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권 때 박준규 국회의장이 밀려나면서 용도폐기의 뜻으로 쓴 ‘팽(烹) 당한다’는 말이 일반화돼 신문 제목에도 ‘烹’이 가끔 눈에 띄게 됐다. 진나라 말기에 유방을 도와 항우를 지금의 중국 안휘성 영벽현 동남쪽 해하의 마지막 대회전서 궤멸시켜 마침내 천하통일의 창업을 안겨준 한신이 결국엔 한고조 유방에게 반란 혐의로 참형당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토끼가 없어지고 나니 토끼사냥에 쓰인 개가 가마솥에 삶긴다는 이 말은 ‘사기-회음후전’(史記-淮陰候傳)에 전한다. 원문은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이다. 실컷 부려먹고 자기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거나 쓸모가 없게 되면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뜻으로 지금도 더러 쓰인다.
한신은 한때 나라에 둘도 없는 인재라는 말로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찬사를 들었다. 그같은 한신이었지만 유방은 한나라를 세우고 나서는 그를 경계하다가 참소를 빌미삼아 죽이고 말았다. 한신은 그래도 일국의 병권을 거머쥔 대장군을 했지만 원문의 ‘교토사주구팽’에 나오는 말 그대로 ‘주구(走狗)’ 노릇을 하다가 팽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정치권이나 정치권과 가까운 권력세계에서 더욱 심하다. 그간 보아온 경험에 비추어 봐도 많은 이들이 팽을 당했다.
서울지검은 이무영 전 경찰청장을 수지김 피살사건과 관련, 범인도피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사전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씨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앞으로 시일을 두고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생각되는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면서도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그가 이젠 단죄를 받게된 권좌무상이다. 권좌나 권력은 그처럼 좋을순 없지만 잘못하다가는 독약이 되는 것이다. 이씨가 팽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런쪽으로 믿고 싶진 않지만 권좌의 공무원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있다. 지금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고위 공무원들은 자신의 입지를 한번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권의 주구는 결국은 말로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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