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박사(博士)’는 대학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학위, 또는 그 학위를 받은 사람의 명칭이지만 고대에는 교육을 맡아 보던 관직이었다. 중국 진나라 때 이 제도가 처음으로 생겨 박사로 하여금 고금(古今)의 학문을 맡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박사의 관직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중국에서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오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그를 신총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록이 그 최초이다. 그러나 그 박사가 학식이 박통하다고 하여 임명한 것인지, 또는 고조선의 어떠한 고유의 관직을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의 표기인지 확실하지 않다. 박사의 관직제도가 확실히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600년(영양왕 11)에 고구려의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이 전해오던 ‘유기(留記)’100권을 고쳐서 ‘신집(新集)’5권을 편찬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다. 여기서 태학(太學)이라 함은 고구려의 중앙 최고의 대학이다. ‘삼국사기’에는 또 백제의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신라는 682년 (신문왕2)에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박사를 두어 유학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엔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자감에 교육을 담당한 박사 관직을 두었고, 조선시대에 들어 성균관·홍문관·숭문원·교서관 등에 박사를 두었다고 전한다.

1895년(고종32) 폐지됐다가 1897년(광무1)‘교수(敎授)’로 개칭된 사실이 있었다.

근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는 1904년경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세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서재필(徐載弼)이다. 박사는 전공학문 분야에서는 최고의 지성이다.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대학교는 물론 대학원을 나와 박사코스를 밟아야 한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여 전부 학위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피땀 흘려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그런데도 지난해까지 박사학위를 받고도 취직을 못한 박사 실업자가 36.5%인 1만3천454명이나 된다. 더구나 인문계박사는 80%가 ‘백수(白手)’라고 한다.박사들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라가 ‘아아, 대한민국’이다.

/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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