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鼠兩端

쥐구멍에서 쥐가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 또 나가면 좌우 어느쪽으로 갈까 하고 망서리는 모양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이라고 한다. 양다리를 걸친채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 처신을 일걷는 말로 쓰인다. 사기(史記) ‘위기무안전’(魏其武安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한나라 무제 때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의 권력다툼이 극심했다. 한번은 두영의 친구로 용장이었던 관부가 잘못을 저질러 두영과 전분 두 숙적이 어전회의에서 논쟁을 벌였다. 두영은 친구였으므로 관용을 베풀자는 주장인 반면에 전분은 정적의 친구이므로 강력한 처벌을 주청하고 나섰다. 황제가 듣다못해 어느쪽이 정당한가를 신하들에게 묻던중 어느 내사(內史)차례가 되어 처음은 두영쪽을 지지하는 듯하다 형세가 불리해지자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침내 어전에서 물러나자 전분은 내사에게 “하위(何爲), 어찌하여 수서양단 하였소!”하고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은데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수서양단의 비열함은 일상생활에서도 흔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물의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것과 형세의 잇속이 어느쪽에 더 많은 가를 살피는 수서양단은 양자가 서로 다르다. 그렇긴 해도 이를 객관적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데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더러는 다변이 과묵으로 위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설치기도 한다.

요즘 중앙·지방의 정치권에 수서양단이 꽤나 성행하는 것으로 들린다. 다변형, 과묵형 할 것없이 내심 어느쪽으로 줄을 서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눈치놀음이 대학입시 눈치작전 만큼이나 심한 모양이다. 소신이 처신을 형성하지 못하고 처신이 소신을 왜곡해야 하는 수서양단은 국가사회의 혼돈을 가져온다. 분명, 그렇긴 해도 정신적 지주를 삼을만한 구심적 인물의 빈곤함이 수서양단의 악폐를 더하는 연유 또한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떻든 줄세우길 좋아하고 줄서길 좋아하면 그 역시 줄로 인하여 망치는 것이 세상 이치의 섭리다. 줄의 이해관계는 한 때여서 오늘은 친구같아도 내일은 적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리에 따라 경우대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편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수서양단의 모양새 사나운 쥐같이 산다하여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白山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