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고법 부장판사’ 群, 그들의 역습

촛불 여론 ‘없애야 할 집단’
여권 향한 엄벌 항고심 잇따라
현직 “만만한 집단이 아니죠”

달라진 건 없다. 법적으로 그렇다. 1심 유죄가 2심도 유죄다. 판단의 근거도 그대로다. “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 받았다-정치자금법 위반이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벌금 100만원의 경계 때문이다. 당선을 무효시키는 선이다. 1심에서 90만원이었다. 2심에서 300만원이 됐다. 재판부도 이걸 강조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고, “보궐선거의 막대한 부담을 고려하더라도(엄벌에 처한다)”라고 했다. 은수미 시장이 위기다.

이재명 도지사는 더했다. 1심에서 무죄였다. 다들 그렇게 끝날 거로 봤다. 항소심 법정엔 취재 기자도 적었다. 딱히 더해진 증거도 없었다. 2019년 9월 6일,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벌금 300만원이다. 당선무효형이다. 언론이 속보를 쏟아냈다. 대권 가도의 위기라고 썼다. 이어진 은 시장 항소심이다. 또 직(職) ‘유지’ 원심이 ‘상실’로 바뀌었다. 경기도민이 지켜보던 두 사건이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항소심이 죽음의 문이다.’

‘경기도 밖’ 상급심 얘기도 보자. 김기춘ㆍ조윤선 상고심이 있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하급심은 유죄였다. 장시호ㆍ차은택 상고심도 있었다. 삼성 그룹 뇌물 사건이다. 역시 하급심 유죄였다. 2020년 1월 30일, 김ㆍ조 사건이 파기됐다. 무죄 취지다. 2020년 2월 6일, 장ㆍ차 사건도 파기됐다. 역시 무죄 취지다. 국정 농단 사건의 두 축이다. 죄질은 전(前) 대통령보다 가볍다. 하지만, 국민에겐 구별 없다. 국정농단 무죄다.

판사들은 판결로 말한다. 늘 ‘판결문이 전부’라고 답한다. 어쭙잖은 주석(註釋)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붙인다. 어떤 의미라도 끌어내려 애쓴다. 앞선 판결들도 그렇게 섞인다. 대강의 흐름이 추려진다. ‘하급심 판결이 확 뒤집힌다→항소ㆍ상고심이 엄청 세졌다→대개 여권 인사가 초죽음이 된다.’ 또 하나의-당연하지만- 결론이 있다. ‘이 판결은 전부 고법 부장판사급 판사들-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의 법관-이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문재인 정부 들어 귀에 익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개혁 대상으로 찍었다. ‘없앨 집단’이라고 했다. 2019년 9월 10일에도 말했다.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 이유를 설명했다. “법관을 승진에 길들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법관의 자세도 강조했다. “법관은 승진이나 중요 보직 또는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법원의 날 기념식 자리였다.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한 때 법원의 꽃이었는데…. 안타깝다. 대법원장 말 하나하나가 비수다. 법관을 승진에 길들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기존 고등부장들이 ‘승진에 길들여진 집단’으로 해석된다. 법관은 승진이나 중요 보직 또는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기존 고등부장들이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한 법관들’로 해석된다. 하기야 이미 ‘촛불 여론’에서 굳어져 버린 논리다. ‘고등부장제도가 양승태 사법 농단의 출발’이라 했다.

수긍할 리 없다. 1년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는 거죠. 승진을 안 시키면 그렇게 돼요. 전국에 130명 있어요. 그런데 이 집단이 만만하지 않거든요. 국정 농단 사건들이 줄줄이 올라올 텐데. 그게 뒤집히면 어떨까요.” 130명 중 1명의 얘기다. 격 없고 사적인 담소였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난다. 앞선 상급심 때마다 떠오른다. 과연 그런가. 그들은 지금 반격에 나서고 있는가.

그들이 직접 말하는 건 없다. 말을 하는 집단도 아니다. 판결을 묶어서 정식화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서로 독립된 영역이다. 이재명 당선무효형, 은수미 당선무효형, 국정 농단 무죄 환송…. 다른 판사가, 다른 기록을, 다른 공간에서 판단했다. 이 사이에서 무슨 경향성(傾向性)을 찾겠나. 꿰맞출 생각 없다. 다만, 하나는 똑똑히 보고 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 만만한 집단이 아닙니다’던 그의 말, 그 말이 지금 증명되어 가고 있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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