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호랑이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예찬한다. 반대로 욕심 많은 사람이 짐짓 청백한 체 하는 것이나 마음이 흉악한 사람이 짐짓 착한 체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고양이-소(素)’를 비롯 ‘고양이 털낸다(아무리 모양을 내더라도 제 본색이야 감추지 못한다)’‘고양이 기름 종지 노리 듯’‘고양이 달걀 굴리 듯’‘고양이 보고 반찬가게 지키라는 격’등 부정적인 말도 꽤 많다. 고양이는 원래 삵쾡이를 길들인 것으로 교근(皎筋)과 송곳니가 특히 발달한 육식성이다. 눈동자가 낮에는 좁게, 밤에는 둥글고 크게 되어서 어두운 데에서 잘 보여 쥐같은 동물을 잡아 먹기에 편리하다. 이 육식성 고양이들이 요즘 도시 야산이나 택가·공원·아파트단지의 지하주차장 등에 자주 출몰해 사람들의 간담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고양이가 사람의 집을 빠져 나갔거나 애완용으로 키우던 사람들이 아무데나 버려 들고양이로 변해 야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길이가 1m가 넘는 야생 고양이가 파란색 눈빛을 내며 어슬렁거리는 것을 실제로 보면 호랑이가 따로 없다. 야생 고양이들은 등산객들이 많은 산에서도 떼를 지어 다녀 생태계 교란은 물론 학교 실험실에까지 침입한다. 시골에서는 토끼·조류·개구리·뱀 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먹고 있으며 밤에는 인가로 내려와 닭, 병아리들을 마구 잡아 먹어 농가에 피해를 주고 있다. 야생 고양이들의 출몰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천적이 없어 도시 인근 야산이나 시골에서 포식자로 군림할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어떤 질병을 몸에 지녔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주택가와 유휴지 등에 배회하는 야생 고양이들을 붙잡아 안락사 또는 거세한 뒤 풀어준 일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획과정이 비인간적이라는 동물애호가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애완용이었던 고양이들이 ‘작은 호랑이’로 변해 공포의 대상이 된다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수백, 수천마리의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외국영화도 있지만, 어쩌다 사람이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아닌게 아니라 ‘고양이가 알 낳을 일’이다. 동물애호가들의 대책을 알고 싶다. /淸河

철도원

예전에는 ‘ 철도국에 다닌다 ’하면 모두 부러워했다. 철도국 직원들은 나라에서 월급을 매달 꼬박 꼬박 준다고 딸 둔 집에서는 사윗감으로 모두 좋아했다. 그 길다란 기차도 철도국 직원 가족들은 공짜로 타고 다닌다고 아이들은 자랑하고 다녔다. 수학여행 같은 것 외에는 기차 타 볼 일이 없는 아이들은 기차가 달리는 철로 옆길에서 승객들에게 두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마을 언덕에 올라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철도 기관사 ’는 파일럿처럼 무척 멋져 보였다. 그래서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1899년 9월 18일 일본이 경인철도주식회사를 설립,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33.2㎞의 철도를 완공한 이래 광복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일제의 식민지정책 수행을 위한 필요에서 이루어졌다. 8·15 광복과 정부수립 이후 철도는 전면 국유화되어 그 운영과 부대사업에 관한 업무를 철도청이 관장하게 되었고 철도원은 철도청에 소속된 공무원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은 철도원 요직에 종사할 기회가 부여되지 못했다. 1905년 5월 철도이원양성소가 생겨 1919년 경성철도학교로 개칭되었고, 1967년 이 학교가 철도고등학교를 거쳐 1979년 국립 철도전문대학으로 개편, 승격되면서 철도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해왔다. 졸업후 취직이 잘 돼 수재들이 특히 선호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철도원의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철도현장에서 근무하는 하위직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 민영화에 대비해 인력감축을 시작한 1996년부터 올 6월까지 무려 7천739명이 감축된 것이다. 터무니없는 인력 감원으로 살인적인 노동이 계속돼 과로사나 작업중 사고로 순직하는 철도원이 늘어 “보선원의 주검으로 선로를 깐다”는 말까지 생겨났다.역무원들의 근무여건도 과로사가 늘어나는등 비슷하다. 철도노조의 이같은 주장을 철도청은 시인하지 않는다. ‘북한∼시베리아를 잇는 21세기 철도 르네상스를 구축하겠다 ’고 정부가 공언하는 사이에 고달픈 하위직 철도원은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철도원을 부러워하던 시절은 언제 다시 오나. /淸河

전통주

한국의 술문화는 역사가 매우 깊다.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친 다음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삼국시대의 술은 발효원인 주국(酒麴·누룩)과 맥아(麥芽·엿기름)로 빚는 주(酒)와, 맥아로만 빚는 례(醴·감주)의 두가지였다. 이 가운데 ‘고려주’와 ‘신라주’는 중국 송나라에까지 알려져 문인들의 찬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 유명주로 꼽히는 술이 자리를 잡았다. 제조원료도 멥쌀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기술도 정교해졌다. 이때 명주로 꼽힌 것이 삼해주· 이화주·부의주· 하향주· 춘주·국화주 등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맛과 멋을 내면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전통민속주는 중국술처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지 않는다. 일본처럼 섬세하지도 않다. 보드카처럼 독하지도 않다. 과실주가 아닌데도 느껴지는 은은한 향, 자연스러운 빛깔이며 같은 알코올 도수라도 유난히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많이 제조되는 문배주는 조, 찰수수를 주원료로 하는데 술이 익으면 배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향이 난다. 옥로주는 조선 순종 때인 1880년쯤부터 제조됐다. 쌀, 천연암반수, 율무가 주원료인데 향기가 독특하고 술맛이 부드럽다. 옥수수가 주원료인 강원도 지역의 옥선주는 알코올 농도 40%의 증류식 순곡주로 여린 연갈색 빛깔과 청량한 향이 특징이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한산소곡주·계룡백일주·가야곡왕주·두견주가 유명한데 두견주는 신경통, 부인냉증, 요통 등에 효능이 많다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 진달래꽃에서 나오는 아자라성분이 진해작용을 한다. 영남지역은 과하주·국화주·안동소주·송엽주·솔송주가 유명하고 호남지역에선 송화백일주·송죽오곡주 ·추성주·이강주 등이 옛부터 전해 내려온다. 올 한가위에는 예년에 비해 전통주가 많이 판매됐다고 한다. 명절 때 음미하는 술은 아무래도 전통주가 제격이다. 달빛이 가슴에 스며드는 휘영청 달 밝은 밤, 일가 친척들이 마주앉아 전통주를 즐기는 광경은 보기만 하여도 정겹다. /淸河

제2 추모의 집

현재 우리나라 국토에 매장돼 있는 묘지가 2천만기에 이르러 앞으로 10년 후면 웬만한 땅은 모두 묘지로 변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묘지대란을 막는 방안은 장묘문화를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꾸는 것 외는 대안이 없다. 그래도 몇년 전부터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묘문화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것은 큰 수해로 공동묘지와 가족묘 등이 유실되면서 부터다. 여기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화장과 화장서약 등이 장묘문화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한다.예컨대 수원 출신인 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화장과 고 건 서울시장의 화장서약 등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화장을 하면 고인의 유해를 강이나 산, 호수, 바다 등지에 모셨으나 지금은 납골당에 안치하고 싶어하는 유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2 추모의 집’으로 불리는 납골당에 모시고 산소를 성묘하듯 자주 찾아뵙기를 희망하는 것이다.그러나 문제가 있다. 화장과 납골당을 이용하는 사례가 확산되는 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 확장이 너무 어려운 점이다. ‘혐오시설’을 내 고장에 들여 놓을 수 없다’는 지역주민들의 님비(NIMBY)현상 탓이다. 후손에게 금수강산이 아니라 묘지강산을 물려줘야 할 판이라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납골당인 ‘제2 추모의 집’의 경우 혐오시설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울창한 나무와 깨끗한 시설이 마치 외국의 유명공원을 연상케 한다. 중앙통제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시설과 유족·추모객들이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휴식공간 등이 예술공연장 같은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내 고장에 화장장·납골당이 들어선다 하여도 반대만을 할 일이 아니다. 어느 때고 내가 죽은 뒤 매장을 하건 화장을 하건 안치될 곳 없어 혼령이 떠돌아 다닐런지 누가 아는가. 상전벽해라고 했다. 선산이 변하여 아파트단지가 될런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고인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납골당은 사회복지관처럼 하나의 공익시설로 이해돼야 한다.아울러 가족납골묘 등 다양한 장묘묘설을 개발해야 한다. 이제는 추석이나 명절 때 묘소처럼 납골당으로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는 모습이 점점 좋게 보인다. /淸河

‘ P73 ’

우리나라는 청와대 등 주요 정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 상공에 ‘수도권비행금지 구역 LP73)’을 엄격하게 운용하고 있다. 도심 주요 건물 옥상이나 고지대마다 대공포를 촘촘히 배치해 놓았다.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정한 반경으로 그어진 ‘P73’은 남쪽과 서쪽으로는 한강, 동쪽으로는 중랑천이 경계선인데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구역내에서 비행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구역에 사전 허락받지 않은 항공기가 침범할 경우 일차적으로는 교신으로 경고하지만, 2단계 핵심지역으로 다가올 경우 바로 대공포나 미사일을 발사, 격추시킨다고 한다.서울 하늘은 휴전선과 가까워 단계별 대응을 위해 원거리 미사일 중·단거리, 기관포를 배치해 놓았고 1∼2분내에 대응할 수 있는 방공체계와 훈련이 잘 이루어져 세계 어느 도시보다 안전하다고 한다. ‘9·11 테러’로 붕괴된 110층짜리 미국 세계무역센터(WTO) 쌍둥이 건물은 서울 63빌딩의 격자형 기둥구조와 달리 내부기둥이 없어 쉽게 붕괴된 측면이 있다지만, 건물당 비상계단이 16개나 돼 인명피해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70 ∼ 80층 초고층 빌딩임에도 별도의 피난시설 규정이 없이 ‘수평거리로 30m당 비상계단 설치’만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당국은 “우리 건물들은 구조가 달라 불에 약하지 않다 ”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니까 서울 하늘은 기습에 대비한 방공망이 강화돼 있고, 고층 건물들도 화재에 걱정없다는 얘기다.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좋지만 최첨단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도 항공기의 자살 테러 공격을 무참히 받았다. 110층짜리 건물은 화재로 인한 붕괴가 아니라 두 대의 항공기가 들이받은 것이다. 폭격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는 6·25전쟁 휴전상태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1994년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회담 때 북측 대표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도 열린 마당에 ‘서울에 설마 그러랴’싶지만 국토와 사상이 분단된 우리나라는 유비무환이 최상책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淸河

한비자 故事

조(趙)나라 왕 경후(敬候)는 궁중 주연을 즐기지 않으면 여름에는 뱃놀이, 겨울에는 사냥으로 소일 삼았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에겐 대통을 입에 물려 억지로 들이붓곤 했다. 행실이 이러함에도 그가 재위한 십 수년은 태평성대였다. 군사는 적국에 패한 일이 없고, 땅을 이웃에 빼앗긴 일이 없으며, 안으로는 관리들의 어지러움이 없고 밖으로는 환란이 없었다. 연(燕)나라 왕 자쾌(子快)는 수십만명의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그 스스로가 주연과 오락을 삼가고, 몸소 쟁기를 잡아 백성들의 근농을 독려했다. 그런데도 안에서 일이 생겨 그 자신은 죽고 나라는 망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다. 한비자(韓非子) 설의편(說疑篇)은 이같은 이유를 ‘경후는 신하를 임용하는 도리를 잘 알았기 때문이고, 자쾌는 신하를 임용하는 도리에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DJ의 개혁지상주의, 부정부패 척결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판인지 세상은 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온통 시끄럽고 개혁은 실종됐다. 그가 총재로 있는 민주당은 측근 정치로 공식기구의 가동에 마비된 가운데 엊그제 가진 YS·JP회담은 신보수세력의 신당창당을 점쳐 정계개편의 빅뱅이 예고되고 있다. 두고보면 알겠지만 ‘3김’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중진이나 젊은층의 결집이 세를 형성해 연대하지 않으면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언젠가는 동강날 수 있다. 이런데다가 민생은 더욱 어려워 오늘 내일이 걱정인 판에 나오는 소리라고는 짝사랑 대북타령 뿐이다. “밖은 시끄러운데 청와대는 너무 조용하다”면서 태풍의 핵에 비유했다. 난세다. 대통령은 한다고 했지만 막상 현실은 이 지경이다. 이도 그 자신의 책임이다. 얼마 남지 않은 다음 대통령선거 일정이 바싹 다가서면 더욱 어지러울 것이 걱정된다. 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이 어떤 뜻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태풍의 핵’말 자체는 명언이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비자의 고사에 나오는 경후와 자쾌의 예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하는 얘기다. /白山

'사랑의 찬가'

설사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쪼개지고 또 꺼져도/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기만 하면 그런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예요/어떠한 어려움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저에게는 오직 당신이 저를 사랑해주기 때문이죠/사랑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세상 끝가지 따라 가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하늘의 달도 훔치겠어요/그리고 당신이 바라신다면 조국과 친구를 버리는 일도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1915∼1963)가 부른 ‘사랑의 찬가’가사다. 그녀의 작사 작곡으로 노래를 불렀다. 피아프는 이밖에 ‘장밋빛 인생’ ‘물에 흘려보내고’등 수많은 주옥같은 절창을 남겼다. 힘차면서 정감넘친 가창력은 불후의 샹송가수로 평가받는다.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다. 피아프는 실제로 ‘사랑의 찬가’가사처럼 뜨거운 사랑도 했고 그가 어렸을 적에 고생한 경험으로 어려운 이들을 많이 도왔다. 피아프는 유랑곡마단의 곡예사 딸이었다. 곡마단을 선전하는 거리의 무명가수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의 천재성을 예견한 한 카페 주인이 운명을 바꿔놨다.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다가 가설무대에 데뷔한 것이 드디어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949년 10월28일은 피아프 생애에서 가장 슬픈 날이다. 그녀가 사랑했던 복싱선수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 세르당을 졸라 비행기를 타도록 한 파리발 뉴욕행 여객기가 아조레스 제도의 산꼭대기에 추락, 마침내 사랑의 불꽃도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피아프는 그무렵 공연을 위해 뉴욕에 가있으면서 세르당이 너무나 보고 싶어 배는 시일이 걸리니 비행기를 타라고 전화했던 것이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이를 죽게했어!”자책감과 절망으로 울부짖다가 불을 끈 어둠속에서 몇날 며칠동안 밤새 추억을 더듬어 가며 세르당을 위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홀연히 떠오른 가사와 악상을 정리한 것이 ‘사랑의 찬가’다. 만년에는 부상으로 얻은 고통을 모르핀으로 달래다가 중독돼 고생하기도 했다. 천재의 수명은 짧은 것인지, 오늘은 그녀가 마흔 여덟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날이다. 파리 공원묘소에 잠든 그녀는 만인의 정인(情人)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白山

부시의 ‘망언’

예루살렘의 원주민인 아랍사람들은 처음엔 기독교도의 성지순례를 방해하지 않았다. 분쟁이 생긴것은 11세기 터키가 이 지역을 점령, 기독교도의 순례를 탐탁하게 생각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이어 1096년 성지회복의 기치를 내세운 1차십자군을 시작으로 1291년까지 근 200년동안 8회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1212년엔 소년소녀 십자군을 보냈으나 리스본을 떠난 이들의 배 두척이 지중해에서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간신히 이스라엘 해안에 도착한 다섯척의 배 십자군 소년소녀들은 대부분 터키군에게 체포돼 이집트 등지에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동안 ‘십자군 전쟁’의 구설수에 휘말렸다. “테러를 응징하는 십자군전쟁”이라며 자신의 대 아프간전을 십자군전쟁에 비유했던 것이다. 이에대해 하필이면 ‘기독교 세력의 팽창주의와 식민지주의를 상징하는 십자군전쟁을 왜 아프간 공격에 비유하느냐’는 주변의 충고끝에 백악관의 사과성명과 함께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부시는 내키는대로 총질하는 서부시대 총잡이가 아닌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미국 언론의 따가운 질책을 면치 못했다. 부시가 서부시대의 망나니와 비슷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듯 싶다. 수개월전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공식 방문한 공식 석상에서 부시는 남의 나라 원수를 가리켜 “이사람(this man)”이라고 하는 망발을 한 적이 있다. 하긴, 부시의 거친말, 말 실수는 전부터 유명하긴 하다. 이의 잘못을 직언한 참모들로 인해 근래엔 언어순화 의지를 표명하긴 했다. 그 자신부터 험한 말을 자제하면서 정치권의 언어 순하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개꼬리는 역시 삼년을 묵혀도 황모가 되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어쩔 수 없는 그 자신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 아프간전의 십자군전쟁 비유다. 인간이 오만하면, 더욱이 거느리는 자가 오만하면 적이 아니었던 사람도 적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한다. 미국 대통령의 자질이 의심되는 부시의 재임기간이 무척 걱정스럽다. /白山

여보, 사랑해

소크라테스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생활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명언이다. 선인(先人)들은 결혼에 대한 평가를 환상적으로 평가하려 하지 않았다. 예컨대 “결혼은 새장과 같은데도 밖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그 안에 들어가려 하고, 안에 있는 새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는 말이 그러하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혹평한 이도 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주례에 따라 하객들 앞에서 하는 약속이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백년가약이다. 한평생을 함께 하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약속이다. 성경에서는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의 가치는 진주보다 낫다고 하였다. 또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일러준다. 남편 역시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주문한다. 여성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기혼남성의 44.8%, 여성의 62.1%가 이혼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세대별로는 40대가 가장 높았다. 부부사이의 ‘성관계 의무’에 대해서는 ‘부부사이라도 강제적 성관계를 강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에 여성의 46%가, 남성은 2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거나 ‘부부는 싸움을 했어도 하룻밤 함께 자고 나면 화가 풀린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는지 2000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915쌍이 결혼하고 329쌍이 이혼했다. F·베이컨은 “아내란 청년 때는 연인이고 중년 때는 친구며, 노년에는 간호사다”라고 말했다. 남편 역시 노년엔 의사나 간병인일 것이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은 예로부터 ‘마누라가 죽으면 서방은 뒷간에 가서 웃는다’라거나 ‘서방이 죽으면 마누라는 서방 산소의 떼가 마르기도 전에 개가한다’고 조소했다. ‘ 9·11 미국 항공기 테러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몇분 몇초 앞두고 ‘여보, 사랑해’‘ 사랑해, 여보 ’라는 유언을 핸드폰에 남겼다고 한다. 죽음직전에 생각난 절절한 부부애와 가족애가 눈물겹다. 많은 사람들을 뉘우치게 한다. /淸河

천벌

수원의 인근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용주사에 가면 ‘불설부모은중경판(佛說父母恩重經板) ’과 ‘부모은중경탑(父母恩重經塔)’을 볼수 있다. 이 ‘부모은중경’에는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들었다. 바로 ‘품고 지켜주시는 은혜’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는 은혜’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 ‘젖 먹여 길러 주시는 은혜 ’ ‘손발이 다 닳도록 씻어 주시는 은혜’ ‘먼길 떠날 때 걱정하시는 은혜’ 자식을 위해 나쁜 일 까지 서슴지 않는 은혜’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을 낳으실 때 3말 8되의 피를 쏟고, 자식을 기르실 때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하였다. 이같은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자식은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세계설에서, 세계의 한가운 데에 높이 솟아 있다고 하는 산)을 백번, 천번 돌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부모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어서 자식의 몸에 종기가 나면 부모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자식들은 부모 사랑의 깊이를 잘 모른다. 부모를 폭행하고 심지어 ‘현대판 고려장 ’을 지내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발생한 자식들의 패륜 행위는 부모들을 슬프게 한다. 부모 봉양 문제로 형제가 서로 다투다 장남이 노모와 함께 동반자살했는가 하면 큰형이라는 사람이 노모를 죽이고 자살하면서 동생들을 처벌해 달라고 유서를 남겼다. 부모 모시는 데 장·차남이 어디에 있으며, 아들·딸을 왜 구별하는가. 해괴한 노릇이다. 자식들의 가증스럽고 또 가증한 불효는 또 있다. 불효자들도 자기들의 자식들로부터는 효도받기를 원한다. 아니 효도할 것으로 믿는다. 착각은 또 있다. 자신들은 시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들은 늙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더 빨리, 더 추하게 늙는다. 불효자는 죽은 후에라도 천벌을 받는다. 사람의 3천가지 죄악 가운데 불효가 첫번째라고 한 공자(孔子)의 말씀은 만고의 법리요, 진리다. /淸河

5차 남북회담 ‘결산’

제4차 이산가족방문단(각 100명규모) 교환 (10월16∼18일),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군사보장 합의서 발효후), 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10월4일 당국회담), 제2차 남북경협추진위 개최 개성공단·동해 공동어로·경협 4개협의서 발표·남북러 철도연결·가스관 연결 등 (10월23일∼26일), 임진강 수방사업 현지조사 착수(10월28∼31일), 태권도 시범단 교환(10월중 북측 시범단·11월중 남측 시범단),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10월∼28일∼31일). 이상은 어제 폐막한 제5차 남북장관급 서울회담 공동 보도문 발표내용을 정리한 회담 성과다. 남측은 홍순영 통일부장관, 북측은 김령성 내각참사가 각각 새로 단장이돼 상견례를 겸한 이번 회담은 상호 유연한 협상 자세속에 화해분위기가 고양됐던 점 또한 돋보인다.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한 고위급 회담으로 금강산 육로관광, 경협추진위, 임진강 현지조사, 태권도 시범단 교환 등 여러가지 하위 일정이 잡힌 것은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경의선철도 연결 등 문제는 구체적 일정을 잡지 않은채 ‘조기착수 및 이른 시일내 개통한다’고만 막연히 밝힌 것은 유감이다. 북측이 경의선 북측구간 공사를 언제 착공할 것인지조차 종잡을 수 없는 실정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9월8일 경기도 방문에서 다짐한 “장관급 회담이 열리면 접경지역과 관련된 좋은 내용이 있을 것”이란 말에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이도 별로 실감이 가지 않는다. 숙원의 이산가족 상시면회소 설치는 거론조차 안됐고 대통령이 예고한 ‘반 테러 선언’역시 채택되지 못했다. 남북문제 진전에 말이 너무 앞서 가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오는 10월은 이번 5차 장관급 회담의 성과인 여러 후속회담을 잇따라 갖는다. 특히 경협추진위 회담은 기대를 가질만 하다. 그러나 결과는 회담을 해봐야 안다. 총론과 각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문제는 호들갑스런 낙관도, 절망스런 비관도 모두 금물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白山

아프가니스탄

서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은 면적 64만7천㎢에 인구는 약 2천500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3배지만 대부분이 산악지대여서 경지가 적다. 목축이 성행하고 있다. 농산물로는 밀 목화 사탕무우 사탕수수 등이 산출되고 양가죽은 주요 수출품목이다. 국민은 아프간족을 주축으로 페르시아 터키 몽고 계통이 있다. 파키스탄, 이란,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에 영국의 보호령이었다가 1921년 왕정으로 독립했다. 왕정이 붕괴되고 지금의 공화정으로 바뀐 것은 1973년 쿠테타에 의해서 였다. 무갈왕조의 발상지인 수도 카불은 카불분지의 중앙에 있으며 인구는 약 90만명이다. 서아시아∼인도의 중요 교통로다. 가공업으로는 피혁, 가구, 유리공장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3차례 아프간전쟁을 치렀다. 1832년부터 10년동안 있었던 1차전쟁은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낀 영국의 끈질긴 출병이 있었으나 국민이 지지하지 않아 영국이 패했다. 1878년부터 3년동안 치른 2차전쟁은 왕위 계승분쟁에 영국이 개입한 싸움으로 영국이 이겨 보호령이 됐다. 1919년의 3차 전쟁은 몰락한 무갈왕조 세력이 다시 영국과 국민전쟁을 일으켜 비록 패하긴 했으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21년 독립하게 됐다. 그러나 아프간은 평탄치 않아 1990년대엔 구 소련군의 무력침공을 당했다. 이땐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아프간이 소련의 영향력하에 넘어갈 것을 우려, 아프간 반군에게 무기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평지에서는 탱크, 산악지대에서는 중대형 무장헬기 M124에 시달리는 반군을 위해 스팅어 미사일을 지원하였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아프간공격에 나선 미국이 이젠 자신들이 제공한 스팅어 미사일의 표적이 되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 공중폭격에 이어 지상군과 함께 특수부대를 투입, 빈 라덴을 체포하고 카불을 점령하여 텔레반 정권을 전복하는 것이 미국의 전쟁 시나리오다. 이에 대항하는 아프간은 게릴라식 지구전에 스팅어 미사일로 대공요격을 강화하고 지상화력을 집중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아프간의 산악은 해발 1천m가 넘는 지역이 태반이다. 특히 심한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북부지대 산악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白山

테러

테러(terror)란 원래 공포, 흉폭, 전율을 뜻한다. 테러를 무기화하는 테러리즘, 테러리스트는 이래서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목적 이행의 수단이 비인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처럼 테러를 가하는 입장에서는 할 말이 있다. 그같은 말이 말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것은 역사의 평가에 따라 다르다. 테러에는 객관적 종류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코벵 공포정치 같은 혁명적인 것은 백색테러리즘, 반면에 독일 스파르타구스단에 의해 가해진 반혁명적인 것은 적색테러로 정치학은 분류한다. 또 집단적 테러와 개인적 테러가 있다. 앞서 예시한 적·백색의 두 테러는 집단테러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를 암살한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의 권총 저격은 개인적 테러다. 이밖에 또 테러의 범주에 드는 구테타는 원어로 ‘국가의 일격’이란 뜻을 가졌다. 쿠테타나 혁명은 모두 비합법적인 정권탈취인 점에서는 같지만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 이동이 쿠테타인데 비해 혁명은 체제 변혁인 점에서 다르다. 동양은 서양의 이같은 개념과는 좀 다르다 혁명(역성혁명), 반정, 의거, 폭거, 암살(시해) 등 좀 더 구체적 어휘로 표현된다. 서양의 쿠테타를 포함한 테러의 관점에서는 같은 개념인데도 세분화되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같은 동양적 개념으로 보면 4·19혁명은 혁명이 아니고 의거이며, 5·16 군사혁명은 혁명이 아니고 쿠테타다. 그럼, 예컨대 안중근의사의 이또 히로부미 저격 살해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겠지만 분명히 의거다. 형태는 개인적 테러이면서 민족을 초월한 공분의 정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도 인정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을 아수라장화 하고 미국을 공포속에 몰아넣은 전율의 테러사건이 비인도적 만행으로 지탄받는 것은 무고한 인명을 수많이 해친 집단 살인행위이기 때문이다. 테러사상 가장 잔혹한 무차별 대규모 살상으로 기록된다. /白山

제3의 시나리오

테러 스토리를 담은 영화는 꽤 많다.‘ 파이널 디시전 ’은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독가스를 가득 실은 비행기를 납치, 워싱턴 백악관으로 가미카제처럼 돌진하는 내용이다.물론 특공대원들의 용감무쌍한 전술로 테러를 저지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비상계엄’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자살테러 스토리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맨해튼에 군대가 주둔한다. ‘터뷸런스’는 연쇄살인범이 기상악화를 이용, 민간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의 주요기관을 향해 돌진한다. 테러범들은 어떤 요구도, 협상도 시도하지 않는다. ‘무단경고’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WTC)에서 발생했던 폭탄테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에어 포스 원’은 배우 해리슨 포트가 대통령으로 분하여 대통령전용기에서 테러리스트들과 싸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물리친다. ‘피스 메이커’는 UN 빌딩을 폭파하기 위해 폭탄배낭을 메고 돌진하는 보스니아 테러리스트가 나온다. ‘다이하드, 시리즈는 미국내 주요 건물을 날려버리려는 테러리스트를 격퇴한다.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작가 톰 클랜시의 소설 ‘ 적과 동지(Debt of Honor)’는 테러리스트가 보잉 747을 몰고 의사당에 돌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 영화들은 지난 11일 오전 9시(현지시간)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발생한 민간항공기 충돌 테러사건과 비슷하다. 아니 테러범들이 이들 영화를 보고 종합 시나리오를 작성, 실전에 투입한 것 같다. 돈벌이를 위해 제작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이 이번 테러범들의 작전 교과서가 된 셈이다. ‘무단경고’처럼 이번 테러사건을 미국인들은 또 영화로 만들 것 같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과 워싱턴이 무참히 폭파당했지만 보복공격을 감행, 테러범들과 그들 국가를 응징한다는 통쾌(?)한 내용일 게 분명하다. 제3의 시나리오에는 강력한 미국에 도전하면 그 어떤 세력도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담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테러리스트는 ‘카인’이라고 한다. 하느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을 선택하자 이를 시기한 형 카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것을 기록한 구약성서의 ‘창세기’제4장에서 비롯됐다. 테러는 살인행위다.동기와 목적이 어떠하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에 의해 자행될 군사보복이 두려워진다. /淸河

토종

‘미스김 라이락’이라는 나무가 있다.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정원수 중 하나이다. 키가 작아 나무를 손질하기 쉽고 한 해에 두 차례나 꽃을 피워 미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미스김 라이락’의 원종이 한국의 토종(土種)인 털개회나무이다. 우리나라 북한산에서 가져간 몇 알의 종자에서 탄생한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역시 우리나라 특산 나무인 구상나무이며 홍도의 비비추는 미국에서 ‘잉거 비비추’로 개명됐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꽃을 물으면 보통 백합이나 장미라고 한다. 그런데 그 백합이 참나리, 하늘나리 하며 구분되는 우리 산야의 나리꽃이라는 사실은 아마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자생나리는 유럽에서 백합과 교잡돼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곱다’는 품종이 됐다. 우리의 토종들이 이런 저런 연유로 외국으로 흘러들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개량된 것은 꽤 많다. 미국이 1901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에서 수집해간 콩 품종은 5천496점에 달하며 미국 콩 육종의 기본품종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70년 쓰러짐에 강한 밀 품종을 육종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볼로그 박사가 이용한 밀 품종은 우리의 토종인 ‘앉은뱅이 밀’이고 전 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 밀 품종 중 87%가 ‘앉은뱅이 밀’의 피가 섞여 있다. 우리가 살기 어렵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해 미국과 일본은 체계적으로 우리의 토종을 조사하고 수집해 갔다. 이로 인해 우리가 보존해야할 우리의 토종들이 외국의 종자은행과 연구소에서 그 생명을 이어가는 딱한 형편이 되었다. 토종의 중요성은 새로운 품종의 육성과 신물질 개발의 원천이 되고있는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뿐아니라 자연생태계의 보존과 관련된 환경보호, 약리작용을 이용한 신약과 건강식품의 개발, 그리고 지적 재산으로서의 무형의 가치 등 상당히 포괄적이고 다양하다. 그런데 오늘날 토종은 점점 사라지고 2000년말 266종에 이른 외래식물들이 되레 우리의 국토를 잠식하고 있다. 우리의 토종은 선량한데 토종 생장을 방해하는 외래종은 포악한 것 같아 섬뜩해진다. /淸河

가을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丹楓) ’은 단풍나무를 비롯해 당단풍나무·고로쇠나무·시닥나무(신나무)·청시닥나무·복자귀나무(나도박달나무)등과 같은 단풍나무과의 나무를 통틀어서 지칭한다. 다른 하나는 가을에 붉거나 노랗게 물든 나뭇잎 또는 그 현상을 말함이다. 단풍의 빛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단풍나무·옻나무·벚나무·붉나무·화살나무·담쟁이덩굴·감나무 등의 단풍은 빨갛다. 은행나무·고로쇠나무·생강나무·시닥나무 등은 노랗다.우리나라 활엽수림의 주종을 이루는 신갈나무·갈참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 등의 참나무류와 밤나무 등은 대부분 갈색으로 물든다. 이러한 현상은 나뭇잎에 함유된 색소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나타난다고 한다. ‘안토시안 ’이라는 색소는 붉은 단풍, ‘카로티노이드 ’는 노란 단풍을 만든다. 참나무류의 잎에는 안토시안이나 카로티노이드같은 색소가 없는데도 갈색 단풍이 든다. 엽록소가 파괴되어 녹색이 없어지고 잎이 마르기 때문이다. 단풍은 하루의 평균 기온이 15℃이하, 최저 기온이 5℃가 될 무렵부터 들기 시작한다. 단풍의 빛깔은 그늘보다 햇살이 잘 드는 양지, 평지보다는 산지, 비가 많은 곳보다는 적은 곳. 기온의 일교차가 큰 곳일수록 더 곱다. 대체로 단풍의 색깔과 선명도는 햇빛이 잘 드는 곳이 그렇지 않는 곳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뚜렷하다. 설악산 대청봉(1708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이다. 대청봉에서 9월 하순경부터 시작된 단풍은 산 아래로는 하루에 50∼60m씩, 남쪽으로는 약25㎞씩 내려간다고 한다. 단풍이 들면 산비탈과 능선의 풀숲에는 독특한 빛깔과 모양을 갖춘 가을꽃이 서정시처럼 피어난다. 쑥부쟁이·구절초· 해국·개미취·울릉국화·산국·감국·참취·각시취 등의 국화과 식물이 주종을 이룬다. 그중에서 보통 ‘들국화’로 통칭되는 쑥부쟁이·구절초·개미취· 울릉국화·산국·감국 등은 유난히 꽃도 아름답고 향기도 짙다. 국화과의 꽃도 아름답지만 투구꽃·그늘돌쩌귀·이질풀·산부추·마타리·나도송이풀·꽃향유 등도 나날이 짧아지는 가을햇살 아래 수줍은 듯이 꽃부리를 펼치는 토종식물들이다. 이렇게 가을은 나무들이며 꽃들의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풍요롭다. /淸河

민간교류의 북측 민간인

공산당 선언은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 강령을 요약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1당 독재를 제창했다. 계급이 없고 능력에 의해 기여하고 필요에 의해 수요되는 완전한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 공산당은 내년 가을 제16차 당 대회에서 사기업 자본가등도 당원으로 입당시키는 것을 당 헌장에 명시할 것이라고 한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론이다. 당명도 전민당(全民黨)으로 바꿀 것을 검토하다가 과제로 남겼다. 다당제도 검토되고 있다. 놀라운 변화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중국처럼 변화하기 어려운 것은 수령론의 김일성주의에 있다. 노동당 말고도 몇개의 당이 있긴 있으나 노동당의 들러리인 간판뿐으로 실제는 1당 체제다. 노동당 당원이 되어야 근로 인테리층에 든다. 남북간의 민간교류 협력을 말하지만 북측에 순수한 민간인은 없다. 비록 신분은 민간인 이어도 노동당 당원이다. 남쪽의 노총에 해당하는 직업동맹도 그렇고, 교수나 문인도 그렇고, 종교인이나 언론인도 당원이다. 기업체(국영) 기업인도 당원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아마 당원이 많이 차지할 것이다. 이에비해 대북 민간교류 접촉을 갖는 대한민국 민간 인사들 가운데는 예컨대 집권당인 민주당이나 야당인 한나라당, 자민련 당원이 없을 것이다. 또 북측 노동당과 남측 정당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 조선노동당 규약은 당원을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냉전적 보수론이라고 책잡힐지 모르겠으나 무서운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땅에서 전쟁만은 있어서는 안된다. 동족상잔의 참상을 되풀이 하는 것은 민족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그래서 이념을 위한 이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남북 교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지상명제다. 당국자는 당국자끼리 만나고 민간인은 민간인끼리 서로 자주 만나야 한다. 북측의 민간인은 남쪽 민간인과는 다른 노동당 당원이라해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야 하는 것이다. 다만 옳은 이해를 위해서는 만나도 북측을 제대로 알고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白山

D·E급

나무기둥에 벽은 수수깡을 엮어 짚을 작두로 쓴 지푸라기를 함께 버무른 황토흙을 발라 집을 지었다. 구식 한옥이 이런 집이다. 그래도 수백년 갔다. 수십년 가기는 예사였다. 요즘 집은 어떻게 된판인지 20년만 가면 헐어내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노후 건물이라는 것이다. 단독주택도 대개는 그렇고 아파트나 다세대주택도 대부분 이모양이다. 도내에 안전이 우려되는 노후건물이 275곳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은 2천500곳으로 전한다. 주민들은 벽체가 갈라지고 뒤틀려 불안하지만 갈곳이 없어 ‘설마’하나만 믿고 살고 있는 실정이다. 재건축을 할려 해도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융자도 어렵지만 갚을 대책이 없어 무작정 끌어 쓸 수도 없는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주택뿐만이 아니다. 교육부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초·중고교 가운데 개축이 시급한 D급, 철거대상인 E급 판정의 교실이 84개교에 110개 건물이다. 이 역시 지은지 아마 20여년밖에 안됐을 것이다. 또 있다. 각종 공공시설물도 역시 이모양이다. 예컨대 1994년 붕괴사고로 참사를 낸 성수대교가 새로 가설된지 얼마 안됐는데도 벌써 위험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제 구조물이 곳곳에서 뜨고 콘크리트도 얇아 보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제1한강철교는 1900년7월5일 준공된지 100년이 지났어도 아직껏 어디가 잘못됐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이에 비해 성수대교가 아니라도 다른 한강다리는 걸핏하면 수중에선 다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들리곤 한다. 한강철교는 수작업형태로 한 공사였다. 이에비해 지금은 각종 장비를 동원한다. 장비를 동원한 기계작업의 다리가 수작업형태의 다리보다 못하고, 나무기둥에 흙벽을 바른 집보다 못한 것이 지금의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다. 외국의 같은 공공시설이나 주택은 100년이 지나도 끄떡 없다는데 우리는 20년만 지나도 D급이다 E급이다 해서 걱정이다. 건축법 등 관련 법규가 잘못돼서가 아니다. 기술이나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다. 법규나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이것도 고쳐야 할 ‘한국병’이다. 고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白山

부천시의 오픈세트 유치

실물을 방불케하는 고려 황궁, 화살이 비오듯이 교차되는 성벽 전쟁터, 전함이 전열한 해상의 장관 등, 이런 텔레비젼 드라마 촬영은 오픈세트에 의존한다. 촬영현장은 당연히 흥미를 끌기 마련이다. 텔레비젼 사극의 오픈세트 유치로 재미를 본 곳이 충북 제천시다. 지난 3월 ‘태조왕건’(KBS)의 해상세트가 충주호에 들어선 이후 평일 1천여명, 주말 3천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태조왕건’의 메인세트가 세워진 경북 문경군 조령도립공원도 지난 6개월 동안에 연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그러나 다 재미를 보는 것은 아니다. ‘홍국영’(MBC)을 촬영하는 충북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세트장엔 예상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평일 300명, 주말 1천500명선에 머문다고 한다. 해당 자치단체가 오픈세트 건립에 소요되는 경비의 상당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관광수입이 그에 못미치면 되레 큰 손해를 본다. 사극의 오픈세트 유치를 덮어놓고 좋아할 것은 못된다. 충북 진천·옥천군은 최근 ‘상도’(MBC)의 오픈세트 건립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치단체에 지원을 요구한 금액이 세트 조성비 20억원의 절반인 10억원에 이르러 관광수입 타산에 재정부담이 너무 많아 없었던 일로 했다는 것이다. 부천시가 상동 택지개발지구에 시대극 ‘야인시대’(SBS) 오픈세트 건립을 방송사측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서울 종로, 광화문, 명동, 청계천, 을지로 일원의 거리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연간 20억원의 입장객수입과 부대수입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물론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의문도 있다. 충북 제천, 경북 김천시와 치열한 경쟁끝에 유치했다고 한다. 얼마나 유치경쟁이 치열했는지 궁금하다. 이 과정에서 오픈세트 건립비 30억원 가운데 가당치 않게 많은 지원비를 떠맡지나 않았는지 확실한 내용을 알고싶다. 사극이 아닌 시대극의 오픈세트는 현대생활과 비슷한 점이 많아 호기심이 사극보다 덜하다. 이에 연간 입장객 수를 얼마나 예상하고 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인기도가 오픈세트 관광을 좌우한다. 부천시는 ‘야인시대’의 흥행성을 검토해 봤는지 묻는다. /白山

한글날은 국경일

1991년 경제적인 논리로 10월 9일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기념일로 격하한 것은 당시 노태우 정부의 과오 중 과오다.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아 ‘ 국군의 날 ’과 ‘ 한글날 ’을 공휴일에서 빼버리자고 각의가 의결했으니 돌이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민속명절 설날을 연휴로 실시하고 있으면 소위 신정연휴를 없애야 한다. 새해 첫날부터 일을 열심히 해도 시원찮은 판국에 왜 새해 첫날부터 놀고 먹는가. 식목일도 그렇다.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나무를 심어야지, 왜 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가. 식목일을 나무 심는 날로 여기는 국민보다는 봄철에‘ 하루 노는 날 ’로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게 분명하다. 내년 6월엔 지방선거가 실시될 것이다. 투표일도 임시 공휴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이건 지방이건 정치판도가 도무지 맘에 안드는 이유도 있지만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기 때문에 투표보다 놀러갈 생각이 더 많아 투표율이 저조한 것이다.직장인들이 출근하고나서 잠시 틈을 내 투표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10월1일 ‘ 국군의 날 ’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도 마땅치 않다. 대한민국 국군 창건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다니, 6·25전쟁을 겪은,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나라가 과거를 잊다니 기가 막힌다. 무엇보다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그것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은 우리 민족을 스스로 비하시킨 부끄러운 처사다. 한글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문자라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독창성이나 과학성으로 보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문자이다. 혹자들은 걸핏하면 ‘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니‘ 삼천리 금수강산 ’을 자랑하지만 우리보다 역사가 오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얼마든지 있다. 경관 빼어난 곳이 한반도 삼천리 강산뿐만은 아니다. 한국만의 자랑이 있다면 바로 ‘ 한글 ’이다.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아마 중국이나 일본 어느 한 나라에 예속돼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역사가 그렇지 아니한가. 한글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한글을 사용할 자격도 없다. 한글 안 쓰고, 읽지 않고 하루인들 살수 있겠는가. 주 5일 근무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김대중 정부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다시 제정하는지 그대로 놔둘 것인지 눈여겨 보는 국민이 많다. /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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