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최태민’ ‘영세교’ - 朴 대통령이 해야 할 고백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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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 향한 극혐주의
‘邪敎 정부’ 혐오로 옮아가
이제 대통령 고해성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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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농단? 인사 개입? 한두 번 들었던 단어가 아니다. YS 아들이 감옥 가는 것도 봤다. DJ 아들은 둘이나 그랬다. MH 형은 감옥에서 동생의 죽음을 맞았다. 검찰 입구에서 노구(老軀)를 휘청거리던 MB 형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에겐 국정농단, 인사개입이란 형용사가 붙었다. 최순실에게도 같은 사건명이 붙어 있다. 연설문을 주무른 국정농단이고, 문체부 장관을 날린 인사개입이다. 정권의 물이 빠질 때쯤 불거진다는 시기도 닮아 있다.

그런데 분노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남녀노소가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진보 보수가 함께 하야를 말하고 있다. 당(黨)조차 거국내각을 수용하며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그때와 지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로 사교(邪敎)를 향한 극혐(極嫌) 주의가 있다. ‘교주’ ‘주술’ ‘심령’이란 단어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 모든 단어들이 최(崔)씨 일가를 통해 대통령으로 엮이는 데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사교에 씐 국정을 용서 않겠다는 분노다.

초기엔 야당만의 주장이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말했다. “‘사교’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거들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심령대화를 하고 있다”. 그냥 정치공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외신(外信)까지 섬뜩한 평을 시작했다. ‘최순실은 점쟁이’(뉴욕타임스), ‘고(故)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워싱턴 포스트), ‘샤머니즘의 조정’(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민이 믿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사이비 종교를 묶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의 금기어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태민 목사에게 홀렸다’ ‘취임식 오방낭 주머니는 종교 행위였다’ ‘청와대 안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어린이들에게 종교적 훈시를 했다’ ‘세월호 7시간은 영세교 종교의식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게 국민의 일상 대화가 됐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는 부패정부보다 못한 비정상 정부로 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사이비 종교가 뭔가. 1996년, 아가동산 사건이 있었다. 신도가 살해됐다는 투서가 단서였다. 취재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의 상식과 신도들의 상식은 너무도 달랐다. 노동력 착취를 ‘자발적 노력 봉사’라고 했고, 교주 신격화를 ‘부모님 모시는 효 잔치’라고 했고, 집단 폭행을 ‘치료를 위한 신성한 행위’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 인식된 사이비 종교의 정형이 그랬다. 무조건 감싸고 모든 걸 바치는 비정상적 공동체였다.

이런 사교 논란 앞에 기독교계가 분노한다. ‘대통령의 찬송가 연주’라는 동영상이 있다. 2007년 7월18일. 전국 기독교 장로회 하기수련회였다. 피아노에 앉은 박근혜 후보가 찬송가 405장을 연주했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따라 불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그 후 보수 기독교계는 대통령의 텃밭이었다. 그랬던 텃밭이 사이비종교라는 극혐 주의를 만나 싸늘히 등을 보였다. ‘최태민과 영적 부부’라는 주장이 나오는 곳도 이제 기독교계다.

많은 이들이 지지율 9%를 걱정한다. 67%의 하야 주장도 걱정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야 너머로 어른거리는 파멸이란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 박근혜’의 미래가 과거의 흔적까지 휩쓸어 가버리는 참담한 상황이다. 아들이 구속된 YS, DJ도 당하지 않았던 벌이다. 형이 구속된 MH, MB도 지지 않았던 책임이다. 박 대통령에게만 지워진 참담한 벌이다. 이게 지지율 60%를 하야 요구 60%로 만든 사교의 덫이다.

그래도 뭔가를 해봐야 한다면 남은 건 고해성사다.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길만 남았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야 할 두 개의 기도 제목이 있다. ‘최태민과의 관계’라는 고백과 ‘영세교와의 관계’라는 고백이다. 벼랑 끝에 선 대통령이 국민 앞에 어찌해볼 수 있는 마지막 수(數)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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