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64년생 김 기자

20년 ‘386’의 초라한 성적표
‘88만원 세대’ 책임추궁·공격
‘반성’과 ‘비움’의 2020년 돼야

7080. 왠지 편한 상호다. 게다가 친구가 사장이다. 한 달에 한 번 들른다. 12월 26일에도 갔다. 직장인 한패가 옆에 진쳤다. 30대 40대 열대여섯 명이다. 40대 남자가 좌장인 듯하다.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다. 술잔을 들며 건배를 제의한다. “젊은이들답게….” 그러다가 말을 멈춘다. “아, 여기 60년대생이 계시네. 64년생이시죠.” 모두 한바탕 웃는다. 그게 그렇게 웃을 단언가. 구부정한 64년생, 그의 뒷모습에 머리숱이 휑하다.

술잔이 정신없이 오간다. ‘64년생’ 자리만 조용하다. 오는 술잔도, 가는 술잔도 없다. 맘 속으로 내가 말한다. ‘차라리 집에 가라.’ 하지만 ‘64년생’은 계속 앉아 있다. 30, 40대의 광적인 노래가 이어진다. 30여분 지났을까, 40대가 배려한다. “자, 64년생 어르신 모십니다.” 맘 속으로 내가 또 말한다. ‘제발 옛날 노래는 하지 마라.’ ‘64년생’은 또 기대를 저버린다. “바람에 날려버린…앗싸.” ‘안동역에서’다. 앵콜이 없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2019년 시작된 ‘386’의 현실이다. 세대 중심이라던 자부심이 무너졌다. ‘2030세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무능해서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추궁한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88만원세대’의 삿대질이다. ‘6070세대’의 비난도 시작됐다. 겨우 이러려고 그 난리를 쳤냐며 비웃는다. 20, 30년 전에 밀려났던 ‘유신 세대’의 역공이다. 이날 모습이 그랬다. 중심에서 밀려나는 386의 현실이었다.

무너짐의 조짐은 정치에서 나왔다. 386 불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표창원(66년생)ㆍ이철희(64년생)ㆍ임종석(66년생)이 떠났다. 저마다 멋들어진 이유를 댄다. 현실 정치 실망ㆍ책임 정치 실현ㆍ통일사업 전념.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은 간단히 정리했다. ‘386 퇴진 시작’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그러면서 나머지 386에도 마이크를 댄다. 사퇴할 생각 없냐고 따져 묻는다. 아마 몇은 더 떠날 듯싶다.

양심에서도 무너졌다. 386의 자산은 양심이다. 민주화를 쟁취한 힘이다. 다른 세대와 차별화하던 무기다. 이것마져 무너졌다. 조국(65년생) 사태는 그 생생한 중계였다. 재산에 대한 탐욕, 자녀를 위한 편법, 권력에 의한 특권이 넘쳤다. 법(法)의 판단은 의미 없다. 이미 도덕(道德)에서 무너졌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다른 세대가 386세대에 가졌던 민주화의 부채는 조국 비리로 다 퉁 쳤다.” 이 말에 더할 표현이 없다.

화려한 등장이었다. 1996년 김민석(64년생)이 문을 열었다. 32살짜리 국회의원이었다. 4년 뒤 총선은 386 선거였다. 386이 국회를 접수했다. 30대 의원만 23명이었다. 386 자체가 최고의 힘이었다. 다선(多選)도 눌렀다. 고령(高齡)도 이겼다. 이 정치의 파도가 곧 세상까지 덮쳤다. 문학 중심에도 섰고, 문화 중심에도 섰고, 한류 중심에도 섰다. 모든 곳을 점령했다. 차라리 사회에 밀어 닥친 ‘제너레이션 쿠데타’(generation coup d‘tat)였다.

그 후 20년을 해 먹었다. 그때 30대 소장파가 이젠 50대 당권파다. 그때 초선 정치인이 이젠 다선 대권 후보다. 그러다가 들통났다. 나라 망친 무능(無能)이다. 그 20년간 한국은 하나 같이 뒤로 갔다. 95년 7.3%던 성장률은 2019년 1%대로 추락했다. 90년대 6대 1이던 5대 기업 경쟁률은 2010년대 150대 1로 높아졌다. ‘위대한’ 386시대의 ‘처참한’ 성적표다. ‘88만원세대’ 분노ㆍ‘유신세대’ 비아냥이 괜한게 아니다.

프랑스 ‘68세대’가 있었다. 낡은 드골주의를 공격했다. 20대 청년과 학생이 중심이었다. 미테랑 정권까지 만들었다. 7년씩 두 번, 국가도 운영했다. 그리곤 버려졌다. 부도덕과 부패에 국민이 분노했다. 그 형벌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좌파는 대통령 선거 근처에도 못 간다. 우리 386이 곱씹어야 한다. 능력이 없었음을 사과해야 한다. 어린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중심에서 비켜서야 한다.

어느 사회든, 어느 집단이든 똑같다. 그날 ‘64년생’은 안쓰러웠다. 참석한 게 안쓰러웠고, 노래한 게 안쓰러웠다. 그곳에 없었어야 좋았고, 그 노래 안 했어야 좋았다. 지켜보던 ‘64년생 김 기자’도 이렇게 적고 있다. ‘386들에게 2020년은 비움을 시작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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