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동정은요?”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그게 아니라 “휴전선은요?”였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아는 건 2명이다. 그날-1979년 10월 26일- 밤, 대통령의 비보(悲報)를 전한 김계원 비서실장과 이를 전해 들은 박근혜 영애다. 그 중 한 명인 김 실장이 엊그제 TV에 출연했다. “북쪽은요?”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달리 확인할 길도 없으니 이제 “북쪽은요?”가 맞는 것으로 결론 내야 할 듯하다.
2006년 5월 20일 서울 창전동 유세 현장. 단상에 오르던 박 대표의 얼굴로 손길 하나가 스쳤다. 순간 그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11㎝의 자상(刺傷)에서 떨어지는 피를 막으며 병원으로 실려갔다. 훗날 본인은 이날의 부상을 ‘수박 갈라지듯 벌어졌다’고 표현했다. 2시간 동안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이었다. 그 수술의 마취가 깨자 던진 첫 말이 “대전은요?”였다. 비서실장의 전언이다.
침묵 속 지지율 하락
이 두 번의 짧은 워딩(말)이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을 있게 했다. 개인적 고통 앞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찾았던 모습. 통 큰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꼭 필요한 언급 외에 말을 삼가는 모습. 정제된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이런 통 크고 정제된 어법을 보며 국민 51%가 나라를 맡겨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논리적인 변호사 문재인 후보나 저돌적인 운동가 이정희 후보의 달변(達辯)이 모두 외면받았다.
그랬었는데…. 취임 8개월이 지나면서 똑같은 화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답답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식상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얼마 전까지 없었는데 갑자기 들려온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30일) 아침에 보도된 여론조사가 자못 심각하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46.6%다. 한 달 전 54%에 비해 7.4%p나 떨어졌다.
대통령을 답답하다고 평하는 여론이 저잣거리에 나돌고, 그런 여론이 최악의 통계 수치로 확인되고. 이런 급변의 짧은 시간을 복기(復棋)해보자.
20일, 대통령은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했다. “새마을운동은 현대사를 바꿔 놓은 정신혁명”이라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자고 역설했다. 선친(先親)의 유업이자 빈곤 탈출의 상징인 새마을 정신을 되살리자는 뜻깊은 주장이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21일자 신문에선 이 얘기가 단신(短信)으로 처리됐다. 대신 모든 신문 1면은 ‘민주당, 국정원 댓글 5만 건 확인 주장’이었다.
21일,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경찰의 날 기념식이었다. “사회의 기강을 흔들고 안전을 저해하는 불법과 무질서에는 원칙을 갖고 엄정하게 대응해 달라”고 연설했다. 치안질서 확립을 강조한 중요하고 적절한 훈시다. 그런데 이 역시 22일자 신문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신문 머리기사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전 댓글 수사팀장 간의 항명ㆍ외압 논란이었다.
22일에는 국무 회의를 주재하며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자투리 기사로 다뤄졌다. 27일에는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에 깜작 등장해 시구했다. 스포츠 이벤트 사진 이외 의미는 부여되지 못했다. 신문이 작게 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안 듣기 시작한 것이다. “북쪽은요?”, “대전은요?”에 매료되던 어법이 안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되면 바꿔야 한다. 후보자로서 유권자를 매료시켰던 어법에서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매료시키는 어법으로 달라져야 한다. 국정원 댓글 논란은 침묵으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누구는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사과를 받아내자는 야성(野性)의 목소리다. 누구는 ‘정치공방 중단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털고 가자는 여성(與性)의 목소리다. 어떤 쪽이든 상관없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되고, 그대로 말하면 된다.
대통령식 어법 필요
‘댓글 5만건’이 폭로된 날 ‘새마을 운동’을 얘기하고, ‘검찰 항명 논란’이 불거진 날 ‘치안 확립’을 얘기하고, ‘대선 불복’이 충돌한 날 ‘투자 환경’을 얘기하고…. 이건 패착이다.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여론이 돌기 시작한 이유고, 지지도 ‘-7.4%p’라는 수치가 나온 이유다.
마침 오늘 오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린다는데…. 부디 국민을 시원하게 해줄-후보자의 신비로운 어법이 아닌 대통령의 책임 있는 어법으로 쓰려진- 자료가 뿌려지길 기대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대통령에겐 침묵할 자유도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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