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평화의 댐 교훈과 경기도민 이익

금방이라도 금강산 댐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몰아갔다.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기는 섬뜩한 시뮬레이션을 틀어댔다. 국민이 파랗게 질렸다. 수공(水攻) 공포로 빠져들었다. 물을 막아야 살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아이들까지 호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성금으로 661억원을 모았다. 10년 뒤, 독재 정권이 끝나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 공포심 조장은 과장이었다. ‘평화의 댐’은 권력이 만든 ‘독재의 댐’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 오류가 있다. 모두가 독재 권력에 대한 증오만 강조했다. 금강산 댐의 실제 위험성은 외면했다. 평화의 댐은 필요했는데 누구도 말 안 했다. 이를 인정하는 데 또 다른 10년이 걸렸다. 2002년 ‘국민의 정부’가 2단계 공사를 했다. 80m 댐을 125m로 높였다. 애초의 설계-135m-까지 높였다. 저수용량도 5억9천만t에서 26억3천만t으로 늘렸다. 20년 새 몇 배나 커졌을 공사비를 감당해야 했다. 평화의 댐이 남긴 역사적 오류다. 돌아보면, 금강산 수공 위협은 권력의 잘못이었고, 그 위협을 과장한 것은 언론의 잘못이었는데, 평화의 댐의 필요성까지 외면한 것은 모두의 잘못이었다.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수십 년을 그래 왔다. 바뀐 권력은 늘 판단을 새로 했다. 지난 정권의 모든 걸 부정했다. 명패부터 내렸고 흔적까지 지웠다. 대신 자신들의 명패와 흔적을 강조했다. ‘박근혜 지우기’도 그렇게 시작된 권력의 사이클이다. 조금 빨리 온 게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하필 그 복판에 경기도의 사업 두 개가 있다. 고양에 세워지는 K-컬처밸리가 하나고, 판교에 운영 중인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다른 하나다. 이런저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혜를 줬다는 게 K-컬처밸리 의혹이다. 이권이 개입됐다는 게 창조경제혁신센터 의혹이다. 모든 의혹의 중심에 차은택이 있다. 차은택이 시작한 특혜라는 의혹이고, 차은택이 개입한 이권이라는 의혹이다. 경기도의회가 이미 특위를 만들어 파고들고 있다. 언론도 연일 ‘단독보도’라며 의혹의 가짓수를 더해간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제기된 의혹을 덮어선 안 된다. 끝까지 밝혀야 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그 옛날 평화의 댐의 우(愚)를 반복할지도 모르니 그게 걱정이다. 독재권력 밉다고 평화의 댐까지 외면했던 과오(過誤) 말이다. 20년 지나 깨달으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했던 오판(誤判) 말이다. K-컬처밸리는 도민에 꼭 필요하다. 한류단지라고 지정만 해놓고 10년을 보냈다. 그렇게 묵혔던 땅이 무려 30만㎡(9만여평)다. 이곳에 돈 되는 시설을 세우는 사업이다. 테마파크, 공연장, 쇼핑몰, 숙박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투자금이 1조4천억원이다. 단일 투자로는 LG필립스 파주 공장 이후 경기북부 최대다. 만년 베드타운이라던 고양시의 기대가 크다. 논란에 중심에 선 박수영 전 경기부지사가 말했다. “경기도민을 위해 꼭 붙들어야 할 사업이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도 그렇다. 대기업이 벤처기업들을 지원하는 경제 허브다. ‘기업 상생’에도 꿈쩍 않고, ‘동반 성장’에도 꿈쩍 않는 게 대기업이다. 이런 대기업들을 벤처기업 지원으로 끌어들인 제도적 장치다. ‘아이디어 하나에 인생을 거는’ 청년 벤처인들에게 내어준 유일한 비빌 언덕이다. 2년간의 실적 평가도 후하다. 전국 17개 센터 중 최고다. 그 중심에 있는 ‘KT 김 전무’가 말했다. “자금ㆍ판로ㆍ기술ㆍ법률 지원 없인 벤처가 살아날 수 없다.” 요즘, 자고 나면 속보(速報)다. K-컬처밸리에 어떤 특혜가 더 불거질지 알 수 없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어떤 비리가 폭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세를 좇아간다. ‘청와대 냄새 나는 K-컬처밸리를 중단하자’고 하고, ‘차은택 냄새 나는 창조센터를 폐쇄하자’고 한다. 그게 옳을 수 있다. 확률 높은 예언(豫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쯤은 나서 ‘도민의 이익’을 말해야 하지 않나. 누구라도 나서 ‘사업 자체는 살리자’고 해야 하지 않나. 버림받았던 땅 30만㎡를 다시 버리면 안 된다. 박 부지사는 “다시 제안이 오더라도 나는 받는다. 그게 도민을 위하는 행정가의 길이다”라고 말한다. 청년 벤처인들에게 줬던 희망을 다시 뺐으면 안 된다. 김 전무는 “문재인 표면 어떻고 안철수 표면 어떠냐. 벤처기업을 위해 이런 허브 시스템은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들을 지도 모를- 말로 맺으면 이렇다.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확인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도민에 이익되는 K-컬처밸리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공모하여’ - 대통령 운명 가를 문구다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이유? 이런 것들이 있다. 미르ㆍK 재단 강제 모금 사건이다. 경제계를 압박한 권력자의 책임이다.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도 있다.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통치자의 책임이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게이트도 있다. 공사를 구분 못 한 공직자의 책임이다. 청와대 앞에 모인 100만 촛불도 있다. 신뢰를 잃은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다. 이 중 일부만을 탓하는 국민도 있다. 모든 것을 탓하는 국민도 있다. 그런데 확정된 게 없다. 미르ㆍK 재단 설립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추진된 일’이라고 했다. 세월호 7시간은 ‘굿을 한 사실도, 미용시술을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100만 촛불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들었거나 전해 들은 답(答)이다. 부인(否認) 또는 침묵(沈默)이다. 대통령 하야는 중(重)한 일이다.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근거가 필요하다. ‘나라를 위한 일’, ‘전혀 사실무근’, ‘믿었던 사람의 일탈’…. 이런 해명들을 그대로 두고 밀어붙여선 안 된다. 숨죽인 폐족(廢族)에게 궤변의 틈을 줄 수 있다. 확인도 없이 현직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원성을 살 수 있다. 정치가 만들어낸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었다는 역사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숱하게 봐왔던 시간과 여론의 역(逆)이다. 그래서 한 곳만 응시하려고 한다. 검찰이 낼 공소장(公訴狀)이다. 공소장은 국가기관인 검찰이 만든 범죄 증명서다. 수사를 통해 거르고 걸러낸 결과물이다. 언론의 폭로, 정치인의 공세, 여론의 판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법률도 그런 공소장에 신뢰를 부여한다. 피의사실 공표의 기준을 공소장으로 삼는다. 공소장 이전의 공개는 불법, 공소장 이후의 공개는 합법으로 해놨다. 현실적이든 법적이든 공소장의 의미가 이렇게 크다. 이 공소장에 ‘공모하여’가 나올런지도 모른다. 19일께 완성될 최순실 공소장에 등장할 수 있다. ‘피고인 최순실이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라는 문구다. 재임 중 대통령은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 피고인이 되지 않는다. 수사기록엔 참고인 신분, 공소장엔 사건 외(外) 신분이다. 그래서 ‘공모하여’라는 문구의 의미가 크다. 대통령을 사건의 공범으로 삼는다는 확정적 문구다. 퇴임 후 법정에 서라는 형사처벌 예고문이다. 안종범 공소장도 비슷할 때 만들어진다. 미르ㆍK 재단 모금은 안 전 수석이 주도했다. ‘대통령 뜻으로 알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다. ‘모금이 지연되자 대통령이 크게 역정을 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문구도 ‘공모하여’다. ‘피고인 안종범이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란 문구가 있는지 주목할 일이다. 박 대통령을 사실상 강제모금의 주범으로 삼는 표현이다. 이 역시 퇴임 후 형사처벌을 예약해두는 문구다. ‘공모하여’가 정치권에 던질 충격도 크다. 헌법 65조가 규정한 탄핵 조건으로 해석될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탄핵할 수 있다’는 조문이다. 정치가 역풍(逆風)의 부담을 덜고 탄핵으로 내달릴 게 틀림없다. 새누리당이 지켜줄 리도 없다. ‘29표’의 배신이 필요하다지만 대통령을 떠난 의원이 이미 그보다 많다. 여기에 새롭게 실망하며 떨어져 나갈 표도 짐작이 간다. ‘공모하여’가 던질 충격이다. 대통령의 의혹을 대통령의 범죄로 확정하게 될 문구. 대통령 지지 5%를 대통령 지지 0%로 추락시킬 문구.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대통령의 하야로 바꾸어 놓을 문구.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라는 문구도 이제 그 운명의 시간을 줄여가고 있다. 검찰이 최순실 피고인의 공소장을 끝내야 할 19일까지가 작성시한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최태민’ ‘영세교’ - 朴 대통령이 해야 할 고백

국정 농단? 인사 개입? 한두 번 들었던 단어가 아니다. YS 아들이 감옥 가는 것도 봤다. DJ 아들은 둘이나 그랬다. MH 형은 감옥에서 동생의 죽음을 맞았다. 검찰 입구에서 노구(老軀)를 휘청거리던 MB 형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에겐 국정농단, 인사개입이란 형용사가 붙었다. 최순실에게도 같은 사건명이 붙어 있다. 연설문을 주무른 국정농단이고, 문체부 장관을 날린 인사개입이다. 정권의 물이 빠질 때쯤 불거진다는 시기도 닮아 있다. 그런데 분노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남녀노소가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진보 보수가 함께 하야를 말하고 있다. 당(黨)조차 거국내각을 수용하며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그때와 지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로 사교(邪敎)를 향한 극혐(極嫌) 주의가 있다. ‘교주’ ‘주술’ ‘심령’이란 단어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 모든 단어들이 최(崔)씨 일가를 통해 대통령으로 엮이는 데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사교에 씐 국정을 용서 않겠다는 분노다. 초기엔 야당만의 주장이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말했다. “‘사교’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거들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심령대화를 하고 있다”. 그냥 정치공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외신(外信)까지 섬뜩한 평을 시작했다. ‘최순실은 점쟁이’(뉴욕타임스), ‘고(故)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워싱턴 포스트), ‘샤머니즘의 조정’(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민이 믿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사이비 종교를 묶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의 금기어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태민 목사에게 홀렸다’ ‘취임식 오방낭 주머니는 종교 행위였다’ ‘청와대 안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어린이들에게 종교적 훈시를 했다’ ‘세월호 7시간은 영세교 종교의식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게 국민의 일상 대화가 됐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는 부패정부보다 못한 비정상 정부로 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사이비 종교가 뭔가. 1996년, 아가동산 사건이 있었다. 신도가 살해됐다는 투서가 단서였다. 취재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의 상식과 신도들의 상식은 너무도 달랐다. 노동력 착취를 ‘자발적 노력 봉사’라고 했고, 교주 신격화를 ‘부모님 모시는 효 잔치’라고 했고, 집단 폭행을 ‘치료를 위한 신성한 행위’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 인식된 사이비 종교의 정형이 그랬다. 무조건 감싸고 모든 걸 바치는 비정상적 공동체였다. 이런 사교 논란 앞에 기독교계가 분노한다. ‘대통령의 찬송가 연주’라는 동영상이 있다. 2007년 7월18일. 전국 기독교 장로회 하기수련회였다. 피아노에 앉은 박근혜 후보가 찬송가 405장을 연주했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따라 불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그 후 보수 기독교계는 대통령의 텃밭이었다. 그랬던 텃밭이 사이비종교라는 극혐 주의를 만나 싸늘히 등을 보였다. ‘최태민과 영적 부부’라는 주장이 나오는 곳도 이제 기독교계다. 많은 이들이 지지율 9%를 걱정한다. 67%의 하야 주장도 걱정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야 너머로 어른거리는 파멸이란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 박근혜’의 미래가 과거의 흔적까지 휩쓸어 가버리는 참담한 상황이다. 아들이 구속된 YS, DJ도 당하지 않았던 벌이다. 형이 구속된 MH, MB도 지지 않았던 책임이다. 박 대통령에게만 지워진 참담한 벌이다. 이게 지지율 60%를 하야 요구 60%로 만든 사교의 덫이다. 그래도 뭔가를 해봐야 한다면 남은 건 고해성사다.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길만 남았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야 할 두 개의 기도 제목이 있다. ‘최태민과의 관계’라는 고백과 ‘영세교와의 관계’라는 고백이다. 벼랑 끝에 선 대통령이 국민 앞에 어찌해볼 수 있는 마지막 수(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그런 것까지 수사할 검사는 없다”

차장 검사로 부임할 때였다고 했다. 축하 난을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던 모양이다. 얼마 안 가 문자가 도착했더란다. 화훼 업계 하소연이 담긴 문자였다고 했다. 그가 기억해 낸 문자내용은 이랬다. ‘화훼 업계가 너무 힘들다. 이런 입장도 헤아려 달라. 축하 난을 받아 주기 바란다.’ 결국 그는 ‘청렴’을 접고 ‘현실’을 택했다.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인사철마다 난이 오지만 막지는 않는다.” 현직 검사장이 지나가듯 던진 ‘난(蘭) 이야기’다. 지금이 그렇다. 김영란법이 각종 축하 난을 막는다. 5만원은 괜찮은데, 기준 따윈 따지지도 않는다. 오해받기 싫다며 다 막아선다. 그사이 난 값이 폭락했다. 호접란 경매가격이 3천원대다. 생산 원가 3천500~4천원에도 못 미친다. 5천원 하던 덴파레 품종은 3천원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팔리면 다행이다. 판매량이 50% 이상 급감한 지역도 숱하다. 농민에겐 이제 화훼밭이 애물단지다. ‘꽃 팝니다’ 대신 ‘김영란법 폐지하라’고 붙인 곳이 많다. 하기야 화훼농가뿐이겠는가. 식당은 손님을 잃었다. ‘김영란 정식’이라며 문자를 돌려 보지만 헛일이다. 술집도 텅 비었다. ‘각자 계산’ 하느니 안 마시겠다며 발길을 끊었다. 선물 코너도 사람이 없다. ‘3만원 선물’로 욕 듣느니 안하겠다며 외면한다. 시행 전에는 공무원ㆍ교사ㆍ기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다는 지적이 많았다. 시행해보니 이들을 고객 삼던 업자들이 장물아비처럼 몰려 버렸다. ‘정착되면 괜찮다’는 데 그 ‘때’는 알 수 없다. 앞에 있던 의사가 물었다. ‘친한 사람 건강도 봐주면 처벌받게 되는 것 아닌가.’ 검사장이 대답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걱정을 하는 듯하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장담하는 데 그런 것까지 기소할 검사는 없다.” 그러면서 검사의 일반 상식을 말했다. 유명 만화가를 음란죄로 기소했던 옛날 사건 얘기다. 검사장은 지금 생각해도 말 안 되는 수사였다고 회고했다. “다수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얼핏 본 검사장의 김영란법 평이다. 지금은 이렇다. 국민이 권익위만 쳐다본다. 답해 줄 유권해석을 목놓아 기다린다. 그런데 답이 없다. 대학원장협의회가 ‘공무원 장학금’이 불법이냐고 물었다. 답이 없다. 에버랜드가 군인 자유이용권이 불법이냐고 물었다. 답이 없다. 홈페이지로 2천500여개 질문이 들어왔다. 답은 절반도 안 했다. 그나마 대부분 ‘최종 확정은 검찰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결국 ‘한 번씩 걸려 봐야 답 나온다’는 얘긴데…. 국민이 교보재인가. 하기야 애초 답을 낼 수 없었는지 모른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언(法諺)을 넘어선 법이다. 법의 경계를 도덕의 한 귀퉁이에서 한 복판으로 왕창 옮긴 법이다. 도덕에서 법으로 넘어간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니 답할 수 없는 것이다. 검찰 법원으로 간들 달라질 건 없다. 단순 해석만으로도 이렇게 혼란스럽다. 하물며 신병처리를 결정하는 검찰 법원이다. 몇 곱절 혼란스러워질 게 뻔하다. 이런 걸 왜 검사 판사에 떠넘기나. 이제 김영란법도 1주일 지났다. 지금 당장 평가하라면-주관이란 전제를 달겠지만- 낙제다. 권익위는 스스로 공부가 안돼 있고, 자영업자가 받는 피해는 예상보다 크고, 사법 주체의 동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시행준비를 덜 했단 얘기고, 피해규모를 간과했단 얘기고, 입법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런 법을 굳이 왜 만들었나’ 싶은 게 김영란법 1주일을 본 솔직한 후기(後記)다. 정착을 바라야 할지, 개정을 말해야 할지 결정하기도 어렵다. ‘정(情) 사회에서 정의(正義) 사회로 가는 과정이다’. 권익위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혼란은 변화로 가는 성장통이다’. 그 말을 넘겨받은 객들이 쏟아 내는 훈육(訓育)이다. 이런 멋들어진 말 잔치 앞에 모두 입을 다문다. 기득권 옹호랄까 봐, 부패 세력이랄까 봐 침묵한다. 그 사이로 비명과 아우성이 커졌다. ‘망한다’는 업자들의 비명, ‘혼란스럽다’는 국민의 아우성이다. 1주일이라서 이럴까. 한 달 뒤엔 좋아질까. 기다려는 보겠지만….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核-대통령 노무현의 실언과 명언

“미국한테 바짓가랑이 매달려가지고, 미국 응댕이 뒤에서 숨어 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 작전 통제권 이양을 강조하는 연설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호통도 그때 나왔다. 구구절절 옳았다. 벌써 10년 전이다. 다시 들었는데, 여전히 명연설이다. 나라는 핵전등화(核前燈火)에 놓였고, 그때마다 괌에서 올 전략폭격기를 구세주처럼 기다린다. ‘부끄러운 줄 알라’는 호통은 지금이 더 아프다. 그런데 그 속에서 오류가 보인다. 남북 간의 국방력을 비교하는 대목인데,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군이 방위력이 얼마만큼 크냐. 정직하게 하자… 대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 (남북 국방력이)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85년에 역전됐다고 보면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미군) 2사단은 뒤로 나와도 괜찮습니다.” 군사력이 우리쪽으로, 그것도 오래전에 기울었다고 했다. 대통령만큼 국방력의 실체를 아는 이는 없다. 그런 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한 장담이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20년 전에 북한은 핵기술을 사들였다. 그 10년 전쯤부터는 플루토늄(Pu)을 뽑아내고 있었다. 2006년 10월 9일엔 1차 핵실험까지 했다. 대통령 연설은 그 해 12월 21일에 있었다. 핵실험 두 달 뒤에 현직 대통령이 국민에게 “우리가 훨씬 강하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의도된 거짓이거나 심각한 오판이다. 과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북핵 미사일의 시작은 90년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미국이 막대한 돈을 소련에 퍼부었다. 우주 공학과 핵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챗구멍이 생겼고 그 출구가 북한이었다. 밥줄 끊긴 소련 학자들이 들어갔다. 그때 들어간 기술이 지금의 북한 기술이다. 북한식 핵이 됐고, 북한식 미사일이 됐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기술 이력(履歷)이 증명하고 있다. 우주 공학자 이창진 교수의 진단도 그렇다. 하기야 노 대통령에게만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국방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엄살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고, 과장으로 국민을 자만에 빠뜨리기도 했다. 엄살은 독재(獨裁)로 쓰였고, 과장은 반미(反美)로 쓰였다. 그사이 신뢰는 없어졌다. 이제 대통령이 말하는 국방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대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한다. 지금 내리는 국민의 판단은 ‘남북 군사력은 핵무기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다. 핵 보유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국민 75%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위협적’이라고 답했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때보다 14%p나 높아졌다. 핵 보유에 대해서도 58%가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가지면 안 된다’(34%)보다 20%p나 높다.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하락했다. 이게 국민 생각이다. ‘북한 핵이 무섭고, 믿을 수 있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핵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핵 보유’가 정치 이슈에서 생존 이슈로 바뀐 것이다. 그래도 들을수록 명연설이다. 오판이 섞였지만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국 응댕이 뒤에서 숨어 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자주의식을 말했다. 이제 그의 말대로 ‘미국 응댕이’ 뒤에서 튀어나올 때다. 때마침 그 근거를 국민이 만들었다. ‘핵으로 무장하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손에 쥐어진 더 없는 무기다. 못 이기는 체 따라가면 된다. ‘핵 보유’에 채웠던 금기를 깨고 ‘핵무장’을 말하면 된다. 미국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하면 더 좋다. 김종구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진해운 마지막 5일, 정부는 없었다

기업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다. 망한 날짜가 어느 하루로 기록될 뿐이다. 한진해운도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망한 날짜가 8월 30일로 기록될 뿐이다. 그래도 자의적으로나마 마지막 5일에 의미를 둬 보자. D-5일은 8월 25일이다. 한진해운이 마지막 자구안을 제출한 날이다. D-0일은 8월 30일이다. 한진해운 주식이 장중 거래 정지된 날이다. 이런 억지 획정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 대기업의 마지막 5일과 그 5일간 보여준 정부 모습 때문이다. 8월 25일 하루는 한진에게 더없이 길었을 날이다. 회생을 위한 마지막 자구안의 제출 시한이었다. 업무가 끝나갈 무렵 한진의 자구안이 산업은행에 도착했다. 산은은 한진해운 채권단 중 66%를 차지하는 주(主)채권은행이다. 경제부 기자들의 관심이 산은을 향했고, 반응이 흘러나오는 데는 두어 시간이면 족했다. 한 마디로 ‘턱도 없다’였다. 1조2천억원이 필요한데 자구안은 5천억원 언저리였다. 이때부터 ‘한진해운’ 연관 검색어에 ‘법정관리’가 붙기 시작했다. 그날, 정부는 온종일 침묵했다. 8월 26일. 자구안에 대한 입장을 산은이 공식 발표했다. 정용석 산은 구조조정본부 부행장이 직접 나섰다. “사실상 자구안 가운데 실효성이 있는 지원은 4천억 원뿐이다.” 또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조 회장이나 그룹 측이 한진해운을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라고까지 말했다. 채권시장에서 한진해운 가치가 곤두박질 쳤다. ‘내주 채권단 회의에서 최종 결정 내겠다’는 일정이 구체화됐다. 법정관리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날도 정부는 온종일 침묵했다. 8월 29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주말 이틀이 흐른 월요일이다. 주말에 응축됐던 시민과 업계의 불안이 터져 나왔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주협회도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피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진해운도 마지막 수를 던졌다. 나흘 전 자구안의 수정안을 냈다. 증자일정을 구체화하는 안이었다. 하지만, 산은은 냉담했다. 이동걸 회장의 ‘구조조정 가치도 중요하다’는 한 마디가 업계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날도 정부는 아무 입장이 없었다. 운명의 8월 30일이다. 밤사이 바뀐 분위기가 전해졌다. 채권자인 KEB 하나은행이 한진 구제안에 조건부로 동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현대상선과의 합병 얘기도 흘러나왔다. 오전 11시 예정인 채권자 회의를 앞두곤 한진해운 주식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은의 입장은 강경했다. 이동걸 회장이 “내가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다시 한번 파국을 예고했다. 결국, 오후로 들어설 때쯤 자구안은 부결됐다. 곧이어 증권거래소가 한진해운 주식을 정지시켰다. 이날,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 비로소 나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채권단 결정은 자구노력의 충실성, 경영정상화 가능성, 해운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해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한진해운 주식 거래가 중지된 몇 분 뒤였다. 그런데 말의 맺음이 굳이 제3자 논법이다. “판단했다”가 아니라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은행들의 결정을 지켜만 봤을 뿐이라는 표현이다. 한진해운은 은행들이 퇴출시켰고, 정부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싶어 보이는 표현이다. 한진해운이 망했다. 과연 망할만 했는가. ‘땅콩 회항’과 ‘재산 밀반출’로 얼룩진 총수 일가의 부도덕이 빚은 자업자득인가. 이 토론은 시간을 두고 이어질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현재-대기업이 망하고 24시간이 흐른- 논제가 있다. 정부의 5일간 침묵이다. 국적선사 국내 1위 기업이다. 세계 7위 해운사다.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책임진 운송사다. 세계 각국의 30여개 법인과 200여개 지점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다. 이 대기업이 망해가는 5일이었다. 그런데 이 긴박한 순간에 정부는 빠져 있었다. 은행 관계자의 말이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업계 1위 대기업의 정리 모습으로 격에 맞는 것인가. 그 5일. 이런 분석을 내놓은 보도가 있었다. -정부가 야당의 서별관 청문회를 부담스러워 한다. 안 그래도 대우조선 특혜 논란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진해운 지원까지 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빠져 있고 은행이 앞장서 악역을 할 것이다. 결국,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갈 것이다. - 많은 이들이 ‘아니겠지’라고 여겼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한진해운은 정확히 그 시나리오를 따라 업계에서 사라졌다. 이게 우연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찰청장 25년-영남 12명, 경기 0명

이강순씨는 전(前) 경찰서장이다. 경기도 용인 출신이다. 그가 말했다. “인사는 ○○도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안 돼. 경찰 내 ○○ 마피아가 대단해.” ‘최 경위’는 지금도 형사다. 경기도 수원 출신이다.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도 파워가 장난 아니다.” 이 전 서장은 간부 후보 출신이다. 최 경위는 순경부터 시작했다. ‘성분’이 다른 두 경찰이 같은 말을 했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다. 혹은 ‘○○도 마피아’, 혹은 ‘△△도 마피아’라 부른다. 사실 이러면 안 된다. 다른 기관도 아니고 경찰이다. 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도둑놈 잡는 실력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 그런데 둘은 지역을 얘기하고 파벌을 얘기했다. 피해의식인가. 승진 불만이었나.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게…. 다른 경찰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 말들이 맞아 보이는 인사의 예(例)도 수두룩하다. 안타까운 건 그 둘이 하필 경기도-다들 ‘세계 속에 웅도(雄道)’라며 추켜 세우는- 출신이라는 점이다. 경찰관 둘의 푸념. 이 푸념을 뒷받침할 통계가 있다. 경찰청장 제도는 1991년 시작됐다. 참여정부 2003년부터는 2년 임기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취임했던 경찰청장이 19명이다. 이 19명의 출신지를 새삼 세어 볼 필요가 있다. 영남 출신이 무려 12명이다. 전체 63%다. 나머지 7자리는 호남ㆍ충청ㆍ서울ㆍ황해도 출신이 나눠 가졌다. 인구 154만의 강원도는 0명, 인구 62만의 제주도도 0명이다. 그리고 인구 1천252만의 경기도가 0명이다. 권력(權力)과 정치(政治)가 만든 통계표다. 영남 권력은 영남 청장을 앉혔다. 호남 권력은 호남 청장을 앉혔다. 독점하다 미안할 땐 충청 청장을 앉혔다. 경기도는 권력을 쥐어 본 적이 없다. 배려해야 할 정체성도 없다. 그런 경기도에 주어질 청장 자리는 없었다.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정원장 자리가 그랬던 것처럼, 경찰청장도 25년째 경기도를 비켜갔다. 강원도, 제주도, 그리고 경기도에겐 그런 경찰청 25년이 곧 파행인사 25년이다. 차라리 옛날은 나았다. 수장(首長)의 자격을 업무에 맞추는 시늉이라도 했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가 치안국장 시절이다. 경찰의 주(主) 업무는 빨갱이 잡는 거였다. 김태선(2,4대ㆍ함경남도)ㆍ장석윤(3대ㆍ강원도)ㆍ이익흥(5대ㆍ평안북도)ㆍ홍순봉(6대ㆍ평안남도) 국장이 줄줄이 이북 출신이다. 빨갱이 싫어 고향 버리고 온 인사들이다. 빨갱이 잡는 경찰에 더 없는 적격으로 본 듯하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출신지보다는 합당했다. 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Regionalism). 사전은 이렇게 풀고 있다. ‘지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협력을 촉진하는 개념’. 그런데 이 말이 한국 정치로 오면서 패악(悖惡)이 됐다. 지역끼리 뭉치고 타지역을 배척했다. 경찰에 오면서는 더 어긋났고 더 나빠졌다. 지역끼리만 청장 했고, 다른 지역의 기회는 빼앗았다. 그 지역주의에 병들어온 경찰청 25년이 몸쓸 통계를 남겼다. 영남 청장 12명. 호남 청장 2명. 경기도 청장 0명! 고쳐야 한다. 새로운 지역주의로 고쳐야 한다. 소외된 지역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소외된 지역을 넉넉히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강원 출신 청장, 제주 출신 청장, 경기 출신 청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맞춰 놓고 새로 시작하는 게 공정한 개혁이다. 망가진 경찰청 25년 인사를 바꾸는 억지스러우면서도 유일한 치료법이다. 역(逆) 지역주의라고 노(怒)할 필요도 없다. 그래 봤댔자 20명 중 1명이고, 100%의 5% 아닌가. 내일이 신임 청장 청문회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할 말 한 젊은 검사, 할 말 못한 젊은 검사

1997년 1월 26일 밤이었다. 밤늦게 삐삐가 울렸다. ‘031-210-○○○○’. 특수부장검사실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 기자, 들고 다니던 문건 어데서 났나.” “갑자기 왜요.” “지금 난리 났다. 임춘택이가 그걸 조선일보에 올렸다. 근데 이놈아가 지금 연락이 안 된다.” ‘문건’이 터진 것이다. 문건의 파괴력은 기자도 짐작했다. ‘부장’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당부했다. “그거 나 보여줬다고 위에다 얘기하지 마라.” 다음날 조선일보 칼럼은 이랬다. “퇴임 검찰총장의 공직 취임 금지 규정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임명권자의 인사권 남용 방지를 위한 것이다… 김기춘 전 총장은 (총장 퇴임 후) 곧 법무장관으로 가서 집권당 선거 활동을 했고… 김두희 전 총장은 총장 취임 며칠 만에 법무장관에 임명해서 임기제를 훼손했으며, 김도언 총장도 퇴임하자마자 집권당 지역구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세 사람 모두 검찰에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수원지검 특수부 검사 임춘택’-” 난리 날 만했다. ‘검찰총장 퇴임 후 공직 제한’은 당시 검찰의 뇌관이었다. 검찰총장의 정치개입을 막는다며 야당이 만든 제도였다. 김기수 총장이 반기를 들었다. 변호사들과 함께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따지고 보면 총장 개인의 퇴임 후 먹거리다. 그런데도 모든 검사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필 그런 때 검찰총장의 뜻과 정반대 얘기를 현직 검사가 신문에 기고한 것이다. 전임 총장들의 정치 입문 과정까지도 조목조목 비난했다. 벌집을 들쑤신 것이다. 겉으론 평온했다. ‘주의조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부에선 가혹하게 돌아갔다. 임 검사는 그날로 짐을 쌌다. 원치 않는 형사부로 쫓겨났다. 담당 부장도 며칠 못 갔다. 차장실엔 ‘임 검사 출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한번 시작된 보복은 정기 인사 때마다 이어졌다. ‘경향(京鄕-서울ㆍ지방) 교차근무’라는 원칙은 그와 무관했다. 철저히 지방과 한직으로만 내둘렸다. ‘조직과 다른 얘기를 한 죄.’ 그 죄에 묶인 젊은 검사의 고난은 그때부터 5년여간 계속됐다. 그가 수원지검을 떠날 때 봤다. 밥상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물었다. 그는 내게 “내 원고를 어떻게 김 기자가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진짜 배경이 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쓰레기통 뒤지다가 봤다. A4 용지 두 장에 플러스 펜으로 쓴 글이었다. 내용이 심상치 않았지만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특수부장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그의 대답도 복잡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가 친구다. 형평성 잃은 논조에 반박하기 위해 밤새도록 써서 줬다. 며칠간 보도되지 않아 이상했다. 그래서 찾으러 갔는데 그날 마침 가판(假版)에 보도돼 있었다. 옷을 벗을 각오로 쓴 것이냐고 하던데. 내가 왜 옷을 벗냐.’ 이후에도 현직 검사들의 ‘기고 파문’은 있었다. 이영규 부부장(사시 30회ㆍ‘송두율씨 구속하라’), 김원치 차장(사시 13회ㆍ‘한총련 출범부터 잘못’), 이용주 검사(사시 34회ㆍ‘법무부 장관 사퇴해야’)…. 그런데 임 검사의 글이 지금껏 얘기된다. 글이 주는 당연함과 사소함, 가혹함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정치 중립은 당연한 얘기였다, 검사들도 말하던 사소한 얘기였다. 그런 글에 내려진 징계가 가혹했다. 검찰조직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더 없이 극(極)한 예다. 그 ‘임 검사 글’로부터 20년이다. 다들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검사가 자살했다. 부장검사 때문이라고 유언했다. 감찰에서 이런저런 빌미 거리가 나왔다. 어깨도 쳤고 욕도 했던 모양이다. 한 번쯤 대들면 될 일이었다. ‘술 안 먹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하기가 그렇게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부장검사에게 대드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결론을 내렸다. “잘못된 조직문화가 불러온 일이다”. 20년 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하다가 징계를 당했다. 20년 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참다가 세상을 등졌다. 이 2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화두가 검찰조직에서 어른거린다. ‘이유 불문’ ‘상명하복’ ‘검사 동일체’…. 없어졌다던 이 화두들이 여전히 검찰을 틀어쥔 모양이다.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검사 2천명 뿐이다. 각자 스스로에 묻고 열린 결론으로 풀어봐야 한다. ‘나는 부장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총장과 다른 뜻을 신문에 쓸 수 있는가’. 글 시작에 앞서 임 검사와 통화했다. 변호사인 그와 자살 검사 얘기를 했다. 지금의 생각을 칼럼으로 써 달라고 했다. 답변이 20년 전보다 더 간단해졌다. “글은 무슨… 이제 조용히 살고 있는데… 만나서 밥이나 먹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이제 ‘지방재정개악’ 떼고 ‘지방분권개헌’ 붙여야

시작은 4월 22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6 재정전략회의’에서 개편안이 거론되면서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석 달째다. 그 사이 국가 전체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애초 지방재정개편은 ‘부자 시군’과 ‘가난한 시군’의 문제였다. 지자체 간 갈등을 유발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비난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부자 시군, 가난한 시군 없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분권으로 개헌하자’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6·10 민주항쟁의 결실이 ‘직선제 개헌’이었다면 지금의 헌법 개정은 주권재민을 위한 것이고 그 핵심은 자치분권”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개헌이 된다면 헌법 전문에다가 분권과 자치의 시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규정이 빈약하다… 지방분권 쪽으로 가는 게 옳다”고 했다. 자치를 말하는 모든 이들이 지방분권개헌을 말하기 시작했다. 불교부단체인 수원시 염태영 시장도 그렇게 주장했다. 지난 11일 대시민 호소문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은 시민의 권익을 지켜주는 안전장치”라며 “지방재정의 실질적 확충, 참된 지방자치와 분권의 실현을 위해 지방분권형 개헌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전국 단체장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몇 푼 나눠주는 게 아니라 진정한 분권 실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쯤에서 돌아봐야 할-불교부단체들엔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이 있다. 사실 지방재정 투쟁은 6개 시만의 얘기였다. 나머지 220개 시ㆍ군ㆍ구는 관심 없었다. 심지어 ‘먹고 살만한 동네의 놀부 심보’라는 눈총까지 있었다. 언론에도 딜레마였다. ‘수원의 억울함은 보도하지만, 양평의 가난함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시장 단식’, ‘시장 시위’라는 선정적 제목 밑에 잠시 그 고민을 묻어뒀을 뿐이다. 이런 때 지방분권개헌이 등장했다. 전국이 이처럼 하나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싶다. 경기도와 충돌하는 충청도-안희정 충남지사-가 찬성한다. 가장 부자라는 서울-박원순 서울시장-도 찬성한다. 여의도 정치의 지도자-정세균 국회의장-도 찬성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찬성하고,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찬성하고, 여의도 정치권이 찬성한다. 규제개혁처럼 싸우지도 않고, 재정개혁처럼 질투하지도 않는다. 길이 우연히도 이렇게 뚫렸다. 6명 시장에겐 암흑 속에 나타난 출구(出口)일 수 있다. 과감히 지방재정개악을 내려놓고 지방분권개헌을 집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다 죽는다’는 지방재정개악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권한 좀 달라’는 도시계획갈등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길 좀 넓혀달라’는 예산편성민원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공무원 좀 더 달라’는 인사행정불만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지방분권이면 다 해결된다. 부분(部分)에서 벗어나 전체(全體)를 보면 훤히 보이는 답이다. 그 답을 헌법에 지방분권으로 대못 치자는 것이다. 안 쫓아갈 이유가 있나. 시민의 투쟁이 벌써 3개월째다. 100만명이 서명해 정부를 찾아갔다. 1천500명이 올라가 데모도 했다. 절절한 현수막으로 길거리도 덮었다. 이들이 있어서 시장들이 싸울 수 있었다. 그랬는데 그 시민들이 지쳐간다. 더는 서명할 시민도, 더는 상경할 시민도 없어 보인다. 출근길 현수막도 장맛비로 늘어졌다. 이제 그 앞에 선 시민도 안 보인다. 지친 것이고 물린 것이다. 이쯤 되면 그만둘 때다. 새롭게 바꿀 때가 됐다. 그 바꿀 자리에 새로 붙일 구호가 바로 “완전한 지방자치, 지방분권 개헌하라”다. 염태영 시장이어도 좋고, 이재명 시장이어도 좋고, 정찬민 시장이어도 좋고, 최성 시장이어도 좋고, 채인석 시장이어도 좋고, 신계용 시장이어도 좋다. 누군가는 나서 지방재정개악 현수막을 떼어 내고 지방분권개헌 현수막을 달아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도 이전’ 南 지사, ‘할 말 잃은’ 경기도민

민선(民選) 경기지사가 네 명 있었다. 이인제, 임창렬, 손학규, 김문수 지사다. 이 중 누구도 ‘수도를 이전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민선 3기 이후의 지사들은 더 그랬다. 수도이전을 공약한 참여정부 때문이다. 손학규ㆍ김문수 지사는 수도이전에 맞선 투사였다. 둘 다 대통령이 목표인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수도 이전만큼은 싸웠다. 중원-충청 票-을 버리면서까지 싸웠다. 그것이 경기지사에게 주어진 수도(首都)의 의미였다. 그 금기(禁忌)의 선을 남 지사가 넘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기자고 했다. 당장 충청권이 쌍수를 들었다. “(남 지사가) 좋은 발언을 해주셔서 정말 환영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이춘희 세종시장). “수도권 단체장이 그 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안희정 충남지사). 충청권 언론도 남 지사 띄우기가 한창이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남 지사의 소신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다’(중도일보 사설). 역대로, 충청권에서 이런 대우를 받은 경기지사는 없다. 기껏해야 특강 몇 번 오가는 게 다였다. 내용 없는 종이에 상생하자고 서명하는 게 다였다. 그래 놓곤 이내 ‘지키는 자’와 ‘빼앗는 자’의 관계로 돌아갔다. 그런데 남 지사는 지금 충청권의 희망이다. 남 지사의 정치 감각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대통령 형 불출마 요구’ ‘국회 선진화법’ 등 위기 때마다 빛났던 그의 감각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그가 던진 이슈로 빠져들고 있다. 근데, 이를 지켜보는 경기도민이 혼란스럽다. 많은 이들이 할 말을 잃고 있다. 수도 이전이 정국을 휩쓸었던 건 2004년 전후다. 그때 서울ㆍ경기ㆍ인천시민은 수도 이전에 반대했다. 경기ㆍ인천 시민 가운데 60~70%가 반대였다. 그 후 이런 여론 추이가 바뀌었다는 통계는 없다. 그렇다고 수도이전을 뒷받침할 새로운 어용(御用) 논리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난데없이 ‘수도 이전’ 주장이 나왔다. 그것도 현직 경기지사가 주장하고 나섰다. 그때의 통계대로라면 도민 60~70%는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Give-take’라는 기본 셈법도 없다. 수도 이전을 처음 주장할 때 남 지사는 “수도권 규제라는 낡은 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무슨 규제를 어디까지 풀자는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충청도 지도자 누구에게도 수도권 규제 합리화에 협조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수도를 충청도에 주자’는 주장만 반복한다. 아마도 일방적으로 베풀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스스로의 모순도 있다. 대선에 대해 남 지사는 “경기도지사로서 일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군불을 지피는 건 수도 이전 이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이다. 아무개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세상 다 아는 대선 공약이다. 누가 봐도 정치 영역이다. 행정에 충실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을 한꺼번에 하는 게 지금의 남 지사다. 경기도 행정에 충실한다면서 충청도 정치에 충실하고 있다. 잘 안다. 이게 다 대통령 실험이다. 도정 연정도 야당 연정을 위한 실험이다. 지방장관도 야당 장관을 위한 실험이다. 물론 가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절대 써먹으면 안 될 소재가 있다. 바로 수도(首都)다. 이 수도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사람도 있다. 바로 경기도지사다. ‘경국대전 이후 관습헌법’이라고 헌재가 정의했다. 그 터전에서 600년을 산 도민이다. 그 도민이 뽑은 경기지사다. 왜 하필 그런 경기지사가 수도를 건드리나. 경기도민이 그래서 혼란스럽다. 환호에 빠져드는 충청권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충청도에서 전화가 왔다. 언론인이라고 했다. 남충희 전(前) 경기부지사에게 소개받았다고 했다. “남 지사의 지방장관 아이디어 평가가 어떠냐”고 물었다. “해볼 만한 새로운 시도”라고 답했다. “경기도민이 연정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싸우지 않으니 다들 좋아한다”고 답했다. “정말 경기도는 의회에서 싸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난 2년간 결과와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고 답했다. 7분 내내 질문은 ‘남 지사’였다. 그런데 딱 하나, 그 ‘충청도 언론인’이 묻지 않은-틀림없이 물어볼 거라고 예상했었던- 질문이 있다. 수도 이전 주장에 대한 의견이다. 만일 물었다면 ‘경기도 언론인’은 이렇게 답하려 했다. ‘경기도민의 생각은 남 지사의 주장과 다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빚 갚은 어느 市 이야기

흔히들 이 시(市)를 이렇게 얘기한다. -아방궁 같은 호화 청사가 있다. 수천억 들인 전철이 굴러간다. ‘억’ 소리 나는 축제가 매일 열린다. 멀쩡한 도로를 파헤쳐 돈을 처바른다. 사람도 없는 곳에 호화 공원을 만든다. 이런저런 단체에 뭉텅이로 돈을 뿌린다. 공무원의 주머니는 수당으로 넘쳐난다. 그래도 걱정 없다. 개발 이익금이 샘물처럼 계속 솟아난다-. 시각이 이러니 내리는 평가도 그렇다. ‘그런 시의 돈은 좀 뺏어도 된다.’ 잘못 봤다. 이 시를 짓누르고 있는 건 빚더미다. 호화청사는 애물단지로 변한 지 오래다. 전철 사업비 5천153억원은 빚으로 남았다. ‘환매 조건부 개발 방식’이 시 예산을 갉아먹고 있다. ‘앞선 시장들’이 벌려놓은 짓이다. ‘지금 시장’에겐 매일 빚 독촉장이 날아든다. 그렇다고 누굴 원망할 입장도 아니다. 정부에 단단히 찍혔다. 방만한 지자체의 표본이 됐다. 사방천지에 도와줄 곳은 없다.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선심성 행사를 없앴다. 축제도 줄였다. 사업도 태반을 줄이거나 취소했다. 도로 확·포장, 고속도로 IC 접속도로 신설, 지방 도로 개설, 교차로 개선 등이 사라지거나 축소됐다. 신규사업은 생각도 안 한다. 총액 한도제를 도입해 스스로를 꽁꽁 묶었다. 이러다 보니 늘어나는 게 주민 반발이다. 곳곳에 볼썽사나운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장 물러가라.’ 그래도 이렇게 지독하게 굴며 수천억원을 아꼈다. 그 돈으로 빚을 갚고 있다. 공직자들도 다 내려놨다. 시ㆍ의회의 업무추진비 30%를 삭감했다. 5급 이상 간부들은 기본급 인상분을 반납했다. 직원들의 복지포인트도 50% 삭감했다. 해외 문화 체험 인원도 80명에서 50명으로 줄였다. 연가보상 일수 최대 지급일 수도 50% 삭감했다. 하루 3만원 받던 일ㆍ숙직비까지 60%로 줄였다. 꼭 필요한 인력 아니면 채용도 안 한다. 이렇게 해서 후생복지비(47억원), 인건비성 경비(30억원), 기타 경비(50억원)를 줄였다. 빚이 줄기 시작했다. 2012년 빚은 6천275억원이었다. 2016년 6월 현재 557억원이다. 5천153억원이던 전철 빚은 이미 지난해 말 ‘0’을 찍었다. 2017년이면 총 부채도 ‘0’이 된다. 내심, 그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막판 졸라매기가 한창이다. 체납세 징수를 위해 담당 부서가 바쁘다. 몇 개 남지 않은 공유재산을 팔려고 ‘땅장사’로 뛰어든 공무원들도 있다. 이제는 시민들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칭찬할 일이다. 예산 낭비로 망가진 지자체는 많다. 그래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자체도 많다. 하지만, 이를 극복했다고 인정된 지자체는 많지 않다. 특히 그 과정이 생생히 증명된 지자체는 없다. 시민들도 이제 불만 대신 자부심을 말한다. 이장 A(54)의 얘기다. “정부도 인정해줄 거다. 정상으로 돌아올 날도 멀지 않았다.” 이렇던 시에 청천벽력이 생겼다. 생각지도 않았던 철퇴가 떨어졌다. ‘빚 청산’ 이전으로 되돌리는 철퇴다. 지방재정개혁이다. 매년 1천700억원씩 정부가 떼어간다고 한다. 시가 굶주리며 갚아온 빚이 매년 1천 몇 백억원이다. 그만큼씩의 돈을 정부가 꼬박꼬박 가져가겠다고 한다. 더 졸라맬 허리띠도 없다. 수당도 더 줄이기 어렵고, 직원도 더 줄이기 어렵다. 더 팔 재산도 없고, 더 미룰 사업도 없다. 결국 ‘지난 2년’처럼 계속 살라는 얘긴데…. ‘빚 청산’이라는 희망도 버리란 얘긴데…. 2년을 참고 살아온 시민들에겐 정부가 야속하다. 두어 달 전, 시장(市長)은 말했다. “조만간 부채 제로(0) 선언할 거야. 그러면 시민들이 원하는 거 다 해줄 수 있어.” 소주 한 잔이 힘을 줬던 모양이다. ‘제로 선언’의 시기도 공언했다. 그 후 지방재정개혁안이 등장했다. 그 직격탄이 시에 떨어졌다. 엊그제-광화문 1인 시위가 끝난 다음 날-, 시장이 말했다. “(공정 80%) 운동장 건설도 중단해야 하는 건가…. 힘들다.” 2년만 참자고 했던 시장에게도 정부가 한없이 야속한 모양이다. 용인시 얘기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자치(自治)-‘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

‘고기리 계곡’으로 더 유명하다. 산 좋고 물 좋고 풍수까지 좋다. 이런 곳에 10년도 더 된 숙원이 있다. 주말이면 꽉 막히는 도로다. 지적도에는 뻘건 도로선이 그려져 있다. 그걸 10년째 못하고 있다. 시 예산 파국 때문이다. 그러던 고기동에 희망이 생겼다. ‘곧 시가 빚을 다 갚는다더라’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경전철 빚 5천억원이 정리됐다. 찔끔찔끔 보상도 해주고, 군데군데 도로도 넓어져 가는 중이다. 이런 용인시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느닷없이 날아든 ‘재정 가압류 딱지’다. 조만간 1천억원을 빼앗아 간다는 통고서다. 발송처는 대한민국 정부다. 그러니 호소할 데도 없다. 경전철 빚 5천억 갚는 데 5년 걸렸다. 1년에 1천억씩 갚았다. 그런데 꼭 그만큼씩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기동이 다시 걱정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제2, 제3의 고기동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허리띠 졸라맸던 5년이 허사가 됐다. 그 용인 옆으로 성남시가 있다. 24살 청년들에게 50만원의 청년 배당을 준다. 1만명쯤 받는데 요긴하게 잘 쓰는 모양이다. 다른 지역 24살 청년들의 부러움을 산다.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불과 6년 전 성남은 파산 상태였다. 호화 청사, 예산 낭비로 금고가 거덜났다. 당겨 쓴 판교 특별회계 5천200억원이 빚으로 남았다. 결국,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러던 시가 이제 빚도 갚고, 돈도 준다. 여기에도 ‘가압류 딱지’가 날아들었다. 매년 1천200억원씩 가져갈 테니 그리 알라는 일방적 통보다. 24살 청년 배당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확정된 무상교복 사업은 시작도 못 해보게 됐다. 산후 조리 복지에 걸었던 여성들의 기대도 날아갔다. 어렵사리 탈출한 모라토리엄이다. 그렇게 모아 만든 여분으로 시작해보려던 성남시만의 복지다. 이 모든 것들이 ‘1천200억짜리 압류 딱지’로 날아가게 생겼다. 꼭 10년 전, 우리는 유바리(夕張)시를 봤다. 펑펑 쓰다가 파산된 일본 지자체였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틀어쥐었다. 공직사회부터 철퇴를 맞았다. 수가 줄었고, 월급도 줄었고, 재정권도 빼앗겼다. 우리 정부가 널리 알렸다. 방만한 지자체를 군기 잡는 본보기로 썼다. 호화청사를 트집 잡는 재료로 썼다. ‘우리도 파산 지자체가 나올 수 있다’며 겁도 줬다. 투융자 심사 강화로 지방을 옥죈 게 그 즈음부터다. 그리고 10년이다. 유바리시를 다시 보자. 초ㆍ중등학교가 11개에서 2개로 줄었다. 복지 회관이 문 닫았고, 인구도 반 토막 났다. ‘이제 풀어주자’는 요구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단호하다. “느슨하게 풀어줄 수 없다”며 원칙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본의 정책이다. 지자체 빚만 200조엔에 달하는 일본이다. 하지만, 도쿄 예산 빼앗아 유바리시에 주는 발상 따윈 안 한다. 철저하게 책임질 곳에 책임 묻는다. 같은 10년, 우리 정부는 달랐다. 방만한 지자체에 대한 경고는 사라졌다. 대신 잘 사는-정확히는 그저 겨우 먹고사는-지자체의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경전철 빚 5천억원 갚느라 고생한 용인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탈탈 털어 모라토리엄을 졸업한 성남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책임 있는 지자체에 메스를 대는데, 한국 정부는 책임 없는 지자체에 메스를 댄다. 사전에 적힌 자치(自治)의 의미는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이다. 한번이라도 국어사전을 봤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지방재정제도 개편안’이다. 그래서 나쁘다. 지방 정부 곳간에 중앙 정부가 손을 대는 나쁜 정책이다. 뺏기는 지역과 빼앗는 지역이 어색하게 갈라서야 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우리 아빠, 순직이시잖아요”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프다. 그날의 영결식도 그랬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도지사도 꽃을 받쳤다. 신문사 사장도, 현장 기자들도 고개를 숙였다. 바삐 살다간 그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다. 언론은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순직한 안수현 원장, 영결식 거행’ ‘중국서 순직한 안 원장 경기도청장 엄수’. 딸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훗날 청원서에 이렇게 썼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15일이면 꼭 3년이다. 이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공보실, 교통과장실, 자치국장실, 연구원장실…. 어디에도 그가 앉았던 흔적은 없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그저 ‘성실히 살다가 순직한 어느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그런 안 원장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던 딸이다. 그 딸이 3년째 아버지 이름을 붙들고 있다. 보훈지청으로, 법원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아빠는 순직이에요. 인정해주세요.” 돌아보면 언론의 오보(誤報)였다. 도지사의 조사(弔辭)도 틀렸다. 그의 죽음은 순직이 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보훈처가 그렇게 결정했다. 2014년 3월 18일자 보훈처의 심의 의결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고인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4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하고,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3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한다.’ 순직(殉職)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 생명ㆍ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만찬 후 숙소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찬에서 먹은 술도 이유가 됐다. 백주 2병이었고 40도짜리였다고 했다. 8명이 나눠 먹었으니 안 원장의 음주량은 125㎖라고도 했다. 그의 10년치 치료 내역도 모두 깠다. 추간판 장애, 고혈압, 급성편도염, 손발톱 백선…. 사망 원인을 지병(持病)과 연관 짓는 전력 들추기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지병 있는 사람이 술 먹다 죽었다’다. 정말 그런가. 정말 안 원장의 사망은 업무와 무관한가. 정말 술 먹고 즐기다가 사망한 것인가. 숨진 곳은 중국 산둥성 행정학원 숙소다. 출장 목적은 경기도와 산둥성의 교류협력이었다. 직인(職印) 찍힌 공무(公務)였다. 만찬 자리도 그렇다. 8명이 참석했다. 한국인은 안 원장 등 3명이었다. 중국인은 5명이나 됐다. 가오위칭 서기, 아이쓰퉁 부원장, 천샤오, 두장센, 좡칭타오…. 안 원장이 빠질 수 없는 밥 자리였다. 병력(病歷)은 어떤가. 대한민국 59세 남자 직장인이다. 디스크, 고혈압, 편도선…. 급사(急死)의 원인이라고 여길 병이 아니다. 한 달 뒤면 명예퇴직이었다. 그래도 그는 쉬지 않았다. 4월 3일엔 지구 반대편으로 갔다. 페루와 미국을 오가며 10일간 업무를 수행했다. 곧바로 제주도 연수도 다녀왔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중국으로 갔다. 하나같이 목적이 분명한 공무였다. 돌아보면 가족을 맘 아프게 하는 모습이 있다. 떠나던 날 새벽, 안 원장이 남긴-결국 유언이 되어 버린- 말이다. “힘들다. 안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갔고 협약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숨졌다. 이런 죽음에 대한민국은 ‘순직’ 한 마디를 붙여주지 않는다. ‘죽을 병’이 있었다며 10년치 병력까지 들춘다. ‘술 때문에 죽었다’며 술 몇 잔의 알코올 도수까지 계산한다. ‘근무 시간 아니다’며 5시 환담과 6시 만찬을 분초로 가른다. 그러면서 ‘유족의 거증(擧證) 책임’을 말한다. ‘억울하면 유족이 입증하라’는 얘기다. 이런 대한민국 앞에 ‘35년 공직자’의 딸은 무기력해지고 있다. 보훈처에서는 이미 졌고, 민사재판도 이제 대법원 최종심만 남았다. 하필 가정의 달이다. 3년 전 5월이나 올 5월이나 딸에겐 힘든 가정의 달이다. 그때는 아빠 죽음에 힘들었고, 이제는 아빠 명예에 힘들다. 그래서인지, 청원서 마지막에 공무원 안수현이 아닌 아빠 안수현의 모습을 적었다. “가정에서는 그리 좋은 아빠는 아니었습니다…활동도 둔해지시고 잠이 많아진 아빠를 보면서 가족 모두에겐 하루하루가 고비였습니다…그래도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는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랬던 참 마음 약한 아빠였습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맨 앞에는 지금도 이렇게 적혀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 여러분들을 섬기겠습니다. 보훈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정신적,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道 규제 강화, 여전히 더민주의 입장인가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하필 11일이다. 이틀 있으면 선거다. 일단 적어놓기로 하자.) “수도권 규제 완화는 전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자꾸만 수도권과 지방을 상극의 싸움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진표 후보가 말했다. 틀렸다. 규제 논란은 더민주당이 시작했다. 충청도에서 불을 지폈다. “수도권을 옥죄어야 한다”고 했고 “완화된 것도 되돌리겠다”고 했다. 충청을 위해 수도권을 희생 삼겠다는 거였다. 이야말로 ‘All or nothing’이다. 지역을 극단으로 쪼개는 상극적 발상이다. (동의할 수 있다. 같은 11일이다. 역시 선거 이틀 전이다. 이것도 적어만 놓기로 하자.) “상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방이전이 가능한 산업은 규제를 유지하고 해외로 빠져나갈 산업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역시 김 후보의 얘기다. 옳은 말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보낼 것은 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시설이 내려갔다. 농업도 갔다. 기관도 갔고 정부까지 갔다. 보내면 안 될 걸 보낸 게 문제다. 그런 게 엉뚱한 곳으로 갔다. 중국으로 갔고, 동남아로 갔다. 그의 말대로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거는 끝났다. 수도권 규제 논란도 사라졌다. 갑자기 철 지난 얘기가 됐다. 선거판을 그토록 달궜었는데…. 새누리당은 규제 논란에 목청을 높였다. 경기도 이익을 홀로 지키는 듯 외쳤다. 그러다가 선거에서 졌다. 그러자 입을 닫았다. 더민주당은 그때도 말하지 않았다. 당 대표의 영(令) 앞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그러다가 크게 이겼다. 이제는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승자의 위력 앞에 누구도 따져 묻지 못한다. 새누리당은 져서 입 닫았고, 더민주당은 이겨서 입 닫았다. 도민의 생존 문제인데 그렇게 묻혔다. 그러던 엊그제, 그 문제가 다시 나왔다. 새누리당이 아니다. 김진표 당선자가 꺼냈다. ‘(경기도의) 2기 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의제는 수도권 규제 합리화다.’ 발언한 자리가 다소 어색하다. 도지사 공관(굿모닝 하우스)에서다. 남경필 지사와 총선 당선자와의 상견례 자리였다. 상견례라는 게 늘 그렇듯 그저 덕담하고 끝나면 된다. 다른 참석자들은 ‘협치로 가자’며 좋은 말만 했다. 그런데 김 당선자는 덕담 대신 ‘수도권 규제 합리화’를 말했다. 경기도정의 향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아주 특별했던 소감이다. 이쯤 되면 그의 소신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많은 도민이 김 당선자를 주목한다. 사실 그리 반길 논리도 아닌데 그런다. 그가 내놓은 합리적 수단은 첨단산업유치법이다. 대기업 유치를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결국엔 또 하나의 특별법이다. 수도권을 규제하는 ‘특별법’ 위에 ‘또 다른 특별법’을 얹겠다는 것이다. 바꿔 들으면 1차 특별법은 손대지 않겠다는 의미다. ‘확’ 풀어달라는 도민 뜻과 다르다. ‘풀지 않겠다’는 당(黨) 논리에 가깝다. 그도 ‘규제 완화’ 대신 ‘규제 합리화’라는 말을 줄 곳 사용하고 있다. 이런데도 도민들은 그에게 기대를 보낸다. 그라도 나서 방향을 바꿔주길 바라서다. 때론 공약(空約)이 간절할 때도 있다. 작은 희망이 큰 바람에 휩쓸려 갔을 때다. 이번이 그랬다. 수도권 이익이 정권 심판에 묻혀 갔다. 규제 강화를 말한 더민주당이 1등 됐다. 이러다 보니 도민들이 공약(空約)을 기다린다. 규제 강화 약속이 없던 것으로 되기를 바란다. 그저 투표와 함께 사라진 공허한 캐치프레이즈이길 바란다. 이 옹색한-차라리 비굴하기까지 한- 경기도민의 기대 속에 김진표식(式) 수도권 규제 합리화가 있다. 선거 5일 전 칼럼은 ‘道 규제 강화, 정말로 더민주의 공약인가’였다. 선거는 끝났고 세상은 바뀌었다. 하지만, 칼럼의 제목은 바뀌지 않는다. ‘道 규제 강화, 여전히 더민주의 입장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道 규제 강화’, 정말로 더민주의 공약인가

‘민심이 발칵 뒤집혔다’고 썼다. ‘내부에서 부글거린다’고도 썼다. 부산지역 신문들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민심이란 부산민심이다. 내부라 하면 새누리당 내부를 말한다. 대구 조원진 후보(새누리)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의 선물 보따리’라 했고 ‘대구 신공항’이라고 했다. ‘밀양 신공항’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됐다. ‘가덕도 신공항’을 학수고대하던 부산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민심이 뒤집혔고 새누리당이 부글댔다. 여기엔 다른 목소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이 총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 부산 후보들을 싸잡아 성토했다. 새누리당도 지지 않았다. 5일 부산상공회의소로 부산의 모든 후보들이 모였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서약식’을 거창하게 가졌다. 대구(밀양)에 맞서 싸우는 부산(가덕도)의 신공항 전투다.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이 전투에 정당은 없다. 모든 정당들이 똑같이 ‘가덕도 신공항’을 약속하고 나섰다. 선거란 게 이렇다. 경기도에도 현안이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다. 부산의 가덕도와 닮았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는 부산을 살리는 일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경기도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부산 정치는 가덕도 신공항에 한목소리를 낸다. 경기도 정치는 수도권 규제에 다른 목소리를 낸다. 풀자는 목소리도 있고,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민주당은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다. 지금도 충청도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충남도당이 내놓은 공약이 ‘완화된 수도권 규제를 원상 복구하겠다’다. 지금 규제는 성에 안 차니 ‘더 강화하겠다’고도 한다. 충청도당만의 구호였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다. 당 대표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지방이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심장에 와서도 그런 말을 했다. 경기도 기자들 앞에서 ‘규제 완화는 안 된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렇다고 뭘 가져가겠다는 얘기도 없다. 하기야 가져갈 것도 없다. 참여정부 이후 수도권에서 나간 기관, 기구가 수두룩하다. 부산으로 13개, 대구로 11개, 광주ㆍ전남으로 15개, 울산으로 10개, 강원으로 12개, 전북으로 13개, 경남으로 11개, 제주로 10개가 갔다. 충청권으로는 무려 57개가 갔다. 빠져나간 민간 기업의 수는 여기에 넣지도 않았다. 갈 수 없는 게 아니라 가져갈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뭘 더 옥죄겠다는 건가. 국토균형발전론을 토론하려는 게 아니다. 경기도 표심에 대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경기도에 승패를 건다면서 경기도의 규제 강화를 약속하나. 옛날엔 이러지 않았다. 수도권에 줄 선물도 챙겼었고 예의도 차렸었다. 2012년 10월 2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ㆍ인천 기자들과 만났다. 거기서 문 후보는 경제수도론을 던졌다. 경기북부는 평화경제로, 경기남부는 지식경제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경기ㆍ인천 언론이 크게 보도했다. 모든 공약이 그렇듯 믿음이 가는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ㆍ인천 유권자들은 그것도 선물이라며 받고 좋아했다. 지금 그런 게 없다. 냉혹하게 자르고 간다. 당이 이러니 후보들도 그렇다. 경기일보가 후보들에게 ‘수도권 규제’를 물었다. 더민주당 후보의 37%가 ‘규제를 풀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런저런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안된다’였다. 부산 후보에게 ‘가덕도 신공항’을 물었더라면 어땠을까. ‘유치하겠다’는 답 하나였을 거다. 경기도는 아니었다. “규제 완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안민석 후보의 긴급 논평이 되레 당내 반항처럼 들렸다. 여기엔 자신감이 있는 듯 보인다. 경기도 표심은 특이하다. 규제 완화라는 화두에 흔들린 적 없다. 수도(首都)를 빼겠다는 후보에게도 가장 많은 표를 던졌었다. 충청도 할아버지, 전라도 아버지가 만드는 8도 표밭이어서다. 이번에도 ‘규제’ 화두는 미풍도 못 낸다. 오히려 더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보면 더민주당의 선택이 옳은 듯도 보인다. ‘경기도 쬐끔 잃고 충청도 왕창 얻자’는 지혜로운 셈법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도민의 상처가 크다. 도민 숙원이 정치 셈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서운하다. 아마도 이렇게 20대 총선이 끝날 것 같아 보여서 더 속상하다. 정치인 1명에게 4월 13일은 ‘행복한 하루’다. 하지만, 1,300만 도민에게 4월 13일은 여전히 ‘고단한 하루’다. 그 고단한 하루 속에 내 땅이 묶여 있고, 내 애들이 실직해 있다. 그 땅 때문에 개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고, 그 애들 때문에 공장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런 도민의 뜻이 또 정치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도 앞서 간다는 제1 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2년 뒤 여당이 될 거라는 더민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당 차원의 공약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결국, 또 하나의 헛소리-‘어느 정당이든 규제 좀 풀어 달라’-를 기록하는 듯 하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포천시장은 견뎌도, 포천시민이 못 견딘다

대법원의 법리(法理) 검토란 이런 거다. 범죄의 행위는 들춰보지 않는다. ‘했느니’ ‘안 했느니’는 논외다. 그 행위의 결론은 이미 1, 2심에서 걸러진다. 그 행위와 형(刑)의 적용이 법 이론에 맞는지만 따진다. 서장원 포천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그렇다. 성추행 행위에 대한 판단은 2심으로 끝났다. 사건 무마 시도도 사실로 판명났다. ‘피고인의 성추행 행위가 없었다’는 대법 판결은 나올 시스템이 아니다. 애초 법리는 시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성추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였다. 2014년 12월 24일만 해도 시민은 서 시장을 믿었다. 경찰에 나온 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라는 안도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로 입을 닫았다. 성추행은 사실로 굳어갔다. 법치(法治)의 보루인 재판부도 성추행을 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현직 시장의 여성 성추행, 시장실에서의 범행, 입막음용 수천만원 전달…. 이런 참담한 죄명을 쓰고 현직 시장이 구속됐다. 10개월간 수의(囚衣)를 입고 지냈다. 성폭력 치료를 받으라는 명령도 받았다. 성범죄 우범자 명단에도 올랐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까 보는 명단이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 법원 판결이 맞고, 성추행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반성의 길을 얘기할 거라고 봤다. 그런데 뒤에 붙은 말이 묘했다. “판결에 대해서는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다 더 심도 있는 공정한 법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대법원에 호소하겠다.” 뭐가 억울하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판단 받겠다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간 곳이 시장실이다. 17만 시민을 대표하는-판결문에 성추행 범죄 장소로 명시돼 있는- 그 시장실로 갔다. 그리고 계속 근무한다. 억대 연봉도 계속 받는다. 판공비도 계속 쓴다. 인사권도 계속 휘두른다. 포천시 행정도 계속 지휘한다. 그 행정 속엔 성범죄자로부터 포천의 부녀자들을 지켜야 할 안전 행정도 포함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번엔 형제들의 땅 투기 논란이다. 2014년 포천시가 관내 땅을 용도 변경했다.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바뀌었다. 맹지에서 금싸라기로 변한 셈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이 땅의 시세차익을 서너 배로 본다. 이 땅 일부에서 서 시장 형제들의 이름이 나왔다. 근처 땅을 2012년 말에 사 둔 모양이다. 한 마디로 대박이다. 동물적 감각이라도 있는 형제들인가. 아니면 앞날을 보는 예지력이라도 있는 건가. 경찰은 ‘정보 유출에 의한 투기’에 방점을 찍었다. 이쯤 되면 나와야 할 시장의 입장이 있다. “형제들은 땅을 사지 않았다. 정보를 유출한 사실도 없다. 경찰의 표적 수사다.” 그런데 이번에도 말이 없다. 성추행 때처럼 입을 닫았다. 형제가 땅을 산 게 맞는 것 같다. 이제 포천시민은 또 한 번의 못 볼 꼴을 봐야 할 처지다. 주변 사람들이 불려 가고, 애먼 공무원들이 끌려가고, 시청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엊그제였나. 서 시장이 학생들 앞에 섰다. 장학금 수여식이었다. 초ㆍ중ㆍ고생 131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다. 초ㆍ중ㆍ고 8개교 교사들에게도 장려금을 줬다. 열심히 가르친 교사들이다. 그들 앞에서 이렇게 훈시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비롯해 장학금을 후원해주신 지역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혼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해 주길 바랍니다.” 포천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애들인데. 그 애들에게 ‘성추행 피고인 서장원’의 훈시가 과연 필요했을까. 세상에 뇌물 먹고 감옥 가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추행하고 감옥 간 시장은 없다. 세상에 가족범죄로 조사받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범죄까지 겹친 시장은 없다. 그는 세상을 향해 “나만 그랬느냐”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향해 “당신이 처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 시장에겐 하루라도 버티고 싶은 시장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에겐 단 하루도 보고 싶지 않은 시장실이다. 2년 전 그는 55.82%의 지지를 받았다. 2년 뒤 그 55.82%가 참담하게 배신당했다. 이 배신의 대가는 대법원이 아니라 서장원 시장이 갚아야 할 몫이다. 사퇴(辭退)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낙후된 권선구? 권선구민 자업자득이다 -수원을 선거구-

후보 등록장에서 둘이 만났다. 김진표 후보가 덕담을 건넨다. “김상민 후보가 젊고 미남이어서 선관위 직원이 말을 잃은 것 같다.” 김진표 후보는 수원무에 출마했다. 김상민 후보는 수원을이다. 싸움터가 다르다. 그래서인가, 여유가 보인다. 하지만, 칭찬만으로 끝낼 김진표 후보가 아니다. “김상민 후보 위장전입 아닌가 서류 잘 봐주세요.” 농담치곤 묵직한 뼈가 들어 있다. 언론도 이 농담을 비중 있게 다뤘다. 김상민 후보가 가장 아픈 곳이다. 꽤 오랜 기간 김 후보가 뛴 곳은 장안구였다. 큼직한 현수막이 걸린 곳도 장안구 대로(大路)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옮겼다. 당 원내대표가 그렇게 제의했다고 한다. 김 후보도 ‘수원을로 가겠다’고 받았다. 그때가 3월 7일이다. 후보 등록일로부터 17일 전, 선거일로부터 36일 전이다. 이런 걸 낙하산이라 한다. 상대 당이 놔둘 리 없다. 김진표 후보의 ‘위장전입’ 농담도 그거였다. 그런데 말이다. 낙하산에 관한 한 상대 후보는 할 말이 없다. 재ㆍ보궐 선거를 앞뒀던 2014년 6월 26일. 백혜련 후보가 기자회견을 했다. “(정치 시작을) 제2의 고향, 검사로서의 첫 임지였던 수원 영통에서 하고자 한다.” 영통주민을 만났고 명함도 돌렸다. 법원 사거리에 현판도 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원을로 옮겼다. 당 지도부가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가 7월 9일이다. 후보 등록일로부터 하루 전, 선거일로부터 20일 전이었다. 시기(時期)로는 기록적이다. 오십보백보요 초록이 동색인 것을, 누가 누구를 비난하나. 이런 취급받을 권선구가 아니다. 칠보산 자락마다 시민의 추억이 서려 있다. 학창 시절 소풍의 기억이 대부분 칠보산이다. 서울대 농대 금잔디 마당은 시민들의 나들이 공간이었다. 최고 대학을 가진 주민의 자부심이 컸다. 농촌진흥청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이었다. 툭하면 대통령 헬기가 착륙하던 권력의 중심이었다. 추억, 자긍심, 권력의 역사가 함께하던 곳이었다. 그런 권선구가 십수 년째 쇠락하고 있다. 공교롭게 그 쇠락의 시기에 정치가 맞물려 있다. 길을 잃은 정치가 있다. 신현태(16대ㆍ2000)-이기우(17대ㆍ2004)-정미경(18대ㆍ2008)-신장용(19대ㆍ2012)-정미경(재선거ㆍ2014)으로 바뀌어왔다. 현역이 빠졌으니 또 바뀔 것이다. 16년간 국회의원이 다섯 번 교체 된 곳, 그 다섯 번 중 한 명도 연임하지 못한 곳. 여기에 선거구 획정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려 온 곳. 정치가 이랬으니 동네가 잘 될 리 있나. 이런 권선구에 또 선거가 왔다. 후보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김상민 후보는 수원 토박이임을 내세운다. 현역(비례대표) 경험을 앞세워 권선구 발전을 장담한다. 백혜련 후보는 지역의 선점자임을 내세운다. 화장장, 비행장문제에 쏟아온 열정을 자랑한다. 이대의 후보, 박승하 후보의 목소리도 크다. 참 식상하다. 언제적 비행장 얘기고, 권선구 발전인가. 누가 그런 말은 못하나. 지나간 국회의원들도 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 결과가 여전한 낙후도시고, 여전한 소음도시다. 정치만 탓할 것도 아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말하면-권선구민의 자업자득이다. 주인 의식 없이 치러왔던 권선구 선거의 결과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권력이 시민을 지배한다. 이런 권력자를 뽑는 작업이 투표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가 말한다.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인 되는 날은 선거일 단 하루뿐이다.’ 수원을도 이 법칙 속에 있다. 권선의 주인은 권선 국회의원이다. 권선 국회의원이 권선을 지배한다. 그런 권선의 권력자를 뽑는 것이 투표다. 16년을 망쳐 온 권선구민이라면 이번이라도 눈치 채야 한다. ‘권선구민이 권선 주인 되는 날은 4월 13일 딱 하루뿐이다.’ 달라야 한다. 정치 따지고, 고향 따지면서 엉뚱하게 뽑아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능력 있고, 조금이라도 오래갈 후보를 뽑아야 한다. 다른 데선 말한다. ‘수원갑 총선에 장안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병 총선에 팔달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정 총선에 영통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무 총선에 남수원의 미래가 달렸다.’ 그런데, ‘못 사는 동네’ 수원을은 다르다. 4ㆍ13 총선에 현재가 달렸고, 집값이 달렸고, 생계가 달렸다. 본디 권선구는 위대했다. 그때로 돌아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最善)에의 미련을 버리고 차선(次善)을 찾으려 들여다 보면 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선교 vs 이우현, 극과 극의 두 남자 -용인병 선거구-

80년대 이전 수지는 가난했다. 덜컹대는 시외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어쩌다 오는 이 버스가 도시로 향하는 통로였다. 광교산 자락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동체가 자리했다. ‘수지국민학교’ ‘고기국민학교’ ‘대지국민학교’, 그리고 ‘문정중학교’가 교육의 전부였다. 소작 농업, 배급 가정, 결식 아동…. 지금은 특별하게 여겨지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당시 수지에는 일상이었다. 50대 이상 원주민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이우현 후보(더불어민주당)가 그 중심에 있다. 주변인들이 기억하는 이 후보의 어릴 적 별칭은 ‘가난한 집 아이’다. 가난한 수지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 아이였다. 배급받은 밀가루로 아침을 때웠다. 그의 도시락을 본 친구가 없다. 4교시가 끝나면 교실을 뛰쳐나왔다. 수돗가 물로 배를 채우고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고 붙여 먹던 소작농도 끊겼다. 비 새는 초가지붕 이엉을 동네 청년들이 고쳐줬다. 이 후보가 정치를 한 것도 그 가난 때문이다. 모두 떠난 고향을 홀로 지켰다. 새마을지도자로 동네 심부름을 도맡았다. ‘먹고 살만해지자’ 결식 아동 돕기에도 나섰다. 이런 그를 보고 주민들이 정치를 권했다. 어릴 적 먹여 살려준 지역이 베푼 또 한 번의 은혜였다. ‘가난했던 추억’에 대한 뿌리 깊은 지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던 선거 때도 그는 매번 당선됐다. 지금도 그의 첫 번째 자랑은 ‘수지 출신 시 의장’이다. 90년대 이후 수지가 달라졌다. 수지지구가 개발되면서다. ‘제2의 분당’이라 불리며 사람들이 몰려왔다. 신봉리에는 신봉지구가 섰고, 성복리에는 성복지구가 섰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무 조사…. 강남ㆍ분당의 고유명사였던 단어들이 수지지구에 등장했다. 중학교가 늘었고 고등학교도 생겼다. ‘수지고등학교’는 언제부턴가 경기 남부 최고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수지구 주민들에겐 대한민국 최고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선교 후보(새누리당)가 그 중심에 있다. 애초부터 ‘스타’였다. ‘아침 만들기’(MBC), ‘좋은 아침’(서울방송)을 진행했다. TV 앞 주부들에게 그는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2004년 3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치 기자들 사이에 박지만씨와의 특별한 관계가 알려지지 시작했다. 서울 출신, 인기 방송인, 세련된 외모까지. 도시적 이미지를 온몸으로 풍기며 등장한 그가 17대 총선에서 수지를 택했다. 수지구민들이 환영하며 만든 당선이었다. 18대 총선은 그에게 특별했다. 친박(親朴) 성향이 발목을 잡았다. 친이(親李)의 표적이 되면서 공천에 탈락했다. ‘살아 돌아가겠다’며 무소속을 택했다. 탈락한 친박 여럿도 같은 길을 택했다. 하지만, 실제 살아 돌아간 건 그였다. 정당ㆍ기호 정치 속 기적이었다. ‘한선교=수지구’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게 그때부터다. 당내 경쟁자든, 상대 경쟁자든 그의 이름 앞에서 무력화됐다. 지금도 새누리당은 용인병을 ‘능히 이겨 줄 곳’으로 꼽는다. 한선교와 이우현. 20대 총선 용인병에서 맞붙은 두 남자다. 어디서도 찾기 힘든 극단의 대비다. 한쪽은 풍요로운 ‘수지구’의 상징이다. 다른 쪽은 가난했던 ‘수지면’의 상징이다. 한쪽은 세련된 ‘도시 남자’ 이미지다. 다른 쪽은 투박한 ‘농촌 남자’ 이미지다. 한쪽은 중앙 정치의 ‘권력 실세’라 불린다. 다른 쪽은 지역 정치의 ‘산 증인’이라 불린다. 지난 주말, 풍덕천 오거리에서 들어본 여론도 둘 만큼이나 극명하게 갈렸다. “역시 수지에는 한선교 후보가 필요하다”(한선교 지지). “이제 수지를 아는 이우현 후보가 필요하다”(이우현 지지). “시 의장만으로는 국정능력이 안 된다”(이우현 비판). “국회의원 3번 하더니 건방져졌다”(한선교 비판). 용인병 예비후보: 한선교(새누리당)ㆍ이우현(더불어민주당)ㆍ김해곤(국민의당)ㆍ하태옥(정의당)ㆍ정익철(무소속)-2015년 3월 21일 현재 선관위 등록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정미경·김진표, 누가 더 능력자인가 -수원무 선거구-

영통 아줌마가 말한다. “우리가 왜 비행장 이전 얘기를 들어야 하냐구요.” 권선 아저씨가 말한다. “오지도 않는 전철 급행 얘기를 왜 들어야 하냐구요.” 그만큼 수원무가 엉터리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떼어다 붙였다. 권선구에서 6개 동, 영통구에서 2개 동을 추려(?) 갔다. 생활권도 다르고, 이슈도 다르다. 그런 동네에서 한 명만 대표자로 뽑으라 한다. 이러니 나오는 당선 공식이 동네마다 제각각이다. 어디선 구(舊) 선거구별 인구를 기준 삼는다. 2년 전 권선구민들은 정미경 후보를 택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그랬다. 그 권선구민들이 수원무에 16만2천816명 들어왔다. 4년 전 영통구민들은 김진표 후보를 택했다. 2004년 17대부터 쭉 그랬다. 그 영통구민들도 수원무에 9만9천561명 포함됐다. 62%가 옛날 정 후보 동네 사람이고, 38%가 옛날 김 후보 동네 사람이다. 정 후보가 이기는 공식이다. 어디선 지역 연고(緣故)를 기준 삼는다. 정 후보는 수원 출신이 아니다. 2008년 래수(來水) 해서 국회의원이 됐다. 타지(他地) 출신의 수원 입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 후보는 4살 때부터 수원서 살았다. 출신 중학교도 그 언저리다. 2004년 귀향(歸鄕)해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이름 앞엔 언제나 ‘수원출신 최초의-’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권선구엔 유독 수원출신이 많다. 김 후보가 이기는 공식이다. 두 공식대로면 선거는 끝난다. 그런데 그럴 것 같진 않다. 두 공식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새누리당 권선구 당원 일부가 정 후보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 후보로선 믿었던 동네에서 얻어맞은 한방이다. 김 후보의 연고 셈법에도 ‘반란’의 조짐이 꿈틀댄다. 8도(道) 집합소 영통구의 독특한 분위기다. 지금도 영통주차장은 명절 때마다 텅 빈다. 언제든 타지역 출신 정 후보에게 손 내밀 표들이다. 그래서 두 공식은 답이 아니다. 결국, 바람직하면서도 유일한 공식이 남는다. ‘능력 대결’이다. 정 후보는 능력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다. 인기 없는 소위지만 자청했다. 국방대학원에 다니며 전문지식도 공부했다. 군 전력(戰力) 문제, 장병 복지 문제 등을 앞장서 해결했다. 그러나 국방위에 자리 튼 그의 진짜 목적은 비행장 이전이다. 군(軍)에 파고들어가 비행장을 옮기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그만이 갖고 있는 권선구 현안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여기에 집권 여당 소속이라는 덤까지 있다. 김 후보도 능력자다. 부총리를 두 번 했다. 한국 경제를 관리했고, 한국 교육을 총괄했다. 관료 출신의 최대 무기는 인맥이다. 경제부처와 교육부처에 연결 지어진 그의 인맥이 대단하다. 특히 경제부처 내 ‘김진표 마피아’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권력이다. 그와 연 맺은 차관, 실ㆍ국장들이 중앙부처마다 수두룩하다. 비행장 이전도, 분당선 급행화도 돈이 관건이다. 그 돈의 맥을 잘 아는 이가 김 후보다. 이만하면 남 부러워할 능력자들 아닌가. 전국 유일의 무(戊). 돌아봐도 수원무 획정은 엉터리다. 유권자를 무시했고 행정을 무시했다. 그런데 그런 수원무에서 선거문화 혁신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인정(人情) 선거, 인연(因緣) 선거를 끝내고 정책(政策) 선거, 능력(能力) 선거로 갈 수 있을 거란 역(逆)을 본다. 그렇게 기대해도 좋을 소재는 던져졌다. 가장 성실하고 가장 능력 있다는 후보들이 모였다. 누가 당선되든 수원무의 선택은 당당할 듯하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4월 13일 그날 저녁. 기자들은 수원무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정미경 당선’ 또는 ‘김진표 당선’을 메인 뉴스로 타전(打電)할 것이다. 그러면서 수원무는 ‘버림받은 지역구’에서 ‘부러움 받는 지역구’로 바뀔 것이다. 능력 있는 후보 중에 더 능력 있는 후보를 제대로 골라낸 모범적인 선거구가 될 것이다. 인구 26만2천377명의 선택. 수원무의 4ㆍ13 게임은 ‘누가 더 능력자인가’다. 수원무 후보자: 정미경(새누리당)ㆍ김진표(더불어민주당)ㆍ김용석(국민의당)ㆍ김식(민중연합당)ㆍ김현우(무소속)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新도심 vs 舊도심 vs 本도심 -수원정 선거구-

매탄과 영통은 원래 안 맞았다. 수원의 적자(嫡子)라는 자부심과 신수원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충돌했다. 영통이 들어선 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현상이다. 신도시가 생길 때면 으레 형성되는 신ㆍ구도심 간 갈등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표의 분포도 절묘했다. 매탄동 인구와 영통동(영통 1동ㆍ영통 2동) 인구가 엇비슷했다. 그 속에서 매번 정치는 긴장했다. 매탄과 영통을 위한 공약을 따로 준비했다. 영통과 광교도 불편하다. 수원고법 유치 때 불거졌다. 영통으로 거론되던 고법부지가 광교로 변경됐다. ‘빼앗긴 영통, 빼앗은 광교’라는 앙금이 생겼다. 분당선과 신분당선의 전철 갈등도 컸다. 분당선 개통의 영통 특수가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광교로 옮겨갔다. 선거구 획정을 두고도 양쪽 감정은 재연됐다. ‘싸워서 영통을 지키자’는 댓글(영통)과 ‘이참에 광교구로 바꾸자’는 댓글(광교)이 충돌했다. 세 지역의 정서가 이렇게 다르다. 여기가 수원정 선거구다. 한 지붕 세 가족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지역에 따라 표도 천차만별이다. 수원정의 전체 인구는 24만명이다. 매탄 네 개 동이 10만4천566명, 원천동이 2만5천313명, 광교 두 개 동이 6만5천756명이다. 영통 2동이 수원무로 빠져나간 영통 1동은 4만4천414명이다. 인구 비율은 매탄ㆍ원천-본도심- 54%, 광교-신도심- 27%, 영통-구도심- 18%다. 4년 전만 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광교 신도시를 생각 없이 묶으면서 복잡해졌다. 이제 후보에겐 세 지역을 공략할 최대 공약수가 필요해졌다. 신도심도 맞추고, 구도심도 챙기고, 본도심도 껴안을 공약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 보인다. 최대 공약수는커녕 잘못했다간 한 방에 날아가게 생겼다. 특정 지역 득표가 다른 지역 감표로 돌변할 수 있게 생겼다. ‘경기도청사 이전’ 문제가 딱 그 짝이다. 4년여를 끌었던 이슈다. 광교 입주민들의 애를 어지간히 태웠다. 그러던 게 작년에 잠잠해졌다. 경기도가 정리했다. 청사 부지를 조정해 건축비를 만드는 안(案)을 냈다. 이를 밀어붙인 책임자가 박수영 행정부지사다. 그때부터 박 부지사에겐 ‘청사 이전 해결사’란 별칭이 붙었다. 그가 공복(公服)을 벗고 출마했다. 새누리당 옷을 입자마자 유력 반열에 올랐다. 지금 광교 인터넷에서는 그가 갑(甲)이다. 그런데 이게 패착일 수 있다. 청사 이전은 광교만의 이슈다. 영통과는 상관없다. 되레 시야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최근 2년여 간 광교는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통은 뒤로 갔다. 늘 있어오던 신ㆍ구도심 간 역학관계다. 물론 그 속에서 갈등도 자랐다. 광교에 대박 공약이 영통엔 쪽박 공약일 수 있다. 이를 모를 박광온-또는 김명수 또는 박원석- 후보가 아니다. 영통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그게 보인다. 이러다 보니 결론은 매탄ㆍ원천동이다. 매탄ㆍ원천동을 잡는 게 관건이 됐다. 54%라는 막강한 표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광교에 섭섭하고, 영통에 섭섭했던 매탄ㆍ원천동의 정서다. 불꽃을 그어 댈 폭탄과도 같다. 이를 눈치 챈 후보들이 매탄ㆍ원천동을 뛰고 있다. 박수영 조직, 박광온 조직이 충돌하고 있다. 때마침 27.2% 대 26.7%로 갈라선 여론이 후보들을 애태우고 있다(케이엠 조사ㆍ경인일보 발표). 다들 20대 선거구를 최악이라고 한다. 숫자 놀음이 지역을 버렸고, 정치 타협이 행정을 버렸다고들 한다. 지금의 수원정이 그렇다. 숫자 놀음에 광교가 엮였고, 정치 타협에 영통이 쪼개졌다. 선거구가 이러니 선거도 최악이다. 버릴 곳과 챙길 곳을 고르게 만들었다. 버려질 유권자와 챙겨질 유권자를 가르게 만들었다. 신도심, 구도심, 본도심…. 어쩌면 이 중 한 곳은 버림받은 4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선거판은 냉정하다. 어차피 학자(-Why)가 아니라 기술자(-How)들이 뛰는 판이다. 그 기술자들이 수원정에 내린 정답은 ‘매탄ㆍ원천=승리’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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