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훔치기가 무용담이던 시절
‘범죄자’ ‘범죄집단’으로 바뀐 시대
다음날, 정몽준 캠프 쪽에서 반응을 냈다. ‘확정되지 않은 명단이다’였다. 특별할 건 없었다. 정치 기사에 붙는 해명은 늘 그랬다. 사달은 다른 곳에서 났다. ‘(강 부장이) CD를 훔쳤다’라는 말이 번졌다. 낙종 한 경쟁지 기자들일수록 열심히 퍼뜨렸다. 자칫 문제가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피해 당사자인 정몽준 캠프가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강 부장’은 이런 전화를 받았다. “다 썼으면 이제 돌려줘.”
90년대 중반. ‘김 기자’의 정보력은 하찮았다. 빡빡하기로 이름난 검찰이었다. 그저 땀 흘리고 다니는 게 다였다. 허구한 날 버려진 서류 뭉치 뒤지는 게 일이었다. 그런 ‘김 기자’가 안쓰러워서였을까. 특수부 김태희 검사가 ‘선물’을 줬다. 검사실 탁자 위에 수첩이 있었다. 수첩 사이로 종이가 보였다. ‘수사 보고’란 제목이 삐죽거렸다. 법조 비리를 수사 중인 방이었다. 사법처리자 명단이 틀림없었다. 기자들이 갈망하던 명단이었다.
그때 갑자기 김 검사가 방을 나갔다. “화장실이나 다녀 와야겠다.” 혼자 남은 ‘김 기자’의 일은 뻔했다. 서류 훔쳐 보기였다. 수첩을 열고 종이를 폈다. 10여 명의 사법처리자 명단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법조계 인사들이었다. 외울 순 없었고, 서둘러 적었다. 재빨리 원래대로 덮었다. 넉넉한 시간 뒤 김 검사가 들어왔다. 뿌듯해진 ‘김 기자’는 일어섰다. 설레는 맘으로 문을 나섰다. 뒤를 따라오던 김 검사가 작게 말했다. “잘 적었어?”
‘강 부장’의 CD 절도, ‘김 기자’의 수사보고서 유출. 그 시절 취재는 그랬다. 퇴근한 사무실에도 들어갔다. 녹음기를 숨겨 두기도 했다. 파쇄기에 바둑알을 넣기도 했다. 수사관을 사칭해 참고인을 빼돌리기도 했다. 들통나는 일도 숱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기관은 기자단에 항의하는 선에서 끝냈다. 기자단은 해당 기자를 출입정지하면 됐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자만 영웅이 됐다. 후배 기자들에게 잘난 척할 더 없는 무용담이 됐다.
그러던 게 달라졌다. 그래선 안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 게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절도죄가 된다. 무단침입죄, 손괴죄, 신분 사칭죄가 된다.
tv조선이 지금 그렇다. ‘드루킹 댓글 사건’을 끌고가는 방송이다. 정부 여당과 각을 세우는 전쟁 중이다. 보도국 상황이 어떨지 눈에 선하다. 앞서가는 기사를 계속 써야 한다. 그 압박이 극에 달해 있을 게다. 기자도 그런 긴장 속에 있었을 게다. 결국, 기자가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허가가 없었다. 태플릿 PC, USB, 휴대전화를 들고 나왔다. 역시 허락받지 않았다. 취재였을 건 맞다. 드루킹 비리 캐기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심각해졌다. 기자는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평생 따라다닐 ‘도둑 전과자’가 됐다. tv조선도 곤경에 처했다. ‘도둑 취재’의 본산으로 몰렸다. 허가 취소 청원에 ‘껀수’가 더해졌다. ‘드루킹 댓글 사건’의 본질도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흔들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순실 태블릿 PC 논란 때와 닮았다.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됐으니 박근혜는 무죄’라고 했었다. 지금은 ‘절도 취재를 했으니 드루킹은 오보’라고 한다.
턱없는 소리다. 최순실 PC 논란은 법원에서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4년이 선고됐다. 드루킹 의혹도 계속 밝혀야 한다. 드루킹 취재의 필봉이 꺾여선 안 된다. 다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절도 취재’가 남긴 섬뜩한 결과는 심각히 받아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탈ㆍ불법 취재가 설 곳을 잃었다. 그런 기자를 범죄자라 말하고, 그런 언론을 범죄집단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 관행을 바꾸라는 사회적 명령이다.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힘들겠지만 바꿔가야 한다. ‘tv조선 절도 기자’와 ‘나’, 시대를 달리하는 둘의 차이는 ‘들킨 기자’와 ‘안 들킨 기자’ 뿐이다.
김종구 주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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