선택된 아주 명확하면서 유일한 이유가 있다. 국토부의 연(緣)을 수원에 연결해야 할 책임이고, 국토부의 벽(壁)을 수원 공무원들에 낮춰줘야 할 책임이다. 도태호 부시장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힘’이자 도태호 부시장 한 사람만이 지고 있는 ‘짐’이다. 힘으로 삼으면 성공한 부시장이고, 짐으로 남으면 실패한 부시장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육감 직선제, 총선에 存廢 걸릴 것

여론은 바뀐다. 그것을 수치화하는 작업은 더 하다. 때에 따라 변하고 질문에 따라 변한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여론도 그렇다. 2011년의 어떤 조사는 이랬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 찬성 45.0%, 반대 28.0%, 무응답 27.0%. 4년 뒤 조사에선 이랬다. 직선제 찬성 42.6%, 임명제 19.3%, 런닝 메이트제 14.4%. 조사한 기관은 두 번 모두 ‘리얼미터’다. 그런데도 여론은 달랐다. ‘폐지해야 할 제도’에서 ‘존치해야 할 제도’로 변했다. 헌법재판소도 직선제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감 직선제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결론 냈다. 학부모와 교사 등 2,450명이 냈던 헌법소원이었다. 헌소를 제기했던 이유는 수학권과 수업권 침해다.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와 교사가 가르칠 권리 등이 침해받고 있다’며 소(訴)를 냈었다. 이에 대해 헌재 재판관 전원이 ‘직선제는 합헌이다’고 했다. 작금의 교육감 직선제의 위치가 이렇다. 다수(多數)가 밀고, 합법(合法)이 받치고 있다. 그런데 피곤하다. 말할 수 없이 피곤하다. 직선 교육감 시대 이후 쭉 이랬다. 경기도민에게 직선 교육감이 선 뵌 게 2009년이다. 곧바로 도의회가 전쟁터로 변했다. 무상급식비를 달라는 교육감과 못 준다는 도지사가 붙었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도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번갈아 점거했다. 학교급식 문제가 문화, 건설, 일자리, 인사 등 모든 행정을 주어 삼켰다. 그 해 그때만의 일이 아니다. 매년 다음해 예산을 짤 때만 되면 전쟁은 재발했다. 초대 직선 교육감 5년 내내 경기도정이 그렇게 휘둘렸다. 사람이 바뀌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번엔 유치원ㆍ어린이집 전쟁이다. ‘주자’ ‘못 준다’는 입장만 바뀌었다. 이번에도 직선교육감이 중심에 있다. 누리 예산 편성 ‘0원’으로 불을 질렀다. 경기도를 준(準)예산 사태로 마비시켰다. 31명의 시장 군수를 정당별로 쪼갰다. 남경필 도지사의 연정(聯政)도 한 방에 무너뜨렸다. 학부모와 유치원장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두 번째 직선교육감 시대다. 그 사이 학교와 학생은 뒤로 밀려났다. 장기 결석하던 11살 아이가 학대 끝에 탈출했다. ‘급식 천국’ 경기도에서 자란 아이인데 몸무게가 16㎏이다. 3년간 결석하던 또 다른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빠에게 맞아 죽었고 시신까지 훼손됐다. ‘7일 이상 결석하면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규정일 뿐이다. 행정 공무원은 입건됐지만 ‘직선 권력’은 사과도 안 했다. 교육감 협의회는 아동학대 의제를 누리 예산 뒤로 밀어버렸다. 교육을 버리고 표(票)만 쫓는 직선 교육감제의 현실이다. 새누리당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싶은 모양이다. 토론회마다 내리는 결론이 직선제 폐지다. 이를 눈치 챈 여론이 지금까지는 막아왔다. 42%의 찬성으로 폐지의 ‘폐’ 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어 보인다. 새누리당 선동 때문이 아니다. 누리 예산 파국을 지켜보며 유권자가 스스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방치되는 학교와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학부모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존폐의 절벽이 4월 13일이다. 여당이 총선에 이기면 교육감 직선제는 사라질 것 같다. 국회 선진화법이 사라진 다수(多數)의 단두대에 제일 먼저 올릴 것 같다. 42%의 ‘존치’ 지지율? 말했듯이 여론은 변한다. “이념 싸움이나 하고 학생 방치하는 직선제 폐지하자”는 설문 돌리면 그걸로 끝이다. 지금의 이 난장판을 보고도 서명 안 할 유권자가 몇이나 되겠나. 많은 이들이 다시 직선제 폐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교육행정을 교육정치로 변모시킨 직선 교육감들. 학생과 학부모를 정치 투쟁의 볼모로 엮어 넣은 직선 교육감들. 어쩌면 저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려 할 땐 이미 교육감 직선제가 역사 속 구(舊)제도로 기록돼 있을지 모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대만 눈치 보기,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이미 익숙한 모습이다. 대만은 우리를 늘 적(敵)으로 삼았다. 대만 경기가 없는 경기장에서도 그랬다. 관중석에 나부끼는 혐한(嫌韓) 플래카드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2010년 10월 대만에서 있었던 대륙간컵 야구대회엔 이런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천안함을 폭파하듯 한국인들을 두들겨라’. 그해 3월 한국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해군 46명이 전사했다. 그 소름 끼치는 한국민의 상처에 초산을 들이붓는 문구였다. 도를 한참 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출발을 1992년 국교 단절로 설명한다. 6·25 때 도와준 은혜를 배신한 한국에 대한 구원(舊怨)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대만인들의 구호도 그랬다. “우리는 당신들을 도왔는데 당신들은 우리를 배신했다”. 우리 사회도 그걸 당연히 받아들였다. 대만인의 반한 감정은 정당한 것이라 여겼다. 한국은 계속 얻어터져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 후로 툭하면 태극기가 밟히고, 툭하면 한국 상품이 불탔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대륙(大陸)은 우리에게 뭐였나. 늘 축복이고 은혜였나. 우리 역사 최초의 전쟁 상대는 연나라다. 기원전 332부터 321년까지 고조선을 침략했다. 기원전 107년경, 고구려의 첫 전쟁도 위나라와 연나라였다. 대륙의 마지막 침략은 1636년 병자호란이다. 기원전 332년부터 1636년까지 무려 1천968년이다. 이 긴 역사에 기록된 침략자는 모조리 대륙이다. 수(隋), 당(唐), 명(明), 청(淸) 등 모든 대륙의 지배자들이 한반도를 침략했다. 우리가 치를 떠는 일제(日帝) 36년보다 54배나 긴 세월이다. 대륙이 휩쓸고 간 한민족의 역사는 온통 피와 굴욕으로 범벅됐다. 대륙 침략이 있을 때마다 전리품은 여성이었다. 천민 여인, 양반 여인, 왕가 여인을 가리지 않았다. 어엿한 가정주부도 끌고 갔다. 대륙에서 돌아온 여인들은 ‘화냥년’-還鄕女-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임금도 침략자 대륙엔 놀잇감이었다. 항복한 왕에게 ‘삼궤구고두’(三九叩頭)를 시켰다. 소리가 안 들린다며 머리를 짓눌렀다. 임금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칸이 휘장을 들추고 밖으로 나갔다.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 바람이 불어서 오줌 줄기가 길게 날렸다. 칸이 오줌을 털고 바지춤을 여미었다. 다시 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남은 절을 계속했다.’-김훈 著 남한산성 중에서- 그랬던 대륙이 둘로 갈렸다. 모택동의 공산 중국과 장개석의 자유 중국으로다. 둘은 서로가 대륙의 적자라 자처한다. 적자(嫡子)란 ‘정실(正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수ㆍ당ㆍ명ㆍ청의 아들이란 얘기다. 우리에게 1천968년의 고통을 안긴 대륙의 아들이란 얘기다. 화냥년과 삼궤구고두의 치욕을 안긴 대륙 역사의 아들이란 얘기다. 그런 대만이 1천968년은 쏙 빼고 3년(1950~1053년)만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24년째.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그런데 그들은 안 할 거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1천968년짜리 치욕의 역사와 3년짜리 빚의 역사를 정확히 계산해 내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종잇조각 든 선수에겐 메달도 못 주겠다는 게 스포츠 정신 아닌가. 야구장에서 태극기 짓밟는 퍼포먼스에 항의해야 한다. 이유 없는 야유와 욕설에 항의해야 한다. 근거 없는 갑 질에 빠져 있는 국내 대만인들에게도 ‘주제를 지키라’고 일러줘야 한다. ‘JYP’를 왜 ‘IS 인질범’으로 모나. 대만의 연예 지망생을 발탁했다. 몸값만 30~40억원에 이르는 스타로 만들었다. 그 스타의 대만 국기 사진이 논란을 빚었다. 팬들이 항의하니 사과하도록 했다. 뭐가 잘못됐나. 연습생 발탁과 스타로의 육성, 뜻하지 않은 실수와 이에 대한 공개사과…. 지겹도록 봐오던 한국 연예계 일상이다. 그런데 왜 JYP만, 그것도 우리가 앞장서 잡아 돌리나. 지겹다 못해 역겨운 ‘대만 비위 맞추기’다. 영화 ‘광해’. ‘은혜의 나라’ 명(明)에 비단, 말, 처녀를 바치겠다는 신하들에게 광해가 분노한다.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400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6년. 그 대륙의 적자 대만이 또 한 번 ‘은혜의 나라’를 자칭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비위를 맞추려는 우리 언론과 정부가 알아서 설설 기고 있다. 벌써 24년째다. 400년 전 광해의 호통이 되살아나야 할 순간이 됐다.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염태영·이재명 戰-Ⅰ

“수원은 잘하던데요. 청와대 출신들로 인수위원회도 꾸리고….” 이 말의 묘한 여운이 5년 넘게 남아 있다. 그때의 성남시장실은 어수선했다. 어설프게 꾸려진 소파가 인터뷰 장소였다. 그전까지 신임 성남 시장의 이미지는 강성이었다. 전임 시장의 행정을 어지간히 물고 늘어졌다. 자수성가, 진보주의자, 재야운동가, 고소ㆍ고발로 각인된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잘 웃었고 말도 잘 했다. 그날 이재명 시장이 툭 던진 수원 평(評)이다. 사실 그랬다. 2010년 ‘염태영 인수위’는 화려했다. 이계안 위원장은 전국적 인물이었다. 황인성 위원은 청와대 수석 출신이었다. 이재준 위원-뒷날 부시장이 되는-은 박사였다. 그때까지의 시ㆍ군 인수위와는 급이 달랐다. 혹시나 기웃대던 지역 인사들의 입이 댓 발쯤 나왔다. 이 시장의 덕담 속엔 그런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적어도 대담자에겐 그렇게 들렸다. 그 후 두 시장은 승승장구했고 재선도 했다. 어느덧 6년차 시장이다. 염 시장은 제일 큰 지자체의 장이고, 이 시장은 두 번째 큰 지자체의 장이다. 양쪽 모두에선 ‘굵직한’ 다음 정치 일정이 거론된다. 염 시장 주변에서는 “경기도지사 하셔야죠”라는 말이 나온다. 이 시장 주변에서는 “대권 후보 여론조사 ○등입니다”라는 말이 들린다. 지금 둘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시장이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다. 이런 둘이 충돌했다. 누리 예산에서다. 염 시장이 시비(市費)를 들여 우선 집행키로 했다. 파국을 예상하고 159억원을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수원의 유치원과 부모들을 넉 달간 안심시킬 돈이다. 꽉 막힌 정국을 뚫어낸 첫 결정이다. 염 시장은 더민주당 소속이다. 누리 예산 보이콧이 당론이다. 그럼에도, 시비 ‘우선’ 투입을 결정했다. 시민들이 좋아했다. 새누리당 도지사까지 ‘나도 도비 쓰겠다’며 이어받았다. 이때가 7일이다. 그런데 3일 뒤 이재명 시장이 입을 열었다. 본인의 SNS를 통해서다. “도지사는 소속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도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앙정부에 경기도민의 혈세를 상납해선 안된다.” 문맥이 직접 겨눈 대상은 남 지사다. 그런데 ‘도지사’를 ‘시장’으로 바꾸고, ‘경기도민’을 ‘수원시민’으로 바꾸면 글의 타깃은 ‘염태영’이다. 누가 봐도 염태영 행정 돌려 차기다. 누리 예산 파국을 풀어가는 두 시장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염 시장의 시비 집행 결정은 조용히 이뤄졌다. 159억원을 미리 준비해뒀는지도 다들 몰랐다. 시비 집행 결단이 언론에 ‘대박’을 친 후에도 그랬다. 부속실과 공보실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모두 거부됐다. 반면, 이 시장은 누리 예산 정국에서 여론을 끌고 다녔다. 청년 배당, 무상 교복, 산후 조리비 지원…. 역(逆)발상으로 연일 치고 나간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5년 내내 둘은 그랬다. 신중함과 과감함, 대화와 파격으로 구분됐다. 그런데 신기하다. 둘이 충돌했다는 기억이 없다. 툭하면 싸우는 게 시장들이다. 물 때문에 싸우고, 화장터 때문에 싸운다. 오래전부터 성남 공무원들은 염 시장을 얘기했다. 언제부턴가 수원 공무원들도 이 시장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두 시장은 충돌하지 않았다. 서로를 입에 담았다는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러다가 이번에 붙었다. 염 시장의 위민론과 이 시장의 투쟁론이 붙었다. 쉽게 정답을 내릴 논쟁은 아니다. 굳이 결론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금 흥미롭게 볼 대목은 두 시장이 6년만에 붙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충돌이 선의로 가면 좋다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척박한 경기도 정치판이다. 염태영 도지사의 꿈도 좋고, 이재명 도지사의 꿈도 좋다. 수원시장 대통령도, 성남시장 대통령도 가슴 설레는 상상이다. 어차피 평가단은 지역민이다. 어느 지역이 행복한가가 평가 항목이다. 두 시장도 잘 알고 있다. 누리 예산으로 수원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염 시장이고, 무상교복으로 성남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이 시장이다. 염 시장은 50년 숙원인 비행장문제를 풀겠다며 뛰고, 이 시장은 최대 현안인 구도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뛴다. 비행장 풀리고 1공단 정리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경쟁이면 백번 겨뤄도 좋다. 계속 지켜 볼만한 ‘염태영ㆍ이재명 戰’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무상누리·무상급식, 누가 누굴 욕하나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무상급식이 등장했다. 무상급식을 공약했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곧바로, 도 교육청은 630억원의 무상급식비를 경기도에 요청했다. 교육예산과 상관없는 일반 행정예산에의 요구였다. 김문수 지사는 거부했다. ‘포퓰리즘 정책을 던져 놓고 책임은 경기도청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며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누리 예산이 등장했다. 누리 과정을 공약했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2016년, 중앙정부는 5천억원의 유치원 누리 예산을 경기도 교육청에 요청했다. 중앙예산과 상관없는 지방예산에의 요구다. 더민주당이 거부하고 있다. ‘표 받기 위해 던져 놓고 그 책임을 지방 자치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기들이 쫓겨나면 야당이 책임지라’며 야단이다. 어쩌면 이토록 닮았나 싶다. 서로 자리만 바꿔 앉은 데자뷔다. 무상급식은 야당 교육감의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여당 대통령의 것이다. 무상급식은 경기도 예산에 떠넘긴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지방 예산에 떠넘긴 것이다. 무상급식 예산은 여당이 반대했었고, 누리 과정 예산은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무상급식 무산의 책임은 여당에게 떠 넘겨졌고, 누리 과정 무산의 책임은 야당에 떠 넘겨지고 있다. 흐름이 닮았으니 앞날도 닮을 듯하다. 그때 무상급식은 이렇게 끝났다. 학부모 단체들이 도의회에 진을 쳤다. 슬픈 표정의 학부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애들 급식비가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그 사람들은 김 교육감의 호위무사들이었다. 그 학부모는 교육청 단체에서 한 자리 하고 있었다. 세상이 쪼개졌다. 애들을 굶기자는 쪽과 먹이자는 쪽으로 갈라섰다. 1년 뒤 지방선거는 퍼주기 무상급식이 이겼다. 지금의 누리 예산도 그렇게 가고 있다. 학부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카메라 앞에선 학부모가 낙담하며 얘기한다. “막막하죠.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더 알아봐야겠다. 박사모인지, 새누리당 지지자인지 아직 취재가 덜 됐다. 어찌 됐건 이번에도 세상은 쪼개졌다. 아기들을 챙기자는 쪽과 버리자는 쪽이다. 석 달 뒤면 선거인데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표 계산에 바쁘다. ‘얼마 전’ 얘기이자 ‘오늘 현재’ 얘기다. 엊그제 몸싸움하던 도의원들도 7년 전 그 도의원들이다. 사정이 이런데 누가 누굴 욕하겠나. 이미 대한민국 정치 사전은 복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복지란 무차별ㆍ공짜로 퍼주는 행위.’ 알량했던 정당 색깔 따위도 없어진 지 오래다. 선거 몇 번 치르면서 뒤섞여 버렸다. 그 사이 나라 살림만 ‘20도’쯤 기울었다. 경기도를 마비시킨 복지비 5천억원은 돈도 아니다. 무상급식 3조7201억원, 기초연금 11조4천억원, 무상보육 14조7169억원이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들어갈 돈이다. 굵직한 것만 뽑았을 때다. 김종인 교수가 말했다. ‘경제력의 한계가 곧 복지의 한계다.’ 맞는 말이다. 돈에 맞춰야 하는 게 복지다. 누리 예산이 부담되면 줄여야 한다. 3천억원으로 줄이고 2천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못하겠다고 버틴다. 무상급식도 그렇다. 700억원으로 줄이고 500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건 더민주당이 못하겠다고 한다. 서로 ‘내 복지’ ‘네 복지’ 갈라놓고 ‘내 복지는 못 줄인다’며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만 골병들고 있다. 월요일 아침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경기 누리 예산 0원-사상 첫 광역 준예산 사태.’ ‘유치원생 19만명이 월 22만원씩 더 내야 할 수도 있다’(중앙일보). 오늘 아침엔 이런 기사가 났다. ‘표 되는 복지에 세금 몰아 쓰겠다는 성남시.’ ‘장애인 불우아동 지원은 부족한데 청년 배당, 공공산후조리, 무상교복만 강행하려 한다’(동아일보). 어제는 돈 없다는 기사, 오늘은 돈 퍼준다는 기사다. 이쯤 되면 복지 난장판이다. 답이 없다. 재벌 손자에 준 점심값은 회수해야 하는데…. 살만한 집 아이들에 준 유치원비는 회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위인들이 아니다. 결국, 미래의 어느 날-나라가 더 파탄 나서 어쩔 수 없이 거둬 들이게 될 날-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수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복지 망국의 그날이 이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고…. 누리 예산 4조원? 이것부터가 답 없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한쪽은 거덜날 일이다. 2010년 어느 날, 무상급식 데모대가 창밖에서 확성기를 틀고 있었다. 부지사실에서 내다보던 ‘정창섭 부지사’가 말했다. “김 국장,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겨울, 또 많은 이들이 떠나네요

이종구라는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90년대 말 수원시 도시국장을 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도시계획 전문가였죠. 그런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 맡겨졌습니다. ‘컨벤션 시티 21’이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수원시 이의동을 개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논밭과 야산으로 뒤덮인 도심 속 농촌을 완전히 뒤엎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급기관인 경기도가 반대했고, 개발에 대한 특혜 지적도 있었습니다. 사무실에는 대형 청사진이 가득했습니다. 그 속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틈나면 도청을 오가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시의회에 불려나가 특혜가 아님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1년여,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일에 치어 방치했던 혈압이 문제였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팔과 다리의 장애가 남았습니다. 결국, 공직을 떠났습니다. 깨끗하고 능력 있던 한 공무원의 쓸쓸한 퇴임이었습니다. 안수현이라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경기도청 공보계장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전형적인 구(舊)시대 공무원이었습니다. 오전 회의가 끝나면 기자실에 들어옵니다. 딱히 업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기자들의 말동무가 일입니다. 말이 말동무지 기자들이 좀 까탈스럽나요. 말도 안 되는 투정, 위아래 몰라보는 막말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그가 웃으면서 던지는 한 마디는 이거였습니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 기자들과 몸으로 부딪혔습니다. 기자들이 주는 소주잔-때로는 고량주-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룻밤에 두세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안 계장의 그런 모습을 기자들도 도지사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승진도 했고 기관장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재작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장 갔던 중국에서 고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기자의 핸드폰엔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010-3739-34○○. 이제 이 국장의 동기들, 안 계장의 동기들도 다 떠났습니다. 이 국장보다는 10년쯤 더 했고, 안 계장보다도 2년쯤 더 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행복한 퇴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도 정말 행복하다며 떠났을까요. 평생 근무한 사무실을 나가는데 행복했을까요. 그렇치 않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떠나는 건 허전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 허전함과 슬픔이 몇 년 더 했느냐 몇 달 늦었느냐로 위로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제는 ‘강 검사장’이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23년쯤 검사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BBK 주가 조작 사건, 삼성 비자금 특검, 노무현 대통령 수사 당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등으로 그의 이름이 남았습니다. 같은 검찰 식구를 구속했던 그랜저 검사 사건도 그가 했습니다. 독하게 살았던 23년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은 늘 ‘18기 선두주자’라는 형용사를 달았드랬습니다. 그런 그도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행복할까요. 퇴임사에서 뭐라고 할까요. ‘그동안 감사했고 보람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건투를 빌며 행복하게 떠납니다’라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기는 떠나는 공직자가 이것 말고 할 말이 뭐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한 번 물어볼까 합니다. ‘정말 행복한가요. 정말 미련은 없나요.’ 겨울입니다. 인사철입니다. 또 사람들이 떠날 겁니다. 또 다른 이 국장들, 또 다른 안 계장들, 또 다른 강 검사장들이 떠날 겁니다. 하필 그 계절이 우리나라엔 차디찬 겨울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원 FC, 힘내라

5,800,000,000원.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받는다는 연봉이다. 4,300,000,000원. 기성용이 스완지 시티에서 받는 연봉이다. 국내 리그의 몸값은 이보다 적다. 그래도 서민 입은 딱 벌어진다. 이동국(전북 현대) 11억, 김신욱(울산 현대) 10억, 김두현(수원 삼성) 8억…(2014년 기준). 선수 하나하나가 곧 기업이다. 그래서 프로다. 몸값이 곧 선수 가치다. 1998년 이동국과 안정환이 ‘상대보다 1원이라도 더 받겠다’고 버텼던 것도 프로라서다. 수원 FC는 어떤가. 선수단 몸값이라야 23억원이 전부다. 그나마 승리수당까지 다 포함했을 때 얘기다. 이 돈으로 감독과 코치, 선수 32명이 연봉을 받는다. 1인 평균 9천만원 정도다. 이 속에도 차이는 있다. 9천만원마저 꿈인 선수가 있다. 번외(番外)지명자들의 연봉은 2천만~2천400만원이다. 월급으로 보면 160만~200만원이다. 시가 꾸려가는 살림이니 이럴 수밖에 없다. 시비(市費) 40억과 연맹 지원금 10억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 전용 연습 구장은 꿈도 못 꾼다. 여기산 시민 공원이 연습장이다. 축구장으로 쓸 수 없는 인조잔디다. 툭하면 화상을 입고, 발목이 돌아간-골절- 선수도 한둘이 아니다. 종합운동장은 말뿐인 홈구장이다. 유명 축구인의 축구교실에 보조경기장을 내어준 지 오래다. 선수들은 월드컵 경기장 옆 보조 구장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기회는 좀처럼 없다. 공원에서 운동하고, 짐 메고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수원 FC 선수들이다. 그런 수원 FC가 일을 냈다. 28일 달구벌로 대구 FC를 찾아갔다. 연간 예산 140억원을 쓰는 팀이다. 선수단 몸값만 70~8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죽지 않았다. 스타도 없고 선수층도 얇지만 정신력으로 뛰었다. 2대 1, 승리였다. 한국에서 순수 2부 리그 출발팀이 1부 리그에 승격한 역사는 없다. 그 새로운 역사를 만들 자격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휴일을 마다 않고 달려간 수원시민들의 함성이 대구 경기장을 뒤덮었다. 흔히들 칼레의 기적을 얘기한다.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컵 결승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프로팀 낭트와 맞선 상대는 ‘라싱 유니온 FC 칼레’였다. 장식품 가게 종업원, 청소 용역회사 직원, 난방기구 수리공, 부두 노동자들이 선수였다. 4부 리그 소속팀이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패했지만 프랑스 국민은 이미 칼레의 편이었다. 경기를 본 시라크 대통령도 “낭트는 결과에서 이겼고 칼레는 정신에서 이겼다”고 격려했다. 칼레 시는 가난했다. 도버해협에 접한 인구 7만5천명의 항구도시였다. 인구의 절반이 연 수입 5만 프랑도 못 벌었다. 그 칼레 시가 두 달여 동안 프랑스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16강전, 8강전, 4강전이 치러지며 모두를 칼레 시민으로 만들었다. 결승에서 패해 눈물을 흘리는 칼레 선수들에겐 세계 축구팬이 박수를 보냈다. 이제 칼레는 기적의 성지다. 칼레 정신은 불굴의 정신의 다른 표현이다. 축구가 칼레 시민을 그렇게 만들었다. 수원 FC의 선전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겠다. 수원은 칼레처럼 가난하지 않다. 40억을 투자해 선수단을 살필 수 있는 도시다. 수원 FC 선수들도 약하지 않다. 눈발 속에 90분을 뛰고도 운동장을 펄펄 뛸 기운이 남아돈다. 번외지명이라고 부끄러워하는 선수도 없다. 번외지명자 정기운은 이제 상대 선수들을 벌벌 떨게 하는 최고의 공격수다. 마땅히 받아 들 결과다. 단내나도록 뛰어온 선수들에게 주어진 ‘아직도 미진한 보상’일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연습장을 전전하는 그들을 챙겨줄 곳이 없었다. 골을 넣고 달려오는 그들을 맞아줄 관중도 없었다. 시민이 만들어 놓고도 그들을 기억하는 시민은 없었다. 그들이 새로운 한국 축구사를 써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오늘, 그들의 마지막 고비 1차전이 벌어진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삼성축구단 옹호의 거짓말·왜곡·과장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짐작은 되지만 말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인터넷은 연일 불을 뿜는다. 때론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재단을 향해, 때론 민선 단체장을 향해, 때론 맘에 들지 않은 기사(記事)를 향해 포화를 퍼붓는다. 그리고 그 속에 왜곡과 거짓말, 과장이 있다. ‘삼성이 IMF에서도 280억원을 기부했다’ 그만 들어도 좋을 20년 전 얘기다. 그런데도 툭하면 인터넷에 떠돈다. 그러니 또 짚어야 할 듯하다. 월드컵 경기장에는 2천522억2천700만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기관별 부담액은 국비 440억, 경기도비 1천80억1천600만원, 수원시비 720억1천100만원이다. 애초 삼성이 짓겠다고 했던 경기장이다. 그 약속이 기업 사정-IMF로 인한 경영 악화-을 이유로 파기됐다. 그걸 때운 것이 국민의 혈세, 도민의 혈세, 시민의 혈세다. ‘280억’은 결코 기부금이 아니다. 삼성이 처음에 벌려놨던 토목공사비다. 약속 파기 시점에는 이미 돌려받을 수도 없는 재화(財貨)였다. 더구나 삼성은 이 토목공사를 이유로 경기장 공사를 전부 수주했다. 월드컵까지 시일이 촉박하고, 기(旣)건설부분과의 연계성을 인정한다는 게 특혜계약의 이유였다. 이렇게 보면 280억원은 2천500억원짜리 대형 공사를 따 낸 마중물이었다. 이걸 왜 자꾸 기여금이라고 거짓말하나. ‘경기장 사용료가 서울보다 비싸다’ 수원 경기장의 사용료가 부당하다는 단골 비교표가 있다. 서울상암월드컵 경기장과의 비교다. 이 표가 경기도나 수원시에 대해 ‘축구 장사를 한다’거나 ‘축구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우악스런 비난으로 옮겨졌다. 수원의 경기당 사용료는 252만5천원이다. 19경기를 기준으로 치면 연간 4천797만5천원이다. 서울은 경기당 186만5천원, 연간 3천543만5천원이다. 실제로 수원이 서울보다 경기당 66만원, 연간 1천254만원 높다. 그런데 여기엔 왜곡이 있다. 광고와 관련된 사용료가 빠졌다. 경기장에는 현수막, A 보드, LED 전광판 등이 있다. 이를 사용하는 요금이 수원은 연간 2억900만원, 서울은 3억400만원이다. 서울이 9천500만원 비싸다. 경기장 사용료와 광고 사용료를 합하면 서울이 8천246만원 높다. 그런데 이 얘긴 안 한다. 1년 전에는 경기장 사용료만 얘기하며 더 깎아야 한다고 했고, 이제는 광고 사용권만 얘기하며 다 넘겨야 한다고 한다. ‘삼성의 기부 40억, 현대의 기부 2천400억이다’ 염태영 시장은 삼성 축구단 편인듯하다. 경기도에 월드컵 경기장을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삼성 구단에 혜택을 줄 모양이다. 이 논리가 시작된 것은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때다. KT 야구단에 준 ‘시(市) 야구장 무상 사용권’이 사달이었다. 그때부터 ‘저기에 특혜 줬으니 우리도 특혜 달라’는 위법적 논리가 선출직을 볼모 잡고 있다. 이번 광고권 마찰 때도 염 시장은 ‘삼성 측 주장이 맞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내놨다. 혹 이런 통계 봤나. 현대의 울산시 기부와 삼성의 수원시 기부 분석표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의 집계다. 현대는 울산에 2천400억원을 기부했다. 같은 기간 수원에 대한 삼성 기부는 40억원이었다. ‘2천400억: 40억’. 이 민망한 비교 속에 체육도 있다. 수원시가 떠안은 운동부가 20여개다. 모두 열악하다. 삼성 골키퍼 연봉의 100분의 1로 생활하는 선수도 있다. 그들이야말로 염 시장이 먼저 챙겨야 할 계약상 식솔(食率)이다. ‘축구 경기장은 수원시민 경기도민의 것이다’ 수원시장이 주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경기도지사가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다. 시민이 있고 도민이 있다. 시의회도 있고 도의회도 있다. 어떤 이는 ‘축구는 축구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작금의 문제는 축구가 아니다. 깨 놓고 말해, 새로운 구단주의 축구단 경영 문제다. 바로 그 경영이 시민ㆍ도민의 재산권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떼’와 ‘외곽’으로 시작했던 게 애초 잘못이었다. 도민이 화난 것도 그래서다. 언제부터 ‘축구’가 ‘도민’ 위에 군림했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4대 강 사업은 옳았다

그때부터 2015년까지는 3년밖에 흐르지 않았고, 2025년까지 헤아려도 1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4대 강 사업이 완공됐고, 2015년에 38년짜리 소(小) 가뭄 주기가 정점에 왔고, 2025년에 124년짜리 대(大)가뭄 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 물 부족 국가가 예언됐고, 2015년엔 최악의 가뭄이 나타났고, 2025년엔 물 부족 재앙이 예고돼 있다. 논문-‘한국의 가뭄주기에 대한 연구(변희룡 박사)’-과 사업-4대 강 정비사업(이명박 대통령)-이 불행히도 맞아간다. 비가 내리긴 했다. 밭작물 잎새는 촉촉이 적셨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댐들은 여전히 말라 있다. 대청댐이 3㎝, 보령댐이 12㎝ 높아졌을 뿐이다. 4일간 들어간 물이라야 대청댐에 100만톤, 보령댐에 20만톤이다. 앞으로도 대청댐에 7억5천200만톤, 보령댐에 5천300만톤이 더 들어가야 한다. 나흘간 들어간 물의 752배, 265배다. 야속하게 비는 그쳤다. 이제부터 갈수기(渴水期)다. 제발 미신(迷信)이었기를 바랬는데, 가뭄 주기 예언은 과학(科學)이었다. ‘달리 수가 없다. 4대 강 물을 써야 한다.’ 변 교수는 말한다. “국가적인 재난입니다. 큰 재난인데, 여당, 야당, 정치 싸움은 그만 하시고, 재난 앞에서 겸허해야 해요. 옛날에 잘못된 주장을 했더라도, 또 옛날에 반대한 사람도 섭섭한 마음은 그만 털어버리고, 일단 우리 국민이 살고 봐야 합니다. 4대 강 보 안에는 물이 철철 넘쳐 있는데 하도 반대가 심해서 그 수로를 연결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 수로를 연결하고 해야죠.”-11월 9일, YTN 인터뷰 중-. 사실 4대 강 사업은 동네북이었다. 야당은 총체적 비리로 단정했다.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별렀다. 환경단체는 망국적 사업이라고 단정했다. 국토 생태계를 파괴할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도 삐딱했다. 친박(親朴)의 눈을 거슬리는 친이(親李)의 유산일 뿐이었다. 올 초 ‘성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없다’고 한마디 했던 이 전 대통령이 융단폭격을 당했다. 정치에 동화된 여론의 마녀사냥이었다. 지금도 국민 68%는 ‘잘못된 4대 강 사업’이라고 답한다. 그런 대한민국에 가뭄이 왔다. 고종 5년 이래 최악의 가뭄이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입을 닫았다. 국정 조사하자던 야당도, 생태 파괴라던 단체도, 친이 작품이라던 새누리당도 입을 닫았다. 가뭄 속에도 철철 넘쳐나는 4대 강 봇물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불과 3년 만에 반대논리가 틀렸음이 확인됐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로 가고 있었고, 국토는 4대 강이 아니라 가뭄이 파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보(洑)를 더 쌓았어야 했고, 물을 더 담았어야 했다. 오판의 정치, 무지한 정치였다. 그런데도 항복하기는 싫은 모양이다. 안희정 도지사가 금강 물을 끌어가는 공사를 시작했다. 정부 여당에서는 이 물이 백제보의 것이라고 했다. 충남도는 백제보에서 6㎞ 떨어진 물이라고 했다. 여당은 갑자기 4대 강 치적에 올라타려 하고, 야당은 여전히 4대 강 치적과는 담쌓으려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얄팍함이다. 논바닥은 갈라져 거북이 등껍질이 됐고, 댐 바닥엔 수풀이 자라 야산이 돼가는데…. 어떻게든 인정하기 싫어 억지를 고집하는 것이다. ‘쿨’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다. 당대(當代)는 언제나 난세(亂世)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나라를 걱정한다. 3년 전 그때는 4대 강이 난세였다. 혹자는 찬성했고 혹자는 반대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간 애국(愛國)이었다. 그 결과가 빨리-당혹스러울 정도로- 왔을 뿐이다. 그 당시 난세는 ‘4대 강 사업이 옳았다’로 정리됐다. 2015년 지금의 난세는 가뭄이다. 물을 만들 걱정만 해야 한다. 4대 강 반대론자였던 안희정 도지사도 말했다. 그의 말이 이 시대 정답일 수 있다. “정치쟁점이 아니다. (지금은) 가뭄 극복이 우선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현대사-교과서에서 줄이고, 수능 출제에서 빼고

검사(현 서울고검)는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다. 고교시절, ‘장학퀴즈’ 오프닝 화면에도 등장했다. 기(期) 장원 경력 때문이다. 서울법대에 입학했고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도 최고 점수로 수료했다. 그에게 국민윤리 2차 논술을 잘 보는 방법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국민윤리는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보겠다는 과목이잖아. 그냥 ‘내가 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쓰면 편해.” 간단하면서 잘 정리된 답이었다. 그러면 한국사는 어떤가. 2017년부터 수능 필수다. 유치원, 초ㆍ중ㆍ고교생 680만명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 두 배쯤 될 부모들도 덩달아 급해졌다. 돌아보면 학력고사 시절 국사는 점수 따는 효자과목이었다. 웬만한 학생이면 만점을 목표 삼았다. 범위와 정답이 한정된 역사학의 특징이다. 부활하는 수능 한국사도 그럴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려 들 것이다. 환웅(桓雄) 할아버지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것을 외우려 들 것이다. 현대사 논란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 여당이나, 극력 막아서는 야당이나 분명한 노림수가 있다. 수능에 목매는 학부모 집단의 무지막지한 표(票)다. 교과서 승리가 내년 총선 승리라는 셈법도 끝낸 듯 보인다. 이 의도에 휘말려 든 학부모 단체들이 정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정 교과서 안된다”(전북 학부모들 단체 연합회), “편향된 교과서 고쳐라”(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27일 하루 충돌만 이랬다. 과목 이름이 한국사다. 학문적 분류는 역사학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는 진정한 역사학이 아니다. 토론이 자유로울 수 없고, 합의가 만들어질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5ㆍ16을 보자.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구국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2007년 7월). “가난했고 안보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위기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아닌가”(2012년 7월). ‘구국혁명’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5ㆍ16은 정당했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에게 5ㆍ16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그런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문했다. ‘친일 독재 미화를 위한 개정’이라는 의심을 살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현대사를 보자.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라도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모른 척하고 외면했습니다. 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2002년 대선 후보 연설). 남로당 당원이었던 장인(丈人)이 수감 중에 사망했다. 그에게도 좌익 논란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하필 그런 노 대통령부터 역사 교과서가 바뀌어 갔다. ‘교과서 좌경화의 출발’이라는 지적을 살만했다.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다. 과거(過去)가 아닌 현재(現在)의 기록이다. 행위자도 현재고 기록자도 현재다. 박근혜 대통령은 ‘5ㆍ16 역사’의 2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로당 역사’의 사위다. 그 2세가 현재의 여당 권력이고, 그 사위의 비서실장이 현재의 야당 권력이다. 그들에게 현대사는 곧 아버지의 기록이고 주군(主君)의 기록이다. 사정이 이러니 서로 사생결단하듯 대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대통령이다’라며 작정하고 쓰는 현대사다. 이건 학문이 아니라 정치다. 애들에 가르쳐선 안 된다. 인생이 달린 국가시험에 출제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교과서 속 현대사 부분을 줄여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수능에는 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도 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관심이 줄어든다. 관심이 줄어들면 정치가 빠질 것이다. 정치가 빠지면 나라도 조용해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 본디 역사 인식에 머리띠를 동여맬 정도의 구국집단은 아니었다. 그저 학부모 표(票)를 노리는 욕심일 뿐이다. 그 탐욕의 숙주(宿主)를 끊어내야 한다. 현대사 부분 축소와 수능 출제 제외가 그 방법일 수 있다. 그때,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내가 전두환(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써내려갔어”.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대사 접근 이데올로기가 딱 그렇다. ‘학생 여러분이 새누리당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학생 여러분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나. 애들에겐 이런 현대사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이런 현대사 문제를 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歡迎이 아니라 謹弔라 붙이고 싶은…

차라리 시내버스 노선(路線)이다. 북수원역에서 영통역까지 거리라야 8㎞ 남짓이다. 여기에 무려 7개의 경유역이 정해졌다. 1㎞마다 한 번씩 서는 꼴이다. 웬만한 광역 버스 정류장만큼이나 잦다. 노선도 이상하다. 구상에 없던 3㎞가 생겼다. ‘이웃 동네’까지 훑고 지나가기 위해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이 안 선다. 예산은 또 얼마나 늘어날는지 걱정이다. ‘기본 계획’인가 ‘미친 계획’인가. 도면을 받아든 정치인들이 신났다. 북수원역 일대에는 ‘박종희’ ‘이찬열’ ‘김상민’이란 정치 현수막이 내걸렸다. 3㎞짜리 ‘이웃 동네’에는 ‘이상일’이라는 현수막이, 영통에는 ‘박광온’이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SNS도 난리다. 저마다 공치사(功致辭)가 한창이다. 유일호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은 빠지지 않는 영웅담이다. 하나같이 ‘당초 없던 역사를 내가 장관에 부탁해서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는 판단력 좋은 기자였고, 계산 빠른 사업가였고, 정의감 넘치는 운동가였다. 기자였다면 ‘정치로 누더기 된 신수원선’이라고 썼을 거고, 사업가였다면 ‘서울행 전철의 사업성 상실’이라고 했을 거고, 운동가였다면 ‘미래 교통 망친 정치인 반성하라’고 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저러고 있다. 왕창 늘어난-그래서 사업 착수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미친 계획을 보며 ‘경축’이라 선동하고 있다. 현수막을 보는 시민이 저마다 한 소리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잊어버리기엔 너무 가까운 분당선의 추억이 있다. 첫 구간 완공은 1994년이었다. 수원 구간 완공까지 19년 걸렸다. 그 기간을 보고만 있을 정치가 아니다. 너도나도 경유역과 노선 확충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늘어났고 결국 36개 역사가 생겼다. 서울에서 수원역까지 총거리는 53㎞다. 1.47㎞마다 하나씩 만들어진 셈이다. 속도를 낼래야 낼 수가 없다. 달릴만하면 서는 기차다. 그렇게 분당선은 오늘도 버스로 50분 갈 길을 86분 걸려 가고 있다. 전체 시민의 피해는 둘째다. 직격탄은 경유역 동네로 떨어졌다. 영통이 그랬다. 개통만 되면 집값이 오를 거라고 했다. 서울 손님들이 왕창 오면 장사가 잘 될 거라고 했다. 기대 속에 2012년 12월 개통했다. 그런데 반나절도 안돼 실망이 쏟아졌다. 전철 노선도에 빼곡한 경유역을 본 뒤 주민들이 ‘서울 갈 수 없는 전철’이라고 결론냈다. 결국 ‘환영’ 현수막보다 먼저 떨어진 것은 집값이었다. 그렇다고 어찌해볼 도리도 없다. 경유역을 뺐을 수도 없고 노선을 펼 수도 없다. 36개나 되는 경유역이든 86분이나 걸리는 시간이든 50년쯤은 그냥 참고 살아야 할 듯 보인다. 정치가 한번 들쑤신 철도교통의 폐해가 이렇게 길면서도 무섭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을 벌이려 한다. 그때의 1.47㎞로는 부족했던지 이번엔 1㎞에 하나씩 역사를 세우자고 한다. 옆 동네 안마당까지 철길을 대자고 한다. 이건 철도 교통이 아니다. 막아야 한다. 신수원선엔 아직 기회가 있다. 역사와 노선 변경을 촉구하면 된다. 북수원역, 장안구청역, 월드컵역을 하나로 줄이자고 하면 된다. 법원 삼거리역, 원천역, 영통역도 통폐합하자고 하면 된다. ‘이웃 동네’로 끌고 갈 노선도 돈 없으면 1차 사업에서 빼자고 하면 된다. 장안구 주민에게 돌 맞고, 영통 주민에게 벽돌 맞고, ‘이웃 동네’ 주민에게 멱살 잡힐 일이다. 그렇더라도 해야 한다. 철도교통이 뭔가. 2014년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인덕원~수원 복선전철 건설사업은 수도권 서남부 지역과 서울시 동남부 지역의 광역 교통기능 확충을 통하여 대중교통 서비스의 개선 및 대중교통 이용률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이다.’ 분명히 ‘광역 교통 기능’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시내버스 교통 기능’을 내놨다. 무책임한 정치와 무원칙한 행정이 빚은 탈선(脫線)이다. 이걸 원래 목적대로 돌려야 한다. 그게 안양도 살고, 수원도 살고, 동탄도 사는 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검찰 司正, 10개월 수사해 80대 노인 잡다

아무리 생각해도 엉뚱했다. 자가발전(Private power stationㆍ自家發電)은 산업용어다. 그런 말이 왜 검찰에서 쓰일까. 본래 의미는 ‘필요한 전력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다. 이를 그대로 검찰에 원용하면 이렇다. ‘검찰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행위’. 알듯 모를 듯한 이 말의 실체를 깨달은 건 법조 기자 3,4년차쯤 돼서다. 검사가 수사하려는 사건의 단초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익명의 투서, 고발장 등이 단골 소재였다. 직접 쓰기도 했고 제3자에게 시키기도 했다. 물론 수신인은 수사 검사 본인이었다. 90년대 후반. 지역 내 어느 기업인에 대한 수사도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알게 된 신출내기 기자엔 충격이었다. 특수부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스스로 만든 투서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나. 부도덕하다’. 특수부장의 답변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업이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 그런데 우리가 수사하면 표적 수사라고 난리 치겠지? 이 빽저 빽 동원할 거고. 검찰 수사는 결과만큼이나 착수의 정당성도 중요한 거야.”실제로 그랬다. 특수수사의 대상은 힘 있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들이댈 빽과 떠들어 댈 목소리가 있다. 그들이 하는 항변이 있다. 바로 ‘표적수사’다. 혹여 수사 과정에 변고(變故)가 생기거나 무죄(無罪)라도 날라치면 항변은 더 격해진다. 이쯤에 이르면 검찰은 수사가 필요했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 정당성의 징표가 바로 투서 또는 고발이다. 이 징표를 스스로 만드는 게 자가발전이었다. 벌써 꽤 된 얘기다.검찰의 자원외교 수사가 벌써 열 달 째다. 당초 조사부 사건이었다. 그러다가 특수부로 넘어갔다. 경제수사에서 특별수사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감사원과 참여연대의 고발장이 수사 단서였다. 그때 슬그머니 섞여 들어간 다른 수사가 있다. 이른바 포스코(POSCO) 비리 수사다. 여기엔 딱히 알려진 수사 단초도 없다. 언론이 곧바로 전(前) 정권에 대한 수사라고 명명했다. 타깃은 전 대통령 측일 것이라 못 박았다.그리고 10개월이 흘렀다. 예상은 그대로 맞았다. 다 빠지고 포스코와 전 대통령의 친형만 남았다. 검찰은 전 대통령 형이 돈을 받았다고 한다. 전 대통령 형은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한다. 법원이 내릴 최종 판결은 아직 멀었다. 유무죄를 따질 게재가 아니다. 얘기하려는 건 검찰을 보는 여론이다. ‘전직 대통령 잡으려는 수사였다’ ‘친이에 대한 보복수사였다’. 이 술자리, 저 밥 자리에서 단정되는 바닥 여론이다.운명이라 치자. 사실 그런 소릴 들을 데자뷔가 검찰엔 너무 많았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 노무현 대통령 수사…. 검찰은 매번 정의(正義)를 얘기했지만, 여론은 냉랭했다. 모두 권력 입맛에 맞춘 정치 수사라고 결론 냈다. 돈 쓰는 정치풍토를 혁명적으로 바꿨다고 평가되는 참여정부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는 여당 114억원 대 야당 823억원이었다. 이를 정의라고 말한 사람은 많지 않다.안타까운 건 지금의 수사가 앞서의 것들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잡음은 많고, 결과는 미미하다. 수사 대상자가 억울하다며 목을 맸다. 사정(司正)을 선포한 총리가 사정의 대상이 됐다. 포스코 부회장, 건설사 회장, 자원공사 사장의 구속 영장이 줄줄이 기각됐다. 전 대통령의 친형을 소환하면서 수사가 정점을 찍는 듯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검찰 사정으로 구속됐던 전 해군 대장(大長)이 무죄로 석방됐다. 때를 맞춰 전 대통령의 형은 중(重)환자 코스프레로 청사에 나타났다. ‘감옥에서 나온 지 2년밖에 안 됐다’는 감상적 기사들도 따라붙었다. 그러면서 여론의 화살이 검찰수사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80세 노인 잡으려고 그 난리를 쳤나’ ‘겨우 갓끈 떨어진 가족 구속인가’…. 졸지에 검찰은 무모한 수사, 무능한 수사의 주체가 돼버렸다. 무려 10개월, 정권의 5분의 1을 소비한 수사에 내려지는 차디찬 평(評)이다.왜 이렇게 됐을까.그때. 수원지검이 수사한 것은 동네 작은 기업이었다. 그런데도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자가발전’의 무리수까지 뒀다. 하물며 권력을 겨누는 수사다. 돌아보면 국민에 동의를 구하고 시작했어야 했다. 없다면 ‘자가발전’이라도 해서 만들었어야 했다. 고민했는데도 동의를 구할 수 없었고, 노력했는데도 단초가 없었던 수사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수사 안하겠다’고 당당히 거부했어야 했다. 검찰에 있어 ‘성역 없는 수사’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성역 없는 수사 거부’이기 때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유엔 총장 반기문·한국 대통령 반기문

세상에 아름다운 전쟁이란 없다. 고귀한 목숨을 빼앗는 집단의 광기(狂氣)일 뿐이다. 태평양 전쟁은 그중에도 잔혹했다. 어림잡아 1천900만명의 아시아인이 죽었다. 중국은 1천만명의 국민을 잃었다. 필리핀(111만명)ㆍ타이완(3만명)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10만명)의 희생도 컸다. 그 속엔 20만명의 죄 없는 조선인도 있다. 가해자이자 전범국인 일본은 어땠나. 군인과 군속 230만명을 비롯해 310만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그렇게 모두를 죽이는 행위다. 9월 3일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날이다. 이를 승전일이라고 명명한 중국이 축제를 벌였다. 무시무시한 무기로 톈안먼 광장을 채웠다. 그 자리에 각국 원수들을 불러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거기 있었다. 누가 봐도 경제력을 앞세운 과시용 행사다. 몇 세기 전에 봤던 떼국-대국(大國)-의 오만함까지 얼비쳤다. 섬뜩했던 그날의 열병식을 축제라 여긴 세계인은 아무도 없다. 이런 전쟁을 막는 것이 유엔이다. 헌장 전문에 그 목적이 명시돼 있다.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인간의 존엄과 가치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두 차례 세계 대전에 대한 참회가 있고, 인간 존엄에 대한 선언이 있고, 무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이 헌장에 손을 얹고 취임한 이가 반기문 사무총장이다. 그랬던 반 총장이 열병식엘 갔다. 무기를 자랑하고, 세계를 협박하는 곳엘 갔다. 유엔 총장의 일은 평화 수호다. 다그 함마르셸드 총장(2대ㆍ스웨덴ㆍ1953~1961)을 역대 최고로 친다. 그도 중국에 갔었다. 억류된 미 정찰기 승무원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충돌하던 때다. 그 국제적 공백에 뛰어들어 인질을 구출해냈다. 콩고 분쟁 지역으로 이동하다가 추락한 비행기가 그의 마지막 사무실이었다. 최초의 사후(死後) 노벨상이 수여됐다. 반 총장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덩달아 우리 입장만 고약해졌다. 일본이 모처럼 칼자루를 쥐었다. 반 총장의 열병식 참석을 보름 넘게 물고 늘어진다. 반 총장의 행동과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싸잡는 발언까지 나온다. UN 사무총장을 맡을만한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간파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베 총리의 측근이라는 하기우다 자민당 특보의 말이다. 아마도 이번만큼은 국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논리가 우위에 있다는 확신이 선 모양이다. 툭하면 우리 심기를 건드리던 일본이다. 위안부는 없었다고도 했고, 독도가 저네들 땅이라고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반박할 단어는 간단했다. 위안부 망언 독도 도발이라고 하면 끝났다. 그런데 이번 반기문 비난은 다르다. 유엔 총장의 전쟁 파티 참석이 적절치 않은 게 사실이다. 패전국 일본이 불공정에 대한 유감을 표하는 것도 당연하다. 무수했던 일본의 도발 중에 이번처럼 우리가 할 말 없어 보기도 처음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 국내 정치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된단다. 친박(親朴) 쪽 후보로 그가 상정됐다고 한다. 반기문 대통령(外治)- 친박 총리(內治)라는 구상까지 나돈다. 열병식 참석도 박 대통령을 위해서였다는 확신도 나온다. 앞의 것은 대통령의 현재 측근-윤상현-이, 뒤의 것은 대통령의 과거 측근-이상돈-이 흘린 설이다. 반기문 신당을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이 여론조사 맨 위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열병식 보름 만에 조성된 환경이다. 그렇게 보면 성공한 열병식 참석으로도 보인다.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서서 국제적 중량감을 과시했다. 때마침 유엔 총회도 시작됐다.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설 차례다. 외치를 담당할 대통령 후보에겐 더 없는 사진첩들이다. 유엔 정신을 저버리고 참석했던 중국 전승절 열병식이 대통령 후보 반기문으로선 최고의 대선 출정식이 된 셈이다. 바야흐로 세계의 대통령에서 한국의 대통령으로 옮겨오는 과정인가. 그런데 말이다. 대통령이 안 되면 어찌 되는 건가. 괜히 사심(私心)에 매여 전쟁 파티나 따라다닌 총장이 되는 건 아닌가. 괜히 한국인의 유엔 총장 자질에 상처만 준 총장이 되는 건 아닌가. 괜히 9년 전 모두의 지지에서 절반의 지지로 내몰리는 총장이 되는 건 아닌가. 한국 정치는 늘 유력자를 흡수한 뒤 폐기해 버렸다. 그 습성을 알기에 따라붙는 걱정이다. 총장 임기는 1년밖에 안 남았고, 대통령 선거는 2년이나 남았는데. 유엔 총장의 열병식 참석은 잘못이다. 이를 항의하는 일본의 주장이 옳다. 반 총장은 그 때 거기 있지 말았어야 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유엔 총장 반기문한국 대통령 반기문]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상수원 갈등, 평택시가 틀렸다

억울하다는 용인시엔 이렇게들 쓴다. 용인시가 억울하겠소. 피해자라는 평택시엔 이렇게들 쓴다. 평택시가 피해자 같소. 중재한다는 경기도엔 이렇게들 쓴다. 경기도의 중재도 옳소. 정승 황희(黃喜) 일화가 아니다. 송탄 취수장 논란을 보도하는 작금의 활자(活字)가 그렇다. 이러다 보니 독자들이 얻는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용인시와 평택시가 한 판 붙었다고만 안다. 그저 또 하나의 지역이기주의라고만 본다. 이게 그렇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잖은가. 36년 현안이다. 서명에만 20만명이 매달렸다. 여의도 22배의 경기 남부 개발권이 달렸다.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표현하는 게 옳다. 꼭 정답은 아니어도 된다. 저마다의 생각과 판단이면 족하다. 의견은 그렇게 모아지는 것이고, 그 의견들이 충돌하면서 최종 합일(合一)로 다가가는 것이다. 상수원구역을 없애라는 용인시. 절대 안 된다는 평택시. 나는 용인시의 패(牌)를 쥐려 한다. 송탄 취수장의 식수 공급 기능은 끝났다. 유일한 수단이었던 36년 전과 달라졌다. 평택시에 할당된 하루치 팔당호 물만 27만3천t이다. 이 중에 쓰이는 건 13만6천여t이다. 팔당호 물은 수도권 2천만명이 먹을 만큼 양질(良質)이다. 그 상수도관에 파이프만 연결하면 된다. 송탄 취수장에서 쓰는 물 2만5천t은 그 순간 대체된다. 그런데 안 한다. 팔당호 물이 더 비싸서란다. 결국, 용인 피해로 물값 이익을 계속 보자는 것이다. 평택호 오염? 이것도 평택이 할 소리는 아니다. 조사된 진위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은 이렇다. 상류 2mg/l (좋음), 중류 3~4mg/l(보통), 하류 8mg/l(나쁨)다. 용인에서 흘러간 물이 평택을 지나면서 더러워짐을 보여준다. 구간 구간마다 예외 없이 평택시가 만든 오염원이 있다. 평택 시민을 위한 캠핑장 물놀이장 눈썰매장이 있고, 평택 경제를 위한 산업단지가 있다. 이래놓고 용인에만 청정지역을 한없이 유지하라고 한다. 평택 보도자료에 농업용수가 등장하던데. 이것도 어불성설이다. 하천물에는 등급이 있다. 깨끗한 물(1급수), 약간 깨끗한 물(2급수), 약간 더러운 물(3급수), 더러운 물(4급수), 아주 더러운 물(5급수)이다. 3급수까지가 식수(食水)의 한계다. 이 식수를 보호하자는 것이 상수원 보호다. 송탄 취수장 폐지 문제도 바로 이 1,2,3급수 처리 문제다. 뜬금없이 4급수 농업용수가 왜 나오나. 애초부터 논란의 본질과 관계없는 소재다. 공동 조사에 미적대는 평택시 입장도 그렇다. 지난 4월 31개 시장 군수가 모였다. 남경필 도지사가 숙식비 내면서 마련한 연정 이벤트였다. 여기서 송탄 취수장 문제가 거론됐다. 이해관계 시군이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그랬던 합의가 평택에서 주춤댄다. 시의회는 몇 푼도 되지 않는 용역비를 다 깎았고, 시는 다시 올린 용역비를 두고 상수원 해제와 무관하다며 선을 긋는다. 공동조사를 꺼리는 이유라도 있나. 많이 듣던 논리 중에 이런 게 있다. -환경오염은 수챗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상류의 모든 행위를 막아야 한다. 무공해 행위든 친환경 행위든 풀어주면 안 된다. 주민에게 규제는 운명이다. 그냥 감수하고 살아라-. 바로 경기도민을 과(過)하게 옥죄고 있는 팔당상수원 보호규제 논리다. 경기도 절반 지역에 집도 못 짓게 하고, 기업도 못 들어오게 하는 논리다. 이 무지막지하고 지긋지긋한 논리가 지금 평택의 논조다. 다른 곳도 아닌 평택이다. 산업 규제와 군사 규제의 납덩어리를 반백년째 끌어안고 지내는 평택시다. 뭔가 조화롭지 않은 모습 아닌가. 2008년.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노조가 파업을 시작했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상가도 문을 닫았다. 평택 경제가 바람 앞 촛불처럼 흐느적댔다. 2009년 1월 11일, 김문수 도지사. 최영근 화성시장, 조병돈 이천시장 등이 모였다. 추운 날씨 속에 이들이 외친 구호는 하나였다. 폐업 위기의 쌍용차를 살려달라! 평택 경제를 구해달라! 그 후로 쌍용차는 정상화됐고 지금 평택은 잘 산다. 그날, 시장들은 분명 자기 동네 시정(市政)을 미루고 달려갔을 거다. 틀림없이 경기도의 이웃, 평택의 고난 극복을 위해 머릿수라도 보태겠다는 정(情)으로 갔을 거다. 바로 그 자리에 서정석 용인시장도 있었다. 서랍 속에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를 통한 남사 신도시 조감도를 넣어두고 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서 시장이지만 조감도를 잠시 덮고 달려가 쌍용차를 살려달라! 평택 경제를 구해달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6년 조금 더 흐른 지금. 공재광 평택시장은 뙤약볕에 서 있는 정찬민 용인시장을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상수원 갈등, 평택시가 틀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김진표 불출마 論

도민 1천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누구인가. 1등 남경필(24.3%), 2등 김문수(20.6%), 3등 손학규(13.9%)다. 현(現) 도지사, 전(前) 도지사, 전전(前前 도지사다. 3선, 4선 국회의원들은 그 아래 있다. 여야 원내 대표들은 더 아래다. 이래서 경기지사를 소권(小權)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명박 이후 서울시장에 밀리는 듯하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경기지사는 잠룡(潛龍)이고 대망(大望)이다. 재미있는 건 4위다. 김진표 전 의원(6.8%)이다. 원혜영(5위) 정병국(6위) 이종걸(7위) 원유철(8위)보다 앞섰다. 저마다 선수(選數)와 직책(職責)을 자랑하는 거물들이다. 이런 거물들을 현역도 아니고 직책도 없는 김 전 의원이 이겼다. 1, 2, 3등엔 어차피 도지사 프리미엄이 붙었다. 계급장 떼고 계산하면 김 전 의원이 1등인 셈이다. 경제ㆍ교육 2번의 부총리를 했어서일까. 김 전 의원은 역시, 그리고 여전히 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판에서도 쎄다. 수원 정치가 그를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4개 지역구 중 장안과 영통은 야당이 현역이다. 권선과 팔달에서 야당 후보들이 경쟁 중이다. 여기에 지역구 신설 얘기도 있다. 결국 새내기 야권 후보들이 들이밀 곳은 세 곳이다. 그런데 세 곳 모두에서 김 전 의원이 거론된다. 권선은 그의 근거지라며, 팔달은 수원의 상징이라며, 신설구는 영통과 인접했다며 그의 이름이 나온다. 같은 당 후보군들에겐 가히 공포다. 그를 피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다. 김 전 의원이 어디로 나올 것 같으냐 김 전 의원이 동네에 들렀던데 이곳으로 결정한 것이냐는 얘기가 숱하다. 상대 당 후보군도 떨기는 마찬가지다. 남 지사도 측근에게 가급적 김진표와의 경쟁은 피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렇게 수원 정치의 이 순간 화두는 김진표 피하기다. 흡사 정어리 떼를 몰아내는 상어의 위용(威容)이다. 6년여 전쯤인가. 식사를 했다. 여의도에서 유명하다는 김진표 주(酒)가 몇 잔 돌았다. 동문 얘기가 나왔고 갑자기 그가 밥상을 쳤다. (선배들은) 이제 그만 기득권을 놔야 한다. 언제까지 상왕 노릇들을 할 것인가. 나도 벌써 젊은이들과 호흡이 안될까봐 신곡도 듣고 노력하고 있다. 옮기는 표현이 틀릴 순 있다. 하지만, 밥상을 치던 모습과 선배들의 용퇴를 강조하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어느덧 그가 그 또래다. 그래서 궁금하다. 지금도 그때의 소신 그대로인가. 그때의 논리대로 용퇴할 생각이 있는가. 애초 나이(68)는 기준일 수 없다. 그가 입으려는 옷이 문제다. 영통 주민은 그에게 세 번 옷을 입혔다. 매번 일방적 지지였다. 1년 전, 스스로 그 옷을 벗었다. 더 큰 옷을 입고 싶다고 했다. 소권이라는 옷, 대통령 후보라는 옷, 바로 경기도지사라는 옷이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더 큰 사랑으로 응원했다. 꼭 도지사가 되라며 몰표를 줬다. 결과는 석패(惜敗). 새벽녘에 끝난 1% 승부에 맘 졸인 주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벗었던 옷을 다시 입으려는 모양이다. 그것도 이 동네 저 동네 옮겨 다니면서까지. 사퇴에 얽힌 회색빛 전력도 있다. 도지사 선거를 앞둔 작년 4월 11일, 그가 기자회견을 했다. 당의 경선룰 변경 움직임에 대해 도지사 후보를 사퇴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자 사퇴 얘기는 들어갔다. 경선에 임하는 기술이었다 치자. 하지만, 그 4년 전 사퇴 파문은 달랐다. 도지사 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후보가 안 되자 다시 국회로 들어갔다. 모두에게 적법성을 따지게 만든 해괴한 기록이다. 툭하면 썼다가 툭하면 주워담는 국회의원 사퇴서. 그에게 의원 배지는 욕망을 거래하는 교환권인듯 싶다. 거물임은 틀림없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가 수원의 어른이다. 어린이와 어른은 달라야 한다. 어린이들이 싸우면 어른이 말려야 한다. 지금 수원 정치판은 정치 어린이들로 시끄럽다. 서로 물고 뜯는 중이다. 정치 어른 김 전 의원이 나설 때다. 권선구에 가서 정리해주고, 팔달구에 가서 가려주고, 신설구에 가서 말려줘야 할 때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없다. 되레 그 이전투구의 한복판에 김진표라는 이름 석 자가 있다. 뭔가 어색하지 않나.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 않나. 6년 전 어느 날, 그는 선배들의 용퇴를 말하며 밥상을 쳤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그의 용퇴를 말하며 밥상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김진표 불출마 論]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南 지사·김용남 의원 갈등說이…

떠도는 설(說)은 대략 이렇다. 7ㆍ30 재보선 후유증 설이다. 남 지사는 김 의원을 원치 않았다. 대신 비례대표인 아무개를 밀었다. 그런 앙금 속에 김 의원이 당선됐다. 그리고 등원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19대 국회가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이유 중 하나가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식물화법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남 지사가 만들었다. 싸우지 않는 정치를 향한 그의 역작이었다. 그런데 남도 아닌 지역구 후임이, 등원 일성으로 그 작품을 건드린 것이다. 지역구 인사 홀대설도 있다. 수원 팔달구(병)는 남 지사의 20년 텃밭이다. 자신과 함께 하던 인사들이 많다. 이들을 챙겨달라고 김 의원에 부탁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대부분 들어주지 않았다. 자신만의 인사로 자신만의 진용을 꾸렸다. 도(道)로 떠난 남 지사에겐 빚으로 남았다. 대신 이때부터 남 지사 사람들을 챙긴 이가 도의원 아무개였다-아무개 도의원은 현재 김 의원의 대항마로 팔달구에 등장해 있다-. 챙겨 받지 못한 이들의 불만이 깔려 있다. 팔달 경찰서 유치 갈등설도 나온다. 오원춘 살인 사건이 난 곳이 팔달구다. 치안 부재에 대한 지역민의 요구가 크다. 그래서 경찰서 신설이 추진되고 있다. 김 의원에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내야 할 정치적 역점 사업이다. 여론몰이를 위해 궐기 대회도 하고 서명 운동도 하고 있다. 당적이 다른 염태영 시장도 공동 추진 위원장을 맡아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남 지사의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한 번쯤 들러 힘을 보태줄 만도 한데 곁을 주지 않는다. 시책추진비 갈등설은 요사이 나온다. 김 의원이 요청해놓은 도비(道費)는 20억원이다. 동수원고가차도ㆍ우만고가차도 방음벽 설치, 팔달구민 생활체육센터 보수예산 등이다. 지역민 앞에 내보여야 할 김 의원의 약속들이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돈이 나오지 않는다. 그사이, 아무개 도의원이 요청한 도비 5억원은 즉시 지원됐다. 도비 5억원 확보라는 도의원의 문자가 지역에 뿌려졌다. 졸지에 김 의원만 도비도 못 가져오는 무능력자가 됐다. 한번 보자. 남경필 도지사는 5선(選)에 경기도지사다. 김용남 의원은 초선(初選)에 팔달구 국회의원이다. 정치적 중량에서 비교가 안 된다. 사실 갈등이라고 표현할 게재도 아니다. 나도는 설의 어법(語法)에서도 그런 차이가 묻어난다. 남 지사가 김 의원을 정리하려 한다 남 지사가 김 의원을 외면하고 있다 남 지사가 김 의원 대타를 투입시켰다. 대부분 남 지사가 주어(主語), 김 의원이 목적어(目的語)다. 여론이 둘을 절대 강자와 절대 약자로 보고 있음이다. 이러니 피해자는 남 지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이다. 그의 정치 20년의 근원은 화합과 통합이다. 그의 국회선진화법이 지금은 욕을 듣지만, 해머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입법 당시를 생각하면 평가는 달라진다. 도지사 취임부터는 아예 화합의 전도사로 통한다. 내 몫을 크게 떼어 야당에 줬다. 부지사도 줬고 산하단체장도 줬다. 결국, 남 지사는 지금 경기도라는 텃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광야로 옮겨심을 화합의 묘목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텃밭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화합ㆍ통합과 거리가 먼 갈등ㆍ충돌이라는 구멍이다. 구멍의 모양새도 여간 흉하고 어색하지 않다. 20년 정치 고향을 물려준 후임과의 갈등이다. 4선(選)이나 낮고 5세(歲)나 어린 정치 후배와의 잡음이다. 5선의 거물 답지 않고 1천300만 도민의 대표답지 않다. 5천만 국민을 끌어안겠다는 대통령 후보자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이쯤 됐으면 받아줄 거 받아주고, 내어줄 거 내어주면서 끝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봐도 김 의원이 그런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품는 것도, 보듬는 것도, 끝내는 것도 다 남 지사가 해야 할 일로 보인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南 지사김용남 의원 갈등說이]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박영수 前고검장의 빠찡코 대부 변론

술이나 한잔하지. 햇병아리 기자가 마다할 이윤 없다. 선배와의 모든 경험이 곧 공부다. 수원시내 한 카페로 따라갔다. 예약된 자리는 한쪽 귀퉁이였다. 와 있던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수원의 마지막 주먹이라 불리던 두목이었다. 햇병아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 사람이 여기에. 하지만 놀라긴 일렀다. 곧이어 머릿속을 더 복잡스럽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깡패 잡는 현직 강력부장검사였다. 두목과 기자와 부장검사. 자리의 호칭은 형님과 아우였다. 감옥 가던 얘기, 감옥 보내던 얘기가 다 유머였다. 간간이 섞어 넣는 선배 기자의 추임새도 분위기를 맛깔지게 했다. 햇병아리 기자만이 끝까지 관객이었다. 한참 뒤 부장이 일어섰고 일행이 따라갔다. 두목이 뭔가를 가져와 부장 승용차에 실었다. 작지 않은 크기의 도자기였다. 그날의 주인공들은 뒷날 사업가로, 고검장으로, 존경받는 기자로 승승장구하며 커갔다. 벌써 20여 년 전 얘긴데. 지난 17일,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전(前) 고검장, 박영수 변호사가 피습당했다. 범인은 건설업자 이모씨다. 범행 당시 당신의 전관예우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변호사 위해(危害)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박 변호사 피습의 충격은 크다. 그가 갖고 있는 검찰 역사 속 비중 때문이다. 알아주던 특수ㆍ강력통 검사였다. 대검중수부장에 고검장까지 했다. 아는 이들이 많은 만큼 받는 충격도 크다. 곧 여론이 들끓었다. 범인을 엄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루도 안 지나 대한변호사협회가 논평을 냈다. 사건 당사자가 상대방 변호인의 생명과 신체를 공격하는 사적 보복 행위는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종편에 출연한 논객들도 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거품을 뿜었다. 맞다. 변호사 보복은 법정 보복이다. 법정 보복은 법치의 근본을 흔든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략된 토론이 있다. 이 사건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박 변호사가 변론했다는 의뢰인의 이름이다. 빠찡코의 대부라는 형용사가 따라붙던 이름이다. 6공 황태자 박철언을 몰락케 했던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지금도 이런 형용사가 붙는다. 기업형 폭력계 대부, 슬롯머신계 황제, 권력 유착의 거악. 바로 정덕진씨다. 그가 박 변호사가 변론한 의뢰인이다. 그리고 범인 이씨는 이런 전 고검장-전 빠찡코 대부 조합과 싸우다 재판에서 진 것이다. 도통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박 변호사는 검사의 꿈인 고검장이었다. 부패 척결의 지휘부인 대검중수부장이었다. 폭력조직과 맞서던 강력부장이기도 했다. 정씨는 비리의 상징이었다. 뇌물로 권력을 요리하던 부패의 장본인이었다. 폭력조직을 거느린 위장 사업가였다. 그런 박 변호사와 그런 정씨가 법정에서 한편이 됐다. 2천만원-박 변호사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의 소송비로 우군(友軍)이 됐다. 혼란스럽기 짝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더 황당한 연(緣)이 있다. 박 변호사와 정씨는 한때 수사 검사와 수사 대상자였다. 1998년 9월 정씨가 해외상습도박과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정씨를 구속한 것은 서울지검 강력부다. 바로 그 강력부의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였다. 1998년에는 벌주고 벌 받던 관계였는데, 2009년에는 수임료 주고 받으며 서로 돕는 관계가 된 것이다. 적과의 동침인가. 드라마 모래시계인가. 국민이 혼란스럽다. 변협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정(自淨)을 강조했다. 윤리강령도 명예와 품위를 보전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 정신으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변호사 등록도 거부했었다. 법인 카드를 편법 지출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잣대를 말하지 않았다. 피습 범인에 대한 엄벌을 말하면서 부적절한 수임 관계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변협이 이러다 보니 앵무새 논객들도 이 부분을 생략하고 끝내 버렸다. 변호사의 명예와 품위는 누가 점수 매기는가. 국민이다. 국민이 인정해주는 명예여야 하고, 국민이 인정해주는 품위여야 한다. 존경받던 고검장이 빠찡코 대부를 변론하는 모습에 명예를 부여할 국민은 없다. 수사했던 검사가 구속됐던 피의자를 변호하는 모습에 품위를 부여할 국민은 없다. 피습당해도 좋을 생명이 세상에 어디 있나. 이런 뻔한 토론보다 더 중요한 토론이 있었다. 국민에도, 검찰에도 꼭 필요했을 이런 토론이다. -전 고검장의 전 빠찡코 대부 변론은 옳은 것인가? 국민이 믿는 사법정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후배 검사들이 안고 가는 명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前고검장과 前빠찡코 대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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