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박원순 대통령, 김문수 대통령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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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근태님. 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허덕이던 투사다. 지금도 그의 이름에는 ‘이근안’ ‘고문’ ‘남영동’이 따라붙는다. 민주화 운동 시절 10번의 고문과 옥중 투쟁의 역사가 그의 저서 ‘남영동’ 속에 소름끼치게 남아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개혁이란 화두를 붙들고 힘들어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늘 진지하던 그의 모습은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남아 있다.

그가 복지부 장관이던 2004년 9월 1일. 취임 2개월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의 매는 부당한 매였지만 지금 국민한테 맞는 매는 정당한 매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운을 뗐다. “복지부 입장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국민연금을 지금 고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30% 이상 연금보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 딸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은 판도라 상자였다. 언젠가 고갈된다는 계산은 이미 나와 있었다. 해결책이라야 두 가지였다. 지금 세대가 손해를 보며 건전성을 확보할 것이냐, 아니면 미래 세대가 손해를 보도록 덮고 갈 것이냐. 그는 첫 번째 해결책을 택했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며 택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험료 인상의 첫해라며 예고했던 2011년,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화두로 남기고 떠났다.

지금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얘기가 있다. 지방채를 발행해 복지비를 충당해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서울시가 겪는 보육복지의 어려움은 다 안다. 0~5세 무상보육 시행으로 5천182억원을 떠안았다. 세수는 거꾸로 4천억원이 줄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이 이번 달 25일자에 ‘지급 불능’이란 도장을 찍어 놓고 있다. 시장이 멍하니 앉아 있을 순 없었을 거다. 시내 곳곳에 ‘대통령이 책임지십시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러는 박원순 시장을 다들 이해했다. 선거법 운운하는 여당을 더 이상하게 봤다.

그런데 그 뒤 해법이라며 내놓은 방안이 충격적이다. 무상보육에 필요한 2천억원을 지방채로 발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채는 빚이다. 빚 중에는 써도 되는 빚과 쓰면 안 되는 빚이 있다.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지방채, SOC 투자를 위한 지방채, 공공 목적의 사업을 위한 지방채. 이건 써도 되는 빚이다. 호화 청사를 위한 지방채, 전시성 국제 행사를 위한 지방채, 그리고 무상복지를 위한 지방채. 이건 쓰면 안 되는 빚이다. 앞의 것은 투자 행위여서 괜찮은 것이고 뒤의 것은 소비 행위여서 안 되는 것이다. 박 시장의 해법은 그래서 ‘기가 막힌’ 해법이 아니라 ‘기가 차는’ 해법이다.

기채(起債) 발행의 매력은 크다. 결재 한 번이면 수천억원이 들어온다.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책임자들이 기회만 되면 만지작 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 기채 발행이 지금 세대 편하자고 미래 세대 주머니를 터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꺼내 들었다. 이제 234개 시ㆍ군ㆍ구가 우리도 발행하겠다고 덤벼들 수 있게 됐다. 16개 시ㆍ도가 우리도 2천억원 쓰겠다고 덤벼들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복지망국’(福祉亡國)이 결코 논리 전개를 위해 과장된 언어적 유희가 아니다.

엊그제, 경기도가 소속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들어내기로 했다. 공무원 한 명에게서 ‘연 800만원’씩을 빼앗을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절약될 예산이 올해 93억원, 내년에 157억원이다. 얼마 전 증세 민란(?)을 일으켰을 때의 돈이 ‘19만원’인데 여기에 40배쯤 되는 돈이다. 그렇게 내 식구 주머니부터 탈탈 털기로 작정한 뒤 김문수 지사가 말했다. “이렇게 하는 데도 안 됩니다. (부자들에 대한 급식 지원은)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과 김문수 지사.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한쪽은 복지비 충당하려 국채를 발행할 대통령이고 다른 쪽은 복지비 충당하려 내 살부터 깎을 대통령이다. 국민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만일 두 사람이 ‘보기’의 전부고, 복지가 ‘예문’의 전부라면 나는 이미 정답을 골랐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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