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고 하긴 그렇지만 닮은꼴은 맞다. 우선 수사기관의 성격이 같다. 북한의 보위부나 우리 국정원은 같은 정보기관이다. 적용된 혐의도 비슷하다. 표현의 차이를 풀어 말하면 결국엔 둘 다 내란이다. 피의자의 신분이 모두 공직자다. 최고 권력기관 소속이고 최고 의결기관 소속이다. 법 집행의 모양새까지 닮았다.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연행됐고 의원회관에서 압수됐다. 장성택 특보(特報)를 보던 많은 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가 융단폭격을 맞은 이가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다. 친노그룹 송년회에서다.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은 같다”. 다음날 모든 언론이 이 말을 크게 다뤘다.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는 비난이 인터넷에 도배됐다. 현역 시절 그의 입은 이슈를 만들어내는 공장(工場)이었다. 어느 쪽에서는 ‘입만 열면 대박’이라고 좋아했고, 어느 쪽에서는 ‘입만 열면 사고’라며 싫어했다. 이번 말도 그답다. 아마 정치를 다시 하려는 모양이다.
자유체제 인정받을 호재
유 전 장관 이후 금기어(禁忌語)가 생겼다.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이 같다’. 갑작스레 이 말을 하는 데 특별한 용기가 필요해졌다. ‘북으로 가라’는 공세에 휘말려도 좋다는 각오를 해야 할 분위기다. 물론 유 전 정관 말 속엔 정치적 셈법이 있다. ‘장성택→이석기→국정원→댓글→대통령 책임’으로 연결된다. 많은 이들이 눈치 챈 깊이 없는 직설 화법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다. 막을 말이 아니고 비난할 말도 아니다.
지금 우리 눈에 장성택은 희생자다. ‘장성택 내란 혐의는 조작이다. 2인자를 쳐 내려는 김정은의 작품이다. 고로 처형된 장성택은 억울한 피해자다’란 동정이 깔려 있다. 이 말에 주어(主語)를 바꾸면 이렇게 갈 수도 있다. ‘이석기 내란 음모는 조작이다. 진보 정당을 쳐 내려는 보수의 작품이다. 고로 구속된 이석기는 억울한 피해자다.’ 혹시 이래 선가. 이런 논리의 확장을 염려해서인가. 그래서 ‘장성택=이석기’ 얘기에 십자포화를 퍼붓는 것인가.
단언컨대 장성택 사건을 대한민국에서 수사했다면 결론은 달라졌다. 눈두덩과 손등에 피멍이 들지 않았다. 단심(單審)에 의한 변론기회 박탈도 없었다. 판결 확정 뒤 곧바로 형장으로 끌려가지도 않았다-우리 사형장(死刑場)엔 이미 발급된 대기표가 59장이나 된다-. 거꾸로 이석기 사건을 북한에서 수사했다면 어땠을까.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결론에 다다른다. 연행, 고문, 단심, 기관총. 여기에 혹시 모를 화염방사기까지….
문명국가 가늠의 기본은 법치(法治)다. 수사도 법에 의하고, 재판도 법에 의하고, 사형도 법에 의해야 한다. 법에 의하지 않은 수사, 법에 의하지 않은 재판, 법에 의하지 않은 사형은 야만국가에서나 있는 정치폭력이다. 이석기 재판을 통해 대한민국이 문명국가가 된 이유고, 장성택 참형을 통해 북한이 야만국가가 된 이유다. 남ㆍ북이 달려온 체제 경쟁이 66년이라면, 그 중 사법체계 경쟁에는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만한 두 사건이다.
출발의 닮음을 인정해야 절차의 다름이 설명된다. 세계(世界) 앞에 남과 북의 차이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연역(演繹)적 접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장성택 처형은 국제인권 규범 위반”이라고 정의했다. 커트 캠벨 전(前) 미 국무부 차관보도 “그(김정은)는 (학창시절부터)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이게 다 ‘장성택-이석기’ 사건이 비교되면서 얻어진 새로운 한반도 평가다.
자유롭게 비교하게 둬야
지금 이 순간, 수원지법-이석기 재판이 열리는-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권력은 그곳에서 아주 간단한 일을 한다. 맘껏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구역을 나눠주고, 서로 다치지 않도록 신체를 지켜준다. 3개월을 짜증스럽게 봐왔던 이 그림이 갑자기 푸근하게 다가온다. 한 달여 전 ‘보수-진보 대립, 강력히 제재해야’라고 썼었는데…. 아무래도 그 졸고(拙稿) 위에 취소 버튼을 눌러야 할 듯 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장성택 사건과 이석기 사건은 닮았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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