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운

1954년 64시간의 장거리 여행으로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그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와 맛붙어 9대0으로 대패했다. 헝가리는 푸스카스가 이끄는 무적의 팀으로 ‘마법의 팀’으로 불리며 1950년대 초반 3년동안 32전무패 행진을 벌이던 팀이다. 첫 월드컵 참가 기록을 세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는 너무나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그후 2차전도 터키에 7대0으로 무릎을 꿇은 한국은 이미 탈락이 확정돼 같은 조였던 서독과는 경기도 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서독과 헝가리는 결국 결승에 진출했으니 얼마나 불운한 대진이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1986년, 32년 만에 월드컵 축구장을 다시 밟은 한국은 1954년보다 더 불운한 조 편성에 한숨을 쉬었다. 불가리아는 차치하고라도 전 대회인 1982년 우승팀 이탈리아, 전전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편성된 것은 지금까지도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은 그 당시 한국대표팀에겐 불운을 탓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세 경기 모두 득점하면서 세계 최고의 팀들과 선전을 펼친 것을 보면 ‘만일 다른 조에 편성됐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준다. 결국 같은 조에 있던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1986년 월드컵은 가장 아쉬웠던 월드컵 도전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와 맞붙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드리블 연습부터 다시하고 오라’는 현지 언론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졸전을 벌였고 1994년 미국 월드컵 역시 독일과 스페인과 같은 조편성에서부터 한국의 16강 진출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조 추첨에서의 불운은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이어졌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라는 두개의 유럽팀을 맞은 한국은 멕시코라는 북미의 강적까지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조에 편성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월드컵에 가장 많이 출전한 나라지만 한번도 승리하지 못한 채 2002년 여섯번째 출전을 한다. 그동안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특히 조 추첨의 불운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12월1일, 내일 부산에서 열린다. 개최국으로서 1번 시드를 받고 안방에서 첫 16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대표팀에 조 추첨에서 만이라도 제발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은 FIFA 랭킹 40위대에 속한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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