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지극히 인간적인 약속-‘장수(長壽) 공약’

가난한 동네 살면 10년 먼저 죽어
‘天命’ 도와줄 책임, 지자체에
이번 선거부터라도 공약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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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딘가. 분당이라면 74.8세까지 건강할 것이다. 포천이라면 64.8세까지만 건강할 것이고. 이걸 건강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이라면 86.3세까지 살 것이다. 포천이라면 79.7세까지만 살 것이고. 이건 기대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에 살아야 10년 더 건강하고, 10년 더 산다. 부(富)가 곧 명(命)인 셈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富裕長壽 貧困短命)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건강불평등 보고서다.

보고서는 단명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가 낙후된 주거환경이다. 사는 곳이 추하고 비위생적이다. 둘째가 낮은 교육 수준이다. 배움이 짧아 못 벌고 못 산다. 셋째가 자가용 미소유다. 온갖 공해 속을 걷고 뛴다. 산 좋고 물 맑은 포천인데도 분당과 비교하니 이렇다. ‘79.7세’라는 한계를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낙후된 동네라 인정하기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2억9천만개나 되는 자료로 만든 통계다.

보고서는 과제를 던진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주거 환경 개선하면 된다. 교육 수준 올리면 된다. 자가용 보급률 높이면 된다. 누구 책임인지도 명확하다. 국가, 도, 시(市)다. 그 결정을 할 사람은 대통령, 도지사, 시장(市長)이다. 두어 달 뒤면 도지사, 시장 선거다. 그러니 지금은 도지사, 시장의 책임을 말할 때다. 그런데 어딜 봐도 ‘장수 공약’이 없다. ‘오래 살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이 없다.

‘공약 속에 있다’고 할지 모르나, 아니다. ‘장수 공약’은 방향부터 달라야 한다. 의료 공약을 보자. 저마다 대학 병원 유치를 첫머리에 꼽고 있다. 쓰러진 환자가 골든타임에 달려갈 근접 의료 체계를 약속해야 한다. 주거 공약도 그렇다. 너나없이 신도시ㆍ재개발 위주다. 날파리,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정비에 돈 쓰겠다고 해야 한다. 도로 교통 공약도 틀렸다. 차 다닐 도로가 아니라 사람 다닐 도로를 공약해야 한다.

복지? 이건 아예 통째로 잘못됐다. 원래는 이런 게 아니다. 배고픈 자를 먹게 하고, 추운 자를 따뜻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주어진 천명을 다하도록 돕는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배부른 자에까지 더 먹이고, 따뜻한 자에까지 더 덮어준다. 이런 보편적 복지를 시대정신이라고 우기고 있다. 어느덧 이런 복지가 정치를 장악했고, 그 정치가 표심을 삼켰다. 그렇게 완성됐다는 복지천국이 대한민국ㆍ경기도ㆍ성남시다.

건강불평등보고서가 그 실정(失政)을 까발렸다. 국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대한민국, 그 국민의 건강 수명이 경기 분당구민 74.8세, 경남 하동군민 61.09세다. 도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경기도, 그 도민의 건강 수명이 성남 분당구민 74.8세, 포천 시민 64.8세다. 시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지자체, 그 시민의 건강 수명이 분당구민 74.8세, 중원구민 65.3세다. 같은 복지천국인데 사는 곳에 따라 이렇게나 ‘명줄’이 엇갈린다.

보고서가 내린 예상은 더 잔인하다. “2025년까지 국민의 기대 수명은 3.5년 늘어나지만, 소득에 따른 기대 수명 격차가 0.31년 커질 것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이 더 극단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멀지도 않은 날의 얘기다.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도지사ㆍ시장 때 일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해졌다. 하동군민 13년 더 살게 하고, 포천시민 10년 더 살게 하고, 중원구민 9년 더 살게 할 ‘장수 공약’이 필요해졌다.

표(票)-후보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도 된다. 60대 이상 유권자가 1천75만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25.2%다. 50대까지 합치면 45.1%다. 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손주의 무상급식? 자녀의 반값 등록금? 아마도-틀림없이- 그건 아닐 것이다. 장노년층이 입으로 말 못하는 소원은 따로 있을 것이다. 병 없이 오래 살고 싶은 꿈이다.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나. 한없이 소박하지 않나. 장수공약이 그렇게 인간적인 공약이고 소박한 공약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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