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중립 위한 외로움, 이게 판사의 힘이었다

판사실, 사람 못 들어가는 중립 공간
‘판사도 정치’라더니 법복 벗고 入黨
‘정치 독립’ 다수 판사에 모욕감 안겨

도망치듯 판사실을 나왔다. 다음 날 기자실에 소동이 벌어졌다. 전날 밤 사건-당직 판사실을 벌컥 열고 들어갔던-이 문제 됐다. 공보 판사가 항의했다. ‘박 선배’가 설명해줬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판사실은 들어가면 안 돼. 법조기자실만의 불문율이야.” 그때 알았다. 판사실은 외롭게 두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 자체가 재판정이었다. 기록을 검토하고, 양형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작은 재판정이었다. 그 뒤론 거의 안 갔다.

외로운 직업이다. 재판 300건을 매달 처리했다. 매일 기록 속에 묻혀 살았다. 수천~수만장을 넘겼다. 엄지에서 골무 뺄 날이 없었다. 차라리 재판 날이 나을 수도 있었다.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힘이었다. 외로움의 대가로 받은 힘이었다. 그 힘으로 인간계(界)의 분쟁을 해결했다. 아무도 그 결정에 대들지 못했다. ‘10년 법조기자’가 본 판사의 권원(權源), 그건 중립을 위한 외로움에 있었다.

이게 많이 달라졌다. 언제라곤 말 못한다.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달라졌다. 판사들이 일상에 막 섞여 들어갔다. 때론 범인(凡人)보다도 못한 짓도 했다. ‘가카새끼 짬뽕’이라며 대통령 욕을 했다. 맘에 안 드는 이웃집 차량에 본드를 짜 넣었다. 그래서 그만둔 이 모 부장판사다.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가 잡혔다. 하필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고 있었다. 입건돼 그만둔 홍 모 판사다. 개인적 일탈이다. 이걸로 조직을 논할 순 없다.

정치 속으로 막 뛰어드는 판사, 이런 게 진짜 문제다. 때론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이다. 언론에 등장해 내부 문제를 폭로한다. 그러면서 ‘판사도 다른 시민과 같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선언한다. 며칠 전 그만둔 이수진 부장판사다.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다. “(판사님들은 물론) 많은 분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그만둔 이탄희 판사다. 결국, 정치로 간 행동이었다. 그때-90년대-는 쉽게 안 했을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더 실망이다. 이 부장판사는 1월 7일 사직했다. 열흘 지나자 민주당에 입당했다. ‘인재 영입’이란 명예가 주어졌다. 꽃다발 받고, 머플러도 받았다. 대번에 유명ㆍ거물 정치인이 됐다. 이 판사도 민주당에 입당했다. 퇴직 1년 만이다. 역시 ‘인재영입’이다. 폼나는 인사말도 했다. 역시 경쟁력 갖춘 정치인이 됐다. 1년 전부터 정리하면 이렇다. ‘비리 폭로→조직 사퇴→정치 입문’. 정치꾼들의 전형적인 코스다.

진중권이 독설을 퍼부었다. “공익제보와 국회의원을 엿바꿔 먹었다.” 흥분할 일도 아니다. 이런 예(例)는 길바닥에 널렸다. 오보(誤報) 했던 직원이 사장 됐다. 한 방송사 얘기다. 퇴출(退出)됐던 연예인이 억대 몸값이 됐다. 한 방송인 얘기다. 갑(甲)질 피해자던 노동자가 정치 후보가 됐다. 한 항공사 얘기다. 권력 반전이 준 인생 반전이다. 사법 농단을 폭로한 판사들이다. 권력이 준 반전이라 보면 된다. 그들만의 정치 거래다.

진짜 피해자는 남은 판사들이다. 판결의 최고 가치는 중립이다. 법관윤리강령도 이 원칙을 못박아 놓고 있다.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이걸 뒤흔들어 놨다. ‘판사도 정치적 동물’이라고 근거 없이 선언했다. 많은 판사들이 걱정했다. ‘큰 일 날 소리’라고 했고, ‘판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는 쏙 빠져버렸다. 정치로 가버렸다. 남은 판사들에겐 ‘엿 바꾸기’가 아니라 ‘엿 먹이기’다.

사법 정의? 대한민국 판사들은 늘 투쟁했다. 침해됐다 싶을 땐 언제고 일어섰다. 그 생생한 기록이 ‘사법 파동’의 역사다. 1971년 사법 파동 때는 공안 검찰에 맞섰다. 전국 판사 455명 중 150명이 사표를 냈다. 권력을 굴복시켰다. 1988년 사법 파동-‘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 1993년 사법 파동-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 2003년 사법 파동-대법관 인선 관행 개혁-도 전부 그런 역사다. 하나하나가 직(職)을 던진 투쟁이었다.

그때, 그 판사들은 달랐다. 지금의 이들처럼, 투쟁을 훈장 삼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언론에 영웅담 내놓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정치와 흥정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들처럼, 입신 양면의 길을 쫓지 않았다. 개인이 아닌 모두의 이름으로 일어섰고, 사람이 아닌 제도를 지켜내려 싸웠고, 정당 당사가 아닌 판사실로 돌아와 끝냈다. 이런 차이를 어깨너머로 귀동냥했기에, 이들을 지지할 맘이 조금도 없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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