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조선일보 칼럼은 이랬다. “퇴임 검찰총장의 공직 취임 금지 규정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임명권자의 인사권 남용 방지를 위한 것이다… 김기춘 전 총장은 (총장 퇴임 후) 곧 법무장관으로 가서 집권당 선거 활동을 했고… 김두희 전 총장은 총장 취임 며칠 만에 법무장관에 임명해서 임기제를 훼손했으며, 김도언 총장도 퇴임하자마자 집권당 지역구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세 사람 모두 검찰에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수원지검 특수부 검사 임춘택’-”
난리 날 만했다. ‘검찰총장 퇴임 후 공직 제한’은 당시 검찰의 뇌관이었다. 검찰총장의 정치개입을 막는다며 야당이 만든 제도였다. 김기수 총장이 반기를 들었다. 변호사들과 함께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따지고 보면 총장 개인의 퇴임 후 먹거리다. 그런데도 모든 검사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필 그런 때 검찰총장의 뜻과 정반대 얘기를 현직 검사가 신문에 기고한 것이다. 전임 총장들의 정치 입문 과정까지도 조목조목 비난했다. 벌집을 들쑤신 것이다.
겉으론 평온했다. ‘주의조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부에선 가혹하게 돌아갔다. 임 검사는 그날로 짐을 쌌다. 원치 않는 형사부로 쫓겨났다. 담당 부장도 며칠 못 갔다. 차장실엔 ‘임 검사 출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한번 시작된 보복은 정기 인사 때마다 이어졌다. ‘경향(京鄕-서울ㆍ지방) 교차근무’라는 원칙은 그와 무관했다. 철저히 지방과 한직으로만 내둘렸다. ‘조직과 다른 얘기를 한 죄.’ 그 죄에 묶인 젊은 검사의 고난은 그때부터 5년여간 계속됐다.
그가 수원지검을 떠날 때 봤다. 밥상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물었다. 그는 내게 “내 원고를 어떻게 김 기자가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진짜 배경이 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쓰레기통 뒤지다가 봤다. A4 용지 두 장에 플러스 펜으로 쓴 글이었다. 내용이 심상치 않았지만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특수부장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그의 대답도 복잡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가 친구다. 형평성 잃은 논조에 반박하기 위해 밤새도록 써서 줬다. 며칠간 보도되지 않아 이상했다. 그래서 찾으러 갔는데 그날 마침 가판(假版)에 보도돼 있었다. 옷을 벗을 각오로 쓴 것이냐고 하던데. 내가 왜 옷을 벗냐.’
이후에도 현직 검사들의 ‘기고 파문’은 있었다. 이영규 부부장(사시 30회ㆍ‘송두율씨 구속하라’), 김원치 차장(사시 13회ㆍ‘한총련 출범부터 잘못’), 이용주 검사(사시 34회ㆍ‘법무부 장관 사퇴해야’)…. 그런데 임 검사의 글이 지금껏 얘기된다. 글이 주는 당연함과 사소함, 가혹함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정치 중립은 당연한 얘기였다, 검사들도 말하던 사소한 얘기였다. 그런 글에 내려진 징계가 가혹했다. 검찰조직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더 없이 극(極)한 예다.
그 ‘임 검사 글’로부터 20년이다. 다들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검사가 자살했다. 부장검사 때문이라고 유언했다. 감찰에서 이런저런 빌미 거리가 나왔다. 어깨도 쳤고 욕도 했던 모양이다. 한 번쯤 대들면 될 일이었다. ‘술 안 먹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하기가 그렇게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부장검사에게 대드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결론을 내렸다. “잘못된 조직문화가 불러온 일이다”.
20년 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하다가 징계를 당했다. 20년 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참다가 세상을 등졌다. 이 2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화두가 검찰조직에서 어른거린다. ‘이유 불문’ ‘상명하복’ ‘검사 동일체’…. 없어졌다던 이 화두들이 여전히 검찰을 틀어쥔 모양이다.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검사 2천명 뿐이다. 각자 스스로에 묻고 열린 결론으로 풀어봐야 한다. ‘나는 부장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총장과 다른 뜻을 신문에 쓸 수 있는가’.
글 시작에 앞서 임 검사와 통화했다. 변호사인 그와 자살 검사 얘기를 했다. 지금의 생각을 칼럼으로 써 달라고 했다. 답변이 20년 전보다 더 간단해졌다. “글은 무슨… 이제 조용히 살고 있는데… 만나서 밥이나 먹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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