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입시 지옥 지나면 취업 지옥 올 텐데

- 부끄러운 수능 덕담 -
청년 실업 31만·비정규직 136만
낭만 따윈 옛말…취직 전쟁 대학

수능일이다. 아침밥을 먹고 있을까. 고사장을 가고 있을까. 시험 문제를 풀고 있을까. 어디에 있든 심장은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그게 55만 수험생의 심정이다. 그 아침상을 지키고 있었을까. 그 등굣길을 함께 하고 있었을까. 그 학교 정문을 붙잡고 있었을까. 무엇을 하든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게 수험생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런 날은 매년 있었다. 1982년 12월 2일 학력고사 당일. 그때도 학생은 초조했고 어머니는 간절했다.

오후 5시 40분 끝난다. 덕담을 해줘야 한다. ‘이제 끝났다’. 37년 전에도 똑같은 덕담은 있었다. 그런데 의미가 달라졌다. 후련하기엔 뭔가 찜찜한 찌꺼기가 남는다. 끝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또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겨우 입시 지옥을 빠져나왔을 텐데. 그 애들에게 또 다른 지옥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입시 지옥보다 훨씬 치열하고, 답도 안 보이고, 형체도 알 수 없는 지옥…. 취업 지옥을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이제 그 바늘구멍을 비벼대야 한다. 공무원 시험은 몇 급이든 고시(高試)다. 경기도에서 9급 되려면 25.1 대 1을 뚫어야 한다. 7급 되려면 63.58 대 1이다. 이공계가 낫다지만 이것도 거짓말이다. 공대 출신자의 75%가 전공과 무관한 곳에 들어간다. 전자를 공부했든, 건축을 공부했든 그냥 들어간다. 들어가 보면 ‘듣도 보도 못하던 직장’이다. 청년 실업률 7.3%에 청년 실업자 31만 3천명인 세상이다. 오늘 수능생이 가야 할 세상이다.

지난 9월 청년 고용률은 43.7%였다. 웬일로 조금 올랐다. 그러자 장관이 ‘12년 만에 최고치’라며 자랑했다. 그런데 이것도 말장난이다. 20대 비정규직 근로자가 136만2천명이다. 1년 전보다 23만8천명 늘었다. 비정규직이 제일 많은 연령은 60대다. 그다음에 20대 청년이다. 미안하지만 60대는 그래도 된다. 어차피 제2의 인생이다. 그런데 청년들은 아니다. 제1의 인생이다. 출발치곤 너무 슬프다. 이 길도 오늘 수능생의 앞에 있다.

다들 들어서 알 건 안다. 이미 취업 지옥을 각오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전공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51.8%가 ‘취업 잘될 거 같아서’라고 했다. ‘적성에 맞아서’란 대답은 순위에 보이지도 않는다. 대학 가서 뭐 할거냐고 물었다. ‘취업에 도움될 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리 선택의 기준을 물었다. 역시 ‘취업 스펙 쌓기’를 들었다. 산학연(産學硏) 동아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오늘 수능생도 달리 선택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제때 졸업을 못 할 수도 있다. 작년 학사학위 취득 유예생이 1만3천185명이었다. 4년제 대학교만 따졌을 때 이렇다. 졸업에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다. 이유는 하나다. 실업자 공포. ‘실업’ 무서워 ‘휴학’을 택한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교 학생도 4천333명이다. 입학할 때는 세칭 ‘인(in) 서울’이라며 좋아했을 학생들이다. 그 애들이 4년, 6년이 지나면서 ‘졸업 기피생’이 됐다. 오늘 시험을 잘 본 수능생이라면 더 걱정된다.

1982년. 그때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이었다. 그래도 부모들은 꿈을 꿨다. ‘나보다 잘사는 자식’을 확신했다. 경영대 합격하면 사장될 거라고 좋아했다. 법대 들어가면 판검사 될 거라고 자랑했다. 비슷하게 갔다. 사장은 아니어도 직원은 됐고, 판검사는 아니어도 공무원은 됐다. 이제 옛날 얘기다. 부모들의 꿈도 쪼그라들었다. ‘아침 출근만이라도 하는 자식’을 기도한다. 자식은 열심이지만 더 바라지 못한다. ‘일’ 없는 나라라서다.

이제는 애들의 미래까지 거덜나고 있다. 4~5년 뒤 쌓일 국가부채가 1천조(兆)다. 전부 오늘 수능생이 지고 갈 빚이다. 그 애들이 5시 40분에 고사장을 나설 텐데… 뭔가 덕담은 해줘야 하는데….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너희가 갈 대학에 낭만은 없다. 죽어라 학점 4.0 따고 토익 900점에 매달려라. 그래도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일 것이다. 어쩌면 그나마 없을지 모른다-. 이 실토가 참 힘들다. 그래서 ‘꼰대’ 소리 듣는 기성세댄가.

갑자기 추워졌다. 바람이 따갑다. 취업 지옥 가는 입시 지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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