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나는 무상급식의 패배자다

이 기자의 침묵이 수 초간 흘렀다. 조용한 미소 속엔 반대의 뜻이 역력했다. 그래도 설득은 계속됐다. 무상급식은 부잣집 애들한테 돈 쓰자는 거다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가지 못한다 그 돈이 어디서 난다는 건지 설명이 없다. 주로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확실히 기억나는 말은 이거다. 출입처가 부담되면 안해도 돼! 듣고 있던 이 기자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작정한 듯 말하고 국장실을 나갔다. 2009년 늦은 가을의 일이다. 아직 무상급식은 경기도만의 화두에 머물러 있었다. 그 무상급식과의 전면전을 기획하는 자리였다. 무상급식의 창시자는 김상곤 교육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그 이론의 본산지다. 무상버스 평가는 여론 몫 그곳의 출입담당이 이 기자였다. 당연히 그의 동의가 필요했다. 출입처에서 겪게 될 고난이 클 수 있어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홀로 밥 먹는 이 기자와 항의 전화에 시달리는 이 기자를 자주 보게 됐다. 명분은 당당했고 거창하기까지 했다. 무상급식의 허구를 논리로 지적해내자는 대의(大義)가 있었다. 무상급식 예산 1천200억원이 가져올 파국을 얘기했다. 예산 돌려막기의 끝을 경고했다. 정치로 번져갈 무상복지의 전염성도 경계했다. 그 후 무상복지를 비난하는 논리-부자복지, 예산파행, 포퓰리즘 등- 대부분이 그때 활자화됐다. 그러던 작업이 멈춰 선 것은 보수조차 무상을 베껴 쓰기 시작한 2010년 6월에 와서다. 여론이 무섭게 돌아섰다. 당장 얻게 될 월 5만원 앞에 중심을 잃었다. 한나라당 후보들도 무상급식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2009년 늦은 가을에서 2010년 6월에 이르는 7개월. 그 7개월은 그렇게 빠져나가는 여론의 썰물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 했던 시간이다. 이 기자와 함께 했던 무상급식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역사 속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패배다. 얻은 건 두 가지다. 정치 의제의 결론은 이론이 아니라 표가 내린다는 교훈이 하나고, 잘못된 지시가 후배 기자의 일상을 날렸다는 미안함이 다른 하나다. 그랬던 무상이 또 등장했다. 이번에도 김상곤 교육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펴 복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없애고, 위기에 처한 분들의 삶을 절망에서 구출하겠다면서 버스완전공영제를 통한 무상대중교통 실현을 약속했다. 이번에도 대중은 수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실현성의 문제도 따지지 않았다. 12일 오전 발표문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무상버스가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데 두세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주 낯익은 비난이 쏟아진다. 비현실적이다 포퓰리즘이다 무책임하다. 5년 전 이 기자와 함께 써내려 가던 논리다. 거기에서 급식이 버스로 바뀌었고, 1천200억원이 1조5천억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밟히면서 성장하는 특유의 생명력도 똑같다.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이 이어지지만 덩달아 검색어 상위 랭크도 이어지고 있다. 터지자마자 선거판을 장악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도지사 선거판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달라진 게 있긴 하다. 칼끝을 돌려 잡은 과거의 우군(友軍)들이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부담해야 할 재정이 연간 1조5천억원이다. 공감대를 얻을 수 없는 논란거리로 전락했다며 비난했다. 같은 당 김진표 의원도 세금이 늘 수밖에 없다. 법률적으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어떤 민주당 시(市)의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시는 무상버스 외에 아무것도 못한다며 막아 달라고까지 한다. 다들 5년 전 응원군인데.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다 부질없는 논란이다. 무상버스의 옳고 그름은 논리로 결판나지 않는다. 여론이 어느 쪽으로 움직여 가느냐에 달렸다. 지지받으면 위대한 복지 공약이 되는 것이고, 외면당하면 무리한 선심 공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여론은 대체로 이성적 냉철함보다는 공짜의 달콤함에 더 쉽게 반응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런게 다 5년 전 무상급식 패배에서 얻은 교훈이다. 세 모녀의 공과금 70만원 그래서 이제는 그냥 지켜 보고 있다. 무상버스에 대한 여론조사나 찾아보려 기웃거리고 있다. 공짜에 길들여진 표심이 보편적 복지 반대론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부끄럽고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 모녀가 자살했다. 팔을 다쳐 식당 일을 그만둔 엄마, 당뇨병으로 생활력을 잃은 큰 딸, 아르바이트 임금을 못 받은 작은 딸. 이런 세 모녀가 먹고살 길이 없어 자살했다. 팔 부러진 그 며칠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라다. 돈 없는 당뇨환자에게 인슐린 하나도 놓아주지 못하는 나라다. 시급(時給) 착취를 당한 아이에게 보상도 해주지 못하는 나라다. 이게 보편적 복지를 외치면서 선택적 복지조차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세 모녀는 그런 대한민국에 내야 할 마지막 공과금(公課金)이라며 목숨만큼 중했을지 모를 70만원을 남겨놓고 죽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나는 무상급식의 패배자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공안 순풍이든, 공안 역풍이든

조짐은 지난해 9월부터다. 국정원이 국회로 들이닥쳤다. 현역 의원에게 적용한 죄명은 끔찍했다. 국헌을 문란케 하고 국토를 참절하려 했다는 내란음모였다. 국가가 한순간에 둘로 갈라졌다. 국가를 지키려는 세력과 국가를 뒤집으려는 세력, 헌법을 지키려는 세력과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 북한을 배격하는 세력과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사회가 이 극단의 분류 속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이념의 중간지대 따윈 사라졌다. 지방 정가의 여당이 술렁댄 게 그때부터다. 재고 있던 인사들이 바빠졌다. 재판도 일사천리였다. RO 모임의 이적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법원 앞 보수집회가 갈수록 커졌다. 2월 17일,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6개월간 이어져 온 정국에 석고를 들이붓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고령화된 유권자들이다. 선거는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서로 다른 두 公安이 공안 사건으로 시작해 정치의 방향까지 틀어 버린 공안순풍(公安順風)이었다. 그러던 정국에 전혀 다른 공안이 등장했다. 그 시작은 중국에서 날아온 간첩사건 증거 위조라는 공문이었다. 많은 이들-특히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국정원 발표를 믿었던-이 비난을 유보했다. 이후 잠잠했던 20여일은 그런 설마가 배려한 휴지기였다. 그러다가 터졌다. 국정원 협조자가 목에 흉기를 그어 대며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면서 자식에게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국정원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 1천만원 받아라. 검찰이 조사팀을 수사팀으로 바꿨다. 하루 뒤 국정원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하루 뒤 대통령이 유감 표명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천명했다. 그리고 반나절 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침묵하던 보수 언론도 책임자 처벌을 쓰기 시작했다. 굳어진 듯 보이던 공안정국에 큼지막한 균열이 생겼다. 이 틈새를 놓칠 야권이 아니다. 연일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7개월만에 방향을 돌려 잡은 공안역풍(公安逆風)이다. 그러면서 바빠진 게 선거판의 꾼들이다. 각자의 셈법으로 득실을 따진다. 그리고 나름의 논리를 근거로 결론을 만들어낸다. 혹시 그 꾼이 여당 쪽 녹(祿)을 먹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석기 내란 음모의 숙주 세력이 야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그 책임을 엄하게 물을 것이다. 반대쪽에 있는 꾼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작의 방조 세력이 여당이다. 유권자들이 절대 찍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이슈 없는 선거는 없었다. 지방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메뉴들이 있다. 정권 안정론과 정권 견제론이 있다. 대통령 공약의 실천과 파기를 두고 벌이는 논쟁도 있다. 인물론과 지역론도 있다. 이번에도 등장할 메뉴들이다. 물론 대상과 내용은 달라졌다. 이명박 견제에서 박근혜 견제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서 공천 폐지 공약으로, ○○도 출신에서 △△도 출신으로. 그래도 유권자 귀엔 20년째 그 소리가 그 소리다. 돌아보면 다 부질없는 얘기다. 정권 안정된다고 내 동네가 좋아지나? 견제돼도 내 동네는 망하지 않는다. 대통령 공약과 싸울 게 지방 자치의 책임인가? 여의도 국회가 할 일이다. 타지 출신은 절대 못한다? 토박이가 말아 먹은 동네도 숱하게 많다. 모든 게 억지로 꿰맞춘 궤변이다. 꾼들과 꾼들이 저희 좋자고 만들어 낸 정치 사술(詐術)이다. 그런데도 때만 되면 등장한다. 아마도 통한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4개월 전 칼럼의 제목도 그랬다. 8개월 뒤 지방선거, 법원만 쳐다보다(2013년 11월 7일자). 64 지방 선거가 두 건의 재판-국정원 댓글 사건ㆍ이석기 내란 사건-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 중 하나인 이석기 사건이 징역 12년으로 1심을 마쳤다. 실제로 직후 판세는 새누리당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등장했다. 여(與)도 야(野)도 예상 못 한 굵직한 변수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로 그래서 걱정이다. 선거라야 83일 남았다. 정책을 얘기하고 후보를 얘기하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정국은 여전히 공안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되레 더 격렬해져 간다. 선거 당일까지라도 끌고 갈 기세다. 이래저래 지방 없는 지방 선거의 몹쓸 데자뷔-공약 안 보고 찍고, 인물 안 보고 찍는-가 또 재연될 모양이다. 공안 순풍이 뭐기에. 공안 역풍이 뭐기에. 어차피 6월 5일 아침이면 철 지난 X-마스 캐럴처럼 썰렁해질 얘기 아닌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공안 순풍이든, 공안 역풍이든]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이기고 싶은가? 시군돌며 거칠게 경선해라 -경기도지사 선거-

이인제 후보가 공격했다. 대한민국은 냉전이 계속되고 있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수백만명이 공산주의와 싸우다 죽었다 대통령 부부는 그 순수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노무현 후보가 반격에 나섰다. 내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다. 나는 그걸 알고 결혼했고, 아들 딸 잘 낳아서 군대 보내고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내가 버려야 하느냐. 이인제-노무현의 경선은 그렇게 격했다. 그사이 이회창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1천300만의 小통령 선거 박근혜 후보가 공격했다. 자식교육에 당당하지 못하고 교육을 개혁할 수 있겠느냐. 부동산 문제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동산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 BBK 의혹에 대해서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후보로는 안 된다고 퍼부었다. 이명박 후보가 반격했다. 4월에도, 7월에도 이명박은 한 방에 간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한방이 아니라 헛방이었다. 박근혜-이명박의 경선도 격했다. 이번에는 정동영이 TV에서 작아졌다. 그리고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두 번 모두 사생결단의 싸움이었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싸웠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노 후보와 이 후보는 이후 만나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가 청와대로 들어갔을 때 이인제 후보는 재판정으로 들어갔다. 이 후보와 박 후보 사이에도 큰 앙금이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 밑에선 친박이 어색했고, 박근혜 대통령 밑에선 친이가 어색하다. 둘 다 아름다운 경선과는 거리가 멀다. 역설(易說)이다. 이런 격한 경선이 매번 화려한 본선 성적표를 만들었다. 2002년 초, 새천년 민주당의 해는 서산을 넘고 있었다. 그런 정당이 피투성이 경선을 거치며 살아났다.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2007년 초, 한나라당의 기세가 등등했다. 유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격한 경선의 효과는 뚜렷했다. 최고 득표율이라는 신기록이 만들어졌다. 두 번의 경선은 한국 선거에 중요한 기술을 전수했다. 선거에 이기려면 경선을 하라가 첫째고, 아름다운 경선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가 둘째고, 제아무리 격한 경선도 표의 이탈은 없더라가 셋째다. 어느덧 도지사 선거가 석 달 앞이다. 남경필ㆍ원유철ㆍ정병국ㆍ김영선 후보가 나왔다. 반대쪽엔 김상곤ㆍ김진표ㆍ원혜영ㆍ김창호 후보가 나왔다. 생활 속 정치도 시작됐다. 지겹게 듣는 질문이 누가 될 것 같으냐고, 그만큼 듣는 얘기가 누가 될 것이다다. 이만큼 의미 없는 질문과 부질없는 대답도 없다. 그걸 어찌 알겠는가. 맞춘들 우연이다. 하지만, 이기는 방법은 확실하다. 31개 시군을 순회경선 하면 이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그간 지방 선거의 축은 도지사 선거와 시장ㆍ군수 선거였다. 내 동네 대표를 뽑는 선거에 대한 관심은 특히나 컸다. 그런데 그런 시장ㆍ군수 선거가 정치에서 떨어져 나갔다. 야당의 무공천으로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정치 선거의 재미는 도지사 선거뿐이다. 1천300만이 지켜보는 소(小)통령 선거가 됐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순회경선을 하라는 거다. 돈이 없고 시간이 부족하다면 몇 곳씩 묶어서라도 돌아야 한다. 인구 100만인 도시에서도 해야 하고, 인구 5만인 도시에서도 해야 한다. 안성 1등이 연천에서 꼴등하고, 파주 1등이 용인에서 꼴등 하는 경선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된 후보는 본선에서 지지 않는다. 그렇게 모아진 여론은 본선에서 배신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질 조건이 격렬함이다. 반드시 난타전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새롭게 폭로될 비밀도 있고, 이미 알려진 비밀도 있고, 알려졌지만 쟁점이 되지 않았던 비밀도 있다. 어차피 본선 상대에겐 비수로 숨겨져 있는 비밀이다. 이걸 먼저 폭로하고 격하게 토론하는 경선이 돼야 한다. 노무현의 좌익과 이명박의 BBK가 본선에서 터졌더라면 역사는 달라졌다. 대통령 경선 방식 택해야 거친 경선이 본선을 담보한다. 이제 이 기술을 모르는 정치인은 없다. 그런데도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이 기술을 써먹자는데는 다들 멈칫거린다. 왜 그럴까.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일까. 추대되고 싶은 욕심? 감추고 싶은 비밀? 숨겨야 할 과거? 드러날지 모르는 밑천? 그래 봐야 어차피 다 보여질 욕심, 다 알게 될 비밀, 다 눈치 챌 과거, 다 드러날 밑천이다. 미련 버려라. 그리고 경선해라. 이왕이면 거칠게 해라. 그게 이기는 길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이기고 싶은가? 시군돌며 거칠게 경선해라 -경기도지사 선거-]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기북부 출신 경기도지사?

이한동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연천ㆍ포천에서 11대부터 16대까지 국회의원을 했다. 사무총장(민정당), 대표최고위원(한나라당), 총재(자민련)를 역임했다. 여기에 국회 부의장과 국무총리까지 했다. 한 때 중부권 맹주론을 설파하며 대권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야말로 정치와 권력의 모든 자리를 섭렵한 80, 90년대 거물이다. 그런 그가 넘어보지 못한 문턱이 있다. 바로 경기도지사 선거다. 1995년 선거에서 안양 출신의 벽에 부딪혔다. 또 한 명의 거물이 문희상 의원이다. 의정부에서 14대 이후 5선에 당 의장과 당대표를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 2차장도 역임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10년, 그는 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2006년 출마설이 돌았을 때 그가 이런 얘기를 인터뷰에 남겼다. 내 역할은 주인공이 말을 타고 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마부야. 이른바 마부론(馬夫論)이다. 이제 민선도 20년째다. 그 사이 다섯 번의 도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 중 경기 출신 4명이 당선됐다. 이인제(1대), 손학규(3대), 김문수(4ㆍ5대). 출마 직전까지 안양, 시흥, 부천을 지역구로 뒀던 정치인이다. 공교롭게 모두 경기 남부다. 다섯 번의 선거에서 유력정당의 기호인 1, 2번을 배정받았던 후보들 대부분이 남부 출신이다. 북부 출신으로 선거를 뛴 후보는 임사빈이 유일하다. 아무도 공천을 주지 않은 무소속 신분이었다. 민선 시대 권력은 선출직 장(長)으로부터 나온다. 도정은 도지사가, 시정은 시장이 권력의 원천이다. 이러다 보니 후보와 이런저런 연을 맺고 있는 그룹들이 내일처럼 지방선거판에 뛰어든다. 애교심(愛校心)을 이유로 동문 후보를 밀고, 애향심(愛鄕心)을 이유로 고향 후보를 민다. 하지만 이중 어떤 것도 경기 북부와는 연이 없다. 적어도 도지사 선거에 관한 한 그랬다. 북부 주민은 그저 당(黨)이 점지해준 남부 출신 후보를 보고 찍을지 말지를 결정하면 됐다. 이제 여섯 번째다. 이번은 어떨까. 일단 북부 출신이 여럿 뵌다. 북부의 김영선(고양) 전 의원과 북동부의 정병국(양평ㆍ가평)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 여기에 북서부의 유정복(김포) 장관도 거론된다. 김 후보는 당대표 출신의 여성이고, 정 후보는 장관 출신의 4선이고, 유 후보는 현직 장관이며 친박이다. 명함의 앞뒷면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을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후보군의 수나 면면에서 모처럼 경기 북부가 도지사 선거의 중심에 선 듯 보인다. 문제는 당선될 것이냐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싸움의 기본조건인 인구에서 밀린다. 경기 북부는 11개 시군에 343만명이다(2013년 4월 말 현재). 남부에는 여기에 3배 가까운 903만명이 산다. 남부 출신의 후보들은 이번에도 일찌감치 진을 쳤다. 원유철(평택)ㆍ김진표(수원)ㆍ원혜영(부천) 의원이다. 저마다 부지사 출신, 부총리 출신, 시장 출신의 스팩을 자랑하는 현역 의원들이다. 혹여라도 남-북 대결로 간다면 북부 출신에게 유리할 게 없다. 하지만, 설혹 그렇더라도 북부는 얘기돼야 한다. 북부 출신의 무더기 출사표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남부 중심의 선거가 북부 중심의 선거로, 900만끼리의 선거가 300만도 함께하는 선거로 바뀌어 가는 불쏘시개다. 원유철 후보를 북부로 부르고, 김진표 후보에게 북부 공약을 말하게 하고, 원혜영 후보에게 2청 개혁을 약속받아 내는 마중물이다. 모든게 김영선, 정병국이 나오고 유정복이 거론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래야 도지사 선거 아니겠는가. 북부 출신이 나와 북부의 자존심을 얘기하고, 이에 놀란 남부 출신이 북부 사랑을 쏟아내는 선거. 900만뿐 아니라 300만도 표를 무기로 당당히 후보를 윽박지를 수 있는 선거. 이것이 진짜 1천200만의 경기도지사 선거다. 지난해. 김희겸 북부 부지사가 취임했다. 그의 나이 쉰하나다. 모두들 젊은이가 왔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 코미디 같은 얘기 속에 소외받은 북부 20년이 있다. 매번 갈 참들이 임명됐다. 일할 시간도 없었고 일해야 할 미래도 없었다. 이런 인사(人事)가 이어지면서 북부 행정은 침체됐고 북부 지역이 소외됐다. 이런 엄연한 북부 홀대의 역사가 지금도 도청 문서고(文書庫)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두 남부 출신 도지사들이 서명(署名)한 역사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북부 출신 경기도지사?]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민주, ‘6·5출당(出黨) 선언’ 용의 있나

공천 폐지는 어려울 것 같다. 155석 새누리당의 반대가 워낙 세다. 여기에 5석짜리 정의당도 도와주고 있다. 임시국회서 논의한다지만 결론은 나온 듯하다. 적당한 몸싸움 끝에 파행적 결정문-공천유지 勝ㆍ공천 폐지 敗, 새누리당 勝ㆍ민주당 敗- 이 선언되고 끝날 것이다. 돌아보면 이석기 내란음모 충격-2013년 8월-이후 추정이 가능했던 결론이다. 2014년 지방 선거는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 때부터 점쳐졌던 수순이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역설이 있다. 민주당이 게임에서 졌다. 그런데 챙긴 게 적지 않다. 정당 공천 폐지라는 당론을 붙들고 60%의 국민 지지를 얻었다. 대선 패배에 질식하고, 내란음모에 빈사상태로 빠졌던 민주당이다. 공천폐지 60% 여론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반 토막도 안 된다. 그런 민주당이 모처럼 국민 60%의 힘을 얻는 이슈를 선점했다. 여기에 안철수 신당까지 함께 하는 덤도 얻었다. 기억컨데 4년전 무상급식 이후 이런 호(好)시절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민주당이 공천폐지 화두에서 좀처럼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불어 줄지 모를 공천 역풍에 한껏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하기야 틈만 나면 2004년 탄핵 역풍의 추억을 더듬는 민주당이다. 그때 한 방의 추억이 난치병처럼 핏속에 흐르는 민주당이다. 여기에 적진(敵陣)에서 불어주는 달콤한 응원가까지 있다. (공천 폐지)공약 폐기시 탄핵사태 수준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새누리당 김용태 의원ㆍ1월 24일). 결론부터 말하면 착각이다. 공천 폐지 60%는 공천 폐지 자체를 바라는 여론이다. 제발 중앙 정치 좀 나가 달라는 지방의 목소리다. 애당초 민주당과 연고가 없었던 여론이다. 만일, 기호 1번 밑에 기호 2번으로 자리 잡는 선거-과거 20년과 같은 정당 선거-로 회귀한다면 그 순간 원래의 지지정당을 찾아 허공에서 흩어질 여론이다. 이런 국민 60%를 우호지분으로 삼는 민주당의 계산법 자체가 근거 없는 미련이고 염치없는 기대다. 실천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차별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가 집단 출당(出黨)이다. 당선된 시장 군수들을 모두 출당시켜 지방 정부와 결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6월 5일에 지방 정부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민주당 후보를 찍어 주면 정당 선거는 끝납니다라는 각서(覺書)를 써야 한다. 출마한 모든 후보자들에게 미리 탈당계를 받아 당사에 쌓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기득권을 버리는 모험이다. 하지만 이것이 잠시나마 힘을 보태줬던 국민 60%에 대한 의무다. 안 그래도 민주당의 진정성이 곳곳에서 의심받고 있다. 새누리당에 끌려가는 척하고 있다(김덕룡)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가장 화끈한 방법이 무공천인데, 이건 못하겠다는 거 아닌가. 기호 5, 6, 7번으로는 죽어도 안 가겠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집단 출당이라도 약속해야 하는 거다. 언제였었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5~6년전 어느 날, 정장선 당시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주당은 탄핵 역풍의 추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도 그때 한방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다. 그때도 맞는 말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탄핵 역풍의 시작은 버림이었다. 대통령직을 잃었기 때문에 탄핵 역풍은 시작됐다. 이런 버림의 희생을 다하지 않은 당시 민주당에게 한방은 없었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질식해 있었다. 실천 없인 갈 표 없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다. 그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게 정당이다. 제1당, 새누리당은 이 의무를 버렸다. 공천폐지 여론에 관한 한 그렇다. 배신당한 여론이 어쩔 수 없이 찾아 나선 게 제2당인 민주당이다. 그러면서 묻고 있다. 이제 너희는 어쩔 것이냐. 그런데 돌아올 답변이 새누리당 때문에 민주당도 공천하겠습니다라면. 그러면서 슬그머니 원래의 기호 2번으로 끼어들어 간다면. 국민 60%는 정말 화나고 정말 허탈해질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민주, 65출당(出黨) 선언 용의 있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송영길의 신(新) 진보 정신, 답이다

젊은이는 늙어가고, 늙은이는 죽어간다. 그가 이 말을 한 게 20세기 초다. 혁명의 사조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변해갈 수밖에 없는 혁명의 미래를 예언한 말이다. 실제로 혁명은 변해갔다.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혁명가들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때론 유배지에서 때론 망명지에서 사라졌다. 스스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고, 게페우 요원이 휘두른 피켈에 정수리를 맞기도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혁명은 변해갔고, 변치 못한 혁명은 죽어갔다. 대선 다 다음날인 2012년 12월 21일. 실버 보트(Vote)/진보 위기라는 제목의 소(小)칼럼을 썼다. 2002년 20ㆍ30대의 비중은 48.3%였는데 2012년에는 10%p 줄어든 38.3%다. 당당하고 분명한 변화 반면에 50ㆍ60대의 비중은 29.3%에서 40%로 늘었다 대선 투표율은 75.8%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투표율이다 그런데도 늘어난 50ㆍ60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18대 대선은 앞으로 십수년간 이어질 장년층 지배 선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충격에 빠졌을 진보를 배려한 표현이었다. 1년 뒤인 지금 그 칼럼의 교열(校閱)을 본다면 이렇게 고칠 것이다. 이번 18대 대선은 진보가 그나마 비슷한 성적이라도 올릴 수 있었던 마지막 선거다. 장년층 표가 장악해버린 대한민국에서 진보가 대통령 선거를 이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그때나 지금이나 이 소견엔 변함이 없다. 18대 대선은 표에서 진 것이고 그 표는 왕창 늘어 버린 장ㆍ노년층 표였다. 이후 진보에 주어진 생존의 길은 하나다. 진보를 배반하고 보수 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때 했던 이 말을 요즘서야 자주 듣게 된다. 이른바 민주당 발 중원 싸움이다. 북한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고, 햇볕 정책의 수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 대표 연설 직후 민주당이 찾은 첫 방문지도 분단의 땅 연평도였다. 그런데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 인권의 내용을 두고도 말이 많고, 감히 햇볕 정책을 건드릴 수 있느냐는 비난도 있다. 이것 말고는 이길 방도가 없는데도 이런다. 50대 투표율 89.9%의 1년전 충격을 잊은 모양이다. 이런 때, 눈에 확 들어온 인터뷰 기사가 배달됐다. 조선일보 22일자 8면에 보도된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듣는다다. 부자들 돈을 털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지매ㆍ임꺽정 리더십이 아니라 목화씨로 솜을 만든 문익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자 감세를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늘어지는 당을 향한 일침이다. 진보도 성장을 이야기해야 한다. 모두가 분배만 이야기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또다시 복지를 만지작거리는 진보를 향한 충고다. 진보 정당과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선 TV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말하던 통진당 이정희 대표에게 왜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못했나 우리 해군을 해적이라고 말하는 세력과 단호하게 선을 긋지도 못했다. 종북 세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기된 지금도 여전히 야권 연대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는 민주당을 향한 고언(苦言)이다. 그의 얘기는 인터뷰 내내 이렇게 당당하고 분명했다. 그래도 그는 진보주의자다. 보수 쪽 눈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 나라를 어지럽게 했던 투사일뿐이다. 그가 이념의 경계를 넘어 투항해 온 들 따뜻하게 받아줄 대한민국 보수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원했다. 돈 있어야 복지가 있다는 현실감, 해군은 해적이 아니다라는 국가관, 부자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경제관이 읽는 이들을 후련하게 했다. 이 뻔한 고백을 진보로부터 듣고 싶어 숱한 국민들이 이념의 중간지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가 이길 유일한 길 선거가 4개월여 남았다. 특히나 송 시장의 얘기를 들어야 할 진보들이 있다. 종북 진보와의 연을 끊을지 말지 고민하는 진보, 품 안엔 30년전 고서(古書)를 숨겨놓고 말로만 변화를 얘기하는 진보, 하나 되는 사회로 가자며 갈등의 부스러기로 배 채우려는 진보. 모두가 송영길式 진보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게 싫은 진보에게 남는 건 노화(老化)된 선거판에서 끝 모를 심연(深淵)으로 추락하는 것뿐이다. 송 시장의 인터뷰 행간마다 눅눅히 배어 있는 메시지도 이거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송영길의 신(新) 진보 정신, 답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지방 비리 20년=정당 공천 20년

지방이 범죄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기사(記事)들이 쏟아져 나온다. 군수 2명이 물러난 전북 임실의 과거 얘기, 군수 3명이 물러난 경북 청도의 과거 얘기가 들추어진다. 훨씬 전에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은 영정까지 등장한다. 1995년부터 선출된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1천200명쯤 되는데, 이 중에 102명이 형사처벌을 받고 물러났다는 통계가 소개된다. 1기 3명, 2기 19명, 3기 27명, 4기 31명, 5기 22명이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지방자치 20년이다. 그 속엔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지역문화 육성, 공직사회 자부심, 애향의식 고취 등은 자치(自治)가 있어 가능했다. 그런데도 거론되는 소재는 하나같이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 감옥갔던 얘기고 중도 하차했던 얘기다. 이렇게 시작하는 사설, 칼럼, 특집이 향하는 결론은 한 곳이다. 공천으로 걸러내지 않으면 지역 비리가 판을 칠 것이다. 결국 장황하게 풀어 간 기사가 하려는 얘기는 이거다. 공천 폐지 절대 불가! 모두 공천자들이 한 짓 20년 지방 자치가 비리로 얼룩진 거? 맞다. 개선은커녕 점점 악화되어 온 거? 맞다. 인허가권을 가진 단체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거? 맞다. 그런데 아닌 게 있다. 비리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은 게 정당 공천제? 아니다. 깨끗한 지방자치의 미래를 담보할 게 정당 공천제? 아니다. 단체장의 인허가권을 견제하는 게 정당 공천제? 아니다. 지방 비리를 바로잡을 수단으로 정당 공천제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가까운 과거와 우리 주변의 예를 보자. 수도권에서도 민선 4기(2006~2010)의 단체장 비리가 제일 많았다. 수도권 기초단체장 66명 가운데 28명이 기소됐다. 한 때 화성시장을 제외한 경기 남부권 시장 전원이 비리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시 비리 연루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무소속 한두 명을 제외하고- 정당의 공천을 받아 입성했다. 정당 바람으로 당선된 이른바 바람돌이들이었다. 이런 바람돌이들에겐 특징이 있다. 게임의 절반을 끝내놓고 시작한다. 공천과 동시에 샴페인의 뚜껑을 절반쯤 열어 둔다. 결국엔 바람 부는 대로 결과가 나오고 개표 전광판은 그들의 색깔로 도배된다. 이렇게 된 사람들이다 보니 민심을 보살필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공천권을 쥔 정치인만이 주인이었고 섬김의 대상이었다. 지역민을 무서워 않는 행정은 감옥만 안 가면 된다는 배짱으로 이어졌고, 결국 오만과 부패로 빠져들었다. 그 오만과 부패의 뒤를 봐준 게 바로 정당공천이다. 미래의 범죄자들에게 점퍼를 입혀 선거판을 누비게 했고, 검증하겠다는 유권자들에게 우리 당이 검증을 끝낸 훌륭한 후보라며 품질 보증서를 뿌려댔다. 결국 지나간 20년이 부패한 지방 정부 20년이라면 정당 공천 20년은 부패를 지원하고 방조한 20년이다. 지금 국민의 60%가 그런 정당공천제를 없애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공천 없이 해보자고 요구하고 있다. 암살되기 몇 해 전 그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몇십 년, 몇 세기 뒤에 새로운 사회 질서가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을 회고하듯이 10월 혁명을 회고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확신했던 사회주의는 60년 만에 러시아에서 사라졌다. 멕시코 코요아칸의 묘지는 더 이상 성지가 아니다. 현실성 없는 이론으로 냉전의 앙금만 남기고 간 실패한 이론가가 누워 있는 그렇고 그런 관광지일 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했다는 제도조차 이렇게 오류로 끝났다. 하물며 234개의 서로 다른 세상-시ㆍ군ㆍ구-의 대표를 뽑는 제도다. 무슨 수로 모두의 입맛을 맞추겠는가. 어차피 오류를 고치고 착오를 줄이면서 궁극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깨끗해질지 더 부패해 질지도 모를 지방 정부의 미래를 향해 서로가 옳다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논리로 무장한 언론이 그 대열의 맨 앞에 서서 때로는 공천 폐지를, 때로는 공천 유지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공천 책임 느껴야 이게 민주주의다. 이래서 지역 언론이고 이래서 중앙 언론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는 언제나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가져 왔다. 이번 공천 논란의 뛰어든 어떤 논리도 개선될 6월 선거로 가는 길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게 틀림없다. 다만, 그 논쟁의 무한한 자유에는 거짓말과 억지가 포함되지 않아야 함을 필요로 한다. 공천이 부패를 막아왔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거짓말이고, 공천이 부패를 막아 줄 것이다라는 약속은 담보 없는 억지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지방 비리 20년=정당 공천 20년] 김종구 논설실장ㆍ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김종구 칼럼] 친박, 공천 탐욕으로 대통령과 맞서다

(기초선거)공천폐지가 잘 될까. 그런데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들어가면 여의도와는 끝이라고 하던데. 국회의원들의 이익과 관련된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거야.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할 텐데, 대통령이 강제로 그걸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써먹게 될 것 같아 적어 두길 잘했다. 5선 출신의 이규택 전 의원에게 이 말을 들은 게 지난해 2월 7일. 이후 11개월은 이런 그의 예언이 거짓말처럼 맞아 들어간 시간이었다. 공천폐지에 대한 민심은 분명하다. 경기일보의 신년 조사에서 도민의 63.2%가 공천 폐지를 지지했다. 공천 유지는 21.5% 뿐이다. 공간적ㆍ정치적으로 수도권과 딴 세상처럼 놀던 경상도도 이 문제에선 같다. 매일신문 1일자 보도에서 대구ㆍ경북 도민의 67.1%가 공천 폐지를 희망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천 폐지는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의 완전한 공천폐지를 뜻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과 결과를 달리하는 통계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딱 한 곳, 정치권만이 딴소리를 한다. 반대하는 이유란 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여성들이 반대한다고 둘러댄다. 여성 대 남성 비율이 50 대 50으로 정확히 반영된 조사에서 일방적 결과가 나왔다. 말 안 되는 소리다. 지역 토호집단이 독식할 것이란 변명도 댄다. 차라리 정치 독식보다는 낫다는 게 민심이다. 역시 말 안 된다. 반대하는 의원이 많다며 미적댄다. 국민이 원해도 국회의원들이 싫으면 못하겠다는 오만이 얼비치는 소리다. 그래도 눈치는 보였던지 토론회라는 걸 열었는데. 이게 완전히 봉숭아 학당이다. 여성 할당제가 위협받는다 공천폐지 공약은 오발탄이었다는 어용발언이 쏟아졌다. 복수 후보를 추천하자거나 정당별 기호 부여제를 도입하자며 꼼수까지 안내하는 교수도 있었다. 거마비(車馬費) 받고 출연해 의원 입맛 맞추고 돌아간 말 그대로 밥값 토론회다. 이런 걸 토대로 전문가들, 공천 폐지보다 보완에 무게라며 일반화한 언론도 한심하다. 정치권 전체로 몰고 갈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지금 민주당 127명의 공식의사는 공천 폐지다. 그 이후 공천 폐지를 막고 있는 유일한 세력은 새누리당이고, 그 전위부대는 친박(親朴)이다. 홍문종 총장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시간을 끌어 왔고, 최경환 대표가 결정된 바 없다며 뒤를 밀어 왔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공약 파기 비난받아도 공천폐지는 반대라며 날 선 배짱까지 부렸다. 도대체 누구의 약속이었는데 이러나. 약속의 정치인 박근혜 후보가 1년 전 한 공약이다. 이후 폐기했다는 소리도 없었고 수정했다는 얘기도 없었다. 여전히 실천하고 평가 받아야 할 살아 있는 공약이다. 이런 공약을 두고 남도 아닌 친박이 대통령 면전에서 막아서고 있다. 역시 노(老) 정객의 예언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들어가면 여의도와는 끝이라던데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할 텐데. 어느 대통령에게나 집권 2년은 어렵고 중요하다. 지금이 그렇다. 국정 지지도 56.4%는 제목일 뿐이다. 취임 6개월 64.3%, 추석 63.1%에 이어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 중심에 공약 이행에 대한 불만(잘한다 44.5%ㆍ못 한다 51.9%)이 있다. 모두에게 약속했다가 일부에게만 지키게 된 공약-기초연금-, 전부를 약속했다가 일부만 주게 된 공약-4대 중증 질환 진료비- 등이 전부 악재다. 약속의 정치인을 약속 파기의 정치인으로 내몰고 있는 악재다.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공천 폐지가 절박해진 이유다. 어차피 예산이 드는 공약도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공약도 아니다. 이해를 구할 핑곗거리가 있는 공약도 아니다. 그저 폐지하느냐 폐지 안 하느냐만 남는 공약이다. 폐지하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고 폐지 안 하면 욕심에 매달리는 것이다. 폐지하면 민심 60%를 따르는 것이고 폐지 안 하면 민심 60%와 맞서는 것이다. 폐지하면 대통령을 편하게 하는 것이고 폐지 안 하면 대통령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공천 탐욕으로 주군(主君)을 발목 잡아 온 친박의 반기(反旗), 이쯤에서 내려야 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친박, 공천 탐욕으로 대통령과 맞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은 닮았다’

같다고 하긴 그렇지만 닮은꼴은 맞다. 우선 수사기관의 성격이 같다. 북한의 보위부나 우리 국정원은 같은 정보기관이다. 적용된 혐의도 비슷하다. 표현의 차이를 풀어 말하면 결국엔 둘 다 내란이다. 피의자의 신분이 모두 공직자다. 최고 권력기관 소속이고 최고 의결기관 소속이다. 법 집행의 모양새까지 닮았다.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연행됐고 의원회관에서 압수됐다. 장성택 특보(特報)를 보던 많은 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가 융단폭격을 맞은 이가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다. 친노그룹 송년회에서다.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은 같다. 다음날 모든 언론이 이 말을 크게 다뤘다.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는 비난이 인터넷에 도배됐다. 현역 시절 그의 입은 이슈를 만들어내는 공장(工場)이었다. 어느 쪽에서는 입만 열면 대박이라고 좋아했고, 어느 쪽에서는 입만 열면 사고라며 싫어했다. 이번 말도 그답다. 아마 정치를 다시 하려는 모양이다. 자유체제 인정받을 호재 유 전 장관 이후 금기어(禁忌語)가 생겼다.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이 같다. 갑작스레 이 말을 하는 데 특별한 용기가 필요해졌다. 북으로 가라는 공세에 휘말려도 좋다는 각오를 해야 할 분위기다. 물론 유 전 정관 말 속엔 정치적 셈법이 있다. 장성택이석기국정원댓글대통령 책임으로 연결된다. 많은 이들이 눈치 챈 깊이 없는 직설 화법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다. 막을 말이 아니고 비난할 말도 아니다. 지금 우리 눈에 장성택은 희생자다. 장성택 내란 혐의는 조작이다. 2인자를 쳐 내려는 김정은의 작품이다. 고로 처형된 장성택은 억울한 피해자다란 동정이 깔려 있다. 이 말에 주어(主語)를 바꾸면 이렇게 갈 수도 있다. 이석기 내란 음모는 조작이다. 진보 정당을 쳐 내려는 보수의 작품이다. 고로 구속된 이석기는 억울한 피해자다. 혹시 이래 선가. 이런 논리의 확장을 염려해서인가. 그래서 장성택=이석기 얘기에 십자포화를 퍼붓는 것인가. 단언컨대 장성택 사건을 대한민국에서 수사했다면 결론은 달라졌다. 눈두덩과 손등에 피멍이 들지 않았다. 단심(單審)에 의한 변론기회 박탈도 없었다. 판결 확정 뒤 곧바로 형장으로 끌려가지도 않았다-우리 사형장(死刑場)엔 이미 발급된 대기표가 59장이나 된다-. 거꾸로 이석기 사건을 북한에서 수사했다면 어땠을까.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결론에 다다른다. 연행, 고문, 단심, 기관총. 여기에 혹시 모를 화염방사기까지. 문명국가 가늠의 기본은 법치(法治)다. 수사도 법에 의하고, 재판도 법에 의하고, 사형도 법에 의해야 한다. 법에 의하지 않은 수사, 법에 의하지 않은 재판, 법에 의하지 않은 사형은 야만국가에서나 있는 정치폭력이다. 이석기 재판을 통해 대한민국이 문명국가가 된 이유고, 장성택 참형을 통해 북한이 야만국가가 된 이유다. 남ㆍ북이 달려온 체제 경쟁이 66년이라면, 그 중 사법체계 경쟁에는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만한 두 사건이다. 출발의 닮음을 인정해야 절차의 다름이 설명된다. 세계(世界) 앞에 남과 북의 차이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연역(演繹)적 접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장성택 처형은 국제인권 규범 위반이라고 정의했다. 커트 캠벨 전(前) 미 국무부 차관보도 그(김정은)는 (학창시절부터)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이게 다 장성택-이석기 사건이 비교되면서 얻어진 새로운 한반도 평가다. 자유롭게 비교하게 둬야 지금 이 순간, 수원지법-이석기 재판이 열리는-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권력은 그곳에서 아주 간단한 일을 한다. 맘껏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구역을 나눠주고, 서로 다치지 않도록 신체를 지켜준다. 3개월을 짜증스럽게 봐왔던 이 그림이 갑자기 푸근하게 다가온다. 한 달여 전 보수-진보 대립, 강력히 제재해야라고 썼었는데. 아무래도 그 졸고(拙稿) 위에 취소 버튼을 눌러야 할 듯 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은 닮았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U-20 월드컵, 수원이 주관도시 돼야

축구만한 스포츠도 없다. 5일 밤에서 6일 새벽. 전국의 축구팬들이 잠을 설쳤다. 월드컵 조추첨을 보려고다. 우리에게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가 왔다. 최고의 조합이라는 평이 나온다. 단군 이래 최상의 조 편성이라는 흥분도 있다. 팬들의 마음은 벌써 6개월 뒤 새벽에 울릴 휘슬 소리에 가 있다. 그만큼 월드컵은 대단하다. 왜 올림픽에 앞서는 축제인지 알게 해준다. 11년 전, 우리가 바로 그런 축제를 했었다. 그런데 이날 흥분의 틈새로 쪼그라든 소식 하나가 있다. 2017 FIFA U-20 월드컵 대회 한국 유치 확정! 같은 브라질에서 불과 한나절 전에 타전된 뉴스다. 월드컵, 컨페더레이션 컵, 17세 월드컵과 함께 FIFA가 주최하는 4대(大) 대회다. 마라도나, 메시, 베베토, 호나우지뉴, 피구, 오언, 앙리가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된 상품(商品)이다. 그만큼 시장성도 크다. 그런 빅 매치가 3년 뒤 한국으로 열리게 됐다. 문화+환경+열정=수원 자연스럽게 물려 들어가는 궁금증이 있다. 그럼 어느 도시에서 개최되는 건가. 축구 협회는 지난 10월 도시별로 유치 신청을 받았다. 서울, 인천, 대전, 전주, 울산, 제주, 천안, 포항이 신청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 경기도 수원도 거기에 포함돼 있다. FIFA가 이 9개 도시 가운데 6곳을 선정해 2014년 말 확정하게 된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주 개최 유력이라는 발 빠른 기사가 전주발(發)로 떴다. 수원발 기사는 뭐가 돼야 할까. 고민했는데 수원 개최 유력은 아닌 듯싶다. 9개 후보 도시 중 6개를 뽑는 일-감히 당연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에 할애하기는 지면(紙面)이 아깝다. 더구나 11년 전 성인 월드컵 경기도 치러봤던 수원이다. 격(格)에 맞을 리 없고 양(量)에 찰 리 없다. 그래서 찾아본 격도 맞고 양도 채울 요구는 U-20 월드컵의 메인 도시가 되는 거다. 월드컵의 주관 도시다. 따지고 보면 수원엔 당연히 그래도 좋을 근거가 여럿 있다. 첫째, 수원 월드컵이 문화 월드컵이다. 세계 기구-유네스코-가 선정한 화성(華城)이 있다. 한류 문화의 중심 행궁(行宮)도 있다. 대장금(大長今)으로 시작된 문화 수출의 핵심이다. 매년 다녀가는 외국 관광객만 130만명에 달한다. 국제대회가 상업적 계산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건 오래다. 어느 대회를 막론하고 흑자 경영이 가장 중요해졌다. 이때 제일 큰 비중이 관광수입이다. 화성이야말로 흑자 월드컵을 제대로 보장할 준비된 자원이다. 둘째, 수원 월드컵은 환경 월드컵이다.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가 인정한 생태교통 도시다. 9월 한 달간 차가 사라지는 실험이 수원 행궁동에서 있었다. 사상 최초의 이 실험을 세계가 주목했다. 이후 유엔 환경계획(UNEP)이 리브컴 어워즈에서 금상을 수여해 이를 인증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이후 모든 국제 대회는 환경 가이드 라인에 갇혀 있다. 그 조건을 UN으로부터 인증받은 곳이 바로 수원시다. 셋째, 수원 월드컵이야말로 열정 월드컵이다. 2009년 FIFA가 선정한 세계 7대 더비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 대 바르셀로나, 리버풀 대 에버튼, 아스널 대 토트넘. 이런 쟁쟁한 더비 속에 수원 대 서울 경기가 포함됐다. U-20 월드컵은 세계인에 중계되는 대회다. 텅 빈 관중석이나 교복 차림의 동원 관객처럼 민망한 그림도 없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국내 리그에도 4만3천석의 맨 꼭대기까지 채워진다. 자발적으로 월드컵 열기를 보장할 유일한 곳이다. 세계가 선정한 문화 도시 수원이고, 세계가 인증한 환경 도시 수원이고, 세계가 공인한 축구 도시 수원이다.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점수를 뻥튀기해내는 타(他) 후보지의 주장과는 객관성의 정도부터가 다르다. 문화 월드컵+환경 월드컵+열정 월드컵=수원 월드컵이라는 공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의 중심은 서울이었다. 그 반복의 식상함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를 세계인 앞에 내놓을 요량이라면 그 도시는 당연히 수원이 돼야 한다. 서울 식상함 벗어나야 희망한다. 2017년 U-20 월드컵이 수원에서 개최되길 희망한다. 월드컵 주관 도시로 수원이 결정되길 희망한다. 지휘본부에서 방송 센터가 모두 집결하는 수원이 되길 희망한다. 수원의 관(官)과 민(民)이 함께 노력해 1년 뒤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길 희망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2017년 전 세계로 타전될 수천 건의 외신(外信) 에는 이런 송고(送稿) 표기가 따라붙을 것이다. -From Suwon, Korea(대한민국 수원에서-). [이슈&토크 참여하기 = U-20 월드컵, 수원이 주관도시 돼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이젠, 수원지검장도 잘 가고 잘 와야

천성관 수원지검장이 영전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임명됐다. 가히 전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만 하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옮겼으니 전격이다. 지검장에서 고검장, 그것도 핵심 고검장으로 승진했으니 전격이다. 무엇보다 수원지검장에서 서울지검장으로 곧바로 옮긴 첫 사례니 전격이다. 2009년 1월 어느 날, 수원지검에서는 그렇게 즐거운 이임식이 있었다. 그때 천 지검장이 수원 법조 기자들에게 남긴 소감이 있다. 수원지검장도 승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경기도 역차별이 산업(産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검찰의 경기도 역차별도 보통 심각하지 않다. 산업 역차별만큼이나 정도가 심하고 뿌리가 깊다. 역차별로 이어지는 논리도 같다. 서울의 과잉 집중을 막자는 취지가 수도권 규제다. 그런데 그 피해를 받는 곳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다. 서울의 권력 집중을 막자는 것이 검찰 인사의 취지다. 그런데 피해는 서울지검장 자리가 아니라 수원지검장 자리가 받고 있다. 이런 얘기도 경기 언론의 떼쓰기-산업 역차별 반박처럼-라 할지 모르니 주판알을 튕겨 보자. 잘 나가는 대구지검과 못 나가는 수원지검의 지나간 15년이다. 대구지검장은 19명이 거쳐 갔다. 이 중 4명이 검찰총장을 했다. 김진태 현 총장도 그 중 하나다. 법무 장관 또는 차관이 3명 있다. 2명이 서울 검사장에, 대법관과 헌재소장에 각각 1명이 임명됐다. 고검장으로 승진한 지검장도 2명이다. 승진하지 못하고 옷 벗은 지검장은 5명이다. 19명 가운데 14명이 고검장 이상으로 영전했다. 대구 지검장 발령=승진 보장이라는 검찰 내 속설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통계다. 같은 기간 수원지검에는 15명의 검사장이 있었다. 검사장 수에서 대구 지검(19명)과 차이가 난다. 기억컨데 명퇴에 망설이거나 자리를 받지 못한 과거의 검사장 몇이 있었던 듯하다. 영전은 딱 3명이다. 법무 장관(김승규 검사장) 1명, 서울지검장(천성관) 1명, 대검차장(차동민) 1명이다. 나머지 12명은 모두 수원에서 퇴임했거나 다음 임지로 가서 옷을 벗었다. 수원지검장 이임식이 늘 우울했던 이유가 설명되는 통계다. 수원지검은 사건 수(數)가 많은 큰 청이다. 관할 시군이 여럿인 넓은 청이다. 개발 비리가 복잡한 특수 청이다. 큰 청에 걸맞은 예우, 넓은 청에 걸맞은 지원, 특수 청에 걸맞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균형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15년째-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수원지검장들은 이런 불균형 속에 씁쓸하게 왔다가 쓸쓸하게 떠났다. 능력 없는 검사장을 보내 승진이 없었던 걸까, 능력 있는 검사장을 보내고도 승진을 안 시킨 걸까. 대한민국 검찰이 든 병(病) 중에 지연(地緣)이란 게 있다. 영남 정권에선 영남 검사가, 호남 정권에선 호남 검사가 잘 나간다. 정권이 오른쪽과 왼쪽을 오가던 15년 동안 이 병증(病症)은 더 깊어졌다.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에 가까워졌다. 이것만으로도 검찰은 반 토막이났다. 그런데 그 반 토막을 더 잘게 자르려는 연고주의가 있다. 바로 어느 청사에서 근무했느냐에 따라 출세가 결정되는 청연(廳緣)이다. 근무하는 사무실이 공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해괴한 관행이다. 조만간, 또는 한두 달 내로 본격적인 검찰 인사가 있다고 한다. 이번 인사에서도 지연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기엔 검찰 기자 10년의 귀동냥이 너무도 굳어 버렸다. 대신 끊어 낼 수 있는 것이라도 끊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청연이다. 청연? 아무것도 아니다. 인사권자의 결심만 있으면 금방 사라질 일이다. 800만 경기도민의 자존심만 살려주면 바로 해결될 일이다. 수원지검장에서 가는 사람 잘 가고, 수원지검장으로 오는 사람 잘 오면 곧바로 끝나게 될 일이다. 어차피 관행의 역사는 늘 길었고 개혁의 시작은 늘 순간이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이젠, 수원지검장도 잘 가고 잘 와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서울 한가운데 경기도청 옛 터 있다

경기도청은 원래 서울에 있었다. 지금부터 52년전 신문에는 이렇게 등장한다.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고대(高大) 데모 대를 습격한 정치깡패 임(林和秀) 등 일당 16명에 대한 특재 제三회 공판이 사건 발생 바로 한 돐되는 十八일 하오 대법정에서 개정되었다. 총 지휘자로 알려진 유(柳志光)는 작년 四월 十八일 하오 반공청년단 본부의 지령을 받고 부하들을 <경기도청> 앞으로 집합시킨바 있으나 천일 백화점 앞에서 난투를 지휘한 사실은 없다고 하였다.-경향신문 1961년 4월 19일. 기사 政治 깡패의 末路 중에서- 그로부터 28년뒤. 그 건물이 헐린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이런 사설이 실린다. 옛 <경기도청> 청사 건물이 헐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이 건물은 1909년 우리 구한국 정부가 내부 청사로 쓰기 위해 기공하여 1910년 8월 한일 합방이 강행되던 해에 완공했다. 연건평 472평의 이 건물은 당시 5만8천700원의 큰 돈을 들여합방이후 일제가 인근의 경복궁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청사를 거창하게 지었으며 이 건물은 <경기도 청사>로 사용했다.-동아일보 1989년 10월 12일. 사설 철거 문제 신중히 해야 중에서- 위대한 경기도 증거 그로부터 또 24년 뒤인 2013년 11월18일. 어느 공직자의 페이스북에 그 터가 등장한다. 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본 경기도청 옛자리입니다. 경기도민은 1,250만명으로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경기도에 사십니다. 함께 올린 사진도 있다. 멀리 북악산과 경복궁 정문이 보인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둘러싸인 전경이 아름답다. 수백명이 좋아요를 찍었고, 수십명이 댓글을 달았다. 과장, 국장, 실장, 부지사를 모두 경기도에서 역임한 공무원이 올린 글이다.-안전행정부 이재율 안전본부장 페이스 북. 여기가 경기도청 옛자리입니다- 맞다. 우리가 한참을 잊고 있었다. 경기도청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임금이 살던 경복궁 앞이었다. 거긴 백성이 살아가는 중심이었다. 대한제국이 움직이는 복판이었다. 일제 한(恨)이 숨죽이던 공간이었다. 해방 공간이 꿈틀대던 현장이었다. 근대화 청사진이 시작되던 진원지였다. 이렇게 경기도청 옛 터는 백성의 중심, 구한국의 복판, 일제 한의 공간, 해방공간의 현장, 근대화의 진원지였다. 그 위대한 역사의 중심이 광화문 경기도청이었다. 정체성 없는 경기도-이 치욕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그곳을 내어주면서 시작됐다. 1967년 6월23일 도청사가 수원으로 왔다. 같은 해 7월 1일 의정부에 북부 출장소가 설치됐다. 중심을 잃은 경기도에 서로 다른 남북 문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14년 뒤인 1981년 7월1일, 인천시까지 나갔다. 남아 있던 동서의 동질감마저 축을 잃었다. 이후 경기도는 정체성 없는 동네가 됐다. 31개 시군이 서로 다른 정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태(母胎) 상실이 빚은 결과다. 흔히들 민선(民選)의 역사를 역사 짜깁기의 역사라고 비꼰다. 너도나도 역사 만들기에 혈안이다. 소설 임꺽정의 배경이었다며 대두령(大頭領)을 뽑는다. 괴산군의 임꺽정 축제다. 소설 속 심청이의 고향이라며 공양미를 모은다. 곡성군의 심청이 축제다. 그래서 팔릴 고추가 얼마나 되고, 몰려올 섬진강 관광객이 몇이나 되겠나. 그래도 이런 행사는 십수년째 이어진다. 지역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만들어 보려는 안달이다. 거기 비하면 옛 경기도청 터는 더 없이 확정적인 역사다. 경기도민의 정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성지(聖地)다.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적(史蹟)이다. 그런데 이런 성지와 사적을 우리가 버려두고 있었다. 차디찬 대리석과 연고 없는 잡목들로 채워놓고 있었다. 경기도의 역사 대신 서울 시민의 공원으로 내어주고 있었다. 뼛속까지 경기도 공무원인 이 본부장의 페이스북에도 그런 아쉬움이 줄줄 흐른다. 사들여 명소 만들자 그래서 하는 제안인데, 이러면 어떨까. -다믄 열 평이라도 경기도가 산다. 경기도를 알리는 번듯한 상징물을 세운다. 도민들의 서울 나들이를 위한 명소(名所)로 가꾼다. 청와대에 해야 할 얘기라면 그곳에서 소리친다. 큰일 하고 싶은 도민에겐 출정식 장소로도 제격이다.- 다른 도(道)는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서울 광화문에 흔적을 갖고 있는 경기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번 해봄 직 하지 않나. 경기도 고토(故土) 회복 운동! 언젠가 시작될지 모를 이 서명운동의 한 귀퉁이를 미리 예약해둘까 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서울 한가운데 경기도청 옛 터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망친 입시제도, 청문회에 세워야

75년생을 저주받은 세대의 원조라 부른다. 1994학년도 대입에 응시한 세대다. 그 해 대입에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도입됐다. 기존 학력고사와 전혀 다른 방식이다. 학력고사가 암기위주의 시험이라면, 수능은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묻는 시험이다. 과목 이름까지도 무슨 무슨 영역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8월과 11월 두 번 실시됐다. 이런 엄청난 변화 앞에 준비 시간 없이 그대로 노출된 세대가 75년생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고 윤형섭 장관이 만들었다. 다음 저주받은 세대는 82년생이다. 2001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세대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최악의 물 수능으로 기록됐다. 400점 만점자가 66명에 달했다. 380점 이상의 고득점자도 전년도보다 5배 많은 3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 400점 만점자가 내신과 제2외국어 영역 변환표준점수 상의 불이익으로 서울대 특차전형에 떨어졌다. 만점 받고도 떨어지는 이상한 시험이라는 당시 사설이 지금도 검색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고 이돈희 장관이 만들었다. 또 저주받은 세대 83년생들은 이해찬 1세대로 불린다. 무시험 대입 전형이 대대적으로 확대됐다. 교육부가 나서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야간 자율 학습, 0교시, 보충 수업이 다 없어졌다. 많은 학생이 공부 대신 특기를 찾아 교실을 떠났다. 그런데 막상 대학들은 수능성적으로 뽑았다. 단군이래 최저 학력 세대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피해자도 속출했다. 교육부에 배신당한 세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고 이해찬 장관이 만들었다. 올 95년생들도 저주받은 세대에 기록을 남기게 됐다. 수준별 수능이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모두가 어렵게 공부할 필요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치른 성적을 어떻게 기준 삼겠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이해 못 할 제도였다. 가산점으로 다시 균형을 맞춘다는 발상도 황당했다. 첫 시작도 전에 올해만 실시하고 폐지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졸지에 실험용 쥐가 된 95년생들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고 이주호 장관이 만들었다. 얼마 전 역대 교육부 장관들이 모였다. 서울의 어느 좋은 호텔에서다. 현직이 마련한 역대 교육부 장관 초청 모임이다. 그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윤형섭 전 장관, 이해찬 전 장관, 이주호 전 장관. 수험생 180만명을 힘들게 했던 셋이다. 그런데 다들 잘 나가고 있다. 한 사람은 연세대 재단 이사로, 다른 사람은 현직 국회의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이사장으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는 15년 전 경험이 있다. 경제에 실패한 경제 장관-강경식 부총리-이 감옥에 갔다. 국민의 분노가 그렇게 몰고 갔다. 6년 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국민이 내린 유죄는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사형 선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직무를 유기한 장관에게 내려진 벌이 그렇게 무섭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은 다른 모양이다. 저주 내린 주역들인데도 교육계 원로 소리 들으며 당당히 살아간다. 쥐가 실험용이 되는 것은 용기 안에 있어서다. 도망갈 곳이 없으니 찔러도 거기 있고, 굶겨도 거기 있는 것이다. 우리 수험생들이 실험용 쥐가 되는 것도 그래서다. 죽이든 밥이든 던져진 틀로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져 나올 입시 불평에 미리 재갈을 물리는 고약스런 속어(俗語)도 있다. 그래도 대학 갈 놈은 간다 모자란 것들이 제도 탓한다. 이렇게 윽박질러 입을 막아 놓고는 대통령 임기마다 또 다른 저주받은 세대를 만들고 있다. 돌아보면, 한 번쯤 전직 교육부 장관을 청문회에 세웠어야 했다. 뻔한 결과를 예상 못 했느냐고 추궁했어야 했다. 타당성 용역이 옳았는지 들춰봤어야 했다. 최고 권력의 밀어붙이기는 없었는지 따졌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책임 있으면 책임 묻고 죄 있으면 죄 물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저주받은 세대를 한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르고, 1년짜리 실험만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장관 책임 물어야 앞으로 두어 달, 수백만의 국민이 또 이 대학 저 대학을 찾아 헤맬 것이다. 3천 개의 전형방식이 6천 개로 늘어난 혼란 속에서 허덕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청문회가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린 책임을 묻는 교육 책임자 청문회다. 4대강 청문회나 댓글 청문회보다 더 많은 국민이 지켜볼 게 틀림없다. 시청률이 높을테니 정치권이 관심 갖을 것도 틀림 없고. 어려울 거 없다. 가까운 과거의 교육장관부터 불러내면 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망친 입시제도, 청문회에 세워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8개월 뒤 지방선거, 법원만 쳐다보다

에디슨이 말했다.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만들어진다로 번역된다. 본인의 노력이 타고난 환경보다 중요함을 뜻한다. 물론 세상엔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 많다. 분야마다 타고난 천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에디슨의 이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노력과 성실성의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선거는 1%의 노력과 99%의 바람으로 결정 난다. 에디슨식(式) 명언을 우리네 선거에 대입하면 다다르게 되는 결론이다. 후보자 본인의 노력보다는 정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다. 물론 당(黨)이 죽을 쑤어도 당선되는 후보는 있다. 유권자가 적거나 지역색이 강한 곳에서 자주 그런다. 그런데도 선거판에서는 이런 바람 공식이 정답처럼 자리 잡고 있다. 선거역사에 새겨져 있는 바람의 괴력 때문이다. 판세 결정할 판결 2건 지방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매번 바람이 불었고 그때마다 판세는 일방적이었다. 정권 견제 바람 두 번에 한나라당 싹쓸이 8년이 만들어졌고, 무상복지 바람 한 번에 민주당 싹쓸이 4년이 만들어졌다. 8개월 뒤 지방 선거도 그럴 것이다. 이번에도 바람은 불 거고, 30만 이상 대도시의 성적표는 빨강이나 파랑 중 한 가지로 도배될 거다. 모두의 관심도 그 바람이 언제 어디서 불거냐에 가 있다. 그 바람 중 하나가 법원(法院)발 태풍이다. 댓글 재판과 내란 음모 재판이 법원에 가 있다. 댓글 재판은 민주당이, 내란 재판은 새누리당이 칼자루를 쥐었다. 새누리당은 재판 결과를 보고 사과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댓글 비난을 미뤄뒀고, 민주당은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당론을 유보하겠다며 내란 비난을 미뤄뒀다. 양쪽 모두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한 수조(水槽)의 수챗구멍을 법원 선고로 막아 둔 셈이다. 그 수챗구멍이 터지는 날-두 사건의 1심 재판 선고일-이 하필 선거 즈음이다. 그 결과로 각 당이 맞게 될 최상ㆍ최악의 조합은 이렇다. 국정원(댓글 재판) 무죄+이석기(내란 재판) 유죄-새누리당이 휩쓸 조합이다. 민주당 후보라면 출마 자체부터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국정원(댓글 재판) 유죄+이석기(내란 재판) 무죄-민주당이 싹쓸이할 조합이다. 새누리당 후보라면 패배부터 각오해 놓고 뛰어야 할 상황이다. 꾼-정당, 언론, 시민단체 등-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내년 선거가 법원 판결에서 결판난다고 진즉에 결론 낸 듯하다. 그래서 시작된 게 법원 달달 볶기다. 느닷없이 국민참여재판이 불거졌다. 보수 진보 양쪽 모두에서 국민참여재판, 문제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도입된 지 5년이나 지난 제도다. 거론되는 모든 문제점들이 애초에 제기됐던 것들의 재탕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식상한 소리를 약속이나 한 듯 쏟아내고 있다. 결국엔 법원 목 조르기다. 법원발 태풍의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놓겠다는 속내다. 혹시 지더라도 법원 판결이 틀렸다는 보험을 들어 두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대놓고 법원 청사로 몰려가는 세력도 있다. 이석기 재판을 앞둔 수원지법 앞 오거리. 통진당의 보라색 물결이 오거리를 가득 메우며 으르렁댔다. 길거리에 드러누운 보수 인파가 이석기 호송차를 가로막아 섰다. 어찌 알았는지 호송차 통과시간까지 정확히 맞춘다. 정식 재판은 시작도 안 됐는데 이 정도다. 역시 같은 속내다. 재판부에 세(勢)를 과시하겠다는 의도다. 여차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이다. 선거는 1%의 노력과 99%의 바람으로 결정 난다. 꾼들, 법원 흔들기 시작 참 나쁜 말이다. 유권자를 구경꾼으로 쫓아내는 말이고, 지역 공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말이 틀리다 할 수 없으니 그게 안타깝다. 법원 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선거운동을 멈추라 할 수 없으니 그게 안타깝다. 이번에도 선거는 바람이 결정할 것이고, 그 바람은 2건의 재판 결과에서 시작될 것이고, 후보자가 할 일은 그 바람에 운명을 맡기는 것뿐이다. 참으로 나쁜 말인데 달리 남길 예언이 없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8개월 뒤 지방선거, 법원만 쳐다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대통령에겐 침묵할 자유도 없다

북 동정은요?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그게 아니라 휴전선은요?였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아는 건 2명이다. 그날-1979년 10월 26일- 밤, 대통령의 비보(悲報)를 전한 김계원 비서실장과 이를 전해 들은 박근혜 영애다. 그 중 한 명인 김 실장이 엊그제 TV에 출연했다. 북쪽은요?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달리 확인할 길도 없으니 이제 북쪽은요?가 맞는 것으로 결론 내야 할 듯하다. 2006년 5월 20일 서울 창전동 유세 현장. 단상에 오르던 박 대표의 얼굴로 손길 하나가 스쳤다. 순간 그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11㎝의 자상(刺傷)에서 떨어지는 피를 막으며 병원으로 실려갔다. 훗날 본인은 이날의 부상을 수박 갈라지듯 벌어졌다고 표현했다. 2시간 동안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이었다. 그 수술의 마취가 깨자 던진 첫 말이 대전은요?였다. 비서실장의 전언이다. 침묵 속 지지율 하락 이 두 번의 짧은 워딩(말)이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을 있게 했다. 개인적 고통 앞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찾았던 모습. 통 큰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꼭 필요한 언급 외에 말을 삼가는 모습. 정제된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이런 통 크고 정제된 어법을 보며 국민 51%가 나라를 맡겨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논리적인 변호사 문재인 후보나 저돌적인 운동가 이정희 후보의 달변(達辯)이 모두 외면받았다. 그랬었는데. 취임 8개월이 지나면서 똑같은 화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답답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식상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얼마 전까지 없었는데 갑자기 들려온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30일) 아침에 보도된 여론조사가 자못 심각하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46.6%다. 한 달 전 54%에 비해 7.4%p나 떨어졌다. 대통령을 답답하다고 평하는 여론이 저잣거리에 나돌고, 그런 여론이 최악의 통계 수치로 확인되고. 이런 급변의 짧은 시간을 복기(復棋)해보자. 20일, 대통령은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했다. 새마을운동은 현대사를 바꿔 놓은 정신혁명이라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자고 역설했다. 선친(先親)의 유업이자 빈곤 탈출의 상징인 새마을 정신을 되살리자는 뜻깊은 주장이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21일자 신문에선 이 얘기가 단신(短信)으로 처리됐다. 대신 모든 신문 1면은 민주당, 국정원 댓글 5만 건 확인 주장이었다. 21일,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경찰의 날 기념식이었다. 사회의 기강을 흔들고 안전을 저해하는 불법과 무질서에는 원칙을 갖고 엄정하게 대응해 달라고 연설했다. 치안질서 확립을 강조한 중요하고 적절한 훈시다. 그런데 이 역시 22일자 신문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신문 머리기사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전 댓글 수사팀장 간의 항명ㆍ외압 논란이었다. 22일에는 국무 회의를 주재하며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자투리 기사로 다뤄졌다. 27일에는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에 깜작 등장해 시구했다. 스포츠 이벤트 사진 이외 의미는 부여되지 못했다. 신문이 작게 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안 듣기 시작한 것이다. 북쪽은요?, 대전은요?에 매료되던 어법이 안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되면 바꿔야 한다. 후보자로서 유권자를 매료시켰던 어법에서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매료시키는 어법으로 달라져야 한다. 국정원 댓글 논란은 침묵으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누구는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사과를 받아내자는 야성(野性)의 목소리다. 누구는 정치공방 중단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털고 가자는 여성(與性)의 목소리다. 어떤 쪽이든 상관없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되고, 그대로 말하면 된다. 대통령식 어법 필요 댓글 5만건이 폭로된 날 새마을 운동을 얘기하고, 검찰 항명 논란이 불거진 날 치안 확립을 얘기하고, 대선 불복이 충돌한 날 투자 환경을 얘기하고. 이건 패착이다.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여론이 돌기 시작한 이유고, 지지도 -7.4%p라는 수치가 나온 이유다. 마침 오늘 오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린다는데. 부디 국민을 시원하게 해줄-후보자의 신비로운 어법이 아닌 대통령의 책임 있는 어법으로 쓰려진- 자료가 뿌려지길 기대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대통령에겐 침묵할 자유도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金 지사, “(차기 후보는) 남경필 의원이…”

일방적 판세는 재미없다. 박빙이 돼야 재미있다. 그래야, 기삿거리도 생기고, 기삿발도 먹힌다. 대부분의 정치 기자들이 가진 습성이다. 그래서 던졌던 농(弄)이 상대방을 정색케 만든 장면이 있다. 도지사 경선이 한창이던 2006년 봄. 국장실(局長室)을 찾은 김문수 후보에게 말했다. 남경필 의원이 하차해서 재미가 덜해졌습니다. 김문수 후보의 답이 진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했다. 나를 말라 죽으라는 얘깁니까. 김문수, 이규택, 남경필, 김영선, 전재희. 정말 뜨거운 경선이었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컸다. 야당의 승산이 높았고 그만큼 한나라당 경선은 뜨거웠다. 그 흥미진진하던 재미에 찬물(?)을 끼얹은 게 남경필 의원이다. 갑자기 사퇴하며 김문수 후보로 단일화한다고 선언했다. 이규택 후보가 지가 뭔데 단일화냐며 화를 냈지만 판세는 그걸로 끝났다. 그즈음 시중에는 다음에는 남 의원을 밀기로 했다는 말이 돌았다. 거듭된 남경필 밀기 그래서 그런가? 요즘 김 지사의 차기 주자 평가가 균형을 잃고 있다. 남 의원 쪽으로 심하게 쏠려있다. 27일 로스앤젤레스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다. 지금 여론 조사를 하면 남경필 의원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느냐. 다른 후보군에 대한 평가는 짜디 짜다. 유정복 장관에 대해서는 내 권유로 새누리당에 들어왔지만 정치인은 아니다고 평했고, 정병국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인 자질은 있으나 인지도가 약하다고 평했다. 나머진 언급도 안 했다. 원래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배경 없이 그냥 던진 얘기일 수 있다. 헌데 그렇게 보기엔 이상한 어록이 또 있다. 지난 7월16일 있었던 모 지방 언론과의 인터뷰에 들어 있는 말이다. 지금 각 당의 당헌당규와 지지도, 여론조사 등 복합적 성적표를 감안하면 새누리당에서는 남경필 의원이 경쟁력을 갖춘 것 아니냐. 거기에서는 남경필 대 김진표의 대진표(?)까지 예상했다. 차기 주자 평가를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남경필 의원이다. 나머지 후보군-유정복ㆍ원유철ㆍ정병국ㆍ김영선 등-이 봤을 때 반칙이다. 실수였다면 주의감이고 고의였다면 경고감이다. 공천 책임자로 공명정대한 선거 관리를 해봤던 그다. 선거 무패의 신화로 전략의 1인자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그가 공명정대하지도 않고, 전략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남경필 편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일까? 그냥 현상을 설명한 것이라면 끝나겠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의문이다. 김 지사의 목표는 대통령이다. 당내 후보군 가운데 1등을 오르내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상대방은 김무성 의원이다. 김 지사와 김 의원 사이를 확실히 갈라서는 칸막이가 있다.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의 구분이다. 김 지사도 친이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와 감사원까지 나서 공격하는 게 4대 강 사업이다. 이 와중에도 그는 홍수 예방은 확실했다며 옹호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친이의 수장이 됐다. 김 지사의 평가를 들으며 서운해 할 법한 게 유정복 장관이다. 그런데 그 유 장관이 하필 친박이다. 여기서 얼핏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김무성 대통령 후보-유정복 경기도지사. 김 지사가 원치 않을 구도다. 최대 표밭인 경기도의 키를 친박에게 넘겨주고 뛰어야 할 불리한 구도다. 누가 봐도 그렇다. 혹 그래서 이러는 건가. 공교롭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남경필 의원은 계파 색깔이 옅다. 거기에 2006년 후보 단일화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있고. 8개월 뒤 도지사 선거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경선 주자로 누가 나설지 알 수 없고, 김 지사의 지지가 득이 된다는 담보도 없고, 그렇게 나간 주자가 도지사가 되리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정치기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스러기처럼 떨어뜨리는 유력자들의 말 한마디를 쫓아다닌다. 장관 업무에 열중할 뿐 도지사는 생각지 않고 있다는 유 장관 말에서 앞부분을 뚝 잘라 버리고 도지사 출마 생각 없다고 써 보기도 한다. 친박 견제용 의도? 김 지사의 남경필 밀기를 화두 삼은 이 글도 그런 유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리주저리 해석을 붙여 보는 건 이런 일이 워낙 낯설어서다. 이인제, 임창열, 손학규 도지사 중 누구도 후임 주자를 평가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처음-그것도 반복해서-이다. 이러다가 청와대가 미는 ○○○와 김문수가 미는 ○○○가 맞붙는 건 아닌지. 혹 도지사 경선장이 대통령 경선장으로 바뀌는 건 아닌지. 이래저래 김 지사 반칙의 이유가 궁금하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金 지사, (차기 후보는) 남경필 의원이]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30년 前 책, 그 속에서 내란죄는…

이름 모를 벌레까지 기어 나왔다. 종이는 누렇다 못해 노랗게 변했다. 볼펜으로 그어졌던 밑줄이 번져 곳곳이 퍼다. 뒷장에 써놓은 학번 842088이란 글씨도 왠지 낯설다. 발행일 1983년 12월 15일, 저자 진계호, 책 제목 형법각론. 30년 전 어느 날 구입해 3~4년 정도 보다가 덮었던 책이다. 참으로 긴 세월을 용케도 꽂혀 있었다. 이석기 의원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펴보지도 못할 뻔했다. 하필 책 속 내란죄 부분이 깨끗했다. 문제 뽑기에 운(運)을 걸던 얍삽한 학창 시절이 남긴 쑥스런 결과다. 유독 순수 법학을 강조하던 지도교수-장영민 박사-의 영향도 있었다. 내란죄를 법학의 영역 밖으로 취급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기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1980년)에서 이어진 저항이 캠퍼스를 뒤덮던 때다. 내란죄 학습은 강의실이 아닌 최루탄속에서 이뤄졌다. 그랬던 그 부분을 다시 읽었다. 노트 위에 빼곡히 정리까지 했다. 답안지를 제출한다는 심정이었다. 곧 시작될 법률 전쟁 Ⅰ. 의의: 내란의 죄란 국가조직의 기본 제도를 다중의 폭력에 의하여 불법으로 파괴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다. 국토참절ㆍ국헌문란의 목적으로 다중이 결합하여 폭행ㆍ협박하는 집합범이다. 다수인이 어느 정도 조직화되어 있음을 요한다. Ⅱ. 특성: 내란죄는 혁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내란죄에 관한 형법규정의 적용문제가 달라지게 된다. 여기에 형법의 극한에 위치하는 본 죄의 특성이 있다. 이때 국가 존립은 1차적으로는 정치문제이고 2차적으로만 형법상의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Ⅲ. 특별법과의 관계: 내란죄와 국가보안법이 충돌할 때에는 특별법(국가보안법)이 우선 적용된다. 즉,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반국가단체에 가입하는 행위는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처벌되고, 그 행위가 폭동으로까지 나아갈 때에는 내란죄의 적용을 받는다. Ⅳ. 주체 및 행위: 주체에는 하등의 제한이 없으나 다중범의 성질상 폭행ㆍ협박이 적어도 한 지방의 평온을 문란케 할 정도의 상당수에 달할 것임을 요한다. 행위는 상해ㆍ강도ㆍ방화ㆍ건조물파괴 등 내란을 달성함에 필요한 일체의 방법을 포함한다. Ⅴ. 예비와 음모: 내란 예비는 내란의 실행을 목적으로 병기ㆍ자금을 조달하거나 군중을 집회하게 하는 것 등의 물질적 준비행위다. 내란음모는 내란을 일으킬 계획하에서 2인 이상이 상호협의하는 것이다. 여기엔 내란을 범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Ⅵ. 처벌: 내란죄는 사형, 무기 징역 또는 무기 금고에 처한다. 내란 예비ㆍ음모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 금고에 처한다. 단, 예비ㆍ음모는 자수자의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이는 내란이라는 중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정책적 규정이다. 그 시절에도 B 학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형법이다. 답안지랄 것도 없는 졸문(拙文)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끼적거려 놓고 가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란죄 토론장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시작은 이미 됐다. 내란죄가 된다더라는 기사도 있고, 내란죄가 안 된다더라는 기사도 있다. 아직은 학자들의 실명이 인용되는 예의 바른 형식이다. 하지만 이 예의는 기소(起訴) 전까지만이다. 이후의 예상은 난타전이다. 각자에 유리하게 각색된 주장들이 학설의 탈을 쓰고 인터넷을 누빌 것이다. 보수라 불리는 만인과 종북이라 불리는 만인이 그 중심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한쪽의 괴멸 부를 것 그 때를 대비해 적어 놓는 것이다. 사견(私見)도 빼고 판단(判斷)도 뺀, 있는 그대로의 교과서적 정의를 옮겨 놓는 것이다. 참고로 삼은 책은 30년이나 된 고서(古書)다. 하지만 죄목이 내란죄라서 괜찮을 듯싶다. 어차피 그 30년간 내란죄는 없었다. 내란죄가 없었으니 판례(判例)도 없었다. 판례가 없었으니 학설(學說)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30년만에 터진 그 때의 음모 사건을 올려놓을 저울은 어차피 30년 전 내란 학설뿐이다. 이석기=내란 주체 RO=내란 조직 비밀회합=내란 음모. 이 등식을 두고 연결하려는 쪽과 끊어내려는 쪽이 이제 막-기소와 동시에-전쟁에 나서려 한다. 양쪽 모두 학문적 논쟁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어느 한 쪽은 현실적 괴멸을 맞아야만 하는 그런 냉험한 전쟁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30년 前 책, 그 속에서 내란죄는]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박원순 대통령, 김문수 대통령

고(故) 김근태님. 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허덕이던 투사다. 지금도 그의 이름에는 이근안 고문 남영동이 따라붙는다. 민주화 운동 시절 10번의 고문과 옥중 투쟁의 역사가 그의 저서 남영동 속에 소름끼치게 남아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개혁이란 화두를 붙들고 힘들어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늘 진지하던 그의 모습은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남아 있다. 그가 복지부 장관이던 2004년 9월 1일. 취임 2개월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의 매는 부당한 매였지만 지금 국민한테 맞는 매는 정당한 매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운을 뗐다. 복지부 입장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국민연금을 지금 고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30% 이상 연금보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 딸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은 판도라 상자였다. 언젠가 고갈된다는 계산은 이미 나와 있었다. 해결책이라야 두 가지였다. 지금 세대가 손해를 보며 건전성을 확보할 것이냐, 아니면 미래 세대가 손해를 보도록 덮고 갈 것이냐. 그는 첫 번째 해결책을 택했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며 택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험료 인상의 첫해라며 예고했던 2011년,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화두로 남기고 떠났다. 지금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얘기가 있다. 지방채를 발행해 복지비를 충당해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서울시가 겪는 보육복지의 어려움은 다 안다. 0~5세 무상보육 시행으로 5천182억원을 떠안았다. 세수는 거꾸로 4천억원이 줄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이 이번 달 25일자에 지급 불능이란 도장을 찍어 놓고 있다. 시장이 멍하니 앉아 있을 순 없었을 거다. 시내 곳곳에 대통령이 책임지십시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러는 박원순 시장을 다들 이해했다. 선거법 운운하는 여당을 더 이상하게 봤다. 그런데 그 뒤 해법이라며 내놓은 방안이 충격적이다. 무상보육에 필요한 2천억원을 지방채로 발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채는 빚이다. 빚 중에는 써도 되는 빚과 쓰면 안 되는 빚이 있다.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지방채, SOC 투자를 위한 지방채, 공공 목적의 사업을 위한 지방채. 이건 써도 되는 빚이다. 호화 청사를 위한 지방채, 전시성 국제 행사를 위한 지방채, 그리고 무상복지를 위한 지방채. 이건 쓰면 안 되는 빚이다. 앞의 것은 투자 행위여서 괜찮은 것이고 뒤의 것은 소비 행위여서 안 되는 것이다. 박 시장의 해법은 그래서 기가 막힌 해법이 아니라 기가 차는 해법이다. 기채(起債) 발행의 매력은 크다. 결재 한 번이면 수천억원이 들어온다.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책임자들이 기회만 되면 만지작 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 기채 발행이 지금 세대 편하자고 미래 세대 주머니를 터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꺼내 들었다. 이제 234개 시ㆍ군ㆍ구가 우리도 발행하겠다고 덤벼들 수 있게 됐다. 16개 시ㆍ도가 우리도 2천억원 쓰겠다고 덤벼들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복지망국(福祉亡國)이 결코 논리 전개를 위해 과장된 언어적 유희가 아니다. 엊그제, 경기도가 소속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들어내기로 했다. 공무원 한 명에게서 연 800만원씩을 빼앗을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절약될 예산이 올해 93억원, 내년에 157억원이다. 얼마 전 증세 민란(?)을 일으켰을 때의 돈이 19만원인데 여기에 40배쯤 되는 돈이다. 그렇게 내 식구 주머니부터 탈탈 털기로 작정한 뒤 김문수 지사가 말했다. 이렇게 하는 데도 안 됩니다. (부자들에 대한 급식 지원은)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과 김문수 지사.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한쪽은 복지비 충당하려 국채를 발행할 대통령이고 다른 쪽은 복지비 충당하려 내 살부터 깎을 대통령이다. 국민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만일 두 사람이 보기의 전부고, 복지가 예문의 전부라면 나는 이미 정답을 골랐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3. 지방선거, 이제 무상복지와 이별해야

2010년 8월 29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가 주최하는 정책 간담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이시종 충북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완주 전북지사, 박준영 전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다. 모두 6월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이다. 그 해 선거는 무상급식 선거라 불렸다. 진원지는 야권(野圈)이었다. 같은 소속인 참석자들도 하나같이 당선되면 곧바로 무상급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며 선거판을 누볐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의외다. 지방재정 위기가 심각하다 예산을 아껴 마른 수건을 짜서 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중앙당이 중심이 돼 무상급식 실시를 위한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으로 편성해 달라. 예산 부족을 지적하는 상대를 그러면 애들 굶기자는 것이냐고 윽박지르며 당선된 사람들이다. 재정 여건이 두 달 만에 급변했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입에서 돈 없어 큰일이라는 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복지는 뒤로 못간다 3년이 지났다. 물 빠진 도랑에 가재 기어 나오듯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김문수 지사는 못 하겠다고 선언한 뒤 빠졌다. 안전행정부가 조사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조사란 게 있는데. 여기서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22개 시군의 자립도가 2012년에 비해 하락했다. 민선 5기 출발 이듬해인 2011년과 비교하면 27개 시군이 하락했다. 이 중 16개 시군은 3년 내내 곤두박질이다. 원인은 급증하는 복지 예산이다. 총 예산 대비 30%까지 치고 올라간 복지비가 재정을 이렇게 흔들었다. 한마디로 텅 빈 곳간에서 잔치 벌이는 꼴이다. 3년 전,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사(私) 기업 같았으면 벌써 감옥에 갔을 일이다. 2천300억원 들여 종합운동장을 지었던 전직 시장을 향해 쏟아냈던 비난이다. 같은 논리를 지금 상황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때의 돈은 콘크리트 더미로 들어갔고, 지금의 돈은 시민 호주머니로 들어갔다고 우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재정을 거덜냈다는 눈앞의 책임이 바뀌지 않는다. 이 역시 사기업 같았으면 벌써 긴급이사회 소집됐을 일이다. 공교로운 건 이런 복지 문제를 또 다른 복지 문제가 덮어주고 있다는 거다. 정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넘긴 무상보육이다. 3~4세 보육료 지원을 소득 하위 70%까지에서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0~2세 양육 수당도 차상위 계층까지에서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이렇게 해서 지방으로 넘어온 부담이 1조700억원이다. 50%는 중앙 정부가, 나머지 50%는 지방 정부(광역 25%+기초 25%)가 책임지라며 떠안긴 부담이다. 지방 정부의 의견 따윈 묻지도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작해서 여(與)가 주도했고 야(野)가 거들었다. 울고 싶던 지방 정부의 뺨을 시원하게 올려붙여 준 셈이다. 시장군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무상급식은 우리-지방정부-가 할테니 무상보육은 너네-중앙정부-가 하라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3살짜리 아이의 부모와 초등학생 아이의 부모가 있다 치자. 앞 부모에게 절박한 것은 무상보육이고 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무상급식이다. 거기엔 국민인 부모 따로 없고 시민인 부모 따로 없다. 나라 복지 받을 부모 따로 있고, 지방 복지 받을 부모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무상급식을 계속할 거면 무상보육도 계속 해야 하는 것이고, 무상보육을 중단할 거면 무상급식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매표(買票)에 미친 정치권이 벌여 놓은 일이다. 지방선거 소재 아니다 2009년 어느 날. 정창섭 부지사가 기자에게 이런 가르침을 줬다.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걱정인 거지. 모두가 굶길 거냐 먹일 거냐로 싸우고 있을 때 그는 앞으로 빚어질 예산 파국을 말하고 있었다. 콜럼버스 달걀과도 같았던 이 말은 그 후 기자가 쓰는 모든 복지 칼럼을 지배했다. 그리고 월급봉투 19만원의 반격이 시작된 지금, 또 한 번 그 교훈의 소름 끼침을 느낀다.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은 중단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걱정인거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진보(進步)가 있어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보수(保守)가 있어 커질 수 있었다. 정치권이 달려온 무상복지 경쟁의 한계도 여기까지다. 더 가면 안 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복지 천국과 복지 망국 사이의 담벼락이 이미 원치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完) [이슈&토크 참여하기 = 3. 지방선거, 이제 무상복지와 이별해야]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2. 보수와 진보의 무상복지 거짓말

보수의 거짓말은 변절이었다. 김문수 지사가 2010년 1월 11일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도 3월 10일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은 얼치기 좌파가 국민 현혹하기 위해 내세우는 정책이다. 예의를 생략하고 던진 정치공학적 수사(修辭)다. 하지만 말은 맞았다. 무상복지의 이념적 출발은 사회주의다. 경제력의 한계가 복지의 한계라는 경계를 넘는 순간 그렇게 연결된다.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점잖은 거였다. 그랬던 보수가 2012년 대 변신을 꾀한다. 0~5세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건강 보험 보장성 확대, 기초 연금 도입,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 보수 대표라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다. 진보 측 상대 후보와 차이가 없다. 보수=선택적 복지와 진보=보편적 복지라는 등식이 깨졌다. 대신 보수=보편적 복지라는 어색한 공식이 등장했다. 대선판 메뉴에서 보수가 고르려던 선택적 복지는 사라졌다. 보편적 복지와 또 다른 보편적 복지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보수의 변절ㆍ진보의 위선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보수의 외투에 진보의 내복을 껴입고 시작했다. 그 정부가 내놓은 무상복지의 첫 단추인 세재 개편안이 무너졌다. 보수의 저항이 시작이었다. 우군이라던 중산층이 대노했다. 과거 정권의 경제 수장들도 공세를 높였다. 세금 없이 복지 늘리는 방법은 없다(한이헌 前수석), 재정 건전 속 복지 확대는 무리다(권오규 前부총리), 복지 공약을 성역으로 두면 출구는 없다(윤증현 前장관). 표와 결합한 변절이 받는 혹독한 대가다. 진보의 거짓말은 위선이었다. 100%에게 차등 없이 나눠주는 보편적 복지. 누가 봐도 사회주의적 이념을 깔고 있다. 평등한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정책이다. 애초 복지가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보완에서 시작됐음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그 정도를 포용할 만큼은 넉넉해졌다. 그런데 정작 진보는 이 문제에 예민했다. 사회주의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뛰었다. 애들 식탁에 색깔론을 덧칠하자는 거냐며 들고 일어나며 이념 논쟁의 길을 막아섰다. 혹 이것 때문은 아닌가 싶다. 선거에 이겨야 하고, 선거에 이기려면 표를 얻어야 하고, 표를 얻으려면 사회주의적 색채와 경계를 그어야 했던 필요성. 문제는 이런 정치 공학적 결벽증이 진보 진영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렸다는 거다. 공짜로 나눠 주는 몫만을 설명하게 했고, 강제로 거둬야 하는 몫은 말 못하게 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 때 그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유리지갑 퍼포먼스는 했지만 재원조달 대안 제시는 못했다. 보다 못한 진보 인사들이 솔직해지자며 목소리를 냈다. 진보에서 세금 폭탄론을 꺼낸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1% 부자 감세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이상구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위원장). 박근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오히려)보편복지 시대에 걸맞은 증세 조치 없이 기존 과세 체계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위원장). 보수의 변절이 보수 내부의 비난을 샀던 것처럼 진보의 위선도 진보 내부의 공격을 받고 있다. 복지 축소냐 증세 인정이냐 이런 변절과 위선도 이제 그 효력을 다 해 간다. 19만원으로 바닥을 드러낸 보편적 복지를 향한 환상은 더 이상 없다. 여(與)의 4% 성장 대망론이나 야(野)의 1% 부자 증세 해결론를 믿는 사람도 없다. 남은 건 보편적 복지 앞에 꿇어 앉을 보수와 진보의 석고대죄다. 보편적 복지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해야 할 듯 보이고, 증세 없는 복지국가는 없다는 실토를 해야 할 듯 보인다. 변절과 위선의 외줄타기를 끝낼 결단과 용기를 내야 할 듯 보인다. 증세(增稅)의 길목을 지키기 시작한 국민의 기세가 그만큼 서슬 퍼렇다. *다음 주 ③지방선거, 보편적 복지에서 손 떼라로 이어갑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2. 보수와 진보의 무상복지 거짓말]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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