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 전투

처인성(處仁城)은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산43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축산성으로 경기도 지방기념물 제44호다.1970년대 후반, 일부를 복원하여 둘레가 350m쯤 된다. 처인성이 있는 남사면은 일찍부터 육로의 요충지였다. 처인성 전투는 그래서 더 유명한 ‘대첩’으로 전해 온다. 1232년(고종 19) 고려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천도(江華遷都)를 단행하였다. 그해 몽골군의 장수 살리타이(撒禮塔)가 고려의 북계(北界·평양도지방)에 침입하여 서경의 반적(叛賊) 홍복원(洪福源)과 합세하여 고려를 위협하였다. 살리타이는 고려가 해도(海島)인 강화로 도읍을 옮긴 것을 감히 꾸짖고,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살리타이는 북계에서 남쪽으로 개경을 거쳐 한양산성을 함락하고 수주(水州·지금의 수원)에 예속되었던 처인부곡(處仁部曲)의 처인성을 침공하였다. 이때 처인성에 있던 백현원(白峴院)의 승려 김윤후(金允侯)가 성내의 민중들과 함께 항전, 살리타이를 활로 쏴 죽였다. 장수를 잃은 몽골군은 전의를 상실하여 부장 철가(鐵歌)의 인솔로 곧 북으로 퇴각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몽골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남쪽지방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게 되었다. 처인성 전투로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되었고, 김윤후는 대장군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하여 섭랑장(攝郞將)이 되었다. 또 임진왜란 때는 처인성에 주둔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수원의 독산성(禿山城)에 집결한 관군의 대부대와 처인성 주민들이 협공, 처인성을 탈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항몽 전승지인 처인성의 전투가 ‘아, 처인성’이라는 연극으로 지난 17일 용인문예회관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았다. 용인지역 문화예술인들은‘아, 처인성’을 용인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매년 공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각 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은 민족사를 재조명하는 뜻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아, 처인성’은 경기일보 문화부 차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숙현씨가 희곡을 쓴 역작이다. /淸河

월급얘기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性澈)스님이 수년전 가야산 백련암에서 입적했을 때 수십만 신도들이 해인사를 찾아 운집했다. 성철스님이 생전에 자주 썼던 말이 있다. “밥도둑놈”이란 말이다. 수행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는 스님이 눈에 띄면 “이 밥도둑놈아!”라고 일갈하곤 해 절집 사이에서는 그를 두려워 할만큼 소문이 났었다. ‘월급도둑’이란 말이 있다. 직장에서 별 하는일 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타먹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연봉이 8억4천만원이 되는 은행장이 있어 신문에 난 적이 있다. 은행에서는 처음에 14억원을 책정했다가 금감원의 재고 요청으로 최종 확정된 게 8억4천만원 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대부분의 은행장들 연봉이 3억원인데 비해 비교가 안되게 높은 월급이다. 연봉 3억원도 서민들은 입이 딱 벌어질 판에 8억4천만원이면 하루에 230만여원을 버는 셈이다. 이처럼 고액연봉을 받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9·11 뉴욕테러사건 직후 주식시장이 곤두박질 칠 때 5천억원어치 사들인 모모주식이 6천200억원으로 불어나 은행에 1천200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가 주식매입을 결정할 때 주위의 우려속에 만류가 있었으나 소신을 갖고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과감한 투자는 바닥을 헤맨 주식시장을 살리면서 불과 두달 남짓동안에 자신의 연간 월급보다 143배나 더 많은 돈을 은행에 벌어준 것이다. 결국 은행의 입장에서는 연봉 8억4천만원은 많긴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지출이 되는 것이다. 월급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통해 직장에 기여한 가치의 일부를 타가는 돈이다. 직장 구성원이 맡은바 각자의 역할을 창의적으로 못해내면 수입이 있을 수 없다. 수입이 많은데도 쥐꼬리 월급을 주는 사용자도 큰 문제이지만 날짜만 채우면 월급이 절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일은 쥐꼬리만큼 하는 근로자도 큰 문제다. 월급이야 직장에서 당연히 줄 의무가 있는 것이지만 ‘월급도둑’이란 말을 들어서는 곤란하다. ‘밥도둑’이란 말과 같은 이치다. “뭘 얼마나 더 기여하고 덜 했는가를 생각해 가며 월급봉투의 두께를 재보아라” 고인이 된 정주영씨가 월급을 봉투로 지급할 때 남긴 말이다. 월급도둑은 민간기업보다 공기업, 공무원 사회에 더 많은 것 같다.

이질에 맥못추는 당국

세균성 이질은 전염병방지법이 1종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대한 예방 및 발병대책도 규정돼 있다. 이질균은 1900년 독일의 크루제가 발견했다. 음성의 세균성 간균으로 분열균에 속한다. 이 적리균에 감염되면 인체가 설사를 하는 등 심한 고통을 받지만 균 자체는 매우 약해 60℃의 물에 10분만 지나면 죽고 만다. 적리균은 본형균, 이형균, 메타등 세가지가 있지만 모두 음식물과 입을 통하는 감염경로는 같다. 10여일전 서울에서 발병된 이질이 수도권으로 번지더니 전국적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제오늘 잠시 주춤한듯 하나 이질균은 잠복기일이 2∼4일이나 돼 아직은 마음을 놓을 단계가 아니다. 얼마전에는 콜레라가 번졌고 지난 여름에는 말라리아가 설쳤다. 요즘은 이질말고 어린이들에게 수두가 또 고개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한때는 홍역이 번창하여 휴교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질 콜레라 말라리아 등은 모두 후진국형 전염병이다. 위생상태가 좋으면 얼마든지 예방되기 때문이다. 이런 전염병이 명색이 선진국 진입을 말하는 나라안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수치스런 현상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정부당국의 속수무책이다. 시·군보건소가 있지만 전문 인력도 빈곤하고 장비도 빈약하다. 자치단체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겠으나 근본적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크다. 전염병방지법이 사문화하고 있다. 법상으로는 번드레한 예방 및 발병대책이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이질도 그렇다. 설사환자가 1천100여명에 이르고 확진환자가 320여명에 이른다. 그러는데도 확실한 전염경로나 어떤 종류의 이질인지 조차 분명하게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질은 원래 여름철에 생기는 병이다. 여름철 이질이 때아닌 겨울철에 번지고 있는 것은 무력한 정부당국의 무대책을 비웃는 것만 같다. 겨울추위가 더해 이질이 절로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게 당국의 대책인듯 싶다. 그저 각자가 가정마다 위생을 조심해가며 이질을 예방하는 것이 최상책일 것 같다. /白山

‘여인천하’

역사극은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하고 시대극은 어떤 시대의 사건을 토대로 꾸며 만드는데 차이가 있다. SBS-TV 월화드라마 ‘여인천하’를 방송사측은 대하사극이라고 하나 그보다는 시대극에 가깝다. 물론 역사상의 실존 인물을 가공인물보다 더 비중있게 등장시키고는 있지만 구성에 픽션이 지나치게 많다.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니 그렇다.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역사 및 역사관을 오도할 수가 있다. 당시의 조정이나 왕실이 밤낮으로 정적의 제거 음모에만 일관한 것처럼 꾸며 보이는 것은 역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대단히 우려스런 현상이다. 제작상의 문제점도 많다. 우선 “뭐라?”하는 대사가 이사람 저사람마다 다 남발하여 언어(대사)적 인물묘사에 특색이 없다. 김안로의 이조참판은 지금의 행자부차관에 해당한다. 참판은 종이품이다. 판서인 정이품부터가 대감이다. 그런데도 영감 칭호에 해당하는 희락당(김안로의 호)을 두고 ‘희락당 대감…대감’하는 것은 난센스다. 김안로는 ‘정유삼흉’으로 사사될 당시 좌의정까지 승차했으나 참판이었을 땐 영감이다. 임금의 후궁인 빈의 품계는 비록 정일품이긴 하나 일개 후궁(경빈)에게 그야말로 대감반열의 중신들이 신칭을 해가며 굽실굽실 하는 것은 사실(史實)을 왜곡하는 허황한 과장이다. 판부사(判府事)는 판중추원부사(判中樞院府事)의 약칭으로 종일품 벼슬이다. 그 정실부인은 정경부인이다. 정경부인이 남편이 외간 남자를 손님으로 맞는 사랑채에 나가 좌석을 함께 하는 것은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술 더떠 남자들 얘기에 끼어들고 차를 따르는 것은 해괴한 연출이다. 청국의 거상 등장 그리고 이따금씩 칼부림을 보이는 것은 시청자의 눈요기감이겠으나 허구설정에 비약이 너무 심해 오히려 유치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텔레비전방송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괴력적이다. 하다못해 광고방송의 멘트마저 아이들이 따라 하기가 일쑤다. 하물며 역사물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아무리 시청률 경쟁을 의식한다 해도 그렇지 작품에 책임감을 갖는다면 그토록 황당하게 만들 수는 없다. 시청자는 만들어 보여주는대로 보기 마련이라는 오만을 방송사는 이제 버려야 한다. 드라마 ‘여인천하’는 정통사극이 아니고 시대극 오락물이다. /白山

철새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는 겨울 철새 112종, 여름 철새 64종 등 모두 276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루미·기러기 등 겨울 철새들은 보통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2천∼3천km를 여행한다. 중부리도요·개꿩·왕눈물떼새 등 도요새 종류는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들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7천∼8천km를 이동한다고 한다. 중부리도요 등이 우리나라에 들르는 것은 긴 여행 도중 잠시 쉬며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인데 주로 서해안을 찾는다. 갯벌이 넓어 게·갯지렁이 등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도요새처럼 잠시만 우리나라에 머무는 새들은 철새와 구분해 ‘나그네 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새들중에는 아예 우리나라에 자리잡고 사는 ‘텃새’가 된 것도 있다. 원래는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와 비오리, 여름 철새였던 왜가리와 백로 중 일부가 이동을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머물러 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조류전문가들은 지구의 기온 상승과 환경오염을 텃새가 되는 원인으로 꼽는다. 여름 철새의 경우는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져 남쪽 나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여름 철새가 겨울에 도시의 강에서 지내는 것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따뜻한 생활 하수가 흘러 겨울에도 새들이 살만큼 따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겨울 철새 중 텃새가 된 경우는 환경 오염의 피해를 입은 결과라고 한다. 하천 오염으로 물고기 등이 사라져 새들이 충분히 먹이를 먹지 못하거나 중금속이 든 먹이를 먹고 몸이 허약해지면 철새는 본능적으로 이동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텃새로 변한 것들은 모두 물가에서 사는 것으로, 철새 중 산새들이 텃새가 된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천은 환경오염에 특히 크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까 하천오염이 텃새를 만드는 것이다. 철새가 텃새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연환경이 오염되기 때문이다. 떠날 것은 떠나야 하는 게 자연의 순리다. 철새는 제 철을 찾아 떠나야 한다. 철새가 만일 길을 잃거나 텃새로 자꾸 변한다면 지구의 비극이다. /淸河

생존경쟁?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충신만큼이나 간신도 많은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중국 당나라 때 이임보(李林甫)는 유명한 간신 중 하나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재위 초기에는 정치를 잘 했다. 하지만 후일에는 점점 주색에 빠져 들면서 정사를 멀리 하였다. 이임보는 현종이 신임하는 신하였다. 그는 현종의 비위를 맞추면서 충신들의 간언이나 백성들의 탄원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며 조정을 떡 주무르듯 했다. 시기심이 강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나 아닌지 두려워 하여 가차없이 제거하였다. 그것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한 수법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다. 현종 앞에서 충성스러운 얼굴로 상대를 한껏 추켜 천거하여 자리에 앉혀 놓은 다음 음모를 꾸며 요즘 TV 사극 ‘여인천하’에 자주 나오는 ‘찍어내는’수법을 썼다. 이임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다음날은 영낙없이 주살되는 자가 생겨났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이임보는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가지고 있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중국 원나라의 승려 선지(先之)가 지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온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고사성어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장본인 이임보 같은 인간은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많다. 겉으로는 절친한 것처럼, 제 간이 약이 된다면 당장 빼내줄 것처럼 행세하지만 자기에게 이익이 조금이라도 안되면 돌아서서 헐뜯고 제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임보같은 부류들이다. 자신이 차지한 직위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것 같으면 상하좌우를 살펴보고 음해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못보는 해괴한 사람들도 적지않음이 수시로 감지된다. 정치판은 정치판대로, 직장은 직장대로 이임보같은 위인들 때문에 인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사회가 점점 차가워진다. 하기야 이임보같은 행각도 ‘생존경쟁’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淸河

신광옥

조선조 시대의 송사는 물증보다 자백 위주였다. 민사에서도 그랬지만 형사에서는 더했다. 피의자에 대한 신문이 처음부터 “네죄를 네가 알렸다!”로 시작되곤 하였다. “모른다”고 하면 곤장을 치다가 그래도 부족(부인) 하면 주리를 틀었다. 역모같은 국사범은 불에 달군 인두로 지졌다. 그리하여 참다못한 피의자는 진실을 자백하기도 하지만 무고한 피의자는 추국관이 묻는대로 시인하는 거짓 자백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문당하다가 죽기도 했다. 당시의 조서를 일컫은 공초(拱招)란 말의 원의는 범죄 사실을 진술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유죄인정이 자백위주 였는가를 알 수 있다. 생각하면 참으로 우둔한 형사소추의 절차 진행이다. 피고인(피의자)에게 불리한 자백만으로는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사소송 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은 더 더욱 유죄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수뢰사건엔 으례 부인부터 하고 나서는 관행이 일고 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고위직 공무원들의 형사문제에 부인했던 당초의 말은 진실과 다르게 혐의가 확정되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수없이 보아왔는데도 그러하다. 왕조시대 같으면 곤장을 치고 주리를 틀어야할 비리를 두고 자백의 불이익 배제를 빌미삼아 부인하고 나서는 공직자 비리를 흔히 본다. 신광옥 법무부 차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 진승현에게 1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검찰수사 혐의가 포착됐다. 그의 골프가방에 현찰을 직접 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역시 신차관의 강력한 부인이다. “만난적도 없다”고 부정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글쎄, 일단은 부정했던 지난 사례에 비추어 신차관의 혐의부인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같으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현직 법무부차관의 혐의를 덮어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지검은 이에대한 수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직 검찰 내부의 비리를 묵과하지 않는 검찰 수사팀이 대견하다고 믿어 격려를 보낸다. /白山

權座無常

김영삼정권 때 박준규 국회의장이 밀려나면서 용도폐기의 뜻으로 쓴 ‘팽(烹) 당한다’는 말이 일반화돼 신문 제목에도 ‘烹’이 가끔 눈에 띄게 됐다. 진나라 말기에 유방을 도와 항우를 지금의 중국 안휘성 영벽현 동남쪽 해하의 마지막 대회전서 궤멸시켜 마침내 천하통일의 창업을 안겨준 한신이 결국엔 한고조 유방에게 반란 혐의로 참형당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토끼가 없어지고 나니 토끼사냥에 쓰인 개가 가마솥에 삶긴다는 이 말은 ‘사기-회음후전’(史記-淮陰候傳)에 전한다. 원문은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이다. 실컷 부려먹고 자기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거나 쓸모가 없게 되면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뜻으로 지금도 더러 쓰인다. 한신은 한때 나라에 둘도 없는 인재라는 말로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찬사를 들었다. 그같은 한신이었지만 유방은 한나라를 세우고 나서는 그를 경계하다가 참소를 빌미삼아 죽이고 말았다. 한신은 그래도 일국의 병권을 거머쥔 대장군을 했지만 원문의 ‘교토사주구팽’에 나오는 말 그대로 ‘주구(走狗)’ 노릇을 하다가 팽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정치권이나 정치권과 가까운 권력세계에서 더욱 심하다. 그간 보아온 경험에 비추어 봐도 많은 이들이 팽을 당했다. 서울지검은 이무영 전 경찰청장을 수지김 피살사건과 관련, 범인도피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사전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씨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앞으로 시일을 두고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생각되는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면서도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그가 이젠 단죄를 받게된 권좌무상이다. 권좌나 권력은 그처럼 좋을순 없지만 잘못하다가는 독약이 되는 것이다. 이씨가 팽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런쪽으로 믿고 싶진 않지만 권좌의 공무원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있다. 지금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고위 공무원들은 자신의 입지를 한번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권의 주구는 결국은 말로가 좋지 않다.

愛子

‘郞’은 사내랑자다. 신라의 화랑(花郎)에 이 글자가 쓰인다. 관직의 품계에 붙이는 칭호로도 쓰였다. 조선왕조에서는 정오품 벼슬인 육조의 정랑(正郞)과 정육품인 좌랑(佐郞)등이 있었다. 중국도 명·청나라때 육품 이하의 문관 칭호에 ‘郞’을 붙였다. 일본인들이 사내랑자를 남아의 작명에 쓰길 무척 좋아한다. 현 총리대신인 고이즈미 준 이치로(小泉純一郞)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일본 남자들의 이름은 예컨대 타로(太郞) 등 사내랑자 들어가는 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랜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남아선호 풍조가 팽대한 탓이다. 남존여비로 말하면 사실은 우리보다 일본이 더 했다. 이 때문에 으레 여아 이름에도 아들자인 ‘子’를 붙였다. 일본 여성의 이름은 끝자가 대개 아들자인 것이다. 아들을 낳으라는 염원의 뜻에서 연유한게 여성이름자로 보편화 하였다. 나루히토(德仁) 마사코(雅子) 왕세자 부부의 맏딸 이름이 태어난지 1주일만인 지난 7일 궁내청에서 발표됐다. 왕궁 대변인이 전한 이른바 어명(御名)은 ‘아이코’(愛子)다. ‘애인자 인항애지’(愛人者 人恒愛之),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항상 그를 사랑한다는 대목이 있는 맹자(孟子)에서 출전됐다는 것이다. 세손 공주의 어명을 위해 세명의 한학자와 일본문학자들이 지은 세개의 이름 가운데 할아버지가 되는 아키히도(明仁)왕이 선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에도 ‘子’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꽤나 많다. 일제 식민지 지배의 영향이다. 특히 60대 이상의 노인들 중에는 아마 태반을 차지할 것이다. 그 가운데는 일본발음으로 에이코(英子), 타마코(玉子) 우리 발음으로는 영자, 옥자 등이 많다. 우리 말로는 애자(愛子), 일본 말로는 아이코란 이름도 많다. 그 많은 애자란 이름을 지을땐 맹자를 생각하고 지은 것은 아닐 것이다. 새삼 일본 국내청 발표의 세손녀 작명에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를 참고했다니, 동명의 애자(愛子)가 많은 우리의 과거 사연이 생각난다. /白山

동물지옥

엎어 놓은 양철통 위에 있는 강아지가 드럼 치는 소리만 나면 신나게 앞발 뒷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강아지춤’이 서커스단에서 관객들의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엎어 놓은 양철통 속에 불 붙은 석탄덩어리를 넣었다는 것이었다. 차가웠던 양철통이 서서히 뜨거워지는데 강아지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때 마침 인간이 드럼을 친다. 발바닥이 뜨거워진 강아지가 드럼소리에 맞춰 신이 나서 춤추는 듯이 네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구경꾼들은 웃으며 박수를 친다. 지난 1일 환경운동연합이 개최한 ‘다시 보는 동물원 사진전’에서도 동물들의 참혹한 사육환경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중앙 아프리카 콩고강 유역 밀림의 부드러운 흙에서 살다 온 로랜드 고릴라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살다보니 상처로 발가락이 썩어 2개가 잘려 나갔다. 수의사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발톱 대부분이 빠져버린 상태다. 이 고릴라는 세계적 멸종위기 동물로 마리당 10억원을 호가하는 서울대공원에서 가장 비싼 동물이다. 해양동물 잔점박이 물범은 공원측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바닷물 대신 지하수를 공급하는 바람에 면역·저항력이 약해져 안구가 파열됐다. 가끔 떠오는 바닷물 비용이 얼마나 들겠는가. 울창한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오랑우탄은 우리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햇볕을 피할 공간조차 없는 실정이며, 초원을 달리던 타조는 좁은 공간에 갇혀 관람객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깃털이 다 뽑혀져 흉측한 통닭 모습으로 변했다. 사슴의 경우 가로 20m 세로 30m의 비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 무려 70여마리가 한꺼번에 사육돼 있다. 가장 관리가 잘 된다는 서울대공원이 이 지경이니 다른 동물원들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 동물들이 지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받는 동물들의 불쌍한 사진과 실태보고서를 내놓은 이 사진전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에서 15일까지 열린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사람도 뜨거운 양철통 위에 맨발로 올려놔 보라. 드럼소리에 맞춰 ‘발춤’을 출 게 아닌가. 인간은 무섭다. /淸河

박사

‘박사(博士)’는 대학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학위, 또는 그 학위를 받은 사람의 명칭이지만 고대에는 교육을 맡아 보던 관직이었다. 중국 진나라 때 이 제도가 처음으로 생겨 박사로 하여금 고금(古今)의 학문을 맡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박사의 관직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중국에서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오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그를 신총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록이 그 최초이다. 그러나 그 박사가 학식이 박통하다고 하여 임명한 것인지, 또는 고조선의 어떠한 고유의 관직을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의 표기인지 확실하지 않다. 박사의 관직제도가 확실히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600년(영양왕 11)에 고구려의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이 전해오던 ‘유기(留記)’100권을 고쳐서 ‘신집(新集)’5권을 편찬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다. 여기서 태학(太學)이라 함은 고구려의 중앙 최고의 대학이다. ‘삼국사기’에는 또 백제의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신라는 682년 (신문왕2)에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박사를 두어 유학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엔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자감에 교육을 담당한 박사 관직을 두었고, 조선시대에 들어 성균관·홍문관·숭문원·교서관 등에 박사를 두었다고 전한다. 1895년(고종32) 폐지됐다가 1897년(광무1)‘교수(敎授)’로 개칭된 사실이 있었다. 근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는 1904년경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세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서재필(徐載弼)이다. 박사는 전공학문 분야에서는 최고의 지성이다.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대학교는 물론 대학원을 나와 박사코스를 밟아야 한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여 전부 학위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피땀 흘려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그런데도 지난해까지 박사학위를 받고도 취직을 못한 박사 실업자가 36.5%인 1만3천454명이나 된다. 더구나 인문계박사는 80%가 ‘백수(白手)’라고 한다.박사들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라가 ‘아아, 대한민국’이다. / 淸河

가정윤리

가정의 주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주부다. 남편의 아내가, 자녀들의 어머니인 주부가 가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 가족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평화가 유지된다. 그런데 전국에서 매월 1천여명의 주부들이 가출하고 있는 것으로 공식집계됐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더구나 남성 가장들의 가출도 주부 가출 숫자에 육박, 성인 가출자수가 미성년자 가출자수를 2배 이상 크게 웃돌고 있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어지러워지고 있는지 서글퍼진다. 특히 주부 가출은 과거 10대 청소년이나 성인남자 가출과 달리 대부분 ‘가정파괴’로 직결된다는 면에서 실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주부들의 가출이유가 남편의 실직과 부도로 인한 생활고, 남편의 폭력 및 시댁과의 갈등 등 가정불화가 대부분이지만 주부의 탈선 경우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가출자 중 20세 이상의 성인 3천888명(25.1%)이 주부이고 전체 성인 여성 가출자 중 주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41.2%라는 것이다. 이 수치가 최근 4개월 간의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인가출자 4명 중 1명은 주부인 셈이다. 신고안된 수치까지 더 하면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가출 신고된 주부들을 막상 찾아내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집을 나온 주부들이 과거와는 달리 귀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가장의 가출은 더욱 무책임한 노릇이지만 주부들의 가출이 장기화되면 끝내 가정 해체로 이어져 이산가족이 늘어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된다. 주부가출을 막기 위한 대책은 과연 무엇인가. 여성의 유휴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봉사활동 분야가 다양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인종만을 미덕이라고 강조하는 남성 중심· 남성우월만을 앞세우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도 변화해야할 때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울 때 합심하고 서로 격려하는 가정윤리를 가족 모두가 지키는 생활철학이다. 가장이건, 주부이건 성인 가출자가 증가하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청 하

영웅만들기

일본 사람들은 2차대전 때 많은 전쟁영웅을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는 가토 조도헤이(상등병)의 영웅담이 있다. 그들은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식민지 정책의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를 구현하는 방안으로 징병해간 조선사람을 대상으로도 전쟁영웅을 만들었다. 리진샤쿠(이증석) 잇도헤이(일등병)가 그같은 예다. 부상한 몸으로 숱한 미군을 삼대처럼 쏘거나 찔러 넘어뜨려 작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장렬히 전사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을 침소봉대한 턱없는 과장이지만 병사의 영웅담은 흔히 있는 장군의 영웅담과는 또 달라서 대중에게 더 친근감 있게 다가서는 심리적 마력을 일본 군벌들은 이용했던 것이다. 중국은 지난 4월 중·미간의 비행기 공중 충돌에서 실종된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王偉)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고 국가보위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는 영웅담 선전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왕을 따라 배우자’는 캠페인을 거국적으로 전개했다. 여섯살난 아들에겐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지급, ‘영웅의 아들이 조국 건설에 앞장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구도에서 국민감정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왕웨이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은 최근 탈레반 포로 폭동과정서 숨진 CIA요원 조니 마이클 스팬을 전쟁영웅으로 만들었다. 미 주요 신문과 방송은 그의 집, 그리고 맏딸 앨리슨이 슬픔에 겨워 결석한 초등학교의 빈 의자를 보도하는등 스팬의 죽음을 영웅담으로 각색하여 국민정서를 자극했다. 그의 아버지는 텔레비전에서 “아들은 나의 영웅”이라고 말하고 고향인 앨라배마주에서는 조기를 게양했다.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애통한 일”이라고 말하고 부시 미국대통령은 “스팬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이 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당초엔 CIA요원 피살설을 부인하던 미 행정부가 아프간공격 7주만에 첫 전사자로 군인이 아닌 CIA요원으로 발표하면서 영웅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왜 거기에 있다가 죽었는지에 대해선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白山

마사코의 출산

일본은 현 아키히도(明仁) 왕(천황) 아버지인 히로히도(裕仁)왕 까지만 해도 근친결혼을 했다. 즉 지금의 아키히도 부모는 왕실(황실)의 종친간인 것이다. 히로히도는 할아버지가 되는 메이지(明治) 때 당초엔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빈이 된 방자(方子·일본왕족)와 약혼했던 사이다.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순종의 아들인 망국의 왕세자 이은(李垠)을 유학명목의 볼모로 데려가 있으면서 방자와 정략결혼시키고 히로히도에게는 방자의 동생과 결혼시켰던 것이다. 비록 정략결혼의 제물이 됐으나 남편따라 평생 한국인임을 당당히 내세우며 살고 말년에 사회사업을 하다 낙선제에서 수년전 타계한 이방자여사는 그러니까 현 아키히도 왕의 이모인 것이다. 일본왕이 근친결혼을 안한 것은 아키히도가 왕세자(황태자) 때 평민과 결혼하면서 부터 였으며, 지금의 세자인 나루히토(德人·41) 역시 평민인 마사코(雅子·37)와 결혼했다. 마사코가 결혼한지 8년만에 임신, 해산달이 가까워지면서 일본 열도는 세자빈의 아기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세자빈 시동생인 아키시노 출생이후 36년동안 아들을 얻지못한 왕실에 아들을 낳아 안겨줄 것인가 하는 기대에서다. 지난달 30일 밤에 마사코가 출산을 위해 궁내청병원에 입원할 때는 NHK-TV 등은 요소요소 길목에서 입원길을 현장 중계방송 했다. 스튜디오에서는 틈틈이 남녀 진행자가 세자부부의 결혼식, 임신발표,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닌 예전의 녹화테이프를 특집 방영하면서 해설을 곁들기도 했다. 마사코는 딸을 분만했다. 궁내청은 지난 1일 오후 2시 43분 건강한 여아를 낳았다고 공식발표 하면서 “두분 폐하(아키히도왕 부부)는 세자빈을 위문했다”고 말했다. “왕실(황실)에 순산이 있는 것은 경사”라기도 하고 “기왕이면 아들을 낳았으면 좋을뻔 했다”고 아쉬워 하기도 하는 것이 일본 국민들의 반응이다. 마사코가 이미 마흔살이 가까우므로 또 출산하여 세손을 더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일본 국민들의 관심사다. 이 때문에 남자에게만 왕위계승권이 인정된 ‘왕실(황실) 규범’을 고쳐 여자도 계승권을 갖게 하자는 논의가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일본열도는 지금 세자빈의 출산 축하로 들끓는 가운데 왕위계승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白山

추첨운

1954년 스위스월드컵,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 대회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 등 한국은 월드컵축구대회 연속 5회 출전에 통산 6회 출전국이다. 출전횟수로 치면 제법 축구강국이다. 하지만 그 많은 조별 리그전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 경기가 없다. 시련치곤 가혹한 것이었으나 그때마다 경험축적으로 자위하곤 하였다. 내년 대회 역시 숙원의 16강진출이 무척 험난하다. 도박사들은 한국이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이 도사린 D조에서 16강에 오르면 이변으로 점치고 있다. 1966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북한이 16강 진출에 이어 개최국인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켜 이탈리아 내각이 총사퇴하는 소동을 빚었다. 대회에는 으레 이변이 있다. 축구대회는 특히 더 그러하다. 공은 둥굴고 차면 굴러가기 때문이다. 한국월드컵대표팀은 이제 배수의 진을 치고 주눅들지 않는 최선의 경기를 치를 팀워크와 정신무장을 다져야 한다. 이변을 창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긴 하나, 시련은 여전하여 대진 추첨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속한 H조나 중국이 든 C조에만 속해도 좀 나을 법한데 이건 폴란드와의 첫 경기(6월4일·부산) 부터가 된통 걸렸다. 폴란드는 4강을 노리고 포르투갈은 우승후보며 미국은 1994년대회 16강 진출국이다. 추첨운이 없기로는 지역사회의 중국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월드컵사상 첫 본선에 진출한 중국은 10만명 가량이 경기관람에 나설 것으로 이미 전해졌다. 기왕이면 중국과 가까운 인천 수원에 중국의 경기가 배정됐으면 좋으련만 서울 광주 서귀포 등지로 배정됐다. 중국관광객 특수 기대가 무산된 것 역시 추첨불운이다. 부산서 가진 2002년월드컵 축구대회 조편성 추첨은 이처럼 국가대표팀 대진운이나 지역사회의 관광객 유치에 비록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추첨운만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금세기 최초의 월드컵 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마지막 전력투구가 있어야 한다. 극복해 내는 시련은 모질수록 그 결과가 값지다. 정주영씨는 생전에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고 했다.

노래

온 나라안 백성의 심성이 신경질적이 됐다. 걸핏하면 싸움이 잦았으므로 민초의 일상생활이 편할 날이 없었다. 왕은 생각끝에 금언령을 내렸다. 말을 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노래를 불러 의사소통을 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나라안이 온통 노래로 가득했다. 싸움도 뜸해졌다. 가령 성깔섞인 말로 “야! 이놈의 ××야”할 것 같으면 상대의 성질을 돋울 것인데도 말은 같을 지라도 노래말로 곡조를 부쳐 느릿느릿 하게 의사를 전달하다 보면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성질이 풀려 결국 웃고 말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어느 옛날 얘기로 물론 가공담이다. 하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의 월광곡은 앞 못보는 어느 소녀를 위해 작곡된 것이었고 우리 전래의 판소리 수중가는 용왕에게 잡혀간 토끼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도 월광곡은 서정적이고 수중가는 해학적이다. 앞 못보는 소녀를 위한 월광곡이 서정적이고 토끼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 노래로 쏟아내는 해학은 다분히 반의어적 기법인 것이다. 흔히 쓰는 말로 “좋아 죽겠다”는 말이 있다. “우스워 죽겠다”고도 한다. 인간의 정서는 이처럼 반의적 표출로 자신의 감정을 달래려는 잠재본능이 있다. 그래서 슬플 때 오히려 기쁜 노래를 하고 기쁠 때 오히려 슬픈 노래를 하는 것이다. 대개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감정의 충격적 변화를 노래로 달래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영적 사고력의 산물이란 게 통설이다. 노래는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도 부르고 혼자 흥얼거리며 부르기도 한다. 혼자 흥얼거려도 남이 듣기 마련이어서 기왕 부르는 노래라면 잘 부르는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 역시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함으로 잘 부르고 싶다고 해서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나 아무리 음치의 노래라도 악다구니 보다는 노래 소리가 더 듣기에 좋다. 화도 나고 속썩히는 일이 많은 사회다. 그런 가운데나마 기쁜 노래든 슬픈 노래든 노래로 마음을 달래며 인내할 줄 아는 것 또한 생활의 지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白山

대진운

1954년 64시간의 장거리 여행으로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그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와 맛붙어 9대0으로 대패했다. 헝가리는 푸스카스가 이끄는 무적의 팀으로 ‘마법의 팀’으로 불리며 1950년대 초반 3년동안 32전무패 행진을 벌이던 팀이다. 첫 월드컵 참가 기록을 세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는 너무나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그후 2차전도 터키에 7대0으로 무릎을 꿇은 한국은 이미 탈락이 확정돼 같은 조였던 서독과는 경기도 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서독과 헝가리는 결국 결승에 진출했으니 얼마나 불운한 대진이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1986년, 32년 만에 월드컵 축구장을 다시 밟은 한국은 1954년보다 더 불운한 조 편성에 한숨을 쉬었다. 불가리아는 차치하고라도 전 대회인 1982년 우승팀 이탈리아, 전전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편성된 것은 지금까지도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은 그 당시 한국대표팀에겐 불운을 탓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세 경기 모두 득점하면서 세계 최고의 팀들과 선전을 펼친 것을 보면 ‘만일 다른 조에 편성됐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준다. 결국 같은 조에 있던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1986년 월드컵은 가장 아쉬웠던 월드컵 도전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와 맞붙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드리블 연습부터 다시하고 오라’는 현지 언론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졸전을 벌였고 1994년 미국 월드컵 역시 독일과 스페인과 같은 조편성에서부터 한국의 16강 진출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조 추첨에서의 불운은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이어졌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라는 두개의 유럽팀을 맞은 한국은 멕시코라는 북미의 강적까지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조에 편성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월드컵에 가장 많이 출전한 나라지만 한번도 승리하지 못한 채 2002년 여섯번째 출전을 한다. 그동안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특히 조 추첨의 불운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12월1일, 내일 부산에서 열린다. 개최국으로서 1번 시드를 받고 안방에서 첫 16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대표팀에 조 추첨에서 만이라도 제발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은 FIFA 랭킹 40위대에 속한다. /淸河

주경야독

‘열린학습사회’와 ‘평생학습사회’를 교육목표로 1972년 개교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이제는 인재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방송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국내 유일의 개방대학(Open University)으로 지식정보화시대에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학부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대학에서 첨단 방식이라고 말하는 사이버 강의가 방송대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내 대학 최초로 1996년 자체 위성TV방송국을 설립, 무궁화위성을 이용해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30년동안 배출한 26만명의 졸업생 가운데서 지금까지 행정고시 36명을 비롯, 사법고시 13명, 공인회계사 9명, 군법무관 2명, 입법고시 1명이 배출됐다고 한다. 16대 국회에 진출한 송영길·정인봉·심재철·이용삼·배기선·강숙자 국회의원이 방송통신대를 졸업했거나 재학중이다.그런데 방송대는 소위 출세했다는 동문들을 소개할 때 교육자나 예술인들도 상당수에 이를텐데 주로 고시합격자나 정치인, 고위 공직자를 주로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 속의 첨단 원격대학임을 자부하면서 그래서는 안된다. 방송대에 최근에는 현역 정치인 정동영·최용규 국회의원 등과 명문대 졸업자들의 편·입학이 급증했다는 소식이다.그렇다면 방송대 학생들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쌓는다는 말이 어쩐지 무색해지는 것 같다. 물론 재학생중에는 남녀 직장인들과 자녀를 몇명씩 둔 가정주부들도 꽤 많다. 공부하는 가정주부, 직장인의 모습은 보기에 참 좋다. 여성의 세 가지 아름다운 모습은 어린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바느질하는 모습, 그리고 독서하는 모습이라고 하지 않던가. 출석수업 기간이 아닌데도 방송대 경기지역 학습관의 창문이 불빛으로 환히 밝혀진 정경을 보면, 입학하기는 쉬어도 졸업하기가 매우 힘든 방송대가 주경야독의 현장임이 분명하다. 방송대는 2002학년도 신입생 및 편입생을 각각 6만6천400명과 8만7천명을 모집한다고 한다. 방송대는 아주 특별한 대학이다. /淸河

개고기와 말고기

프랑스 국영방송 2TV에선 지난 22일 저녁 시사코미디 토크쇼를 통해 한국 학생이 간식을 먹기 위해 개를 가방에서 꺼내는 장면등 악의에 찬 방송이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한국요리라고 해 먹은 고기를 개고기라고 하자 구토하는 모습도 방송해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방송사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지난 19일 공중파 방송인 ‘워너 브러더스 WB11’에서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이 개고기를 취급한 것처럼 왜곡 보도하여 교민들의 거샌 반발을 샀다. 이 방송은 식당을 하는 교포가 사냥 및 판매허가까지 받은 코요테를 사가면서 몰카로 함정취재한 테이프를 마치 개고기를 판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WB측은 일부 정정보도를 하긴 했으나 교포사회의 지탄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건 서울시장은 얼마전 영국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FIFA(국제축구연맹)의 월드컵 기간중 개고기 판매금지 요청에 언급, “개고기와 관련해 특별한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일부 외국 언론이 국내의 개고기 음식문화에 이러쿵 저러쿵 해가며 꽤나 입방아를 찧는 모양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를 때도 그랬던 것이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임박하면서 또 한차례 개고기가 입방아 도마에 오른 것 같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해하려 드는 외국 언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지난 15일자 신문 ‘한국인들은 월드컵 때문에 진미를 포기해야 하는가’란 제목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FIFA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프랑스인들에게 말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면서 ‘고유의 음식문화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서구의 문화제국주의’라고 했다. 말은 개와 마찬가지로 인류와 친근하게 지낸지 무척 오래 되는 가축이다.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으며 현대사회의 스포츠에선 말을 애마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가 먹지 않는 말고기를 프랑스인 등 서구인들은 즐겨 먹는 것처럼 프랑스인 등이 먹지 않는 개고기를 우리가 먹는다 하여 다를 바가 없다. 고유의 식생활문화 차이인 것이다. 말고기를 먹는다고 말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먹는다고 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느 국민 못지않게 개를 사랑한다. 애완견을 식용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똥개’로 불리운 황구가 제격이다. 차제에 개를 합법적으로 도살하는 식품위생법의 개정이 있으면 좋겠다. /白山

首鼠兩端

쥐구멍에서 쥐가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 또 나가면 좌우 어느쪽으로 갈까 하고 망서리는 모양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이라고 한다. 양다리를 걸친채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 처신을 일걷는 말로 쓰인다. 사기(史記) ‘위기무안전’(魏其武安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한나라 무제 때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의 권력다툼이 극심했다. 한번은 두영의 친구로 용장이었던 관부가 잘못을 저질러 두영과 전분 두 숙적이 어전회의에서 논쟁을 벌였다. 두영은 친구였으므로 관용을 베풀자는 주장인 반면에 전분은 정적의 친구이므로 강력한 처벌을 주청하고 나섰다. 황제가 듣다못해 어느쪽이 정당한가를 신하들에게 묻던중 어느 내사(內史)차례가 되어 처음은 두영쪽을 지지하는 듯하다 형세가 불리해지자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침내 어전에서 물러나자 전분은 내사에게 “하위(何爲), 어찌하여 수서양단 하였소!”하고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은데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수서양단의 비열함은 일상생활에서도 흔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물의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것과 형세의 잇속이 어느쪽에 더 많은 가를 살피는 수서양단은 양자가 서로 다르다. 그렇긴 해도 이를 객관적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데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더러는 다변이 과묵으로 위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설치기도 한다. 요즘 중앙·지방의 정치권에 수서양단이 꽤나 성행하는 것으로 들린다. 다변형, 과묵형 할 것없이 내심 어느쪽으로 줄을 서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눈치놀음이 대학입시 눈치작전 만큼이나 심한 모양이다. 소신이 처신을 형성하지 못하고 처신이 소신을 왜곡해야 하는 수서양단은 국가사회의 혼돈을 가져온다. 분명, 그렇긴 해도 정신적 지주를 삼을만한 구심적 인물의 빈곤함이 수서양단의 악폐를 더하는 연유 또한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떻든 줄세우길 좋아하고 줄서길 좋아하면 그 역시 줄로 인하여 망치는 것이 세상 이치의 섭리다. 줄의 이해관계는 한 때여서 오늘은 친구같아도 내일은 적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리에 따라 경우대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편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수서양단의 모양새 사나운 쥐같이 산다하여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白山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