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그리는 꿈-
세계ㆍ한국 락의 전설과 미래
업계 부침 속에도 당당히 순항
‘락’ 산업화 보일 전환점 될 것
하이웨이 스타, 스모크 온 더 워터, 차일드 인 타임…. 모두 락 그룹 딥퍼플(Deep purple)의 노래다. 딥퍼플은 락 역사의 전설이다. 가장 클래식한 락 음악으로 꼽힌다. 최고의 키보드 주자 존 로드의 영향이다. 가장 시끄러운 음악으로도 꼽힌다. 최고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이다. 딥퍼플 음악은 곧 이 둘의 음악이다. 학생 밴드라면 모두가 이 둘을 목표로 삼았다. 존 로드 연주, 리치 블랙모어 속주가 곧 꿈이었다.
결성된 게 1968년이다. 반백년도 더 전이다. 그 사이 모든 게 달라졌다. 보컬 이언 길런의 샤우팅은 옛말이다. 그때의 ‘차일드 인 타임’이 아니다. 드러머 이언 페이스의 광적인 스피드도 옛말이다. 그때의 ‘화이어 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었다.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했다. 44년 전이다. 존 로드는 사망했다. 2012년 일이다. 냉정히 그 딥퍼플은 없다. 전설이 바뀌었다는 건 아니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바뀐 딥퍼플’이 유독 자주 찾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1995년에 처음 내한했다. 이미 ‘원형 없는’ 딥퍼플이었다. 그런데도 매진됐다. 30년을 기다린 향수였다. 때마침 시작된 ‘락페스티벌 열풍’도 한몫했다. 그 이후 많은 ‘딥퍼플’류(類)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었다. 언론도 덩달아 이들의 출연 여부로 페스티벌의 수준을 갈랐다. 이들이 안 나오면 ‘무게감 없는 공연’이라고 했다. 이 한심한 기준은 요즘도 등장한다.
바뀌어야 한다. 한국에서만 유독 판치는 추억 팔이다. 이제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야 한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있었다. 락계에 남은 전설적인 페스티벌이다. 기타 줄을 물어뜯던 지미 헨드릭스로 유명하다. 바로 그 무대의 첫날 첫 주인공이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였다. 신인이다. 둘째 날은 산타나(Santana)가 열었다. 역시 신인이다. 그날 이후 둘은 전설이 됐다. 우리네 락페스티벌도 그렇게 가야 한다.
또 하나는 산업화다. 1972년 딥퍼플의 앨범 한 장이 나온다. ‘딥퍼플, 메이드 인 재팬(Deep Purple, Made in Japan)’. 일본 공연을 담은 판이다. 락의 3대 명반(名盤)이라며 지금도 팔린다. 이 앨범으로 일본은 세계 음악산업의 중심이 됐다. 우리 락페스티벌도 그렇게 가야 한다.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 K-POP은 이미 세계를 씹어 먹었다. K-ROCK도 그렇게 갈 수 있다. 락페스티벌이 물꼬를 터 줘야 한다.
요 며칠, 팬들이 화났다. 뮤직 페스티벌이 줄줄이 무산됐다. 어느 락페스티벌은 공연 사흘 전에 취소됐다. 다른 뮤직페스티벌은 공연 당일에 취소됐다. 팬도, 출연 뮤지션도 어이없어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데, 알고 보면 간단하다. 앞서 말한 걸 못했다. 새로운 전설을 만들지 못했다. 그저 추억팔이에만 매달렸다. 산업과 연결하지 못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도박만 계속했다. 그렇게 십수년을 반복했다. 안 무너지고 배기나.
이제 한 곳 남았다.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다. 봤더니 순항 중이다. 예정된 대로 간다. 출연진 예고도 견고하다. 그 속에 그럴 만한 이유가 보인다. 탄탄하고 정확한 투자로 시작했다. 최고의 과거 밴드를 불렀다. 여기에 이 시대 최고 밴드까지 더했다. 한국 락밴드의 최고봉을 모았다. 여기에 락의 미래를 책임질 신예들도 더했다. 그들을 뽑는 경연장에서 이미 열기는 시작됐다. 분명한 목표가 차이의 시작이었다.
락(Rock)은 사람(人)이다.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남았다. 여전히 세계 시장(市場)도 열려 있다. 한국의 락페스티벌도 이제는 이런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함께 숨 쉬게 하고, 세계 락과 한국 락을 함께 경쟁하게 하고, ‘K-ROCK’과 ‘ROCK-산업’을 함께 들썩이게 해야 한다. 이 모든 희망을 품은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설레임을 다잡고 기다려보자.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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