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이젠, 수원지검장도 잘 가고 잘 와야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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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수원지검장이 영전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임명됐다. 가히 ‘전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만 하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옮겼으니 ‘전격’이다.

지검장에서 고검장, 그것도 핵심 고검장으로 승진했으니 ‘전격’이다. 무엇보다 수원지검장에서 서울지검장으로 곧바로 옮긴 첫 사례니 ‘전격’이다. 2009년 1월 어느 날, 수원지검에서는 그렇게 즐거운 이임식이 있었다. 그때 천 지검장이 수원 법조 기자들에게 남긴 소감이 있다.

‘수원지검장도 승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경기도 역차별이 산업(産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검찰의 경기도 역차별도 보통 심각하지 않다. 산업 역차별만큼이나 정도가 심하고 뿌리가 깊다.

역차별로 이어지는 논리도 같다. 서울의 과잉 집중을 막자는 취지가 수도권 규제다. 그런데 그 피해를 받는 곳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다. 서울의 권력 집중을 막자는 것이 검찰 인사의 취지다. 그런데 피해는 서울지검장 자리가 아니라 수원지검장 자리가 받고 있다.

이런 얘기도 경기 언론의 떼쓰기-산업 역차별 반박처럼-라 할지 모르니 주판알을 튕겨 보자. 잘 나가는 대구지검과 못 나가는 수원지검의 지나간 15년이다.

대구지검장은 19명이 거쳐 갔다. 이 중 4명이 검찰총장을 했다. 김진태 현 총장도 그 중 하나다. 법무 장관 또는 차관이 3명 있다. 2명이 서울 검사장에, 대법관과 헌재소장에 각각 1명이 임명됐다. 고검장으로 승진한 지검장도 2명이다. 승진하지 못하고 옷 벗은 지검장은 5명이다. 19명 가운데 14명이 고검장 이상으로 영전했다. ‘대구 지검장 발령=승진 보장’이라는 검찰 내 속설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통계다.

같은 기간 수원지검에는 15명의 검사장이 있었다. 검사장 수에서 대구 지검(19명)과 차이가 난다. 기억컨데 명퇴에 망설이거나 자리를 받지 못한 과거의 검사장 몇이 있었던 듯하다. 영전은 딱 3명이다. 법무 장관(김승규 검사장) 1명, 서울지검장(천성관) 1명, 대검차장(차동민) 1명이다. 나머지 12명은 모두 수원에서 퇴임했거나 다음 임지로 가서 옷을 벗었다.

수원지검장 이임식이 늘 우울했던 이유가 설명되는 통계다.

수원지검은 사건 수(數)가 많은 ‘큰 청’이다. 관할 시군이 여럿인 ‘넓은 청’이다. 개발 비리가 복잡한 ‘특수 청’이다. 큰 청에 걸맞은 예우, 넓은 청에 걸맞은 지원, 특수 청에 걸맞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균형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15년째-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수원지검장들은 이런 불균형 속에 씁쓸하게 왔다가 쓸쓸하게 떠났다. 능력 없는 검사장을 보내 승진이 없었던 걸까, 능력 있는 검사장을 보내고도 승진을 안 시킨 걸까.

대한민국 검찰이 든 병(病) 중에 지연(地緣)이란 게 있다. 영남 정권에선 영남 검사가, 호남 정권에선 호남 검사가 잘 나간다. 정권이 오른쪽과 왼쪽을 오가던 15년 동안 이 병증(病症)은 더 깊어졌다.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에 가까워졌다.

이것만으로도 검찰은 반 토막이났다. 그런데 그 반 토막을 더 잘게 자르려는 연고주의가 있다. 바로 어느 청사에서 근무했느냐에 따라 출세가 결정되는 청연(廳緣)이다. 근무하는 사무실이 공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해괴한 관행이다.

조만간, 또는 한두 달 내로 본격적인 검찰 인사가 있다고 한다. 이번 인사에서도 지연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기엔 검찰 기자 10년의 귀동냥이 너무도 굳어 버렸다. 대신 끊어 낼 수 있는 것이라도 끊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청연이다. 청연? 아무것도 아니다.

인사권자의 결심만 있으면 금방 사라질 일이다. 800만 경기도민의 자존심만 살려주면 바로 해결될 일이다. 수원지검장에서 가는 사람 잘 가고, 수원지검장으로 오는 사람 잘 오면 곧바로 끝나게 될 일이다. 어차피 관행의 역사는 늘 길었고 개혁의 시작은 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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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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