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혁명, 배고픔에 쫓겨난 이념
촛불 혁명도 궁극엔 경제 욕구
대통령ㆍ당, 경제에 다 걸어야
트로츠키가 답했다. “스탈린 역사는 날조된 거짓말이다.” 그의 자서전-나의 생애-은 앞선 질문에 대한 장문의 항변서다. 스탈린을 이론 없는 무식쟁이라 공격했다. 혁명의 역사를 날조한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민족주의만을 부추긴 일국혁명론자라 비하했다. 마지막 망명지 멕시코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스탈린 자객에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그렇게 싸웠다. 이런 주장을 훗날 역사가 인정했다. 음모에 의한 몰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찌꺼기가 있다. 혁명 직후 소련 경제는 몰락했다. 물가가 1918년 20.76배, 1920년 2천420배, 1921년 1만6천800배까지 뛰었다. 공산당이 신경제정책(NEP)을 꺼내 들었다. 이때 그의 입장이 빌미였다. ‘트로츠키가 농업을 경시했다’는 여론 선동의 제물이 됐다. 농민은 이미 이념을 따지기엔 배고픔이 컸다. 스탈린이 그런 민심에 트로츠키를 먹잇감으로 던진 것이다. 결국 대중의 허기가 끌어내린 권력이었다.
꼭 100년 뒤인 2017년. 우리에게도 혁명이 왔다. 100년 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민중의 힘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렸듯, 촛불의 힘이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 ‘사회주의’ 구호가 레닌을 권력에 앉혔듯, ‘나라다운 나라’ 구호가 문재인을 대통령에 앉혔다.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기도 시장 군수 31명 중 29명이 민주당이다. 대통령ㆍ국회ㆍ지방 권력이 민주당으로 정리됐다. 이런 적이 없었다. 100년 전 광풍과 빼닮았다.
바로 이런 때, 대통령이 말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남북 관계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적폐 청산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정치도 잘하는 문 정부다. 그래서 싹쓸이 표심으로 보상까지 받은 문 정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등골은 왜 서늘해졌을까. 무엇이 ‘금세 실망으로 바꿀 것’이라는 걸까.
아마도 경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혁명이 요구할 ‘먹거리’라는 숙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 혁명은 국정 농단을 향한 분노의 광기였다. 이제 그 광기가 냉정을 되찾을 때다. 제자리로 돌아가 먹거리를 찾을 시기다. 그런데 그곳에 먹거리가 없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다. 제조업들은 죽겠다고 난리다. 유가 폭등에 짓눌린 경상수지는 악화일로다. 주 52시간 근무 규정은 막판까지 오락가락한다. 최저임금 1만원도 삐걱거리고 있다.
대통령 걱정은 이제 행동으로 옮겨졌다. 선거 압승을 뒤로하고 참모들을 ‘숙청’했다. 경제수석을 잘랐고, 일자리수석을 잘랐다. 경제 못 챙겼다는 문책이고, 일자리 못 만들었다는 문책이다. 정책실장에게도 ‘경고’가 간 듯하다. 경제부처 책임자들도 덩달아 파리목숨이 됐다. 청와대, 정부가 한순간에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잘한 거다. 혁명의 열기는 곧 싸늘해지고, 대신 ‘먹거리’를 요구하는 원성이 높아질 것임을 내다본 거다.
문제는 당(黨)인데…. 지방 선거 내내 당은 외쳤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민주당을 찍어 주십쇼.”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지금 ‘등골이 서늘하다’며 경제참모들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그렇게 바꿔가야 한다. 정치 정당 대신 경제 정당으로 바꿔가야 한다. 마침 변화의 시기도 왔다. 당 조직을 바꿀 전당 대회가 두 달 앞이다. 대통령 뜻은 ‘경제’로 천명됐다. 돕는 방법은 나와 있다. 경제 정당이다. 그렇게 될런지가 문제다.
“당신들은 어떻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는가”. 100년 전 러시아 혁명가가 받았던 이 질문. 2020년 4월 어느 날, 대한민국 민주당에 던져질 수도 있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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