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교육청, 인조잔디 사고 책임 다 떠안을건가

영국에서 이런 설문이 있었다. 축구 선수들에게 물었다. ‘인조잔디 경기장이 사용되어야 하는가.’ 답변한 선수의 94%가 ‘안 된다’고 했다. 말할 것 없이 부상 위험 때문이다. 조사한 단체는 영국축구선수협회(PFA)다.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만든 단체다. 유명 축구 선수 즐라탄의 일화도 있다. 미국 LA갤럭시에서 뛰는 그가 느닷없이 경기 출전을 거부했다. 역시 인조잔디가 이유였다. 인조잔디 부상의 예가 차고 넘치는 스포츠계다. 미국 축구장의 인조잔디는 세계 최고품질이다. 영국 축구장은 종가(宗家)의 자부심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벌벌 떤다. 인조잔디가 곧 선수생명 끝이라 여긴다. 그만한 기술이 없는 우리네 인조잔디다. 학교 운동장은 그중에서도 값싼 제품이다. 그 위를 지금도 애들이 뛰고 달린다. 자빠지기도 하고, 나뒹굴기도 한다. 영국 축구선수들이 보면 뭐라 할까. 즐라탄이 보면 뭐라 할까. 혹시 한국 아이들이 목숨 걸고 논다고 하지 않을까. 더 기가 막힌 사실이 폭로됐다. 이보다 더 불량한 인조잔디가 학교에 깔리고 있었다. 공사 기준에 충격흡수성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뛸 때 받는 완충치를 정한 기준이다. 국가 표준인 KS에도 있다. ‘평균치에 50% 이상 되어야 한다’고 딱 정해져 있다. 학교 실상은 턱없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학교 운동장이 모두 30%대였다. 26%로 시공된 운동장도 있었다. 육상 트랙 바닥이 35%다. 애들이 지금 육상 트랙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공사비 빼먹기였다. 공사 시방서에는 충전재 기준도 정해져 있다. 1㎡당 11㎏ 이상이다. 이 좁쌀 만한 게 꽤 비싸다. 이걸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3분의 1만 넣었다’는 업자의 고백이 나왔다. ‘6천만원쯤 남겨 먹었다’는 증언도 했다. 위법이다. KS로 정한 기준을 위반했다. 범죄다. 시방서를 속인 공사비 횡령이다. 이 위법과 범죄의 희생양은 아이들이다.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까지는 아이들, 걷지 못할 정도로 다치는 아이들이다. 그때, 배가 뒤집힌 걸 보고 뭐라 했나. 운송비 아끼려는 어른들의 탐욕이라 하지 않았나. 그 탐욕이 아이들을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국민이 분노했고, 선장이 징역 갔고, 대통령이 쫓겨났다. 그것과 이게 뭐가 다른가. 돈 남기려고 엉터리 운동장을 깔았다. 똑같은 탐욕이다. 아이들이 다치고 부상당한다. 똑같은 희생이다. 학부모도, 국회의원도 그래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전수 조사해 대책을 내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교육청도 국감장에선 ‘알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향후 회의를 통해서…해결에 힘쓰겠다”.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 인조잔디 운동장만 도내 311개다. 양심을 고백한 업자는 ‘내가 공사한 (엉터리)운동장이 100개쯤 된다’고 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운동장은 모조리 엉터리였다. 대부분 엉터리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시간에도 거기서 뛰고 논다. 오늘 다칠 수도, 내일 다칠 수도 있다. 곧 땅 어는 겨울까지 온다. 대한민국 학교는 복지천국으로 가는 중이다. 공짜로 밥 준다. 급식 복지다. 공짜로 옷 준다. 교복 복지다. 인조잔디 문제도 그렇게 봐야 한다. 맘 놓고 뛸 권리, 안 다칠 권리가 학생에게 있다. 공짜 밥, 공짜 교복보다 훨씬 소중한 기본 복지다. 표(票)는 덜 될지 모른다. 지나간 과오(過誤)가 얘기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미적대면 안 된다. 보름여를 끌다 보니 이런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닌가. ‘교육청 담당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어쨌든 모두가 알았다. 충격흡수성 부족, 불량 인조잔디…. 학교도 알았고 교육청도 알았다. ‘몰랐다’는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 인조잔디 사고는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으로 갈 것이다. 관련 재판 때마다 교육감에겐 이런 판결문이 보고될 것이다. “충격흡수성이 부족한 인조잔디 운동장 상태를 알면서도 이를 보수하지 않은 책임이 교육청에 있다. 그러므로 사고를 당한 학생 피해의 ○○%를 경기도교육청이 배상하라.” 主筆

[김종구 칼럼] 적폐의 적폐-항공산업의 9·28 추락

2017년 7월14일이 공식 수사의 시작이었다. 경남 사천 본사 등에 압수수색이 들어갔다. 적폐 청산 수사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그때 처음 KAI(Korea Aerospace Industriesㆍ한국항공우주산업)를 안 사람도 많다. 검찰ㆍ정치권에 흐르는 소문이 흉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자금을 댔다더라’ ‘엄청난 돈이 정치권에 갔다더라’ ‘항공기 거래로 천문학적 비자금이 조성됐다더라’…. KAI는 이 ‘설’만으로도 부패 집단이 됐다. 검찰 수사는 셌다. 압수수색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그사이 ‘설’이 ‘진실’로 굳어갔다. 원가조작을 통한 개발비 편취설이 기정사실이 됐고, 천문학적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검찰 발표까지 나왔다. 분식회계가 뭔가. 법원에서 확정되면 해당 기업은 상장을 폐지해야 할 중죄(重罪)다. 여기에 경찰도 가세했다. KAI 본사를 또 한 번 수색했다. 검찰 건과는 다른 비리가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9월21일, 결국 KAI 부사장이 자살한다. 그때가 어떤 때였는지 업계는 다 안다. 전쟁 중이었다. 항공 산업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었다. 타깃은 미국이 던진 초대형 입찰이었다. 공군 훈련기를 30년 만에 교체하는 사업이다. 교체 비행기만 350대다. 20조 원 짜리다. 이 세기의 입찰전을 펴던 게 바로 KAI다.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한 조(組)였다. 그해 7~10월이면 입찰 서류가 접수돼 채점이 매겨지던 때다. 하필 그때 적폐 잡도리가 시작됐다. 발주국에서 어찌 봤을까. 그 결과가 나왔다. 지난 9월28일 새벽이다. ‘美 훈련기 교체 사업자, 보잉사로 선정’. 업계 충격이 크다. 록히드마틴은 미국 방산업계에 절대 강자다. KAI의 T-50 훈련기는 수출까지 한 검증품이다. 보잉은 군 훈련기를 만든 적도 없다. 여기에 믿는 구석이 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이다. 트럼프를 다섯 번 만났다. 마지막 만남은 결정 사흘 전이었다.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이길 거라고 했다. 그런데 졌다. 실망이 여간 아니다. 사업비 수조원은 차라리 일부다. 협업을 통해 얻어내려던 항공기술이 컸다. 이 기회가 사라졌다. 향후 세계 훈련기 교체 시장만 100조 원에 육박한다. 이 동력이 사라졌다. 파급 효과를 기대했던 국내 관련 업체만 수백 개다. 이 일거리가 사라졌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라크에 3조 원 어치나 팔던 T-50이다. 이 수출길이 사라질 판이다. 미국에서 퇴짜 맞은 비행기다. 어떤 나라가 돈 주고 사가겠나. 조용하다. 이 지경이 됐어도 나라가 조용하다. KAI 사장은 입장문 한 장 던지고 안 보인다. ‘저가 입찰’ 핑계만 줄줄이 적어놨다. 정부도 안 보인다. 어떤 부처 하나 나서 설명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에만 해도 이렇게 공치사하던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전투기를 더 살 테니 KAI를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업계만 답답하다. 서운함을 섞어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척만 한 거 같다.’ 여기서 9년 전 어느 대통령 얘기를 해보자. UAE가 발주한 47조 원짜리 원전 입찰이 있었다. 결정을 앞두고 대통령이 현지로 날아갔다. 그리고 9시 뉴스에 직접 출연했다. ‘우리가 원전 공사를 따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눈살을 찌푸린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 유난 떤다’고 봤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그날 밤 한국은 47조 원짜리 수주에 성공했다. 그리고 9년 뒤 9월28일 새벽, 한국은 18조 원짜리 수주에 실패했다. 감옥 간 사람과 견준다고 언짢아할 것 없다. 문 정부 출범 이후 ‘KAI 1년’은 비교되어 마땅하다. 하필 수주 전쟁 한창일 때 기업을 털었다. 정경 유착 회사, 분식회계 회사, 부사장 자살 회사로 세계 언론 앞에 망신을 줬다-그나마 핵심 혐의 대부분은 1심 무죄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장은 경쟁사 응찰가를 어림잡지도 못했다. 했다는 정부 지원도 실체가 없다. 이러니 ‘유난 떨던 前 대통령’까지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청년 실업 해소? 이 순간에도 항공학 배우고, 기계학 배우는 청년들이 많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날개 만들고, 엔진 만드는 청년들도 많다. 판교에서 일하고, 용인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9월28일은 절망일로 기록됐을 것이다. 20년치 먹거리를 놓친 날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들에게 뭐라고 할 건가. 할 말이 있나. 혹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자고 할 건가. 다음 미국 훈련기 교체는 30년 뒤에나 올 텐데…. 主筆

[김종구 칼럼] ‘대통령-이재용 회동’의 이상한 법칙

판에 박듯 닮았다.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방문 일정이 공개됐다. 삼성 현지 공장 준공식 참석이 있었다.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을 주목했다. ‘문 대통령-이 부회장 회동 임박’이라며 대서특필했다. 한 켠에서 싸늘한 반응이 나왔다. ‘친여’라 할 노동ㆍ시민사회의 시각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가 초대하지 않았다” “(통상의) 범위와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대통령 출국을 이틀 앞둔 6일의 일이다. 회동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노이다 공장에서 9일 만났다. 분위기가 좋았고 일자리 얘기도 오갔다. 그런데 다음 날-더 정확히는 열서너 시간 후- 이런 속보가 떴다. ‘檢,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 압수수색’. 혐의는 노조와해 기도다. 이미 해오던 수사였다. 책임자 상무는 이미 구속돼 있었다. 그런데 하필 압수수색 시점이 ‘문 대통령-이 부회장 회동’ 바로 다음 날이다. 정경유착 논란이 쑥 들어갔다. 노동계ㆍ시민사회가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또 이런다. 9월 16일 청와대가 방북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 중에 52명의 특별 수행단이 있다. 최태원, 구광모, 현정은 등 재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삼성 이 부회장도 명단에 들어갔다. 친여 성향 쪽에서 또 비난이 나왔다.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대통령과 피고인이) 밀착되어서는 엄정한 사법적 판단이 안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또 해명했다. 이번에는 임종석 실장이 직접 나섰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다.” 하루 뒤, 눈에 익은 기사가 떴다. ‘檢, 삼성 에버랜드 전격 압수수색.’ ‘노조와해 기도’라는 혐의가 7월과 같다. 9월 10일에 접수된 사건이다. 고소인은 삼성 협력사 노조, 피고소인은 삼성 계열사였다. 그중에 에버랜드를 검찰이 치고 들어간 것이다. 역시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동행 방북’을 하루 앞두고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라던 임 실장의 해명이 마치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웅성거리던 ‘친문’여론은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우연일까. 이쯤 되면 법칙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 부회장이 대통령 만나면 삼성엔 압수수색 들어간다!’ 압수수색은 수사 중 강력한 단계다. 본격 수사로 향하는 상징적 행위다. 제3자에 비치는 모습도 그렇다. 상대가 세계적 기업이라면 더하다. 삼성 압수수색 장면을 보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삼성을 계속 밀어붙이는구나’. 이런 해석도 있었다. ‘삼성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구나’. 여론 흐름을 잘 알고 있을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대통령 회동’ 얘기만 나오면 치고 들어갔다. 이걸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 ‘공안감(公安感)’이라는 말이 있다. 검찰 출입기자 시절 들었다. 대충 풀면 이렇다. ‘정치가 가려는 방향을 읽는 감각’. 특히 대형 사건을 처리할 때 얘기됐다. 그 공안감을 이번 일에 대입해보자. -삼성의 경제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일자리ㆍ경협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삼성 부회장을 만났다. 그런데 그때마다 검찰이 삼성을 치고 들어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혹시 이러지 않을까. ‘공안감이라곤 없는 검사다’. 그런데 이 공안감을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는 건 업무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땐 더 절실하다. 그런데 걸리는 게 있다. 노동계ㆍ시민 사회세력의 시선이다. 정경 유착이라며 삐딱하게 본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라고 해보지만 달래기 쉽지 않다. 이때 검찰의 압수수색이 등장했다. 삼성에 대한 정부의 초심이 변함없음을 한 방에 증명했다. 이쯤 되면 평가가 달라지지 않겠나. “공안감이 뛰어난 검사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는 말할 수 있다. 차라리 ‘공안감 없는 검찰’이었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기업인 회동이 당당해진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당당해진다. ‘공안감 뛰어난 검찰’이었다면 큰일이다. 대통령의 기업인 회동이 치사해진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유치해진다. 공안감이 뭔가. 권력에 맞추는 정치 행위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적폐라 했다. 그런 정부가 이런 의혹을 사면 되겠나. 반복되는 ‘이재용 법칙’을 보면서 안 좋은 얘기들이 많아지고 있다. ‘짠거 같다’ 主筆

[김종구 칼럼] 공공기관 더 빼가기? 이럴 거라 했잖나

20일 전 이 지면(紙面)에 이렇게 썼다. ‘송영길 후보는 호남이 돕는다. 이해찬 후보는 충청권이 돕는다. 그러나 경기도는 김진표를 돕지 않는다. 제목-‘당당한 지역주의, 경기 출신 김진표라고 말함’-부터 공정성을 잃은 글이다. 다분히 편향적 논조(論調)로 꾸린 선동이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적어도 충청일보와 전남일보는 나를 욕하지 못할 거라 자신했다. 며칠 뒤 민주당 대표선거가 끝났다. 이해찬 1등, 송영길 2등, 김진표 3등. 충청ㆍ호남ㆍ경기 순서다. 우려스럽던 예상이 실망스럽게 맞았다. 허기야, 특별하게 언급할만한 일도 못된다. 민주당 내 지역 DNA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이보다 가슴 졸인 예상은 따로 있다.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와 세종시를 묶어주는 국토균형발전의 끈도 있다’는 구절이다. 이해찬 당 대표의 미래에 대한 예상이었다. 공공 기관 추가 이전에 화두를 던졌던 그다. 국회 분원도 만들자고 했었다. 2차 국부(國富) 이동을 선창할 걱정이 컸다. 예상은 생각보다 빨리 맞아떨어졌다. 어제 처음으로 당대표 연설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수도권의 공공기관 122개를 옮기자고 했다. 지역 혁신도시의 성장 기반을 조성하자고 했다. 국회의사당의 분원을 세종시에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원래 돌려서 말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답게 첫 번째 연설부터 터뜨린 것이다. 언론은 이를 ‘노무현 정부 국토균형발전론의 부활’이라고 받았다. 틀렸으면 좋았을 예상이 맞은 것이다. 정답 없는 논제(論題)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토론했다. 나온 답은 없었다. 이제 와서 재삼 토론할 일도 아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할 통치행위다. 이해찬 대표는 세종시민과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한 것이다. 힘 있는 여당 대표가 됐고, 정부에 주문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이고, 역시 국토균형발전론을 가슴에 둔 통치권자다. 그러면 그냥 가는 것이다. 눈치 빠른 지방에선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경기도? 남 탓할 것 없다. 경기도 정치가 자초한 일이다. 경기도 민주당 국회의원, 경기도 민주당 시장ㆍ군수, 경기도 민주당 당원들이 자초한 일이다. 전당대회에 조금만 목소리를 높였어도…. 전화 투표에서 조금만 더 버텼어도…. 8월 25일 투표장에서 조금만 더 경기도를 말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덜 소리 지르고, 덜 요구하고, 덜 투쟁한 결과다. 김진표 얘기가 아니다. 경기도의 존재감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필 올해가 ‘경기 정년 천 년’이다. 다들 대단한 역사라도 되는 양 떠든다. 따지고 보면 한 번도 주인 되지 못한 굴욕의 역사다. 송악군(松岳郡ㆍ왕건)에 자리를 내준 고려 경기도였고, 화령부(和寧府ㆍ이성계)에 자리를 내준 조선 경기도였다. 황해도(이승만), 경상도(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ㆍ문재인), 전라도(김대중)에 자리를 내준 대한민국 경기도였다. 1천 년 내내 외지 세력에 짓눌려 지내온 정치 변방의 역사다. 경기도 정치가 져야 할 중죄(重罪)다. 권력에 빌붙기 바빴던 중세 호족, 강자에 맞추기 바빴던 근·현대 정치가 다 죄인이다. 불행히도 지금도 그 역사는 진행 중이다. 경기도 정치는 여전히 권력에 줄 대느라 여념이 없다. 18개 공기관을 빼겠다는데도 반대 한마디 못한다. 동네 상가가 통째로 문 닫을 일인데도 이견 한 마디 없다. 기껏 한다는 말이 “큰 영향 없다”다. 1~2억 예산 챙긴 것도 자랑삼는 사람들이 공기관 18개 이전엔 “큰 영향이 없다”고 한다. 겨우 18개 기관? 국토균형발전론이 경기도엔 어떤 괴물인지 몰라서 이러나. 공기업, 사기업, 문화행사, 대학입지까지 모든 영역에 빨대를 꽂았던 십수 년 전 흡혈악몽을 정말 몰라서 이러나. 오늘 아침 부산, 한 부동산 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여권 내 실세 중의 실세인 이해찬 대표가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공공기관 이전 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금융 쪽 공공기관은 다 문현 금융타운으로 이전, 해양 쪽은 영도로 이전, 영상 쪽은 센텀으로 이전하지요. 이거 대박이지요.” 오늘 아침 경기도, 딱 그만큼의 목소리가 공포로 들려왔다. “우리 동네는 괜찮은 거냐” “경기도 민주당 의원들은 뭐라고 말하더냐.” 主筆

[김종구 칼럼] 당당한 지역주의, ‘경기 출신 김진표’라고 말함

송영길 후보는 전남 고흥 출신이다. 당대표 선거를 치르며 이런 말을 했다. “호남 출신 당 대표가 영남 출신 대통령과 균형을 맞추면 지역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해찬 후보는 충남 청양 출신이다.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도 ‘충청 살리기’였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다. 김진표 후보는 경기 수원 출신이다. 고향 대신 이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이 영월에서 살았다” “정세균 전 의장이 지지하고 있다”. 송영길ㆍ이해찬은 고향을 내세운다. 호남ㆍ충청이 도움될 거라고 봐서다. 김진표는 고향을 감춰 둔다. 경기 수원이 도움 안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대의원(45%), 권리당원(40%)의 비중이 큰 선거다. 호남의 권리 당원이 전체 27%다. 경기ㆍ서울이 40%인데 여기서 3분의 1도 호남 출신이다. 충청권 권리당원은 호남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와 세종시를 묶어주는 국토균형발전의 끈도 있다. 앞선 후보들의 셈법이 영 틀린 건 아니다. 뿌려지는 여론조사를 보자. 최근(14일 발표) 조사치가 이렇다. 이해찬 후보가 대전ㆍ세종ㆍ충청에서 37.4%로 1등이다. 송영길 후보는 전라ㆍ광주에서 39.4%로 1등이다. 이해찬ㆍ송영길 후보에게 주어진 고향의 선물이다. 그런데 김진표 후보의 1등 지역은 고향 경기도가 아니다. 대구ㆍ경북에서의 23.5%다. 김진표 잘못인지, 경기도 잘못인지 따질 필요 없다. 분명한 건 호남은 송 후보 찍고, 충청은 이 후보 찍는데, 경기는 김 후보 안 찍는다는 거다. 뭐 대단하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영원한 정치 변방 경기도 정치다. 중앙 권력의 들러리 경기도 정치다. 정체성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경기도 정치다. 지난 50년, 경기도 정치는 그렇게 영호남 권력에 기생하며 지냈다. 그 권력이 흘려준 부스러기를 먹고살았다. 그런 힘과 부스러기로 으스댔다. 영ㆍ호남 권력, 충청 세력엔 눈 한번 크게 뜨지 못하면서, 경기도민에게만 힘주고 거들먹거리며 아낙 군수 노릇을 했다. 그랬던 경기도 정치가 요 며칠 달라져 보인다. 경기 출신 김진표 후보의 입이 사뭇 거칠다. 충청권 맹주를 향한 공격에 거침이 없다. 호남 한복판에 가서 ‘호남표는 내 것’이라며 호언한다. 지역 정치인들도 함께 변했다. 수원시의장은 열 일을 제치고 전국을 돈다. 알 만한 지방 의원들이 ‘김진표’ 플래카드를 실어 나른다. 3선 수원시장은 일찌감치 ‘김진표 지지’로 커밍아웃을 했다. 충청 연설장, 호남 연설장이 경기도 구호와 경기도 기호로 넘실댔다. 때가 왔음을 알아가는 듯 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25%가 사는 경기도다. 대한민국 수출의 27.7%를 담당하는 경기도다. 진작부터 소리 질렀어야 했다. 50년 가까이 수도권 정비 계획법에 억눌렸다. 지방 살리려고 60개가 넘는 공기업을 빼앗겼다. 벌써부터 소리 질렀어도 됐다. 이제라도 알아가면 된다. 당당하게 경기도 정치를 말하면 된다. 국회 의장에 경기도 출신이 앉았다. 경기도의 힘이다. 여당 당대표에 경기도 출신이 앉으면 더 좋을 것이다. 7월 26일,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세 후보가 확정됐다. 다음날, 전남일보는 이렇게 썼다. ‘세대교체 바람 탄 송영길…세대교체를 바라는 중앙위원들의 표심이 작용했다…급부상할 것이다’. 8월 13일, 충청일보는 이런 사설을 실었다. ‘충남 청양 출신 이해찬 의원이 나서 수원과 전남이 고향인 김진표ㆍ송영길 후보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바른 미래당에도 충북 괴산 출신 김영환 전 장관이 도전장을 냈다…당선돼서 충청도 사랑을 보여주기 바란다.’ 경기도 합동연설회가 18일이다. 이틀 남겨놓은 오늘, 충청일보ㆍ전남일보가 담았던 딱 그만큼의 지역주의를 담아 이런 말을 남겨볼까 한다. “경기도 출신의 김진표가 출마했다. 경제 회복을 바라는 표심이 작용하고 있다. 당 대표가 돼서 경기도 사랑을 보여주기 바란다.” 主筆

[김종구 칼럼] 市長 최고위원 임명을 공약해 보는 것이…

많은 이들이 말했다. ‘주제넘는 소리다.’ 그런데도 계속 들렸다. ‘이재명 시장이 곧바로 대통령에 갈지, 도지사를 거칠지 고민 중이다.’ 2014년 초반 언저리 때 얘기다. 마침 이 시장이 국정원과 한판 붙고 있었다. 국정원 정치 사찰 의혹을 폭로했다. 야당 시장의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석기 RO 사건’을 돌파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옹골차게 치고 나갔다. 그즈음 기관 관계자는 그렇게 표현했다. 일개 기초단체장이 고른다? 도지사부터 할지, 아니면 대통령으로 바로 갈지? 우리 정치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제넘는 소리’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듣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3년, 이 시장은 대통령 경선장에 있었다. 프로 정치인들 사이에 3등을 했다. 그리고 또 1년여 뒤, 이번엔 경기도지사 집무실에 앉았다. 정치사에 없었던 일이다. ‘주제넘는 일’이 ‘주제 맞는 일’로 뒤바뀐 대단히 특별한 역사다. ‘주제넘는 짓이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말이나 행동이 건방져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라 풀고 있다. 영어 표현도 몇 가지 있다. ‘You are out of line!’ ‘Who do you think you are?’. 직역하면 이렇다. ‘너는 금을 벗어났다’ ‘너의 현재 모습을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었다는 소리다. 시장이 대통령과 도지사를 꿈꾸면 절대 안 된다는 경고다. 다분히 지방 권력을 향한 중앙 권력의 지배논리가 얼비친다. 이재명 시장은 그 경계를 넘었다.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 만든 결과다.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바뀐 정치 지형은 없다. 시장들은 여전히 중앙 권력이 정해놓은 ‘주제’ 속에 갇혀 있다.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때마침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다. 시장들에게 도전을 권해봤다. “민선 시장 23년이다. 중앙 정치에 참여할 때가 됐다. 누구든 최고위원 선거에 나섰으면 한다”고 썼다. 근데 다들 고개를 젓는다. 중앙권력 눈치 보기다. 눈치 안 본 시장이 있긴 하다. 논산시장이다. 용기 있게 출마했다. 그런데 암만해도 벅차다. 중앙 권력이 뽑은 대의원 1만135명은 어차피 중앙 권력 편이다. 45%(대의원)ㆍ40%(권리당원)의 비율도 중앙 권력에 맞춘 황금률이다. 여기에 내세울 대표성도 없다. 243개의 대표 지자체도, 243명의 대표 시장도 아니다. 떨어질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 예상이다. 눈치 안 보고 덤볐지만 이번에는 제도가 막아선다. 눈치 때문에 안 되고, 제도 때문에 안 되고…. 이게 현실이긴 한데…. 그렇더라도 바꾸긴 해야 할 거 같은데…. 궁색하지만 남은 길이 하나 있다. 중앙 권력의 배려다. 151명-민주당 소속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을 위한 자리를 챙겨주면 된다. 시장을 그 자리에 앉혀 지방 현실을 말하고 건의하게 해주면 된다. 때마침 당 대표가 갖고 있는 최고위원 자리도 있다. 임명직 최고위원 자리 2개다. 그 하나를 내어 주면 쉽게 될 일이다. 중요한 건 당 대표의 결심이다. 그 대표를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공약으로 내놓으면 된다. “당대표가 되면 최고 위원 한 자리를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주겠다”고 하면 된다. 전국의 151명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나름 지역 내 장악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공약한 후보에게 표를 주자고 말해줄 수도 있다. 표 셈법으로 봐도 적잖이 도움될 일이다. 김진표ㆍ송영길ㆍ이해찬 후보가 공약하면 좋겠다. 한 명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게 정치분권이다. 행정은 분권을 말하고 있다. 중앙 사무 518개를 지방으로 보내겠다고 한다. 재정도 분권을 말한다. 국비와 지방세 비율을 8 대 2에서 7 대 3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유독 정치만 분권의 ‘분’자도 안 꺼낸다. 여전히 쥐고 군림하려고 한다. 이제 누군가 나서서 정치 분권을 말해야 한다. ‘이제 지방에도 나눠주자’고 선창(先唱)해야 한다. 그 적기(適期)가 이번 당대표 선거고, 그 적임자(適任者)가 이번 당대표 후보들이다. ‘주제를 넘는 소리다’-최고위원을 꿈꾸던 시장들이 이제껏 듣던 말이다. ‘주제에 맞는 소리다’-최고위원을 꿈꾸는 시장들이 이제부터 들어도 될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문재인 성공? 김진표 경제당이 답이다

저마다 말한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뛰겠다.” 그런데 믿음이 안 간다. 다른 생각이 있는 듯 보인다. ‘사실은, 우리 계파를 위해 뛰겠다’ ‘사실은, 후년 총선에서 힘 좀 써보려 한다’ ‘사실은,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자리다. 그럴 수도 있다. 계파 수장, 총선 공천권, 대통령 야망이 다 품을 법한 욕심이다. 정치의 목표가 어차피 권력 잡는 거 아닌가. 단지 그 구호가 우습다는 거다. ‘문재인 성공’은 무슨…. 보수가 지방 선거에서 졌다. 져도 참담하게 졌다. 그 패인을 알 만한 유권자는 다 안다.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다. 국정 농단, 측근 비리, 대기업 뇌물, 국정원 침탈, 부당 인사…여기에 필설로 다 못할 추문까지 있다. 권력이 가질 온갖 오명을 다 쓰고 있다. 그런 오명에 대한 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7년 3월10일, 탄핵일에 맞춰진 분노의 초침이 1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방선거의 민주당 압승과 보수 궤멸이 그 증명이다. 문재인 성공의 조건도 그 속에 있다. 도덕성에서 이긴다. 영흥도에서 낚싯배가 뒤집혀 15명이 사망했다. 제천 스포츠 센터에서 불이나 29명이 사망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탄핵되지 않았다. 304명이 사망한 ‘박근혜 세월호 사고’가 있어서다. 청와대도 엮여 든 드루킹 댓글 사건이 터졌다. 유권자가 꿈쩍도 안 했다. 국정원이 주도한 ‘이명박 댓글 사건’이 있어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의 비교, 이건 문재인 정부에게 슬픈 ‘축복’이다. 그런데 아닌 게 하나 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고용 실적이 낙제로 나왔다. 청년 실업률 9.9%, 전체 실업자 수 102만8천명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다 포함해 최악이다. 취업자 숫자는 2017년 10, 11, 12월 3개월 연속 20만명대다. 2010년 3월 이후 최악이다. 역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보다 나쁘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달 10.5%로 여전히 추락하고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비교하고 싶지 않을 유일한 분야가 이거다. 누가 말했다. “다 깽판 쳐도 남북 관계만 성공하면 된다.” 지금 청년들은 말한다. “다 깽판 쳐도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된다.” 이게 민심이다.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실패 가능성도 여기에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비상을 걸었다. 청와대 경제ㆍ일자리 수석을 경질했다. 경제팀을 향해 서슬 퍼런 경고를 던졌다. 재판 중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부탁’을 했다. 정경유착 비난을 각오하며 손을 내밀었다. 대통령의 속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이쯤 되면 모두가 달라붙어야 한다. ‘문재인 성공’을 바라는 집단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당(黨)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신임 대표 경선판이 딴 세상이다. 온통 정치, 계파, 대권 타령이다. 경제를 챙기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치 놀음에 빠져들고, 거친 말로 파국 부르고, 대권 행세로 레임덕 부를 인물만 득실거린다. 누가 봐도 ‘문재인 성공’이 아니라 ‘문재인 실패’ ‘문재인 무력화’로 이끌 인물들이다. 아닌가. 훤히 보이는데…. 대통령을 성공시킬 당 대표에는 조건이 있다. 김동연 경제팀에 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미ㆍ거시 경제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노사간 최저임금 투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기업경영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미국 금리 인상의 파급률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제 경제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건 이런 능력을 비교하고 토론하는 경선판이다. 그런데 없다. 해묵은 계파 논리, 지역과 엮인 대권 논리만 있다. 공식은 간단하다. ‘문재인 성공은 경제에 달렸다→그 경제를 위해서는 당의 힘이 필요하다→정치를 쏙 뺀 경제당으로 태어나야 한다→그래야 문재인 성공을 돕는 당이 된다.’ 많은 국회의원들도 동의한다. 그런데 말을 하지는 못한다. 상석에 자리 튼 좌장들이 무섭긴 한가 보다. ‘그래서, 김진표를 찍겠다는 거냐’는 반격이 두려운 거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걸 모른다. 지금 경제당 안 되면 2년 뒤 본인들부터 실직하게 될 거란 사실이다. 어떤 시장이 김진표를 지지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등골이 서늘하다는 대통령 말을 당이 못 알아 먹는다. 우리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主筆

[김종구 칼럼] 촛불혁명의 완성-경제 대통령경제 민주당

“당신은 어떻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그럴 만했다. 트로츠키는 혁명 러시아의 2인자였다. 군사인민위원으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외무인민위원으로 외교를 책임졌다. 스몰리니 사무실 복도는 그와 레닌만의 공간이었다. 둘 사이를 오간 수많은 쪽지가 곧 러시아 혁명이었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1924년 1월27일 레닌 장례식을 끝으로 권력에서 쫓겨났다. 트로츠키가 답했다. “스탈린 역사는 날조된 거짓말이다.” 그의 자서전-나의 생애-은 앞선 질문에 대한 장문의 항변서다. 스탈린을 이론 없는 무식쟁이라 공격했다. 혁명의 역사를 날조한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민족주의만을 부추긴 일국혁명론자라 비하했다. 마지막 망명지 멕시코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스탈린 자객에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그렇게 싸웠다. 이런 주장을 훗날 역사가 인정했다. 음모에 의한 몰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찌꺼기가 있다. 혁명 직후 소련 경제는 몰락했다. 물가가 1918년 20.76배, 1920년 2천420배, 1921년 1만6천800배까지 뛰었다. 공산당이 신경제정책(NEP)을 꺼내 들었다. 이때 그의 입장이 빌미였다. ‘트로츠키가 농업을 경시했다’는 여론 선동의 제물이 됐다. 농민은 이미 이념을 따지기엔 배고픔이 컸다. 스탈린이 그런 민심에 트로츠키를 먹잇감으로 던진 것이다. 결국 대중의 허기가 끌어내린 권력이었다. 꼭 100년 뒤인 2017년. 우리에게도 혁명이 왔다. 100년 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민중의 힘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렸듯, 촛불의 힘이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 ‘사회주의’ 구호가 레닌을 권력에 앉혔듯, ‘나라다운 나라’ 구호가 문재인을 대통령에 앉혔다.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기도 시장 군수 31명 중 29명이 민주당이다. 대통령ㆍ국회ㆍ지방 권력이 민주당으로 정리됐다. 이런 적이 없었다. 100년 전 광풍과 빼닮았다. 바로 이런 때, 대통령이 말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남북 관계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적폐 청산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정치도 잘하는 문 정부다. 그래서 싹쓸이 표심으로 보상까지 받은 문 정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등골은 왜 서늘해졌을까. 무엇이 ‘금세 실망으로 바꿀 것’이라는 걸까. 아마도 경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혁명이 요구할 ‘먹거리’라는 숙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 혁명은 국정 농단을 향한 분노의 광기였다. 이제 그 광기가 냉정을 되찾을 때다. 제자리로 돌아가 먹거리를 찾을 시기다. 그런데 그곳에 먹거리가 없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다. 제조업들은 죽겠다고 난리다. 유가 폭등에 짓눌린 경상수지는 악화일로다. 주 52시간 근무 규정은 막판까지 오락가락한다. 최저임금 1만원도 삐걱거리고 있다. 대통령 걱정은 이제 행동으로 옮겨졌다. 선거 압승을 뒤로하고 참모들을 ‘숙청’했다. 경제수석을 잘랐고, 일자리수석을 잘랐다. 경제 못 챙겼다는 문책이고, 일자리 못 만들었다는 문책이다. 정책실장에게도 ‘경고’가 간 듯하다. 경제부처 책임자들도 덩달아 파리목숨이 됐다. 청와대, 정부가 한순간에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잘한 거다. 혁명의 열기는 곧 싸늘해지고, 대신 ‘먹거리’를 요구하는 원성이 높아질 것임을 내다본 거다. 문제는 당(黨)인데…. 지방 선거 내내 당은 외쳤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민주당을 찍어 주십쇼.”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지금 ‘등골이 서늘하다’며 경제참모들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그렇게 바꿔가야 한다. 정치 정당 대신 경제 정당으로 바꿔가야 한다. 마침 변화의 시기도 왔다. 당 조직을 바꿀 전당 대회가 두 달 앞이다. 대통령 뜻은 ‘경제’로 천명됐다. 돕는 방법은 나와 있다. 경제 정당이다. 그렇게 될런지가 문제다. “당신들은 어떻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는가”. 100년 전 러시아 혁명가가 받았던 이 질문. 2020년 4월 어느 날, 대한민국 민주당에 던져질 수도 있다. 主筆

[김종구 칼럼] 양승태 前 대법원장의 참담하지만 유일한 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얘기를 썼었다. 2017년 6월27일자로 남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수원고법 功’. 제목이 그랬고 내용은 이랬다. -대법원이 전격적으로 입장을 냈다. “영통 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결단이 있었다. 수원고법 설치 확정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3년 3월21일의 얘기였다. 수원고법 역사에 얽힌 양 대법원장 역할을 그렇게 썼다. 1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 얘기를 또 쓴다. 이번에는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다. 이미 두 번이나 사설로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볼 것 없는 졸고다. 하물며 1년 전 글이다.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있겠나. 더구나 이번 글과 비교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안 좋다. 기억 속 1년 전 글이 자꾸 지금의 것과 뒤섞인다. 양 전 대법원장을 너무 추켜 세웠던 건가. 잘못된 정보로 써내려갔던 글인가. 내가 본 것은 그의 포장된 겉모습이었나. 지금, 양 전 대법원장은 아주 질 나쁜 법관이 돼 있다. 정권과 거래를 위해 판결을 이용한 대법원장이다. 생각이 다른 판사들을 옥죄고 탄압한 대법원장이다. 판사의 재산 관계까지 뒷조사를 하던 대법원장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법원 내부에서 나온 비난이다. 1년여 전까지 그를 수장으로 모시던 판사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대 이런 대법원장은 없었다. 퇴임 1년 만에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이렇게 참담하게 짓이겨진 대법원장은 없었다. 결국, 그게 큰 죄로 이어졌다. 신뢰 붕괴다. 재판 거래의 증거들이 지목됐다.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통합진보당 사건 등 20여 건이다. 당사자들이 대법원으로 몰려갔다. ‘양승태 사법부’를 통째로 부정했다. 지켜보던 국민도 싸늘해졌다. 재판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10명 중 6~7명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다 ‘양승태 의혹’이 뿌려 놓은 죄다. 법원도 고민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강경 목소리 위주였다.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대개 소장파 판사들이 주장했다. 그러다가 간부급 판사들의 신중론이 나왔다. 검찰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고 판결이 수사받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잔인한 언론은 이미 선정적 제목을 만들어냈다. ‘양승태,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나’. 그런데 그 섭섭한 언론 제목에 답이 있다. 양승태 의혹은 고민의 시기를 넘었다. 사법부는 분열돼 갈등이 크다. 앞선 6년의 재판은 재판이 아닌 걸로 됐다. 국민 다수는 사법부 신뢰를 철회했다. 이걸 어떻게 수사 없이 덮겠다는 것인가. ‘재판 거래가 있었지만 덮고 가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재판 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할 것인가. 법원이 하는 그런 발표를 어떤 국민이 믿겠나. 수사로 발표하는 것 외 답이 없다. 엊그제, 양 대법원장이 자택 앞에 섰다. 기자들에게 말했다.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특정 성향 법관에게 인사 등 어떤 불이익도 준 적 없다”…. 그러면서 “(사실이 아님은)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부족할 정도다”라고도 했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부인이다. 그런데 믿어주는 이가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그에게도 수사밖에 없다. 그 시절, 수원고법은 도민의 숙원이었다. 삭발도 했고, 서명도 했다.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다들 대법원이 막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 체증이 뚫린 게 2013년 3월21일 오후다. ‘기재부 땅을 고법 부지로 검토한 게 맞다’는 대법원 발표가 전환점이었다. 공교롭게 그 통화를 하던 게 나였다. 내 기억 속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랬다. 과감하고, 솔직하고, 통이 큰 법관이었다. 그 ‘양 대법원장’이 5년 뒤, 전혀 다른 ‘양 전 대법원장’으로 나타나 있다. 잘 안다.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은 쉽지 않다. 수사를 촉구하는 이 주장도 흔적 없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말해야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반드시 검찰에 나와야 하고, 검찰 입을 통해 재판 거래의 진위가 발표돼야 한다’. 참담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이 이거다. 의혹을 주장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고, 사법부 신뢰 추락을 우려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다. 갈데없이 망가져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主筆

[김종구 칼럼] 文 대통령이 해야 할 지시-“경제팀은 경제나 챙겨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이 그랬다. 투박하고 거칠었다. 이 말도 그런 중의 하나였다. “남북 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 쳐도 괜찮다.” 2002년 연설에서 했다. 이제는 15년이나 흐른 구문(舊文)이다. 꺼내기도 진부하다. 그런데도 꺼내 볼 일이 생겼다. 남북 정상이 친해졌다. 전화만 하면 만나는 사이가 됐다. 북미 회담으로도 이어진다. 임시로 그은 노란 선을 넘던 게 격세지감이다. 그때보다 훨씬 빨리 ‘통일’이 가고 있다. 도대체 ‘깽판 쳐도 좋은 나머지’는 뭐였을까. 아마도 ‘경제’는 분명히 그 ‘나머지’에 포함됐을 듯하다. ‘통일’과 맞바꿔 말할 가치라면 ‘경제’ 쯤은 돼야 어울린다. 그렇게 풀어서 지금에 대입하면 이렇다. ‘남북 대화를 잘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머지를 깽판 치면 안 된다. 경제는 잘 챙겨가고 있나.’ 언제부턴가 신문 1면에서 사라진 경제다. 공교롭게 1차 남북 정상회담 즈음부터다. 어렵사리 경제면을 뒤져서 지표를 봤는데…, 아주 안 좋다. 일자리 창출이 뭔가. 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다.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도 설치했다. 그랬던 일자리가 지금 위기다. 지난 3월 실업률은 4%로 0.4%p 높아졌다. 17년 만에 최고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잘 나간다. 독일은 1990년 10월 이후 최저다. 프랑스는 2009년 이후 최저다. 미국도 17년 만에 최저다. 한국만 17년 만에 최고다. 실업률이 악화된 건 한국과 스웨덴뿐이다. 세계와 완전히 거꾸로 가는 한국의 일자리 지표다. 가계 부채와의 전쟁. 이것도 문 대통령의 핵심 약속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의 숨통을 조였다. 이것도 위기다. 1분기 가계 빚이 1천468조원이다. 전분기 가계 빚보다 17조2천억원 늘었다. 사상 최악이다. 여기엔 실정(失政)의 책임까지 엿보인다. 주택담보대출만 냅다 누르다 보니, 고금리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풍선 효과’ 부작용이다. 고금리 가계 대출은 길바닥에 나 앉기 딱 좋은 빚이다. 이게 400조원을 넘었다는 얘기다. 큰일이다. 효자라던 수출까지 이상해지고 있다. 18개월 동안 증가세였다. 그러던 게 4월 들어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4월 대비 -1.5%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지적은 다르다. 지속적 마이너스의 경고라고 말한다. 수출의 반대 축, 내수는 더 심각하다. 가구ㆍ침대ㆍ통신 등 내수 1위 업종의 매출까지 감소하고 있다. 내수 침체 지표의 마지노 업종들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시 추락, 경제엔 최악의 지표다. 때마침 주목되는 발언이 나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 1만원 연기’를 말했다. 2020년 목표를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말이 또 있다. 여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속도 조절하자’고 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은 문 대통령 공약이다. 겁 없이 거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였다면 큰 일 날 소리다. 당장에 문책이 날아들 수 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도 굳이 했다. 왜 그랬겠나. 현장의 소리를 들은 거다. ‘다 죽겠다’는 제조업계 아우성을 들은 거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에 제조업계가 질식하고 있다. 원가 인상, 일손 부족에 대책을 못 내고 있다. 이 고통을 경제부총리, 여당 원내대표가 말한 것이다. 그랬으면 토론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온통 통일 토론만 있고, 통일 대책만 있다. 김 부총리에 돌아온 건 비난뿐이다. “‘감’만으로 대통령 역점 사업에 발목을 잡는다.” 15년 전 구문. 설마하니 ‘경제는 깽판 치자’고 한 소리였겠나. ‘통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다. 남북 대화는 아주 잘 가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문제다. 열화와 같은 통일의 광풍 뒤로 밀려났다. 거기서 사정없이 뒤뚱거리고 있다. 지표는 빨갛고, 경고가 줄을 잇는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한다. ‘통일’에 기웃대는 주변 경제팀에 경고해야 한다. 15년 전처럼 투박해도 괜찮다. “이러다가 경제 깽판 칠 겁니까. 통일은 대통령이 챙길 테니 당신들은 경제나 챙기세요.” 主筆

[김종구 칼럼] ‘최태민 의혹’ 침묵, 그리고 징역 24년

‘의혹 제기 자체를 막아라’. 선거 때는 이 작전으로 보였다. 어느 기자-지금은 정치부장이 된-가 경험을 말했다. 면전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최태민 의혹이 사실이냐”.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그 몇 분이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고 한다.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에게 ‘최태민 의혹’은 그랬다. 대통령 선거 내내 금기어였다. 기자가 물으면 침묵하거나, 째려보거나, 역정냈다. ‘권력으로 의혹을 짓눌러라’. 당선 후에는 이 작전으로 보였다. 어떤 ‘목사’가 아프리카 TV에 등장했다. ‘최태민과 박 대통령’을 거론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인터뷰하던 ‘목사’를 체포해 나갔다. 그 사이 금기어는 ‘최태민’을 넘어섰다. 최태민의 딸, 사위까지도 전부 성역이 됐다. 사위를 건드렸던 경찰이 자살했다. 그 사위를 보도한 일본 기자는 법정에 끌려갔다. ‘최태민 의혹’은 그렇게 무섭게 틀어 막혔다. 영원히 끝나는 듯 보였는데, 아니었다. 의혹은 잠시 숨죽여 있었을 뿐이다. 권력이 황혼에 걸치자 봇물로 터져 나왔다. 국민들이 경악했다. 이미 의혹이 아니었다. 거악을 토해내는 괴물이 돼 있었다. ‘최태민’의 딸이 나라를 농단했다. 연설문 주무르고, 대기업 겁박하고, 뇌물 받아내고, 인사권 휘둘렀다. 대통령은 시키는 대로 했다. 고쳐주면 읽었고, 시키면 협박했고, 명단 주면 잘랐다. 외신은 이걸 ‘샤머니즘’이라 썼다. 아주 가까웠던 날의 선거 얘기다. 그리고 그 선거에 얽혀 있던 의혹 얘기다. 이제 또 선거다. 한 달도 안 남았다. 뜨거울 때가 됐다. 그런데 밍밍하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다. 경기도지사 선거부터 그렇다. 이재명 후보가 54.1%인데 남경필 후보는 15.9%다. 정당 지지율 차이는 더 벌어진다. 민주당이 61.8%, 한국당이 11.7%, 바른미래당 5.7%, 정의당 4.2%다(경인일보 14일 발표). 시장 군수 선거라고 다를 게 없다. 경기일보의 조사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예외 없다. 전부 민주당이 1등이다. 이쯤 되자 등장한 유혹이 있다. 판을 뒤집을 폭로 한방이다. 다들 식상하다고 욕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매력 있는 술수다. 먹혀들었던 과거의 예도 꽤 된다. 아예 공언을 해 놓은 후보도 있다. ‘폭로전으로 가겠다’. 여기에 대고 무슨 ‘정책 선거’를 말하나. 선거란 것도 어차피 그렇다. 고상하게 포장된 투박한 짓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표 많이 받는 사람을 뽑는 거다. 폭로도 그렇게 봐 넘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폭로 상대방의 대응이다. 대개 1등을 달린다. 당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억해 둬야 한다.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무시하는 후보, 반격하는 후보, 협박하는 후보…. 이걸 다 섞어가는 후보…. 물론 각자가 고민해서 낸 전략일 게다. 말로 못할 사연도 있을 거다. ‘좋은 대응’의 훈수를 말하기가 그래서 어렵다. 다만, ‘나쁜 대응’ 한 가지만은 권해두고 갈까 한다. 침묵? 이게 최악의 대응이다. 공격은 다양하다. 해도 될 공격이 있고, 해선 안 될 공격이 있다. 미지근한 공격도 있고, 과하다 싶은 공격도 있다. 하지만, 공격받는 후보의 길은 하나다. 성실하게 설명해서 완벽하게 해명해야 한다. 공격이 거짓이면, 자료를 내놓고 거짓을 증명해야 한다. 공격이 진실이면, 내막을 털어놓고 결과에 사과해야 한다. 침묵하며 덮으려 들면 안 된다. 그랬던 게 ‘최태민 의혹’ 이다. 그 대가가 나와있다. ‘탄핵, 징역 24년ㆍ벌금 180억’. 主筆

[김종구 칼럼] 竊盜 취재를 위한 辯,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정보가 많은 기자였다. 동료들도 다 인정했다. 어떻게 찾아내는 것일까. 그만의 기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랬던 ‘강 부장’에 위기가 왔다. 2002년 언저리였을 게다. 정몽준 신당이 관심사였다. 하느냐 마느냐, 하면 누가 참여하느냐. 역시 ‘강 부장’은 정답을 들고 왔다. 정몽준 신당 지구당 조직책 명단이었다. 이름 수십개가 들어있는 CD다. 다음날 신문에 표까지 나갔다. ‘단독’ 정보로 작성한 ‘대단한’ 기사였다. 다음날, 정몽준 캠프 쪽에서 반응을 냈다. ‘확정되지 않은 명단이다’였다. 특별할 건 없었다. 정치 기사에 붙는 해명은 늘 그랬다. 사달은 다른 곳에서 났다. ‘(강 부장이) CD를 훔쳤다’라는 말이 번졌다. 낙종 한 경쟁지 기자들일수록 열심히 퍼뜨렸다. 자칫 문제가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피해 당사자인 정몽준 캠프가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강 부장’은 이런 전화를 받았다. “다 썼으면 이제 돌려줘.” 90년대 중반. ‘김 기자’의 정보력은 하찮았다. 빡빡하기로 이름난 검찰이었다. 그저 땀 흘리고 다니는 게 다였다. 허구한 날 버려진 서류 뭉치 뒤지는 게 일이었다. 그런 ‘김 기자’가 안쓰러워서였을까. 특수부 김태희 검사가 ‘선물’을 줬다. 검사실 탁자 위에 수첩이 있었다. 수첩 사이로 종이가 보였다. ‘수사 보고’란 제목이 삐죽거렸다. 법조 비리를 수사 중인 방이었다. 사법처리자 명단이 틀림없었다. 기자들이 갈망하던 명단이었다. 그때 갑자기 김 검사가 방을 나갔다. “화장실이나 다녀 와야겠다.” 혼자 남은 ‘김 기자’의 일은 뻔했다. 서류 훔쳐 보기였다. 수첩을 열고 종이를 폈다. 10여 명의 사법처리자 명단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법조계 인사들이었다. 외울 순 없었고, 서둘러 적었다. 재빨리 원래대로 덮었다. 넉넉한 시간 뒤 김 검사가 들어왔다. 뿌듯해진 ‘김 기자’는 일어섰다. 설레는 맘으로 문을 나섰다. 뒤를 따라오던 김 검사가 작게 말했다. “잘 적었어?” ‘강 부장’의 CD 절도, ‘김 기자’의 수사보고서 유출. 그 시절 취재는 그랬다. 퇴근한 사무실에도 들어갔다. 녹음기를 숨겨 두기도 했다. 파쇄기에 바둑알을 넣기도 했다. 수사관을 사칭해 참고인을 빼돌리기도 했다. 들통나는 일도 숱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기관은 기자단에 항의하는 선에서 끝냈다. 기자단은 해당 기자를 출입정지하면 됐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자만 영웅이 됐다. 후배 기자들에게 잘난 척할 더 없는 무용담이 됐다. 그러던 게 달라졌다. 그래선 안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 게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절도죄가 된다. 무단침입죄, 손괴죄, 신분 사칭죄가 된다. tv조선이 지금 그렇다. ‘드루킹 댓글 사건’을 끌고가는 방송이다. 정부 여당과 각을 세우는 전쟁 중이다. 보도국 상황이 어떨지 눈에 선하다. 앞서가는 기사를 계속 써야 한다. 그 압박이 극에 달해 있을 게다. 기자도 그런 긴장 속에 있었을 게다. 결국, 기자가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허가가 없었다. 태플릿 PC, USB, 휴대전화를 들고 나왔다. 역시 허락받지 않았다. 취재였을 건 맞다. 드루킹 비리 캐기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심각해졌다. 기자는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평생 따라다닐 ‘도둑 전과자’가 됐다. tv조선도 곤경에 처했다. ‘도둑 취재’의 본산으로 몰렸다. 허가 취소 청원에 ‘껀수’가 더해졌다. ‘드루킹 댓글 사건’의 본질도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흔들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순실 태블릿 PC 논란 때와 닮았다.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됐으니 박근혜는 무죄’라고 했었다. 지금은 ‘절도 취재를 했으니 드루킹은 오보’라고 한다. 턱없는 소리다. 최순실 PC 논란은 법원에서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4년이 선고됐다. 드루킹 의혹도 계속 밝혀야 한다. 드루킹 취재의 필봉이 꺾여선 안 된다. 다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절도 취재’가 남긴 섬뜩한 결과는 심각히 받아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탈ㆍ불법 취재가 설 곳을 잃었다. 그런 기자를 범죄자라 말하고, 그런 언론을 범죄집단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 관행을 바꾸라는 사회적 명령이다.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힘들겠지만 바꿔가야 한다. ‘tv조선 절도 기자’와 ‘나’, 시대를 달리하는 둘의 차이는 ‘들킨 기자’와 ‘안 들킨 기자’ 뿐이다. 김종구 주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김종구 칼럼] 警, 잘못 시작한 브리핑이 불신 자초했다

‘의례적’이라고 했다. 서울경찰청장이 한 말이다. ‘드루킹 사건’을 브리핑 하면서다. 김경수 의원의 답장을 그렇게 규정했다. 둘의 관계는 국민적 관심의 핵심이다. 동지적 관계였다면 대형 사건이다. 일방적 관계였다면 개인의 일탈이다. 그 가늠의 일단이 메시지 성격이다. 청장이 여기에 가치판단을 내린 것이다. ‘의례적’의 뜻이 뭔가. ‘형식이나 격식만을 갖춘’이다. ‘김 의원이 형식적 답변만 했다’는 뜻이다. ‘공모 안 했다’로 들린다. 그러면서 정작 밝힐 건 안 밝혔다. 김 의원이 읽은 메시지가 있다. 경찰도 확인한 모양이다. 그 숫자를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읽지 않았다’고만 했다. ‘대부분’의 뜻은 또 뭔가. ‘절반이 훨씬 넘어 전체량에 거의 가까운 정도’다. ‘거의 전부’를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전날 김 의원 표현을 그대로 닮았다. 전체 확인이 안 끝났다면 ‘대부분’이라 쓸 수 없는 것이고, ‘대부분’이라고 쓸 수 있다면 전체 확인이 끝난 걸 텐데…. 언론 취재의 대상도 언급했다. 기자가 김 의원 조사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막았다. 그러면서 “수사의 핵심은 매크로프로그램으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여부”라고 했다. ‘김 의원 수사는 핵심이 아니다’란 설명이다. 국민은 궁금해한다. 수사를 해야 김 의원도 좋다. 그걸 물은 것이다. 그런데 취재 대상을 정정하듯 설명했다. ‘김 의원 공모 사건’으로 보지 말라로 들린다.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만 보라로 들린다. 사건기자를 해봤다. 사건 브리핑만 10여 년 쫓아다녔다. 선혈 낭자한 현장 브리핑도 있었다. 정치 사건의 브리핑도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지 않았다. 청장 스스로 수사 초기라고 말했다. 그러면 돌려 답하면 됐다. ‘수사 중 답변 불가’라고 하면 끝이었다. 사건기자들이 싫어하는 답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유용하게 쓰이는 ‘브리핑 기술’이다. 그런데 청장은 그날 그러지 않았다. 대놓고 ‘죄 없다’ ‘수사 대상 아니다’라 했다. 여론이란 걸 어찌 봤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뒤집혔다. 경찰 비난이 시작됐다. ‘한 달 동안 휴대폰 분석도 안 했다’, ‘김 의원 접촉 메시지를 검찰에 안 보냈다’, ‘민주당원 확인하고도 숨겼다’…. 야권도 성토하고 나섰다. 첫날은 한국당만 경찰청을 찾았다. 브리핑 이후엔 바른미래당도 몰려갔다. 브리핑에서 항의거리를 얻은 모양이다. 인터넷의 변화는 더 극명하다. ‘TV 조선 억지’에서 ‘권력형 사건’으로 넘어갔다. 다 브리핑 이후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김 의원과 청와대 타격이 제일 크다. 김 의원은 신뢰를 잃었다. 청와대는 새로운 표적이 됐다. 민정수석실은 지금 난타전 중이다. 대통령 턱밑까지 갔다. 깔끔한 결말은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김경수 무혐의 통보서’를 쓸지도 모르는데, 이게 꼬였다. ‘김 의원 답장은 의례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써야 하는데, 이걸 미리 말했다. ‘드루킹의 메시지를 읽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써야 하는데 이것도 미리 말해 버렸다. 이런 결과표를 내놓으면 다들 뭐라 하겠나.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 않겠나. 차라리 청장 개인의 공명심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수사권 조정 얘기가 나온다. 브리핑 이후 언론이 그렇게 평한다. 한겨레 신문은 ‘警, 청와대 눈치 보나’라고 썼다. 문화일보는 ‘수사권 조정 앞두고 靑 눈치 보나’라고 썼다. 안 그래도 권력에 기우는 게 수사기관이다. 정도만 달랐지 기울기는 늘 있었다. 여기에 집단 이익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얘긴데, 걱정이다. 아닐 것이라 믿기로 하자. 그래서 더 궁금하다. 서울청장이 입신양면의 ‘수’로 쓰려 한 것일까. 경찰이 수사권 조정의 ‘패’로 쓰려 한 것일까. 속을 모르니 뭐라 할 순 없다. 대신 그날 이후 현실만은 말할 수 있다. 잘못된 브리핑 피해가 경찰조직으로 갔다. 국민 의혹에 불을 그어댔고, 경찰 불신에 단서를 남겼다. 명쾌히 가야 할 사건에 시효 없는 정치 수명이 주입됐다.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시달릴 불공정 시비만 남았다. 이게 바로 16일 브리핑이 뿌린 ‘불복’의 씨앗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지극히 인간적인 약속-‘장수(長壽) 공약’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딘가. 분당이라면 74.8세까지 건강할 것이다. 포천이라면 64.8세까지만 건강할 것이고. 이걸 건강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이라면 86.3세까지 살 것이다. 포천이라면 79.7세까지만 살 것이고. 이건 기대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에 살아야 10년 더 건강하고, 10년 더 산다. 부(富)가 곧 명(命)인 셈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富裕長壽 貧困短命)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건강불평등 보고서다. 보고서는 단명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가 낙후된 주거환경이다. 사는 곳이 추하고 비위생적이다. 둘째가 낮은 교육 수준이다. 배움이 짧아 못 벌고 못 산다. 셋째가 자가용 미소유다. 온갖 공해 속을 걷고 뛴다. 산 좋고 물 맑은 포천인데도 분당과 비교하니 이렇다. ‘79.7세’라는 한계를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낙후된 동네라 인정하기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2억9천만개나 되는 자료로 만든 통계다. 보고서는 과제를 던진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주거 환경 개선하면 된다. 교육 수준 올리면 된다. 자가용 보급률 높이면 된다. 누구 책임인지도 명확하다. 국가, 도, 시(市)다. 그 결정을 할 사람은 대통령, 도지사, 시장(市長)이다. 두어 달 뒤면 도지사, 시장 선거다. 그러니 지금은 도지사, 시장의 책임을 말할 때다. 그런데 어딜 봐도 ‘장수 공약’이 없다. ‘오래 살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이 없다. ‘공약 속에 있다’고 할지 모르나, 아니다. ‘장수 공약’은 방향부터 달라야 한다. 의료 공약을 보자. 저마다 대학 병원 유치를 첫머리에 꼽고 있다. 쓰러진 환자가 골든타임에 달려갈 근접 의료 체계를 약속해야 한다. 주거 공약도 그렇다. 너나없이 신도시ㆍ재개발 위주다. 날파리,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정비에 돈 쓰겠다고 해야 한다. 도로 교통 공약도 틀렸다. 차 다닐 도로가 아니라 사람 다닐 도로를 공약해야 한다. 복지? 이건 아예 통째로 잘못됐다. 원래는 이런 게 아니다. 배고픈 자를 먹게 하고, 추운 자를 따뜻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주어진 천명을 다하도록 돕는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배부른 자에까지 더 먹이고, 따뜻한 자에까지 더 덮어준다. 이런 보편적 복지를 시대정신이라고 우기고 있다. 어느덧 이런 복지가 정치를 장악했고, 그 정치가 표심을 삼켰다. 그렇게 완성됐다는 복지천국이 대한민국ㆍ경기도ㆍ성남시다. 건강불평등보고서가 그 실정(失政)을 까발렸다. 국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대한민국, 그 국민의 건강 수명이 경기 분당구민 74.8세, 경남 하동군민 61.09세다. 도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경기도, 그 도민의 건강 수명이 성남 분당구민 74.8세, 포천 시민 64.8세다. 시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지자체, 그 시민의 건강 수명이 분당구민 74.8세, 중원구민 65.3세다. 같은 복지천국인데 사는 곳에 따라 이렇게나 ‘명줄’이 엇갈린다. 보고서가 내린 예상은 더 잔인하다. “2025년까지 국민의 기대 수명은 3.5년 늘어나지만, 소득에 따른 기대 수명 격차가 0.31년 커질 것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이 더 극단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멀지도 않은 날의 얘기다.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도지사ㆍ시장 때 일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해졌다. 하동군민 13년 더 살게 하고, 포천시민 10년 더 살게 하고, 중원구민 9년 더 살게 할 ‘장수 공약’이 필요해졌다. 표(票)-후보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도 된다. 60대 이상 유권자가 1천75만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25.2%다. 50대까지 합치면 45.1%다. 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손주의 무상급식? 자녀의 반값 등록금? 아마도-틀림없이- 그건 아닐 것이다. 장노년층이 입으로 말 못하는 소원은 따로 있을 것이다. 병 없이 오래 살고 싶은 꿈이다.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나. 한없이 소박하지 않나. 장수공약이 그렇게 인간적인 공약이고 소박한 공약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前 역사 비틀기와 소련의 패망

레닌은 스탈린을 선택하지 않았다. 말년에 남겨놓은 평가가 혹독하다. 무지하다며 무시하고 거칠다며 경계했다. 사회주의 혁명의 대업을 넘겨줄 리가 없었다. 대신 점찍은 후계자가 트로츠키였다. 혁명의 와중에 둘은 복도를 마주하고 지냈다. 둘 사이를 오간 쪽지들이 혁명의 모든 걸 결정했다. ‘잘한다! 트로츠키 동지’란 글은 둘의 우정을 표한 숱한 증거의 하나다. 유언도 그랬다. 후계자를 트로츠키라 했고, 스탈린은 제거하라고 했다. 하지만, 권력은 스탈린에게 넘어갔다.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죽은 그날이 거사 당일이었다. 불행히도 트로츠키는 요양을 가고 있었다. 그가 탄 기차로 전문이 날아들었다. ‘장례식은 토요일에 거행될 겁니다. 제시간에 돌아올 수 없으실 테니, 치료를 계속하십시오.’ 거짓말이었다. 장례식은 일요일이었다. 트로츠키를 배제하려는 전략이었다. 스탈린과 지노비예프, 카메네프-훗날 3두 정치라 표현되는-가 손잡고 벌인 희대의 역모였다. ‘트로츠키는 농민을 무시했다.’ 스탈린이 왜곡한 첫 번째 과거다. 트로츠키가 농민을 과소평가했다고 비난했다. 농업정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 프롤레타리아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이들과 트로츠키를 떼어놓는 작업이었다. 트로츠키는 시골 야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혁명의 시작도 슈비고프스키라는 시골에서의 일이다. 이게 다 바뀌었다. 트로츠키는 반(反) 농민주의자가 됐다. ‘레닌과의 관계를 비틀어라.’ 트로츠키 죽이기의 결정판이다. 1905년 1차 혁명이 꼬투리가 됐다. 트로츠키가 레닌의 혁명 노선에 반발했던 시기다. 둘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갈등 시기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둘은 한 몸이었다. 그런데도, 1905년의 트로츠키만 부각했다. 레닌에 맞섰던 반혁명분자로 몰았다. 트로츠키는 자서전에서 레닌과의 추억을 비망록처럼 적고 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스탈린 생전, 그는 반레닌주의자가 됐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에 숨겨진 추잡한 뒷모습이다. 과거를 왜곡하고 트집 잡으며 시작된 역사다.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일 수도 있다. 이념, 유산까지 모조리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 아닌가. 그래서였나. 소비에트 소련의 그 후 역사는 그렇게 갔다. 스탈린은 후르시초프가 부정했다. 공산당의 폐쇄성은 고르바초프가 부정했다. 옐친은 사회주의 100년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1991년, 그렇게 ‘과거 비틀기’가 끝나자 소련은 멸망했다. 그 100년, 미국은 어땠나. 트로츠키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건 1917년 1월13일이다. 뉴욕에 대한 그의 감상이 이렇게 남았다. ‘거대한 빌딩군, 가스레인지, 전화, 엘리베이터…아이들이 순식간에 뉴욕의 포로가 됐다.’ 그러면서도 비꼰다. ‘달러( Doller)의 도덕 철학이 완전히 석권한 나라다’ ‘인류의 문명이 버려질 대장간이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100년 뒤 미국은 더 풍요로워졌다. 과거사를 부정하지도 않고, 전임자를 격하하지도 않는다. ‘과거 비틀기’의 결말은 비극이다. 세상 어떤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다. 미래에 바쳐질 예비된 제물일 뿐이다. 지금 권력이 짠 관(棺)도 미래 어떤 날은 스스로 들어갈 어둠의 상자일 뿐이다. 그 적나라한 표본을 사회주의 소련이 보여줬다. 창시자 유언이 휴지가 되고, 후계자 머리에 등산 도끼가 꽂히고, 권력자 흉상이 땅바닥에 구르고, 위대했던 혁명이 참담한 실패가 됐다. 그러면, 어떤가. 대한민국은. 소련의 100년 교훈에서 자유로운가. 김영삼 정부는 ‘5공 청산’으로 과거를 뒤졌다. 김대중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과거를 뒤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 정치 척결’로 과거를 뒤졌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수사’로 과거를 뒤졌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로 과거를 뒤졌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으로 과거를 뒤지고 있다. 어떤 대통령들은 감옥에 갔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갈 판이다. 20년째 이러고 있다. 불행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主筆

[김종구 칼럼] 무너진 금도, 性

‘시장님 섹스 비디오’. 십수년전으로 기억된다. 기자들 몇이 말하고 다녔다. 현직 시장과 관련된 스캔들이었다. 성관계 장면이 찍혔다고 알려졌다. 상대 여성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지간히 협박도 해댔던 모양이다. 하지만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쓰면 안 되는 걸로 여겼다. 선거는 치러졌고 A시장은 당선됐다. 시간이 흐르고 낮술 자리가 있었다. 거나해진 분위기에서 시장이 얘기했다. “섹스 비디오? 미친○이, 지랄한 거야” 물론 그 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즈음 이런 일도 있었다. 편집국으로 전화가 왔다. 수원시 인계동 ○○모텔로 기자 좀 보내달라고 했다.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가 출동했다. 도착한 모텔 주차장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여성 도의원이었다. 전화한 남자의 차가 도의원의 차를 막고 있었다. 남자가 얘기했다. ‘이 의원님(도의원)이 나와 사귀는데 다른 남자와 또 바람을 폈다.’ 보도 여부를 두고 회의가 열렸다. 취재 기자가 말했다.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그 기사도 사라졌다. 그땐 그게 금도(襟度)였다. 성(性)은 기사 소재가 아니었다. ‘허리 아랫도리 얘기’라며 버렸다. 어쩌다 기사를 가져오는 신참 기자들도 있긴 했다. 십중팔구는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야, 너 ○○○서울 기자야?” ‘시장님 섹스 비디오’는 그래서 보도되지 않았다. 시장이 되레 ‘미친○’이라며 큰소릴 쳤다. ‘도의원 모텔 사건’도 그래서 몰고(沒稿)됐다. 도의원은 지금까지도 당당해한다. 요 며칠 잣대로 보면 어떨까. 편집국장이 탄핵되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1980년. 김재규의 최후 진술에 이런 부분이 있다. “각하를 위한 (여성이 참석하는) 소연회가 많았고…” 군법 재판부가 말린다. “어이 피고, 사건 관련 얘기만 하세요.” 그땐 그랬다. 권력의 ‘성’은 묵인해줘야 할 일상이었다. 그게 지금 달라진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무너졌다. 여직원과 성관계를 맺었다 해서다. 막강한 미래 권력이었는데 추락했다. 몰락까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억울하다고도 못한다. 이해하자는 이도 없다. 그냥 참담하게 사라져 갔다. 다음 마당은 어디일까. 짐작이 어렵지 않다. 지방선거다. 16대 총선은 ‘낙선 운동’이 지배했고, 17대 총선은 ‘탄핵’이 지배했다. 그랬듯이 6ㆍ13 선거는 ‘성’의 지배를 받을 걸로 보인다. 술자리에선 이미 뜨겁다. ‘비서 스캔들’ ‘연예인 스캔들’ ‘직원 스캔들’ ‘선거 운동원 스캔들’…. 조만간 수면에 오를 기세다. 사즉생의 선거판이 그런 데다. 여기에 언론의 아량도 없어졌다. 오히려 구미 당기는 취재거리가 됐다. ‘폭로-보도-파문-사퇴’의 공식이 훤히 보인다. 자신들 있을까. 자신 없으면 사퇴해야 할 텐데. 2008년 총선 땐 이랬다. 처음으로 모든 전과가 공개됐다. ‘금고 미만’의 전력까지 공개해야 했다. 많은 후보가 갑자기 사라졌다. 언론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전과 전면 공개 부담 출마 포기 속출-부인ㆍ자식도 모르던 전과 공개 공포’. 현명한 판단이었다. 선거란 게 결과를 모르는 도박이다. 그 불확실성에 가정을 거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전과’를 ‘성 스캔들’로 바꾸고 보면 지금이 그때와 똑같다. 운동선수들이 말한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말한다. ‘금도는 무너지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무너질 금도는 ‘성’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35년 전 책을 폈다. 1983년판 형법 각론-진계호著-이다.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상대방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케 할 정도의 폭행ㆍ협박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 사법시험용 책인데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 논리로 해명한 게 안희정 지사다. ‘합의했다’. 어찌 됐나. 더 처참해졌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바뀐 세상은 따라야 한다. ‘그 시장’이 지금 없고, ‘그 도의원’이 지금 없는게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 우리 정치판에 ‘성’에 책잡힌-또는 책잡힐- 후보가 기웃거릴 마당은 없어진 듯하다. 主筆

[김종구 칼럼] 고오환 의원 에워싸던 경기도의회의 벽

물론, 고오환 도의원의 권리다. 본인 판단엔 피해자일 수 있다. 피해를 구제받는 방법에 소송이 있다. 고 의원은 그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상대가 경기일보였다. ‘나’와 ‘박 기자’가 구체적 피고로 지목됐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판사가 주관한다. 항소(抗訴)와 변소(辯訴) 모두 법정에서 다투어야 맞다. 피고에게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재판정외에는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보도를 중단했다. 그게 피고의 처신이고 법 앞에 도리라고 봤다. 그렇게 생긴 7개월의 공백이다. 이 공백을 도의원들은 어떻게 봤을까. 이게 궁금한 이유가 있다. 고 의원에 던진 의혹은 독직(瀆職)이었다. 의원이란 신분을 이용한 행위이고, 그 행위가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정치 주변에 늘 있는 잡음이다. 고 의원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그때, 많은 도의원들이 고 의원과 함께 했다. 의혹을 반박한 장소는 본회의장이었다. 의원들이 곳곳에서 ‘마이크 켜, 계속해’라며 힘을 보탰다. 엊그제, 길었던 1심 재판이 끝났다. 어떤 의원이 이런 인사를 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위로(慰勞)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이 위로다. ‘나’와 ‘박 기자’가 괴롭고 슬프게 보였던 모양이다. 재판 기간의 침묵이 그렇게 비쳤던 모양이다. 그 사이, 의혹은 뒤죽박죽 됐다. 도의회 주변에는 고 의원의 해명만 남았다. 본회의장 해명이 실체적 진실처럼 됐고, 경기일보 보도는 근거 없는 비방처럼 됐다. 그랬던 도의회가 문을 닫을 때가 됐다. 벌써부터 의석 곳곳이 텅 비고 있다. 머지않아 폐회될 것이다. 그러면 경기일보 보도도 묻힐 듯하다. 정치인들에 경종을 울려보려던 기사다. 의정 활동이 의원의 사익과 맞물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려던 기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도의회는 되레 끈끈한 동료애로 뭉쳤다. 고 의원의 윤리위원장직도 끝까지 지켜줬다. 1심 판결이 아름아름 알려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밝혀두려고 한다. 경기일보의 주장도 아니고, 고 의원의 주장도 아닌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을 더 늦기 전에 밝혀두려고 한다. 도의원이라는 신분에 대해 이렇게 판결했다. ‘(고오환 의원의 신분인) 도의원은 공적 인물’이라고 했다. ‘(투기 논란 부동산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했다. ‘(따라서 경기일보의 관련 보도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비교적 완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의혹 제기 본질에 대해 이렇게 판결했다. ‘(사업부지는 고 의원의 문제 제기로 개최된 토론회에서도) 부지 선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경기일보의 보도는) 원고의 문제 제기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포괄적인 판단에 대해 이렇게 판결했다. ‘(고오환 의원의) 지위 및 사안의 성격, (경기일보의) 취재 경위 및 방법, 취재 결과, 구체적인 기사 내용 및 표현의 정도 등에 비추어…오로지 공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최종 주문(主文)은 이렇게 내렸다. ‘원고(고오환 의원)의 피고들(경기일보 등)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고오환 의원)가 부담한다.’ 2017년 4월10일, 경기도의회 속기록에는 ‘균형 잃은’ 기록이 새겨졌다. ‘박 기자’ 취재는 부당한 뒷조사라고 새겨졌고, 경기일보 기사는 ‘팩트를 바꾼’ 오보라고 새겨졌다. 어떤 토론도 허용되지 않은 일방의 기록 2천600자다. 벽(壁)이다. 자기들끼리 쌓아올린 이기(利己)의 벽이다. 선출된 도의원이 친 벽이고, 본회의장을 내준 의장단만이 친 벽이고, 함께 목청 높인 도의원들이 친 벽이다. 그 벽너머로부터 ‘박 기자’는 또 협박성 문자를 받는다. “박○○, 오늘 법원의 판결 너무 좋아하지 마시게∼∼∼” 主筆

[김종구 칼럼] ‘직업’ 선택 자유 있고, ‘직원’ 선택 자유 없다

검찰에 몸담은 사람이다. 그것도 장(長)이다. 앉자마자 심각하게 입을 연다. “의견을 듣고 싶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 금융권의 채용 비리 수사다. 솔직한 여론을 듣고 싶다고 한다. 한 명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한다. “채용 비리로 실망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 구속시켜야 한다.” 다른 한 명은 수사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한다. “우리은행이 민간기업 아닌가. 누구를 뽑든 말든 자유다. 검찰권이 개입할 일은 아니다.” 요사이 많이 오가는 고민이다. 이 고민이 현실에서도 꼬였다. 우리은행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됐다. 은행장과 임원이 풀려났다. 판사의 기각 사유는 이랬다.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고, 진술이 확보돼 구속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 특히 주목할 구절이 있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혐의가 진실이라도 유죄를 단정할 수 없을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장’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다. 담당 검사도 고민했을까. 재청구는 없었다. 비리 행태가 가관이다. 1차 꼴등이 최종 합격하기도 했다. 청탁 받은 응시자 명부까지 만들어졌다. 30명이 그렇게 합격했다. 2015~2017년만 봤는데 이 정도다. 화가 치미는 일이다. 판사도 당연히 그 기록을 다 봤을 거다. 그런데 기각했다. 그 취지가 짐작된다. 우리은행은 민간기업이다. 직원 채용은 민간 경영의 영역이다. 국가 형벌권의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아마도 판사가 ‘다툼의 여지’라 적어 돌려보낸 영장의 뜻일 게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은 다르다. 공기업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또는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다. 당연히 경영의 모든 행위가 법률의 지배를 받는다. 인력 채용도 마찬가지다. 법으로 규정된 절차, 방식, 자격이 있다. 적법과 위법의 경계가 조문(條文)으로 명백히 획정돼 있다. 이걸 어기는 순간 곧바로 위법이 된다. ‘공기업 채용 비리 4천788건’이란 통계도 거기서 나왔다. 공고 규정 어겨서 걸렸고, 면접 규정 어겨서 걸렸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민간기업이다. 채용기준을 강제할 공적 근거가 없다. 그걸 처벌하겠다며 검찰이 뛰어들어간 것이다. ‘업무방해죄’라는 포괄적인 죄명을 앞세우며 들어간 것이다. 서류 압수하고, 직원 소환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그러자 판사가 막아섰다. ‘죄가 되는지 살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랬으면 쉬면서 검토해 보는 게 통상의 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되레 민간은행 다섯 곳을 추가하며 판을 키웠다. 억울했는지 하나은행이 이런 해명을 내놨다. “점포가 있는 대학의 출신자에 대해 경영적 판단을 고려했다.” 민간기업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 천수백억원의 등록금은 큰 시장이다. 입점에 사활이 걸려 있다. 마침, 대학은 학생 취업률에 목매고 있다. 이해가 맞았을법하다. 그렇게 가점(加點) 채용이 이뤄진 모양이다. 물론 불공정 채용이다. 고쳐야 할 적폐다. 그렇다고 경영진을 교도소에 넣을 일은 또 아니다. 그런 적도 없다. 작금의 흐름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빽’은 있다. 여론전(戰)이다. 젊은이들의 분노가 무기다. 탄착점(彈着點)에 민간 은행을 매달아 놨다. 검찰 수사를 신호탄으로 다수의 난사(亂射)가 시작됐다. ‘민간 기업이니 신중하라’는 판사 의견 따윈 무시된다. ‘경영적 판단을 이해해달라’는 회사 해명도 묵살된다. 오로지 하나만 묻는다. ‘특별 채용이 좋은지 나쁜지 답하라.’ 당연히 ‘나쁘다’가 답이다. 그러면 주문한다. ‘무조건 구속시켜라.’ 정작 권한을 쥔 기관은 금감원이다. 그런데 모든 걸 넘기고 빠졌다. 검찰이 그걸 덥석 받았다. 그러더니 밀기 시작했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가리지 않는다. 수사권원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는다. 무섭다. 검사 1천명의 생각이 다 이렇지는 않을 텐데…. 민간기업임을 고민하는 검사도 있을 텐데…. 하나가 된 듯 밀어붙인다. 그 기세에 나라가 이상해졌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있고, ‘직원 선택의 자유’는 없는 나라처럼 됐다. 그날, ‘장’은 자기 말을 많이 했다. “선배에게 물었다. 우리 땐 인사 청탁이 ‘정’ 아니었냐고 했다. 적폐인 것은 맞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업무 방해를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지도 모르겠고.” 이런저런 고민을 말했다. 30분쯤 하더니 밝아졌다. ‘자, 얘기 그만하고 쏘주나 마십시다.’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어차피 그도 맡겨지면 수사하는 검사다. 검사 누구라도 “우리가 수사하기 적절치 않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主筆

[김종구칼럼] ‘굴욕적 외교’ 싫으면 ‘경제 후속조치’ 내야

그만큼 놀랐던 걸까. 34년 전 방송인데도 생생하다.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 방송은 실제 상황입니다.” 어린이날이 그렇게 망가졌다. 전쟁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피납된 중공 민항기가 온 거였다. 승객과 승무원 105명이 타고 있었다. 6ㆍ25 이후 첫 중공 손님이다. 요즘 말로 단체 요우커(遊客)였던 셈이다. 고급스런 고속버스가 동원됐다. 빠른 국도 대신 빙 도는 고속도로를 택했다. 한국 발전상을 보여주려는 작전이었다. 최고급 워커힐 호텔이 숙소였다. 화교 출신까지 배치됐다. 호텔 내 가야금 대식당에선 공연이 이어졌다. 매 끼니 메뉴는 최고급 요리였다. 100명이 269인분의 갈비를 먹어치운 날도 있었다. 낮시간 여행도 국가 원수급 코스였다. 용인자연농원, 삼성전자, 기아자동차를 돌았다. 가는 곳마다 선물 꾸러미가 안겨졌다. 거리 곳곳에 환영 인파가 배치됐다. 중공 측 교섭단에도 극진했다. 민간인 단장 센투(沈圖)가 차관급 예우를 누렸다. 너무 심한 접대였다. 굴욕적 자세였다. 그런데 시간이 그 평가를 바꿨다. 석 달 뒤, 항공기 영공 통과가 합의됐다. 열 달 뒤, 한국 테니스 선수가 중공 대회에 갔다. 열한 달 뒤, 친척 상호 교류가 허용됐다. 열두 달 뒤, 중공 농구대표단이 서울에 왔다. 한중 교류의 봇물이 터진 것이다. 결국, 이 봇물이 9년 뒤 수교까지 흘러갔다. 시작은 ‘굴욕적 외교’였으나 결과가 화려했다. ‘날아든 봉황을 잡아챈 최고의 외교’로 기록돼 있다. 대륙(大陸)은 늘 벅찼다. ‘굴욕적인 역사’가 수두룩 하다. 세종대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임금이 뜰에 내려가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 악차에 들어가 면복을 벗었다-(세종 1년 1월 19일). 상상도 하기 싫은 성군(聖君)의 모습이다. 너무 ‘굴욕적’이다. 하지만, 목적이 있었고 결과가 있었다. 태평성대를 얻었고 문자 창제를 인정받았다. 최고의 외교로 기록됐다. 그 역사의 쳇바퀴에 대한민국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도 똑같다. ‘혼밥’ 하는 우리 대통령 모습, 보기 속상하다. 우리 대통령을 툭툭 치는 중국 외교부장, 그 팔을 부러뜨리고 싶다. 우리 수행 기자를 구둣발로 짓이기는 중국 경호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지켜보는 국민이 다 화났다. 거드름 피우는 중국을 욕했다. 대비 못 한 우리 외교를 질책했다. 당연한 분노고 할법한 질책이다. ‘굴욕적 모습’이 잦았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다. ‘굴욕적 외교’로 뭘 얻었느냐는 결과다. 그 결과물이 경제에 있음은 다 안다. 금한령(禁韓令)으로 한국 경제가 얼어붙었다. 여행업계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이다. 지방의 관광 행정도 초토화됐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걸 해결해보겠다고 대통령이 달려간 거다. 경제인 260명도 그래서 따라간 거다. 이게 잘 됐다면 다 이해될 거였다. ‘띵호와(定好)’라 할 참이었다. 어렵사리 나온 리커창 총리의 말도 있잖나. “봄날도 기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해결의 틈새를 열어준 귀띔이다. 이 귀띔이라도 붙들어야 한다. 후속조치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여행 자유화 만들어내고, 중국 진출 기업 편하게 해주고, 평창 올림픽 성대하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여행업계 살고, 현지 기업 살고, 올림픽 산다. 좀 굴욕적이었으면 어떤가. 혼밥 좀 했으면 어떤가. 국민 잘살게 하면 그게 ‘최고 외교’ 아닌가. 청와대가 할 일도 이거다. 경제 후속 조치를 만드는 거다. 중국에서 얻은 먹거리를 추스르는 거다. 그래야만 경제를 챙긴 ‘성공한 외교’로 바꿀 수 있다. ‘전(前) 대통령도 만찬 한 번 했다’느니, ‘13억 중국인과의 식사였다’느니…. 왜 이런 말 놀음을 하고 있나.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 혹시 이런 말 기억하나.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가 했던 말이다. “나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미국 앞에서 꼬리가 찢어지라 흔들어대는 개가 되겠다.”

[김종구 칼럼] 청와대 대처는 성공, 영흥도 구조는 실패

청와대가 이렇게 밝혔다. ‘대통령이 7시 1분에 1차 보고를 받았다… 9시 25분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직접 찾았다.’ 신속한 보고와 상황 접수를 강조한 발표다. 하지만, 현장은 전혀 신속하지 않았다. 평택 구조대가 12.8㎞ 떨어진 제부도에 있었다. 20분이면 도착할 거린데 1시간 12분 걸렸다. 양식장 건들까 봐 빙 돌아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해경 부두에 있던 2개 구조함은 출동도 못했다. 야간 항해가 가능한 신형이 고장 났다고 했다. 차 타고 50㎞ 도로를 달려 민간 어선 얻어 타고 도착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영흥도 해경 파출소가 있다. 여기 있는 고속단정은 다른 배가 출구를 막고 있어 20분간 갇혔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한치의 의구심이 들지 않게 필요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라.’ 구조 상황 등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공개하라는 지시다. 하지만, 해경은 정직하지 않았다. 첫 발표 때는 6시 12분에 사고를 접수했다고 했다. 이후 6시9분으로 바꿨고, 다시 6시 5분으로 수정했다.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부분이 있다. 구조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통상 30분으로 잡는다. 고속단정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6시 42분이다. 사고 접수를 6시 12분으로 잡으면 정확히 30분이다. 6시 5분이라면 골든 타임을 넘어선다. 의도적으로 역산해서 만든 ‘6시12분’ 아닌가. 의혹이 많다. 대통령은 또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한 명까지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달라.’ 국민 생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당연하면서도 절박한 지시다. ‘말씀’ 자체는 표나게 챙겼다. 공개된 내용인데도 브리핑에서 또 읽었다. ‘대통령께서는 해경 지휘관 중심으로 수색 구조에 전 세력을 동원하여 구조에 만전을 다하고 의식불명자 대상 구호 및 의료조치와 사고자 가족분들에게 즉시 알리고 심리안정 조치 등에 최선을 다하며 마지막 1명까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곤 그게 끝이다. 추가 구조자는 없었다. 당시 생존자 7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4명은 명진15호 선원들이 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속했다. 사고 발생 49분만에 첫 보고를 받았다. 두 차례 전화 보고, 한 차례 서면 보고도 받았다. 9시 25분부터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지켰다. 다음날 참모 회의에서의 언급도 적절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의 ‘박 전 대통령의 7시간’과 비교한다. 어떤 누리꾼은 ‘이것이 나라다’라고 했다. ‘위기 대처가 빛났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잘한 것인가. 어떤 근거로 매겨진 평가인가. 탑승자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사망률 68%다. 세월호 탑승자는 476명이었다. 304명이 숨졌다. 사망률 63%다. 세월호 사고를 단군 이래 최악의 참사라고 했다. 그 사망률보다 이번 사고가 더 나쁘다. 신속한 구조? 양식장 때문에 늦고, 고장 나서 늦고, 출구 막혀 늦었다. 정확한 정보 공개? 번복과 오판 발표가 한 두 건이 아니다. 이게 잘한 구조인가. 그럼 세월호도 잘한 건가. 가정(假定)은 위험하다. ‘구명정이 일찍 도착했더라면…’이란 가정이 ‘살 사람들을 죽였다’는 결론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지적해야 한다. 해경은 구조작전에 실패했다. 연습한 대로 하지 못했다. 출동 태세도 부족했다. 정직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국가의 무한책임’을 말했다. 그러니 해경이 책임져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부족했다.” 서장(署長)의 반성인데 너무 후한 듯하다. 국민 눈높이가 서장의 생각처럼 후하지 않다. 청와대 역시 국가다. 책임을 느껴야 한다. 대통령 대처는 성공이었다. 영흥도 구조는 실패였다. 대처도 성공하고 구조도 성공했으면 더 좋았다. 급박한 상황이 하나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라면, 바뀌는 게 나을 뻔했다. 대처에 실패해도 구조에 성공하는 게 좋을 뻔했다. 참변(慘變)은 또 온다. 아무리 조심해도 온다. 그때가 오기 전에 청와대가 버리고 갈 게 생겼다. 대통령을 생중계해 국민 신뢰를 구하는 모습-세월호가 남긴 학습-, 버려야 한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