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현대사-교과서에서 줄이고, 수능 출제에서 빼고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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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현 서울고검)는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다. 고교시절, ‘장학퀴즈’ 오프닝 화면에도 등장했다. 기(期) 장원 경력 때문이다. 서울법대에 입학했고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도 최고 점수로 수료했다. 그에게 국민윤리 2차 논술을 잘 보는 방법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국민윤리는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보겠다는 과목이잖아. 그냥 ‘내가 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쓰면 편해.” 간단하면서 잘 정리된 답이었다.

그러면 한국사는 어떤가. 2017년부터 수능 필수다. 유치원, 초ㆍ중ㆍ고교생 680만명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 두 배쯤 될 부모들도 덩달아 급해졌다. 돌아보면 학력고사 시절 국사는 점수 따는 효자과목이었다. 웬만한 학생이면 만점을 목표 삼았다. 범위와 정답이 한정된 역사학의 특징이다. 부활하는 수능 한국사도 그럴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려 들 것이다. 환웅(桓雄) 할아버지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것을 외우려 들 것이다.

현대사 논란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 여당이나, 극력 막아서는 야당이나 분명한 노림수가 있다. 수능에 목매는 학부모 집단의 무지막지한 표(票)다. 교과서 승리가 내년 총선 승리라는 셈법도 끝낸 듯 보인다. 이 의도에 휘말려 든 학부모 단체들이 정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정 교과서 안된다”(전북 학부모들 단체 연합회), “편향된 교과서 고쳐라”(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27일 하루 충돌만 이랬다.

과목 이름이 한국사다. 학문적 분류는 역사학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는 진정한 역사학이 아니다. 토론이 자유로울 수 없고, 합의가 만들어질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5ㆍ16을 보자.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구국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2007년 7월). “가난했고 안보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위기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아닌가”(2012년 7월). ‘구국혁명’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5ㆍ16은 정당했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에게 5ㆍ16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그런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문했다. ‘친일 독재 미화를 위한 개정’이라는 의심을 살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현대사를 보자.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라도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모른 척하고 외면했습니다. 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2002년 대선 후보 연설). 남로당 당원이었던 장인(丈人)이 수감 중에 사망했다. 그에게도 좌익 논란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하필 그런 노 대통령부터 역사 교과서가 바뀌어 갔다. ‘교과서 좌경화의 출발’이라는 지적을 살만했다.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다. 과거(過去)가 아닌 현재(現在)의 기록이다. 행위자도 현재고 기록자도 현재다. 박근혜 대통령은 ‘5ㆍ16 역사’의 2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로당 역사’의 사위다. 그 2세가 현재의 여당 권력이고, 그 사위의 비서실장이 현재의 야당 권력이다. 그들에게 현대사는 곧 아버지의 기록이고 주군(主君)의 기록이다. 사정이 이러니 서로 사생결단하듯 대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대통령이다’라며 작정하고 쓰는 현대사다.

이건 학문이 아니라 정치다. 애들에 가르쳐선 안 된다. 인생이 달린 국가시험에 출제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교과서 속 현대사 부분을 줄여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수능에는 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도 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관심이 줄어든다. 관심이 줄어들면 정치가 빠질 것이다. 정치가 빠지면 나라도 조용해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 본디 역사 인식에 머리띠를 동여맬 정도의 구국집단은 아니었다. 그저 학부모 표(票)를 노리는 욕심일 뿐이다. 그 탐욕의 숙주(宿主)를 끊어내야 한다. 현대사 부분 축소와 수능 출제 제외가 그 방법일 수 있다.

그때,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내가 전두환(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써내려갔어”.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대사 접근 이데올로기가 딱 그렇다. ‘학생 여러분이 새누리당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학생 여러분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나. 애들에겐 이런 현대사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이런 현대사 문제를 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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