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생을 ‘저주받은 세대’의 원조라 부른다. 1994학년도 대입에 응시한 세대다. 그 해 대입에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도입됐다. 기존 학력고사와 전혀 다른 방식이다. 학력고사가 암기위주의 시험이라면, 수능은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묻는 시험이다. 과목 이름까지도 ‘무슨 무슨 영역’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8월과 11월 두 번 실시됐다. 이런 엄청난 변화 앞에 준비 시간 없이 그대로 노출된 세대가 75년생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고 윤형섭 장관이 만들었다.
다음 저주받은 세대는 82년생이다. 2001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세대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최악의 ‘물 수능’으로 기록됐다. 400점 만점자가 66명에 달했다. 380점 이상의 고득점자도 전년도보다 5배 많은 3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 400점 만점자가 내신과 제2외국어 영역 변환표준점수 상의 불이익으로 서울대 특차전형에 떨어졌다. ‘만점 받고도 떨어지는 이상한 시험’이라는 당시 사설이 지금도 검색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고 이돈희 장관이 만들었다.
또 ‘저주받은 세대’
83년생들은 이해찬 1세대로 불린다. 무시험 대입 전형이 대대적으로 확대됐다. 교육부가 나서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야간 자율 학습, 0교시, 보충 수업이 다 없어졌다. 많은 학생이 ‘공부’ 대신 ‘특기’를 찾아 교실을 떠났다. 그런데 막상 대학들은 수능성적으로 뽑았다. ‘단군이래 최저 학력 세대’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피해자도 속출했다. 교육부에 배신당한 세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고 이해찬 장관이 만들었다.
올 95년생들도 저주받은 세대에 기록을 남기게 됐다. 수준별 수능이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모두가 어렵게 공부할 필요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치른 성적을 어떻게 기준 삼겠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이해 못 할 제도였다. 가산점으로 다시 균형을 맞춘다는 발상도 황당했다. 첫 시작도 전에 ‘올해만 실시하고 폐지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졸지에 실험용 쥐가 된 95년생들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고 이주호 장관이 만들었다.
얼마 전 역대 교육부 장관들이 모였다. 서울의 어느 좋은 호텔에서다. 현직이 마련한 ‘역대 교육부 장관 초청’ 모임이다. 그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윤형섭 전 장관, 이해찬 전 장관, 이주호 전 장관. 수험생 180만명을 힘들게 했던 셋이다. 그런데 다들 잘 나가고 있다. 한 사람은 연세대 재단 이사로, 다른 사람은 현직 국회의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이사장으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는 15년 전 경험이 있다. 경제에 실패한 경제 장관-강경식 부총리-이 감옥에 갔다. 국민의 분노가 그렇게 몰고 갔다. 6년 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국민이 내린 ‘유죄’는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사형 선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직무를 유기한 장관에게 내려진 벌이 그렇게 무섭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은 다른 모양이다. ‘저주 내린 주역’들인데도 교육계 원로 소리 들으며 당당히 살아간다.
쥐가 실험용이 되는 것은 용기 안에 있어서다. 도망갈 곳이 없으니 찔러도 거기 있고, 굶겨도 거기 있는 것이다. 우리 수험생들이 실험용 쥐가 되는 것도 그래서다. 죽이든 밥이든 던져진 틀로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져 나올 입시 불평에 미리 재갈을 물리는 고약스런 속어(俗語)도 있다. ‘그래도 대학 갈 놈은 간다’ ‘모자란 것들이 제도 탓한다’. 이렇게 윽박질러 입을 막아 놓고는 대통령 임기마다 또 다른 ‘저주받은 세대’를 만들고 있다.
돌아보면, 한 번쯤 전직 교육부 장관을 청문회에 세웠어야 했다. 뻔한 결과를 예상 못 했느냐고 추궁했어야 했다. 타당성 용역이 옳았는지 들춰봤어야 했다. 최고 권력의 밀어붙이기는 없었는지 따졌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책임 있으면 책임 묻고 죄 있으면 죄 물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저주받은 세대’를 한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르고, 1년짜리 실험만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장관 책임 물어야
앞으로 두어 달, 수백만의 국민이 또 이 대학 저 대학을 찾아 헤맬 것이다. 3천 개의 전형방식이 6천 개로 늘어난 혼란 속에서 허덕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청문회가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린 책임을 묻는 ‘교육 책임자 청문회’다. ‘4대강 청문회’나 ‘댓글 청문회’보다 더 많은 국민이 지켜볼 게 틀림없다. 시청률이 높을테니 정치권이 관심 갖을 것도 틀림 없고…. 어려울 거 없다. 가까운 과거의 교육장관부터 불러내면 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망친 입시제도, 청문회에 세워야]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