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曺 개혁 장관의 反 개혁 작품-공보준칙 강화

흉악범 공개, 형법 시대정신
‘유력인 얼굴 보호’가 개혁?
‘개혁가’답지 않은 1호 작품

“토요일인데 뭐해.” ‘박 계장’의 전화였다. “시간 있으면 법원 영장계 가 봐.” 뭔가 있다는 귀띔이다. 서둘러 법원으로 갔다. 담당 직원 옆에서 미적댔다. ‘판사실 올려야 하니까 빨리 보세요’. 문제의 영장을 찾아냈다. ‘무직’이라고 적힌 표지를 넘겼다. 가슴 떨리는 단어들이 보였다. ‘대통령…청와대…서울시 부시장…사기’. 반은 눈에, 반은 머리에 담아왔다. 다음날 1면에 큼직하게 썼다. ‘대통령 친 동서, 사기 혐의 구속’.

1998년 YS 동서 사건이다. 몇 번 없는 단독보도였다. 방송, 신문이 불을 뿜었다. ‘대통령 동서가 사기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청와대를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직 서울 부시장 연루 의혹도 있습니다.’ ‘감추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박 계장’이 어긴 것이다. 검찰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오후에 특수부장실을 들렀다. 항의를 각오했다. 그런데 노상균 부장이 웃는다. “잘 썼어. 미친놈들. 이런 게 감춘다고 감춰지느냐고.”

법(法)으로 보자. 딱 떨어지는 위법이다. 피의사실을 무단히 공표했다. 무단 공표의 행위자가 검찰이다. 피의자는 인권을 침해당했다. 세상천지에 다 공개됐다. 당연히 처벌이 따를 일이다. ‘박 계장’은 징계감이었고, 검찰은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나도 불법 유출된 피의 사실을 썼다. 수많은 기자들은 그 기사를 받아썼다. 나도, 그 기자들도 모조리 불법 행위자다. 하지만, 넘어갔다. 부장검사는 되레 ‘잘했어’라며 웃었다.

현실(現實)로 보자. 피의자는 대통령 동서다. 드나든 곳은 청와대다. 서울시 부시장과도 어울렸다. 이 모든 게 사기의 수단이었다. ‘대통령’ ‘청와대’ ‘서울 부시장’…. 범인(凡人)의 눈엔 모든 게 권력의 단어다.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따져 물어야 할 범죄다. 이런 사건을 두고 누가 슬그머니 넘어가자 하겠나. 청와대와 서울시, 가족들이라면 몰라도…. ‘공개한’ 검찰의 잘못이 아니다. ‘공개하지 말라’고 한 권력의 잘못이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하나는 ‘잘 지켜져 왔다’는 믿음이다.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는다. 관심을 끄는 사건일수록 더 그렇다. 노무현정부 많은 사건, 이명박ㆍ박근혜정부 많은 사건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른 오해는 ‘피의사실 비공개가 곧 선(善)이다’란 믿음이다. 굵직한 사건일수록 숨기고 싶어 한다. 부패한 권력은 더욱 그런다. 이걸 덮어줘야 하나. 그들에겐 선일 게 맞다. 하지만, 국민에까지 선일까.

흉악범 얼굴 공개도 원래는 금지였다. 그러다 2010년부터 바뀌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계기였다.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내 아들은 어떻게 하라고’란 강호순 주장에 공분이 일었다. 오원춘부터 고유정이 그래서 다 공개됐다. ‘알 권리’에 대한 국민 요구가 바꿔 온 흐름이다.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민심도 똑같다.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그러면 알도록 해야 한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것이 지금 형법이 가는 방향이다.

다들 조국 장관을 개혁 장관이라 한다. 논란 속에 취임했다. 그를 택한 대통령의 워딩도 ‘검찰 개혁 적임자’였다. 취임 이후 행보도 그렇게 간다. 고(故) 김홍영 검사 묘를 찾았다. 검찰 개혁단 구성을 마쳤다. 조만간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게 있다. 검찰 공보준칙 개정안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막는 개정이다. 피의자 사진 촬영을 막는 개정이다. 왜 하필 이런 게 개혁 장관의 1호 작품일까.

전임 장관이 시작한 작업이라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때였을 거다. 말 안 듣는 ‘동부 지검’ 때문에 고민한 듯하다. 엄밀히 ‘조국 표(標)’는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완성자가 조 장관이다. 시행을 결재한 서명자도 조 장관이다. 시행을 얼마간 미뤘다지만, 달라질 건 없다. ‘개혁 장관’ 조국의 첫 번째 개혁은 ‘공보준칙 개정’이 됐다. 높은 사람 소환할 때 사진 못 찍게 하고, 수사내용 공개한 검사를 엄벌하는 개혁 말이다.

뭐가 급하다고 이런 것부터 내놓나. 여론에 밀려날 걸 뭐하러 시작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롭지 않은 두 단어-개혁 장관과 공보준칙 강화-다.

1998년, ‘박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정보 따서 해보려는데, 위에서 덮으라니까….” 그런 게 검찰이다. ‘안 하는 수사’는 없다. ‘못하는 수사’가 있을 뿐이다. 개혁으로 뚫어줘야 할 구멍도 이런 거다. ‘못하는 사건’ 없애주고, ‘못하게 하는 권력’ 막아주는 거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투명성 확보다. 국민 앞에 더 당당한 수사 과정 공개다. 그런데 ‘개혁장관’의 1호 개혁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한참 먼 ‘틀어 잠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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