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외교로 한중수교 챙겼던 외교史
靑, 굴욕외교 논란에 맞설 시간 없어
경제 교류 후속 조치 만들면 다 해결
최고급 워커힐 호텔이 숙소였다. 화교 출신까지 배치됐다. 호텔 내 가야금 대식당에선 공연이 이어졌다. 매 끼니 메뉴는 최고급 요리였다. 100명이 269인분의 갈비를 먹어치운 날도 있었다. 낮시간 여행도 국가 원수급 코스였다. 용인자연농원, 삼성전자, 기아자동차를 돌았다. 가는 곳마다 선물 꾸러미가 안겨졌다. 거리 곳곳에 환영 인파가 배치됐다. 중공 측 교섭단에도 극진했다. 민간인 단장 센투(沈圖)가 차관급 예우를 누렸다.
너무 심한 접대였다. 굴욕적 자세였다. 그런데 시간이 그 평가를 바꿨다. 석 달 뒤, 항공기 영공 통과가 합의됐다. 열 달 뒤, 한국 테니스 선수가 중공 대회에 갔다. 열한 달 뒤, 친척 상호 교류가 허용됐다. 열두 달 뒤, 중공 농구대표단이 서울에 왔다. 한중 교류의 봇물이 터진 것이다. 결국, 이 봇물이 9년 뒤 수교까지 흘러갔다. 시작은 ‘굴욕적 외교’였으나 결과가 화려했다. ‘날아든 봉황을 잡아챈 최고의 외교’로 기록돼 있다.
대륙(大陸)은 늘 벅찼다. ‘굴욕적인 역사’가 수두룩 하다. 세종대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임금이 뜰에 내려가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 악차에 들어가 면복을 벗었다-(세종 1년 1월 19일). 상상도 하기 싫은 성군(聖君)의 모습이다. 너무 ‘굴욕적’이다. 하지만, 목적이 있었고 결과가 있었다. 태평성대를 얻었고 문자 창제를 인정받았다. 최고의 외교로 기록됐다.
그 역사의 쳇바퀴에 대한민국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도 똑같다. ‘혼밥’ 하는 우리 대통령 모습, 보기 속상하다. 우리 대통령을 툭툭 치는 중국 외교부장, 그 팔을 부러뜨리고 싶다. 우리 수행 기자를 구둣발로 짓이기는 중국 경호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지켜보는 국민이 다 화났다. 거드름 피우는 중국을 욕했다. 대비 못 한 우리 외교를 질책했다. 당연한 분노고 할법한 질책이다. ‘굴욕적 모습’이 잦았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다. ‘굴욕적 외교’로 뭘 얻었느냐는 결과다. 그 결과물이 경제에 있음은 다 안다. 금한령(禁韓令)으로 한국 경제가 얼어붙었다. 여행업계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이다. 지방의 관광 행정도 초토화됐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걸 해결해보겠다고 대통령이 달려간 거다. 경제인 260명도 그래서 따라간 거다. 이게 잘 됐다면 다 이해될 거였다. ‘띵호와(定好)’라 할 참이었다.
어렵사리 나온 리커창 총리의 말도 있잖나. “봄날도 기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해결의 틈새를 열어준 귀띔이다. 이 귀띔이라도 붙들어야 한다. 후속조치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여행 자유화 만들어내고, 중국 진출 기업 편하게 해주고, 평창 올림픽 성대하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여행업계 살고, 현지 기업 살고, 올림픽 산다. 좀 굴욕적이었으면 어떤가. 혼밥 좀 했으면 어떤가. 국민 잘살게 하면 그게 ‘최고 외교’ 아닌가.
청와대가 할 일도 이거다. 경제 후속 조치를 만드는 거다. 중국에서 얻은 먹거리를 추스르는 거다. 그래야만 경제를 챙긴 ‘성공한 외교’로 바꿀 수 있다. ‘전(前) 대통령도 만찬 한 번 했다’느니, ‘13억 중국인과의 식사였다’느니…. 왜 이런 말 놀음을 하고 있나.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 혹시 이런 말 기억하나.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가 했던 말이다. “나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미국 앞에서 꼬리가 찢어지라 흔들어대는 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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