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달 전, 친한 후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0개월된 아이를 둔 후배는 아이에게 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는 푸념 섞인 넋두리를 하면서, 아이의 인지발달에 좋은 장난감이나 동화책, 학습지 등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칠 전에는 15개월 된 아이를 둔 친구에게서 한글과 영어교육을 언제부터 시키면 좋을지, 또 이 시기에 어떤 교육이 좋은지에 관하여 진지한 질문을 받았다. 사실 필자는 유아교육을 전공하였다는 이유로, 선후배와 같은 지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사는 아이엄마들에게도 이런 질문들을 자주 받는다.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필자가 어떤 대답을 해줄지 잔뜩 기대하고 필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그러나 필자는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어떤 답변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필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맘껏 놀게 해주세요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실망스럽고 무성의한 대답으로 밖에 보이지 않고, 혹자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맘껏 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삶이고, 기쁨이며, 발달의 원동력이고, 살아가는 힘을 배우는 배움터다.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이기고, 지고, 성공하고, 실패하며, 견디고, 부딪치고,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놀이가 문제해결능력, 집중력, 학습 적용능력, 사회성, 자존감 및 자기조절력 등을 길러준다는 주장은 많은 선행연구들에서도 밝혀진 바이다.그러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놔둘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잘 놀게 하는 부모와 잘 노는 아이를 못 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198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신경생리학자 로저 스페리는 상상력 및 창의력과 관계가 높은 우뇌가 영유아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좌뇌기능을 요구하는 과도한 인지학습은 창의성과 정서를 담당하는 우뇌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에는, 뇌량의 앞부분과 고차적인 정신활동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영유아기에 촉진된다는 두뇌연구결과가 나왔다. 뇌량의 앞부분이 발달한다는 것은 양쪽 뇌의 교류와 전두엽의 발달을 촉진하는 다양한 놀이활동이 영유아기에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공차기, 공주고 받기, 뛰기, 정글짐 오르기, 자전거 타기, 모래놀이 등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노는 놀이가 그러하다. 특히, 동작피질과 뇌량이 급격히 발달하는 생후 1, 2년 아이를 붙잡아 놓고 이런 저런 학습을 시키는 것은 학습효과도 없을뿐더러 아이의 자율성을 차단시키고 학습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형성시킬 수 있다. 자신의 온몸을 움직이면서 마음껏 주변 세계를 탐색하고, 만지고, 실험할 수 있는 놀이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인지발달에 더 효과적이다. 유니세프 아동권리협약 31조에는 어린이들은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UN어린이 권리장전에도 놀이는 건강한 어린이가 정열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참여하는 몰입행동이며, 어린이의 기본권리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과도한 조기학습에 치여 충분히 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이들의 미래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어린이들을 놀게 해주자. 안전하게 놀이할 수 있는 공간과 충분히 놀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자. 놀이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유희, 재미가 아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크고, 충분히 잘 놀아야 잘 클 수 있다.
오피니언
경기일보
2010-10-21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