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金 지사, “(차기 후보는) 남경필 의원이…”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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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판세는 재미없다. 박빙이 돼야 재미있다. 그래야, 기삿거리도 생기고, 기삿발도 먹힌다. 대부분의 정치 기자들이 가진 습성이다. 그래서 던졌던 농(弄)이 상대방을 정색케 만든 장면이 있다. 도지사 경선이 한창이던 2006년 봄. 국장실(局長室)을 찾은 김문수 후보에게 말했다. “남경필 의원이 하차해서 재미가 덜해졌습니다.” 김문수 후보의 답이 진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했다. “나를 말라 죽으라는 얘깁니까.”

김문수, 이규택, 남경필, 김영선, 전재희. 정말 뜨거운 경선이었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컸다. 야당의 승산이 높았고 그만큼 한나라당 경선은 뜨거웠다. 그 흥미진진하던 재미에 찬물(?)을 끼얹은 게 남경필 의원이다. 갑자기 사퇴하며 ‘김문수 후보로 단일화한다’고 선언했다. 이규택 후보가 ‘지가 뭔데 단일화냐’며 화를 냈지만 판세는 그걸로 끝났다. 그즈음 시중에는 ‘다음에는 남 의원을 밀기로 했다’는 말이 돌았다.

거듭된 남경필 밀기

그래서 그런가? 요즘 김 지사의 차기 주자 평가가 균형을 잃고 있다. 남 의원 쪽으로 심하게 쏠려있다. 27일 로스앤젤레스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다. “지금 여론 조사를 하면 남경필 의원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느냐.” 다른 후보군에 대한 평가는 짜디 짜다. 유정복 장관에 대해서는 “내 권유로 새누리당에 들어왔지만 정치인은 아니다”고 평했고, 정병국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인 자질은 있으나 인지도가 약하다”고 평했다. 나머진 언급도 안 했다.

원래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배경 없이 그냥 던진 얘기일 수 있다. 헌데 그렇게 보기엔 이상한 어록이 또 있다. 지난 7월16일 있었던 모 지방 언론과의 인터뷰에 들어 있는 말이다. “지금 각 당의 당헌·당규와 지지도, 여론조사 등 복합적 성적표를 감안하면 새누리당에서는 남경필 의원이 경쟁력을 갖춘 것 아니냐.” 거기에서는 ‘남경필 대 김진표’의 대진표(?)까지 예상했다. 차기 주자 평가를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남경필 의원’이다.

나머지 후보군-유정복ㆍ원유철ㆍ정병국ㆍ김영선 등-이 봤을 때 반칙이다. 실수였다면 주의감이고 고의였다면 경고감이다. 공천 책임자로 공명정대한 선거 관리를 해봤던 그다. 선거 무패의 신화로 전략의 1인자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그가 공명정대하지도 않고, 전략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남경필 편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일까? ‘그냥 현상을 설명한 것’이라면 끝나겠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의문이다.

김 지사의 목표는 대통령이다. 당내 후보군 가운데 1등을 오르내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상대방은 김무성 의원이다. 김 지사와 김 의원 사이를 확실히 갈라서는 칸막이가 있다.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의 구분이다. 김 지사도 ‘친이’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와 감사원까지 나서 공격하는 게 4대 강 사업이다. 이 와중에도 그는 ‘홍수 예방은 확실했다’며 옹호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친이’의 수장이 됐다.

김 지사의 평가를 들으며 서운해 할 법한 게 유정복 장관이다. 그런데 그 유 장관이 하필 친박이다. 여기서 얼핏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김무성 대통령 후보-유정복 경기도지사’. 김 지사가 원치 않을 구도다. 최대 표밭인 경기도의 키를 친박에게 넘겨주고 뛰어야 할 불리한 구도다. 누가 봐도 그렇다. 혹 그래서 이러는 건가. 공교롭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남경필 의원은 계파 색깔이 옅다. 거기에 ‘2006년 후보 단일화’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있고.

8개월 뒤 도지사 선거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경선 주자로 누가 나설지 알 수 없고, 김 지사의 지지가 득이 된다는 담보도 없고, 그렇게 나간 주자가 도지사가 되리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정치기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스러기처럼 떨어뜨리는 ‘유력자’들의 말 한마디를 쫓아다닌다. ‘장관 업무에 열중할 뿐 도지사는 생각지 않고 있다’는 유 장관 말에서 앞부분을 뚝 잘라 버리고 ‘도지사 출마 생각 없다’고 써 보기도 한다.

친박 견제용 의도?

‘김 지사의 남경필 밀기’를 화두 삼은 이 글도 그런 유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리주저리 해석을 붙여 보는 건 이런 일이 워낙 낯설어서다. 이인제, 임창열, 손학규 도지사 중 누구도 후임 주자를 평가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처음-그것도 반복해서-이다. 이러다가 ‘청와대가 미는 ○○○’와 ‘김문수가 미는 ○○○’가 맞붙는 건 아닌지. 혹 도지사 경선장이 대통령 경선장으로 바뀌는 건 아닌지. 이래저래 ‘김 지사 반칙’의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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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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