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누리 예산이 등장했다. 누리 과정을 공약했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2016년, 중앙정부는 5천억원의 유치원 누리 예산을 경기도 교육청에 요청했다. 중앙예산과 상관없는 지방예산에의 요구다. 더민주당이 거부하고 있다. ‘표 받기 위해 던져 놓고 그 책임을 지방 자치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기들이 쫓겨나면 야당이 책임지라’며 야단이다.
어쩌면 이토록 닮았나 싶다. 서로 자리만 바꿔 앉은 데자뷔다. 무상급식은 야당 교육감의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여당 대통령의 것이다. 무상급식은 경기도 예산에 떠넘긴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지방 예산에 떠넘긴 것이다. 무상급식 예산은 여당이 반대했었고, 누리 과정 예산은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무상급식 무산의 책임은 여당에게 떠 넘겨졌고, 누리 과정 무산의 책임은 야당에 떠 넘겨지고 있다.
흐름이 닮았으니 앞날도 닮을 듯하다. 그때 무상급식은 이렇게 끝났다. 학부모 단체들이 도의회에 진을 쳤다. 슬픈 표정의 학부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애들 급식비가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그 사람들은 김 교육감의 호위무사들이었다. 그 학부모는 교육청 단체에서 한 자리 하고 있었다. 세상이 쪼개졌다. 애들을 굶기자는 쪽과 먹이자는 쪽으로 갈라섰다. 1년 뒤 지방선거는 퍼주기 무상급식이 이겼다.
지금의 누리 예산도 그렇게 가고 있다. 학부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카메라 앞에선 학부모가 낙담하며 얘기한다. “막막하죠.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더 알아봐야겠다. 박사모인지, 새누리당 지지자인지 아직 취재가 덜 됐다. 어찌 됐건 이번에도 세상은 쪼개졌다. 아기들을 챙기자는 쪽과 버리자는 쪽이다. 석 달 뒤면 선거인데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표 계산에 바쁘다.
‘얼마 전’ 얘기이자 ‘오늘 현재’ 얘기다. 엊그제 몸싸움하던 도의원들도 7년 전 그 도의원들이다. 사정이 이런데 누가 누굴 욕하겠나.
이미 대한민국 정치 사전은 복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복지란 무차별ㆍ공짜로 퍼주는 행위.’ 알량했던 정당 색깔 따위도 없어진 지 오래다. 선거 몇 번 치르면서 뒤섞여 버렸다. 그 사이 나라 살림만 ‘20도’쯤 기울었다. 경기도를 마비시킨 복지비 5천억원은 돈도 아니다. 무상급식 3조7201억원, 기초연금 11조4천억원, 무상보육 14조7169억원이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들어갈 돈이다. 굵직한 것만 뽑았을 때다.
김종인 교수가 말했다. ‘경제력의 한계가 곧 복지의 한계다.’ 맞는 말이다. 돈에 맞춰야 하는 게 복지다. 누리 예산이 부담되면 줄여야 한다. 3천억원으로 줄이고 2천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못하겠다고 버틴다. 무상급식도 그렇다. 700억원으로 줄이고 500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건 더민주당이 못하겠다고 한다. 서로 ‘내 복지’ ‘네 복지’ 갈라놓고 ‘내 복지는 못 줄인다’며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만 골병들고 있다.
월요일 아침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경기 누리 예산 0원-사상 첫 광역 준예산 사태.’ ‘유치원생 19만명이 월 22만원씩 더 내야 할 수도 있다’(중앙일보). 오늘 아침엔 이런 기사가 났다. ‘표 되는 복지에 세금 몰아 쓰겠다는 성남시.’ ‘장애인 불우아동 지원은 부족한데 청년 배당, 공공산후조리, 무상교복만 강행하려 한다’(동아일보). 어제는 돈 없다는 기사, 오늘은 돈 퍼준다는 기사다. 이쯤 되면 복지 난장판이다.
답이 없다. 재벌 손자에 준 점심값은 회수해야 하는데…. 살만한 집 아이들에 준 유치원비는 회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위인들이 아니다. 결국, 미래의 어느 날-나라가 더 파탄 나서 어쩔 수 없이 거둬 들이게 될 날-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수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복지 망국의 그날이 이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고…. 누리 예산 4조원? 이것부터가 답 없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한쪽은 거덜날 일이다.
2010년 어느 날, 무상급식 데모대가 창밖에서 확성기를 틀고 있었다. 부지사실에서 내다보던 ‘정창섭 부지사’가 말했다. “김 국장,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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